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

10년 전 처음 아이폰이 나왔을 때 시장에는 이미 스마트폰이 있었습니다. 당대의 얼리어답터들은 이미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소개할 때 강조했던 “전화기, 인터넷기기, 아이팟”의 세가지를 한 데 모은 휴대용 디바이스를 쓰고 있었죠. Palm, HP 등이 스마트폰의 강자였습니다.

이 때 아이폰이 다른 스마트폰과 달랐던 것은 기능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건 출발점이었죠. 그 당시의 뛰어난 스마트폰들은 모두 “이 기계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집중해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인터넷을 할 수 있고,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계. 그런데 아이폰은 달랐습니다.

멀티터치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습니다. 멀티터치가 가능한 아이폰은 스타일러스를 써서 작은 인터넷 웹브라우저로 인터넷 서핑을 하는 대신, 아예 모바일용으로 제작된 사파리 웹브라우저로 웹을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프로그램들의 오류로 툭하면 멈추는 전화 대신, 진짜 전화를 손으로 누르는 것처럼 깔끔하게 작동하는 오류없는 전화기가 나왔습니다. 음악은 클릭휠부터 계속해서 진화한 아이팟의 멀티터치 버전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기능이 아니라 멀티터치가 시작이었습니다. 손에서 뗄 수 없는 디바이스가 처음이고, 앱스토어와 수많은 앱들은 그 다음이었던 겁니다.(첫 아이폰은 앱스토어 없이 출시됐습니다.) “조이스틱을 붙여달라”, “게임용 물리 버튼이 필요하다”는 얼리어답터의 요구들이 이어졌지만, 애플의 디자이너들은 들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아이폰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멀티터치였으니까요.

10년이 지났습니다. 아이폰X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애플의 디자이너들은 그 질문에 답할 생각이 여전히 없는 것 같습니다. 대신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기계만 바라보는 모양입니다. 사용자들이 하루종일 아이폰으로 가장 많이 하는 작업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홈버튼에 손가락을 올리는 일입니다. 하루에도 수십번, 아니 수백번 사용하는 터치ID의 지문인식 과정. 그 과정을 사라지게 해준다면?

IMG_2101 2물론 문제는 있습니다. 새 아이폰을 시연하던 페더리기는 새 시스템의 미숙한 인식률 때문에 백업폰을 써야 했고, 페이스ID의 인식 시간과 정확성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문제는 개선되겠죠. 터치ID가 처음에 그랬고, 멀티터치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이제 더이상 우리는 운전하다가 시리를 불렀을 때 잠긴 화면에 손가락을 맞춰 대려고 끙끙댈 필요가 없고, 방수가 되는 폰을 들고도 물 묻은 손으로는 화면을 열지 못하는 문제도 겪을 필요가 없습니다.

겨우 이것이 무슨 혁신이냐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혁신적인 기술은 고객경험을 개선할 때 따라오는 부산물 아니었을까요. 얼굴과 얼굴이 아닌 것을 빠르게 구별해 인식해야 작동할 수 있는 페이스 ID 기술 덕분에, 애플팀은 자연스럽게 인물 촬영에서 무대효과(얼굴만 남기고 배경을 아예 까맣게 날려버리는)를 줄 수 있게 됐고, 인물 촬영을 위한 특수효과를 실시간으로 적용하게 됐으며, 애니모지(사용자의 표정을 따라 실제로 움직이는 이모티콘)를 만들게 됐습니다. 모든 것은 페이스ID 제작 과정의 부산물이었을 뿐이죠. 앞으로 이 부산물은 훨씬 더 많은 변화를 만들 것입니다. 멀티터치 경험이 아이폰과 맥의 트랙패드로 이어지고, UX를 병적으로 집착해 바라보는 관점이 애플워치와 애플펜슬을 만들어냈듯, 다음 세대 디바이스들의 표준도 애플이 만들 테고 그 표준을 모두가 따를 겁니다. 디바이스는 손에 쥐는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고객경험이야말로 아이폰의 모든 것입니다. 혁신은 그저 경험의 뒤를 따라 올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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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해지는 과정

인공지능이 대세라고 해도 애플은 대세와는 거리가 먼 모양이다. 여전히 말귀도 제대로 못 알아듣는 시리를 개선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고, 이미 잘 나간다는 회사들은 하나둘 손을 떼고 있는 태블릿 시장에서 아이패드를 들고 용을 쓴다. 최고의 랩톱도, 최고의 데스크톱도 이제 경쟁사들이 호평받는 제품을 내놓으며 자리를 위협하는데, 애플의 컴퓨터 라인 가격은 도무지 현실감각을 갖출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번 WWDC 2017에서 애플은 새로운 것이라곤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아이패드는 똑같은 프레임 속에서 화면만 조금 키웠을 뿐이고, 새 아이폰은 나중에 발표하겠다는 듯 꽁꽁 숨겼으며, 맥북은 그저 일부 모델의 값을 조금 낮춘 게 전부다.(그 모델은 이제 가장 인기가 없어졌을 모델이다.) 아이맥에는 검은색을 칠해 값을 높여 받았고, 애플워치는 토이스토리 스킨을 넣었다며 OS 업데이트 소식을 알렸다. tvOS를 얘기할 때 보여준 것은 “아마존프라임도 볼 수 있어요” 뿐이었다. 심지어 맥OS Sierra는 ‘High Sierra’로 이름을 바꿨다. 산맥이, ‘높은 산맥’이 되었다.

이 정도면 이제 갈아탈 시간이 됐다. 경쟁제품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탐스러운 인공지능 기능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앞세운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들 말이다.

그런 일이 과연 벌어질까?

아이폰과 맥은 아무런 설정도 하지 않아도 클립보드를 공유한다. 그냥 된다. 아이폰에서 읽던 문장을 선택한 뒤 ‘복사하기’를 누르고 맥에서 ‘붙여넣기’를 누르면 아이폰에서 선택한 문장이 맥의 메모 속으로 입력된다. 아이패드의 메시지는 아이폰에서 읽어도 똑같이 읽음 확인이 되고, 애플워치를 차고 맥 근처에 다가가면 잠금이 해제된다. 맥에서 작업하던 문서는 그대로 아이패드와 아이폰에서 업데이트된다. 클라우드, N스크린… 5년 쯤 전에 유행하던 마케팅 용어인데 사실 이 단순한 기능을 제대로 구현하는 유일한 디바이스 묶음은 여전히 애플 디바이스 묶음 뿐이다.

fullsizeoutput_a크레그 페더리기는 이 모든 과정을 “완벽하게 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완벽을 향해 가는 유일한 디바이스와 소프트웨어의 패키지, 그런 것이 또 있다면 이제는 갈아탈 수 있는 타이밍이다. 더이상 베타테스터이지 않아도, 그냥 쓸만한 상태의 제품을 쓸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어 주는 회사가 애플 외에도 또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시리는 여전히 버벅이면서도 자연스럽고, 아이클라우드는 여전히 속도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기기 사이에서 제대로 작동한다. 제대로 된 메시지 앱, 사진관리 앱, 운동관리 앱, 클라우드 저장공간 앱을 찾아 헤매야 할 이유도 없다. 페더리기가 몇 번이고 강조했던 말이 그것이었다. “모든 디바이스에서 동시에 작동합니다.”

갈아타야 할 시간이 됐을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더 완벽한 제품’‘이 여전히 문제다.

빵 굽는 타자기

새 맥북은 조금 특별해 보였다. 루머가 나왔을 때부터. 작아지고, 강력해지고, 아름다워진다는 루머가 도는데 사실은 그것보다 그저 “와, 저건 정말 끝내주는 워드프로세서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게 해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면서 무지 가볍고, 인터넷도 되고 영화도 볼 수 있으며 회사 일도 처리할 수 있는 기계. 그리고 오늘 나온 맥북이 딱 그랬다.

새 맥북의 12인치라는 스크린 사이즈는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기존의 11인치 맥북에어(화면비 16:9)와 13인치 맥북에어(화면비 16:10)의 ‘절충’이나 ‘중간’이 아니다. 11인치 맥북에어에 가까운 폭에 13인치에 가까운 높이를 가져서 12인치가 된 것에 더 가깝다.(새 맥북도 화면비가 16:10이다.) 즉 세로로 더 많은 정보를 보여주면서 화면 해상도도 레티나급으로 높인 11인치 맥북에어다. 11인치 맥북에어는 작은 화면에도 불구하고 그 가벼움 때문에 여전히 수요가 있던 노트북이었지만, 난 싫었다. 원고라도 쓰고 있으면 한 화면에 표시되는 문단 수가 확실히 적었고, 가로로 길어서 영화 같은 동영상을 보는데 최적화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읽고 쓰는데 있어서는 아주 불편했다. 게다가 한번 격자 없는 레티나 모니터에 적응하면 낮은 해상도의 스크린은 더이상 보기가 싫어진다. 이런 사람들에게 11인치 맥북에어는 영 엉망이었다. 반면 새 맥북은 16:10 비율을 제대로 갖췄다. 그리고 더 가벼워졌다. 게다가 또렷한 화면까지 덤으로 제공한다.

사진으로 비교하면 알 수 있지만, 맥북과 13″맥북에어는 세로로 더 많은 정보를 보여주는 반면 11″맥북에어는 위아래가 많이 잘린다.

그리고 새 맥북의 또 다른 특징은 풀사이즈 키보드의 크기를 거의 그대로 지켰다는 점이다. 스트로크시 신호를 입력받는 방식도 개선했다는데 이점은 실제 제품을 손으로 두드려봐야 알 것 같다. 또한 개별 키보드마다 LED를 붙여서 키캡 조명을 개선했다는데, 달리 말하면 더 어둡게 키보드의 밝기를 설정하더라도 키 하나하나를 더 쉽게 알아볼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프로세서는 강력하지 않다. 이미지나 동영상 프로세싱 혹은 최신 게임에 모자란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나 저널리스트라면? 키보드가 뛰어나고, 들고다니기 가벼우며, 모니터도 끝내주는 워드프로세서가 아주 만족스럽기 마련이다.

새 맥북이 형편없는 프로세서에 멋진 케이스를 붙여서 나온 값비싼 장난감이라며 폄하하는 시선이 많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애플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가 투박한 케이스에 가격대 성능비가 뛰어난 부품들을 구겨넣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난 꽤 오래 써왔던 서브노트북인 2011년형 13인치 맥북에어를 슬슬 새 모델로 교체할 때가 오지 않았나 생각하는 중이고, 4GB 메모리에 겨우 128GB의 SSD 저장공간을 가진 이 모델도 사실 딱히 성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그래서 다음에 이 모델을 바꿀 땐 별 고민없이 새 맥북을 택하게 될 것 같다. 8GB 메모리와 256GB 저장공간을 가진 새 맥북은 부족했던 부분만 딱 채워넣은 듯 싶으니까.글을 쓰는 사람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노트북 같다. 특히 책상머리에 앉기보다 집밖으로 나가길 좋아하는 야전형 작가들이나 기자들, 외근이 잦은 마케터들이라면 더더욱. 한국의 광고모델(혹은 나레이터)로는 자전거를 타는 소설가 김훈 같은 사람이 어울리지 않으려나.

그래서 새 맥북은 ‘빵 굽는 타자기’ 같다. 세상에는 이것저것 컴퓨터의 기능을 대충 갖추고 있는 아주 괜찮은 워드프로세서를 사려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니까.

p.s. USB-C타입 포트가 달랑 하나 있는 구성에 대한 불만이 많던데, 난 전혀 불만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원 어댑터와 여러 기계를 연결할 확장 어댑터 및 USB 케이블을 주렁주렁 들고 다니면 무게 차이가 뭐가 나느냐”라고 얘기하는데, 이상한 생각 같다. USB 케이블이 전원 케이블이 됐다는 건 이제 맥북을 들고다니면서 전원 어댑터를 아예 놓고 다녀도 된다는 얘기 아닐까. 아이패드를 들고 다니면서 전원 어댑터를 들고 다니지 않는 것처럼, USB 전원이 있는 곳이면 이제 컴퓨터도 충전 가능하다. 게다가 영화를 연속해서 10시간 볼 수 있는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과연 충전할 필요가 있을까? 배터리가 아이패드 수준인데? 충전을 해야만 할 정도로 노트북을 헤비하게 써야 할 장소라면 이미 케이블이 있는 집이나 사무실이 아닐까? 걱정 및 억측과는 달리, 난 애플이 처음으로 전원 어댑터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노트북 혹은 아이패드 같은 노트북을 만들어 낸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우리가 노트북에 기대했던 것 아닌가? 자유롭게 들고 다니는 컴퓨터라는 개념 말이다. 아이패드에 “추가 디스플레이 연결이 안 되니 후졌다”거나 “아이패드로 아이폰 충전을 할 수 없어 말짱 꽝”이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이상한 소리냐는 얘기다.

애플의 실적, 만분의일의 세상

애플이 지난 4분기에만 18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는 실적을 발표했다. 18조 원, 한 달에 6조 원 이상 벌어들인 셈이다. 아, 매출이 아니다. 영업이익 얘기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만드는데 들어간 알루미늄 값, 삼성에 준 반도체 비용, 직원들 월급과 광고비 전부 제외하고 남긴 이익만. 이게 어느 정도 규모냐면 마이크로소프트(78억 달러)와 삼성전자(48억 달러), 구글(32억 달러, 3분기 기준이니까 이번 분기에는 훨씬 늘긴 하겠지만)의 이익을 다 합친 것보다 큰 액수다. 잘 나가는 페이스북도 이익은 11억 달러 정도 규모고, 어떤 회사도 애플만한 이익을 내지 못한다.

전에 edge.org를 통해 소개된 “아프리카의 진짜 크기“라는 지도가 널리 퍼진 적이 있는데, 이 지도를 보면 아프리카는 중국과 미국, 인도, 일본을 모두 포함하고, 유럽 대부부분의 국가를 포함한 것보다 넓은 면적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아프리카 대륙 전체 면적은 달 전체 면적의 80%가 넘는다. 우리는 거대한 아프리카를 바라볼 때 편견에 사로잡혀 실제로 아프리카가 얼마나 거대한지는 잘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애플 실적 발표를 보면서 든 생각이 딱 이랬다. 이번 이익 규모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단일 기업 역사상 가장 큰 이익이었다고 하니 역사마저 바꾼 셈이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니 기가 막혔다. 매월 6조 원을 벌어들인다는 건 쉬는 날까지 포함해서 하루에 하루에 2000억 원의 이익을 낸다는 얘기다. 직원은 약 10만 명. 단순히 1인당으로 나눠도 한 사람이 하루에 200만 원의 이익을 낸다. 근무일 기준으로 바꾸면 하루 300만 원 정도 벌어들인다는 얘기다. 하루 8시간 일한다고 가정하면 초당 104원 정도의 가치를 만들어낸다. (똑딱똑딱) “이거 말고 좀 더 예쁜 케이스 없을까요?” (똑딱똑딱) “고객님, 이건 어떠세요?” 여기까지 30초가 걸렸다면 3000원 이상의 서비스를 받은 셈…? 이건 농담이지만, 이런 회사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애플은 이 돈을 대부분 회사 안에 쌓아둔다. 물론 팀 쿡이 부임한 이래 근로조건 개선에도 훨씬 더 노력하고, 자사주 매입도 진행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엄청난 돈은 애플 안에 쌓여 있다. 그리고 애플의 임원들은 쉽게 상상도 하지 못할 엄청난 보상을 받는다. (최근 버버리에서 애플로 옮긴 안젤라 아렌트는 7330만 달러의 보상을 받았다. 대부분 애플 주식이지만 수십억 원 정도는 현금으로 지급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다. 한국 기업이 현금을 쌓아두면 한국 정부는 “투자여력이 있는 대기업이 현금을 쌓아두기만 한다”며 기업을 옥죈다. 한국 기업의 임원이 수십억 원 대의 연봉을 받고 수백억 원 대의 주식 보상을 받는다면 여론이 들끓는다. 압도적 보상은 압도적 성과를 위한 필요조건이 아닐까. 내가 개인적으로 바라는 세상은 애플 같은 회사 하나가 시장 전체를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애플의 만분의 일 밖에 안 되는 회사가 만 개가 있어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한 세상이지만, 생각해 보면 그런 세상도 애플 같은 회사가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 아래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애플도 시작할 땐 그런 만분의일 가운데 하나였으니까.

시리가 좋아졌나?

시리가 좋아졌다고 애플 전문 블로거 존 그루버가 한마디 한 덕분에 스토리파이 뉴스레터에서 관련 내용을 소개해줬다. 트위터를 통한 대화들이 나오는데, 위에 링크한 존 그루버의 ‘시리 vs. 구글 나우’ 속도 비교에 대해서 “유럽에선 더 빠른데?”라면서 아이폰으로 비디오와 또 함께 비교한 내용이 재미있다. 잠시 나도 이 비디오에 내 아이폰을 대놓고서 “한국에선 더 빠른데?”라고 하려다 그냥 멈췄다.

시리는 그루버의 말 마따나 최근에 많이 좋아졌는데, 일본 아이폰 유저로 짐작되는 사람이 “일본에선 여전히 개판”(Japanese Siri still sitnks.)이라고 한 것처럼 한국에서도 불만을 가진 사람이 여전히 많다. 게다가 구글 한국어 음성인식이 워낙 좋아서 비교되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개인적으로 시리를 훨씬 많이 사용한다. 안드로이드폰을 쓰다가 다시 아이폰으로 돌아온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차에서 구글나우로 할 수 있는 일이 사실상 거의 없어서였다. 시리는 “음악 틀어줘”, “와이프한테 전화해줘”, “김기사 열어봐”, “이 노래 건너뛰자” 등을 다 알아듣는다. 구글 나우는… “OOO에게 전화”라고 딱딱한 명령어를 입력해야 하고, 알아듣는 경우도 적다. (무엇보다 “졸린데 재미있는 얘기 좀 해봐” 이런 장난도 칠 수 없다. 시리는 이런 경우… 정말 대답을 제대로 한다.)

시리는 정말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그런데 그냥 좀 멍청한 말귀 못 알아듣는 답답한 친구랑 얘기하는 느낌이다.(좀 심하게 답답한) 구글 나우는 굉장히 정확하게 내 말을 알아듣는다. 그런데 손으로 입력해야 할 걸 입으로 입력한다는 느낌 뿐이다. 똑똑한 기계랑 얘기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운전하는 동안 답답한 친구와 함께 갈 것인지, 기계랑 갈 것인지 생각해 보면 난 아무래도 친구가 좋더라.

아래는 관련 스토리파이.

아이폰6 사용기

회사에서 쓸 테스트폰이 필요해서 새로 나온 아이폰6를 대만 출장길에 사 왔다. 6플러스도 함께 사고 싶었는데, 인기가 좋은지 가는 곳마다 품절. 사실 6도 64GB 모델은 품절, 흰색과 회색도 품절. 오직 16GB 금색 모델만 남아서 그걸 사는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 정도 출장 도중 써봤는데, 기대보다 훨씬 좋았다.

우선 크기. 4인치와 4.7인치의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지금 쓰는 넥서스5와 비슷한 화면 크기인데,(Twitter @seokbin 님 지적으로 ‘같은 크기’에서 수정. 넥서스5는 4.95인치) 이 정도 크기가 딱 좋다는 생각. 주머니에도 무리없이 들어가지만, 그렇다고 화면이 작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 크기다. 게다가 두께가 얇아진 덕에 만지는 느낌은 하나도 크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이폰6를 쓰다가 다시 넥서스5를 손에 들었더니 화면 크기가 똑같은데도 이건 무슨 벽돌을 드는 느낌. 게다가 아이폰6는 유리를 모서리에서 둥글게 가공해 놓아서 둥글게 휘어진 알루미늄 케이스와 잘 이어진다. 이 틈새에 머리카락이 끼어서 잡아뜯긴다고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난 그런 경험은 한번도 하지 못했다. 제품별 차이가 있는지도.

불만족스러운 배터리. 별도의 충전 배터리 없이는 헤비하게 쓰면서 돌아다니기는 좀 무리가 있다. 5s와 비교해 하나도 개선되지 않은 부분. 6플러스는 좀 낫다는데, 어쨌든 배터리 문제 때문에 소비자 불만이 무지 높은데도 애플은 여전히 고집을 부리는 느낌이다.

스피커는 완전히 놀라웠다. 이게 이 작은 핸드폰에서 나오는 소리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 아이패드미니 레티나도 함께 쓰고 있는데, 아이패드보다 좋은 소리를 들려준 건 물론이고, 호텔방 스피커보다도 더 좋은 소리를 들려줬다. 5s와 비교해서 들어봤는데, 기본적으로 출력이 높아진 느낌. 같은 볼륨단계에서 더 크고 깊이감 있는 소리를 들려준다. 스피커 모듈 자체가 더 큰 것으로 교체됐다는데, 그 덕분인 듯.

LTE. It just works. 국가별 설정 같은 걸 신경쓸 필요가 없다. 이 당연한 기능이 사실 쉬운 건 아니었던 것이, 3G 시절에는 핸드폰이 쓰는 주파수 대역이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동일했다. 그래서 그냥 한 모델만 만들면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전화를 쓸 수 있었다. 그런데 LTE는 다르다. 국가별로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이 달라서 LTE 접속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 아이폰6는 국가별로 사야 하는 모델이 복잡하게 달랐던 5s와 달리, 한 모델을 사면 그냥 대부분의 국가에서 모두 LTE를 쓸 수 있다. 별 것 아닌 듯 보이지만 의외로 큰 변화다.(사실 애플의 발전보다는 모뎀칩셋의 발전이겠지만.)

그리고 카메라. 5s 시절보다 확실히 개선됐다. 특히 초점은 정말 빨리 자동으로 맞춘다. 사람 얼굴 인식도 굉장히 빠르고. 잠금화면에서 바로 카메라를 열 수 있게 된 이후로, 아이폰은 스냅사진에 아주 강했는데 이젠 거의 완벽한 수준. 그리고 새 슬로우모션도 맘에 든다. 240fps로 영상을 찍는데, 8배로 천천히 재생 가능한 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건 직접 봐야 알 수 있는 내용.

그런데 Vimeo가 뭔가 문제가 있는지, 제대로 된 영상을 올렸는데 거꾸로 받아준다. 그냥 슬로우모션만 참고로. 어쨌든 어두운 곳에서도 사진이 꽤 잘 찍혔는데, 6플러스에는 광학손떨림방지(OIS) 기능이란 게 들어 있어서 손이 좀 떨려도 렌즈가 떨림을 잡아서 보정해준다고 한다. 즉, 어두운 곳에서 덜 흔들린 사진이 나온다는 건데 결과물을 비교하는 경우를 봤더니 6보다도 뚜렷하게 좋았다. 그냥 좀 비싼 똑딱이 카메라를 샀는데, 사고 보니 인터넷도 되고 전화도 되고, 게임도 할 수 있는 카메라였다고 생각해도 아깝지 않을 수준이다.

그리고 아쉬운 점은 튀어 나온 카메라 디자인. 왜 렌즈 부분이 돌출됐는지 모르겠다. 확실히 보기 흉하다. 뒷면에 둘러놓은 흰색 띄도 기능상의 문제라기보다는 디자인 포인트 같은데, 역시 무슨 내복 디자인을 보는 느낌. 개인용으로 샀던 거라면 당장 케이스부터 사서 씌웠을 것 같은 디자인이었다. 또 다른 아쉬움은 유리. 이온-X 글래스라고, 기존보다 더 강화된 유리를 적용했다는데, 주머니에 다른 핸드폰과 두개를 함께 들고 다녔더니 순식간에 작은 실금이 갔다. 평소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긴 하지만, 눈을 부릅뜨고 흠을 찾으면 바로 보였다. 스크래치에 강한 강화유리 치고는 실망스러웠다.

나중에 아이폰6플러스를 보게 되면 한동안 고민하지 않을까 싶긴 하다. 하지만 너무 큰 핸드폰은 무조건 싫다는 사람이라면, 지금 시장에서 판매되는 스마트폰 가운데 최고라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이폰 카메라의 진화

링크한 웹사이트에 가보면 애플이 처음 아이폰을 선보였던 2007년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꾸준히 매년 카메라를 혁신해 왔는지 알 수 있다.(Thanks to 윤지만) 심지어 카메라가 차지하는 물리적인 공간을 점점 얇아지는 스마트폰 속에 계속 줄여 넣어가면서도 아이폰 카메라의 화질은 한번도 후퇴한 적 없이 좋아졌다.

이번 아이폰6도 카메라가 확실히 개선됐다. 빛이 부족한 어두운 곳에서의 촬영이라거나, 접사 기능 등을 보면 아이폰5s보다도 확 개선됐다는 걸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인물 사진에서의 피부톤이나 해질녘의 석양 표현 등은 정말 자연스럽고 실제의 빛을 자연스럽게 잘 반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이폰5S도 여전히 굉장히 좋은 카메라라고 생각하는데, 우선 렌즈밝기 같은 물리적 측면에서 아이폰6와 차이가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이는 아이폰5s의 화질이 전반적으로 크게 뒤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로 비교 사진들을 보면 아이폰5s와 아이폰6의 차이는 그 이전 제품들 사이의 차이보다는 확연히 적다. 또 아이폰5s는 노출을 기본적으로 아이폰6보다 한스탯 낮춰 잡는 걸 볼 수 있는데, 이게 ‘덜 사실적인’ 이미지를 만들지는 몰라도 후보정을 할 때 더 많은 정보를 남겨두는 방식이다. 사진을 찍으면 빛이 밝은 부분은 하얗게 어두운 부분은 검게 나오는데, 검게만 보이는 곳은 노출과 대비, 레벨값을 조절해서 디테일을 살릴 수 있지만 흰 부분에는 아예 정보 자체가 날아가 버리는 경우가 많아서(특히 전문가용 raw파일 형식의 기록이 안 되는 스마트폰) 나중에 되살리는 게 불가능하다.

또 덜 사실적인 아이폰5s의 사진은 ‘아이폰 사진’으로서의 독특한 색감을 만드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작은 렌즈 때문에 이미지가 굴절되고, 모서리엔 그림자가 지며(비네팅) 색도 이상하게 왜곡되는 로모 카메라가 왜 그리 오래도록 인기를 끄는지 생각해 보면 안다. 사람들은 사진을 통해 현실을 보려는 게 아니고, 사진을 통해 왜곡된 기억을 확인한다. 그러니 한 번 렌즈를 통과한 빛이 꼭 현실 그대로여야만 한다는 건 착각이자 집착이다. 현실은 눈으로 볼 때만 현실로 남아있는 법이고, 촬영되고 나면 렌즈와 모니터, 인화지 등을 통해 언제라도 왜곡된다. 그 왜곡을 얼마나 감성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이미지를 보정하느냐가 사실 더 중요한 게 아닐까.

그래도 전반적으로 아이폰6가 아이폰5s보다 여러면에서 좋은 카메라라고 생각하는 건 물론이다. 내게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당연히 아이폰6를 고를 것이다. 하지만 아이폰5s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카메라가 부러워서 아이폰6를 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아이폰5 이전 모델이라면 단지 카메라 업그레이드라는 이유만으로도 새 스마트폰을 살 이유가 될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