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버의 마케팅

우버가 잘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특별한 자동차를 이용한 마케팅이다. 차만이 줄 수 있는 경험. 이번에도 일본 우버 지사가 재미있는 마케팅을 시작했다. 이름하여 ‘우버 폰'(Uber Phone). 우버 앱을 열고 평소처럼 우버 기사를 부르는 대신 ‘폰’을 선택하면 되는 이벤트다.

기간은 19일 한정. 목적지는 미나토구. 특별한 핸드폰을 줄 서서 기다리는 불편 없이 손에 쥐게 해주겠다는 게 우버의 설명이다. 이런 얘기.

“9월 19일은 전 세계가 멋진 스마트폰의 판매를 기대하고 있는 날이죠. 우리는 그 스마트폰을 구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들어 왔습니다. 수요가 너무 많아서 줄을 길게 서기도 한다죠. 그렇게 줄을 서고도 못 살 걱정도 있고요. 자, 하지만 우버는 달라요. 오직 당신만을 위해 미리 그 스마트폰을 구해놨습니다. 19일 아침 10시반부터 오후 7시 사이에 우버 앱을 열고 ‘폰’을 선택하세요. 우버블랙(리무진)이 요금을 받지 않고 당신을 그 장소까지 데려다 드릴 겁니다. 미나토구 어딘가 있는 그곳으로요.”

뭐, 더 얘기하지 않아도 다들 짐작했겠지만,

  1. 긴자는 미나토구에 있다.
  2. 도쿄에는 세 곳의 애플스토어가 있는데, 오모테산도와 시부야, 그리고 긴자다. 물론 제일 먼저 생긴 플래그십 스토어가 바로 긴자 애플스토어.
  3. 그리고 19일은 애플의 아이폰6가 발매되는 날이다.
  4. 친절하게도 4.7인치 실버 64GB 모델, 5.5인치 실버 64GB 모델만 대상이라고 설명해줬다.
  5. ‘그 스마트폰’을 파는 회사가 이런 이벤트를 할 리는 없고, 소프트뱅크와 손잡고 벌인 행사다. SK텔레콤이나 KT는 물론이고, 이번에 처음 이 시장에 뛰어드는 LG유플러스도 한 번 참고해보실만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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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의 음악

애플이 최근 있었던 신제품 발표회를 마치자, 세상은 온통 애플워치 얘기와 새로 판매에 들어가는 아이폰6 얘기, 한국에선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애플페이 얘기로 가득하다. 하지만 사실 난 애플의 지난 발표회 때 U2의 음악에 감탄했다. 애플이 모든 아이튠즈 유저에게 U2의 미공개 새 앨범을 무료로 배포하다니! 만세! 공짜다!

하지만 사실 만세라고 할 만한 것은 아니었고, 세상에는 자신의 취향에 기업이 개입하는 걸 죽도록 싫어하는 사람들이 퍽이나 많았다. 그래서 애플은 역공을 당한다. “애플, 내 폰에다 네 맘대로 아무 음악이나 집어넣지 말란 말야!”

그래서 부랴부랴 애플은 공짜로 받은 U2 앨범을 완전히 삭제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 배포했다. 어쨌든 해프닝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은 음악 산업에 있어서는 정말 또 하나의 기념비가 될만한 과정이었다. 이제 음악을 듣고 돈을 지불하는 과정이 완전히 변했다는 걸 애플이 거대한 스케일로 증명했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시대를 살아가는 소비자는 이제 공짜로 음악을 듣고, 돈은 음악 재생기를 만들어 파는 제조사가 내게 됐다. 마치 중세의 음유시인들이 맘만 동하면 거리와 선술집에서도 노래를 불러제끼지만, 생활비는 영주나 귀족들에게 받아 챙기던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물론 돈을 내는 영주들은 자기 맘에 안 드는 노래가 나오면 이 뮤지션들의 목을 베거나 손가락을 자르거나 혀를 뽑았다. 그렇다면 질문이 있다. 우리 시대의 뮤지션도 애플의 말을, 아니, 후원을 하는 기업의 맘을 거스르면 시장에서 퇴출되는가? 요즘 가장 핫한 음악 기술인 스트리밍 음악 서비스, 그것도 광고로 돈을 버는 스트리밍 서비스는 모두 이렇게 후원자가 뮤지션의 생계를 돕는 방식인데?

최근에 비긴 어게인이란 영화를 봤다. 난 영화를 좋아하고, 뉴욕을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하고, 아이폰도 좋아하는데, 이 영화는 뉴욕을 배경으로 뮤지션들이 등장해 아이폰으로 음악을 나눠듣는 음악 영화였다. 당연히 보러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한 이 영화는 뮤지션과 음악 산업에 대한 얘기다. 함께 순수하게 음악이 좋아서 자신들이 듣고 싶은 음악, 진짜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던 뮤지션들 이야기. 그레타(키라 나이틀리)와 데이브(애덤 르바인), 스티브(제임스 코든)는 영국에서 함께 밴드를 하던 친구들인데 스티브는 뉴욕으로 건너와 길에서 버스킹을 하면서 이스트빌리지 골방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고, 연인인 그레타와 데이브는 데이브가 영화음악을 맡았다 대박을 내면서 뉴욕으로 건너와 소호의 멋진 로프트에서 함께 살기 시작한다. 그러다 잘 나가는 데이브가 그레타를 차고 다른 여자를 만나는 사이, 그레타는 알콜중독인 왕년의 유명 프로듀서 댄(마크 러팔로)을 만나 한눈에 재능을 인정받고 음반 제작에 들어간다…

(이하 스포일러 군데군데)

스토리는 뻔하다. 그런데 디테일은 뻔하지 않다. 이 영화는 계속해서 “우리가 지금 뭘 하는 거지?”라는 질문을 던진다. 프로듀서의 입장에서, 갓 성공한 뮤지션의 입장에서, 세상의 시선 따위 의식하지 않는 인디 뮤지션의 입장에서, 시스템을 지켜가는 성공한 뮤지션과 이 수익구조 먹이사슬 정상에 있는 음반사의 입장에서.

뮤지션들을 괴롭히는 건 온갖 가짜들이다. 할 말도 없는데, 엄마가 시켜서 음악 학원을 다니면서 춤과 노래를 배운 뒤 ‘아이돌’로 키워지는 거지같은 가짜 뮤지션들. 심지어 영국에서 차근차근 성장해 온 데이브마저도 성공하게 된 건 음악이 아니라, 이 음악이 실린 영화가 히트를 친 덕분이었으며, 가수로 성공하기 위해서도 마치 수행이라도 떠났다 온 사람처럼 긴 수염을 기르고 ‘길 위에서'(On the Road)라는 철학적인 척 하는 제목을 단 앨범을 내야 했다. 좋은 음악이 아니라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할 법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 살아가는 뮤지션 말이다. 진짜 음악을 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음악을 하기 위해 가짜들의 세계에 적응해야 하는 뮤지션. 한국이라고 이게 과연 다를까. 신해철과 윤상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지 않으면 음악으로 기억되기 어려운 세상이란 건 세계 어디를 가든 마찬가지다.

그레타는 데이브의 대척점이다. 예쁘고, 재능도 있는데, 음반사가 만들어 놓은 ‘성공의 길’에 올라갈 마음이 없다. 그래서 알콜중독 프로듀서가 술까지 끊어가며 온 힘을 다해 저예산의 한계를 넘어 자신의 뛰어난 재능과 쌓아온 인맥으로 위대한 앨범을 만들어주는데, 이 앨범을 온라인에 올려 헐값에 팔아버린다. “녹음도 우리가 했고, 세션맨도 우리가 찾았고, 작곡도 우리가 했고, 마케팅도 바이럴로 할 건데 왜 10달러의 앨범 가격 가운데 1달러만 우리가 받고 9달러는 음반사가 챙기나요?” 그레타는 이 말을 음반사에게 쏘아붙이고는 전통적인 음반 계약 대신 1달러에 앨범 전체를 온라인으로 팔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레타는 진짜 뮤지션처럼 보이고, 진짜 음악을 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진짜가 되는 길은 가짜로 성공하기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들다. 물론 영화는 “진짜로 살아가는 과정이란 게 그렇게 괴로운 건 아냐, 오히려 껍질만 남은 성공보다 더 즐거울지도 몰라”라고 계속 얘기하지만.

이런 시대에서 데이브는 위기의 음악 산업을 상징한다. 상품성 있는 이들을 후원하고 이들로 이윤을 남겨야하는 ‘귀족’에게 기댄 뮤지션 말이다. 그레타는 반대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비용을 더 줄이고 대중에게 더 기대면서 귀족에게서 독립하려고 한다. 그레타의 사운드 엔지니어링은 정식 스튜디오 대신 친구 스티브가 맥북 한 대로 해결했고, 세션은 진짜 거리 뮤지션(그레타의 백밴드는 동네 발레학원 반주자와 클래식이 지긋지긋한 틴에이저 현악주자들이다)들이 맡았다.

어떤 쪽이 맞는 걸까, 답은 모른다. 애플이 U2의 신보를 통째로 사들여 대중들에게 무료로 뿌리고는 핸드폰을 팔아 번 돈으로 U2에게 대가를 정산하는 시대는 매력적인 듯 보이지만, 애플은 무명의 잠재력 있는 밴드에게 이런 선의를 베풀지 않는다. 수십년 검증된 U2 정도나 이런 대접을 받을 뿐. 물론 애플은 아이튠즈 매치 같은 서비스로 매년 수많은 소비자들이 뮤지션을 후원하도록 간접적으로 돕는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들도 소비자로부터 적은 돈을 받는 대신 뮤지션에게 지급할 돈을 음악 산업의 이해관계 바깥에 있는 기업에게서 받는다.
또 다른 극단에 자리잡고 있는 그레타의 처지는 결과적으로는 음악의 가격 인하와 연결될 것이다. 모든 곡이 0.99달러였던 아이튠즈 모델이 0.79달러에서 1.19달러로 (그나마) 다변화된 것도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곧 인디 뮤지션의 음악이 더 싼 값에 거래되고, 음반사가 아닌 개인 뮤지션이 플랫폼과 계약하는 일도 흔하게 벌어지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1달러에 앨범 전체”라는 그레타와 댄의 가격 정책은 의외로 의미심장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귀족들만의 취미였던 음악이 우리 같은 모든 평범한 사람의 예술로 바뀌게 된 건 결국 기술 발전 덕분이었다. 따라서 기술이 음악가를 괴롭히고 음악을 듣는 팬들에게 손해를 끼칠 거라는 음울한 예상은 하고 싶지 않다. 대신, 비긴 어게인의 거리 녹음 같은, 포크와 인디 음악의 새로운 부흥이 예고된 건 아닐까? 전자음 대신 진짜 악기로 사운드를 채우고, 즉흥성과 영감에 기반을 둔 대중음악이 다시 거대한 장르가 될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것 말이다.

p.s. 아 참, 비긴 어게인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알콜중독 프로듀서, 댄의 성(姓)은 ‘멀리건'(Mulligan)이다. 맞다, 그 멀리건. 골프에서 첫 티샷을 잘못 치면 주어지는 벌타없는 두번째 샷. 인생에는 언제나 실수가 있게 마련이고, 그렇다해도 우리에겐 언제나 다시 시작할(begin again) 권리가 있다. 음악 산업 또한 아무리 개판이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사랑하는 것처럼 음악도 사랑하니까.

친밀함

스티븐 레비의 본질을 꿰뚫는 이 글, 애플의 방향 이해하기, 내밀함에서 재인용을 하자면, 조나단 아이브는 이렇게 말했다.

“본질적으로 애플 워치는 사용자와 감정적인 연결을 이루기 위한 수 십년에 걸친 노력이 정점에 달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가 그동안 해온 것이죠. 복잡함을 받아들이면서 개인화 시키는 겁니다.”

애플은 늘 이런 방향으로 움직여왔다. 생각해 볼 점이 있다. 모든 맥북에는 사과 모양의 밝게 빛나는 조명이 있다. 이 조명은 하얀 색으로 빛나면서 맥북 사용자에게 애플 브랜드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만방에 과시하도록 도와주지만, 한편으로는 사용자가 화면의 밝기를 조절하면 그에 따라 함께 밝기가 변하기도 한다. 슈퍼 하얀색에서 연한 회색까지 명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또 하나. 지금의 맥북에선 사라졌지만, 이전의 맥북 모델에는 ‘잠자기’를 보여주는 작은 LED램프가 전면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이 램프는 겉으로는 보이질 않았다. 알루미늄 케이스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서 불이 들어왔을 때만 은은하게 빛이 새어나오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맥북이 잠자기에 들어가면, 이 불은 아이가 잠들어 숨을 고르게 쉬는 것처럼 천천히 밝아졌다 어두워지곤 했다.

하나 더. OSX이나 iOS 모두에서 비밀번호를 잘못 입력해 보라. 입력 인터페이스가 좌우로 1, 2차례 흔들린다. 마치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드는 것처럼. “No”라는 뜻이다. 해본 김에 계속 해보자. 한국어 음성인식 측면에서 애플의 시리를 압도하는 구글 음성검색도 “다음 곡 틀어줘”라는 소리를 알아듣지 못한다. “재미있는 얘기 좀 해봐”란 얘기에 아무 대답도 않는다. 시리는 하루 종일 말을 못 알아듣고 헛소리를 할 때도 있지만, “마누라한테 전화해봐”라거나, “아내에게 전화해 줘”, “OOO과 전화” 등의 모든 말을 다 알아듣는다. 다음 곡을 틀어주는 건 물론, “울적한데 노래나 듣자”라는 말도 알아듣는다.

애플을 특별히 기술이 뛰어난 회사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이들이 엄청난 혁신을 이뤄간다고 옹호할 계획도 없다. 대신, 이들이 만드는 제품은, 뭔가 나하고 참 가깝게 닿아 있다. 그리고 애플의 사람들은 그 친밀함을 발전시키려고 수십년 동안 노력해 왔다. 그래서 손을 뻗거나, 뭔가를 부탁하면, 이 회사가 만든 기계들은 기꺼이 사람의 요구에 응답할 줄 안다. 애플워치가 그 가까운 친밀함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된다면, 사람들은 또다시 기꺼이 지갑을 열 것이다.

애플워치

이번 발표에서 사실상의 주인공이었던 애플워치를 다룬 기사들을 보자면 늘 그렇듯 아쉬움과 “실망했다”는 탄식이 가득하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패턴이다. 애플이 뭔가를 발표할 때마다 일어나는 현상인데, 역시 나 또한 그랬다. 물론 그런데도 또 보고 있었고. 다 본 뒤 발표를 곱씹어보니 이러저런 생각이 든다. 이번에는 리앤더 카니의 글이 가장 와 닿았다.

사실 누구도 애플에 대한 이런 종류의 실망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애플이 구글처럼 가게에서 출입을 금지시킬 정도의 안경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혼자 움직이는 차를 만들지도 않는 데다, IBM처럼 퀴즈쇼에서 사람과 겨뤄 이기는 컴퓨터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플에겐 얼리어답터의 실망감이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하지만 애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도 아니고 슈퍼컴퓨터를 만들지도 않는다. 이 회사는 보통 사람들이 쓰기 편한 괜찮은 제품을 괜찮은 값에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소비자가 지갑을 열고 난 뒤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는 제품을.

카니가 찾아낸 포인트는 이렇다.

  1. 애플워치는 크지도, 두껍지도 않다. 멋진 시계다. 키노트에서 본 것보다 실제로 보면 더욱 멋지다. 또한 카니가가 평소 차고다니던 카시오의 패스파인더보다 가볍다.
  2. 진동 알람은 부드럽다. 패턴도 여러가지인데 쓰다보면 시계를 쳐다보지 않고도 알람패턴으로만 정보를 얻을 정도다. 게다가 한시간에 한번은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알람을 주는 식의 기능은 생각보다 매력적이다.
  3. 잠재 활용처가 무궁무진하다. 카니가 본 데모에서 애플워치는 TV 리모컨, 아이튠즈 재생, 잠긴 문 열기, 공항 체크인, 스타벅스 커피 구매 등등의 일을 했다. 당연히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것이다.
  4. 아이팟이 MP3플레이어가 아니라 패션 아이콘이었던 것처럼 애플워치도 전자제품이면서 동시에 주얼리 역할을 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문을 여닫고, 커피를 사고, 전등을 켜고 끄는 모든 일을 해주는 ‘진짜 통합 리모컨’인 애플워치 없이 어딜 돌아다닐 생각을 과연 할 수 있을까?
  5. 이모티콘(emoji)만 봐도 마찬가지. 애플은 시계 가득 이모티콘을 띄운다. 깊이 생각한 것 같다. 우린 진짜 목소리는 물론 ‘ㅠㅠ’, ‘ㅋㅋ’ 같은 문자도 더 이상 열심히 주고받지 않는다. 작은 시계 화면은 뭘 보여줄 수 있을까? 화면 가득한 이모티콘이 대답이 될 수 있다.

애플을 너무 긍정적으로 보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애플이 이 시계에 뭘 특별히 더했는지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애플은 지금까지 등장한 스마트워치의 기능들을 기본적으로 활용하면서 여기에 자신들만의 색을 입혔다. 애플이 ‘쓸데없이’ 신경을 쓴 부분들이 바로 그런 애플의 색깔이 됐다.

우선 ‘디지털 크라운’, 그러니까 아날로그 시계에서 태엽감는 부분에 해당하는 애플워치의 측면 다이얼 얘기다. 아무런 버튼도 없는 구글과 LG가 함께 만든 스마트워치와 비교하면 미니멀하지 않은 군더더기같은 버튼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실 이 작은 다이얼이 시계를 시계답게 만든다. 지금이야 익숙해졌지만, 처음 구글의 안드로이드웨어를 접했을 때 내가 겪었던 당혹감은 “뭘 하라는 거야?”였다. 매뉴얼을 읽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디지털 크라운은 이렇게 처음 써보는 사람이 “뭘 해야하지?”라고 고민해야 하는 단계를 없애준다. 아이폰의 ‘홈버튼’처럼, 아니면 아이팟의 ‘터치휠’처럼. 난 아이팟을 처음 봤을 때 그 커다란 ‘터치휠’에 반했다. 터치휠 없이도 MP3플레이어는 만들 수 있었지만, 별 생각없이 매뉴얼을 보지 않고 쓸 수 있던 MP3플레이어는 아이팟 뿐이었다. 터치휠 덕분에. 그래서 사람들은 아이팟을 경쟁제품보다 훨씬 좋아했다.

또 하나의 ‘쓸데없어 보이는’ 부분은 진동알람. 애플은 이 알람을 설명하면서 “상대방의 심장박동도 느낄 수 있다”고 자랑했다. 왜? 왜 그 정도로 세밀하게 조절되는 진동알람이 필요할까? 이 부분은 이모티콘에 대한 카니의 관찰을 뒷받침한다. 화면을 집중해서 보지 않아도, 그러니까 흘깃 스쳐보기만 해도 정보를 얻어야 하는 게 손목시계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이모티콘과 심장박동까지 전해주는 섬세한 진동알람은 글자를 읽지 않고도, 아니 시계 화면에 눈의 초점을 맞추기도 전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직관적으로 전달해 준다. 시계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처럼 오래 쳐다보는 기계가 아니다. 스쳐지나가는 찰나에 최대한의 정보가 전달돼야 한다. 피부와 맞닿아 있는 시계에서, 알람은 당연히 스마트폰보다 훨씬 중요한 입출력 수단이 된다.

그리고 끝으로 시계줄. 구글이 스마트워치를 선보이고 난 뒤 했던 말은 “기존의 시계줄과 호환됩니다”였다. 애플은 직접 만든 시계줄을 들고 나왔다. 기존의 시계줄과 호환되지도 않는다. 오직 애플워치만을 위한 시계줄이다. 그만큼 이 시계줄이 중요하다는 얘기고, 시계줄 덕분에 애플워치는 전자제품이 아닌 스위스 시계같은 시계가 된다. 349달러라는 비싼 가격을 합리화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위스 시계를 살 돈으로 애플 시계를 사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 뿐이니까. 이렇다면 이번 행사에 애플이 패션 잡지 기자들을 잔뜩 부른 것도 이해가 간다. 애플이 설득하려는 대상은 시계를 사는 소비자다. 최신 전자기기를 사는 소비자가 아니고.

그리고 늘 그랬듯, 이번에도 최신 전자기기를 사는 사람들이 실망의 탄식을 내뱉는 동안, 멋진 시계를 찾던 사람들은 애플에게 지갑을 열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시계를 산다는 건 이미 시간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 시대는 지난지 오래됐다. 지금 굳이 다시 시계를 사야 한다면, 그건 시계를 찬다는 것 자체가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워치는 오메가나 태그호이어를 차는 것보다 값싼 선택이지만 그에 못잖게 멋지고 첨단이다. 또 스워치를 차는 것보다는 다소 비싼 선택이 되겠지만 스워치보다 훨씬 럭셔리하며 스워치만큼 캐주얼해질 수 있다. 애플워치의 이 럭셔리도 아니고 값싼 제품도 아닌 애매한 포지션이 재앙이 될지, 또 하나의 축복이 될지는 판매가 시작되는 내년 초에나 알게 되겠지만 지금까지로 보면 애플워치는 유일하게 갖고 싶은 시계다. 아이폰이 피처폰처럼 값싸지도 않았고 금으로 감싼 삼성핸드폰처럼 럭셔리하지도 않았던 시절처럼.

아이폰5s 사용기

해마다 이맘 때면 아이폰 신제품이 나온다. 2009년 늦가을에 아이폰 3GS가 나왔으니, 벌써 5년 째 반복됐다. 많은 일이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콧대 높았던 한국 통신사들이 정책을 대거 수정했고, 세계 최고가 눈앞에 있을 줄 알았던 한국의 전자기업 두곳 가운데 한 곳은 정말로 최고가 됐으며, 다른 한 곳은 이전 10년 간 노력한 걸 지난 5년 동안 다 날려버렸다. 모든 게 아이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올해도 새로 아이폰이 나왔다. 5년 전과는 사뭇 달랐다. 해외에선 아이폰5s 샴페인골드 색상은 살 수가 없다는데, 난 그냥 회사 옆 대리점에 가서 예약도 안 하고 판매 첫날 사왔다. 예전처럼 아이폰을 사려고 줄을 서는 일은 없어진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도 이번 아이폰을 사기 전에는 약 8개월 가량 안드로이드를 썼다. 넥서스4가 꽤 맘에 들었기 때문이기도 한데, 사실 어쩔 수 없어서였다. 추정에 따르면 한국의 아이폰 보급률은 7% 이하. 이나마 외국 브랜드 가운데에는 최고 수준이지만, 아이폰 대 안드로이드폰 연합전선이 4:6 정도의 경쟁을 하고 있는 외국 시장과는 전혀 달랐다. 한국에선 안드로이드가 표준이란 뜻인데, 이런 상황에서 아이폰을 쓴다는 건 시장을 이해하지 않겠다는 얘기와 다를 바 없어서 안드로이드를 억지로라도 써야 했다.

그런데도 결국 이번에 다시 아이폰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잘 돌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소리 때문이었다.

애플이 만드는 기계들은 디자인 때문에 뛰어난 인상을 주긴 하지만, 가끔은 리뷰로 드러나지도 않고 겪기 전엔 알기도 힘든 ‘소리’가 정말 달라서 차이를 느끼게 한다. 이번에 차이를 느낀 건 차를 탈 때였다. 최근 특히 열심히 듣고 있는 Imagine Dragons라는 밴드가 있는데,(들어도 들어도 질리질 않는다) 이들의 앨범 가운데 제일 좋아하는 곡이 Demons라는 곡이다. 이 노래는 베이스 드럼이 엄청나게 울려대면서 음울한 분위기를 강조한다. 그런데 베이스 음역이 너무 낮아서 늘 소리가 찢어졌다. 좋은 이어폰을 사야 하나, 자동차의 스피커 시스템을 바꿔야 하나 고민했다. 그런데 휴대폰만 바꿨을 뿐인데도 아이폰5s를 산 첫날 갑자기 곡 전체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마치 이게 늘 타고 다니던 내 차의 오디오 시스템이 맞느냐는 듯.

이상해서 뒤져봤다. 아이폰이 갤럭시나 엑스페리아보다 뛰어난 오디오 칩셋이라도 쓰나 싶어서. 애플은 싸이러스로직(Cirrus Logic)에서 만든 오디오 칩셋을 쓰고, 갤럭시는 울프슨의 칩셋을 쓴다. 보아하니 성능 평가로는 두 칩 가운데 큰 차이가 없는 모양이다. 적어도 나같은 아마추어가 느낄 수준은 아닌 듯 싶다. 아이폰5와 갤럭시S3를 비교한 결과에서도 큰 차이가 없다는 게 결론이고 나도 동감한다. 문제는 자동차, 아니 블루투스였던 모양이다.

애플은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들고 삼성은 안드로이드를 고쳐서 사용한다는 차이로 추정된다. 갤럭시는 심지어 블루투스에 APT-X라는 더 높은 대역의 음향을 무선으로 전달하는 규격까지 지원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아이폰보다 더 좋은 소리를 내야 정상이다. 그런데 듣기엔 아이폰이 낫다. 몇 가지 추정이 있다. 아이폰은 싸이러스로직의 오디오칩셋을 독점 사용한다. 아이폰과 기타 애플 기기만을 위해 쓰도록 생산을 맡기고, 다른 곳에는 팔지 못하게 하는 칩셋이다. 그러니까 애플이 직접 만드는 부품처럼 관리하는 셈이다. 여기서 OS와 긴밀한 통합이 가능해진다. 심지어 아이폰5부터는 노이즈캔슬링을 위해 싸이러스 칩 속에 또 다른 잡음제거용 오디오칩을 박아넣기도 했을 정도다. 그 회사의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삼성전자 사람들에게 듣기로는 안드로이드 자체의 오디오 처리 기술에도 문제점이 있다고 한다. 하드웨어에서 아무리 최고 수준을 맞춰봐야 OS 레벨에서 음향을 제대로 지원하질 못한다는 거다.

소리만 달라진 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듯, 카메라도 확 달라졌다. 64비트 프로세서로 제어하는 카메라는 다른 스마트폰과 비교가 불가능하다. 슬로우모션으로 영상을 찍으면 정말 기가 막힌다.  초당 120프레임을 찍는 동영상기술 덕분이다.(일반적으로 사람 눈은 초당 30프레임을 찍으면 자연스러운 영상으로 이해한다) 프로세서의 성능이 받쳐주지 않으면 1초에 120장의 이미지를 수십초 이상 처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아이폰의 카메라는 화소수보다 센서 면적당 들어오는 빛의 양을 늘리는데 집중해 성능을 개선해 왔다. 800만 화소라는 경쟁제품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화소의 카메라는 화소수가 적은 대신 색상을 훨씬 풍부하게 기록한다. 그런데 5s에서는 이 기능이 더 발전했다. 발전된 성능이 체감되는 순간은 실내나 저녁처럼 자연광이 급격히 줄어드는 ‘어중간하게 어두운’ 환경에서다. 이런 환경에서는 빛이 부족해서 대부분의 자동 카메라가 영상의 흔들림을 막기 위해 플래시를 터뜨린다. 그런데 아이폰5s는 플래시를 ‘자동’으로 설정해 놓으면 거의 대부분의 카메라가 플래시를 터뜨리는 이런 환경에서 혼자만 고집스레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는다. 꽤 밝은 렌즈를 사용한 DSLR을 쓰는 느낌이다. 게다가 아이폰의 플래시는 일반적인 컴팩트카메라의 플래시보다 훨씬 낫다. 플래시가 터질 때 함께 터지는 살구색 플래시 덕분이다. 백색광만 사용하는 경우와 달리 인물의 피부톤을 훨씬 자연스럽게 만들어준다. 솔직히 광학줌 기능을 제외한다면 이젠 미러리스나 DSLR을 굳이 들고 다닐 필요를 못 느낄 정도다.

그리고 지문인식. 이건 너무 편해서 더 할 말이 없다. 그러다보니 부작용이 생겼다. 평소에 늘 쓰던 아이패드를 켜기가 짜증난다. 도대체 왜 잠금을 해제할 때 숫자 네 개를 입력하는 귀찮은 일을 해야만 하는 걸까.

Road to Perfection

iphone5s

올해도 어김없이 그들은 죽음의 행진(Death March)을 벌였다. 애플이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쓰고 있는 이 용어는 원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불가능한 과제를 불가능한 시간 내에 마쳐야만 할 때 쓰던 말이다.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을 목표를 하루 14시간 씩 주말도 없이 일하면서 어떻게든 완수할 때 쓰던 표현. 그들은 죽음의 행진에 들어갔다고 스스로를 자조했다. 사실 애초에 죽음의 행진이란 말 자체가 전쟁 포로를 끝없이 걷게 하고 강제 노역을 시키면서 만들어진 말이다. 포로들이 다 죽을 때까지 행진이나 강제노역이 계속됐으니까. 끔찍한 단어지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쓰기 시작하면서 알려진 이 말은 이젠 애플 같은 기업은 물론 수많은 기업의 프로젝트 관리에서 흔히 쓰이곤 한다.
새 아이폰 발표를 보기 전 우연찮게 애플 협력사 분께 애플과 함께 일하는 얘기를 듣게 됐다. 이 때 이분이 말씀하신 죽음의 행진 얘기가 인상적이었다. 당장 신제품 출시 기간이 다가오면 애플은 죽음의 행진을 선포한다. 그리고 모든 엔지니어와 생산관리 부서 직원들이 생산 현장으로 떠난다. 쿠퍼티노 사무실에서 노닥거리는 건 애플 직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얘기와 마찬가지다. 실제로 팀 쿡이 회의 때 중국 사업 담당 부사장에게 “왜 아직도 여기 있는거요?”라며 당장 비행기를 태워 내쫓았다는 얘기는 이미 유명한 일화다. 그러니 회사에 남아 있을 간 큰 직원은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 기간에는 폭스콘은 물론이고 애플의 서플라이 체인에 들어가 있는 모든 회사들에 애플 직원들이 파견돼 상주한다. 한국에 팀 쿡이 툭하면 조용히 나타났던 것도 이렇게 보니 특별히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신제품 출시 전 쿡은 자연스럽게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 같은 부품 공급사를 둘러봐야만 했던 셈이다.

제품 생산이 시작된 이후의 관리도 다르다. 엔지니어와 공급망 관리자가 모두 파견되는 이유가 있었다. 이들은 서로 견제 역할을 맡는다. 우선 애플 엔지니어들은 제품 생산이 시작되면 부품의 완성도만 따진다. 애플의 구조상 이들의 평가는 최종 제품의 성공을 위한 담당 부품의 완성도로만 평가된다. 생산일정이든, 가격이든 그런 건 신경쓰지 않는다. 그리고 관리자들은 가격과 일정만 따진다. 이들은 가격과 일정으로만 평가된다. 둘 다 상사가 다르고 자기 보스가 팀 쿡에게 직접 보고하는 관계다보니 자연스레 서로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게 납품업체로서는 환장할 노릇이 된다. 같은 회사에서 두명이 나와서 한쪽은 시간이든 비용이든 알 바 아니니 성능을 높이라고 닥달하고, 다른 쪽에선 성능이든 디자인이든 알 바 아니니 주어진 시간에 정해진 가격에 부품을 내놓으라고 난리를 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단순한 구매자의 횡포와는 거리가 멀다. 애플 엔지니어들은 절대로 괜히 트집잡지 않는 게 특징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카메라 모듈이라도 하나 새로 만들려면 이들은 렌즈에 쓰이는 유리의 재료와 해당 유리를 만드는 화학 회사의 최신 기술, 광학 센서 생산 기업의 현재 재무상황 및 최근 등록 특허까지 줄줄이 꿰고 있다는 것이다. 공급망 관리자들도 남달라서 자신들이 관리하는 회사가 일정을 맞추지 못하겠다고 하면 “최근 개발된 이런 기계를 쓰면 수율이 높아지고 단위 생산량이 늘어나서 하루에 20% 더 생산할 수 있다”는 식으로 접근한다고 했다. 그러면 당연히 일정이 앞당겨진다. 이를 위해 납품업체가 어떤 기계를 사서 어떤 생산라인을 만들지까지 애플이 직접 정한다. 물론 기계를 사고 라인을 짓는 건 납품업체 비용이다. 하지만 이렇게 일해도 애플과 일하면 다른 곳에서 경기가 나빠 입은 모든 손실을 만회할 만큼의 이익이 남는다고 했다. 이렇게 납품업체에게 넉넉한 돈을 주면서도 벌써 5년 째 인플레도 감안하지 않은 동일 가격에 신기능이 들어간 신제품을 판매 기록을 경신하며 팔아대는 게 애플의 마술이다.

죽음의 행진은 현지의 납품업체 공장에서도 함께 진행된다. 납품업체들은 쿠퍼티노로부터 하루에도 몇번씩 걸려오는 컨퍼런스콜을 받는데, 새벽에도 전화를 받지만 낮에도 전화를 받는다고 했다. 미국에서도 24시간 일한다는 얘기라 납품업체들도 불평도 못한다. 힘들지만 누구도 애플과 일을 그만두려 하지 않는다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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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애플이 신제품을 본격적으로 대량생산하기 전에 생산한다는 시제품만 2만 개란 사실. 중국에서 아이폰 관련 루머가 미리 새어나올 수밖에 없는 건 스티브 잡스가 죽어서 애플에 군기가 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폰이 워낙 많이 팔리면서 시제품 자체가 관리 불가능한 수준으로 대규모로 제작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애플은 늘 새로운 시도를 했다. 이번에는 64비트 프로세서와 동작인식만 전담하는 보조 프로세서가 처음으로 들어갔고, 지문인식 센서도 쓰였다. 어떤 스마트폰 회사도 이런 건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스마트폰에서 처음 쓰인 기술 가운데 애플이 처음 사용한 기술은 수없이 많다. 정전식 터치스크린과 코닝의 강화유리인 고릴라글래스, 얇은 두께를 만드는 인셀 터치패널이라거나 동작을 미세하게 인식하는 자이로스코프 등등. 시장에서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천만 대가 넘게 팔릴 단일 모델에 이렇게 많이 사용하는 회사가 애플 말고 어디 있는지 나는 정말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니 혁신이 없네, 이젠 애플도 한 물 갔네 얘기하는 것이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자유지만, 나는 당장 아이폰 5S가 탐난다. 한국에는 언제 나오려나.

Chasing Mavericks

mavericks난 서핑은 할 줄도 모르고, 잘 알지도 못하지만 지난해에 개봉했던 영화 체이싱 매버릭스(Chasing Mavericks)는 정말 재미있게 봤다. 실존했던 서퍼 제이 모리아리티의 전기 영화인데, 가장 인상적인 건 매버릭스의 큰 파도를 타기 위한 과정이었다. 서핑에 대한 지식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무식한 나는 서핑이라고 하면 햇살 따사로운 태평양 해변에서 멋진 수영복을 입고 여자들 앞에서 폼이나 잡는 일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큰 파도를 타는 서퍼들은 달랐다. 큰 파도는 바람과 함께 오는데, 그 중에서도 매버릭스에 나타나는 기록적인 파도는 겨울에 주로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이런 파도를 타는 진짜 서퍼들은 햇살 따뜻한 한낮의 여름 바다에서 폼을 잡는 대신, 악조건이 다가올 때에야 비로소 길을 나선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쌀쌀한 북부 캘리포니아의 겨울에 이들은 비바람을 예고하는 라디오 일기 예보만 노심초사 기다리다가, 악천후 소식에 환호하면서 캄캄한 새벽에 차를 몰고 바다로 나간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바다 위에서 새벽 태양과 함께 모든 걸 집어 삼킬 듯 밀려오는 집채만한 파도를 향해 널빤지 하나만 의지한 채 몸을 내던진다.
매버릭스는 1975년 제프 클락이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서핑에 성공할 때지만 해도 서핑 하기에는 너무 큰 파도로 받아들여졌다.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이 파도에 도전하게 된 건 그 뒤로도 15년이 더 지난 1990년 부터다. 영화의 주인공 제이는 1994년, 겨우 16살이 됐을 때 매버릭스를 탔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의 전설이 됐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제이가 서핑을 배운다는 건 파도 위에서 한가롭게 노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었다. 여기서 서핑이란 배도 뒤집어버리는 큰 파도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살아남기 위해 서퍼들은 숨을 4분까지 참는 법을 익히고, 근육을 단련하며, 상어를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력을 키운다.

애플이 새 맥OSX을 만들면서 그동안 써 왔던 호랑이, 사자, 재규어 같은 고양이과 동물 이름을 버리고 택한 캘리포니아의 지명 이름 시리즈의 첫 OSX 이름이 매버릭스라는 건 그래서 상징적이다. 서퍼들을 집어삼키는 파도로 유명한 그 곳. 아무나 매버릭스에서 서핑을 할 수는 없는 일이고, 이곳에서 서핑을 한다는 건 목숨을 거는 일이지만, 동시에 매버릭스를 타는 서퍼가 된다는 건 서퍼로서 최고라는 뜻이기도 하다. 애플에게 과연 매버릭스보다 더 적절한 이름 선택이 있었을까.

애플의 지난 2년을 돌아보면 암담했다. 전설의 리더는 그들을 떠났고, 전설의 리더가 만들어 놓은 팀은 분해되기 시작했다. 미디어는 새로 내놓는 제품마다 ‘스티브 잡스의 유작’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경쟁자들의 추격은 거센 파도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매버릭스 수준이었다. 주가는 곤두박질 쳤고, 한 때 애플을 ‘미국의 자존심’으로 일컬으며 애플의 편을 들었던 정치권에서까지 애플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파도가 몰려올 때 쉬운 선택은 파도를 피하는 것이지만, 어려운 선택은 파도에 정면으로 맞서는 법이다. 이번 WWDC 발표에서 애플이 보여준 건 이런 정면 대응이었다.

이 비디오는 다시 볼 때마다 애플이 어떤 회사인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애플이란 원래 사회 부적응자이고, 반항아이며, 문제아였다. 네모난 구멍에 박혀 있는 동그란 못 말이다. 이 비디오에서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예를 들었지만, 사실 전자기기 제조업체 가운데 애플처럼 취향(taste)을 반영한 제품을 만드는 회사란 과거의 소니말고는 생각나질 않는다. 사실 지난 2년 동안 애플은 완벽하게 자신들의 취향을 잃어왔다. 회사의 기본 철학이 ‘다르게 생각하는 것’인데, 이들은 다르게 생각하기는 커녕 회사 전체가 스티브 잡스 추모 모드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잡스의 시대에 만들던 것 같은 제품들의 ‘조금 나아진’ 후속판들만 계속 공개됐다.

이번엔 달랐다. 필 실러는 발표 일정도 정해지지 않은 새 맥 프로를 자랑스레 보여줬고, 새로운 프로모션 비디오는 몇 마디의 문구를 담은 글자와 점, 선, 면으로만 완성된 ‘디자인’부터 총천연색 TV 광고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됐다. 심지어 레드 제플린을 데모 음악으로 쓰는 일이 생겼고, 경쟁사에 대한 비아냥을 점잖게 가리는 일도 사라졌다. 각각의 발표자들은 모두가 스스로 주인공이 되려는 듯 자신의 성과를 자랑했다. 다양함이 솟아났고, 일관성은 사라졌다. 번잡스러웠지만, 그게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질서가 생겼다는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건 디자인’이란 투로 이번 발표를 얘기하지만, 오히려 눈에 띄는 건 엔지니어링과 서비스다. 어떤 OS도 보여주지 못했던 깊이감을 가진 새 iOS7은 디자인 팀의 상상력 덕분에 만들어진 새 개념이지만 동시에 이를 가능하게 하는 엔지니어링 덕분에 현실이 됐다. 중력센서로 화면을 기울일 때 여러 장의 레이어에 깊이감을 만들어내는 게 단순히 장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런 식의 인터페이스는 상하좌우로 화면을 ‘평면적으로’ 밀어내는 것 말고는 아무런 동작도 할 수 없던 기존의 스마트폰 OS에 깊이감을 만들어냈다. 에디 큐의 서비스도 달라졌다. 아이북스가 맥으로 자리를 넓힌 것도 인상적이지만, 이른바 아이라디오가 결국 나왔다. 구글의 올 액세스 음악서비스가 아주 좋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이라디오도 똑같이 좋은 음악을 사용자의 취향에 기반해 소개해 준다. 다만 주안점이 다르다. 구글이 강조하는 건 어떤 음악이든 소유하지 않고 클라우드에 두고 들을 권리다. 애플이 강조하는 건 소유하는 음악에 기반한 새로운 발견이다. 다르게 설명하자면, 구글의 올 액세스를 쓴다면 새 음악을 발견하긴 상대적으로 힘들어도, 한 번 발견한 음악은 내 음악처럼 찜해놓고 몇 번이고 들을 수 있다. 반면 애플의 아이라디오를 쓴다면 한 번 발견한 음악을 내 음악처럼 몇 번이고 들으려면 돈을 내고 그 음악을 사야 한다. 하지만 ‘살 마음이 들 법한’ 음악을 끊임없이 들려주면서 새 음악을 발견하게 한다. 심지어 세상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신보를 독점 제공하면서까지. 그러니까, 이건 이런 뜻이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애플이 모든 걸 다 잘하던 시대는 끝났다. 하지만 이들은 대신 애플 방식으로 모든 걸 만들기 시작했다.

스티브 잡스가 팀 쿡에게 했던 마지막 충고는 “나라면 어떻게 할지 생각하지 마세요”였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이제야 자신들의 위대했던 옛 리더의 그늘에서 벗어난 것 같다. 옛 시대는 끝났고 이제 매버릭스의 시대가 왔다. 파도는 어느 때보다 높고 거칠고 두렵지만, 파도 위에 올라서야 파도를 탈 수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