日 AKB48을 통해 보는 인터넷 선거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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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B48’. 한국에서도 그룹명 정도는 꽤나 알려졌다. 일본을 대표하는 이 걸그룹은 숱한 화제를 몰고 다니며 정상의 자리에 올라섰다. 사상 최악의 불황을 맞고 있는 음반시장에서 싱글앨범이 나오는 족족 밀리언셀러를 기록한다. 핵심은 매년 팬들의 투표 결과에 따라 인기 순위를 매기는 ‘선발총선거’. 이 연례행사는 올해 지상파 중계에서 순간 최고 시청률 32%를 넘기며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단순한 아이돌로 치부할 수 없는 AKB48의 영향력은 유서 깊은 일본 엔터테인먼트산업의 노하우를 집대성한 거대 시스템의 성공 사례이기도 하다.

<<< 그룹명 ‘AKB’는 전자상가와 애니메이션 용품점이 밀집한 언더컬처의 중심지,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AKIHABARA)에서 따왔다. 숫자 ‘48’은 이들의 초기 소속사연예사무소 ‘오피스48’ 사장인 시바 고타로의 성(姓)인 芝(しば)와 유사한 일본어 숫자 발음이다.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을 테마로 총괄 프로듀서 겸 작사가인 아키모토 야스시의 기획 하에 2005년 아키하바라의 할인양품점 ‘돈·키호테’에 250석 규모의 전용극장을 열고 활동을 시작했다. 멤버들의 성장 과정을 고스란히 노출하는 미디어 전략으로 인기를 끌어 올 5월 기준 누적 2185만 장의 앨범 판매고를 올렸다. 나고야의 ‘SKE48’, 오사카의 ‘NMB48’, 후쿠오카의 ‘HKT48’,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JKT48’, 중국 상하이의 ‘SNH48’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자매그룹을 결성, 그룹 전체의 재적 인원수는 250여 명에 달한다.

  AKB48은 소규모 극장공연과 CD를 구입하면 원하는 멤버와 만날 수 있는 ‘악수회’ 등을 통해 이전까지 좁혀질 수 없었던 아이돌과 팬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전략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를 ‘기획’으로 분류한다면, AKB48의 인기와 자본력을 지탱하는 ‘시스템’은 다양한 기업들과의 협업(collaboration)에 있다. 멤버들은 AKB48과 제휴관계를 맺은 구글플러스를 통해 팬들에게 일거수일투족을 내비친다. 이러한 공동 마케팅은 항공사(ANA), 식음료업체(아사히음료, UHA우미당), 노래방(조이사운드), 파친코(쿄라쿠), 공익사업(일본적십자사), 게임(GREE, 카도카와, 반다이남코), 통신사(NTT도코모), 미디어(요미우리신문, 닛칸스포츠, 닛테레, 히카리TV)에 이르기까지 열거하기 힘들 만큼 종횡무진이다. 단순한 광고 모델이 아닌 콘텐츠 생산과정에서의 상호 교류로 영향력을 극대화한다. >>>

6월 8일 일본 요코하마시 닛산스타디움. 2002 한일월드컵 결승전 무대였던 수용인원 수 7만 명의 이 경기장은 이날 열린 AKB48 제5회 선발총선거를 지켜보기 위한 관중들로 가득 채워졌다. 티켓을 구하지 못한 이들이 경기장 주변에 모여 발을 동동 구르며 스마트폰과 모바일기기로 유튜브를 통해 중계되는 선거 개표과정을 지켜보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도쿄 시내의 술집과 음식점에는 ‘AKB48 총선거 중계 중’이라는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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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만 명이 운집한 제5회 AKB48 선발총선거 현장>

투표 참가방식은 크게 나눠 두 가지다. 먼저 팬클럽 회원들에게 1회의 투표권이 주어진다. 총선거 직전 발매된 CD를 구입하면 투표 사이트에 표를 넣을 수 있는 일련번호가 기재된 투표권이 들어있다. 구입한 CD의 수만큼 투표권이 생긴다. ‘1인 1표제’는 아닌 셈이다. ‘일본의 디씨인사이드’격인 대형 커뮤니티 ‘2CH’에는 총선거를 앞두고 수천 장의 투표권을 쌓아 둔 모습이 담긴 ‘인증샷’이 주목받기도 했다. 자신이 응원하는 멤버가 높은 순위를 받아 미디어에 노출될 기회가 많아지길 바라는 팬들은 기꺼이 용돈을, 월급을, 때로는 적금을 털어 투표에 참여한다. 올해 총 투표수는 218만5293표(랭킹 64위까지의 투표 수 합계. 권외멤버 투표 수는 제외)에 달했다.

AKB48에 쏟아지는 국민적 관심의 원동력인 선발총선거. 그 열기의 이면에도 촘촘한 시스템이 자리한다. 투표는 AKB48의 모바일 사이트를 통해 진행되는 ‘전자투표’ 방식이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제3자 기관인 일본 IT솔루션업체 ‘파이프드 빗츠’(Piped Bits)에 집계를 맡긴다. 투표권의 일련번호는 고유의 알고리즘에 의해 생성된다. 파이프드 빗츠는 일련번호 오류의 출현 빈도가 1000만분의 1이라고 밝히고 있다. 투표 사이트의 과부하를 대비해 1초당 페이지뷰 1만 회, 투표횟수 1000회의 액세스를 견딜 수 있는 서버를 구축해 테스트를 마쳤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투표 항목은 나선형 진행방식으로 설계했다. 멤버의 이름 첫 글자 또는 소속된 팀을 선택하고 일련번호를 입력하면 투표가 완료된다. 연령과 성별을 묻는 설문조사는 선택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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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프드 빗츠의 투표 시스템>

집계결과를 기록한 용지는 개표 직전 출력되어 변호사 입회 하에 원본 데이터와 대조해 간인(間印)을 비롯한 확인 절차를 거치고, 잠금장치가 된 ‘007 가방’에 담겨 삼엄한 경비 하에 개표장으로 옮겨진다. 이 가방을 들고 가는 운반책도 변호사인데, 가방을 든 손에 수갑을 차고 경호원 2명이 대동한다. 이를 쇼(show)적인 연출로도 볼 수 있지만, 본질은 CD를 구입하거나 팬클럽 유료회원에 가입하는 등 돈을 써서 투표하는 팬들의 신뢰도가 흔들리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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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 지난해 선발총선거에서 개표결과 운반에 사용된 가방과 수갑. 우 : 올해 총선거 개표 결과 기록지. 변호사의 공증이 찍혀있다.>

파이프드 빗츠의 이러한 전자투표 시스템에 대해 일부에서는 ‘미래형 투표’의 대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정보산업신문은 6월 17일자 2면 시평 기사를 통해 인터넷을 통한 일련번호 투표방식이 미래의 국정선거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에 주목했다. 여느 지방의 시장선거에 맞먹는 규모의 투표가 5년 째 별 탈 없이 진행됐다는 이유에서다.

(※올해 총선거에서는 처음으로 부정투표 사례가 적발됐다. 다만 이는 팬클럽 유료회원의 부정 클릭에 따른 것으로 해당 투표는 무효 처리됐으며 파이프드 빗츠가 진행한 일련번호 기입방식과는 무관하다.)

언뜻 보기에 전자투표 시스템은 진행 과정에서의 신뢰도와 비밀투표의 원칙 등 몇 가지 전제가 보장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솔루션으로 여겨진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아 투표율이 급증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투표권의 매수(買受)나 부정선거, 해킹을 통한 조작 등 충분히 예측 가능한 문제점도 있다.

그러나 전자투표는 이미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미국은 이미 2004년 대통령 선거부터 전자투표를 부분 도입했으며 파이프드 빗츠는 다수결에 의한 판가름을 필요로 하는 민간 레벨에서 전자투표 보급에 힘쓰고 있다. 한편으로는 수시로 공청회를 열고 인터넷 선거의 해금(解禁)에 대한 정당성 확보에 심혈을 기울인다. 더구나 이 회사의 주요 사업목적 중 하나는 정치·선거 플랫폼 구축이며, 정치 전문 사이트인 ‘세이지야마’(政治山)의 운영주체이기도 하다.

파이프드 빗츠는 단순히 민간 기업으로서 전자투표의 사업성에 주목하는 것일까, 아니면 IT를 통해 선거방식의 변혁을 꿈꾸는 것일까. 혹시라도 다른 목적이 있다면 그 실체는 무엇일까? 확실한 것은 연령과 성별을 초월해 절대적 지지를 받는 국민적 아이돌의 인기에 힘입어 전자투표의 노하우와 실험데이터가 매년 축적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일본인들의 전자투표에 대한 거리감이 점차 좁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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