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실패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패는 실패일 뿐이죠. 현실에서 실패는 쓰라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는 중요합니다. 이 영상을 보고 나니 좀 더 와닿습니다.

앤드류 라인이라는 천체물리학자가 1991년 펄서행성을 발견합니다. 펄서(맥동성) 주위를 도는 행성을 펄서행성이라고 하는데, 이 발견이 지구 바깥의 ‘행성’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이었다죠.(행성 항성 맥동성 이런 얘기는 일단 넘어갑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작은 실수가 있어서, 알고보니 이 행성이 발견된 줄 알았던 것부터 오류였고, 사실은 그런 행성 자체가 없었다고 합니다. 처참한 실패였죠. 라인은 1992년 전미 천체물리협회(?)에서 이 실패를 스스로 발표하게 됩니다. 가슴 아픈 일이었을 거에요. 하지만 청중은 실패를 비웃는 대신 라인에게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이후 라인이 연단에서 내려오자 알렉산더 볼시찬이라는 학자가 뒤이어 마이크를 건네받습니다.

“예. 라인의 팀은 펄서 행성을 찾지 못했어요. 하지만 우리 팀이 찾았습니다. 하나가 아니라 두개나 찾았어요. 라인이 어떤 문제를 겪었는지 배웠기 때문이고, 그 부분을 점검했죠. 우리가 찾은 행성은 진짜입니다.”

이후 방법론은 계속 개선되어 세번째 펄서행성이 발견되고, 심지어 태양과 닮은 항성과 행성군으로 이뤄진 외계 태양계의 존재가 속속 증명됩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외계행성은 라인의 실패 이후인 20세기 말에 와서야 증명된 것입니다.

우리는 “실패를 권장한다”거나, “실패에서 배우라”고 하는 얘기를 쉽게 합니다. 말은 쉽지만, 실패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실패는 그 일에 시간과 자원을 쏟아부은 개인에게 엄청나게 괴로운 일입니다. 실패한 개인은 대부분 아무런 명성도 얻지 못하고 어떤 경제적 보상조차 바라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그 실패를 그냥 나쁜 것으로 묻어두면, 그 땐 그걸로 모든 것이 끝입니다.

실패를 권장하는 것이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대충 해서 실패해도 좋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충분히 노력해서 실패에 이르른 사람이, 그 노력을 사장시키지 않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한다면 그때부터 실패는 그냥 실패가 아니라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되기 때문입니다. 조직이, 사회가, 국가가 실패한 사람에게 기립박수를 쳐 주는 일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개인은 약합니다. 자신이 속한 조직이, 사회가, 국가가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굳이 실패를 스스로 인정해 약자, 패자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실패를 공유하지 않고 숨어버리는 것이 이익이 되죠. 창피하고 분하고 내 실패의 경험을 이용해 성공할 뒷 사람에게 시기심이 드는 일 따위는 겪지 않아도 되니까요.

이렇게 행동하는 대신, 라인은 자신의 불명예를 스스로 먼저 공유합니다. 그 모습을 본 과학자 사회는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그 실패의 성과 위에서 성공한 볼시찬은 공을 실패자였던 라인에게 돌립니다. 과학이 위대한 것은 이 프로세스 덕분일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일에서 실패가 중요하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런 멋진 레토릭에 앞서서 우리가 얼마나 실패자에게 박수를 쳤는지부터 우선 생각해야 합니다. 실패자들을 얼마나 기억하려 했는지, 성공에 대한 그들의 기여를 얼마나 감사히 여겼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실패는 중요하지만, 단순히 실패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패를 중요하게 만드는 것은 실패로 처참해진 사람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가장 가슴아픈 순간을 기꺼이 공유하는 순간입니다. 그게 인간 정신의 위대함이기도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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