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회 부산국제영화제

처음 본 영화는 이웃집 토토로.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 영화를 본 건 부산영화제에 몇 차례 다녀봤음에도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소리가 윙윙 울리는 게 좀 이상하긴 해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특히 아들이 좀 떠들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 환경이었다는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 난 이웃집 토토로를 이번에 처음 본 것이라서.

영화의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엄마는 아프고, 아빠는 혼자서 딸 둘을 기르느라 시골의 낡은 집으로 이사간다. 당연히 고생이 눈앞에 펼쳐진 상황. 하지만 어린 딸들은 씩씩하고, 마을 사람들은 인심이 좋으며, 심지어 마을의 신들까지 이 가족을 도와준다. 그래서 아름다운 동심의 세계라거나 일본의 시골 풍경 같은 것들이 관객들에게 어필할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내게는 그 부모들의 모습만 눈에 들어왔다. 불안한 상황이니까. 아내는 장기 입원중이고, 아직 어린 두 딸은 언니가 동생을 엄마처럼 키우며 스스로 자라나야 한다. 아빠는 누군가 돈을 벌어와야 하는 상황에 놓인 상태고.

영화가 참 좋았던 건 이 위기 상황 전체에서 모두들 그냥 웃고 넘어간다는 점이었다. 한없이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생활 태도다. 생각해보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다른 영화들 중에 눈물과 분노가 없었던 영화가 있었던가 싶다. 조금 슬프고 외로운 부분이 있을지는 몰라도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려운 상황을 웃음으로 넘긴다. 첫 영화였는데 온 가족이 함께 봤고, 그래서 더 좋았다.

두번째 본 영화는 El Compañante, 부산 상영명은 컴패니언.

쿠바 영화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요소가 다 들어간 영화라서 골랐는데, 역시나 좋았다. 우선 소재가 권투다. 권투 영화가 재미없는 건 미션임파서블이 재미없을 가능성에 맞먹는다. 재미없으면 재앙이고, 대부분 평타 이상은 친다. 그리고 버디무비다. 남자들만의 우정이라는 것이 원래 유치하지만 남자들이 볼 땐 재미있는 법이다. 그리고 당연히 쿠바 영화니까 음악이 좋다. 선입견이 아니라 정말이다. 음악 나쁜 쿠바 영화는 미장센이 소비에트 체제선전 영화처럼 형편없는 프랑스 영화같이 존재하기 힘든 영화다.

주인공 중 한명인 오라시오는 흑인 복서. 금메달리스트지만 올림픽에는 못 나갔다. 80 모스크바 올림픽 땐 어렸고, 84 LA올림픽은 미국에서 열린 게임이라 못 나갔다. 쿠바는 공산국가다. 88 서울올림픽을 노리지만 영화 당시만 해도 극중 인물들이 “우리 동맹국은 북한이야. 남한은 미국 편이고. 한국은 아직 전쟁중이야”라며 참가가 안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 땐 당연한 일이었다. 또 한 명의 주인공 다니엘은 쿠바 당 간부를 아버지로 둔 백인이다. 전공을 쌓으려고 콩고 내전에 참전했다가 콩고 여인과 사랑에 빠졌고, 에이즈에 감염된다.

쿠바는 당시 에이즈 감염자를 격리시설에 가두고 국가가 감시했다. 전염을 막기 위해. 환자는 죄수가 아니니까 가끔 가족을 만날 수는 있었는데, 이 때 감시자 역할의 동반자, 꼼파냔테를 동행시킨다. 다니엘이 환자고, 다니엘의 동반자가 오라시오다. 쿠바 아마추어 권투 챔피언이 에이즈 환자 동반자가 된 건 챔피언이 돼야 한다는 부담감에 오라시오가 약물에 손을 대 일년간 출전정지를 당했기 때문이다. 다니엘은 국가와 아버지에게 충성했는데도 보균자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콩고 여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빼앗기고(형이 양녀로 들였다) 병원에 갇힌다. 오라시오는 쿠바의 명예를 드높여 메달을 따려다 중압감에 한 번 실수했다가 역시 병원에 갇힌다.

둘 다 이 감옥 아닌 감옥을 탈출해야 한다. 과정이 매력적이고, 결말도 매력적이다. 해피엔딩도 아니지만 비극도 아니다. 둘 다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과정은 더이상 국가를 위한 것이 아니고, 상대를 위한 희생도 아니다. 이들은 그냥 스스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세번째 영화는 인투더포레스트. 캐나다 영화다. 숲속으로, 라고 번역해도 좋았을 것을.

이 영화는 어쩐지 국내 개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흥행은 안 되겠지만.) 가까운 미래의 어느날 캐나다나 미국 북서부 지역으로 추정되는 북미대륙 서해안 침엽수림 지대 작은 마을에 전기 공급이 중단된다. 그 전까지는 아주 멋지다. 교사인 아버지는 딸들에게 “고대의 기술로 공부해 봐. 책이라는 게 있잖아”라며 노인처럼 말할 정도로, 컴퓨터를 이용한 삶이 일상화 돼 있고, 집안의 모든 가전제품은 음성으로 작동한다. 아이폰의 시리처럼 “잘 못 알아들었어요”라는 소리도 하는 법이 없는 똑똑한 세상이다.

그런데 전기가 끊어지니 모든 게 엉망이다. 사람들은 자체 발전기를 돌리려고 기름을 사들이기 시작하지만 머잖아 기름 공급도 끊어지고 유통망도 무너져 마을 전체가 고립된다. 라디오 방송도 중단되어 바깥 소식도 알 수 없게 되고, 어제의 친절한 이웃들은 오늘의 잠재적 강도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몇 달. 딸 둘만 남은 삶이 이어지고, 비축한 식량이 바닥나고, 관리를 하지 못해 낡은 목조가옥은 썩어가기 시작한다. 세상의 남자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 되고, 문명의 도움은 받을 수 없는 상황…

아무리 봐도 정말 똑똑한 배우라는 생각이 드는 엘렌 페이지가 제작 및 주연을 맡았고, 여성과 환경이라는 주제의식도 강렬하다못해 지독할 정도다. 너무 커다란 생각들이 들게 만드는 영화라서 오히려 몇 마디로 말을 옮기기가 그렇다. 국내 개봉하면 꼭 보라고 강추하고 싶은 영화.

네번째 영화는 아옌데, 나의 할아버지. 칠레 영화다.

보는 내내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유족이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면 어떤 느낌일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 영화감독이 바로 살바도르 아옌데 칠레 대통령의 손녀다.

가족의 입장에서 찍은 다큐멘터리인 덕분에 독재자 피노체트에 대한 분노라거나, 정치적인 메시지 같은 건 그다지 많지 않다. 물론 민주적 선거로 집권한 세계 첫 사회주의자 대통령이 독재자의 쿠데타에 밀려 대통령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순간을 지켜본 가족들의 기억을 되짚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완전히 비정치적일 수도 없다. 그저 입장이 가족의 입장이라는 것 뿐.

그리고 가족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얘기들도 많다.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위대한 대통령으로 신격화 되는 아옌데가 사실은 아내를 계속 가슴앓게 만들었던 소문난 바람둥이였다는 가족들의 증언이라거나, 아옌데의 가족이란 이유만으로 해외를 전전하다 결국 외롭게 우울증으로 자살하고 말아야 했던 이모(아옌데의 딸) 이야기 같은 건 사실 후대에 전해질리도, 기록될 이유도 없는 뒤켠의 역사다. 영웅의 주위에서 실패한 사람들은 성공했으면 부와 권력을 누렸으리라는 이유만으로 실패에 대한 위로조차 받지 못하게 마련이니까.

영화의 끝에 나온다. 아옌데(Allende)라는 말의 뜻은 ‘저 곳, 그 너머'(más allá de)라고.

다섯번째 영화는 우리 승리하리라. 일본 영화다.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헤노코 기지 이전을 반대하는 주민들 이야기다. 당연하게도 제주도 강정에 건설중인 해군기지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영화가 끝난 뒤에는 미카미 치에 감독이 나와 영화와 관련된 질문을 받아주기도 했다. 난 개인적으로는 해군기지 같은 군사시설은 국가적 필요에 따라 지정학적 요충지에 건설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지만, 이 영화 덕분에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게 됐다.

간단히 줄여서 말하자면, 이 영화는 옳고 그름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물론 멸종위기종인 듀공을 지키자거나, 산호초가 파괴된다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일본의 국가안보를 지키는 군사시설을 건설하자는 주장도 틀린 건 아니다. 문제는 오키나와라는 위치다. 오키나와는 류큐(琉球)라는 독립국가였다. 17세기 초에 일본 가고시마의 사쓰마번이 침략하면서 일본이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고, 19세기 후반에 아예 합병하고 류큐의 역사를 지워버린다. 이후 약 150년 정도가 흘렀다. 그 사이 일본은 전쟁을 벌였고, 태평양 전쟁 때에도 그 군사 목적의 지정학적 가치 때문에 오키나와는 참혹한 전쟁터가 된다. 전후에도 미군이 들어섰고, 일본에 ‘반환’된 것은 1972년의 일이다. 그러니까 이 섬 사람들의 운명 따위에는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점령군들이 늘 완장을 바꿔차고 들어왔을 뿐. 다큐멘터리는 이 부분을 얘기한다.

제주도라면 어떨까. 강정에 해군기지를 세우는 것은 지정학적으로 올바른 판단이겠지만, 제주도 사람들의 느낌은 어떨까. 제주도 사람들에겐 본토의 ‘대한민국’ 사람들이 마음대로 군사시설을 세우는 것이 무리가 없는 일일까?

결국 지금도 오키나와 새 미군기지는 착착 건설중이다. 주민들은 찬성과 반대파로 갈렸지만, 다큐멘터리는 그것이 그냥 극심한 대립만은 아니란 걸 보여준다. “듀공을 잡아먹자!”라고 유머러스하게 외치면서 기지이전 보상금까지 받은 한 어민은 올해 마을 신년회 때 직접 잡은 생선들로 근사한 생선회도 마련해 이전반대 운동을 하는 주민들과 함께 즐긴다. 주민들은 압도적인 표차로 기지이전에 반대하고 백지화하겠다는 현지사도 직접 뽑았다. 그래도, 중앙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 일은 과연 어디까지 갈까.

마지막 영화는 마지막날 아침에 봤던 붕붕! 달려라 개구장이 레이븐.

솔직히, 영화는 재미없었다. 레이서가 되고 싶어했던 까마귀 레이븐이 동네에서 사고를 친 뒤 사고수습을 위해 레이싱 대회에 나가 천신만고 끝에 우승한다는 어린이 애니메이션. 심지어 아들도 재미없어 했다. 부산 유치원 어린이들이 단체관람을 왔던데, 이 친구들도 그다지 재미있는 기색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재미있었는데, 유지태 덕분이었다. 유지태는 이날 극장에 직접 나와서 이 영화의 자막을 직접 읽어줬다. 유치원 어린이들이 주로 보는 영화였던 탓에 자막만으로는 의미 전달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읽어준다고 했을 땐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정말로 자막을 보면서,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들의 움직임과 의성어까지 참고하면서 자연스럽게 읽더라. 아이 아빠가 되어서인지 아들에게 읽어주는 것처럼 정성스럽게. 게다가 연습도 꽤 한 것 같았다. 너무 잘 읽어서 영화보다 유지태의 목소리 연기 감상이 더 재미있을 정도였다.

나라면 80분 동안 아들에게 영화 자막을 읽어줄 수 있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봄날은 간다를 시작으로 이 배우한테 빠졌는데, 나이가 든 유지태의 모습은 그대로 더욱 멋지다. 나보다 한 살 많던데,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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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나는 서태지 세대다. 춤도 하나도 못 추면서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회오리춤을 교실 뒤에서 연습하곤 했던. 바로 그 비슷한 시기에 온 세상이 ‘난 알아요’만 듣고 있던 그 때, 신해철이 넥스트라는 밴드를 만들고 새 앨범을 냈다. 내 중학교 2학년 시절이었다. 앨범은 정서에 딱 맞았다. 아마도 신해철은 중2병의 대마왕이었을 테니까.

1988년 대학가요제였다. 무한궤도의 노래를 처음 들으면서 “무조건 저 팀이 1등할거야. 아니어도 난 저 팀 팬이 될 거야”라는 생각을 했다. 나만 그랬을까. 아직도 싸이는 콘서트 때마다 ‘그대에게’를 부른다. 노래도 거지같이 못하면서 말이다. 참, 싸이는 나하고 동갑이다. 신해철은 우리보다 아홉살이 많았고. 그런데도 묘하게 정서적으로 통했다. 서태지가 시대를 같이 살아갔다면, 신해철은 왜 저 나이에도 저러고 있을까, 싶은 정서였다. 마이너하고, 반항적이고, 자의식 강하고, 왕자병이고, 딱 사춘기 소년 같은. 어쩌면 평생, 지금까지도.

1996년 여름 스튜디오에서 신해철을 만났다. 한 교육전문 케이블TV 채널에서였다. 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대학신입생 패널이었고 해당 프로그램 사회를 보던 고정 강사는 ‘신세대 바람’을 타고 막 새로운 인기직종을 찾은 전직 운동권 ‘문화평론가’였다. 신해철을 섭외하는데 성공했던 우리는 모두 두근거리면서 넥스트의 리더를 기다렸다. 그가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라면서 가볍게 목례하면서 들어오던 키작은 남자 얼굴에서는 빛이 뿜어져 나왔다. 아니, 신고 있던 엄청난 키높이 굽 때문에 사실 키도 별로 작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는 예의 낮은 목소리로 방송을 진행했다. 멋졌다.

녹화가 끝나고, 사인을 받고, 함께 담배를 태우면서 개인적으로 다들 몇마디씩 질문을 던졌다. 난 “넥스트 노래들 보면 염세적이다가, 낙관적이다가, 이랬다 저랬다 싶은데 이런 걸 쓰시는 신해철 형에겐 인생의 의미 같은 게 있어요?”라고 물었다. 나도 그때까지 그냥 중2병이었던 듯 싶다. 인생의 의미는 무슨. 역시 신해철은 쿨하게 대답했다. “그런게 어딨어, 그냥 사는 거지. 나도 몰라, 그딴 거.”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지기 싫어서 한마디 더 물었다. “그러면 왜 그런 가사를 써요?” “그럼 너는 왜 그런 질문을 이런 자리에서 하는데?” 동문서답의 끝판왕. 사람 바보만들기 대마왕. 아, 그런데, 사실 그 답이 좋았다. 퉁명스럽게 던지는 시니컬한 말투도. 그리고 그날 받은 그 사인도. 물론 지금은 잃어버렸지만.

21세기가 됐고, 신해철은 노무현을 지지했고, 대마초 합법화 얘기를 꺼냈고, 북한 미사일이 어쩌고 사교육이 어쩌고 화제를 모았다. 그냥 다 시끄러웠다. 날을 세우고 목소리를 높이는 신해철은 “아, 시끄러, 닥치고 음악이나 들어. 노래에 다 있잖아”라고 얘기할 것 같던 쿨한 신해철과는 달라 보였다. 안 쿨해 보였다. 그리고 최근의 신해철. 나보다 열살 가까이 많은 신해철이 또 방송에 나왔다. 새 앨범도 내려고. 살쪘다고 놀림까지 받아가면서. 마왕이. 여전히 중2병이.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형은 그대로고 나만 변했던 거다. 이 아저씨는 여전히 마이너고, 쿨하고, 반항적이고, 할 말은 꼭 다 내뱉고 말면서 살았는데, 난 그냥 세상 사는대로 살았으니까 내가 보기에 그래 보였던 거다. 난 정치엔 관심없고, 대마초 같은 건 어차피 안 피는데 내가 왜 신경을 쓰느냐 싶고, 북한 미사일이나 사교육엔 관심 없고, 그냥 다 시끄러운 주제였으니까. 중요한 문제인데도. 내가 이렇게 살 게 뻔하니까, 자기보다 열 살 어린 놈들도 서른 넘으면 이래 변할 게 뻔하니까 25년 전부터 이런 가사를 썼겠지.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마음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그래서 오늘 슬프다. 하지만 가는 형은 슬픈 표정 하지 말았으면. 결국 우린 같은 곳으로 가고 있으니까.

귀족의 음악

애플이 최근 있었던 신제품 발표회를 마치자, 세상은 온통 애플워치 얘기와 새로 판매에 들어가는 아이폰6 얘기, 한국에선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애플페이 얘기로 가득하다. 하지만 사실 난 애플의 지난 발표회 때 U2의 음악에 감탄했다. 애플이 모든 아이튠즈 유저에게 U2의 미공개 새 앨범을 무료로 배포하다니! 만세! 공짜다!

하지만 사실 만세라고 할 만한 것은 아니었고, 세상에는 자신의 취향에 기업이 개입하는 걸 죽도록 싫어하는 사람들이 퍽이나 많았다. 그래서 애플은 역공을 당한다. “애플, 내 폰에다 네 맘대로 아무 음악이나 집어넣지 말란 말야!”

그래서 부랴부랴 애플은 공짜로 받은 U2 앨범을 완전히 삭제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 배포했다. 어쨌든 해프닝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은 음악 산업에 있어서는 정말 또 하나의 기념비가 될만한 과정이었다. 이제 음악을 듣고 돈을 지불하는 과정이 완전히 변했다는 걸 애플이 거대한 스케일로 증명했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시대를 살아가는 소비자는 이제 공짜로 음악을 듣고, 돈은 음악 재생기를 만들어 파는 제조사가 내게 됐다. 마치 중세의 음유시인들이 맘만 동하면 거리와 선술집에서도 노래를 불러제끼지만, 생활비는 영주나 귀족들에게 받아 챙기던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물론 돈을 내는 영주들은 자기 맘에 안 드는 노래가 나오면 이 뮤지션들의 목을 베거나 손가락을 자르거나 혀를 뽑았다. 그렇다면 질문이 있다. 우리 시대의 뮤지션도 애플의 말을, 아니, 후원을 하는 기업의 맘을 거스르면 시장에서 퇴출되는가? 요즘 가장 핫한 음악 기술인 스트리밍 음악 서비스, 그것도 광고로 돈을 버는 스트리밍 서비스는 모두 이렇게 후원자가 뮤지션의 생계를 돕는 방식인데?

최근에 비긴 어게인이란 영화를 봤다. 난 영화를 좋아하고, 뉴욕을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하고, 아이폰도 좋아하는데, 이 영화는 뉴욕을 배경으로 뮤지션들이 등장해 아이폰으로 음악을 나눠듣는 음악 영화였다. 당연히 보러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한 이 영화는 뮤지션과 음악 산업에 대한 얘기다. 함께 순수하게 음악이 좋아서 자신들이 듣고 싶은 음악, 진짜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던 뮤지션들 이야기. 그레타(키라 나이틀리)와 데이브(애덤 르바인), 스티브(제임스 코든)는 영국에서 함께 밴드를 하던 친구들인데 스티브는 뉴욕으로 건너와 길에서 버스킹을 하면서 이스트빌리지 골방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고, 연인인 그레타와 데이브는 데이브가 영화음악을 맡았다 대박을 내면서 뉴욕으로 건너와 소호의 멋진 로프트에서 함께 살기 시작한다. 그러다 잘 나가는 데이브가 그레타를 차고 다른 여자를 만나는 사이, 그레타는 알콜중독인 왕년의 유명 프로듀서 댄(마크 러팔로)을 만나 한눈에 재능을 인정받고 음반 제작에 들어간다…

(이하 스포일러 군데군데)

스토리는 뻔하다. 그런데 디테일은 뻔하지 않다. 이 영화는 계속해서 “우리가 지금 뭘 하는 거지?”라는 질문을 던진다. 프로듀서의 입장에서, 갓 성공한 뮤지션의 입장에서, 세상의 시선 따위 의식하지 않는 인디 뮤지션의 입장에서, 시스템을 지켜가는 성공한 뮤지션과 이 수익구조 먹이사슬 정상에 있는 음반사의 입장에서.

뮤지션들을 괴롭히는 건 온갖 가짜들이다. 할 말도 없는데, 엄마가 시켜서 음악 학원을 다니면서 춤과 노래를 배운 뒤 ‘아이돌’로 키워지는 거지같은 가짜 뮤지션들. 심지어 영국에서 차근차근 성장해 온 데이브마저도 성공하게 된 건 음악이 아니라, 이 음악이 실린 영화가 히트를 친 덕분이었으며, 가수로 성공하기 위해서도 마치 수행이라도 떠났다 온 사람처럼 긴 수염을 기르고 ‘길 위에서'(On the Road)라는 철학적인 척 하는 제목을 단 앨범을 내야 했다. 좋은 음악이 아니라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할 법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 살아가는 뮤지션 말이다. 진짜 음악을 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음악을 하기 위해 가짜들의 세계에 적응해야 하는 뮤지션. 한국이라고 이게 과연 다를까. 신해철과 윤상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지 않으면 음악으로 기억되기 어려운 세상이란 건 세계 어디를 가든 마찬가지다.

그레타는 데이브의 대척점이다. 예쁘고, 재능도 있는데, 음반사가 만들어 놓은 ‘성공의 길’에 올라갈 마음이 없다. 그래서 알콜중독 프로듀서가 술까지 끊어가며 온 힘을 다해 저예산의 한계를 넘어 자신의 뛰어난 재능과 쌓아온 인맥으로 위대한 앨범을 만들어주는데, 이 앨범을 온라인에 올려 헐값에 팔아버린다. “녹음도 우리가 했고, 세션맨도 우리가 찾았고, 작곡도 우리가 했고, 마케팅도 바이럴로 할 건데 왜 10달러의 앨범 가격 가운데 1달러만 우리가 받고 9달러는 음반사가 챙기나요?” 그레타는 이 말을 음반사에게 쏘아붙이고는 전통적인 음반 계약 대신 1달러에 앨범 전체를 온라인으로 팔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레타는 진짜 뮤지션처럼 보이고, 진짜 음악을 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진짜가 되는 길은 가짜로 성공하기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들다. 물론 영화는 “진짜로 살아가는 과정이란 게 그렇게 괴로운 건 아냐, 오히려 껍질만 남은 성공보다 더 즐거울지도 몰라”라고 계속 얘기하지만.

이런 시대에서 데이브는 위기의 음악 산업을 상징한다. 상품성 있는 이들을 후원하고 이들로 이윤을 남겨야하는 ‘귀족’에게 기댄 뮤지션 말이다. 그레타는 반대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비용을 더 줄이고 대중에게 더 기대면서 귀족에게서 독립하려고 한다. 그레타의 사운드 엔지니어링은 정식 스튜디오 대신 친구 스티브가 맥북 한 대로 해결했고, 세션은 진짜 거리 뮤지션(그레타의 백밴드는 동네 발레학원 반주자와 클래식이 지긋지긋한 틴에이저 현악주자들이다)들이 맡았다.

어떤 쪽이 맞는 걸까, 답은 모른다. 애플이 U2의 신보를 통째로 사들여 대중들에게 무료로 뿌리고는 핸드폰을 팔아 번 돈으로 U2에게 대가를 정산하는 시대는 매력적인 듯 보이지만, 애플은 무명의 잠재력 있는 밴드에게 이런 선의를 베풀지 않는다. 수십년 검증된 U2 정도나 이런 대접을 받을 뿐. 물론 애플은 아이튠즈 매치 같은 서비스로 매년 수많은 소비자들이 뮤지션을 후원하도록 간접적으로 돕는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들도 소비자로부터 적은 돈을 받는 대신 뮤지션에게 지급할 돈을 음악 산업의 이해관계 바깥에 있는 기업에게서 받는다.
또 다른 극단에 자리잡고 있는 그레타의 처지는 결과적으로는 음악의 가격 인하와 연결될 것이다. 모든 곡이 0.99달러였던 아이튠즈 모델이 0.79달러에서 1.19달러로 (그나마) 다변화된 것도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곧 인디 뮤지션의 음악이 더 싼 값에 거래되고, 음반사가 아닌 개인 뮤지션이 플랫폼과 계약하는 일도 흔하게 벌어지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1달러에 앨범 전체”라는 그레타와 댄의 가격 정책은 의외로 의미심장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귀족들만의 취미였던 음악이 우리 같은 모든 평범한 사람의 예술로 바뀌게 된 건 결국 기술 발전 덕분이었다. 따라서 기술이 음악가를 괴롭히고 음악을 듣는 팬들에게 손해를 끼칠 거라는 음울한 예상은 하고 싶지 않다. 대신, 비긴 어게인의 거리 녹음 같은, 포크와 인디 음악의 새로운 부흥이 예고된 건 아닐까? 전자음 대신 진짜 악기로 사운드를 채우고, 즉흥성과 영감에 기반을 둔 대중음악이 다시 거대한 장르가 될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것 말이다.

p.s. 아 참, 비긴 어게인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알콜중독 프로듀서, 댄의 성(姓)은 ‘멀리건'(Mulligan)이다. 맞다, 그 멀리건. 골프에서 첫 티샷을 잘못 치면 주어지는 벌타없는 두번째 샷. 인생에는 언제나 실수가 있게 마련이고, 그렇다해도 우리에겐 언제나 다시 시작할(begin again) 권리가 있다. 음악 산업 또한 아무리 개판이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사랑하는 것처럼 음악도 사랑하니까.

진격하는 ‘진격의 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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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은 일본을 대표하는 상품 중 하나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실은 애니메이션은 최근 일본에서 대표적인 사양산업으로 분류된다. 한 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내놓기 위해서는 10만 장이 넘는 셀화를 그려야 한다. 인건비가 높은 일본에서 10만 장의 셀화를 그릴 일러스트레이터를 고용한다면, 이건 작품이 웬만큼 성공하지 않고서야 여간해서는 수지가 안 맞는 일이다. 고되기로 소문난 일러스트레이터의 길을 걷는 이들도 많이 줄었다. 편의점에서 바코드 리더기만 잡고 있어도 시간당 749엔(약 8600원)의 최저임금은 보장된다.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의 일러스트레이터 업무는 한국인과 중국인들이 빠르게 일본인을 대체하고 있다. 과거 인기를 끌었던 시리즈물의 리메이크나 후속작을 제외하고는 ‘성인물이나 미소녀 아니면 본전도 못 건진다’는 인식이 커지며 일본 애니메이션은 한동안 대작 가뭄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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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터 노동 백서 2009>에 소개 된 애니메이션 업계 전체의 2007년도 평균 연봉은 255만 엔. 민간 기업의 평균 연봉은 437만 엔이었다.

일본동영상협회가 집계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량 추이를 보여주는 그래프. TV용 애니메이션이 1년 간 몇 분(分, minute)이나 제작되었는가를 집계했다. 2006년 13만6407분(2273시간)으로 정점을 찍은 뒤 4년 연속 줄어들며 2010년에는 9만445분(1507시간)으로 약 34% 감소했다. 2011년 소폭 회복세를 보였지만 전성기 수준과 비교하기에는 아직 큰 차이가 있다.

이런 가운데 한 신인 작가의 데뷔작이 호평을 받으며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불씨를 되살렸다. 신인 작가 이사야마 하지메(諫山創)는 일본 메이저 출판사인 고단샤(講談社)의 월간 만화잡지인 소년매거진을 통해 2009년 데뷔작 ‘진격의 거인’의 연재를 시작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9세의 나이에 고단샤의 매거진 그랑프리 가작을 받았다. 이를 눈여겨본 소년매거진 편집장의 권유로 연재작을 준비했다. 아무런 실적도 없는 만화가 지망생이 가져온 아마추어 수준의 만화가 지닌 가능성을 메이저 출판사의 간부가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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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4월부터 일본 MBS에서 ‘진격의 거인’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방영을 시작했다. 반응은 뜨겁다. 일본과 한국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진격의 거인을 패러디한 사진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새 에피소드가 방영되는 날이면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서 내려올 기색이 없다. 6월 4일까지 나온 단행본 1~10권의 누적 판매부수는 일본에서 2000만 부를 넘었다.

‘진격의 거인’의 세계관은 절망적이고 어둡다. (작가는 “스스로가 약자라는 열등감에서 이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라고 털어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인들이 나타나 인간을 잡아먹는다. 높은 벽에 둘러싸인 채, 인간이 살 수 있는 땅은 점차 좁혀져 간다. 제법 비중 있던 조연들은 어느새 거인들에게 무참히 찢어발겨진다. 팔다리를 물어뜯는 거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린 이 만화는 사실 고어물에 가깝다. -공통의 거대한 적에 대항하는 인간들의 집결과 내부 갈등 구도는 세계정세에서 일본이 처한 상황을 은유하고 있어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분석도 있는 듯 하다- 이 만화 자체가 지닌 흡입력은 다소 서툰 원작의 그림체를 극복했으며 애니메이션이라는 플랫폼은 이 결점마저도 덮어냈다. 애니메이션화를 맡은 회사는 위트 스튜디오(WIT STUDIO). 오시이 마모루 감독과 함께 ‘공각기동대’ 등의 레퍼런스급 애니메이션을 배출한 프로덕션 IG의 산하 회사다. ‘진격의 거인’의 히트는 어두운 내용과는 달리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내년 만화 원작의 작품으로는 역대 최대규모의 제작비를 투입해 실사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라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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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거인’ 만화 단행본은 국내에서 학산문학사가 정식 출판했다. 누적 판매량은 일본의 100분의 1인 20만 부다. 지난달 30일 13화까지 방영된 TV 애니메이션은 웹하드에서 불법 동영상 파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팔리는 콘텐츠를 만드는 환경’도, ‘정당한 가치를 치르고 문화를 소비하는 인식’도 자리 잡지 못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진격의 거인’이 애니메이션화를 향해 진격할 수 있었던 추진력은 적어도 둘 중 하나의 조건은 갖춘 일본의 콘텐츠 시장이 보여주는 저력일 것이다.

‘진격의 거인’ 애니메이션 오프닝 영상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


FC바르셀로나가 사용하는 승리의 축가가 있다. NASA의 우주왕복선 선원들이 우주로 나가 시간 관념을 잃었을 때,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기상 음악으로 선택한 노래가 있다. 이 노래는 2009년 그래미가 뽑은 ‘올해의 노래’가 됐다. 또 디지털 싱글로만 520만 곡이 팔려나갔다. 이는 역사상 가장 많이 디지털로 팔린 영국노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지난 10년 동안 들었던 곡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콜드플레이의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

스웨덴 다큐멘터리는 30분 가까운 시간을 온전히 ‘비바 라 비다’ 한 곡을 조명하는데만 사용한다. 스웨덴어로 제작됐지만 콜드플레이 멤버들의 영어 인터뷰가 대부분이라 스웨덴어 부분을 다 건너뛰고, 간혹 나오는 스페인어 인터뷰도 건너뛴다해도 이해에는 별 무리가 없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새롭게 몇 가지 사실을 알게됐다. 우선 곡이 시작될 때 나오는 매력적인 바이올린 협주는 이탈리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로시가 혼자서 모든 파트를 다 녹음했다. 또 크리스 마틴을 비롯해 밴드 멤버들이 가장 좋아하는 파트는 보컬 없이 멤버들이 함께 ‘오오오~오오’를 반복해 부르는 후렴 부분이라고 한다. 콘서트 장면을 보면 왜 그런지 이해가 간다. 수만 명의 관객들과 함께 동일한 후렴구를 마법의 주문처럼 외치고 있다보면 상상할 수 없는 일체감이 들테니까. 그리고 조 새트리아니의 기타연주를 표절했다는 의혹은 역시 이러저런 측면에서 근거없는 소리였음이 밝혀진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세상의 모든 음악은 표절이다.

이 곡의 멜로디는 정말 불꽃같다. 그리고 노래 제목처럼 인생에 감사하게 만들고(비바 라 비다는 스페인어로 ‘인생 만세’라는 뜻이다), 행복해지게 한다. 그런데 가사는 완전히 다른 뜻이다. 가사는 처연해서 견딜 수 없을 정도다. 크리스 마틴은 이게 일종의 은유라고 설명했다. 가사를 직접적으로 읽으면 몰락한 왕의 이야기처럼 읽히지만 사실은 인생의 중요한 관계 맺기에 실패한 한 남자의 얘기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실패하고, 그 관계를 되돌리고자 애쓰는. 멜로디와 가사의 적절한 거리 때문인지, 이 노래는 아무리 들어도 도무지 물리지가 않는다. 그래서 여전히 내 전화기 벨소리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 다큐멘터리에서 인상적이었던 게 있다. 애초에 크리스 마틴이 이 곡을 쓰게 된 건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가 그린 강렬한 그림 ‘Viva la Vida’ 때문이었다고 한다. 멕시코에 가서 그녀의 그림을 봤는데, 그날 밤 원색의 그 그림이 준 인상이 너무나 강렬해서 새벽 두 시에 잠에서 깼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바로 아래층으로 달려 내려가 피아노 앞에 앉아 곡을 쓰기 시작했다. 마틴이 이 곡을 다 쓰기 까지는 겨우 10분 남짓한 시간이 걸렸을 뿐이었다.

진짜 작업은 그 다음부터 시작됐다. 멜로디와 가사를 다 써놓고도 현재의 곡으로 만들기까지는 훨씬 긴 시간이 걸린 것이다. 멤버들에게 곡을 들려주고, 수없이 편곡하고, 다시 쓰고, 또 고치고의 반복. 이렇게 편곡된 비바 라 비다의 버전은 55가지에 이르렀다. 여태까지 콜드플레이가 만들었던 모든 곡 가운데 가장 많은 숫자였다. 또 밴드의 리드 기타리스트였던 조니 버클랜드는 이 곡을 위한 리프만 50개 이상 만들었다. 그러고도 끝이 나지 않았다. 2007년에 데모송이 나왔지만 여전히 부족했고(다큐멘터리에도 나온다. 지금의 완성된 곡과 너무 달라 귀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멤버들은 끊임없이 고민한다. 마지막에 노래가 완성된 건 작은 교회종을 찾으면서였다. ‘동, 동,’ 아주 작은 효과음이었는데 이 종소리가 노래에 들어가면서 지금의 비바 라 비다가 완성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머릿속에서 이 종소리를 빼고 들으면 지금의 곡이 정말 뭔가 비고 허전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영감은 순간에 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영감을 진정한 명작으로 만들어내는 건 끊임없는 정제와 담금질의 마술인 셈이다. 그리고 이 노래는 왜 우리가 혼자 일하는 것보다 팀으로 일하려고 하는지 알려준다. 한 명의 천재는 놀라운 일을 시작하게 도와주지만, 그걸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걸작으로 완성시키는 건 좋은 팀의 역할이다. 콜드플레이라는 밴드 없이 크리스 마틴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작은 것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