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버 이야기

한국에 내가 정말 좋아했던 회사들이 있는데, 정말 멋있었다. 하나는 싸이월드였고, 다른 하나는 아이리버였다. 2005년 싸이월드는 세계 2위의 디지털음악 판매회사였다. ‘아이팟’으로 세계 시장을 휩쓸던 애플의 아이튠스 뮤직스토어 바로 다음가는. 그런데 개념이 달랐다. 아이튠스에서는 소비자에게 소비자가 소유할 음악을 판다. 내가 음악을 듣기 위해 곡을 사는 셈이다. 당연한 소리같지만 싸이월드는 다르다. 싸이월드에선 소비자에게 ‘남에게 들려줄 음악’을 팔았다. 이른바 배경음악 서비스였다. 내가 듣기 위한 게 아니라 내 미니홈피를 방문할 사람들이 즐길 음악이었다. 싸이월드는 이런 식으로 글꼴도 팔았고, 벽지(스킨)도 팔았다. 화가와 디자이너들이 이렇게 돈을 벌었다. 지금이야 흔하지만, 내가 보기엔 당시에는 세계 어디에도 없던 혁신적인 모델이었다.
아이리버는 또 어쨌나. 2005년만 해도 사과를 베어무는 광고를 미국에 뿌려대면서 아이팟하고 경쟁하는 제품으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했다. 한국의 작은 중소기업이었는데 스티브 잡스가 직접 ‘형편없는 모델’이라며 욕하던 경쟁 제품이었다. 아이팟 이전까지 내가 제일 오래 썼던 MP3플레이어 제조사였기도 했고, 주위 사람들에게 망설임없이 추천했던 제품을 만드는 회사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아이리버는 2005년의 갤럭시S였던 셈이다. 그런데 두 회사 사이에 묘한 공통점이 있다. 싸이월드도 SK텔레콤이 인수했고, 오늘 아이리버도 SK텔레콤이 인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부디 아이리버는 싸이월드처럼 되지 말고, SK텔레콤의 인수 성공 사례가 됐으면 좋겠다.

남의 일처럼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2011년 썼던 아래 기사 때문이다. 남의 회사 같지가 않다. 당시엔 ‘아스텔앤컨’도 만들지 않았고, 스마트폰도 나오지 않았던 때지만, 지금은 거의 장사도 되지 않는 전자잉크 이북리더를 만들던 이야기지만, 이 사람들은 영혼을 걸고 일하는 사람들 같았다. 부디 잘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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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세계 1위였다. “한국에서 아이리버 MP3플레이어가 없는 집은 한 곳도 없을 것”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레인콤(아이리버의 옛 이름)을 창업한 양덕준 사장은 ‘벤처기업인의 표상’이 됐다. 당시 ‘아이리버에 다닌다’는 건 ‘삼성전자에 다닌다’는 말과 비슷했다.

정석원 부장과 이상원 부장은 2001년 이 회사에 입사했다. 5월 입사한 ‘사원 정석원’은 직장생활 3년차, 8월 입사한 서강대 경영학과 후배 ‘신입사원 이상원’은 졸업까지도 반년이 더 남은 대학생이었다.

회사는 예전 직장보다도, 심지어 대학보다도 좋았다. 매일 밤이면 서울 서초구 서초동 다라빌딩 사무실 시멘트 바닥에 제품 포장용으로 쓰이는 스티로폼과 골판지박스가 깔렸다. 그리고 그 위에서 20, 30대의 젊은 청년 수십 명이 교대로 쓰러져 잠이 들곤 했다. 깨있는 사람이 더 많기는 했지만 마치 불침번을 서는 군대 같았다.

고생스러웠지만 고생이 아니라고 믿었다. 매월 ‘아이리버’ 브랜드를 달고 공장에서 완성품이 들어오는 날이면 다라빌딩 지하주차장이 꽉 찼기 때문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총판’ 사장들의 화물차였다. 공장에서 제품을 싣고 온 트럭이 멈춰서면 짐칸 앞에 ‘사장님’들이 줄을 섰다. 이 부장은 “줄 선 사장님들에게 식사 배급하듯 트럭 위에서 상자를 넘겨줄 때면 쪽잠을 잔 고생이 씻은 듯 사라졌다”고 했다.

하지만 2005년 실패가 찾아왔다. 애플이 MP3플레이어 ‘아이팟’으로 세계시장을 휩쓴 것이다. 해외 수출 물량이 급감했다. 2006년 회사는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정 부장은 아버지처럼 존경하던 양 사장을 찾아가 물었다. “사장님, 다른 회사로 옮겨도 될까요?” 양 사장은 말했다. “가라.” 돌아서는 정 부장에게 한마디가 더 들려왔다. “근데, 약속 하나만 해라. 1년 뒤 다시 날 찾아와서 그 회사 계속 다닐지, 아니면 돌아올지 얘기만 해 주라.” 이 부장도 양 사장을 찾아갔다. 같은 얘기를 들었다.

회사를 떠난 둘은 1년을 못 버텼다. 레인콤 시절 ‘영업의 달인’이던 이 부장은 내비게이션 회사에 취직했다가 ‘영업의 꽝’이 됐다. 이 부장은 ‘온실 속 화초’ 같은 다른 영업사원들과는 달랐다. 대학 1학년 때부터 “밑바닥 경제부터 배워 성공하겠다”며 남대문시장에서 리어카 배달을 하고, 아이리버에 입사하기 직전에는 동대문 의류시장에서 여성 속옷을 만들어 러시아에 수출하던 사람이었다. 그래도 영업이 안 됐다. “아이리버 브랜드라는 게 정말 대단하다는 것, 그리고 제가 그런 엄청난 일을 벌였던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8개월 만에 이 부장은 그렇게 말하고 양 사장에게 돌아갔다.

정부장은 몇 달 더 버텼다. 그는 ‘상품기획의 달인’이었다. 기왕 회사를 그만두었으니 양 사장처럼 성공 신화를 써보고 싶었다. 그래서 함께 회사를 그만둔 동료들과 창업했다. 그리고 1년. 정 부장은 “깨끗하게 망했다”고 했다. 돌아볼 것도 없었다. 다시 양 사장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2008년. 이번엔 양 사장이 자신이 창업한 회사로부터 나가라는 요구를 받았다. 600억 원을 투자해 급한 불을 꺼준 보고펀드로부터였다. 마치 애플로부터 쫓겨난 스티브 잡스 같았지만 양 사장은 스티브 잡스와는 달랐다. 조용히 물러났다. 정 부장은 다시 한 번 회사를 나갔다. 민트패스를 새로 창업한 양 사장을 따라서였다. 이 부장은 회사에 남았다. 이후 레인콤과 민트패스는 모두 어려움을 겪었다. 이 기간에 레인콤은 “가진 건 브랜드뿐”이라는 생각에 아예 사명을 아이리버로 바꿨고, 민트패스는 제대로 된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공중 분해된다. 양 사장이 뇌출혈로 쓰러졌기 때문이다.

2010년. 정 부장도 결국 아이리버로 돌아왔다. 회사엔 남은 게 하나도 없었다. 모든 건 ‘아이폰’이 쓸어갔다. MP3플레이어도, 동영상 재생기도, 전자사전도….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양 사장도 없었고, 함께 젊음을 쏟아 부었던 동료도 없었다. 딱 한 명,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있었다. 후배 이 부장이었다.

그리고 이재우 대표가 새로 취임했다. 대주주인 보고펀드의 파트너였다. ‘돈 냄새’만 맡는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의외였다. 어느 날인가 이 대표는 사원들을 모두 불러놓고 “감동받았다”며 얘기를 꺼냈다. 창업자 양 사장의 얘기였다. “여러분, 제가 옛날 서류를 뒤적이다가 새 제품을 만들 때 세 가지를 갖고 판단하라는 자료를 봤어요. 양 사장님이 쓰신 글이에요. 첫째, 쓰기 쉬워야 한다, 둘째 디자인이 베스트여야 한다, 셋째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은 혁신적인 게 있어야 한다. 쉽죠? 그리고 예전 아이리버 제품들은 정말 그랬어요. 이게 바로 아이리버의 철학입니다. 이게 우리 경쟁력이에요.” 두 사람은 잊혀졌던 자신들의 회사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미국에서 기회가 왔다. 아이리버는 2009년 9월 ‘스토리’라는 전자책 단말기를 만들면서 구글의 문을 두드렸다. 구글은 세계 도서관의 책 300만 권을 스캔한 회사였다. 그 회사의 ‘이름값’만 빌릴 수 있다면…. 하지만 문은 1년 넘게 두드려도 열리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관심을 보인 것이다. 지난해 LG디스플레이와 합작해 중국에 중국 전자잉크(E ink) 디스플레이 회사를 세운 덕분이었다. 결국 ‘브랜드, 브랜드 또 브랜드’였다. 구글에서 한번 해보자고 했다.

5월 21일. 미국 보스턴 시내를 흐르는 초여름의 찰스 강에는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 학생들이 조정 연습을 하고 있었다. 찰스 강을 기준으로 동쪽은 보스턴 시내, 서쪽은 케임브리지다. 정 부장과 15명의 아이리버 직원이 케임브리지에 도착했다. MIT와 하버드, 세계 최대의 인터넷 트래픽처리업체 아카마이 등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구글북스 개발팀 본부도 이곳에 있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정 부장은 방 5개와 큰 회의실 하나를 빌렸다. 방에 짐을 풀어놓은 뒤 모두 함께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회의실로 모였다. 좋았다. 프로젝트만 무사히 끝나면 ‘구글의 첫 전자책 단말기 파트너’가 될 예정이었다. 이들은 모두 대만의 작은 휴대전화 업체 HTC가 구글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프로젝트에 첫 파트너
가 된 뒤 어떻게 성장했는지 알고 있었다. 두근거렸다. 어차피 3주면 끝날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할 일은 너무 많았다. 매일 새벽 별을 봐야 했고, 20시간, 30시간 연속으로 잠들지 않은 채 일하는 건 예사였다. 6월이 되자 한국에서 5명이 더 불려왔다. 방도 2개를 더 빌렸다. 이젠 미국 음식도 지겨웠다. 그냥 근처의 한인 식품점에서 컵라면만 사왔다. 육개장 사발면, 신라면 컵, 스낵면, 도시락면…. 쌓이는 라면 상자 종류가 늘어나면서 회의실 벽에 걸린 6개의 현대화 액자 위로 하얀색 전지(全紙)도 하나둘 늘어갔다. ‘대자보’ 같았다. 그 위에는 ‘Enter→Confirm’ ‘OTA update check’ ‘Wi-Fi On 하는 경우’ 등 암호 같은 단어와 도형만 어지럽게 적혀 있었다. 직원들은 “침대에 누우면 너무 오래 잔다”며 불편한 회의실 의자에서 쪽잠을 잤다. 컴퓨터만 치운다면 호텔 회의실이라기보다는 환자를 모아놓은 야전 병원처럼 보였다. 정 부장은 9년 전 그때가 떠올랐다. 2002년 미국 베스트바이에 첫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모든 직원이 3개월 동안 바닥에 골판지를 깔고 자던 시절. 그 주문을 처리한 뒤 아이리버는 세계 1위가 됐다.

호텔 매니저는 날마다 회의실을 드나들며 이상한 음식 냄새를 풍기는 동양인들이 영 수상했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 매니저는 “도대체 당신들은 뭐 하는 사람들이고 여기서 뭘 하는 것이냐?”라며 참지 못하고 물어봤다. 정 부장은 할 말이 없었다. “비밀이다.” 더 수상해 보였다. 하지만 정 부장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구글과의 계약 때문이었다. 이들이 만든 건 ‘스토리HD’라는 구글을 위한 전자책 단말기였다.

7월 17일 미국 전역의 대형마트 타깃에서 스토리HD가 발매됐다. 정 부장은 이 호텔 매니저에게 스토리HD를 보여줬다. “우리 이런 사람들이에요.” 매니저가 이게 도대체 뭐냐는 듯한 표정으로 눈을 치켜떴다. 정 부장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책 300만 권을 무료로 볼 수 있는 전자책이에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매니저는 말했다. “내일 당장 사러 가겠다.”

정 부장과 이 부장에게 물었다. 왜 이 회사에 계속 다니는가. 이 부장은 말했다. “가족 같다.” 정 부장의 대답은 조금 길었다. “사람 뽑을 때 일 잘하는 사람을 뽑나요, 아니면 앞으로 잘할 가능성이 커 보이는 사람을 뽑나요. 회사가 나를 뽑은 게 아니에요. 내가 가능성을 보고 이 회사를 뽑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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