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체 게바라

사실 나는 와엘 고님을 잘 몰랐다. 이집트 혁명의 영웅이고, 구글 직원이라고 했던 것 정도밖에는. 그가 이집트에서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고 이 페이스북 페이지는 이집트 혁명을 촉발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것 정도도 뉴스를 통해 듣기는 했다. 그가 지난달 한국에 왔고, 관심이 가서 그가 쓴 책을 읽어봤다. ‘레볼루션 2.0’.
고님의 나이는 나보다 어렸고, 그의 큰 딸은 내 아들보다 나이가 많았다. 한 때 고님은 이집트 정부에 의해 납치됐다가 풀려나기도 했으며 구글은 이 문제많았던 직원을 해고하는 대신 구출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구글은 ‘이집트를 위해 할 일이 있다’는 그의 요구를 듣자 장기 휴직도 허락했다. 좋은 회사였다. 사실 그럴만도 했다. 고님은 꼭 구글에 들어가고 싶다며 구글에 낙방을 할 때마다 몇 차례고 다시 입사지원을 했다. 이번엔 전보다 나아졌다며. 고님 스스로가 좋은 직원이었다.

와엘 고님은 여러 면에서 체 게바라를 연상시켰다. 두 사람 다 독재 정권에 맞서 싸웠고, 자신들의 주 활동 무대가 된 곳에서 일종의 국외자였으며, 혁명 이후에는 사람들의 내면 변화를 이끄는 일을 하고자 했다.

비교해 보자.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의사로 살다가 자신과 별 관계도 없는 나라였던 쿠바 혁명에 뛰어든다. 와엘 고님은 이집트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을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보냈고 구글에 입사한 뒤에는 두바이에서 살았다. 게다가 아내는 미국인이었다. 체 게바라의 쿠바든, 와엘 고님의 이집트든 모두 이들의 인생과는 별 관계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물론 두 사람 다 자신들이 사랑한 나라의 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고님은 이집트인 아니었느냐 물을지 모르겠지만 심지어 고님은 미국인과 결혼한 뒤에도 미국 시민권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를 심문하던 이집트 경찰들조차 의아해했다.

두 사람 모두 혁명이 끝난 뒤에는 정치와 관계 없는 뒷자리로 물러섰다는 것도 비슷하다. 체 게바라는 권력에 관심이 없었다. 쿠바는 카스트로에게 맡겨두고 자신은 다른 나라로 떠났다. 그 뒤 카스트로가 쿠바에서 새로운 절대 권력이 되는 걸 보면서 혁명이 이어지려면 무엇보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가 얘기했던 건 ‘새로운 인간’이었다. 교육을 통해 변화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그의 시대에는 인터넷이 없었으니, 게바라는 책을 쓰고 연설을 하며 중남미 대륙을 순회했다. 고님도 혁명이 끝난 뒤 정치 권력에 가까이 다가서지 않았다. 그 뒤 이집트에서는 혁명 이후 각종 정치 세력들이 생겨나면서 온갖 정치적 혼란을 빚게 된다. 고님 또한 민주화가 이어지려면 사람들의 의식이 발전해야 한다면서 교육을 강조했다. 그가 체 게바라와 다른 건 지금은 인터넷의 시대라는 점이다. 그는 게바라처럼 이집트를 순회하는 대신 누구나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교육 콘텐츠를 만들어 웹에 올려두고자 했다.

그래서 고님이 학교에 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신기하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부자들이 다니는 사립학교 말고, 꼭 공립학교에 가보고 싶다는 고님에게 구글코리아 직원들은 이태원 초등학교를 소개해 줬다. 나도 굉장히 오랜만에 초등학교를 가봤는데, 깜짝 놀랐다. 한국 초등학교가 낯설 정도로 좋았다. 학생들은 갤럭시노트 태블릿 수십대를 들고 수업 시간에 검색과 그림그리기를 했다. 칠판은 이미 오랜 옛날에 전자칠판으로 바뀌어서 흑판에 백묵으로 글씨를 쓰다가 먼지가 날리는 일 같은 건 사라진 지 오래였다. 고님이 도대체 초등학교 예산이 얼마나 되기에 이러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도 처음으로 찾아봤다. 올해 예산안을 보니 유치원과 중학교까지 포함한 유초중등 교육예산이 40조 원이 넘었다. 세상에.

DSC01820

어쨌든 고님은  이집트 혁명이 정말 성공하려면 사람들이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좋은 교육은 세계 어디서든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인터넷 덕분이었다. 지금 고님은 나바닷재단이란 걸 만들었다. 비정부기구(NGO)인데, 교육 재단이다. 동영상 강의를 만들어 인터넷으로 보게 해준다. 칸 아카데미 같은 교육 프로그램과 비슷한데, 특징은 “누구나 교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수들의 잘 갖춰진 강의도 강의지만, 이보다는 지역에서 자신의 지식을 콘텐츠로 만들어 보급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게 목표다. 그러니까 이는 아랍어 콘텐츠를 늘리는 길이기도 하다. 나바닷재단은 이집트 전역을 돌아다니며 간이 방송 스튜디오를 세운다. 동네 화학교사가 간단한 실험실습 교육 비디오를 찍을 수도 있고, 컴퓨터 그래픽을 지원받은 물리교사가 천체물리학도 강의할 수 있다. 한국에 관심을 가진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이 가장 보편적으로 퍼져있다는 나라. 그는 “값싼 태블릿 보급이 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PC보다 다루기 쉽고, 덜 망가지며, 교육 용도로 적합하기 때문이다.

사실 혁명도 그렇고, 교육 사업도 그렇고, 고님은 전형적인 인터넷 기획자이자 마케터다. MBA 출신이라서인지 모든 걸 온라인 마케팅의 틀로 바라본다. 이집트 정부에 대한 저항운동도 페이스북에서 인기 콘텐츠를 바이럴 마케팅으로 확산시키듯 확산시켰다. 예를 들어 거리에 나가 시위를 벌이는 대신 해변을 바라보고 검은 옷을 입은 채 침묵하면서 줄 지어 서있자는 얘기를 했고, 이를 사진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자는 운동을 제안했다. 이집트 전역은 물론이고 심지어 해외의 이집트 동포들까지 이 운동에 참여해 사진을 찍었다. 참가자들은 이를 ‘사일런트 스탠딩'(silent standing)이라고 이름 붙였다.

silent

 

사용자 참여형 인터넷 마케팅의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이외에도 프로필 사진을 바꾸게 권한다거나,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와 공동 행동을 하는 등의 마케팅이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결국 마지막에는 “페이스북이 아니라 거리에서” 모든 게 이뤄졌지만 그 이전에 이집트인들의 두려움을 걷어내는 데 고님의 페이스북 페이지는 큰 역할을 했다.

고님은 이를 ‘세일즈 터널’에 비유했다. 잠재고객에 조심스럽게 접근한 뒤 이들을 기회 고객으로 변화시켜서 최종적으로 구매 고객으로 바꿔내는 영업 기술 말이다. 그는 반정부 운동을 열심히 하는 활동가들이 아닌 두려움 많은 이집트의 평범한 사람들을 잠재고객으로 봤다. 그리고 이들을 기회고객으로 바꾸기 위해 어렵지 않은 실천에 해당하는 프로필 사진 바꾸기에서 시작해 사일런트 스탠딩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들을 광장으로 이끌어내면서 구매를 완성한 셈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MBA와 인터넷으로 혁명을 도왔다.

광고

프레지

prezi10년 전 날이면 날마다 듣는 소리가 “넌 왜 그렇게 글을 못 쓰냐”라는 핀잔이었다. “기본적으로 작문 실력이 없는 것 같다”, “글 쓰는 능력은 미안하지만 천부적 재능이 80%라던데 넌 재능이 없는 모양” 등등. 악담을 들을 때마다 “저는 영상세대라서 그래요”라고 얘기했다가 더 혼났다. 선배들이 지적하는 내 글의 문제점이란 순서가 없이 뒤죽박죽이란 점이었다. 그걸 나는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미지가 하나 통으로 떠올라서 그걸 묘사하다보니 이렇게 된 거라고요”라며 우겼다. 지금은 나도 내 말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땐 정말 그렇게 느꼈다. 뭔가 영상세대의 생각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얼마 전 SBS의 서울디지털포럼에 프레지 CEO 피터 알바이가 참석했다. 그와 얘기를 나누다가 10년 전 시절 생각이 났다. 프레지란 최근 여기저기서 많이 사용하는 프레젠테이션 도구다. 슬라이드쇼를 만들려면 마이크로소프트의 파워포인트 아니면 애플의 키노트만 써야 하는 줄 알았다면 프레지를 보면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 툴은 슬라이드쇼에 대한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보여준다. 글과 사진, 동영상을 가상의 거대한 판에 올려둔 뒤 각각의 글과 사진, 동영상을 확대하고 회전시키면서 이동하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때 이렇게 프레지로 홍보자료를 만들었다. 참고로 문재인 후보는 여기.

알바이의 얘기는 단순했다. “사람은 봐야 기억한다”(see to think)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영상세대라는 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실제로 암기 대회 챔피언들은 하나같이 머리속으로 집을 떠올리고, 가상의 방과 책상, 서랍 등을 만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속에 기억해야 할 정보를 놓아둔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많은 내용을 기억할 때 써먹던 방법이라는데, 사실 기억력을 높이려고 많은 사람들이 알아서 쓰는 일반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프레지의 세계는 스토리의 세계가 아니라 이미지의 세계다.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가 예술적으로 느껴지는 건 그가 천부적인 스토리텔러, 즉 이야기꾼이기 때문인데, 그렇게 논리적으로 기승전결을 짜서 스토리를 구성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의 틀을 잡기 전부터 괴로워 한다. 무엇이 시작이며, 어디서 갈등이 고조되고 절정은 어떻게 만들며, 결말의 반전은 어떻게 처리할지 말이다. 프레지는 고민하지 말고 다 늘어놓아 보라고 얘기한다.

커다란 책상 위에 아이디어의 조각조각을 메모로 써서 올려놓은 뒤 이걸 이리저리 배치하면서 발표를 구성해 봤다면 이 말이 이해가 갈 것이다. 아니면 브레인스토밍 회의를 할 때 포스트잇에 이러저런 아이디어를 써서 벽에 잔뜩 붙여놓고 가닥을 잡아나갔다거나. 프레지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방식이 딱 이런 식이다. 알바이는 “화이트보드가 브레인스토밍을 위한 것이고, 슬라이드는 스토리를 위한 것”이라며 “프레지는 화이트보드”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건 슬라이드쇼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 프레지는 스스로를 교육 도구라고 설명한다. 세상의 모든 지식, 적어도 거의 모든 지식은 인터넷에 존재하고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그 지식을 머리에 넣는 방식이다. 머리에 뭔가를 넣기 위해서는 시각적인 지식의 연결고리가 중요하다. 프레지는 잡다한 지식이 흩어져 있는 인터넷의 바다에서 의미있는 정보들 사이의 순서를 찾아내는 역할을 한다. 물론 이 순서를 만들어내는 건 프레지 사용자의 역할이고, 정보를 꿰어맞추는 과정 자체에서 교육이 이뤄지는 셈이다.

재미있는 얘기도 있었다. 연령이 어릴수록 프레지를 선호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선배들한테 말도 안 되게 대들면서 “나는 영상세대”라고 우겼던 것과 흡사해 보였다. 알바이에게 내가 “그래도 나는 키노트로 슬라이드를 만드는 게 더 좋다”고 설명했더니 알바이는 대뜸 “그건 당신이 선형(linear)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라고 대꾸했다. 기승전결에 따라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방식이 나나 내 윗세대의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프레지와 관련된 과학적 실험도 있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전통적인 파워포인트나 키노트 류의 슬라이드쇼와 프레지를 통한 슬라이드쇼를 보여줬더니 기억에 남는 정보량에서 프레지가 앞섰다는 것이다. 또 시각 기억으로 제공되는 정보가 텍스트로만 설명되는 정보보다 훨씬 기억에 남는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얘기다.

무엇보다 프레지를 쓸 때 생기는 장점은 계획을 짜서 만드는 키노트와 다른 새로운 발견이다. 알바이는 이를 “커다란 폭로(big reveal)”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것저것 떠오르는 걸 주섬주섬 프레지의 화이트보드 위에 펼쳐 놓으면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연결 관계가 가끔 눈에 발견되는데, 이것이 우리가 미처 몰랐던 새로운 직관과 통찰을 준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 뇌 속의 뉴런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우리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책을 읽고 한참을 쉬다가 유레카의 순간이 등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도대체 이런 일을 왜 시작한 것인지 물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 얘기를 했다. 암으로 어머니를 잃었는데, 자기는 당시에 암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고 했다.

“세상에 슈퍼마켓에 가서 치약을 사려고 해도 치약에 성분과 효능 등이 모두 나와 있는데, 사람의 목숨을 좌우하는 약에 대해서 일반인이 알 수 없는 건 전혀 없었다고요. 지식은 존재하는데 그 지식을 보통 사람들이 누릴 수가 없던 거죠. 이런 게 인터넷의 시대에 말이 되나요? 그래서 의학 정보와 병원 평가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 사회적 기업이 정보를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었죠. 그게 프레지에요. 다른 사람들도 쉽게 이런 정보를 나누도록 만든 툴이죠. 그러다가 프레지가 비즈니스의 중심이 됐을 뿐입니다.”

프레지는 무료다. 유료로 쓰면 한 가지 기능을 더 쓸 수 있다. ‘비공개’다. 지식은 공유하라고 존재하는 것이란 게 프레지의 철학이다. 지식을 남에게 나누겠다면 누구에게나 프레지는 무료일 거라고 알바이는 약속했다. 약속이 지켜지고 지식이 더 널리 퍼지길 바랄 따름이다.

“웹은 결국 사람 사이의 연결” 팀 버너스리와의 대화

201305016692908W이미 팀 버너스리의 인터뷰를 쓰긴 했는데 사실 주고받은 대화를 다 소개하고 싶었다. 재미있는 얘기가 많았다. 시간도 1시간이 주어져서 꽤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는 사실 이번에 한국도 처음 왔고, 한국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었다. 당연히 한국에 대한 코멘트도 할 게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짖궂게 물어봤다. “한국 인터넷 관련 기업 중에 아는 회사가 있나요?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웹 관련 서비스를 하는 회사 말입니다.” 네이버 정도는 들어보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그는 “단 한 곳도 아는 곳이 없다”고 했다.
“물론 하드웨어 회사들은 알죠. 삼성이나 LG 같은.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 하드웨어 회사는 한국 회사라기보다는 글로벌 회사입니다. 전 세계에 퍼져있잖아요. 생각해 보면 웹도 그래요. 국가 간 경계를 초월해서 전세계를 연결하죠. UN이 국경을 초월해 존재하는 것처럼 웹도 국경을 초월해서 존재합니다. 웹에서 중요한 건 당신이 어떤 국적을 갖고 있느냐가 아니에요. 그런데 결국 국경 문제가 나오는군요.”

– 그렇다고 웹에 국가간 차이가 없는 건 아니잖요? 중국 정부는 여전히 인터넷을 검열하고 있고, 해외 기업의 서비스도 제한합니다. 한국에선 독특한 우리식 사회주의…가 아니고 우리식 인터넷규제가 버젓이 살아있죠. 실제로 한국 관료들을 보면 “지나치게 서구 중심이고, 표준 논의에 아시아 국가들은 잘 끼워주지도 않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생각을 받곤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주 재미있는 지적이네요. 한국 사람들이 서구 사회를 어떻게 보는지를 되돌아보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철학이란 건 사용하는 언어, 국적, 성적 취향 등 어떤 것이든 차별받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굉장히 개방적이게 마련이에요. 혹시 IRC(인터넷 채팅) 써보셨어요?이런 걸 쓸 땐 상대가 어느 나라에 있는지 신경 쓰지 않아요. 국적도 보지 않죠. 닉네임만 쓰니까 전혀 상대를 짐작할 수도 없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인터넷이 미국 방위고등계획국이 연구하던 알파넷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미국이 창조에 많은 부분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얘기에요. 그런데 전 유럽 출신입니다. 인터넷은 미국에서 만들었고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과 미국 인터넷이 연결될 표준이 없었어요. 그래서 WWW이 만들어졌죠. 유럽 사람이 만들고 유럽 연구소에서 시작된 게 미국과 연결된 겁니다.”

– 중국 사람들과 대화하다보면 “인터넷은 미국이 만든 거잖아, 우리도 그런 걸 만들 수 있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게 전형적인 ‘NIH(Not Invented Here) 신드롬’입니다. 우리가 만든 게 아니니 배척하겠다는 인간의 본능이죠. 어디스든 굉장히 흔하게 나타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놀랄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런 견해는 참 슬픈 일입니다. 인터넷의 역사를 보면 지금까지 이 기술이 발전했던 건 사람들이 NIH 신드롬을 극복한 덕분이에요. html5나 자바스크립트 라이브러리 등이 사람들이 동의한 표준 덕분에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거부반응에는 문화적, 심리학적 배경이 깔려 있겠지만 NIH는 참 안타깝습니다. 아주 창조적인 사람들이 그 놀라운 창의력을 기존 성과에 더하는 방향이 아닌 부정적인 방향으로 쓰게 되는 것이잖아요. 중국의 영향은 요즘 정말 강해지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W3C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난번 W3C에서 웹의 미래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 우리가 브라우저 제조업체도 초청했습니다. 10개 기업이 왔어요. 그 중 5개 업체가 중국 회사였습니다. 나머지 5개가 서구 기업이었죠. 중국이 절반인 거에요. 한국과 중국 같은 나라는 문자도 다른 문자를 쓰고, 다른 문화를 갖고 있어서 기술도 따로 개발해야 할 부분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커지고 강해질수록 점점 개방적이 되야죠. 경제적으로 세계 경제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는 중국은 언젠가는 개방적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 ‘WWW의 발명가’로 불리잖아요. 어떤 느낌이세요?

“많은 사람들이 많은 발명품을 만들어요. 하지만 이 가운데 웹이 아주 성공적이었을 뿐입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했었고 즐거웠어요. 그런데 사실 내가 한 일은 작은 일입니다. 코드를 짜서 올려놓았을 뿐인데, 사람들이 그걸 기반으로 브라우저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당시 웹은 아주 작아서 정말 소수의 사람들만 썼죠. 그 때 누군가 “세상 모두가 자기 웹사이트를 갖게 되면 정말 쿨할 거야”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극소수였죠. 하지만 그 극소수가 좋은 아이디어를 실제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리고 NIH 신드롬을 극복했어요. 20년 이상이 흘렀고 그게 오늘날의 웹입니다.”

– 그 개방적이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웹의 특성 때문에 통제되지 않아서 사이버 테러나 개인정보 유출 등의 사고가 계속 생긴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음, 우선 개인정보 문제부터 보죠. 사생활과 개인정보 얘기에요. 저는 사람들이 사생활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고 봅니다. 달라져야 한다고도 생각해요. 그렇다고 ‘사생활의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건 바보같은 소리에요. 그런데 문제는 이게 잘못 사용될 때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의료 기기를 구매한 흔적 때문에 보험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는다면 그건 부당한 겁니다. 보험사가 ‘아, 이 사람 항암치료를 고민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암보험 가입을 막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문제는 이런 식으로 기업들이 개인정보를 직간접적으로 구하는 게 엄청나게 쉬워졌다는 겁니다. 데이터를 적절한 방법으로 사용하게 하는 방식을 정책화할 필요가 있어요. 보험회사가 이런 쇼핑기록을 구할 수는 있겠죠. 그런데 그걸 가입자 판단에 쓰면 안 된다고 법제화하는 식입니다.”

– 전에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이 개인정보를 소유해 인터넷을 망치고 있다고도 말씀하셨죠.

“그건 통제권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회사들이 자신의 정보를 남들에게 파는 게 아니냐고 걱정하는데, 제 생각에 그건 괜찮습니다다. 그런 기업들이 제 정보를 기억하는 방법을 만들어주면 저는 매우 고맙죠. 제 건강정보, 운동기록, 사회관계 등을 저장해 주면 제가 편하잖아요. 문제는 제가 스스로 이런 정보들을 통합해서 개인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 모든 데이터가 서로 다른 웹사이트에 저장돼 있는데 내가 이를 모아서 효과적으로 쓸 수가 없어요. 우리의 개인정보는 우리 스스로에게 제일 중요한 거에요. 이걸 특정 기업이 폐쇄적으로 관리하는 게 문제죠.” 

요즘 웹을 보면 엄청나게 발전해서 스스로 지능을 갖춰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음울한 공상과학 영화나 소설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그런 생각은 안 하시나요?

“웹페이지가 몇 개나 있는지 아세요? 우리 뇌세포 개수만큼이나 많은 웹사이트가 존재해요. 다만 우리 뇌세포는 늙어갈수록 줄어드는데 웹페이지는 지금도 매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게 차이죠. 물론 거대한 인공지능으로서의 웹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과거에는 기계와 대화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자동차가 스스로 운전하는 것 또한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이런 게 다 실현됐잖아요? 기술은 진보를 거듭하고 있고, 인공지능도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웹 그 자체는 똑똑하지 않다는 사실이죠. 웹은 컴퓨터 간의 연결이 아니라 사람 간의 연결입니다. 웹으로 안정적인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은 우리 인간의 몫이에요.”

한국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내용은 혹시 없으신가요?

“이기적으로 얘기할게요. 제가 W3C에서 일하지 않습니까? W3C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세요. W3C가 아니더라도 오픈소스 활동에 참여하시는 것도 좋습니다. 스스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찾고, 능동적으로 소스를 찾아서 수정하세요. 그동안 제가 보기로는 한국인처럼 서로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상호작용(interaction) 측면에서 보면 한국인은 최고에요. 이런 특성을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기억에 남는 한국인이 있으신가요?

“사람을 국적으로 기억하는 편도 아니고, 또 제가 사람 기억을 워낙 잘 못해요. 대신 다른 사람 얘길 한 번 하자면 웹이 제게 준 좋은 만남 중에 에런… 누구라는 사람이 있어요. 처음에 시맨틱웹 그룹에서 만났는데 온라인으로만 보던 사람이라 몇 살인지 전혀 몰랐어요. 열정적인 기여자를 만났죠. 그런데 그 때 이 사람의 나이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11살이었나, 12살이었나… 아주 소년이었죠. 웹은 이런 인연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얼마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어요. 누구든 기여할 수 있어요. 한국인들도 마찬가지죠. 이런 소년도 하잖아요.”

(그 사람은 에런 스워츠였다. 팀 버너스리가 장례식에 참석했던.)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쭤볼게요. 웹과 앱의 대결 얘기를 합니다. 앱이 승리했다고도 해요. 모바일 세상의 특징이죠. 앱은 웹과 달리 폐쇄적이라고도 하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문제입니다. 아주 부끄러운 일이에요. 바뀌어야 해요. 바꿀 것이고요. 웹앱을 쓰세요.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메일을 보내거나 트윗을 하려면결국에는 http 프로토콜을 써야 하고, url을 입력해서 링크를 걸어야 합니다. 그게 없다면 아무 것도 안 되는 거에요. 와이어드가 ‘웹은 죽었다’는 기사를 써서 좋은 문제를 환기시킨 바 있죠. 하지만 요즘 웹앱의 성공사례도 늘고 있어요. 파이낸셜타임즈가 웹앱을 만들어서 얼마나 훌륭한 뉴스 서비스를 만들었는지 한 번 보세요. 우리가 W3C에서 하는게 이런 새로운 웹 기술 표준을 만드는 겁니다.”

악수를 하고 일어서려는데 팀 버너스리가 “잠깐만요, 이번엔 제가 한 번 물어보죠”라면서 질문을 했다. “한국 정부는 정보를 얼마나 공개하나요? 정부 정보공개의 의지는 있나요?”라는 것이었다. 나는 중요성은 최근 깨닫기 시작한 것 같은데, 이제 시작 단계라 공공정보의 활용 사례도 적고 공개된 정보도 거의 없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정부에게 공공정보를 공개하라고 촉구하세요. 당신이 기자니까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에요. 영국에서 가디언이 하고 있는 게 이런 겁니다. 웹 때문에 전통적인 미디어의 사업이 힘들어진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웹 덕분에 새로운 가능성도 생겼습니다.”

그는 웹을 처음 만들고 20년 이상을 똑같은 이상을 위해 살고 있다. 우리가 더 개방된 세상에서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교류를 늘려가며 발전된 기술로 세상을 진보시키는 이상. 즐거운 인터뷰였다.

밴드, 네이버가 생각하는 소셜네트워크

그녀는 싸이월드를 만든 사람이라고 했다. 한국인 3000만 명이 쓰던, 그러니까 인터넷을 하는 한국 사람이라면 거의 다 쓰던 싸이월드가 그 사람 손에서 만들어졌다. 이람. 네이버서비스2본부장. 돈도 없을 때 열정만 갖고 열심히 키웠던 회사가 SK텔레콤에 팔린 뒤로는 NHN으로 자리를 옮겼다. NHN에서는 다음이 카페가 강하니 네이버에서도 카페를 키워야 한다는 당연한 얘기가 나오고 있었고, 그러자면 커뮤니티에 뭔가 성공 사례가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왔고, 인터넷 커뮤니티하면 싸이월드였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이람이 그곳으로 갔고, 네이버 카페는 이후 다음 카페랑 경쟁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참, 하나 더. 이람은 카페와는 별도로 네이버 블로그도 만들었다.
“저는 그 시절에 이글루스를 썼는데요? 그게 더 먼저 나온 것 아니었어요?”

이 질문에 그녀는 네이버 블로그가 먼저라고 정정해 줬다. 비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 뭐하느냐, 이글루스가 더 좋아서 그걸 썼다, 게다가 지금도 네이버 블로그는 뭐랄까, 쿨(cool)하지 않고 아줌마들이나 쓰는 서비스라는 인식을 준다…

당연하겠지만, 이람은 자기가 만든 서비스에 대해 “아줌마 같다고 말한다니 가슴 아프다”고 했다. 그래도 그게 돌려 말하면 쓰기 쉽다는 뜻 아니겠냐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와서 계속 생각해 봤다. 쉬운 서비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서비스. 말은 좋은데, 뭐가 쉬운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중요한 건 맥락이다. 이람은 개발자가 아니다. 사회과학도였고, 잡지사 일을 했으며, 잡지를 만들어서는 도저히 먹고 살 수가 없어 동아닷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인터넷 서비스 기획을 시작했다. PC통신을 썼고, 초창기 게시판형 서비스에 익숙했으며, 새 글이 올라오면 댓글이 달린다거나, 글발이 좋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논쟁이 벌어지는 형식의 구조를 이해했고 확대재생산시켰다.

이후 그녀가 성공시킨 서비스를 보자.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게시판 위주의 PC통신 문화에서 막 ‘그림을 단 게시판’으로 사람들이 옮겨오던 2000년대 초에 ‘쿨한 그림'(일본에서 유행하고 젊은 여성들이 일찌감치 받아들였던 픽셀아트)을 단 게시판으로 대박을 쳤다. 차이는 우리 모두 보던 게시판에서 ‘내 게시판’을 만들었다는 점 정도. 이람은 “미니홈피가 ‘나’라면 나는 옷을 입고, 옷은 사입는 거니까, 옷을 팔자”는 생각으로 만든 게 미니홈피였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돈을 벌고 싶은데 돈이 안 벌려서 굶을 지경에 이르니 뭐라도 팔 수 없을까 생각하다 만든 게 미니홈피였던 셈이다. 하지만 그 개념이 모든 걸 갈랐다. ‘우리’밖에 없던, 그것도 시솝이라는 권력의 정점 밑에 부시솝들이 각 게시판들을 군대식으로 관할하던 PC통신 시절의 잔재가 거기서 깨어졌다. 좀 다른 얘길 하자면, 미니홈피의 성공은 하나회 척결과 맞먹는 문화적 대사건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이건 정말 기존과는 다른 서비스였는데 기존 서비스보다 훨씬 쿨했다. 쓰기는 쉬우면서. 쉽다는 건 그런 거였다. 쿨한데 쉬운.

네이버 블로그의 가장 큰 장점은(본인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스마트에디터다. 내가 아줌마들이나 쓰는 것 같다고 불렀던 바로 그 지점 말이다. 누구나 쉽게 사진 찍어 붙이고 디자인할 수 있는 기능. 그 덕분에 정말 수많은 아줌마들이 주방용품, 요리법, 육아용품을 리뷰하거나, 홍보하거나, 영업하면서 네이버 블로그를 즐긴다. 그리고 서로 방문하고 댓글 달고 욕하고 차단했다 다시 보면서 웃고 울고 즐긴다. 계속 즐긴다. 싸이월드 사람들은 자기 서비스 사용자들이 “스물여섯살이 되면 졸업한다”고 말한다. 소녀들은 자라서 아줌마가 되고, 아줌마들은 싸이월드에서 노는 대신 네이버로 옮겨가 논다.

문학소녀 기획자는 자라서 초보 아줌마가 됐고, 본부장이 된 지금은 학부형이 됐다. 그리고 ‘밴드’를 만들었다.

도대체 이 서비스는 뭘까. 워낙 새 서비스가 많이 나오는 시대라서 난 요즘 어지간한 신규 서비스엔 관심도 없다. 흥미도 안 생긴다. 차별화됐다고 얘기해봐야 그 차별화를 애써 이해하기가 귀찮기만 하다. 그런데 밴드에는 관심이 생겼다. 사실 서비스가 좋아보여서였다기보다는, 이건 ‘카페를 말아먹겠다는 생각 아니면 안 만들 것 같은 서비스’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카페 앱을 더 잘 만들어서 모바일 카페를 좀 더 키워보지, 이게 무슨 카니발라이제이션인가. 앱을 다운로드 받은 뒤엔 더 황당했다. PC에선 쓸 수도 없고, 밴드를 만들었더니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글쓰고 사진 올리는게 고작인데, 아니, 이봐요, 이런 거 하는 건 인스타그램과 카카오스토리가 있잖아.

오늘 기사에도 썼지만 밴드는 사실 그래서 만든 서비스라는 게 이람의 설명이었다.

인터뷰를 시작했을 때 그녀가 처음 보여준 게 바로 이 슬라이드였다. 이건 구글 출신(지금은 페이스북)으로 구글 플러스의 ‘써클’ 기능에 큰 영향을 줬던 폴 애덤스가 ‘현실의 소셜네트워크'(real life social network)를 설명하는 그림이다. 온라인에서 그냥 통으로 관리되는 사람들과의 소셜네트워크와는 달리 현실에선 내 주위 사람들이 그룹별로 묶여있게 마련이라는. 결국 구글은 이런 방식을 도입해 구글플러스에 써클이라는 형태로 친구들을 구분하는 기능을 만들었고, 애덤스가 페이스북으로 옮긴 뒤에는 페이스북에도 그룹이라는 비슷한 형태가 도입됐다.(이른바 ‘친친소팅’, 즉 친한 친구 분류하기가 이래서 가능해졌다.) 네이버에서도 뭔가 만들면 이런 걸 만들고 싶었다는데, 결정적인 문제는 페이스북 그룹이든, 구글플러스 써클이든 간에 처음 쓰는 사용자들은 뭔가 쓰기가 복잡하고 어렵다는 데 있다.

그래서 밴드(서비스)에선 그냥 밴드(서비스 내의 모임)를 만들면 그 밴드끼리만 묶이게 해놨다. 밴드앱 내에서도, 네이버에서도, 절대로 밴드 사용자가 어떤 밴드에 가입돼 있는지 검색되지 않는다. 끼리끼리 모이고, 끼리끼리 얘기하다가 그 밴드 돌아가는 분위기가 맘에 안 들면 나오면 그만이다. 물론 일단 나오고 나면 다시 초대받을 때까진 한 번 나온 밴드를 되찾아 갈 수도 없다. 검색이 안 되니까. 이거 좀 무서운 것 같지만, 사실 현실 속 관계가 그런 게다. 그러니까 카페와는 다르다. 카페는 검색돼야 하고, 카페 속 지식이 곧 카페의 존재 이유다. 밴드는 아니다. 검색되면 안 되고, 밴드 속 정보는 그 집단만 공유해야 하는 약한 비밀에 해당한다.

허술해 보일 지경이었던 밴드의 기능도 이람의 설명에 따르면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었다. 처음 쓰는 사람들은 도대체 이 서비스가 왜 만들어진 것인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려면 기능이 많은 것보다 적은 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밴드를 처음 기획했을 때 목표로 삼은 건 대학생들이 조모임 할 때 쓰는 서비스였다고 했다. 그래서 사진 올리고, 약속 잡고, 전화번호 공유하고, 글 쓰고 채팅하는데에만 집중했다는 얘기다. 조모임이 타깃이었기 때문에 곧 추가할 기능도 N드라이브하고 연동해서 파일을 주고받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놓고보니 활용처가 의외로 다양했다. 이람 스스로 ‘1학년5반’, ‘사사과91학번’, ‘Exconnect’(NHN 임원모임) 등 서로 섞
면 어색할 모임들을 만들어 따로 가입해 있었다. 이외에도 잘 돌아가는 모임으로 교회의 지역모임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알고 지내면 괜찮지만, 페이스북 피드에 뜨는 건 싫은 사람과의 느슨한 관계도, 날마다 할 말이 무지 많지만 이 사람과의 얘기가 다른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공개되는 건 싫은 끈끈한 관계도 따로따로 잘 관리되는 셈이다.

이 글의 제목은 네이버가 생각하는 소셜네트워크라고 달았지만, 사실 ‘밴드’는 ‘이람이 생각하는 소셜네트워크’다. 성공할까? 나도 모른다. 나로서야 그냥 페이스북만 쓰는 세상이 더 편하고 좋은 것 같긴 한데, 생각해보면 그건 네이버 블로그 초창기를 볼 때도 내가 했던 생각이다. 왜 네이버는 선진적인 워드프레스나 무버블타입 같은 걸 안 만들고 저렇게 후진 네이버 블로그를 만드느냐고. 그렇게 주장하던 내가 어느날 워드프레스로 회사 홍보 블로그를 만들었다가 그 콘텐츠를 함께 관리할 우리 팀원들에게 된통 잔소리를 들었다. 에디터 쓰기가 너무 힘들어서 블로그를 새로 배우는 것 같다는 얘기였다. 네이버 카페를 보면서도 저게 무슨 정보의 보고냐고 비웃기 일쑤지만, 사실 그렇게 비웃는 집단은 전체 인터넷 사용자 가운데 극소수다.(아마도 이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여러분?)

홈페이지와 블로그 그리고 현재의 페이스북 페이지와 타임라인 등으로 사용자를 교육시키며 진화했던 미국 인터넷 문화는 한국 인터넷 문화와는 많이 다르다. 미국에선 Geek들이 직접 혼자서 모든 걸 다 하면서 인터넷에 접근하기 시작했다가 가입형 서비스들이 확대되기 시작했고, 결국 대부분의 미국인이 가입하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PC통신 게시판부터 시작해서 포털 게시판, 카페 게시판, 미니홈피 게시판, 블로그 게시판의 순서로 시작부터 지금까지 모두가 함께 갔다. 인터넷 사용자가 증가하긴 했지만 핵심사용자들은 변함없이 모든 서비스를 관통하는 일관된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다. 게시판과 댓글 문화.

그리고 이람은 지금 모바일 게시판을 만든 것이다.

어떻게 될까. 그녀의 꿈처럼 한국의 모바일 게시판이 세계의 게시판으로 확대될까. 아니면 타임라인과 써클의 모바일 공략이 한국까지 접수할까.

인터넷이 사생활을 침해한다고?

한국은 처음 찾는 것이라고 했지만 제프 자비스 뉴욕시립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한국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제한적 본인확인제라거나 온라인게임에 대한 이른바 ‘셧다운제’ 등을 이미 잘 파악하고 있었고, 강하게 이런 규제를 비판하기도 했다. 워커힐호텔이 숙소라 저녁에는 강변 테크노마트에 나가서 새 휴대폰을 사볼 생각이라고도 했다. 물론 나는 “그곳 상인들과 가격 흥정하는 게 쉽진 않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는 SBS 주최 서울디지털포럼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예전부터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그가 출간한 Public Parts라는 책 때문이었다. 다행히 30분 동안 따로 인터뷰할 기회가 생겼다. 기사로도 썼지만, 너무 짧게 소개돼 그의 생각을 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자세한 인터뷰는 다음과 같다.
– 공공성에 대한 책을 썼고, 사적(私的) 영역은 공적(公的) 영역의 반대말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사생활(privacy)이란 건 무엇이고, 공공성(publicness)라는 건 무엇인가?
=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공공성의 가치다. 공개된 삶(being public)의 가치 말이다. 오해하지 말아달라. 프라이버시는 여전히 중요하다. 우리 모두 사생활을 중요하게 얘기한다. 사생활은 꼭 보호돼야 한다. 내게도 사생활이 있다. 하지만 인터넷 얘기를 할 때 등장하는 사생활 얘기를 보라. 사생활, 사생활, 사생활이다. 공포를 불러 일으킨다. 신기술은 변화를 불러오게 마련이고, 급작스러운 변화는 공포를 불러오며, 공포는 기술을 금지하거나 중단시키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이는 역사적으로 늘 반복해 등장하는 모습이다. 인터넷이란 건 정말 대단한 도구인데 사생활과 관련된 오해가 인터넷을 규제하고 발목을 잡는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은 뜨겁고 차가운 것도 아니고, 젖고 마른 것도 아니다. 둘은 대립하지 않는 상호의존적인 개념이다. 하나가 있어야 다른 것도 존재할 수 있다.

– 그렇다면 무엇이 사생활이고 공공성인가?
= 나는 사생활을 윤리(ethics)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정보를 알 때 필요한 윤리 말이다. 예를 들어 내가 당신에게 지금 뭔가를 얘기하고 있지 않나. 이건 모두에게 알려질 것을 알고 얘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 입장에선 이제부터 나에 대한 뭔가를 알았으니 어떻게 얘기할지 정해야 한다. 이건 윤리의 영역이다. 개인, 기업, 정부 누구든간에 남의 정보를 알게 된다면 그 정보를 어떻게 다룰지 고민하게 된다. 그게 바로 사생활의 영역이다. 반면 공공성은 당신이 아는 걸 어떻게 공유하느냐에 대한 윤리다. 나는 내가 전립선암에 걸린 얘기를 블로그와 책에 썼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 자발적으로 공개한 것이다. 이런 게 공공성이다. 사생활은 타인의 정보를 내가 알 때 필요한 윤리고, 공공성은 내 정보를 남에게 공유할 때 필요한 윤리다.

– 소셜미디어는 신뢰를 만든다. 이는 마치 신용(credit)과 같은 새로운 사회적 자원이란 생각이 든다.
= 맞다. 지금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신경쓰는 게 어떤 건지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블로그 같은 걸 열심히 관리한다. 특히 트위터나 블로그는 실제 자신의 정체성과 연결되지 않는 엉뚱한 아이디를 쓰면서도 열심히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난 이런 걸 정체성에 대한 투자(invest to identity)라고 생각한다. 명성을 쌓아나가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이런 사람들은 신뢰를 얻게 되고, 실명 기반이 없어도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마크 저커버그는 그런 점에서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 인터넷이란 기본적으로 익명성 위에서 만들어진 네트워크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인터넷에서도 우리가 실제의 정체성을 가지고 실제의 관계를 북돋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리의 현실 사회가 갖고 있는 관계의 질을 높여준 것이다. 개인도, 기업도 이런 점에서 가치를 발견한 것 같다.

– 페이스북 얘기가 나온 김에 얘기하자. 상장이 된 페이스북이 고평가됐다는 얘기가 많고, 주가도 떨어졌다.
=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주가가 좀 더 떨어지면 난 페이스북 주식을 사겠다.
나는 마크 저커버그에게 비젼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난 페이스북이란 플랫폼에 엄청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구글은 아주 강력한 플랫폼이다. 성공했다. 그리고 아직 어떻게 돈을 버는지는 모르고 있지만, 트위터 또한 강력한 플랫폼이다. 페이스북도 이런 강력한 플랫폼인데 이제 겨우 돈을 벌기 시작했다. 지금 가치와 이용자 수를 나눠보자. 10억 명의 사용자를 갖고 있는 회사의 기업가치가 1000억 달러다. 사용자 1명의 일생을 담는 서비스인데 가치가 사용자 1인 당 100달러라는 소리다. 내 생각에 페이스북은 이제 겨우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미디어와 비교해도 된다. 미국의 일반적인 뉴스 웹사이트의 독자는 1인 당 한 달에 평균 12페이지의 웹페이지를 읽는다. 한 달에 12페이지. 그런데 페이스북에선 한 사람이 하루에 평균 12페이지를 본다. 30배 더 많이 읽히는 미디어 사이트인 것이다. 그런데 페이스북의 모든 직원 숫자는 대도시 신문사 하나의 직원 숫자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직원들이 서비스하는 대상은 10억 명이다.
그래서 난 페이스북이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망가질 가능성도 있지 않느냐고? 물론이다. 모든 회사가 망할 수 있다. 구글도 그렇다. 하지만 페이스북과 마이스페이스를 비교하는 식의 분석은 잘못됐다. 마이스페이스는 홈페이지 메이커였다. 소셜하지 않았다. AOL과 비교? 야후랑? 마지막 올드미디어였던 회사가 야후다. 이런 회사들은 플랫폼이 아니다. 페이스북은 플랫폼이다. 그런 점에서 엄청난 가치가 페이스북에 있다.

– 소셜미디어로 사생활을 공유하면 나쁜 평판을 얻은 사람들은 경제생활에 참여하지 못할 수 있다.
= 그건 데이터를 어떻게 사용할까의 문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선 ‘빨간줄긋기'(Redlining)라는 제도가 있었다. 은행이 부동산 모기지론을 줄 때 썼던 방식인데, 대출을 원하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 따라 대출을 구분했던 방식이다. 통계적으로 보면 사는 지역을 봤을 때 가난한 사람이나 소수인종이 사는 지역의 대출 위험도가 높다. 하지만 윤리적으로 보면 이런 식으로 대출을 제한하면 소수자와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점점 더 뒤쳐진다. 사회가 이들을 배제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선 나중에 레드라이닝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소셜미디어로 생겨난 신뢰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페이스북 친구들을 기반으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판단한다면 그것도 윤리적인 문제가 되지 않을까? 예를 들어 뉴올리언즈는 진짜 맛있는 음식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뉴올리언즈 음식은 진짜 기름지다. 버터 천지에 동물성 지방 등 몸에 안 좋은 성분이 잔뜩 들었다. 그래서 뉴올리언즈의 심장병 발병률은 다른 지역보다 높다. 과연 보험회사는 뉴올리언즈 주민들에 대해 뉴올리언즈에 사니까 보험료를 더 내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요점은 이런 것이다. 우리는 기술을 탓할 게 아니라, 그 기술로 인해 비롯되는 우리의 행동을 규제해야 한다. 기술은 옳고 그름을 얘기하지 않는다. 기술은 잘못을 스스로 저지르지 않는다. 우리가 규제하고 통제해야 할 건 우리의 행위지 기술이 아니다.

– 인터넷 규제에 대한 생각을 좀 더 듣고 싶다.
= 규제를 하는 사람들은 물론 처음에는 선한 의도로 규제를 시작한다. 문제는 규제가 낳는 ‘의도되지 않은 결과’다. 규제하는 사람들은 늘 기술에 뒤쳐져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니까. 그러니 규제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잘못된 행동을 고치기 위해 기술 전체를 통제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동시에 전혀 깨닫지도 못한 수백 가지의 올바른 행동도 함께 통제하게 되는 것이다.

– 정보의 소유라는 건 불분명하다는 말을 했다. 무슨 뜻인가?
= 유럽연합에서 지금 논의되고 있는 주제 가운데 ‘잊혀질 권리’라는 게 있다. 듣기 좋은 말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얘기 같다. 하지만 여기엔 문제가 있다. 당신과 나는 늘 상호작용한다. 만약 당신이 컨퍼런스에 나갔는데 내가 사진을 찍었다고 해보자. 그리고 내가 이걸 공개한다면, 당신한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당신 직장 상사가 “그 시간에 왜 여기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혹은 당신과 내가 아닌 제3자가 사진을 찍어 공개했다면 당신은 그 사진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유럽연합은 이런 문제를 간과했다. 잊혀질 권리는 그렇게 단순하게 보장되지 않는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독일에서는 구글이 스트리트뷰를 촬영할 때 문제가 있었다. 사생활 침해가 우려된단 얘기였다. 그래서 독일 정부는 구글에게 거리를 촬영할 때 개인 소유물이고 사적인 영역인 집의 모습은 스트리트뷰에서 뿌옇게 처리하라고 했다. 문제는 이 집에 사는 가족은 뿌옇게 처리되길 바랬는데, 이 집의 건물주는 자기 집이 공개되길 원하는 경우였다.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누가 이걸 결정할 권리를 갖고 있는가? 세입자? 집주인? 건축가? 사람들은 누군가 정보를 ‘소유’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정보는 소유되지 않는다. 정보는 지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저작권(copyright)을 생각해 보자. 만약 당신이 지금 인터넷 컨퍼런스와 관련된 TV드라마를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지금 나와 진행하는 이 인터뷰를 소재로 삼아 드라마를 쓸 것이다. 그 드라마는 당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우리 대화에서 오간 농담이나 재미있는 일화를 당신이 드라마에 쓰지 못하도록 할 수는 없다.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서 있었던 일들을 당신이 알지 못하도록 만들 수 있나. 이런 식으로 정보와 지식을 규제하려 드는 건 잠재적으로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소셜네트워크 버블

지난달 가트너의 브라이언 프렌티스 부사장을 만났다. 특별한 주제 없이 올 한 해 IT 업계의 트렌드에 대해 이러저런 얘기를 나눴다. 인상적인 부분이 몇 가지 있었는데 빅데이터에 관한 이야기는 신문에 기사로 간단히 소개했다. 그때 함께 소개하지 못한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SNS에 대한 얘기다. 그는 “단언하는데 지금은 SNS가 버블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시기”라며 “SNS 투자에 낀 거품은 2013년 이전에 터질 것”이라고 말했다. SNS의 ‘닥터 둠’이랄까.
그는 “이해해야 할 건 내가 지금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쓰지 않게 된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라며 “투자에 있어서의 버블이 터지리라는 게 내 예상”이라고 강조했다. 프렌티스 부사장 스스로도 페이스북 팬이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가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이 놀라운 서비스에 쏟아붓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SNS의 미래는 어둡다. 바로 벤처캐피탈 때문이다.

프렌티스 부사장은 “벤처캐피탈이 실리콘밸리에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이 수많은 벤처캐피탈은 안 좋은 습성을 갖고 있는데 그게 바로 ‘무리짓는 습성'(Swarming Instinct)”이라고 꼬집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해가 갔다. 벤처캐피탈들은 지금 모두 성공 신화를 안겨 줄 ‘대박 기업’을 찾아 헤맨다. 그리고 미국 경제가 IT 산업 중심으로 살아나면서 투자금이 다시 몰려들어 이들의 주머니에 들어 있는 돈도 최근 수년 동안 가장 많은 상태다. 이 때문에 벤처캐피탈들은 “투자를 고려할 때 절반 정도는 그냥 날릴 각오를 하고, 48%에서는 본전만 찾겠다고 생각한다. 다만 단 2%의 대박을 바랄 뿐”이라는 게 프렌티스 부사장의 설명이다.

이런 벤처캐피탈의 부릅뜬 눈에 엔지니어들이 놀아난다. 어쩌면 엔지니어들이 벤처캐피탈을 놀아나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실리콘밸리에서 엔지니어와 투자자들은 거대한 무리 가운데에서 함께 공생하는 관계다. 이들이 지금 하는 대부분의 일이 바로 ‘소셜 뭔가’(social something)이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소셜 게임, 소셜 네트워크, 소셜 미디어, 소셜 뮤직, 소셜 무비 등 앞에 ‘소셜’만 붙으면 서비스가 뭔가 있어 보이는 상황이 지속돼 왔다. 페이스북의 성공 덕분이었다. 게다가 페이스북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패스나 핀터레스트 같은 2차 성공 사례가 끊임없이 등장하는 게 이런 소셜 열풍을 계속 불러 일으킨다.

문제는 투자자의 요구와 엔지니어의 개발 방향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 괴리다. 프렌티스 부사장은 “문제는 SNS가 제한적이란 점”이라며 “소셜네트워크라는 건 일종의 중력과 같은 것이라서 사람들이 서로를 끌어당겨야 의미가 있다”고 했다. 페이스북을 쓰다가 다른 SNS를 쓰려면 친구가 나를 초대하고, 끌어당겨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페이스북 같은 서비스가 하나 더 생긴다고 쉽게 그쪽으로 옮겨갈 리가 없다. 특별한 기능을 갖춘 서비스가 등장한다면 돈도 많고 엔지니어도 뛰어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그런 기능을 순식간에 따라서 추가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이 점이다. 벤처캐피탈은 늘 “2%의 홈런을 날리고 싶어한다.” 그런데 2%의 홈런은 이미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날렸다. 핀터레스트가 있다고? 아직은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더 확실한 건 핀터레스트 뒤로 등장하는 SNS의 성공 가능성은 핀터레스트보다 더 낮다는 점이다. 물론 SNS에 틈새 시장은 존재한다. 프렌티스 부사장은 “예를 들어 ‘애완견 애호가 SNS’ 같은 SNS는 살아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이런 틈새 SNS가 벤처캐피탈로 하여금 홈런을 치도록 도와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투자자들은 홈런을 원한다. 그런데 이미 8억 명의 사용자 가운데 4억 명 이상이 페이스북에 매일 접속하고 있다. 결국 남는 건 ‘펑’. 거품의 붕괴 뿐이다. 그 때 벤처캐피탈은 쪽박을 차게 될 것이다.

손바닥

그의 손이 몇 차례 책상을 두드렸다. 난 녹음기를 책상 위에 올려놨다. 녹음 내용을 다시 되감아 듣고 있자니 그 소리가 계속해서 내 고막도 때렸다. 그는 손바닥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얘기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몇 명 안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에 대한 내 (주관적 편견이 가득 담긴) 분석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둘 중 하나로 요약된다.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치거나, 지나치게 자신감이 없거나.
2010년 10월 정식으로 인터뷰를 했으니 1년하고도 두 달 이상 지난 셈이었다. 그새 김상헌 대표에게 묻고 싶었다. 1년 전에는 그렇게 자신만만했는데, 그 때 얘기했던 것들은 다 이뤘냐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어느때보다 바빴고, 또 위기였던 기간이었으니 NHN도 많이 변했고, 깨닫고 얻은 것들도 많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격변기에 NHN은 여전히 국내에서 독보적인 1위를 지켜냈다. 사실 불가능해 보이기도 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강력한 경쟁사였던 구글이 몇 차례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면서 한국 시장에서 치고나가질 못했고, 좀 덜 강력한 경쟁사였던 다음이 너무 소극적이라 기회를 성과로 충분히 바꿔내지 못했다. 그러니까 솔직히 내 생각에는 아직 NHN이 뭔가 잘 해서 1위를 한다는 생각보다는 경쟁사들이 충분히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됐다.

그래서 다시 만난 자리였다. 김 대표는 계속해서 책상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작은 대화를 듣기 위해 잔뜩 올려놓은 볼륨 사이로 귀를 멍멍하게 만드는 책상 두드리는 소리는 지나친 자신감과 부족한 자신감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독려하는 북소리처럼 들렸다.

– 새해인데, 올해 목표부터 얘기해 보죠.
“새해 화두는 ‘실행’입니다. 지난 3년을 돌이켜보면 스마트폰도 등장했고, 인터넷 환경이 모바일로 빨리 넘어왔어요. 사자성어로 보면 암중모색이죠. 올해는 스마트폰이 새로 나왔던 것, 또는 태블릿PC가 나왔던 것 정도의 새로운 게 나온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중요한 건 다 나타났죠. 그걸 누가 서비스로 실행하느냐의 문제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승자가 가려지는 해입니다. NHN이 승자겠죠. 우리는 방향을 잡는 걸 제일 잘 한다는 자신은 없지만 방향이 결정되면 그 방향으로 잘 할 자신은 있어요. 삼성도 그렇잖아요? 실행력이 뛰어나고 가장 좋은 제품을 만들죠. 우리도 서비스에서 그런 회사가 될 겁니다.”

이른바 ‘패스트 팔로어’ 전략이다. 1등이 뭔가 하면 빠르게 베껴서 쫓아가겠다는. 전략이라고 할 것도 없다. 그냥 본능에 가까운 방식인데 관건은 스피드다. 문제는 NHN이 그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움직일 수 있는 조직이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 소셜네트워크 관련 계획이 야심찼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과는 의아합니다. 이룬 게 있나요?
“네이버미는 건실하게 성장중이고, 미투데이는 글로벌 서비스 사이에서 선방했습니다. 네이버톡은 라인으로 통합한 뒤 선전했죠. 부연하자면 네이버미는 우리만 하고 있고, 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개인화된 서비스와 툴을 제공하죠. 저변이 많이 확대됐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500만 명 정도가 씁니다. 나중에 우리만 제공하는 특별한 가치가 될 겁니다. 미투데이는 올해 1월 기준으로 800만 명. 회원 수로만 봐도 페이스북·트위터보다 많습니다. 라인도 론칭한지 6개월 만에 1000만 명을 넘었습니다. 실망스럽지 않습니다.”

내가 굉장히 편향된 방식으로 인터넷을 사용하는 일부 계층에 속해 있긴 하지만, 그런 관점에서 봐도 NHN이 야심차게 선보였던 소셜서비스는 별로였다. (디지털 기술이라곤 잘 모르는) 아내의 친구들이 SNS를 싫어하는 아내를 꼬드겨 페이스북의 세계로 끌어내는 걸 몇 달 전에 봤고, ‘나꼼수’와 조국, 진중권 같은 사람들이 아내를 트위터의 세계로 유혹하는 것도 비슷한 시기에 함께 봤던 기억이 있다. 그 기간 동안 난 아내의 아이폰에 라인과 미투데이를 깔아줬지만 한번도 쓰는 걸 보지 못했다. 심지어 아내는 네이버 주소록과 네이버 메일을 쓰는데도.

– 지금 네이버를 보면 소셜서비스를 전체 서비스를 통합하는 관계망 중심의 통합서비스로 보는 게 아니라 개별적으로 떨어진 서비스 하나하나로 접근한다는 느낌입니다.
“페이스북 등에 대해 이해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페이스북은 실명에 기반한 오프라인 지인 기반 소셜네트워크죠. 우리에겐 그런 게 없어요. 그래서 그들과 다른 서비스를 하는 겁니다.”

–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네이버 모델에 그냥 이것저것 덧붙이기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건 아니죠. 우리는 가진 걸 전제로 생각하는 경향은 있어요. 그게 우리 한계일 수도 있죠. 하지만 단편적으로 개별적인 서비스는 아닙니다. 잘 연결돼 있고, 다른 서비스에 없는 가치를 만들려 하고 있어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소위 말하는 메이저 서비스와의 연동이 안 돼 있는 걸 문제로 삼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우리가 NHN 자체 생태계에 기반한 서비스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생태계가 아니라고 하면 곤란해요.”

– 한국 네티즌이 굳이 네이버를 쓸 게 아니라, 한국 시장이 작으니까 구글이나 애플 앱스토어를 이용했듯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이용해 해외까지 보면 어떨까요? 이런 방향은 NHN에게 위기 아닙니까?
“현실은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에 아직 국경과 언어의 한계가 존재합니다. 장래에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죠. 지금은 외국에서 네이버에 접근하는 한국인을 위한 서비스는 우리가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한국인을 위한 글로벌 서비스죠.”

얘기가 겉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우린 다르다, 한국은 다르다, 한국적 상황이 있다, 월마트도 이마트한테 지지 않았느냐 등등.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았다. 그럴 수밖에. 모두 대기업들이 흔히 쓰는 논리니까. 드문 벤처 성공 사례였던 NHN의 입에서 많이 듣던 얘기를 듣는 기분은 묘했다.

– 광고 문제를 봅시다. 모바일이 성장하지만 PC보다 매출도 작고, 다음 아담 같은 걸 보면 가능성보다는 생각보다 저조한 느낌이 듭니다.
“모바일의 디스플레이 광고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모바일에서 작년에 나쁘지 않은 성과를 냈지만 문제는 PC에서 줄어드는 폭을 모바일에서 보충할 수 있느냐죠. 아직은 그렇지 않아요. 다행히 PC에서 매출이 줄어드는 증거는 보이지 않습니다. 문제는 모바일 사용량이 늘고 있다는 겁니다. ‘검색 쿼리 대비 매출’을 봐야 하는데 기대만큼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몇 가지 화두가 있습니다. 개인화 타게팅 광고가 대표적인 것이죠. 검색 결과에서 전화번호를 바로 연결한다거나 하는 방식도 연구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은 이게 결국 쇼핑과 연결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겁니다. 우리가 쇼핑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쇼핑에 대해서도 많은 투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광고를 광고라는 개념이 아니라 검색의 더 넓은 외연으로 연결지으려는 고민을 합니다.”

– 사실 광고를 제일 잘 보여주는 단말기는 직접 만들어야 잘 만들 수 있을지 모릅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만들고, 페이스북이 페이스북폰을 만든 것처럼. 네이버 전용 디바이스 계획은 없나요?
“디바이스 고민은 사실 몇 년 전부터 했습니다. 결론이 났는데, 현재로서는 계획이 없다는 겁니다. 스마트폰을 네이버폰으로 만드는 건 ‘네이버 컴퓨터’, ‘구글 컴퓨터’를 따로 만드는 셈입니다. 컴퓨터는 그렇게 쓰지 않죠. 우리가 아이폰보다 더 좋은 폰을 만들 수 있다면 만들어 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안 만드는 게 브랜드 가치를 지키는데 차라리 낫습니다. 또 페이스북처럼 7억 명을 대상으로 시장을 생각하는 것과 우리는 다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마존의 킨들파이어 같은 걸 보면서 디바이스보다는 아마존이 콘텐츠에 집중하는 모습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북스, 네이버 뮤직이 그런 고민에서 나온 서비스죠.”

그래도 NHN만의 방식이란 게 있을 수 있다. 어차피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나 애플과 구글이 했던 방식대로 해서는 그들을 능가할 수 없는 법이니까. 삼성전자가 온갖 비판을 들으면서도 애플과 1, 2위를 다투는 회사로 부각되는 건 그들이 다른데 역량을 분산시키지 않고 잘 하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잘 하는 건 끝내주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만들고, 엄청나게 복잡한 제품 라인업을 세계 최고 수준의 SCM 능력을 이용해 효율적으로 끌고 가는 것이었다. 아마도 내 생각에 전자 제조업체 가운데 이 정도의 공급망관리 능력을 갖춘 회사가 있다면 그게 애플과 삼성 단 두 곳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NHN의 강점은 뭘까. 이들은 어디에 집중하는 걸까.

– 해외 업체에서 배운 게 있나요?
“통찰력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페이스북 때문에 사람들이 산업을 보는 시각이 변했어요. 페이스북이 세계에서 1등하지 못 하는 나라 가운데 한국이 들어 있습니다. 물론 싸이월드 때문인데, 하나가 더 있습니다. 컴스코어 자료에 보면 ‘네이버 카페’가 있어요. 회원 수 2000만 명. 우리도 사실 이걸 보고 놀랬습니다. 우스갯소리로 말하면, 페이스북은 한국에서 절대로 1등 할 수 없습니다. 컴스코어 관점으로 보면 페이스북 사용자는 560만 명 쯤 됩니다. 그런데 언제 네이버 카페를 따라잡겠습니까. 우리가 사실 그동안 카페에 주목해 왔어요. 카페라는 게 꽤 좋습니다. 지역 카페, 취미 카페… 내가 여의도 살 때엔 여의도 카페에도 가입해 있었죠. 그 사람 개인은 모르더라도 카페라는 집단의 관심사와 사는 곳 등은 알 수 있으니 우리는 어마어마한 자산,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데이터를 갖고 있는 회사인 겁니다. 이런 걸 이용해서 올해 멋진 서비스를 선보입니다.”

– 그런 자산을 외부에서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플랫폼 사업자’가 되는 것 아닌가요?
“이미 우리는 훌륭한 플랫폼사업자입니다. 왜 페이스북은 플랫폼이고 우리는 아니라고 보는 거죠?”

– 네이버 카페를 보죠. 카페 회원, 활동 지수, 가입자의 다른 카페 가입 현황 등의 정보를 네이버가 갖고 있습니다. 이런 정보를 외부 개발자가 쓸 수 있어야 플랫폼인 것 아닙니까?
“그게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겁니다. 작년에 만든 카페앱 같은 게 그런 거죠. 앞으로 소셜 그래프를 그려서 그런 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려는 거죠? 우리는 지금 거꾸로 소셜 그래프를 그려가고 있습니다. 시작 단계죠. 이 과정에서 문제는 개인정보 문제입니다. 개인들의 카페 활동 정보를 우리가 어떻게 맘대로 쓰겠어요. 우리도 개인화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굉장히 보수적으로 해요. 왜냐하면 우리에겐 ‘페이스북은 저렇게 많이 공개하는데’라는 변명이 통하질 않거든요. NHN은 한국 사회의 한국 기업이니까요. 예를 들어 미투데이 가입자가 어떤 카페에 가입하고 있는지 보여준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개발자에게 미투데이의 활용도가 엄청나게 높아지겠죠.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다고 당장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방식을 고민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단순히 정부 규제 문제는 아니에요. 이용자들의 집단적인 의식이 더 큰 문제입니다. 이건 예측하기도 어려운데 파괴력은 정말 큽니다. 인터넷 기업 대표로 그동안 일하면서 배운 건 이 회사가 집단적 사고, 집단적 의식, 집단적 가치 판단을 일선에서 느끼게 되는 공간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이런 집단 의식을 매일, 매분, 매초 체험합니다. 뭐 하나 삐끗하면 우리가 크게 손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엄청나게 합니다. 법을 뒤지면 언제든 구멍은 있을 수 있죠. 하지만 그 구멍을 이용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가 답답해 보이죠? 왜 이리 느리냐고 할 수도 있을 거에요. 압니다. 하지만 우리는 돌다리를 두드려야만 합니다. 개인화? 당장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논란을 피하면서 하는 게 우리의 더 큰 목표입니다.”

몇 가지 자원들이 있긴 했다. 스스로 설명하듯, 카페가 좋은 자원이었다. 그런데 이걸 활용할 생각은 네이버보다는 다음이 먼저 하지 않았던가. 물론 다음의 시도는 별 반향이 없었다. 그 점을 생각하면 두 가지 정도의 추론이 가능하다. 첫째로, 카페 정보라는 게 의외로 활용하려고 들면 별 게 아닌 정보일 가능성이다. 소셜그래프를 그리기에는 카페에서 얻는 정보가 너무 불충분한 쓰레기 데이터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면 의미가 없어진다. 둘째로, 카페 정보를 활용하기가 너무 힘들 가능성이다. 카페는 시작 자체가 그냥 게시판이었기 때문에 이걸 의미있는 소셜그래프로 쓰기 위해 데이터를 추출하려면 아예 카페 시스템을 뒤엎는 수준의 개선 작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아직 다음도, NHN도 그런 개선 작업은 시작도 하지 않은 듯 싶다는 것이다. 오히려 상대적 경쟁력은 보호받는 국내 울타리 아닐까. 언어라는 울타리, 규제라는 울타리 등등. 물론 역차별 규제라는 비판도 있지만.

– 구글 에릭 슈미트 회장은 한국 규제를 낡은 규제로 직접적으로 비판했어요.
“과연 그 분이 한국 상황을 다 알고 그런 말씀 하셨을까요? 그 규제가 왜 나왔고,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 그 분이 다 이해하고 있을까요? 에릭 슈미트 씨는 훌륭한 분이겠지만 그 분이 한국 사정을 잘 알기는 어려울 겁니다. 우리는 규제를 아주 어려운 주제로 보고 고민하고 있어요. 사업자로서 많은 부분을 생각합니다.전반적으로 슈미트 씨 얘기는 인터넷기업에서 일하는 분들의 신조 같은 게 아닌가 싶어요. 이 업계에서 일하는 분들은 인터넷은 원래 개방적이라는 신조가 있죠. 출발점 자체도 그렇고.”

– 그래도…
“제가 최근 겪은 일 하나 말씀드리죠. 제가 유리 밀너하고 알잖아요. 메일닷루(러시아 최대 포털) 사외이사니까. 11월11일이 유리 밀너 생일이에요. 실리콘밸리의 큰손이니까 자기 생일파티에 네트워크 인맥을 전부 초청하더라고요. 저도 이사니까 초청받았죠. 부부동반으로. 그루폰 창업자 앤드류 메이슨 부부하고 같이 공항에서 리무진을 타고 밀너의 집으로 갔는데, 가보니 마크 저커버그, 마크 핀커스(징가), 브라이언 체스키(에어비앤비) 등 인터넷업계의 잘나가는 사람들이 다 와 있더라고요. 저커버그하고 잠깐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예, 제가 먼저 인사 좀 하자고 다가갔어요. 처음에는 “당신 누구냐”고 묻더라고요. 내가 한국에서 제일 큰 인터넷회사 사장이라고 하니까 바로 궁금해 하는 거에요. 네이버 사장이라니까 갑자기 “네이버 정말 잘 알고 있다”면서 우리 서비스가 아주 인상적이었다고, 시간 있으면 다음날 따로 만나자는 거에요. 저는 귀국 일정이 잡혀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했는데, 언제든 실리콘밸리에 오면 연락달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생각할 때 네이버가 다른 외국 기업에게도 보여준 게 많아요. 물론 한계도 많지만 배울 것도 있죠. 밀너도 그날 저녁 저를 끌고 다니면서 계속 ‘구글을 이기는 유일한 회사’라고 약간 과장해서 소개하더라고요. 그런데도 지금까지 우리가 개방을 안 했고, 그래서 우리는 망할 거라고 보는 시각이 있어요. 편협한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내부에 쌓아둔 콘텐츠가 많긴 해요. 하지만 이를 보여주는 방식만으로 보면 엄청난 수준입니다. 일주일 단위로 검색개선안 프로젝트를 계속 10개 이상 돌리는데 엄청난 투자죠. 이런 걸 한 번 보죠. 구글이 최근 자갓서베이를 인수했어요. Yelp 같은 데 구글이 밀리다보니 아예 자갓을 사버린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윙버스를 인수했어요. 구글보다 앞서서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놓았던 검색 서비스죠. 이런 부분은 국내에서 별로 인정하지 않아요. 구글은 우리보다 돈이 훨씬 많으니까 돈싸움을 벌이면 결국 우리가 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도 안 지려고 열심히 해요. 그런데도 계속 비난받으니 섭섭한 거죠. 어떤 건 매우 불공평한 비교입니다. 이미 전 세계를 무대로 언어장벽 없이 1만 명이 넘는 기술자를 두고 사업을 벌이는 규모의 경제를 갖춘 기업과 몇백명의 엔지니어로 개발하는 우리와는 너무 달라요.”

여러 차례 그의 손은 다시 책상을 때렸다. 오가는 목소리의 톤도 약간 높아졌다. 구글은 정말 엄청나게 거대하다. 구글이 항공모함이라면 NHN은 구축함은 커녕 그냥 작은 초계함 정도에 불과하다. 정면으로 맞붙으면 질 수밖에 없다. 대개 이렇게 해군 전력이 차이나는 경우, 작은 나라는 잠수함을 만든다. 바다 위에서 맞붙으면 백전백패 하겠지만, 바다 밑으로 들어가 조용히 숨어있다가 나타나는 잠수함은 역시 매우 낮은 가능성이긴 해도, 승률이 약간이라도 올라가니까. 지금 NHN은 잠수함을 만들고 있는 걸까, 아니면 초계함을 구축함으로 업그레이드하려는 걸까.

– 마지막으로, 네이버는 이제 개인화로 가는 겁니까?
“좀 달라요. 개인화가 아닙니다. 다양한 뷰를 선택할 수 있는 거죠. 뉴스캐스트도 뉴스를 골라보는 건데, 소비자가 고르는 게 아니고, 네이버가 고르는 것도 아니고, 신문사가 고르는 거에요. 오픈캐스트도 마찬가지죠. 특정 분야에서 잘 고를 수 있는 사람들이 고르는 걸 이용자가 선택하는 시스템입니다. 큐레이팅 시스템이죠. 이미 4년 전 이해진 의장이 얘기한 겁니다. 웹에 있는 수많은 정보를 골라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이들의 시각을 이용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카페나 지식인 같은 걸 다시 해석하려고 합니다. 사실 요즘 페이스북도 반신반의해요. 페이스북이 과연 미래를 석권할 수 있을까요? 저 요새 미투데이 잘 하지 않습니다. 인간관계가 피곤해요. SNS가 어느 순간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이죠. 그래서 관계에 대한 욕망이 페이스북을 성공시킨 요인이겠지만, 관계에 대한 욕망이 무한대로 증가할 수는 없기 때문에 큐레이션이 계속 필요해지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원하는 큐레이션이 네이버가 제공하는 뉴스캐스트와 오픈캐스트일까? 그 답을 네이버 스스로 찾아내지 않으면 다음에는 누군가 새로운 답을 들고 나타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