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의 화학 방정식

한국인 가운데 3000만 명 이상이 스마트폰을 쓴다. 세계 1, 2위를 다투는 스마트폰 제조사가 한국 기업이다. 한국의 구글플레이스토어 매출도 일본에 이어 2위다. 그러니까 한국인은 세계에서 최신 스마트폰을 가장 활발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인 셈이다. 이들이 하루종일 들여다보는 게 스마트폰의 터치스크린이다. 들여다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쓰다듬고 두드리며 어루만진다.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최근에야 알게 됐다. 기종별로 차이는 있지만 터치스크린은 스마트폰의 부품별 원가 비중에서 약 20% 정도를 차지하는 값비싼 부품이었다. 스마트폰의 부품가는 판매가의 약 30% 수준인 듯 싶으니 90만 원 짜리 스마트폰이라면 30만 원 정도가 부품가격이고, 이 중 6만 원 정도가 터치스크린일 테다. 그 가운데 70%인 4만 원 이상의 돈이 단 두 회사에게 들어간다. 미국의 코닝과 일본의 니토덴코로.

GorillaGlass

코닝의 고릴라글래스야 코닝이 따로 광고까지 할 정도로 유명해져서 많은 사람들이 친숙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니토덴코라는 회사 이름은 생소했다. 업계에서야 굉장히 유명하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일반인이 ITO 필름을 만드는 이 회사 이름을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ITO 필름은 아이폰 이후 대부분의 터치스크린이 사용하고 있는 정전압식 터치스크린의 핵심 부품이다. 터치스크린이 사람의 손가락 끝을 흐르는 미세 전류를 인식하려면 스크린이 전기를 통과시켜야 한다. 그런데 투명한 유리는 전기를 통과시키지 못하는 부도체다. 유리만으로는 전류 인식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전선을 유리 위에 깔아놓자니 투명도도 문제고 두께도 문제가 된다. 그래서 정전압식 터치스크린은 전기도 잘 통과시키면서 얇게 빻으면 투명도도 높은 인듐주석산화물(ITO)이라는 물질을 사용한다. 합성수지 필름에 인듐과 주석을 잘 발라서 고릴라글래스같은 강화유리에 붙이는 것이다.

니토덴코는 이 기술에서 세계 최고다. ITO 필름의 품질은 인듐과 주석 광물을 얼마나 곱게 빻아서 필름 위에 얼마나 투명하고 균일하게 붙일 수 있는지가 핵심 기술이다. 지금까지는 어떤 경쟁사도 이 기술에서 니토덴코를 따라오지 못한다고 했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터치스크린 모듈을 납품받을 때 ‘필름은 꼭 니토덴코 제품을 써달라’고 요구할 정도다.

이렇게 한 업체의 기술력이 대단하면 꼭 부작용이 생긴다. 문제는 지난해 하반기였다. 애플이 10월부터 아이패드 미니를 만들었는데 여기에 니토덴코 필름을 썼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인듐 자체가 생산량이 부족한 희귀금속인데, 이걸 제일 잘 가공하는 회사의 필름을 애플이 일반 스마트폰보다 적어도 4배는 면적이 넓은(게다가 인기마저 폭발적이었던) 아이패드 미니에 붙여서 쓰기 시작하니 세계적으로 공급 부족 현상이 빚어졌다.

늘 그렇듯 위기는 기회가 된다. 당장 일본의 경쟁업체 오이케(Oike)의 점유율이 수직 상승했다. 한 때 업계 추산으로 ITO 필름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니토덴코의 점유율은 IHS 기준으로 최근 67%까지 떨어졌다. 국내 업체들도 이걸 기회로 보고 ITO 필름 생산을 시작했다. 당장 LG화학이 지난해 12월부터 ITO필름 생산에 들어갔다. 현재 최대생산량은 월 30만㎡ 수준이라고 하는데, 지난해 니토덴코의 연 1200만㎡ 생산량과 비교했을 때 최대한 생산하면 3분의1 정도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니토덴코는 실제 생산량이고 LG화학은 생산 가능한 능력치라 아직 격차는 3배 이상 존재하는 셈이다. 이외에도 국내에서만 한화L&C, SKC 등이 양산 설비를 만들었거나 준비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적인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제조사들이 공장을 갖고 프리미엄폰부터 값싼 저가제품까지 다 만드는 드문 국가이기 때문에 수요도 괜찮아서 관심을 갖는 것이다.

니토덴코의 ITO 필름과 마찬가지로 강화유리 시장도 미국 코닝이 사실상 독점해 왔다. 고릴라글래스라는 제품이 그 주인공이다. 고릴라글래스의 역사는 196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얇고, 강하고, 흠집이 생기지 않는 유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던 코닝은 특별한 강화유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처음에는 누구도 이 유리를 쓰려 하지 않았다. 수요처라 생각했던 안경도 깨졌을 때 위험할까봐 꺼렸고, 자동차 업체들도 앞유리에 쓰기엔 좋지만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다. 고급 손목시계 정도가 시장이 될 수 있었겠지만, 역시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휴대전화 시장이 급성장했다. 결정적 계기는 2007년이었다. 아이폰이 탄생한 그 해 말이다. 스티브 잡스는 코닝에 전화를 걸어 1.3mm 두께의 강화유리를 주문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리고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특히 고급 스마트폰이라면 거의 반드시 사용하는 휴대전화용 강화유리 ‘고릴라 글래스’가 태어났다.

오늘날 고릴라 글래스의 두께는 0.5mm까지 줄어들었다. 심지어 특정 힘까지는 망치로 내려쳐도 깨지지 않는다. 하지만 코닝도 이제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2011년 강력한 경쟁자인 일본의 아사히글래스가 드디어 ‘드래곤트레일’이란 쓸만한 강화유리를 만들어 냈다. 애플은 고릴라 글래스와 함께 드래곤트레일도 주문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품질 좋은 와인잔을 만드는 회사로만 알고 있던 독일의 특수 유리 전문회사 쇼트도 2012년 ‘센세이션’이란 강화유리를 선보였다. 후발주자들이 코닝의 시장을 조금씩 빼앗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KCC가 이 시장에 들어가려고 준비하고 있다. 물론 아직 KCC의 유리로는 고급 휴대전화 수준은 어렵다. 시장의 대세는 0.5~2mm 두께의 강화유리지만 KCC는 올해 초에야 겨우 두께를 1mm까지 줄이는데 성공했을 뿐이다. 그래서 이 회사는 아직은 고급 스마트폰보다 차량용 선루프 등에 쓰는 경량화 소재 시장을 노리고 있다.

다른 방법도 있다. 아예 강화유리나 ITO 필름을 대체하려는 시도 말이다. 예를 들어 애플은 유리 대신 훨씬 경도가 높은 사파이어 글래스를 강화유리 대체품으로 쓸지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사파이어 글래스는 아이폰5에서 카메라 렌즈 커버로 썼던 유리로, 지금까지는 고급 스위스 시계 유리 등으로 쓰였다. 유리가 아닌 경도가 높은 보석을 쓰기 때문에 값은 비싸도 실제 사용이 이뤄진다면 큰 변화가 예상된다. 아니면 유리 못잖은 강화 플라스틱 소재를 개발해서 쓰는 방법도 있다. 신일본제철 같은 회사는 실플러스라는 강화유리 대체품 플라스틱을 이미 개발한 상태다. 문제는 사파이어 글래스도, 합성소재도 모두 여전히 고릴라글래스보다 비싸다는 점이다. 하지만 대량생산을 통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ITO 필름도 꼭 필름에 ITO를 펴 바르는 대신 유리에 바로 ITO를 바르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필름처럼 균일하고 얇게 바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인데, 기술 발전이 이런 문제를 조금씩 해결하기 시작했다. 이외
도 ITO 대신 은나노 입자를 펴바르는 은나노 와이어 기술도 ITO 대체 기술로 꼽힌다. 미국 캄브리오사가 개발한 기술인데 은나노 입자가 전도성도 갖고 ITO처럼 투명하게 바를 수도 있다는 성질을 응용한 것이다. 캄브리오는 작년 10월에 LG전자와 함께 23인치 터치스크린 모니터를 이 기술로 만들어 발표하기도 했다.

유리도, 필름도 모두 화학 회사에서 만들어낸 화학 제품들이다. 국내 기업들도 이 시장에 들어가보려 애를 쓴다. 하지만 쉽지 않다. 지난 수십년의 세월 동안 일본과 독일, 미국 단 세 나라가 쌓아올린 화학 분야의 연구 업적과 이를 상용화한 이 나라 기업들의 특허 탓이다. 그러니까, 당연한 얘기지만 갤럭시를 파는 세계 일류 회사 하나가 한국에 있는 것이 중요한 만큼, 기초과학은 더 중요하다. 기술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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