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네이버가 생각하는 소셜네트워크

그녀는 싸이월드를 만든 사람이라고 했다. 한국인 3000만 명이 쓰던, 그러니까 인터넷을 하는 한국 사람이라면 거의 다 쓰던 싸이월드가 그 사람 손에서 만들어졌다. 이람. 네이버서비스2본부장. 돈도 없을 때 열정만 갖고 열심히 키웠던 회사가 SK텔레콤에 팔린 뒤로는 NHN으로 자리를 옮겼다. NHN에서는 다음이 카페가 강하니 네이버에서도 카페를 키워야 한다는 당연한 얘기가 나오고 있었고, 그러자면 커뮤니티에 뭔가 성공 사례가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왔고, 인터넷 커뮤니티하면 싸이월드였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이람이 그곳으로 갔고, 네이버 카페는 이후 다음 카페랑 경쟁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참, 하나 더. 이람은 카페와는 별도로 네이버 블로그도 만들었다.
“저는 그 시절에 이글루스를 썼는데요? 그게 더 먼저 나온 것 아니었어요?”

이 질문에 그녀는 네이버 블로그가 먼저라고 정정해 줬다. 비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 뭐하느냐, 이글루스가 더 좋아서 그걸 썼다, 게다가 지금도 네이버 블로그는 뭐랄까, 쿨(cool)하지 않고 아줌마들이나 쓰는 서비스라는 인식을 준다…

당연하겠지만, 이람은 자기가 만든 서비스에 대해 “아줌마 같다고 말한다니 가슴 아프다”고 했다. 그래도 그게 돌려 말하면 쓰기 쉽다는 뜻 아니겠냐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와서 계속 생각해 봤다. 쉬운 서비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서비스. 말은 좋은데, 뭐가 쉬운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중요한 건 맥락이다. 이람은 개발자가 아니다. 사회과학도였고, 잡지사 일을 했으며, 잡지를 만들어서는 도저히 먹고 살 수가 없어 동아닷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인터넷 서비스 기획을 시작했다. PC통신을 썼고, 초창기 게시판형 서비스에 익숙했으며, 새 글이 올라오면 댓글이 달린다거나, 글발이 좋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논쟁이 벌어지는 형식의 구조를 이해했고 확대재생산시켰다.

이후 그녀가 성공시킨 서비스를 보자.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게시판 위주의 PC통신 문화에서 막 ‘그림을 단 게시판’으로 사람들이 옮겨오던 2000년대 초에 ‘쿨한 그림'(일본에서 유행하고 젊은 여성들이 일찌감치 받아들였던 픽셀아트)을 단 게시판으로 대박을 쳤다. 차이는 우리 모두 보던 게시판에서 ‘내 게시판’을 만들었다는 점 정도. 이람은 “미니홈피가 ‘나’라면 나는 옷을 입고, 옷은 사입는 거니까, 옷을 팔자”는 생각으로 만든 게 미니홈피였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돈을 벌고 싶은데 돈이 안 벌려서 굶을 지경에 이르니 뭐라도 팔 수 없을까 생각하다 만든 게 미니홈피였던 셈이다. 하지만 그 개념이 모든 걸 갈랐다. ‘우리’밖에 없던, 그것도 시솝이라는 권력의 정점 밑에 부시솝들이 각 게시판들을 군대식으로 관할하던 PC통신 시절의 잔재가 거기서 깨어졌다. 좀 다른 얘길 하자면, 미니홈피의 성공은 하나회 척결과 맞먹는 문화적 대사건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이건 정말 기존과는 다른 서비스였는데 기존 서비스보다 훨씬 쿨했다. 쓰기는 쉬우면서. 쉽다는 건 그런 거였다. 쿨한데 쉬운.

네이버 블로그의 가장 큰 장점은(본인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스마트에디터다. 내가 아줌마들이나 쓰는 것 같다고 불렀던 바로 그 지점 말이다. 누구나 쉽게 사진 찍어 붙이고 디자인할 수 있는 기능. 그 덕분에 정말 수많은 아줌마들이 주방용품, 요리법, 육아용품을 리뷰하거나, 홍보하거나, 영업하면서 네이버 블로그를 즐긴다. 그리고 서로 방문하고 댓글 달고 욕하고 차단했다 다시 보면서 웃고 울고 즐긴다. 계속 즐긴다. 싸이월드 사람들은 자기 서비스 사용자들이 “스물여섯살이 되면 졸업한다”고 말한다. 소녀들은 자라서 아줌마가 되고, 아줌마들은 싸이월드에서 노는 대신 네이버로 옮겨가 논다.

문학소녀 기획자는 자라서 초보 아줌마가 됐고, 본부장이 된 지금은 학부형이 됐다. 그리고 ‘밴드’를 만들었다.

도대체 이 서비스는 뭘까. 워낙 새 서비스가 많이 나오는 시대라서 난 요즘 어지간한 신규 서비스엔 관심도 없다. 흥미도 안 생긴다. 차별화됐다고 얘기해봐야 그 차별화를 애써 이해하기가 귀찮기만 하다. 그런데 밴드에는 관심이 생겼다. 사실 서비스가 좋아보여서였다기보다는, 이건 ‘카페를 말아먹겠다는 생각 아니면 안 만들 것 같은 서비스’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카페 앱을 더 잘 만들어서 모바일 카페를 좀 더 키워보지, 이게 무슨 카니발라이제이션인가. 앱을 다운로드 받은 뒤엔 더 황당했다. PC에선 쓸 수도 없고, 밴드를 만들었더니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글쓰고 사진 올리는게 고작인데, 아니, 이봐요, 이런 거 하는 건 인스타그램과 카카오스토리가 있잖아.

오늘 기사에도 썼지만 밴드는 사실 그래서 만든 서비스라는 게 이람의 설명이었다.

인터뷰를 시작했을 때 그녀가 처음 보여준 게 바로 이 슬라이드였다. 이건 구글 출신(지금은 페이스북)으로 구글 플러스의 ‘써클’ 기능에 큰 영향을 줬던 폴 애덤스가 ‘현실의 소셜네트워크'(real life social network)를 설명하는 그림이다. 온라인에서 그냥 통으로 관리되는 사람들과의 소셜네트워크와는 달리 현실에선 내 주위 사람들이 그룹별로 묶여있게 마련이라는. 결국 구글은 이런 방식을 도입해 구글플러스에 써클이라는 형태로 친구들을 구분하는 기능을 만들었고, 애덤스가 페이스북으로 옮긴 뒤에는 페이스북에도 그룹이라는 비슷한 형태가 도입됐다.(이른바 ‘친친소팅’, 즉 친한 친구 분류하기가 이래서 가능해졌다.) 네이버에서도 뭔가 만들면 이런 걸 만들고 싶었다는데, 결정적인 문제는 페이스북 그룹이든, 구글플러스 써클이든 간에 처음 쓰는 사용자들은 뭔가 쓰기가 복잡하고 어렵다는 데 있다.

그래서 밴드(서비스)에선 그냥 밴드(서비스 내의 모임)를 만들면 그 밴드끼리만 묶이게 해놨다. 밴드앱 내에서도, 네이버에서도, 절대로 밴드 사용자가 어떤 밴드에 가입돼 있는지 검색되지 않는다. 끼리끼리 모이고, 끼리끼리 얘기하다가 그 밴드 돌아가는 분위기가 맘에 안 들면 나오면 그만이다. 물론 일단 나오고 나면 다시 초대받을 때까진 한 번 나온 밴드를 되찾아 갈 수도 없다. 검색이 안 되니까. 이거 좀 무서운 것 같지만, 사실 현실 속 관계가 그런 게다. 그러니까 카페와는 다르다. 카페는 검색돼야 하고, 카페 속 지식이 곧 카페의 존재 이유다. 밴드는 아니다. 검색되면 안 되고, 밴드 속 정보는 그 집단만 공유해야 하는 약한 비밀에 해당한다.

허술해 보일 지경이었던 밴드의 기능도 이람의 설명에 따르면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었다. 처음 쓰는 사람들은 도대체 이 서비스가 왜 만들어진 것인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려면 기능이 많은 것보다 적은 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밴드를 처음 기획했을 때 목표로 삼은 건 대학생들이 조모임 할 때 쓰는 서비스였다고 했다. 그래서 사진 올리고, 약속 잡고, 전화번호 공유하고, 글 쓰고 채팅하는데에만 집중했다는 얘기다. 조모임이 타깃이었기 때문에 곧 추가할 기능도 N드라이브하고 연동해서 파일을 주고받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놓고보니 활용처가 의외로 다양했다. 이람 스스로 ‘1학년5반’, ‘사사과91학번’, ‘Exconnect’(NHN 임원모임) 등 서로 섞
면 어색할 모임들을 만들어 따로 가입해 있었다. 이외에도 잘 돌아가는 모임으로 교회의 지역모임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알고 지내면 괜찮지만, 페이스북 피드에 뜨는 건 싫은 사람과의 느슨한 관계도, 날마다 할 말이 무지 많지만 이 사람과의 얘기가 다른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공개되는 건 싫은 끈끈한 관계도 따로따로 잘 관리되는 셈이다.

이 글의 제목은 네이버가 생각하는 소셜네트워크라고 달았지만, 사실 ‘밴드’는 ‘이람이 생각하는 소셜네트워크’다. 성공할까? 나도 모른다. 나로서야 그냥 페이스북만 쓰는 세상이 더 편하고 좋은 것 같긴 한데, 생각해보면 그건 네이버 블로그 초창기를 볼 때도 내가 했던 생각이다. 왜 네이버는 선진적인 워드프레스나 무버블타입 같은 걸 안 만들고 저렇게 후진 네이버 블로그를 만드느냐고. 그렇게 주장하던 내가 어느날 워드프레스로 회사 홍보 블로그를 만들었다가 그 콘텐츠를 함께 관리할 우리 팀원들에게 된통 잔소리를 들었다. 에디터 쓰기가 너무 힘들어서 블로그를 새로 배우는 것 같다는 얘기였다. 네이버 카페를 보면서도 저게 무슨 정보의 보고냐고 비웃기 일쑤지만, 사실 그렇게 비웃는 집단은 전체 인터넷 사용자 가운데 극소수다.(아마도 이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여러분?)

홈페이지와 블로그 그리고 현재의 페이스북 페이지와 타임라인 등으로 사용자를 교육시키며 진화했던 미국 인터넷 문화는 한국 인터넷 문화와는 많이 다르다. 미국에선 Geek들이 직접 혼자서 모든 걸 다 하면서 인터넷에 접근하기 시작했다가 가입형 서비스들이 확대되기 시작했고, 결국 대부분의 미국인이 가입하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PC통신 게시판부터 시작해서 포털 게시판, 카페 게시판, 미니홈피 게시판, 블로그 게시판의 순서로 시작부터 지금까지 모두가 함께 갔다. 인터넷 사용자가 증가하긴 했지만 핵심사용자들은 변함없이 모든 서비스를 관통하는 일관된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다. 게시판과 댓글 문화.

그리고 이람은 지금 모바일 게시판을 만든 것이다.

어떻게 될까. 그녀의 꿈처럼 한국의 모바일 게시판이 세계의 게시판으로 확대될까. 아니면 타임라인과 써클의 모바일 공략이 한국까지 접수할까.

인터넷이 사생활을 침해한다고?

한국은 처음 찾는 것이라고 했지만 제프 자비스 뉴욕시립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한국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제한적 본인확인제라거나 온라인게임에 대한 이른바 ‘셧다운제’ 등을 이미 잘 파악하고 있었고, 강하게 이런 규제를 비판하기도 했다. 워커힐호텔이 숙소라 저녁에는 강변 테크노마트에 나가서 새 휴대폰을 사볼 생각이라고도 했다. 물론 나는 “그곳 상인들과 가격 흥정하는 게 쉽진 않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는 SBS 주최 서울디지털포럼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예전부터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그가 출간한 Public Parts라는 책 때문이었다. 다행히 30분 동안 따로 인터뷰할 기회가 생겼다. 기사로도 썼지만, 너무 짧게 소개돼 그의 생각을 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자세한 인터뷰는 다음과 같다.
– 공공성에 대한 책을 썼고, 사적(私的) 영역은 공적(公的) 영역의 반대말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사생활(privacy)이란 건 무엇이고, 공공성(publicness)라는 건 무엇인가?
=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공공성의 가치다. 공개된 삶(being public)의 가치 말이다. 오해하지 말아달라. 프라이버시는 여전히 중요하다. 우리 모두 사생활을 중요하게 얘기한다. 사생활은 꼭 보호돼야 한다. 내게도 사생활이 있다. 하지만 인터넷 얘기를 할 때 등장하는 사생활 얘기를 보라. 사생활, 사생활, 사생활이다. 공포를 불러 일으킨다. 신기술은 변화를 불러오게 마련이고, 급작스러운 변화는 공포를 불러오며, 공포는 기술을 금지하거나 중단시키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이는 역사적으로 늘 반복해 등장하는 모습이다. 인터넷이란 건 정말 대단한 도구인데 사생활과 관련된 오해가 인터넷을 규제하고 발목을 잡는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은 뜨겁고 차가운 것도 아니고, 젖고 마른 것도 아니다. 둘은 대립하지 않는 상호의존적인 개념이다. 하나가 있어야 다른 것도 존재할 수 있다.

– 그렇다면 무엇이 사생활이고 공공성인가?
= 나는 사생활을 윤리(ethics)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정보를 알 때 필요한 윤리 말이다. 예를 들어 내가 당신에게 지금 뭔가를 얘기하고 있지 않나. 이건 모두에게 알려질 것을 알고 얘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 입장에선 이제부터 나에 대한 뭔가를 알았으니 어떻게 얘기할지 정해야 한다. 이건 윤리의 영역이다. 개인, 기업, 정부 누구든간에 남의 정보를 알게 된다면 그 정보를 어떻게 다룰지 고민하게 된다. 그게 바로 사생활의 영역이다. 반면 공공성은 당신이 아는 걸 어떻게 공유하느냐에 대한 윤리다. 나는 내가 전립선암에 걸린 얘기를 블로그와 책에 썼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 자발적으로 공개한 것이다. 이런 게 공공성이다. 사생활은 타인의 정보를 내가 알 때 필요한 윤리고, 공공성은 내 정보를 남에게 공유할 때 필요한 윤리다.

– 소셜미디어는 신뢰를 만든다. 이는 마치 신용(credit)과 같은 새로운 사회적 자원이란 생각이 든다.
= 맞다. 지금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신경쓰는 게 어떤 건지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블로그 같은 걸 열심히 관리한다. 특히 트위터나 블로그는 실제 자신의 정체성과 연결되지 않는 엉뚱한 아이디를 쓰면서도 열심히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난 이런 걸 정체성에 대한 투자(invest to identity)라고 생각한다. 명성을 쌓아나가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이런 사람들은 신뢰를 얻게 되고, 실명 기반이 없어도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마크 저커버그는 그런 점에서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 인터넷이란 기본적으로 익명성 위에서 만들어진 네트워크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인터넷에서도 우리가 실제의 정체성을 가지고 실제의 관계를 북돋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리의 현실 사회가 갖고 있는 관계의 질을 높여준 것이다. 개인도, 기업도 이런 점에서 가치를 발견한 것 같다.

– 페이스북 얘기가 나온 김에 얘기하자. 상장이 된 페이스북이 고평가됐다는 얘기가 많고, 주가도 떨어졌다.
=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주가가 좀 더 떨어지면 난 페이스북 주식을 사겠다.
나는 마크 저커버그에게 비젼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난 페이스북이란 플랫폼에 엄청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구글은 아주 강력한 플랫폼이다. 성공했다. 그리고 아직 어떻게 돈을 버는지는 모르고 있지만, 트위터 또한 강력한 플랫폼이다. 페이스북도 이런 강력한 플랫폼인데 이제 겨우 돈을 벌기 시작했다. 지금 가치와 이용자 수를 나눠보자. 10억 명의 사용자를 갖고 있는 회사의 기업가치가 1000억 달러다. 사용자 1명의 일생을 담는 서비스인데 가치가 사용자 1인 당 100달러라는 소리다. 내 생각에 페이스북은 이제 겨우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미디어와 비교해도 된다. 미국의 일반적인 뉴스 웹사이트의 독자는 1인 당 한 달에 평균 12페이지의 웹페이지를 읽는다. 한 달에 12페이지. 그런데 페이스북에선 한 사람이 하루에 평균 12페이지를 본다. 30배 더 많이 읽히는 미디어 사이트인 것이다. 그런데 페이스북의 모든 직원 숫자는 대도시 신문사 하나의 직원 숫자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직원들이 서비스하는 대상은 10억 명이다.
그래서 난 페이스북이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망가질 가능성도 있지 않느냐고? 물론이다. 모든 회사가 망할 수 있다. 구글도 그렇다. 하지만 페이스북과 마이스페이스를 비교하는 식의 분석은 잘못됐다. 마이스페이스는 홈페이지 메이커였다. 소셜하지 않았다. AOL과 비교? 야후랑? 마지막 올드미디어였던 회사가 야후다. 이런 회사들은 플랫폼이 아니다. 페이스북은 플랫폼이다. 그런 점에서 엄청난 가치가 페이스북에 있다.

– 소셜미디어로 사생활을 공유하면 나쁜 평판을 얻은 사람들은 경제생활에 참여하지 못할 수 있다.
= 그건 데이터를 어떻게 사용할까의 문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선 ‘빨간줄긋기'(Redlining)라는 제도가 있었다. 은행이 부동산 모기지론을 줄 때 썼던 방식인데, 대출을 원하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 따라 대출을 구분했던 방식이다. 통계적으로 보면 사는 지역을 봤을 때 가난한 사람이나 소수인종이 사는 지역의 대출 위험도가 높다. 하지만 윤리적으로 보면 이런 식으로 대출을 제한하면 소수자와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점점 더 뒤쳐진다. 사회가 이들을 배제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선 나중에 레드라이닝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소셜미디어로 생겨난 신뢰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페이스북 친구들을 기반으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판단한다면 그것도 윤리적인 문제가 되지 않을까? 예를 들어 뉴올리언즈는 진짜 맛있는 음식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뉴올리언즈 음식은 진짜 기름지다. 버터 천지에 동물성 지방 등 몸에 안 좋은 성분이 잔뜩 들었다. 그래서 뉴올리언즈의 심장병 발병률은 다른 지역보다 높다. 과연 보험회사는 뉴올리언즈 주민들에 대해 뉴올리언즈에 사니까 보험료를 더 내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요점은 이런 것이다. 우리는 기술을 탓할 게 아니라, 그 기술로 인해 비롯되는 우리의 행동을 규제해야 한다. 기술은 옳고 그름을 얘기하지 않는다. 기술은 잘못을 스스로 저지르지 않는다. 우리가 규제하고 통제해야 할 건 우리의 행위지 기술이 아니다.

– 인터넷 규제에 대한 생각을 좀 더 듣고 싶다.
= 규제를 하는 사람들은 물론 처음에는 선한 의도로 규제를 시작한다. 문제는 규제가 낳는 ‘의도되지 않은 결과’다. 규제하는 사람들은 늘 기술에 뒤쳐져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니까. 그러니 규제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잘못된 행동을 고치기 위해 기술 전체를 통제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동시에 전혀 깨닫지도 못한 수백 가지의 올바른 행동도 함께 통제하게 되는 것이다.

– 정보의 소유라는 건 불분명하다는 말을 했다. 무슨 뜻인가?
= 유럽연합에서 지금 논의되고 있는 주제 가운데 ‘잊혀질 권리’라는 게 있다. 듣기 좋은 말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얘기 같다. 하지만 여기엔 문제가 있다. 당신과 나는 늘 상호작용한다. 만약 당신이 컨퍼런스에 나갔는데 내가 사진을 찍었다고 해보자. 그리고 내가 이걸 공개한다면, 당신한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당신 직장 상사가 “그 시간에 왜 여기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혹은 당신과 내가 아닌 제3자가 사진을 찍어 공개했다면 당신은 그 사진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유럽연합은 이런 문제를 간과했다. 잊혀질 권리는 그렇게 단순하게 보장되지 않는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독일에서는 구글이 스트리트뷰를 촬영할 때 문제가 있었다. 사생활 침해가 우려된단 얘기였다. 그래서 독일 정부는 구글에게 거리를 촬영할 때 개인 소유물이고 사적인 영역인 집의 모습은 스트리트뷰에서 뿌옇게 처리하라고 했다. 문제는 이 집에 사는 가족은 뿌옇게 처리되길 바랬는데, 이 집의 건물주는 자기 집이 공개되길 원하는 경우였다.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누가 이걸 결정할 권리를 갖고 있는가? 세입자? 집주인? 건축가? 사람들은 누군가 정보를 ‘소유’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정보는 소유되지 않는다. 정보는 지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저작권(copyright)을 생각해 보자. 만약 당신이 지금 인터넷 컨퍼런스와 관련된 TV드라마를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지금 나와 진행하는 이 인터뷰를 소재로 삼아 드라마를 쓸 것이다. 그 드라마는 당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우리 대화에서 오간 농담이나 재미있는 일화를 당신이 드라마에 쓰지 못하도록 할 수는 없다.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서 있었던 일들을 당신이 알지 못하도록 만들 수 있나. 이런 식으로 정보와 지식을 규제하려 드는 건 잠재적으로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소셜네트워크 버블

지난달 가트너의 브라이언 프렌티스 부사장을 만났다. 특별한 주제 없이 올 한 해 IT 업계의 트렌드에 대해 이러저런 얘기를 나눴다. 인상적인 부분이 몇 가지 있었는데 빅데이터에 관한 이야기는 신문에 기사로 간단히 소개했다. 그때 함께 소개하지 못한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SNS에 대한 얘기다. 그는 “단언하는데 지금은 SNS가 버블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시기”라며 “SNS 투자에 낀 거품은 2013년 이전에 터질 것”이라고 말했다. SNS의 ‘닥터 둠’이랄까.
그는 “이해해야 할 건 내가 지금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쓰지 않게 된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라며 “투자에 있어서의 버블이 터지리라는 게 내 예상”이라고 강조했다. 프렌티스 부사장 스스로도 페이스북 팬이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가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이 놀라운 서비스에 쏟아붓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SNS의 미래는 어둡다. 바로 벤처캐피탈 때문이다.

프렌티스 부사장은 “벤처캐피탈이 실리콘밸리에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이 수많은 벤처캐피탈은 안 좋은 습성을 갖고 있는데 그게 바로 ‘무리짓는 습성'(Swarming Instinct)”이라고 꼬집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해가 갔다. 벤처캐피탈들은 지금 모두 성공 신화를 안겨 줄 ‘대박 기업’을 찾아 헤맨다. 그리고 미국 경제가 IT 산업 중심으로 살아나면서 투자금이 다시 몰려들어 이들의 주머니에 들어 있는 돈도 최근 수년 동안 가장 많은 상태다. 이 때문에 벤처캐피탈들은 “투자를 고려할 때 절반 정도는 그냥 날릴 각오를 하고, 48%에서는 본전만 찾겠다고 생각한다. 다만 단 2%의 대박을 바랄 뿐”이라는 게 프렌티스 부사장의 설명이다.

이런 벤처캐피탈의 부릅뜬 눈에 엔지니어들이 놀아난다. 어쩌면 엔지니어들이 벤처캐피탈을 놀아나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실리콘밸리에서 엔지니어와 투자자들은 거대한 무리 가운데에서 함께 공생하는 관계다. 이들이 지금 하는 대부분의 일이 바로 ‘소셜 뭔가’(social something)이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소셜 게임, 소셜 네트워크, 소셜 미디어, 소셜 뮤직, 소셜 무비 등 앞에 ‘소셜’만 붙으면 서비스가 뭔가 있어 보이는 상황이 지속돼 왔다. 페이스북의 성공 덕분이었다. 게다가 페이스북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패스나 핀터레스트 같은 2차 성공 사례가 끊임없이 등장하는 게 이런 소셜 열풍을 계속 불러 일으킨다.

문제는 투자자의 요구와 엔지니어의 개발 방향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 괴리다. 프렌티스 부사장은 “문제는 SNS가 제한적이란 점”이라며 “소셜네트워크라는 건 일종의 중력과 같은 것이라서 사람들이 서로를 끌어당겨야 의미가 있다”고 했다. 페이스북을 쓰다가 다른 SNS를 쓰려면 친구가 나를 초대하고, 끌어당겨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페이스북 같은 서비스가 하나 더 생긴다고 쉽게 그쪽으로 옮겨갈 리가 없다. 특별한 기능을 갖춘 서비스가 등장한다면 돈도 많고 엔지니어도 뛰어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그런 기능을 순식간에 따라서 추가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이 점이다. 벤처캐피탈은 늘 “2%의 홈런을 날리고 싶어한다.” 그런데 2%의 홈런은 이미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날렸다. 핀터레스트가 있다고? 아직은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더 확실한 건 핀터레스트 뒤로 등장하는 SNS의 성공 가능성은 핀터레스트보다 더 낮다는 점이다. 물론 SNS에 틈새 시장은 존재한다. 프렌티스 부사장은 “예를 들어 ‘애완견 애호가 SNS’ 같은 SNS는 살아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이런 틈새 SNS가 벤처캐피탈로 하여금 홈런을 치도록 도와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투자자들은 홈런을 원한다. 그런데 이미 8억 명의 사용자 가운데 4억 명 이상이 페이스북에 매일 접속하고 있다. 결국 남는 건 ‘펑’. 거품의 붕괴 뿐이다. 그 때 벤처캐피탈은 쪽박을 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