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체 게바라

사실 나는 와엘 고님을 잘 몰랐다. 이집트 혁명의 영웅이고, 구글 직원이라고 했던 것 정도밖에는. 그가 이집트에서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고 이 페이스북 페이지는 이집트 혁명을 촉발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것 정도도 뉴스를 통해 듣기는 했다. 그가 지난달 한국에 왔고, 관심이 가서 그가 쓴 책을 읽어봤다. ‘레볼루션 2.0’.
고님의 나이는 나보다 어렸고, 그의 큰 딸은 내 아들보다 나이가 많았다. 한 때 고님은 이집트 정부에 의해 납치됐다가 풀려나기도 했으며 구글은 이 문제많았던 직원을 해고하는 대신 구출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구글은 ‘이집트를 위해 할 일이 있다’는 그의 요구를 듣자 장기 휴직도 허락했다. 좋은 회사였다. 사실 그럴만도 했다. 고님은 꼭 구글에 들어가고 싶다며 구글에 낙방을 할 때마다 몇 차례고 다시 입사지원을 했다. 이번엔 전보다 나아졌다며. 고님 스스로가 좋은 직원이었다.

와엘 고님은 여러 면에서 체 게바라를 연상시켰다. 두 사람 다 독재 정권에 맞서 싸웠고, 자신들의 주 활동 무대가 된 곳에서 일종의 국외자였으며, 혁명 이후에는 사람들의 내면 변화를 이끄는 일을 하고자 했다.

비교해 보자.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의사로 살다가 자신과 별 관계도 없는 나라였던 쿠바 혁명에 뛰어든다. 와엘 고님은 이집트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을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보냈고 구글에 입사한 뒤에는 두바이에서 살았다. 게다가 아내는 미국인이었다. 체 게바라의 쿠바든, 와엘 고님의 이집트든 모두 이들의 인생과는 별 관계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물론 두 사람 다 자신들이 사랑한 나라의 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고님은 이집트인 아니었느냐 물을지 모르겠지만 심지어 고님은 미국인과 결혼한 뒤에도 미국 시민권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를 심문하던 이집트 경찰들조차 의아해했다.

두 사람 모두 혁명이 끝난 뒤에는 정치와 관계 없는 뒷자리로 물러섰다는 것도 비슷하다. 체 게바라는 권력에 관심이 없었다. 쿠바는 카스트로에게 맡겨두고 자신은 다른 나라로 떠났다. 그 뒤 카스트로가 쿠바에서 새로운 절대 권력이 되는 걸 보면서 혁명이 이어지려면 무엇보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가 얘기했던 건 ‘새로운 인간’이었다. 교육을 통해 변화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그의 시대에는 인터넷이 없었으니, 게바라는 책을 쓰고 연설을 하며 중남미 대륙을 순회했다. 고님도 혁명이 끝난 뒤 정치 권력에 가까이 다가서지 않았다. 그 뒤 이집트에서는 혁명 이후 각종 정치 세력들이 생겨나면서 온갖 정치적 혼란을 빚게 된다. 고님 또한 민주화가 이어지려면 사람들의 의식이 발전해야 한다면서 교육을 강조했다. 그가 체 게바라와 다른 건 지금은 인터넷의 시대라는 점이다. 그는 게바라처럼 이집트를 순회하는 대신 누구나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교육 콘텐츠를 만들어 웹에 올려두고자 했다.

그래서 고님이 학교에 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신기하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부자들이 다니는 사립학교 말고, 꼭 공립학교에 가보고 싶다는 고님에게 구글코리아 직원들은 이태원 초등학교를 소개해 줬다. 나도 굉장히 오랜만에 초등학교를 가봤는데, 깜짝 놀랐다. 한국 초등학교가 낯설 정도로 좋았다. 학생들은 갤럭시노트 태블릿 수십대를 들고 수업 시간에 검색과 그림그리기를 했다. 칠판은 이미 오랜 옛날에 전자칠판으로 바뀌어서 흑판에 백묵으로 글씨를 쓰다가 먼지가 날리는 일 같은 건 사라진 지 오래였다. 고님이 도대체 초등학교 예산이 얼마나 되기에 이러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도 처음으로 찾아봤다. 올해 예산안을 보니 유치원과 중학교까지 포함한 유초중등 교육예산이 40조 원이 넘었다.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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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고님은  이집트 혁명이 정말 성공하려면 사람들이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좋은 교육은 세계 어디서든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인터넷 덕분이었다. 지금 고님은 나바닷재단이란 걸 만들었다. 비정부기구(NGO)인데, 교육 재단이다. 동영상 강의를 만들어 인터넷으로 보게 해준다. 칸 아카데미 같은 교육 프로그램과 비슷한데, 특징은 “누구나 교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수들의 잘 갖춰진 강의도 강의지만, 이보다는 지역에서 자신의 지식을 콘텐츠로 만들어 보급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게 목표다. 그러니까 이는 아랍어 콘텐츠를 늘리는 길이기도 하다. 나바닷재단은 이집트 전역을 돌아다니며 간이 방송 스튜디오를 세운다. 동네 화학교사가 간단한 실험실습 교육 비디오를 찍을 수도 있고, 컴퓨터 그래픽을 지원받은 물리교사가 천체물리학도 강의할 수 있다. 한국에 관심을 가진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이 가장 보편적으로 퍼져있다는 나라. 그는 “값싼 태블릿 보급이 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PC보다 다루기 쉽고, 덜 망가지며, 교육 용도로 적합하기 때문이다.

사실 혁명도 그렇고, 교육 사업도 그렇고, 고님은 전형적인 인터넷 기획자이자 마케터다. MBA 출신이라서인지 모든 걸 온라인 마케팅의 틀로 바라본다. 이집트 정부에 대한 저항운동도 페이스북에서 인기 콘텐츠를 바이럴 마케팅으로 확산시키듯 확산시켰다. 예를 들어 거리에 나가 시위를 벌이는 대신 해변을 바라보고 검은 옷을 입은 채 침묵하면서 줄 지어 서있자는 얘기를 했고, 이를 사진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자는 운동을 제안했다. 이집트 전역은 물론이고 심지어 해외의 이집트 동포들까지 이 운동에 참여해 사진을 찍었다. 참가자들은 이를 ‘사일런트 스탠딩'(silent standing)이라고 이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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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참여형 인터넷 마케팅의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이외에도 프로필 사진을 바꾸게 권한다거나,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와 공동 행동을 하는 등의 마케팅이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결국 마지막에는 “페이스북이 아니라 거리에서” 모든 게 이뤄졌지만 그 이전에 이집트인들의 두려움을 걷어내는 데 고님의 페이스북 페이지는 큰 역할을 했다.

고님은 이를 ‘세일즈 터널’에 비유했다. 잠재고객에 조심스럽게 접근한 뒤 이들을 기회 고객으로 변화시켜서 최종적으로 구매 고객으로 바꿔내는 영업 기술 말이다. 그는 반정부 운동을 열심히 하는 활동가들이 아닌 두려움 많은 이집트의 평범한 사람들을 잠재고객으로 봤다. 그리고 이들을 기회고객으로 바꾸기 위해 어렵지 않은 실천에 해당하는 프로필 사진 바꾸기에서 시작해 사일런트 스탠딩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들을 광장으로 이끌어내면서 구매를 완성한 셈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MBA와 인터넷으로 혁명을 도왔다.

프레지

prezi10년 전 날이면 날마다 듣는 소리가 “넌 왜 그렇게 글을 못 쓰냐”라는 핀잔이었다. “기본적으로 작문 실력이 없는 것 같다”, “글 쓰는 능력은 미안하지만 천부적 재능이 80%라던데 넌 재능이 없는 모양” 등등. 악담을 들을 때마다 “저는 영상세대라서 그래요”라고 얘기했다가 더 혼났다. 선배들이 지적하는 내 글의 문제점이란 순서가 없이 뒤죽박죽이란 점이었다. 그걸 나는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미지가 하나 통으로 떠올라서 그걸 묘사하다보니 이렇게 된 거라고요”라며 우겼다. 지금은 나도 내 말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땐 정말 그렇게 느꼈다. 뭔가 영상세대의 생각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얼마 전 SBS의 서울디지털포럼에 프레지 CEO 피터 알바이가 참석했다. 그와 얘기를 나누다가 10년 전 시절 생각이 났다. 프레지란 최근 여기저기서 많이 사용하는 프레젠테이션 도구다. 슬라이드쇼를 만들려면 마이크로소프트의 파워포인트 아니면 애플의 키노트만 써야 하는 줄 알았다면 프레지를 보면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 툴은 슬라이드쇼에 대한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보여준다. 글과 사진, 동영상을 가상의 거대한 판에 올려둔 뒤 각각의 글과 사진, 동영상을 확대하고 회전시키면서 이동하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때 이렇게 프레지로 홍보자료를 만들었다. 참고로 문재인 후보는 여기.

알바이의 얘기는 단순했다. “사람은 봐야 기억한다”(see to think)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영상세대라는 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실제로 암기 대회 챔피언들은 하나같이 머리속으로 집을 떠올리고, 가상의 방과 책상, 서랍 등을 만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속에 기억해야 할 정보를 놓아둔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많은 내용을 기억할 때 써먹던 방법이라는데, 사실 기억력을 높이려고 많은 사람들이 알아서 쓰는 일반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프레지의 세계는 스토리의 세계가 아니라 이미지의 세계다.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가 예술적으로 느껴지는 건 그가 천부적인 스토리텔러, 즉 이야기꾼이기 때문인데, 그렇게 논리적으로 기승전결을 짜서 스토리를 구성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의 틀을 잡기 전부터 괴로워 한다. 무엇이 시작이며, 어디서 갈등이 고조되고 절정은 어떻게 만들며, 결말의 반전은 어떻게 처리할지 말이다. 프레지는 고민하지 말고 다 늘어놓아 보라고 얘기한다.

커다란 책상 위에 아이디어의 조각조각을 메모로 써서 올려놓은 뒤 이걸 이리저리 배치하면서 발표를 구성해 봤다면 이 말이 이해가 갈 것이다. 아니면 브레인스토밍 회의를 할 때 포스트잇에 이러저런 아이디어를 써서 벽에 잔뜩 붙여놓고 가닥을 잡아나갔다거나. 프레지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방식이 딱 이런 식이다. 알바이는 “화이트보드가 브레인스토밍을 위한 것이고, 슬라이드는 스토리를 위한 것”이라며 “프레지는 화이트보드”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건 슬라이드쇼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 프레지는 스스로를 교육 도구라고 설명한다. 세상의 모든 지식, 적어도 거의 모든 지식은 인터넷에 존재하고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그 지식을 머리에 넣는 방식이다. 머리에 뭔가를 넣기 위해서는 시각적인 지식의 연결고리가 중요하다. 프레지는 잡다한 지식이 흩어져 있는 인터넷의 바다에서 의미있는 정보들 사이의 순서를 찾아내는 역할을 한다. 물론 이 순서를 만들어내는 건 프레지 사용자의 역할이고, 정보를 꿰어맞추는 과정 자체에서 교육이 이뤄지는 셈이다.

재미있는 얘기도 있었다. 연령이 어릴수록 프레지를 선호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선배들한테 말도 안 되게 대들면서 “나는 영상세대”라고 우겼던 것과 흡사해 보였다. 알바이에게 내가 “그래도 나는 키노트로 슬라이드를 만드는 게 더 좋다”고 설명했더니 알바이는 대뜸 “그건 당신이 선형(linear)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라고 대꾸했다. 기승전결에 따라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방식이 나나 내 윗세대의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프레지와 관련된 과학적 실험도 있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전통적인 파워포인트나 키노트 류의 슬라이드쇼와 프레지를 통한 슬라이드쇼를 보여줬더니 기억에 남는 정보량에서 프레지가 앞섰다는 것이다. 또 시각 기억으로 제공되는 정보가 텍스트로만 설명되는 정보보다 훨씬 기억에 남는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얘기다.

무엇보다 프레지를 쓸 때 생기는 장점은 계획을 짜서 만드는 키노트와 다른 새로운 발견이다. 알바이는 이를 “커다란 폭로(big reveal)”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것저것 떠오르는 걸 주섬주섬 프레지의 화이트보드 위에 펼쳐 놓으면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연결 관계가 가끔 눈에 발견되는데, 이것이 우리가 미처 몰랐던 새로운 직관과 통찰을 준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 뇌 속의 뉴런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우리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책을 읽고 한참을 쉬다가 유레카의 순간이 등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도대체 이런 일을 왜 시작한 것인지 물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 얘기를 했다. 암으로 어머니를 잃었는데, 자기는 당시에 암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고 했다.

“세상에 슈퍼마켓에 가서 치약을 사려고 해도 치약에 성분과 효능 등이 모두 나와 있는데, 사람의 목숨을 좌우하는 약에 대해서 일반인이 알 수 없는 건 전혀 없었다고요. 지식은 존재하는데 그 지식을 보통 사람들이 누릴 수가 없던 거죠. 이런 게 인터넷의 시대에 말이 되나요? 그래서 의학 정보와 병원 평가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 사회적 기업이 정보를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었죠. 그게 프레지에요. 다른 사람들도 쉽게 이런 정보를 나누도록 만든 툴이죠. 그러다가 프레지가 비즈니스의 중심이 됐을 뿐입니다.”

프레지는 무료다. 유료로 쓰면 한 가지 기능을 더 쓸 수 있다. ‘비공개’다. 지식은 공유하라고 존재하는 것이란 게 프레지의 철학이다. 지식을 남에게 나누겠다면 누구에게나 프레지는 무료일 거라고 알바이는 약속했다. 약속이 지켜지고 지식이 더 널리 퍼지길 바랄 따름이다.

“웹은 결국 사람 사이의 연결” 팀 버너스리와의 대화

201305016692908W이미 팀 버너스리의 인터뷰를 쓰긴 했는데 사실 주고받은 대화를 다 소개하고 싶었다. 재미있는 얘기가 많았다. 시간도 1시간이 주어져서 꽤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는 사실 이번에 한국도 처음 왔고, 한국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었다. 당연히 한국에 대한 코멘트도 할 게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짖궂게 물어봤다. “한국 인터넷 관련 기업 중에 아는 회사가 있나요?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웹 관련 서비스를 하는 회사 말입니다.” 네이버 정도는 들어보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그는 “단 한 곳도 아는 곳이 없다”고 했다.
“물론 하드웨어 회사들은 알죠. 삼성이나 LG 같은.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 하드웨어 회사는 한국 회사라기보다는 글로벌 회사입니다. 전 세계에 퍼져있잖아요. 생각해 보면 웹도 그래요. 국가 간 경계를 초월해서 전세계를 연결하죠. UN이 국경을 초월해 존재하는 것처럼 웹도 국경을 초월해서 존재합니다. 웹에서 중요한 건 당신이 어떤 국적을 갖고 있느냐가 아니에요. 그런데 결국 국경 문제가 나오는군요.”

– 그렇다고 웹에 국가간 차이가 없는 건 아니잖요? 중국 정부는 여전히 인터넷을 검열하고 있고, 해외 기업의 서비스도 제한합니다. 한국에선 독특한 우리식 사회주의…가 아니고 우리식 인터넷규제가 버젓이 살아있죠. 실제로 한국 관료들을 보면 “지나치게 서구 중심이고, 표준 논의에 아시아 국가들은 잘 끼워주지도 않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생각을 받곤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주 재미있는 지적이네요. 한국 사람들이 서구 사회를 어떻게 보는지를 되돌아보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철학이란 건 사용하는 언어, 국적, 성적 취향 등 어떤 것이든 차별받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굉장히 개방적이게 마련이에요. 혹시 IRC(인터넷 채팅) 써보셨어요?이런 걸 쓸 땐 상대가 어느 나라에 있는지 신경 쓰지 않아요. 국적도 보지 않죠. 닉네임만 쓰니까 전혀 상대를 짐작할 수도 없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인터넷이 미국 방위고등계획국이 연구하던 알파넷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미국이 창조에 많은 부분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얘기에요. 그런데 전 유럽 출신입니다. 인터넷은 미국에서 만들었고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과 미국 인터넷이 연결될 표준이 없었어요. 그래서 WWW이 만들어졌죠. 유럽 사람이 만들고 유럽 연구소에서 시작된 게 미국과 연결된 겁니다.”

– 중국 사람들과 대화하다보면 “인터넷은 미국이 만든 거잖아, 우리도 그런 걸 만들 수 있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게 전형적인 ‘NIH(Not Invented Here) 신드롬’입니다. 우리가 만든 게 아니니 배척하겠다는 인간의 본능이죠. 어디스든 굉장히 흔하게 나타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놀랄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런 견해는 참 슬픈 일입니다. 인터넷의 역사를 보면 지금까지 이 기술이 발전했던 건 사람들이 NIH 신드롬을 극복한 덕분이에요. html5나 자바스크립트 라이브러리 등이 사람들이 동의한 표준 덕분에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거부반응에는 문화적, 심리학적 배경이 깔려 있겠지만 NIH는 참 안타깝습니다. 아주 창조적인 사람들이 그 놀라운 창의력을 기존 성과에 더하는 방향이 아닌 부정적인 방향으로 쓰게 되는 것이잖아요. 중국의 영향은 요즘 정말 강해지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W3C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난번 W3C에서 웹의 미래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 우리가 브라우저 제조업체도 초청했습니다. 10개 기업이 왔어요. 그 중 5개 업체가 중국 회사였습니다. 나머지 5개가 서구 기업이었죠. 중국이 절반인 거에요. 한국과 중국 같은 나라는 문자도 다른 문자를 쓰고, 다른 문화를 갖고 있어서 기술도 따로 개발해야 할 부분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커지고 강해질수록 점점 개방적이 되야죠. 경제적으로 세계 경제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는 중국은 언젠가는 개방적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 ‘WWW의 발명가’로 불리잖아요. 어떤 느낌이세요?

“많은 사람들이 많은 발명품을 만들어요. 하지만 이 가운데 웹이 아주 성공적이었을 뿐입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했었고 즐거웠어요. 그런데 사실 내가 한 일은 작은 일입니다. 코드를 짜서 올려놓았을 뿐인데, 사람들이 그걸 기반으로 브라우저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당시 웹은 아주 작아서 정말 소수의 사람들만 썼죠. 그 때 누군가 “세상 모두가 자기 웹사이트를 갖게 되면 정말 쿨할 거야”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극소수였죠. 하지만 그 극소수가 좋은 아이디어를 실제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리고 NIH 신드롬을 극복했어요. 20년 이상이 흘렀고 그게 오늘날의 웹입니다.”

– 그 개방적이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웹의 특성 때문에 통제되지 않아서 사이버 테러나 개인정보 유출 등의 사고가 계속 생긴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음, 우선 개인정보 문제부터 보죠. 사생활과 개인정보 얘기에요. 저는 사람들이 사생활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고 봅니다. 달라져야 한다고도 생각해요. 그렇다고 ‘사생활의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건 바보같은 소리에요. 그런데 문제는 이게 잘못 사용될 때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의료 기기를 구매한 흔적 때문에 보험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는다면 그건 부당한 겁니다. 보험사가 ‘아, 이 사람 항암치료를 고민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암보험 가입을 막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문제는 이런 식으로 기업들이 개인정보를 직간접적으로 구하는 게 엄청나게 쉬워졌다는 겁니다. 데이터를 적절한 방법으로 사용하게 하는 방식을 정책화할 필요가 있어요. 보험회사가 이런 쇼핑기록을 구할 수는 있겠죠. 그런데 그걸 가입자 판단에 쓰면 안 된다고 법제화하는 식입니다.”

– 전에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이 개인정보를 소유해 인터넷을 망치고 있다고도 말씀하셨죠.

“그건 통제권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회사들이 자신의 정보를 남들에게 파는 게 아니냐고 걱정하는데, 제 생각에 그건 괜찮습니다다. 그런 기업들이 제 정보를 기억하는 방법을 만들어주면 저는 매우 고맙죠. 제 건강정보, 운동기록, 사회관계 등을 저장해 주면 제가 편하잖아요. 문제는 제가 스스로 이런 정보들을 통합해서 개인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 모든 데이터가 서로 다른 웹사이트에 저장돼 있는데 내가 이를 모아서 효과적으로 쓸 수가 없어요. 우리의 개인정보는 우리 스스로에게 제일 중요한 거에요. 이걸 특정 기업이 폐쇄적으로 관리하는 게 문제죠.” 

요즘 웹을 보면 엄청나게 발전해서 스스로 지능을 갖춰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음울한 공상과학 영화나 소설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그런 생각은 안 하시나요?

“웹페이지가 몇 개나 있는지 아세요? 우리 뇌세포 개수만큼이나 많은 웹사이트가 존재해요. 다만 우리 뇌세포는 늙어갈수록 줄어드는데 웹페이지는 지금도 매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게 차이죠. 물론 거대한 인공지능으로서의 웹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과거에는 기계와 대화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자동차가 스스로 운전하는 것 또한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이런 게 다 실현됐잖아요? 기술은 진보를 거듭하고 있고, 인공지능도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웹 그 자체는 똑똑하지 않다는 사실이죠. 웹은 컴퓨터 간의 연결이 아니라 사람 간의 연결입니다. 웹으로 안정적인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은 우리 인간의 몫이에요.”

한국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내용은 혹시 없으신가요?

“이기적으로 얘기할게요. 제가 W3C에서 일하지 않습니까? W3C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세요. W3C가 아니더라도 오픈소스 활동에 참여하시는 것도 좋습니다. 스스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찾고, 능동적으로 소스를 찾아서 수정하세요. 그동안 제가 보기로는 한국인처럼 서로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상호작용(interaction) 측면에서 보면 한국인은 최고에요. 이런 특성을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기억에 남는 한국인이 있으신가요?

“사람을 국적으로 기억하는 편도 아니고, 또 제가 사람 기억을 워낙 잘 못해요. 대신 다른 사람 얘길 한 번 하자면 웹이 제게 준 좋은 만남 중에 에런… 누구라는 사람이 있어요. 처음에 시맨틱웹 그룹에서 만났는데 온라인으로만 보던 사람이라 몇 살인지 전혀 몰랐어요. 열정적인 기여자를 만났죠. 그런데 그 때 이 사람의 나이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11살이었나, 12살이었나… 아주 소년이었죠. 웹은 이런 인연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얼마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어요. 누구든 기여할 수 있어요. 한국인들도 마찬가지죠. 이런 소년도 하잖아요.”

(그 사람은 에런 스워츠였다. 팀 버너스리가 장례식에 참석했던.)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쭤볼게요. 웹과 앱의 대결 얘기를 합니다. 앱이 승리했다고도 해요. 모바일 세상의 특징이죠. 앱은 웹과 달리 폐쇄적이라고도 하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문제입니다. 아주 부끄러운 일이에요. 바뀌어야 해요. 바꿀 것이고요. 웹앱을 쓰세요.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메일을 보내거나 트윗을 하려면결국에는 http 프로토콜을 써야 하고, url을 입력해서 링크를 걸어야 합니다. 그게 없다면 아무 것도 안 되는 거에요. 와이어드가 ‘웹은 죽었다’는 기사를 써서 좋은 문제를 환기시킨 바 있죠. 하지만 요즘 웹앱의 성공사례도 늘고 있어요. 파이낸셜타임즈가 웹앱을 만들어서 얼마나 훌륭한 뉴스 서비스를 만들었는지 한 번 보세요. 우리가 W3C에서 하는게 이런 새로운 웹 기술 표준을 만드는 겁니다.”

악수를 하고 일어서려는데 팀 버너스리가 “잠깐만요, 이번엔 제가 한 번 물어보죠”라면서 질문을 했다. “한국 정부는 정보를 얼마나 공개하나요? 정부 정보공개의 의지는 있나요?”라는 것이었다. 나는 중요성은 최근 깨닫기 시작한 것 같은데, 이제 시작 단계라 공공정보의 활용 사례도 적고 공개된 정보도 거의 없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정부에게 공공정보를 공개하라고 촉구하세요. 당신이 기자니까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에요. 영국에서 가디언이 하고 있는 게 이런 겁니다. 웹 때문에 전통적인 미디어의 사업이 힘들어진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웹 덕분에 새로운 가능성도 생겼습니다.”

그는 웹을 처음 만들고 20년 이상을 똑같은 이상을 위해 살고 있다. 우리가 더 개방된 세상에서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교류를 늘려가며 발전된 기술로 세상을 진보시키는 이상. 즐거운 인터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