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셰릴 스트레이드는 약쟁이였다.

나는 욕실로 가서 얼굴을 씻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숨을 들썩거리며 흐느꼈다. 그러다가 식당의 아침 장사 시간에 맞춰 일을 하러 가야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건 내가 아니야. 이건 내가 사는 방식이 아니야. 그만 둬. 더 이상은 안 돼. 하지만 오후가 되면 손에 쥐고 있던 현금으로 다시 마약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걸 해야 해. 내 인생을 낭비해야 해. 쓰레기가 되어야 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엄마의 딸이던 셰릴에겐 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채식주의자에 약초즙을 물처럼 들이키며 살았던 엄마는 겨우 마흔다섯에 폐암으로 죽었다. 딸에게 아빠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엄마의 새 남자친구 에디 뿐이었는데, 엄마가 죽고 나자 에디는 다른 여자를 만났다. 에디는 의붓딸 셰릴을 대할 때 아빠의 책임보다는 친구의 우정으로 대했던 사람이었다. 딸의 생물학적 아빠는 에디보다도 더 필요없는 존재였다. 그는 엄마도 때리고 딸도 때렸다. 개자식이었다. 엄마 잃은 딸에겐 그래서 아빠가 없었다. 돈도 없었다. 직장도 없었다.

대신 딸에게는 자신을 사랑하는 폴이라는 남자가 있었다. 폴은 끝까지 딸을 사랑했다. 하지만 딸은 폴을 버렸고, 약을 택했다. 그리고 폴과 결혼한 상태에서 아무 남자에게나 안겨 하룻밤을 보내곤 했다. 아마도 딸은 사랑에 굶주렸을 것이다.

결국 나는 엄마에게 대놓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엄마,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딸이지, 그치?” 엄마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당연히 그래야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런 말들이 엄마의 마음속에서 하나로 엮여 다시 새로운 느낌으로 내게 전달되기를 바랐다. 나는 사랑에 굶주려 있었던 것이다.

파국 말고는 남은 것이 없어 보였던 인생, 딸은 드디어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맘을 다잡아 본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여전히 마약을 이기지 못하던 상태에서. 그렇게 하여 딸은 갑작스런 도보여행에 도전한다. 충동에 가까웠다. 퍼시픽크레스트트레일(PCT), 캘리포니아에서 출발해 워싱턴주까지 걸어 올라가야 하는 엄청난 도보 여행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채, 배낭 여행 경험조차 없었던 20대 여성은 그렇게 혼자서 긴 걷기 여행을 시작한다. 당연히 쉬울 리가 없었다. 심지어 그냥 배낭을 매는 것부터 말이다.

그리고 내 배낭을 바라보았다. 거대하면서도 속이 꽉 들어찬, 왠지 정감이 넘치지만 동시에 위협적이기도 한 모습으로 홀로 우뚝 서 있는 녀석. 마치 살아 움직이는 친구 같은 모습에 외로운 기분이 어느 정도 사그라졌다. 똑바로 세운 높이는 내 허리까지 닿았다. 나는 배낭을 움켜쥐고 들어올리기 위해 몸을 굽혔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몸을 웅크리고는 배낭의 프레임을 더 단단히 붙들고 다시 한 번 들어 올리려고 용을 썼다. 이번에도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도. 이번에는 두 다리에 단단히 힘을 주고 양손을 이용해 마치 포옹이라도 하듯 배낭을 끌어안고 시도했다. 내 안의 모든 걸 다 쏟아 부었지만 배낭은 미동도 없었다. 정말이지 소형 승용차라도 한 대 들어 올리는 것 같았다. 폭스바겐 비틀처럼 예쁘장한 모습에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만 같은데, 도무지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길었던 이번 연휴 기간 동안 이 책을 읽었다. 난 아들과 여행을 떠났고, 우리는 수영장이 딸린 작고 예쁜 호텔을 빌렸다. 나는 아들에게 잠수를 가르쳤으며 아들은 내게서 연날리기도 배웠다. 연을 날리기 위해 타래를 든 채로, 내가 아들에게 말했다. “연이 곤두박질치려고 하면 끈을 살짝 헐겁게 놓아주렴. 그러면 연은 통제를 벗어나 자유롭게 떠오른단다.” 나는 그 말을 해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붙잡아 두려고 하면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것이 꼭 너를 닮았지. 자유롭게 놓아주고 싶지만, 그래도 끈만은 붙잡고 있고 싶은 내 모습 또한.’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제1권》이 내 성경책이라면 《공통된 언어의 꿈》은 사실상 나의 종교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책을 펼치고 첫 번째 시를 큰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내 목소리가 텐트의 벽을 때리는 바람 소리 위로 높이 울려 퍼졌다. 나는 그 시를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시의 제목은 바로 ‘힘Power’이었다.

이 책은 내가 스무살이 되던 해 떠났던 자전거 여행의 기억을 되살리게 만들었다. 당시의 난 형편없었다. 하루에 20킬로미터 남짓한 거리를 다섯시간에 걸쳐 달렸다. 그랬던 내 몸이 어느 순간 텐트와 취사도구까지 실은 채 하루 80킬로미터 정도는 가뿐히 주파할 수 있게 변해가는 것을 보는 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 괴로울 때마다, 노래를 부르곤 했다. 신해철의 노래도 불렀고, 민중가요도 몇 곡 불렀던 것 같고, 무엇보다 김광석의 노래를 불렀고. 그리고, 그 여행의 길에서 나는 끊임없는 도움을 받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아무 조건 없는 친절이 못된 사람들의 불친절과 괴롭힘을 압도적으로 넘어섰다.

이 책을 간단히 줄이자면 약쟁이 딸, 엄마를 잃은 딸의 성장 이야기다. 다시 세상을 사랑하고 엄마가 되고자 마음을 먹게 되는 과정 말이다. 배경이 야생의 자연, 즉 와일드와 함께 펼쳐진다는 것 정도가 중요한 요소랄까.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이 와일드인 것은 딸이 자연의 위대함 때문에 성장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딸을 키운 것은 와일드한 자연 속에서 조건 없이 사랑을 베풀던 다른 사람들이었다. 개자식 같은 아빠, 책임감 없는 의붓아버지,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 사랑했지만 사랑을 받을 준비가 안 돼 떠나보내야 했던 폴. 그들과의 어긋난 관계들이 여행을 통해 만난 낯선 이들과의 우정을 통해 조금씩 자리를 찾아간다.

아들에게 연을 날리는 법을 가르쳐 줬던 나는, 여행을 정리하기 전날 저녁 “우리 이 연의 끈을 잘라줄까?”라고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은 되물었다. “왜요?” 난 답했다. 연이 끈에 매어있잖아. 끈을 놓아주면 멀리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을 거야. 아들은 더 현명한 선택을 했다.

“나, 이 연을 아까 수영장에서 만난 그 누나에게 선물할래요. 내게 잠수하는 법도 가르쳐 주고, 물속에서 가위바위보 하는 법도 가르쳐 준 그 누나한테요.”

나는 끈을 놓을 생각만 했지만, 사실 사람들이란 끈을 건네고 또 받으면서 서로를 엮어간다. 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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