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팬스, 태양계를 배경으로 한 대항해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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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를 보지 않았더라면 소설을 읽지 않았을 테지만, 소설을 읽지 않았더라면 드라마에서 멈췄더라면 크게 후회했을 것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사실 굉장히 간단하게 압축할 수 있다. 마치 스타워즈 시리즈와 비슷하게. 스타워즈 시리즈라는 것도 생각해 보면 단순한 구성 아닌가. 버림받은 고아 소년이 어느날 자신의 출생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되고 거대한 음모 앞에서 스스로의 힘을 각성하게 되며 결국 우주의 균형을 가져오게 되는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스타워즈 시리즈를 이끌어가는 것은 줄거리가 아닌 디테일이다. 왜 고아 소년은 컴플렉스에 시달리는지, 왜 우주의 균형을 가져올 거대한 운명의 아이는 끊임없이 의심받는지, 왜 이 운명은 지긋지긋하게도 대를 이어 반복되는지, 과연 주인공은 운명을 바꾸는 것인지 운명에 굴복하는 것인지… 인물과 상황, 대의명분과 위선 등이 복잡함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또 하나. 녹슨 전투기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영웅들은 죽어야 영웅이 되고, 영웅들의 싸움은 멋지고 단순하지 않고 비루하고 힘들며 괴롭다. 당장 스카이워커 부자부터 일단 오른팔을 잘린 뒤에야 제대로 스토리를 이어가지 않나.

익스팬스 또한 마찬가지다. 알 수 없는 무언가 거대한 괴물이 등장했고, 이 괴물을 둘러싼 전 태양계적인 음모가 펼쳐진다. 주인공은 이 음모를 어떻게든 해결해 보고자 노력하고. 그게 줄거리의 전부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인물과 상황, 그리고 살고자 애쓰는 사람들의 리얼리티다.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태양계를 벗어나지 않는 공간적 제약이다. 마치 대양을 건너기 위해 망망대해라는 극단적이고 무자비한 공간에 맞서던 대항해시대의 선원들처럼, 익스팬스 속의 태양계 시대 우주선 승무원들은 무자비한 우주 속에서 조그만 쇳덩이인 우주선에 온 몸을 맡긴다.  중력가속도와 싸우고, 모자란 산소와 사투를 벌이는 괴로운 선원들의 묘사를 보고 있자면 폭풍 앞에서 밧줄을 감고, 키에 매달려 사투를 벌이던 범선 선원들의 모습이 덧씌워 그려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익스팬스 속의 인간들은 ‘워프’ 따위 없이, 정직하게 행성간 이동을 한다. 며칠이고 몇달이고 걸려 가면서, 항구와 항구를 이동하면서, 가족 따위는 잊어버린 채 선원들과 가족을 만들어 가는 삶은 대항해시대와 다를 게 없다.

한편으로는 태양계시대의 갈등이 등장한다. 마치 제국주의 식민지처럼, 여전히 인간들은 태양계 시대에서도 자원 탐사 및 채굴에 목을 맨다. 이들은 소행성대(Belt)에서 얼음을 얻어 물을 만들고, 공기를 만들며, 이를 바탕으로 지구 밖 외행성대의 험한 환경을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꿔 나간다. 이 시대가 이어지면서 지구에서 바다와 비, 눈 등을 느끼며 자라온 사람들과 달리 벨트에서 낮은 중력을 당연히 받아들이며 자라온 사람들은 골격부터 달라졌다. 키가 크고 뼈가 약하며 허파까지 약한 벨트인들은, 지구 수준의 중력에서는 제대로 걷고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다.

이런 차이 때문에 온갖 갈등이 생긴다. 화성 기지를 만들어 낸 선도적인 과학자들은 이미 과학기술, 특히 군사기술에서 지구를 앞서게 됐고, 나아가 지구와 반목하기 시작한다. 소행성대는 지구와 화성 양쪽에서 착취당한다. 주인공인 지구인 부잣집 딸은 순수한 이상에서 지구와 화성 모두에 반대하고, 경찰 노릇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또 다른 주인공인 형사는 어느날 이 부잣집 따님 사건에 말려 들면서 스스로도 이해 못 할 감정에 빠져 든다. 또 한 명의 주인공은 지구 출신이지만 해군(물론 우주선 선원을 뜻함)에서 불명예 제대한 얼음채취선 일등항해사다. 이들을 둘러싼 소설 속 현실은 계속해서 최악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인물들은 그 최악 속에서 어떻게든 더 인간적으로 행동하고자 애쓴다. 그들은 사람으로서 살고자 애쓴다. 그 리얼리티가 이 SF를 꼭 읽어야 하는 소설의 반열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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