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워치

이번 발표에서 사실상의 주인공이었던 애플워치를 다룬 기사들을 보자면 늘 그렇듯 아쉬움과 “실망했다”는 탄식이 가득하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패턴이다. 애플이 뭔가를 발표할 때마다 일어나는 현상인데, 역시 나 또한 그랬다. 물론 그런데도 또 보고 있었고. 다 본 뒤 발표를 곱씹어보니 이러저런 생각이 든다. 이번에는 리앤더 카니의 글이 가장 와 닿았다.

사실 누구도 애플에 대한 이런 종류의 실망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애플이 구글처럼 가게에서 출입을 금지시킬 정도의 안경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혼자 움직이는 차를 만들지도 않는 데다, IBM처럼 퀴즈쇼에서 사람과 겨뤄 이기는 컴퓨터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플에겐 얼리어답터의 실망감이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하지만 애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도 아니고 슈퍼컴퓨터를 만들지도 않는다. 이 회사는 보통 사람들이 쓰기 편한 괜찮은 제품을 괜찮은 값에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소비자가 지갑을 열고 난 뒤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는 제품을.

카니가 찾아낸 포인트는 이렇다.

  1. 애플워치는 크지도, 두껍지도 않다. 멋진 시계다. 키노트에서 본 것보다 실제로 보면 더욱 멋지다. 또한 카니가가 평소 차고다니던 카시오의 패스파인더보다 가볍다.
  2. 진동 알람은 부드럽다. 패턴도 여러가지인데 쓰다보면 시계를 쳐다보지 않고도 알람패턴으로만 정보를 얻을 정도다. 게다가 한시간에 한번은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알람을 주는 식의 기능은 생각보다 매력적이다.
  3. 잠재 활용처가 무궁무진하다. 카니가 본 데모에서 애플워치는 TV 리모컨, 아이튠즈 재생, 잠긴 문 열기, 공항 체크인, 스타벅스 커피 구매 등등의 일을 했다. 당연히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것이다.
  4. 아이팟이 MP3플레이어가 아니라 패션 아이콘이었던 것처럼 애플워치도 전자제품이면서 동시에 주얼리 역할을 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문을 여닫고, 커피를 사고, 전등을 켜고 끄는 모든 일을 해주는 ‘진짜 통합 리모컨’인 애플워치 없이 어딜 돌아다닐 생각을 과연 할 수 있을까?
  5. 이모티콘(emoji)만 봐도 마찬가지. 애플은 시계 가득 이모티콘을 띄운다. 깊이 생각한 것 같다. 우린 진짜 목소리는 물론 ‘ㅠㅠ’, ‘ㅋㅋ’ 같은 문자도 더 이상 열심히 주고받지 않는다. 작은 시계 화면은 뭘 보여줄 수 있을까? 화면 가득한 이모티콘이 대답이 될 수 있다.

애플을 너무 긍정적으로 보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애플이 이 시계에 뭘 특별히 더했는지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애플은 지금까지 등장한 스마트워치의 기능들을 기본적으로 활용하면서 여기에 자신들만의 색을 입혔다. 애플이 ‘쓸데없이’ 신경을 쓴 부분들이 바로 그런 애플의 색깔이 됐다.

우선 ‘디지털 크라운’, 그러니까 아날로그 시계에서 태엽감는 부분에 해당하는 애플워치의 측면 다이얼 얘기다. 아무런 버튼도 없는 구글과 LG가 함께 만든 스마트워치와 비교하면 미니멀하지 않은 군더더기같은 버튼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실 이 작은 다이얼이 시계를 시계답게 만든다. 지금이야 익숙해졌지만, 처음 구글의 안드로이드웨어를 접했을 때 내가 겪었던 당혹감은 “뭘 하라는 거야?”였다. 매뉴얼을 읽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디지털 크라운은 이렇게 처음 써보는 사람이 “뭘 해야하지?”라고 고민해야 하는 단계를 없애준다. 아이폰의 ‘홈버튼’처럼, 아니면 아이팟의 ‘터치휠’처럼. 난 아이팟을 처음 봤을 때 그 커다란 ‘터치휠’에 반했다. 터치휠 없이도 MP3플레이어는 만들 수 있었지만, 별 생각없이 매뉴얼을 보지 않고 쓸 수 있던 MP3플레이어는 아이팟 뿐이었다. 터치휠 덕분에. 그래서 사람들은 아이팟을 경쟁제품보다 훨씬 좋아했다.

또 하나의 ‘쓸데없어 보이는’ 부분은 진동알람. 애플은 이 알람을 설명하면서 “상대방의 심장박동도 느낄 수 있다”고 자랑했다. 왜? 왜 그 정도로 세밀하게 조절되는 진동알람이 필요할까? 이 부분은 이모티콘에 대한 카니의 관찰을 뒷받침한다. 화면을 집중해서 보지 않아도, 그러니까 흘깃 스쳐보기만 해도 정보를 얻어야 하는 게 손목시계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이모티콘과 심장박동까지 전해주는 섬세한 진동알람은 글자를 읽지 않고도, 아니 시계 화면에 눈의 초점을 맞추기도 전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직관적으로 전달해 준다. 시계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처럼 오래 쳐다보는 기계가 아니다. 스쳐지나가는 찰나에 최대한의 정보가 전달돼야 한다. 피부와 맞닿아 있는 시계에서, 알람은 당연히 스마트폰보다 훨씬 중요한 입출력 수단이 된다.

그리고 끝으로 시계줄. 구글이 스마트워치를 선보이고 난 뒤 했던 말은 “기존의 시계줄과 호환됩니다”였다. 애플은 직접 만든 시계줄을 들고 나왔다. 기존의 시계줄과 호환되지도 않는다. 오직 애플워치만을 위한 시계줄이다. 그만큼 이 시계줄이 중요하다는 얘기고, 시계줄 덕분에 애플워치는 전자제품이 아닌 스위스 시계같은 시계가 된다. 349달러라는 비싼 가격을 합리화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위스 시계를 살 돈으로 애플 시계를 사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 뿐이니까. 이렇다면 이번 행사에 애플이 패션 잡지 기자들을 잔뜩 부른 것도 이해가 간다. 애플이 설득하려는 대상은 시계를 사는 소비자다. 최신 전자기기를 사는 소비자가 아니고.

그리고 늘 그랬듯, 이번에도 최신 전자기기를 사는 사람들이 실망의 탄식을 내뱉는 동안, 멋진 시계를 찾던 사람들은 애플에게 지갑을 열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시계를 산다는 건 이미 시간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 시대는 지난지 오래됐다. 지금 굳이 다시 시계를 사야 한다면, 그건 시계를 찬다는 것 자체가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워치는 오메가나 태그호이어를 차는 것보다 값싼 선택이지만 그에 못잖게 멋지고 첨단이다. 또 스워치를 차는 것보다는 다소 비싼 선택이 되겠지만 스워치보다 훨씬 럭셔리하며 스워치만큼 캐주얼해질 수 있다. 애플워치의 이 럭셔리도 아니고 값싼 제품도 아닌 애매한 포지션이 재앙이 될지, 또 하나의 축복이 될지는 판매가 시작되는 내년 초에나 알게 되겠지만 지금까지로 보면 애플워치는 유일하게 갖고 싶은 시계다. 아이폰이 피처폰처럼 값싸지도 않았고 금으로 감싼 삼성핸드폰처럼 럭셔리하지도 않았던 시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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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워치”에 대한 4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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