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ad to Perf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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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그들은 죽음의 행진(Death March)을 벌였다. 애플이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쓰고 있는 이 용어는 원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불가능한 과제를 불가능한 시간 내에 마쳐야만 할 때 쓰던 말이다.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을 목표를 하루 14시간 씩 주말도 없이 일하면서 어떻게든 완수할 때 쓰던 표현. 그들은 죽음의 행진에 들어갔다고 스스로를 자조했다. 사실 애초에 죽음의 행진이란 말 자체가 전쟁 포로를 끝없이 걷게 하고 강제 노역을 시키면서 만들어진 말이다. 포로들이 다 죽을 때까지 행진이나 강제노역이 계속됐으니까. 끔찍한 단어지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쓰기 시작하면서 알려진 이 말은 이젠 애플 같은 기업은 물론 수많은 기업의 프로젝트 관리에서 흔히 쓰이곤 한다.
새 아이폰 발표를 보기 전 우연찮게 애플 협력사 분께 애플과 함께 일하는 얘기를 듣게 됐다. 이 때 이분이 말씀하신 죽음의 행진 얘기가 인상적이었다. 당장 신제품 출시 기간이 다가오면 애플은 죽음의 행진을 선포한다. 그리고 모든 엔지니어와 생산관리 부서 직원들이 생산 현장으로 떠난다. 쿠퍼티노 사무실에서 노닥거리는 건 애플 직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얘기와 마찬가지다. 실제로 팀 쿡이 회의 때 중국 사업 담당 부사장에게 “왜 아직도 여기 있는거요?”라며 당장 비행기를 태워 내쫓았다는 얘기는 이미 유명한 일화다. 그러니 회사에 남아 있을 간 큰 직원은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 기간에는 폭스콘은 물론이고 애플의 서플라이 체인에 들어가 있는 모든 회사들에 애플 직원들이 파견돼 상주한다. 한국에 팀 쿡이 툭하면 조용히 나타났던 것도 이렇게 보니 특별히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신제품 출시 전 쿡은 자연스럽게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 같은 부품 공급사를 둘러봐야만 했던 셈이다.

제품 생산이 시작된 이후의 관리도 다르다. 엔지니어와 공급망 관리자가 모두 파견되는 이유가 있었다. 이들은 서로 견제 역할을 맡는다. 우선 애플 엔지니어들은 제품 생산이 시작되면 부품의 완성도만 따진다. 애플의 구조상 이들의 평가는 최종 제품의 성공을 위한 담당 부품의 완성도로만 평가된다. 생산일정이든, 가격이든 그런 건 신경쓰지 않는다. 그리고 관리자들은 가격과 일정만 따진다. 이들은 가격과 일정으로만 평가된다. 둘 다 상사가 다르고 자기 보스가 팀 쿡에게 직접 보고하는 관계다보니 자연스레 서로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게 납품업체로서는 환장할 노릇이 된다. 같은 회사에서 두명이 나와서 한쪽은 시간이든 비용이든 알 바 아니니 성능을 높이라고 닥달하고, 다른 쪽에선 성능이든 디자인이든 알 바 아니니 주어진 시간에 정해진 가격에 부품을 내놓으라고 난리를 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단순한 구매자의 횡포와는 거리가 멀다. 애플 엔지니어들은 절대로 괜히 트집잡지 않는 게 특징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카메라 모듈이라도 하나 새로 만들려면 이들은 렌즈에 쓰이는 유리의 재료와 해당 유리를 만드는 화학 회사의 최신 기술, 광학 센서 생산 기업의 현재 재무상황 및 최근 등록 특허까지 줄줄이 꿰고 있다는 것이다. 공급망 관리자들도 남달라서 자신들이 관리하는 회사가 일정을 맞추지 못하겠다고 하면 “최근 개발된 이런 기계를 쓰면 수율이 높아지고 단위 생산량이 늘어나서 하루에 20% 더 생산할 수 있다”는 식으로 접근한다고 했다. 그러면 당연히 일정이 앞당겨진다. 이를 위해 납품업체가 어떤 기계를 사서 어떤 생산라인을 만들지까지 애플이 직접 정한다. 물론 기계를 사고 라인을 짓는 건 납품업체 비용이다. 하지만 이렇게 일해도 애플과 일하면 다른 곳에서 경기가 나빠 입은 모든 손실을 만회할 만큼의 이익이 남는다고 했다. 이렇게 납품업체에게 넉넉한 돈을 주면서도 벌써 5년 째 인플레도 감안하지 않은 동일 가격에 신기능이 들어간 신제품을 판매 기록을 경신하며 팔아대는 게 애플의 마술이다.

죽음의 행진은 현지의 납품업체 공장에서도 함께 진행된다. 납품업체들은 쿠퍼티노로부터 하루에도 몇번씩 걸려오는 컨퍼런스콜을 받는데, 새벽에도 전화를 받지만 낮에도 전화를 받는다고 했다. 미국에서도 24시간 일한다는 얘기라 납품업체들도 불평도 못한다. 힘들지만 누구도 애플과 일을 그만두려 하지 않는다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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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애플이 신제품을 본격적으로 대량생산하기 전에 생산한다는 시제품만 2만 개란 사실. 중국에서 아이폰 관련 루머가 미리 새어나올 수밖에 없는 건 스티브 잡스가 죽어서 애플에 군기가 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폰이 워낙 많이 팔리면서 시제품 자체가 관리 불가능한 수준으로 대규모로 제작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애플은 늘 새로운 시도를 했다. 이번에는 64비트 프로세서와 동작인식만 전담하는 보조 프로세서가 처음으로 들어갔고, 지문인식 센서도 쓰였다. 어떤 스마트폰 회사도 이런 건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스마트폰에서 처음 쓰인 기술 가운데 애플이 처음 사용한 기술은 수없이 많다. 정전식 터치스크린과 코닝의 강화유리인 고릴라글래스, 얇은 두께를 만드는 인셀 터치패널이라거나 동작을 미세하게 인식하는 자이로스코프 등등. 시장에서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천만 대가 넘게 팔릴 단일 모델에 이렇게 많이 사용하는 회사가 애플 말고 어디 있는지 나는 정말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니 혁신이 없네, 이젠 애플도 한 물 갔네 얘기하는 것이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자유지만, 나는 당장 아이폰 5S가 탐난다. 한국에는 언제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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