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의 협상

스티브 잡스가 뉴스코프의 제임스 머독과 아이패드 발매를 앞두고 주고받은 이메일이 얼마전 공개됐다.
협상가로서의 스티브 잡스는 늘 유명하지만, 이 이메일들은 특히 인상적이다. 원래 협상의 실무란 지난한 일이다. 그건 실무자들의 영역이고 이 경우도 마찬가지라서 협상 담당은 애플의 에디 큐와 뉴스코프 자회사(이자 담당회사)인 하퍼콜린스의 CEO인 브라이언 머레이였다.

그리고 ‘끝판왕’인 제임스 머독이 막판에 나타나 이 최종 협상안을 뒤집겠다는 얘기를 한다. 협상에서 협상 최종결정권자는 도장 찍기 직전 아니면 협상에 등장하지 않는다. 자기 선에서 밀리면 거기에서 협상이 끝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머독이 직접 협상 테이블로 나왔다는 건 애플이 워낙 완고해서 이미 애플의 제안을 그대로 받든지, 아니면 포기하든지 두 가지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 이메일 대화는 뭔가가 이뤄지고 변했음을 뜻하지 않는다. 10달러와 13달러라는 가격 차이가 문제라고? 왜 애플과 다른 가격에 다른 유통사에 책을 팔면 안 되느냐고? 좀 더 시간을 가져보면 안 되느냐고? 다 거짓말이다. 그건 그냥 편지 서두에 쓰는 날씨 얘기 같은 겉치레에 불과했다.

머독은 스티브 잡스에게 끊임없이 “우리는 이런 걸 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한다. 애플이 로열티 조항을 완화한다면 우리는 좋은 가격 딜을 주겠다, 애플이 협상 기간을 늘려준다면 더 좋은 대안을 내겠다, 잡스가 전화한다면 나는 영국에서 주말이지만 바로바로 답하겠다, 는 식이다. 이게 진짜다. 머독은 “우리가 지금 애플과의 협상에서 약자입니다”라는 얘기를 한 것이다.

그래서 잡스가 한 건 이런 얘기를 하는 파트너가 원하는 걸 제공하는 일이었다. ‘명분’ 말이다. 잡스는 “아마존이고 애플이고 모두 못 믿는 건 상관없는데, 적어도 애플은 아마존보다 훨씬 나은 대안이니 둘 다 써보고 비교해 달라”고 말한다. 다른 얘기는 다 수사다. “우리가 아마존보다는 착하거든요”라는 한 마디, 이 얘기가 핵심이다. 머독이 잡스에게 설득당해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을까? 천만에. 이 이메일이 죽은 스티브 잡스의 책상에서 나왔을 리가 없다. 제임스 머독이 머레이에게 메일 내용을 전달한 뒤 “뉴스코프의 실질적 지휘자로서 나는 이 만큼 노력했다”는 생색을 냈을 테고, 뉴스코프 내부에서 돌고 돌았을 것이며, 그래서 법원에도 증거물로 올라갔겠지.

그러니까 좋은 협상가의 조건은 상대가 실질적으로 원하는 걸 찾아내는 능력이다. 이른바 BATNA(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 말이다. 이 계약의 막바지에 서 있는 스티브 잡스에겐 다 만들어 놓은 판을 깨지 않는 게 배트나였다. 이를 위해선 하퍼콜린스에게 립서비스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만 상황이 나빠지면 계약은 깨도 된다. 그리고 머독에겐 머레이의 징징거림을 달랠 명분이 배트나였다. 아무리 봐도 애플의 계약안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경쟁사들이 다 그랬으니까.) 그러니 주말도 잊고 노력해서 잡스에게 립서비스를 받는 게 영화와 방송, 출판, 신문을 소유한 거대 미디어 기업 2세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광고

그랑 오텔 드 파리

grandhotel MWC 때문에 스페인에 왔다가 귀국하기 전 마드리드를 잠시 둘러봤다. 마드리드에서는 대학 때 한 달 쯤 살았던 적도 있고, 와이프와 신혼여행 비슷하게 놀러오기도 했던 탓에 꽤 익숙하긴 한데, 저 건물은 늘 지나치면서도 큰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어서 잘 몰랐다. 지금은 공사에 들어간 탓에 다 가려져 있지만 이 건물은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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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지어졌을 때만해도(가운데에 보이는 건물) 마드리드의 중심인 태양의문(Puerta del Sol) 광장의 명물이었다고 한다. 바로 1860년에 세워진 ‘그랑오텔 드 파리’다. 마드리드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파리’라는 프랑스 수도 이름을 달고 영업을 시작했던 건 애초에 이 호텔이 파리에서 마드리드 사이의  철도가 개통되면서 스페인을 찾는 프랑스인들의 수요를 노리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유럽에 프랑스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겠냐만, 그 중에서도 19세기 후반의 프랑스는 철도의 중심지로 유럽을 연결했다. 바로 옆나라였던, 특히 언어와 문화가 비슷했던 스페인도 이렇게 뻗어나가는 프랑스 파리의 철도와 마드리드를 연결하면서 빠르게 근대화를 시작했다.

그 덕분에 이 호텔은 스페인에서 문을 연 가장 화려한 근대식 호텔이었고, 처음으로 모든 객실마다 개별 욕실을 갖춘데다 ‘룸서비스’라는 개념도 처음 도입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게다가 정통 프랑스 요리를 서빙하는 멋진 식당을 갖췄고, 한번에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제국카페'(Café Imerial)는 마드리드의 명소로 이름을 날렸다. 당연히 엄청나게 비쌌지만, 수요는 늘 넘쳤다. 19세기 스페인의 명물이었던 이 호텔은 20세기 초까지도 엘리베이터를 처음 설치하고 전기로 불을 밝히면서 그 명성을 이어갔다. 하지만 1936년 발발한 스페인 내전은 모든 걸 바꿔 놓았다. 내전이 끝나고 다시 장사를 시작하려고 했더니 경쟁자들이 우후죽순 생겨난 것이다.

마드리드 관광의 시작은 대부분 태양의문 광장에서 시작되는데, 경쟁 호텔이 아무리 늘어난다 해도 그랑오텔드파리의 위치만큼은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위치만 갖고 장사를 할 수는 없는 법이라서 결국 이 호텔은 2006년 문을 닫게 된다. 마드리드에서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잡은 그랑오텔드파리였지만 이후 5년 동안 주인도 나오지 않고 딱히 활용처도 찾지 못한 이 건물은 그냥 흉물스럽게 방치된다.

2011년, 새로운 복구 계획이 나왔다. 새로운 호텔 대신 이 장소에 눈독을 들인 건 애플이었다. 마드리드에 새로 문을 열 애플스토어는 뉴욕 5번가의 애플스토어보다도 더 큰 규모로 지어질 것이며 1, 2층과 지하 일부를 사용한다는 계획에 따라 지어지고 있다.

이 장소의 운명도 얄궂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땐 프랑스인을 위한 것이었고, 세기가 두 번 바뀌면서 이젠 미국 기업의 스페인 진출로가 됐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랑오텔드파리가 스페인 근대화의 상징적인 랜드마크였듯, 애플스토어 마드리드도 스페인 정보화의 상징적인 랜드마크가 되진 않을까. 게다가 애플이라면, 이 역사적인 장소에 가게를 내면서 대충 만들지는 않을 테다. 애플에게도, 마드리드에게도 참 잘 어울리는 장소다.

애플의 소리

아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따리로 받아 챙기는데, 아빠는 아무 것도 받는 게 없어서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 새 맥북을 샀다. 아직 한 달도 안 됐지만 꽤 만족하고 있다. 게다가 교육 할인 참 좋다. 아내의 비싼 등록금을 쓸데없는 곳에서 일부 환급받은 기분이다. 어쨌든 눈이 계속 침침해져서 화면이 좋은 노트북이 절실했다. 어차피 컴퓨터 화면을 안 보고 사는 삶은 남은 인생에 얼마 안 될 테니까. 게다가 아이패드에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적용되면서 눈이 편해졌던 기억도 있었다.
화면이야 당연히 기대했던 만큼 만족하고 있는데, 쓰다보니 새로운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소리다.

사실 줄기차게 얘기되는 ‘혁신이 없다’ 레퍼토리는 애플 제품 라인업 거의 대부분에 적용되는 얘기인데, 이 기준에 따르면 아이팟은 플래시메모리 셔플이 나왔던 2005년 1월 이래 8년 간 혁신이 없는 셈이고,(음… 주력이 셔플이 아니라 나노일까?) 맥북프로도 2008년 유니바디 제품이 처음 나온 이후로 혁신이 없던 셈이다. 그냥 조금씩 개선만 됐다. 애플 제품이 사실 다 이렇다. 겉보기엔 계속 비슷해 보이니 신제품이 나와도 잘 모른다. 예를 들어 내가 지난 3년 간 맥북을 세 차례 바꾼 걸 아는 동료는 한 명도 없다. 다들 3년 전 쓰던 그 유니바디 제품을 지금까지 쓴다고 생각한다. 다 알루미늄에 비슷하게 생겼으니까.

이런 기준에 따르자면 레티나 맥북프로도 혁신은 없다. 작은 개선이 있을 뿐이다. 우선 화면 베젤이 조금씩 좁아졌다. 그래서 13인치 모델은 생각보다 두께가 덜 줄어들었는데도(하드디스크와 ODD를 뺐는데 왜 더 안 얇아지는지…) 무게는 가볍다. 절대 크기가 작기 때문이다. 아담한데도 화면 크기는 유지됐다. 그리고 두께를 못 줄인 대신 설계를 최대한 조절해 스피커를 손봤다. 어차피 노트북의 스피커라는 게 물리적 크기의 한계로 음질은 거기서 거기다. 그런데 이걸 귀로 듣자니 확연히 차이가 난다. 심지어 두 대를 나란히 놓고 비교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새 노트북을 켜자마자 깨달았다. 스피커가 죽여주네!

13인치 맥북프로의 좁은 공간에 더 좋은 스피커를 넣을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이냐고 물어봤더니 애플 쪽에서 설명해준 건 설계 변경이었다. 스피커의 물리적 개선도 최대한 했지만, 힌지(접히고 열리는 관절부분) 주위 설계를 바꾼 게 체감하는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별도의 좌우 스피커가 사용자의 귀로 제대로 된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15인치 모델과는 달리 13인치는 공간 부족 때문에 힌지 부분에 스피커 출력 장소가 자리잡고 있다. 전에는 이 곳에서 소리가 그저 새어 나왔다. 물론 발열팬의 공기도 이쪽으로 빠져 나왔다. 13인치에서는 이 발열팬 방출 부분을 조금 바꿨다. 각도를 수정해서 새어 나온 소리가 흩어지지 않고 화면 앞에 있는 사용자에게 최대한 제대로 전달되도록 한 것이다. 똑같은 연주도 탁 트인 야외에서 듣는 것과 관객석을 향해 음향 반사를 고려해 만든 전문 콘서트홀에서 듣는 게 다른 것과 비슷한 이유다.

생각해보니 이런 식의 설계 변경이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이어폰이 대표적이다. 아이폰5와 함께 새로 나온 ‘이어팟’은 예전 이어버드와는 달리 이어폰의 진동판 뒤쪽과 특이하게도 이어폰 아래쪽에도 구멍이 뚫려 있다. 공기 흐름을  제어해서 음질을 높여보겠다는 설정인데, 그 덕분에 비싸지 않은 번들 이어폰 치고는 꽤 괜찮은 소리를 들려준다.

아이패드도 달라졌다. 설계를 완전히 새로 한 아이패드 미니는 더 큰 아이패드 모델보다 값이 싼데도 불구하고 사운드는 훨씬 뛰어나다. 스테레오 스피커를 썼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피커 위치도 바닥으로 이동했다. 뒷면을 바라보는 아이패드와 달리 비교적 제대로 화면 앞 사람에게 소리를 전달한다. 사실 예전부터 이렇게 만들었어야 했다고 생각하지만.

애플 제품들은 새 제품이 나오면 확실히 뭔가 변해 있다. 혁신이 사라졌다고 비웃을 수야 있겠지만, 진지하게 하루 종일 씨름해야 하는 기계를 고르는 사람 입장에선 선뜻 다른 브랜드에 손을 뻗기가 두렵기 마련이다. 등산을 다니면서 수십년 동안 한 브랜드만 고집하는 사람들의 마음 같은 것 아닐까. “이 회사 밧줄이 암벽에서 날 구해줬거든” 식의 신뢰감 말이다.

구글이 지배하는 가혹한 미래

Google_1984

“If Google did not act we faced a draconian future. A future where one man, one company, one device, one carrier would be our only choice. That’s a future we don’t want.” – Vic Gundotra, SVP of Google

난 이 슬라이드를 볼 때마다 배신감을 느낀다. 약 2년 반 정도가 흘렀다. 2010년 5월에 열렸던 ‘구글 I/O’ 행사에서 빅 군도트라 수석부회장은 누가 봐도 애플(‘1984년’이라는 매킨토시 광고로 유명한)을 연상시키는 이 사진을 화면 가득 띄워놓은 채 세계의 안드로이드 팬들을 선동했다. “만약 구글이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가혹한 미래를 맞게 될 겁니다. 한 사람, 한 기업, 하나의 디바이스, 하나의 통신사만이 우리의 유일한 선택이 되는 시대 말입니다. 그건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아닙니다.”

오늘 아주 매끈한 구글맵을 새 아이폰5에 설치했다. 해외로 출장이나 여행을 떠날 때마다 엉터리 애플맵으로 길을 잃을까봐 조마조마했던 마음을 다시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2년 반이 흐르는 동안 스마트폰의 세계에서 구글은 ‘선택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기업, 하나의 서비스’가 돼 버렸다. 그건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아니었을텐데.

하지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구글은 앙시앙 레짐을 대혁명 이후의 자유 시민들의 삶에 다시 불러들였다. 2009년 11월 이후 한국은 엄청난 속도로 변했다. 혁명적인 정책도 없었고, 혁명적인 혁신기술도 등장하지 않았으며, 혁명적인 사상도 유행하지 않았다. 혁명은 그저 아이폰이라는 기계 하나였다. 그 이전까지는 세 개의 통신사가 혁신을 위한 경쟁도, 값을 낮추기 위한 경쟁도 멈춘 채 과점 상태에 머물러 통신시장을 정체시켰다. 하지만 아이폰 이후 모든 게 뿌리부터 흔들렸다. 그 이전까지는 외국 기업이 한국에서 사실상 장사를 못하게 만들 수준이었던 비관세 장벽에 가까운 각종 규제(예를 들어 WIPI)들이 존재했지만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사라졌다. 그 이전까지는 통신사 만큼이나 독과점 상태였던 무소불위의 한국 휴대전화 제조업체들도 아이폰 이후 완전히 새로운 변화에 직면해 혼란에 몸부림쳤다.

엄청난 혼란기였고 구체제의 권력자들은 불안에 떨었다. 한번도 왕좌를 놓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절대군주 수준의 권력을 갖고 있던 통신업계의 왕 SK텔레콤은 실속없는 봉건 영주인줄로만 알았던 KT가 아이폰으로 반란군의 대열 앞에 서자 이를 진압하기 위해 피를 흘려야 했다. 전장에서는 왕이 예상치 못한 마케팅비용 3000억 원을 2010년 한해에만 추가로 쏟아부었다는 소문이 횡행했다. 제조업계의 절대군주 삼성전자도 두려움 앞에서 혼란에 빠져든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세상은 한번에 바뀌지 않았다. 앙시앙 레짐이 흔들리고 혁명이 유럽으로 퍼져나가려고 할 때엔 서로 앙숙인 부르봉 왕가와 합스부르크 왕가라 할지라도 손을 잡게 마련이다. 구 체제의 왕들은 구글이라는 적의 적과 동맹을 맺었고, 몇 년 전만 해도 도무지 어울리는 부분이라고는 하나도 없어보였던 두 세력은 이제 동맹군이 된다. 동맹의 신무기 기술을 받아들인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폰을 만들었고, 동맹의 군사 운용법을 배운 SK텔레콤은 T스토어를 만들었다.

3년 전, 한국은 햅틱과 아몰레드가 시장을 지배했고, 통신사가 요청했다는 이유로 모든 휴대전화에 와이파이조차 달 수 없던 나라였다. 그 이후 6개월 동안 코뮌의 시대가 잠시 왔고, 이후 예고된 반동이 시작됐다. 2년 반이 지났다. 한국은 이제 갤럭시가 시장을 지배하고, 통신사의 요청에 따라 망중립성 같은 소리는 집어치운 나라가 됐다. 절대군주 삼성전자의 위세는 더 강해져서 모토로라와 HTC 같은 영주들은 영지를 빼앗긴 채 쫓겨나기 시작했고, SK텔레콤은 자신이 공급하는 동영상과 콘텐츠는 통신요금에 합산되지 않고, 자신과 제휴하지 않은 독립업체의 동영상과 콘텐츠에만 통신요금을 과금하는 통신망 편향적인 독특한 시장을 만들어냈다. 정확히 3년 전과 똑같이.

빅 군도트라가 얘기하던 가혹한 미래는 이제  결국 그 구글의 손에 의해 도래하기 시작한 게 아닐까. 기대할 수 있는 건 오직 구글의 선의 뿐이란 점에서 지금 우리의 처지는 군주와 귀족들의 선의만을 기대하던 앙시앙 레짐의 시민들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게다가 구글은 그동안 앙시앙 레짐을 지원하던 비용을 다시 회수하기 시작했다. 통신사에게선 앱 판매 수수료를 제값에 받아가기 시작했고, 삼성전자와의 독점적 밀월도 끝내고 다른 영주들과도 동맹을 맺기 시작했다. 이건 뭘 뜻할까? 구글의 선의? 내게는 이제 그들이 다시 왕과 귀족 사이의 게임을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패배자를 앞에 놓고 전리품을 챙기는 시기 말이다.

그러니 내 과거의 농담은 완전히 틀린 것 같다. 애플 제국과 안드로이드 동맹군 사이의 스타워즈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 옆을 지나간 건 혁명이었다. 시민의 편을 든 귀족과 앙시앙 레짐 사이의 혁명.

아이패드 미니

애초에는 사용기를 써 볼 생각이었는데, 불가능하게 됐다.
다음은 아내와의 대화.

아내: “이게 뭐야?”

나: “아이패드 미니.”

아내: “작네? 들고 다닐거야?”

나: “아니. 난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좋아. 써볼래?(예의상)”

아내: “응.(덥썩)”

나: “아, … 그거 그냥 전에 쓰던 아이패드2 백업 있으면 똑같이 쓸 수 있긴 해…”

아내: “(태연히)잘 모르겠으니까 해줘.”

나: (아이클라우드 아내 계정 백업을 새 아이패드에 옮겨놓기…)

아내: “(무심한 듯)음, 괜찮네.”

(다음날)

아내: (내가 아이패드 미니를 좀 만져봤더니) “나더러 써보라더니 왜 자꾸 자기가 만져?”

나: “아니, 나도 좀 만져봐야 사용기도 쓰고…”

아내: “안 돼. 내 거야.”

나: “…”

(어느 밤)

나: “(아내가 가슴 앞에 두고 자는 아이패드 미니를 치우며)이런 걸 안고 자면 어떡해.”

아내: “(잠결에)그냥 둬. 자다 깨서 볼거야.”

요즘 아내는 아이패드 미니를 하루 종일 들고 다닌다. 백에 쏙 들어간다고 좋아하고, 침대에서 봐도 안 무겁다고 좋아하고, 빠르다고 좋아하고. 지금까지 아내가 쓰던 건 내가 안 쓰는 아이패드2와 나온지 2년 넘은 아이폰4 뿐. 그러니까 나처럼 레티나 디스플레이 같은 건 애초에 별 기대도 없었고, 그냥 지금 아이패드 미니가 딱 맘에 든다는 얘기다. 참고로 구글 I/O에서 넥서스7을 받아왔을 때 아내에게 “써보겠느냐?”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넥서스7을 조금 만져보다가 아내가 들려준 대답은 “됐어.” 아이패드 미니가 생긴 김에 옆에 나란히 놓아봤다. 애플과 에이수스의 디자인 능력은 딱 메르세데스와 폭스바겐의 차이 같다. 폭스바겐 디자인도 나쁘진 않지만, 다른 건 다른 것. 넥서스7은 지금도 좋아하지만, 아이패드 미니와 함께 놓고 고르라면 나도 넥서스7으로 손이 가진 않을 것 같다.

아이패드 미니는 그런 시장을 노린 제품이다. 제품 성능이 어쩌고 저쩌고 따지는 시끄러운 남자들 말고, 무거운 아이패드를 들고 다니기 싫고, 백 속에 들어가는 태블릿이 있으면 좋겠고, 쓰는 건 아이폰/아이패드와 똑같아서 복잡하지 않은 제품을 찾는 내 아내 같은 여성들. 그러니 이들이 들고 다니려면 스타일도 살아야 한다. 아이패드 미니는 스타일이 좋다. 사실 아이패드 미니가 내 아이폰보다 더 얇다는 건 대보기 전엔 몰랐다. 심지어 아이폰5보다도 얇다고 한다. 예전에 아이패드는 밥솥 같은 컴퓨터라고 썼던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아이패드 미니는 핸드백 속 화장품 컴팩트 같다. 예쁘고, ‘백 속에’ 늘 들고 다니게 되는. 나도 써보고 싶은데, 내게 차례가 돌아올 것 같진 않다. 언제나 본격적인 사용기를 써볼 수 있으려나.

 10년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은 어릴 적부터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어린 시절부터 애플 제품을 썼던 건 아니다. 물론 컴퓨터라는 기계 자체가 흔히 볼 수 없는 값비싼 기계였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옆집 형이 갖고 있던 애플II에 대한 동경은 있었지만 그냥 그 정도였다. 이후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났고, 그가 만든 넥스트 큐브가 용산전자상가에 한 대 전시돼 있어 보러 갔던 기억도 난다. 그 기억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 또한 가격표 때문이었는데, 당시에 정말 말도 안 되게 비쌌던(90년대 초에 국내 소비자가격이 900만 원 대였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부정확함) 가격이었다. 그게 얼마나 충격이었으면 아직도 만져보지도 못하게 유리상자에 담겨 전시되던 그 넥스트 큐브가 눈앞에 어른거릴까.
그러니까 내게 애플은 늘 닿을 수 없는 곳에 존재하는 럭셔리 브랜드였다. 일종의 여성들의 샤넬백 같은 존재랄까.

그게 달라진 건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첫 월급을 받고 나서 부모님께 빨간 내복을 사드리고 난 뒤 곧바로 내가 했던 일이 바로 다음달 월급까지 미리 끌어당겨 쓸 수 있는 마법의 신용카드를 이용해 아이팟을 산 것이었다.(사실 수습기간 월급은 매우 박하기 때문에 부모님과 주위 사람들에게 한턱 내고 나서 뒤돌아보니 아이팟은 다다음달 월급을 끌어당겨 샀던 셈이었다.) 어쨌든, 애플에서 만드는 액세서리가 아닌 손에 쥘 수 있는 첫 제품이 ‘살만한 가격’ 수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많은 사람들이 변해가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팟을 사고 나니 아이맥을 사게 되고, 아이맥을 사고 나니 들고다닐 맥북이 필요하고, 그러다 아이폰이 들어오니 아이폰도 쓰고, 아이폰이 괜찮으니 아이패드도 사고 등등…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지 1년이 됐다. 주위 사람들이 무슨 글을 안 쓰느냐고 부추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1년이 지났을 때도 별 얘기를 쓴 게 없는데(모두가 마찬가지겠지만, 스티브 잡스보다 내 인생에 최소한 만배는 더 큰 영향을 주신 분인데) 생판 남에 대해 내가 무슨 추도문까지 쓰겠냐 싶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 한 마디는 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의 업적을, 그것도 세컨커밍, 그러니까 1997년 이후의 성과를 그저 아이맥과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의 발명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젊은 시절의 스티브 잡스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내 생각에 1997년 이후의 스티브 잡스가 이뤄낸 가장 큰 혁신은 샤넬백을 코치백 가격에 판매한 일이다. 소수의 럭셔리 제품을 만인을 위해 만들어낸 일.

그러니까, 난 아이폰5도 나오자마자 곧장 달려가서 살 생각인데, 아마도 그건 내겐 쏘나타 가격으로 SL55를 사는 느낌.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 그리고 데이브 그롤

블랙 키즈의 ‘론리 보이’가 흘러 나올 때만 해도 익숙했던 풍경이었다. 무대는 어둡고, 기자들은 흥분한 듯 떠들고 있었으며, 애플 직원들은 축제를 벌이는 듯한 그 모습. 팀 쿡의 애플도 계속해서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내는 회사였고, 애플이 하는 모든 일은 뭔가 세련되고 멋진 일인 것 같았다. 지금까지 애플이 그래왔듯이.
뭔가 꼬이기 시작한 건 발표의 시작이 필 실러의 ‘아이폰5’였을 때였다. 이상한데. 이게 왜 맨 처음이지. 기대치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이미 몇달전부터 베타테스터가 되어 쓰고 있던 내 아이폰의 iOS6가 천연덕스레 마치 처음 나온 기능인 양 반복해 소개됐다. 몇 달 전 스콧 포스톨이 직접 소개했던 바로 그 소프트웨어 말이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였다면 음악을 그렇게 대우하면 안 된다고 길길이 뛰었을 것 같은데도, 아이폰5에 뒤이어 등장한 건 아이튠즈와 아이팟 라인업, 이어팟 등이었다. 스티브 시절의 애플은 이렇게 하지 않았다. 그 시절의 애플은 단지 비틀즈의 음원을 아이튠즈에서 판매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중대 발표’라면서 미디어를 자극하는 회사였다. 애플 광고에 쓰인 노래들은(모두는 아니지만) 애플이 쓰기 전까지는 인디에서 갓 주목받던 곡들이었고, 애플은 그런 음악들을 메인스트림으로 올려주는 역할을 맡곤 했다. 팬들은 기꺼이 그런 애플의 약간 지나친 자의식에 열광적인 지지로 응답했다.

그러다가 아이튠즈 발표 도중 ‘어벤저스’가 등장했다. 돈을 많이 벌어들인 영화임엔 틀림없고, 나도 재미있게 봤던 영화지만, 그게 전부였다. 왜 어벤저스를 고른 걸까. 넥서스7을 사면 트랜스포머를 한 편씩 기본으로 설치해 주는 건 구글 같은 회사나 하는 일이었다. 스티브의 애플처럼 자의식이 강하고 취향이 뚜렷한 회사에서는 어벤저스로 데모를 하는 건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다. 차라리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나와야 어울릴 자리였다. 그리고 반쪽짜리 뮤직 이벤트(원래는 따로 하나의 완전한 행사로 열었던)가 끝나자 늘 그렇듯 축하 공연을 해줄 밴드가 등장했다. 역시 반쪽짜리 밴드였다. 푸 파이터즈 말이다. 너바나의 처음이자 끝이었던 커트 코베인이 죽고 난 뒤 드럼을 치던 데이브 그롤이 나와서 만든 밴드. 나는 나 스스로 그런지 세대, 그러니까 너바나, 펄 잼, 사운드가든 등을 좋아하던 세대지만 푸 파이터즈는 좋아한 적이 없었다. 물론 이들은 듣기 좋은 곡을 만들어 빌보드 차트에도 올랐고, 스스로에게 총을 쏜 커트 코베인과는 달리 즐겁게 음악을 하며 건강한 인생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건 애플이 아닌 것 같았다. 컬트오브맥의 버스터 헤인은 조금 더 심해서 “마이크로소프트나 할만한 짓”이라며 길길이 뛰었다.

그런데 잠깐. 데이브 그롤이었다. 마지막 무대가.

애플에게 스티브 잡스가 알파이자 오메가였다면, 너바나에게 커트 코베인도 그랬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가 떠났을 때 사람들은 애플이 망할 거라고 생각했다. 커트 코베인이 시애틀 워싱턴 호수 옆의 자기 집에서 스스로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을 때 사람들은 그런지도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데이브 그롤은 새 밴드를 만들었고, 푸 파이터즈는 너바나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았다. 사람들이 더 이상 그들을 그런지라거나 얼터너티브(대안)라고 부르지는 않을지 몰라도 푸 파이터즈는 사랑받는 밴드가 됐다. 그렇다면 스티브가 없는 애플은?

개인적으로 프레젠테이션은 실망스러웠다. 어벤저스와 푸 파이터즈도 싫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애플 사람들은 지금 스티브가 만들어 놓았던 그 세상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는 중이었다. 그것도 스티브가 만들어 놓은 그 모든 걸 다 유지하면서.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그게 애플이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이다.

가까이 아이폰5를 보자. 겉으로만 보면 아이폰4와 아이폰4S와 비교했을 때 세로로 조금 길어졌을 뿐이다. 하지만 그 조금 길게 만드는 디자인을 위해 이들은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아이폰을 설계했다. 두께를 조금 줄이려면 공간 배치를 모두 새로 만들어야 했고, 길이를 늘였다고 그 자리에 배터리를 채워넣을 수만도 없는 법이었다. 이들은 지금까지의 아이폰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아이폰의 세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반대론자들은 왜 애플은 OLED를 쓰지 않느냐고 다그쳤지만 애플은 대신에 LCD를 쓰면서 채도를 더 높였다. 카메라 화소 수는 노키아가 최고라고 얘기하지만 노키아의 렌즈 커버는 사파이어 크리스털(다이아몬드 다음 경도)이 아니다. 렌즈커버에 흠집이 나면 아무리 화소가 높아봐야 사진은 뿌옇게 나온다. 애플은 어디에 돈을 써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싸구려 부품으로 가격을 깎는 건 누구나 하는 일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부품으로 비싼 공정을 유지해 비싼 제품을 만들면서도 제품의 가격을 2007년 이후의 인플레이션을 무시한 채 유지한다는 건 그야말로 마법같은 일이다. (게다가 애플이 만들어낸 이 터프한 가격 경쟁 덕분에 안드로이드 팬들도 값싸고 품질좋은 스마트폰을 쓰게 됐다.)

스티브는 세계 최고의 연설가였고, 쇼맨이었다. 물론 그 아우라가 그립다. 이제 애플에 그런 건 없으니까. 그 사실을 모두가 안다. 하지만 최고의 제품을 만들던 사람들은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사람들은 여전히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 넥스트 시절의 스티브 잡스는 ‘괴짜들의 승리'(Triumph of Nerds)라는 PBS 다큐멘터리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이 만들어낸 것을 따라했다고 뭐라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의 성공에 제가 배가 아플 이유도 없습니다. 그들은 대단한 성공을 이뤄냈고, 그 성공을 자신들의 힘으로 일궈냈습니다. 그것이 저를 슬프게 만들 이유는 없죠. 다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에는, 뭐랄까, ‘취향’이 없습니다. 그들은 소프트웨어에 문화를 불어넣고, 그것을 뭔가 의미 있는 것으로 발전시키는 법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슬픈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엄청난 성공이 아닙니다. 제가 정말로 슬픈 이유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들어내 성공을 거둔 모든 제품들이, ‘삼류’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애플의 발표에는 ‘취향’이 없다. 그들은 발표에 문화를 불어넣고, 그것을 뭔가 의미 있는 것으로 발전시키는 법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이폰은 삼류가 아니다. 발표는 삼류지만 그들은 여전히 일류 제품을 만든다. 그리고 발표는 이들이 사랑하는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애플은 발표를 잘 하는 사람을 따로 스카웃할 것 같지는 않다. 그 자리는 이 사람들이 존경하는 사람의 자리이고, 우리 팀 최고의 선수를 위해 비워놓는 영구결번 백넘버 같은 것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