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다 피차이가 특별했던 이유

구글의 수석부사장 가운데 한 명이고, 래리 페이지에게 직접 보고하는 순다 피차이는 과연 뭐가 그렇게 뛰어났던 걸까? Quora에 올라온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무엇보다 그는 구글의 재무적 성공에 기여한 핵심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툴바와 크롬 얘기다. 툴바는 섹시한 제품은 아니었지만 사용자들이 구글 검색을 계속해서 쓰도록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뒤 구글은 믿을 수 없는 수익을 내는 회사로 탈바꿈했다. 또 크롬은 구글의 영역을 웹 전체로 확장시켰다. 이제 (크롬을 통해) 웹에 접속한 모든 사람들은 구글 검색을 계속해서 쓰게 됐다.

또 그는 뛰어난 팀을 채용하고, 가르치고 훈련시켰다. 순다의 팀에서 일한 프로덕트매니저들은 최고 중의 최고로 꼽힌다. 검색품질팀의 엔지니어들 정도나 그런 평가를 얻고 있다.

이외에도 구글에도 다른 회사처럼 사내정치가 존재한다. 순다는 적을 만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 복잡한 정치의 세계에서 순다는 자신의 팀원들이 최소한의 갈등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이끌었다.

결론: 성과를 내고, 후배를 잘 가르치고, 사내정치에 실패하지 않는다면 성공할 수 있다. 다만 그걸 구글에서 하려면 엄청난 성과를 내고, 지구 최고의 팀을 만들고, 세계에서 제일 까칠하고 제멋대로인 사람들 사이에서 적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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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I/O

구글 I/O는 우리 시대의 CES가 됐다. 최신 기술이 이 행사를 통해 공개되고, 불가능한 걸로 생각되던 일들이 곧 가능해질 일로 뒤바뀐다. 전자제품 전시회가 힘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개발자 행사가 일반인의 주목까지 받는다는 건 놀랍기도 하지만, 이게 시대가 변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올해 나온 얘기는 지나칠 정도로 많았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건 음악이었다. 당장 쓸 수 있는 서비스였으니까. 하지만 다른 점도 변화가 많았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변화가 많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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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인프라

크롬 발표를 하면서 구글은 webP라는 이미지 파일 포맷을 소개했다. 이 자리가 처음은 아니고 예전부터 JPG 파일과 비교해 크기는 작고 화질은 똑같다며 구글이 밀어오던 그림 파일 규격이다. GIF처럼 사진 몇 장을 이어가는 애니메이션도 쓸 수 있고, 파일 사이즈는 웹에서 흔히 쓰는 png 규격과 비교해 30%까지 줄어든다. 게다가 동영상 등 멀티미디어 파일에 쓰이는 VP9도 함께 소개했는데 이 또한 마찬가지로 웹 전체의 사이즈를 줄일 것으로 기대되는 새로운 압축 방식이다. VP9은 H.264라는 최근 흔히 쓰이는 동영상 압축방식과 비교하면 63% 더 파일 사이즈를 줄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료다. 어차피 소비자야 동영상 압축방식 사용료까지 신경쓸 일은 없지만, 사실 H.264 방식은 쓸 때마다 돈을 내야 했다. 구글은 이런 돈벌이 기회를 버리고 공짜로 좋은 파일 포맷을 만들어 무료로 인터넷에 뿌리는 셈인데 이렇게 되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것 같지만 사실은 구글 입장에서도 이익이다.

webP나 VP9으로 저장되는 사진과 동영상이 늘어나면 그만큼 구글이 저장공간에 들이는 비용도 줄여주기 때문이다. 구글의 유형자산 보유액은 분기 별로 아주 간략히 계산하면 30억 달러쯤 늘어나는데, 이는 매월(매년이 아니다) 1조 원 정도의 땅과 기계장치, 발전기 등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즉 구글이 두 달 동안 서버와 하드디스크, 이런 걸 놓을 데이터센터 부지와 빌딩, 여기서 쓸 전기를 만들 발전소 등에 쓰는 돈이 NHN이 1년 내내 열심히 노력해서 버는 매출액 전체(이익이 아니다)와 맞먹는다.(물론 유형자산 증가분이 곧 구입비가 되는 건 아니지만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단순화했다.) wepP와 VP9을 무료로 뿌려서 세계의 웹이 좀 더 효율적으로 저장공간과 대역폭을 사용한다면 구글 입장에선 이게 남는 장사다.

두려운 구글플러스

구글플러스 데모에선 입이 벌어졌다. 기능이 특별히 대단해서가 아니라, 구글이라는 거대한 컴퓨터의 존재 탓이었다. 이날 빅 군도트라가 보여준 기능들을 되짚어보면 ‘자동 태깅’과 사진 관련 기능들이 기억에 남는다. 자동 태깅이란 사용자가 구글플러스에 올리는 글과 사진 등을 분석해 관련 단어를 태그로 달아주는 기능을 말한다. 이전까지는 이 태그를 다는 작업은 사람이 손으로 직접 해야 했다. 이제 구글은 알아서 생각해서 글을 읽어보고 관련 태그를 단다. 예를 들어 지금 이 블로그에 쓰는 글을 똑같이 구글 플러스에 올린다면 ‘구글 I/O’ 같은 태그를 구글이 알아서 달아주는 식이다.

여기까지야 문맥광고에도 쓰는 기술이니 그런가보다 싶은데, 구글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사진을 올리면 사진 속 풍경을 분석해 태그를 달아주기 때문이다. 에펠탑처럼 구글의 사진 DB에 쌓여 있는 자주 등장하는 유명한 풍경은 구글이 사진을 보고 ‘에펠탑’이란 태그를 단다. 사용자가 어떤 글도 쓸 필요가 없다. 그냥 구글이 사진을 보는 셈이다. 구글은 음성 검색 등에 사용하는 음성인식 기능도 갖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동영상이나 음성 파일 등을 구글플러스에 올려도 알아서 태그를 달아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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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이 사진을 그냥 볼 줄만 안다고? 천만에. 한 발 더 나아갔다. 구글은 포토샵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프로그램들이 해주던 사진 편집 기능을 구글플러스에 통합했다. 그리고 수백장씩 찍은 사진들이 들어있는 앨범에서 10~20장 정도의 사진을 골라 보여주는 ‘하이라이트’ 기능을 소개했다. 중요한 사진을 앞으로 꺼내어 보여주는 기능이다. 중요한 건 ‘중요하다는 기준’이다. 내 사진의 중요도를 판단하는 건 내가 아니다. 구글이다. 초점이 맞지 않거나, 노출이 잘못된 사진 등을 알아서 빼놓는 건 기본이다. 자주 등장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인식해 사진 속에 등장하는 이들이 내게 중요한 사람인지를 구글이 판단한 뒤 이들이 나온 사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거나, 이들이 그냥 등장하는 게 아니라 ‘웃고 있는’ 표정의 사진을 골라서 더 중요하게 판단한다는 설명을 듣고 있으면 이제 구글이 기계인지 사람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구글은 심지어 랜드마크가 될 만한 멋진 풍경이  무엇인지까지 판단한다. 무엇이 좋은 사진인지, 어떤 풍경이 특정 장소의 랜드마크인지를 구글이 알아서 판단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랜드마크 데이터베이스를 이미 많은 사람들이 찍어놓은 사진으로 확보한 덕분이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구글은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심미적 안목’도 갖췄다. 사진 전문가 수백명을 고용해 이들의 심미적 안목으로 뽑은 ‘좋은 사진’을 골라 데이터로 받아들인 뒤 이를 컴퓨터에게 학습시켜서 만든 기술이다. 일단 사람 손이 닿았으니 수작업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직 구글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셈이다. 구글이 이해하는 세상에서 통계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놀라운 개인화

구글 검색은 기존의 구글 나우를 대폭 개선했다. 사실 음성검색이 데모로 진행되면서 마치 애플의 시리(siri)처럼 움직이는 모습 때문에 이쪽에 관심이 쏠려서 다른 기능들은 약간 묻힌 느낌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구글 나우의 새로운 카드들이 더 흥미로웠다. 좋아하는 음악과 책, 비디오게임, TV프로그램 등이 추가됐는데 모두 사용자의 주관적인 취향에 기반한 내용이다. 스트리밍을 지원하는 구글의 새 음악 서비스를 써보면서 느낀 건 구글이 생각보다내가 좋아할 만한 취향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은 통계에서 그다지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법이니까.

지도의 개선 방향도 이 연장선이다. 가장 눈에 띄는 기능은 개인화다. 친구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내가 자주 검색하는 내용의 연장선으로 지도 정보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나는 자동차가 없는 사람이고 대중교통으로만 돌아다니는데, 버스정류장 정보보다 주유소 정보가 크게 나온다면 이 지도는 별로다. 새 구글지도는 이런 사용자에게 버스정류장을 더 중요하게 보여주는 개인화된 지도로 발전하고 있다.

물론 이런 개인화된 지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용자들이 구글플러스를 쓴다’는 전제가 존재한다. 그래서 이번 I/O에서 구글이 이토록 구글플러스에 공을 들인 것이다. 최고의 사진 관리 프로그램을 만든 것도 포토샵 대신 구글플러스를 쓰라는 뜻이고, 문자메시지와 구글톡을 ‘행아웃’으로 통합시킨 것도 ‘무료 그룹 영상통화’를 쓰려면 구글플러스를 쓰란 뜻이다. 메신저나 사진편집 기능을 이용하려고 구글플러스 계정을 만든 것만으로, 그렇게 구글플러스에 로그인한채로 검색을 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와 친구들의 지도 서비스 활용을 돕는다. 아니, 사실 구글의 모든 서비스가 이렇게 맞물려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그러니까 한 번 이 덫에 빠져들면 구글의 다른 서비스로 계속해서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구글을 믿으라

구글은 한번도 자신들의 서비스를 쓰라고 강제하지 않았다. 심지어 다른 서비스로 옮겨가려는 사용자에게는 데이터를 내려받아 옮겨갈 수 있는 표준 도구까지 무료로 제공한다. 다른 회사에선 사용자를 뺏길까봐 만들지 않거나 돈을 받고 제공하는 서비스다. 그렇다면 구글은 늘 옳은 걸까.

발표가 끝나고 래리 페이지가 무대 앞에 나왔다. 그리고 질문이 있으면 줄을 서달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45분 동안 서서 성실하게 질문을 받고 대답했다. 아마도 구글이 본사에서 직원들과 함께 한다는 내부 회의에서도 이런 식으로 질문을 받곤 했을 것이다. 수만 명의 구글 직원들에게 회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믿게 만들기 위해 래리 페이지가 택하는 방식 말이다. 그리고 이날 그는 CEO가 된 뒤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서서 백만 명이 넘는 세계의 청중들에게 자신의 회사 직원들에게 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회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설득하려고 했다. 진솔한 모습인데다 성대 장애를 밝힌 바로 다음날 선 무대라서 더 보기 좋고 극적이었다.

하지만 구글이 보여주는 미래는 멋지지만 두렵다. 끝내주는 기술 같은데 도대체 저런 기술을 맘대로 쓰겠다고 마음 먹으면 어떤 어두운 미래가 닥쳐올지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래리 페이지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변화를 두려워하는데다 너무 부정적으로 구글을 본다며 불평했고, 기술이 가져올 낙관적인 미래를 믿는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구글은 뭔가를 만들 때 정말 깊이 고민하고 완전히 이해한 뒤에 제품을 내놓고 있고, 지금 우리의 변화는 주어진 기회가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하면 오히려 너무 느린 거라고 주장했다.

구글의 발표를 볼 때면 늘 복잡한 심정이 된다. 나도 기술 발전이 불러올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고, 기술이 인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화시키리라 믿는다. 그러니까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고. 하지만 이 놀랍고 강력하며 새로운 최첨단의 능력이 소수의 사람에 의해 전적으로 통제되는 단 하나의 기업의 손에 들어가 있는 상황은 과연 올바른 것일까. 그들이 아무리 악하지 않다고 해도 말이다.

역사학자 달버그-액튼은 “절대적인 힘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했다. 불행하게도 구글의 힘은 지금 너무 절대적이다.

구글이 지배하는 가혹한 미래

Google_1984

“If Google did not act we faced a draconian future. A future where one man, one company, one device, one carrier would be our only choice. That’s a future we don’t want.” – Vic Gundotra, SVP of Google

난 이 슬라이드를 볼 때마다 배신감을 느낀다. 약 2년 반 정도가 흘렀다. 2010년 5월에 열렸던 ‘구글 I/O’ 행사에서 빅 군도트라 수석부회장은 누가 봐도 애플(‘1984년’이라는 매킨토시 광고로 유명한)을 연상시키는 이 사진을 화면 가득 띄워놓은 채 세계의 안드로이드 팬들을 선동했다. “만약 구글이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가혹한 미래를 맞게 될 겁니다. 한 사람, 한 기업, 하나의 디바이스, 하나의 통신사만이 우리의 유일한 선택이 되는 시대 말입니다. 그건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아닙니다.”

오늘 아주 매끈한 구글맵을 새 아이폰5에 설치했다. 해외로 출장이나 여행을 떠날 때마다 엉터리 애플맵으로 길을 잃을까봐 조마조마했던 마음을 다시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2년 반이 흐르는 동안 스마트폰의 세계에서 구글은 ‘선택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기업, 하나의 서비스’가 돼 버렸다. 그건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아니었을텐데.

하지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구글은 앙시앙 레짐을 대혁명 이후의 자유 시민들의 삶에 다시 불러들였다. 2009년 11월 이후 한국은 엄청난 속도로 변했다. 혁명적인 정책도 없었고, 혁명적인 혁신기술도 등장하지 않았으며, 혁명적인 사상도 유행하지 않았다. 혁명은 그저 아이폰이라는 기계 하나였다. 그 이전까지는 세 개의 통신사가 혁신을 위한 경쟁도, 값을 낮추기 위한 경쟁도 멈춘 채 과점 상태에 머물러 통신시장을 정체시켰다. 하지만 아이폰 이후 모든 게 뿌리부터 흔들렸다. 그 이전까지는 외국 기업이 한국에서 사실상 장사를 못하게 만들 수준이었던 비관세 장벽에 가까운 각종 규제(예를 들어 WIPI)들이 존재했지만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사라졌다. 그 이전까지는 통신사 만큼이나 독과점 상태였던 무소불위의 한국 휴대전화 제조업체들도 아이폰 이후 완전히 새로운 변화에 직면해 혼란에 몸부림쳤다.

엄청난 혼란기였고 구체제의 권력자들은 불안에 떨었다. 한번도 왕좌를 놓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절대군주 수준의 권력을 갖고 있던 통신업계의 왕 SK텔레콤은 실속없는 봉건 영주인줄로만 알았던 KT가 아이폰으로 반란군의 대열 앞에 서자 이를 진압하기 위해 피를 흘려야 했다. 전장에서는 왕이 예상치 못한 마케팅비용 3000억 원을 2010년 한해에만 추가로 쏟아부었다는 소문이 횡행했다. 제조업계의 절대군주 삼성전자도 두려움 앞에서 혼란에 빠져든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세상은 한번에 바뀌지 않았다. 앙시앙 레짐이 흔들리고 혁명이 유럽으로 퍼져나가려고 할 때엔 서로 앙숙인 부르봉 왕가와 합스부르크 왕가라 할지라도 손을 잡게 마련이다. 구 체제의 왕들은 구글이라는 적의 적과 동맹을 맺었고, 몇 년 전만 해도 도무지 어울리는 부분이라고는 하나도 없어보였던 두 세력은 이제 동맹군이 된다. 동맹의 신무기 기술을 받아들인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폰을 만들었고, 동맹의 군사 운용법을 배운 SK텔레콤은 T스토어를 만들었다.

3년 전, 한국은 햅틱과 아몰레드가 시장을 지배했고, 통신사가 요청했다는 이유로 모든 휴대전화에 와이파이조차 달 수 없던 나라였다. 그 이후 6개월 동안 코뮌의 시대가 잠시 왔고, 이후 예고된 반동이 시작됐다. 2년 반이 지났다. 한국은 이제 갤럭시가 시장을 지배하고, 통신사의 요청에 따라 망중립성 같은 소리는 집어치운 나라가 됐다. 절대군주 삼성전자의 위세는 더 강해져서 모토로라와 HTC 같은 영주들은 영지를 빼앗긴 채 쫓겨나기 시작했고, SK텔레콤은 자신이 공급하는 동영상과 콘텐츠는 통신요금에 합산되지 않고, 자신과 제휴하지 않은 독립업체의 동영상과 콘텐츠에만 통신요금을 과금하는 통신망 편향적인 독특한 시장을 만들어냈다. 정확히 3년 전과 똑같이.

빅 군도트라가 얘기하던 가혹한 미래는 이제  결국 그 구글의 손에 의해 도래하기 시작한 게 아닐까. 기대할 수 있는 건 오직 구글의 선의 뿐이란 점에서 지금 우리의 처지는 군주와 귀족들의 선의만을 기대하던 앙시앙 레짐의 시민들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게다가 구글은 그동안 앙시앙 레짐을 지원하던 비용을 다시 회수하기 시작했다. 통신사에게선 앱 판매 수수료를 제값에 받아가기 시작했고, 삼성전자와의 독점적 밀월도 끝내고 다른 영주들과도 동맹을 맺기 시작했다. 이건 뭘 뜻할까? 구글의 선의? 내게는 이제 그들이 다시 왕과 귀족 사이의 게임을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패배자를 앞에 놓고 전리품을 챙기는 시기 말이다.

그러니 내 과거의 농담은 완전히 틀린 것 같다. 애플 제국과 안드로이드 동맹군 사이의 스타워즈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 옆을 지나간 건 혁명이었다. 시민의 편을 든 귀족과 앙시앙 레짐 사이의 혁명.

구글, 그 모든 이야기 #3

페이지와 브린은 구글이 상향식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치 인터넷 그 자체처럼 말이다. 메간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다. “인터넷 시대에 태어났잖아요. 그러니 우리 회사도 우리 제품처럼 돌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좀 묘하지만요.” 그래서 2001년 브린과 페이지는 관리자를 없애기로 했다. 재앙이었다. 결국 구글은 다시 관리자를 도입했다. PM과 리드엔지니어로 운영되는 구글의 팀 체제는 이런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팀을 간결하게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어스 홀즐은 고도로 동기가 부여된 팀을 작게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문화를 설명했다. “큰 팀을 쪼개는 것을 구글에서는 데이터센터에서 서버를 정리하는 것처럼 ‘로드 밸런싱’이라고 합니다.”
사실 큰 팀을 싫어하고, ‘관리되는’ 조직을 혐오하는 이런 문화는 구글 이후 생겨난 회사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코웃음을 쳤고, 애플도 중앙집중형 권력구조를 숭배했지만, 어린 회사들의 생각은 달랐다. 페이스북이 그랬다. 마크 저커버그가 투자자에게 편지를 쓴다거나, 청바지에 후드티 차림으로 투자자 앞에 서는 것만 구글 창업자들에게 배운 게 아니다. 구글 출신인 셰릴 샌드버그의 영향이 컸겠지만 페이스북도 끊임없이 팀을 잘게 쪼갠다. 심지어 한 가지 일만 하면 재미없으니 다른 팀으로 한달 쯤 건너가 일하도록 장려한다. 한달 동안 뭘 배우냐고? 기성세대의 생각이다. 페이스북에선 “한 달 동안 80% 이상 완성되지 않는 일은 너무 속도가 느린 일”이란 문화가 팽배하다.

페이스북은 구글에서 많은 걸 배웠지만, 물론 차이도 많다. 레비는 구글과 페이스북의 차이를 이렇게 말한다. “구글은 대학같았다. 젊은 직원들에게 막대한 책임을 주되 세계 정상급의 과학자에게 운영혁신을 맡기고 있다. 최고 경영진은 교수에 해당됐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젊은이를 좋아했다. 똑똑한 학부생들이 경험 면에서는 부족했지만, 대담함으로 보완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속도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는 얘기가 하나 더 있다. ‘페이지의 법칙’ 얘기다. 18개월마다 프로세서의 속도가 두 배로 빨라진다는 무어의 법칙을 패러디해 세리게이 브린은 래리 페이지의 ‘좌절도’를 계산했다. 일반적인 소프트웨어는 기능을 덧붙일수록 느려지기 마련인데, 속도에 민감한 페이지가 여기에 좌절한다는 얘기다. 이 좌절도를 계산하면 소프트웨어는 18개월마다 두 배로 느려졌다. 그게 페이지의 법칙이었고 구글은 이 법칙을 깨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속도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고, 구글이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회사가 될 수 있게 만드는 인프라가 바로 데이터센터다. 구글은 늘 데이터센터의 천재지변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데이터센터 한 곳을 완전히 잃고 다른 데이터가 넘쳐들더라도 충분할 정도의 용량을 확보하는데 집중했다. 구글은 가외성 네트워크(redundant network)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조직일 것이다. 쓸데없을 정도로 많은 여유자원을 갖고 있다는 소리다. 그래도 되는 게 구글의 데이터센터 비용은 경쟁사의 3분의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데이터센터 덕분에 구글은 세상의 모든 걸 데이터로 보는 독특한 관점을 갖고 있다. 웹 문서는 기본이고, 종이책을 디지털 정보로 만들어 검색되도록 만들겠다는 생각까지도 쉽게 고개를 끄덕일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2006년의 그랜드센트럴 인수는 선구적인 창업자들조차 처음에는 고개를 저었던 일이었다. 무료로 유선 전화를 걸 수 있는 서비스로 인기를 끌고 있던 그랜드센트럴을 인수하자는 웨슬리 챈의 제안에 대해 세르게이 브린은 이렇게 말했다. “전 이제 아예 음성통화를 하지 않아요. 아무도 안 할텐데요.” 브린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음성통화야말로 구시대의 산물이었다. 게다가 상대방의 처지도 고려하지 않은채 마구 울려대는 전화라니! 하지만 막상 가능성을 보고 난 뒤에는 브린의 마음도 바뀌었다. 음성을 인식해서 모든 통화내역을 검색 가능한 데이터로 만들면 어떨까.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어 받기를 요구하는 대신 음성사서함에 말을 남겨놓으면 이게 문자메시지로 전달된다면 어떨까. 공상에 불과했던 일들을 구글은 현실로 만들어냈다.

이처럼 공학적인 발전을 이뤄내는 데 있어서 구글만한 회사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감성은 그렇지 않았다. 무엇보다 구글은 디자인에 무지했다. 예술적인 디자이너는 구글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구글은 아름다워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신랄한 비판도 있었지만 구글 경영진은 코웃음을 쳤다. 마리사 메이어는 뛰어난 디자인에 대해 “개개인의 의견을 반영하면 복잡해진다. 하지만 구글 제품은 기계 위주다. 기계가 만들고 그래야 강력하다. 그래서 우리 제품이 위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인간의 ‘왜곡’ 따위는 구글에 필요없다는 얘기였다.

당연히 창업자들의 대중문화에 대한 무지도 평균 이상이었다. 세르게이 브린은 야구도 잘 몰라서 ‘3할5푼’이란 말도 이해하지 못했다. 카를로스 산타나도 몰라서 그를 공식 석상에서 소개할 일이 생겼을 때 브린은 “세르게이, 카를로스 산타나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라는 직원의 말만 듣고는 “그럼 설명이 필요없는 가수라고 소개하면 되겠군”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렇다보니 구글 사람들도 좀 독특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자신들을 닮은 사람들을 뽑겠다는 채용 원칙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뽑기 시작했을 때부터 예상된 일이다. 기술지향적이고, 똑똑하고 논리적이며, 데이터 중심적이라 근거에 기반한 합리적 판단을 내린다는 건 장점이었다. 하지만 과연 심미적 가치는? ‘인간의 아름다운 왜곡’은?

창업자들의 멘토인 스티브 잡스는 달랐다. 잡스는 그 스스로가 대중문화 같았다. 밥 딜런과 비틀즈, 포르셰와 픽사를 사랑했고 아론 소킨에게 스탠포드 축사를 부탁했으며(소킨이 거절한 게 다행이었다) 이세이 미야키에게 같은 옷을 잔뜩 주문했고, 선을 공부했으며 한 때 히피였다. 당연히 애플의 제품에는 잡스의 개성이 배어있었고, ‘인간적으로 왜곡됐으며’,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레비는 “나중에는 구글도 자신들의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를 써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글플러스가 대표적인데, 구글의 다른 서비스들과는 달리 UI가 훨씬 더 멋지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디자인 철학도 달라졌고, 좀 더 인간적으로 변했다는 게 기존 제품과 비교해서 느껴진다. 넥서스Q를 한 번 생각해보자.(제품 자체는 워낙 실패한 탓에 레비조차 이름을 떠올리는데 한참 걸려 우리가 알려줘야 했다.) 엄청 멋져 보이지 않는가. 별로 쓸데는 없는 제품이지만, 굉장히 재미있다. 디자인에 대해 생각한다면 앞으로 모토로라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생각해보면, 난 앞으로가 기대된다.”

본인들이야 모르겠지만, 외부인의 시각으로 보면 구글에는 일종의 ‘구글끼리’ 문화가 있다. 똑똑한 엘리트들로 구성된 집단의 독특한 폐쇄성 말이다. 이게 효율은 높여주는 구성이지만, 문제도 있었다. 예를 들어 구글에서는 처음 크롬이 나왔을 때 내부적으로 5000명이 크롬 웹브라우저를 내부 테스트했는데도 핫메일이 크롬에서 안 돌아간다는 사실을 누구도 몰랐다. 구글 직원이니 모두 G메일을 썼고, 이 때문에 수없이 많은 일반 소비자들이 마이크로소프트의 핫메일을 썼지만 그런 서비스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셜네트워크 ‘구글 버즈’도 마찬가지였다. 서로를 다 아는 구글 직원 2만여 명은 자기 연락처의 주소로 맺은 소셜네트워크를 다른 직원들이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떤 거부감도 없었다. 하지만 일반인에게 구글 버즈는 프라이버시 재앙에 가까웠다.

심지어 데니스 크로울리는 2006년 ‘인간 중심의’ 소셜네트워크가 대세가 될 것이고, 트위터는 아주 중요하다고 구글의 고위간부들에게 수없이 얘기했다. 하지만 결국 크로울리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모두 귀머거리더군요. 당시 구글은 소셜에 흥미가 없었어요. 자기 일이 아니라는 태도였죠.” 구글은 수없이 많은 소셜서비스를 이런 식으로 말아먹었다. 닷지볼, 오르컷, 오픈소셜, 웨이브, 버즈 등등. 결국 데니스 크로울리는 구글을 나갔다. 그가 만든 게 바로 포스퀘어다.

그러니까 구글은 너무 폐쇄적으로 보였다. 세상은 저 바깥에서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는데, 구글러들은 구글플렉스에 콕 들어박혀서 바깥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회사 버스로 출퇴근하고, 회사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하며, 회사 식당에서 법을 먹고 살았다. 레비에게 이런 걸 물었다. 구글 직원들은 너무 갇혀 사는 폐쇄적인 존재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레비의 대답은 내 생각과는 달랐다. “물론 구글러들이 캠퍼스 안에 갇혀있고, 구글 통근버스를 타고 시간을 보내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그들은 인터넷에 연결돼 있다. 구글 사람들에게 그들이 사는 조국은 사실 인터넷이다. 인터넷이 바로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인터넷 회사의 직원들이 인터넷 안에서 살아가는 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터넷에서 태어나 인터넷에서 살아가는 게 바로 구글이었다. 그리고 그런 구글에게 ‘신뢰’는 곧 생명이다.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진심으로 그렇다.

구글이 모든 걸 개방하고,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데 세심한 신경을 쓰는 건 ‘Don’ be evil’이란 사명 때문만이 아니다. 그 사명 자체가 사실은 구글의 생존을 위해 생겨난 생존전략이라고 보일 정도다. 물론 구글 직원들은 선한 행위에 대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고, 구글이란 회사도 ‘효율적인’ 결정보다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곤 한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구글이 검색광고로 돈을 버는 회사란 걸 떠올릴 필요가 있다. 구글이 인기를 얻었던 아주 초기부터 구글은 광고주들의 “구글이 검색 알고리듬을 조작한다”는 의심을 했다. 그러니 ‘구글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건 ‘구글의 검색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뜻이었고, 이는 곧 ‘구글에게 검색 광고를 맡길 필요가 없다’로 이어지게 되는 일이었다. 즉, 구글은 애초에 신뢰받지 못했다면 살아남을 수 없는 회사였다.

그런 구글이지만 최근에는 자꾸 달라진다는 얘기가 나온다. 사실 레비도 그런 구글에 대한 비판을 매섭게 했다. 특히 중국 진출 부분이 그랬다. 구글은 중국에 진출하면서 누가 뭐래도 현실과 타협했다.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 중국 정부의 검열 요청을 받아들였으니까. 그래서 구글이 중국 사업에서 물러나기로 최종 결정했을 때, 중국 정부는 안타까워하는 대신 쾌재를 불렀다고 한다. 뉴욕타임즈와 인터뷰한 중국 정부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한 때에는 웹을 통제할 수 없으리라는 우려가 중국 관리들 사이에서 많았습니다. 하지만 구글 사건이 생긴 이후로는 통제와 감시가 한층 강화됐습니다. 웹은 근본적으로 통제가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죠.” 중국은 구글을 통제할 수 있었고, 구글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건 어떠한 인터넷 기업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심지어 철통같이 유지하려 했던 구글의 보안 시스템조차 (구글은 중국 정부로 추정하는) 중국 세력에 의해 뚫리고 말았다. 구글에게도 아픈 일이고, 자유민주주의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레비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마이크로소프트 세금’이란 걸 걷는다면서(어떤 신제품이든 윈도 OS 위에서만 돌아가도록 하기 때문에 꼭 윈도를 사야한다는 뜻)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글도 요즘은 세금을 걷는 게 아닐까. 레비는 “참, ‘구글플러스 세금’이란 건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구글도 구글플러스를 써야만 이용할 수 있는 신제품을 하나둘 내놓기 시작해서다. 레비는 아직 구글에 대해 완전히 비판적이진 않다. “구글플러스는 구글 창업자들이 구글 자체를 소셜네트워크로 변화시키려는 큰 변화를 주도하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구글은 계속 변한다. 구글을 이끌어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중국 진출이 문제였다고는 하지만, 레비는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 가운데 마이크로소프트는 (검열 같은) 문제를 한 번 걱정해본 일조차 없었고, 이는 야후도 마찬가지였다”며 “하지만 구글 사람들은 ‘다시는 이렇게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사업에서도 철수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엄청나게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런 대가를 치르는 선택을 앞으로도 계속 하겠다며 공식 선언한 건 분명히 대단한 일이란 얘기다. 레비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했던 마지막 말을 옮겨본다.

“기업이 원하는 가치를 지켜가려면 대가가 필요하다. 물론 기업의 주주들은 이런 대가를 치르는 데 동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구글은 약속을 했다. ‘돈은 좀 덜 벌어도 올바른 일을 하겠다’는 약속 말이다.”

구글, 그 모든 이야기 #2

지금은 야후의 CEO가 된 마리사 메이어는 초기에 구글에 입사할 때 ‘구글이 더 잘 할 수 있는 것 세가지’를 대라는 질문에 둘 밖에 대답하지 못한 걸 10년 넘게 아쉬워했다. 그게 그녀의 성격이었다. 최고가 되고 싶어하고, 야심 만만한 천재소녀. 물론 지금은 애 엄마다. 어쨌든, 과연 그녀는 잘 해나갈까.
이번 인터뷰에서 레비에게 메이어에 대해 물었다. 야후 CEO가 된지 몇달 지났는데 과연 잘 해나가리라고 보느냐고. 레비의 대답은 긍정적이었다. 이미 과거에도 와이어드에 메이어를 ‘The Ultimate Googler’라고 칭찬하며 잘 해나가리라는 예상을 썼던 바 있다. 다만 시간이 지난 지금 그녀에겐 과제가 분명해졌다는 게 레비가 본 차이점이다. 지금 메이어가 하는 일은 “야후가 잘 할 수 있고 집중할 수 있는 제품을 찾는 것”이란 얘기다. 메이어가 야후에 퍼뜨리고 있는 구글 문화는 공짜 식사와 최신 스마트폰이 아니다.(물론 공짜 식사와 최신 스마트폰을 주기는 했다.) 그보다는 메이어가 퍼지기 원하는 문화는 “기술 중심적이고 좀 더 구글처럼 운영되는 회사”다. 그리고 구글처럼 운영되는 회사란 구글처럼 성공적인 제품을 가진 회사를 뜻한다.

과연 첫 제품이 무엇이 될까. 레비는 “전혀 새로운 제품일 수도 있고, 아니면 플리커처럼 과거에 굉장히 성공했던 제품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은 것일 수도 있다”면서 “무엇이 됐든 첫 승부수가 될 제품이 메이어에 대한 평가를 가늠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레비가 보기에 야후 직원들은 최근 수년 간 처음으로 일에 집중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긍정적인 변화가 가능할까. 마침 레비와 인터뷰를 했던 그날 오후, 야후코리아는 한국에서 철수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참, 아주 초기에 야후가 구글 검색을 돈주고 ‘써주던’ 시절, 구글이 야후 덕분에 망하지 않고 사업을 벌이던 그 시절, 야후 경영진은 구글이 검색을 개선하면 곧바로 검색량이 급증하는 걸 지켜보면서 “두달 만에 트래픽이 50% 늘어났다”고 ‘불평’했다. 구글을 통째로 인수할 수도 있던 회사가 구글에 검색 사용료를 조금 더 내야 한다고 투덜댄 것이다. 이런 걸 보면 마리사 메이어가 야후의 CEO가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구글을 만든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천재적인 사람들임에는 틀림없지만 천재적인 코더(coder)는 아닌 모양이었다. 래리와 세르게이가 엄청난 규모의 서버 인프라를 감당하기 위해 모셔온 전문가 어스 홀즐은 세르게이와 래리가 파이선으로 짜 놓았던 초창기의 구글 코드를 보면서 ‘대학 코드'(University Code)라고 비웃었다. 두 사람이 짜놓은 코드는 개념을 잡는데에는 훌륭했지만, 구글이 성장하면서 받게 되는 대규모 부하를 처리하기에는 ‘걸리적거리는 수준’의 형편없는 코드라 결국 모두 다시 작업해야 했다. 데이터센터와 마찬가지로 홀즐 또한 훌륭한 엔지니어였지만 구글이 꽁꽁 감춰뒀다. 그가 공식석상에 나오는 일은 매우매우 드물었는데, 올해 IO에서 구글은 홀즐에게 데이터센터 프레젠테이션을 맡겼다. 그리고 구글의 컴퓨팅 파워도 대중에게 공개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내놓았다. 최근에는 기자들에게 데이터센터 내부도 보여줬다. 레비는 “내가 구글 정책 변화의 살아있는 증거”라고 말했다. 데이터센터 관련 내용이라면 무조건 꽁꽁 싸매던 구글이 이젠 그것마저 공개하기 시작했음을 자신의 기사만 봐도 알 수있지 않느냐는 얘기였다.

몇달 전 SAP의 HANA(하나) 시스템을 소개하는 기사를 통해 간단히 배웠는데, 최근 이쪽 업계의 대세는 ‘인메모리’ 컴퓨팅이라고 한다. 특히 SAP처럼 데이터베이스 솔루션에 강점을 가진 회사는 데이터베이스도 인메모리로 처리한다.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DB를 찾아보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느려터진 자기 디스크를 뒤지는데 걸리는 시간이 전체 시스템의 병목이 돼 시간을 낭비한다고 하니까 매스데이터 시대에 하드디스크란 과거의 백업용 자기 테이프를 주 저장장치로 쓰던 시절 만큼 낙후된 일이다.

하지만 2003년부터 구글이 레비가 ‘인램(In-RAM)’ 시스템이라고 불렀던 시스템을 만들어 사용해 왔다는 사실은 몰랐다. SAP이 하나를 상용화한 것도 작년 일이다. 그전에는 경제성이 부족해 상용화가 힘들었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인더플렉스에 보면 구글은 검색 속도를 높이기 위해 진작에 인덱스 DB를 인메모리 시스템으로 관리했다. 구글은 알면 알수록 놀라운 회사다.

구글의 차세대 제품 기획 중에 레비가 책 끝머리에서 밝힌 기획안이 하나 있었다. 이른바 ‘블루베리 팬케익’이라는 프로젝트다. 책을 읽다보면 구글의 특징은 연구개발이 곧 제품화를 뜻한다는 것인데, 다른 기업들은 R&D에서 만들어진 제품을 상용화하려면 수많은 복잡한 중간과정을 거쳐야 한다. 반면 구글은 엔지니어들이 모두 R&D를 하고, 이렇게 만든 제품을 최대한 상용화한다. 중간단계를 남에게 맡기는 일 따위는 없다. 그래서 블루베리 팬케익 프로젝트도 한국어판 인더플렉스가 나오기 전에 상용화됐다. 책에서 얘기하는 블루베리 팬케익 프로젝트의 정의는 이렇다. “검색하지 않아도 알아서 결과를 보여주는 검색 시스템”. 눈치빠른 구글 팬들은 바로 무릎을 칠 일. ‘구글 나우’ 얘기다.

2004년 4월 1일, G메일이 처음 나왔다. 레비는 그 때 우연히 빌 게이츠와 다른 일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게이츠는 레비와의 인터뷰에서 G메일에 대한 질문을 받자 “도대체 왜 메일에 1기가나 필요한가요?”라고 끊임없이 물었다. 메일을 제 때 지우지 않고 서버에 저장해 두는 건 낭비고, 저장공간은 아껴 써야만 한다는 생각이었다.

게이츠의 시대는 컴퓨팅 리소스를 아껴서 써야 했던 시기였다. 게이츠는 그 시기에 개인용 컴퓨터에 최적화된 ‘날씬한’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글 창업자들은 달랐다. 이들은 회사 문을 열었을 때부터 거대한 숫자(구글의 유래가 된 googol이 바로 1 뒤에 0이 100개 붙는 수다.)만 생각했다. 낭비 따위는 고려해 본 적이 없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래리와 세르게이가 단골로 했던 얘기가 있다. “무어의 법칙 몰라요? 내년이면 반값이 될 겁니다.” 이들에게 무어의 법칙은 만유인력의 법칙 같은 당연한 일상이었다.

 

구글, 그 모든 이야기 #1

오늘(22일) 스티븐 레비 인터뷰가 신문에 실렸다. 이 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존경은 전에도 한 번 따로 쓴 적이 있는데, 직접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하며 든 생각도 기존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글은 언제나 그 사람의 영혼을 반영하게 마련이다. 무엇보다 이번 인터뷰의 계기가 된 건 1년도 지나서야 국내에 번역돼 나온 그의 책 인 더 플렉스 In the Plex였다. 2년 동안 구글 내부를 마치 구글 직원이 된 것처럼 돌아다니면서 쓴 책이니 기대를 모으기도 했지만, 막상 읽으면서 느낀 건 치우침 없는 평가였다. 기업의 탄생 순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단 한번도 혁신적이지 않았던 적이 없던 구글이 ‘페이스북’이란 경쟁자 앞에서는 따라쟁이처럼 꽁무니를 좇아야만 했던 모습이 신랄하게 비판되고 있고,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가 기업의 핵심가치면서도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중국 정부의 검열 요구를 받아들였던 이율배반적인 상황과 당시의 고뇌 또한 진솔하게 소개된다. 구글을 이해하는데 이만한 책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쉽게 나오긴 힘들 거라 생각한다.
책을 읽은 독후감을 몇 차례에 나눠서 쓸 생각인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책 자체가 워낙 길다. 책을 읽으면서 정리해 두고 싶어서 접어두었던 부분들을 정리하는 것 만으로도 분량이 만만치 않다. 그리고 신문에 실린 인터뷰는 레비와의 대화를 반도 소개하지 못했다. 1600자 분량 제한을 두고서 기사를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버리기 싫은 얘기들 가운데 뭔가를 버려야만 할 때는 더더욱. 그러니 그 얘기들도 함께 소개할 예정이다. 결국 이번에도 다소 지루한 구글 이야기가 이어질 수밖에 없을 듯.

우선,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어서 모든 걸 다 창조해내는 것 같은 구글이 남들에게 배워온 것들을 알게 됐다.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던 것들인데 대표적인 게 20% 법칙이다. 많은 사람들이 ‘구글의 일하는 문화’로 아는 20%의 개인 업무 시간을 떼어내 자신을 위한 일에 활용하는 문화는 구글이 만든 게 아니다. 원래 3M과 HP(오늘날에는 전혀 혁신적이지 않아보이는)에서 도입했던 제도인데,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포스트잇이 이 제도에서 태어난 3M의 히트상품이다.

구글이 자신들의 번역 기술을 자랑할 때 늘 하는 얘기가 바로 “우리는 외국어를 몰라도 그 언어를 번역한다”는 얘기다. 서로 다른 언어를 이해하고 두 언어 사이의 법칙을 조사해 번역기를 만드는 대신 구글은 동일한 내용을 두 가지 이상의 언어로 기술한 유엔 공식문서 같은 자료를 수집한다. 그리고 이런 문서의 문장과 단어를 서로 비교한다. 이렇게 비교한 데이터를 잔뜩 쌓아놓고 통계적으로 분석한다. 예를 들어 동일 문서의 같은 위치에서 “Hello”와 “안녕하세요”가 반복된 경우가 많다면 이 두 말이 동일한 뜻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이다. 구글은 그렇게 언어는 모르지만 번역은 할 수 있는 통계번역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게 구글의 독창적인 생각이 아니었다. 알고보니 1980년대 후반, IBM이 이렇게 번역기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연구개발을 진행하던 기술이었다. 하지만 IBM은 연구를 더 이상 진행시키지 못했다. 이렇게 많은 공식문서를 비교하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월드와이드웹이 보편화돼 인터넷으로 수많은 언어의 공식문서를 긁어올 수 있게 된 구글의 시기에 와서야 통계번역을 위한 재료가 쌓인 셈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역시 구글은 인터넷이 만든 회사다.

초창기 구글 검색의 핵심 경쟁력은 ‘페이지 랭크’였다. 마치 학술논문에 많이 인용되는 논문이 중요한 논문인 것처럼 하이퍼링크가 많이 걸린 웹문서가 중요한 문서라는 논리였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웹을 거대한 학술논문 모음집으로 본 덕분에 비슷한 시기의 다른 검색엔진을 압도했는데, 그 때 미국 동부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MIT의 존 클라인버그였다. 그는 IBM 연구소에 취업했는데, 링크가 많이 걸린 웹페이지가 중요한 문서라는 생각을 해냈다. 1996년의 일이었으니 구글과 아주 비슷한 시기였다. 그는 당시 연구소를 찾아오는 IBM 임원들에게 클라인버그는 최대한 열심히 자신의 연구를 시연했다. 하지만 IBM 임원들은 “그건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의 거대 IT 기업이 ‘한낱’ 웹페이지의 링크 따위나 연구하는 한가한 일을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었다. 1997년 클라인버그는 래리 페이지를 만났고, 1999년과 2000년에는 구글 입사제안도 받았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그냥 코넬대에서 연구를 하면서 훌륭한 학자로 살아가고 있다.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도 페이지 랭크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학술논문이야말로 웹이라는 생각 말이다. 이 사람은 링크와 앵커텍스트(중요한 키워드)의 빈도로 연관성을 계산하는 검색방법을 만들어냈고 특허도 냈다. 이 기술은 ‘랭크덱스’라고 불렸다. 이 기술을 개발한 사람의 이름은 리옌홍, 그가 세운 회사가 중국 최대의 검색업체 바이두다. 페이지랭크 같은 기술의 전제 조건은 웹 전체를 색인으로 만들어 저장할 수 있는 거대한 시스템의 존재 유무다. 그래서 구글은 처음 페이지랭크를 만들고 나서 하드웨어 인프라 확장에 모든 신경을 썼다. 반면 클라인버그에겐 그런 자원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포기했다. 리옌홍은 이 기술을 만들 땐 미국 다우존스에서 일했지만 미국 기업은 기술의 미래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중국으로 돌아가 바이두를 세웠다. 당시 한국 기업들은 색인이 지나치게 생성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해 ‘검색 등록’을 받았다. 야후 같은 기업의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은 국내에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얼마전에 이 블로그도 한 번 검색 등록이 거부돼 색인 생성이 제한되기도 했고. 하여튼 오늘날 야후는 한 때 구글을 인수할 뻔 했다가 지금은 구글과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으로 찌그러들었다. 그리고 구글 직원이 CEO로 부임해 회사 부활을 이끌고 있다. 아이러니다.

구글은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투자자에게 복잡한 회계 문서 대신 쉬운 평단어로 작성한 편지를 쓴다. 구글이 어째서 특별한지를 일반인의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다. 멋진 방식이지만 월스트리트 ‘전문가’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건 실리콘밸리 방식이라서 인기를 끌었다. 얼마 전 페이스북도 상장을 앞두고 마크 저커버그가 ‘해커의 길’이라며 쉬운 단어로 된 편지를 써서 투자자들에게 보낼 정도였다. 래리 페이지와 마크 저커버그의 편지를 보면 공통점이 있다. “돈은 좀 덜 벌어도, 우리는 우리가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하겠습니다.” 생략된 말은 이렇다. “돈 벌라고 채근하지 말고, 우리한테 투자하면 손해를 볼 수도 있으니 알아서 위험을 감수하세요.” 그런데 이 멋진 편지쓰기는 사실 실리콘밸리 방식이라기보다는 오마하 방식이었다. 워렌 버핏이 버크셔해서웨이 주주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시작이었던 것이다. 컴퓨터 천재든, 투자의 천재든간에 천재들은 통한다.

넥서스7

언젠가 넥서스7 관련 얘기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계속 미뤄졌다. 솔직히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작고, 가볍고, 값에 비해 성능이 뛰어나다는 얘기야 신문에도 기사로 썼는데, 사실 그것 말고 다른 얘기 할 게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스티브 잡스가 될 필요는 없는 것이니, 구글이 값싸고 성능좋은 괜찮은 기계 뽑아내는 상황에 대해 이 기계가 럭셔리한 고급기계가 아니라고 툴툴댈 필요도 없고, 디테일이 부족하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 정도다. 직접 손에 들어보면 싸구려 7인치 태블릿이라고 평가절하했다면, 그 평가절하가 후회될 정도로 좋은 기계지만, 하도 좋다는 리뷰가 많아서 기대를 잔뜩 했다면 맘에 안 드는 부분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30만원도 내가 만족할 수 없다면 결코 싼 값은 아니니까. 아이패드의 반값이란 것만으로는 면죄부를 받기는 힘들다.

사실 안 좋은 점을 딱히 찾기란 힘들다. 카메라가 되지 않아 문제라고는 하지만, 태블릿을 들고 카메라로 쓰는 사람이 워낙 별로 없기 때문에 카메라 때문에 아쉬웠던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터치스크린 오작동 문제 같은 비교적 널리 알려진 불량 문제도 내가 들고 있는 넥서스7에서는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던 문제고, 사실 이런 문제는 거의 모든 터치스크린 제품이 동일하게 겪는 불량이기도 하다. 오히려 제품의 내구성에서는 아이패드보다 나은 부분이 있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와는 다른 의미로 아주 단단하다고 할 만한 부분인데, 지난 3개월 동안 몇 차례 떨어뜨리고, 굴리고, 험하게 다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눈으로 보이는 넥서스7의 상처라고는 지저분해진 상처투성이 흰색(I/O에서 나눠준 건 뒷판이 흰색인 스페셜 에디션) 뒷판과 전면 유리의 작은 실흠집 뿐이다. 한 번은 떨어뜨려서 앞판과 뒷판이 벌어져 버렸는데도 꾹꾹 눌러주자 다시 척척 맞아떨어져 원래 형태로 조립됐다. 아이패드였다면 이런 식으로 끼워맞추는 형태의 조립 같은 건 애초에 설계 과정에도 들어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맘에 안 드는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우선 밝기 조절이 잘 되질 않는다. 책을 읽는 기계로 포지셔닝하려던 게 구글의 의도 같은데, 그렇다면 침대에서 자기 전 스탠드 조명 없이 읽을 수 있는 환경을 고려해야 했다. 아이패드에서는 백라이트를 극단적으로 줄이는 설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밤에 조명이 완전히 꺼진 침대에서 책을 읽을 때에도 눈이 덜 피로한 설정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넥서스7은 너무 밝다. 터치스크린 캘리브레이션도 그리 정확한 것 같지는 않아서 늘 약간 위쪽을 누르는 느낌으로 탭을 하는 버릇이 들어버린 것도 옥의 티다.

사실 가장 불편한 점은 밝기 조절이나, 터치스크린 따위가 아니었다. 안드로이드 탓이었다. 이미 아이폰과 아이패드, 맥은 서로 너무 지나칠 정도로 딱딱 맞아떨어지는 호환성을 완성한 상태다. 메시지를 보내면 세가지 기기 모두에 메시지가 전달되고, 각종 멀티미디어 파일도 자유롭게 주고받는 게 가능하다. 반면 이 사이에 안드로이드 기기가 하나라도 끼어들면 그 기기는 섬이 된다. 넥서스7이 그랬다. 그 자체로 쓸 땐 괜찮은데, 아이폰과 맥 사이에 끼워놓으니 뭔가 어색했다. 오히려 갤럭시넥서스를 잠시 테스트삼아 쓰고 있던 때에는 두 기계가 매우 잘 어울려서 별 어려움을 못 느꼈다. 아이폰과 맥 사용자가 넥서스7을 쓰려고 한다면 추천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반면 스마트폰이 안드로이드라면 반대로 이 기계는 매우 좋은 대안이 된다.

특히 iOS 제품을 쓴다면, 넥서스7을 발매하면서 구글코리아가 공을 들인 구글북스나 구글무비 같은 서비스가 사실 아무런 가치가 없는 서비스가 된다. 두 서비스가 다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넥서스7을 꽤 자주 들고 다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개인적으로는 구글북스와 구글무비에선 단 한편의 콘텐츠도 사지 않았다. 앞으로도 사지 않을 생각이다. 책은 리디북스나 교보, 크레마 같은 크로스플랫폼 서비스가 있고 동영상도 티빙 같은 서비스가 있다. 어차피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 사이에 호환이 될 일은 없다고 본다면 더더욱 후발주자인 구글 서비스를 쓸 이유가 없어진다.

넥서스7은 확실히 주머니 속에 넣어다니고 다니는 콘텐츠 플레이어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나같은 iOS 사용자에게는 매력이 떨어진다. 구글로 갈아타기엔 벌써 아이폰, 아이패드와 보낸 시간이 꽤 길다. 구글이 왜 그렇게 구글플레이 스토어에서 무료앱을 강하게 권하는지 알만한 지점이다. 사용자들의 전환비용을 줄이려면 이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무료앱을 밀어붙이는 정책 때문에 개발자는 물론이고 콘텐츠 사업자나 작가, 가수 같은 생산자들이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꺼리는 것이기도 하다.

넥서스7은 그래서 잘 만든 기계지만 어정쩡한 위치에 있다. 이 기계가 구글을 구원할까, 아니면 이 정도를 해도 안 된다는 패배감을 안겨줄까. 미국에선 아직 인기라지만, 언제 나올지 모를 소문이 무성한 ‘아이패드 미니’도 지금 발매시기를 내다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