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회사가 성장하고, 정말 큰 회사가 될 것 같아서 전문 경영인들을 뽑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뽑아 놓으니 회사가 안 돌아갔어요. 다 머저리(bozos)같았죠. 물론 그들은 관리는 할 줄 압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에요.뭘 직접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정말 뛰어난 리더는 언제나 가장 뛰어난 전문가(individual contributor)입니다. 그들은 매니저가 되려고 일하지 않아요. 대신 자기보다 그 자리에서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자리로 올라가죠.

많은 회사들이 사실 반대로 생각합니다. 관리자의 능력은 실무자의 능력과는 다른 더 고차원적인 일이라는 인식이 팽배하죠.

물론 거의 모든 MBA 수업에서도 ‘관리자 트랙’과 ‘전문가 트랙’의 역량은 다른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왜 뛰어난 선수가 뛰어난 코치가 될 수 없느냐, 이런 얘기들이 반복됩니다.

하지만 그런 회사는 언제나 그저 그런 ‘수많은 회사’ 중 하나가 될 뿐입니다. 스티브 잡스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만드는 회사가, 애플이 됩니다.

https://youtu.be/rQKis2Cfpeo

UX

10년 전 처음 아이폰이 나왔을 때 시장에는 이미 스마트폰이 있었습니다. 당대의 얼리어답터들은 이미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소개할 때 강조했던 “전화기, 인터넷기기, 아이팟”의 세가지를 한 데 모은 휴대용 디바이스를 쓰고 있었죠. Palm, HP 등이 스마트폰의 강자였습니다.

이 때 아이폰이 다른 스마트폰과 달랐던 것은 기능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건 출발점이었죠. 그 당시의 뛰어난 스마트폰들은 모두 “이 기계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집중해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인터넷을 할 수 있고,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계. 그런데 아이폰은 달랐습니다.

멀티터치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습니다. 멀티터치가 가능한 아이폰은 스타일러스를 써서 작은 인터넷 웹브라우저로 인터넷 서핑을 하는 대신, 아예 모바일용으로 제작된 사파리 웹브라우저로 웹을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프로그램들의 오류로 툭하면 멈추는 전화 대신, 진짜 전화를 손으로 누르는 것처럼 깔끔하게 작동하는 오류없는 전화기가 나왔습니다. 음악은 클릭휠부터 계속해서 진화한 아이팟의 멀티터치 버전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기능이 아니라 멀티터치가 시작이었습니다. 손에서 뗄 수 없는 디바이스가 처음이고, 앱스토어와 수많은 앱들은 그 다음이었던 겁니다.(첫 아이폰은 앱스토어 없이 출시됐습니다.) “조이스틱을 붙여달라”, “게임용 물리 버튼이 필요하다”는 얼리어답터의 요구들이 이어졌지만, 애플의 디자이너들은 들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아이폰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멀티터치였으니까요.

10년이 지났습니다. 아이폰X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애플의 디자이너들은 그 질문에 답할 생각이 여전히 없는 것 같습니다. 대신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기계만 바라보는 모양입니다. 사용자들이 하루종일 아이폰으로 가장 많이 하는 작업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홈버튼에 손가락을 올리는 일입니다. 하루에도 수십번, 아니 수백번 사용하는 터치ID의 지문인식 과정. 그 과정을 사라지게 해준다면?

IMG_2101 2물론 문제는 있습니다. 새 아이폰을 시연하던 페더리기는 새 시스템의 미숙한 인식률 때문에 백업폰을 써야 했고, 페이스ID의 인식 시간과 정확성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문제는 개선되겠죠. 터치ID가 처음에 그랬고, 멀티터치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이제 더이상 우리는 운전하다가 시리를 불렀을 때 잠긴 화면에 손가락을 맞춰 대려고 끙끙댈 필요가 없고, 방수가 되는 폰을 들고도 물 묻은 손으로는 화면을 열지 못하는 문제도 겪을 필요가 없습니다.

겨우 이것이 무슨 혁신이냐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혁신적인 기술은 고객경험을 개선할 때 따라오는 부산물 아니었을까요. 얼굴과 얼굴이 아닌 것을 빠르게 구별해 인식해야 작동할 수 있는 페이스 ID 기술 덕분에, 애플팀은 자연스럽게 인물 촬영에서 무대효과(얼굴만 남기고 배경을 아예 까맣게 날려버리는)를 줄 수 있게 됐고, 인물 촬영을 위한 특수효과를 실시간으로 적용하게 됐으며, 애니모지(사용자의 표정을 따라 실제로 움직이는 이모티콘)를 만들게 됐습니다. 모든 것은 페이스ID 제작 과정의 부산물이었을 뿐이죠. 앞으로 이 부산물은 훨씬 더 많은 변화를 만들 것입니다. 멀티터치 경험이 아이폰과 맥의 트랙패드로 이어지고, UX를 병적으로 집착해 바라보는 관점이 애플워치와 애플펜슬을 만들어냈듯, 다음 세대 디바이스들의 표준도 애플이 만들 테고 그 표준을 모두가 따를 겁니다. 디바이스는 손에 쥐는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고객경험이야말로 아이폰의 모든 것입니다. 혁신은 그저 경험의 뒤를 따라 올 뿐.

완벽해지는 과정

인공지능이 대세라고 해도 애플은 대세와는 거리가 먼 모양이다. 여전히 말귀도 제대로 못 알아듣는 시리를 개선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고, 이미 잘 나간다는 회사들은 하나둘 손을 떼고 있는 태블릿 시장에서 아이패드를 들고 용을 쓴다. 최고의 랩톱도, 최고의 데스크톱도 이제 경쟁사들이 호평받는 제품을 내놓으며 자리를 위협하는데, 애플의 컴퓨터 라인 가격은 도무지 현실감각을 갖출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번 WWDC 2017에서 애플은 새로운 것이라곤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아이패드는 똑같은 프레임 속에서 화면만 조금 키웠을 뿐이고, 새 아이폰은 나중에 발표하겠다는 듯 꽁꽁 숨겼으며, 맥북은 그저 일부 모델의 값을 조금 낮춘 게 전부다.(그 모델은 이제 가장 인기가 없어졌을 모델이다.) 아이맥에는 검은색을 칠해 값을 높여 받았고, 애플워치는 토이스토리 스킨을 넣었다며 OS 업데이트 소식을 알렸다. tvOS를 얘기할 때 보여준 것은 “아마존프라임도 볼 수 있어요” 뿐이었다. 심지어 맥OS Sierra는 ‘High Sierra’로 이름을 바꿨다. 산맥이, ‘높은 산맥’이 되었다.

이 정도면 이제 갈아탈 시간이 됐다. 경쟁제품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탐스러운 인공지능 기능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앞세운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들 말이다.

그런 일이 과연 벌어질까?

아이폰과 맥은 아무런 설정도 하지 않아도 클립보드를 공유한다. 그냥 된다. 아이폰에서 읽던 문장을 선택한 뒤 ‘복사하기’를 누르고 맥에서 ‘붙여넣기’를 누르면 아이폰에서 선택한 문장이 맥의 메모 속으로 입력된다. 아이패드의 메시지는 아이폰에서 읽어도 똑같이 읽음 확인이 되고, 애플워치를 차고 맥 근처에 다가가면 잠금이 해제된다. 맥에서 작업하던 문서는 그대로 아이패드와 아이폰에서 업데이트된다. 클라우드, N스크린… 5년 쯤 전에 유행하던 마케팅 용어인데 사실 이 단순한 기능을 제대로 구현하는 유일한 디바이스 묶음은 여전히 애플 디바이스 묶음 뿐이다.

fullsizeoutput_a크레그 페더리기는 이 모든 과정을 “완벽하게 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완벽을 향해 가는 유일한 디바이스와 소프트웨어의 패키지, 그런 것이 또 있다면 이제는 갈아탈 수 있는 타이밍이다. 더이상 베타테스터이지 않아도, 그냥 쓸만한 상태의 제품을 쓸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어 주는 회사가 애플 외에도 또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시리는 여전히 버벅이면서도 자연스럽고, 아이클라우드는 여전히 속도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기기 사이에서 제대로 작동한다. 제대로 된 메시지 앱, 사진관리 앱, 운동관리 앱, 클라우드 저장공간 앱을 찾아 헤매야 할 이유도 없다. 페더리기가 몇 번이고 강조했던 말이 그것이었다. “모든 디바이스에서 동시에 작동합니다.”

갈아타야 할 시간이 됐을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더 완벽한 제품’‘이 여전히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