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와 대화하는 법, 인터페이스의 역사

기술은 늘 우리 옆에 있던 것 같지만, 사실 어느날 갑자기 등장합니다. 2010년 이전에는 스마트폰이란 걸 들고 다니는 사람을 찾기란 오늘날 전기차를 타는 사람을 보는 것만큼 희귀한 일이었습니다. 2000년 이전 인터넷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것 같은 기술도 자신만의 긴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 위에는 다양한 뒷얘기들이 존재합니다.

역사란 언제나 오늘을 다시 생각하게 해 주는 거울입니다. 마치 우리의 자녀들처럼 말이죠. 아이들이 우리의 거울인 것처럼, 역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우리의 미래를 보여줍니다. 마치 우리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처럼. 첫 시작은 터치 인터페이스입니다. 손으로 만지는 직관적인 상호작용의 방식, 이렇게 설명하면 어렵지만 사실 간단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래 위에, 진흙 위에 뭔가 쓰고 그리며 서로 대화해 왔습니다. 그 대화를 컴퓨터와는, 스마트폰과는 어떻게 나눠 왔을까요? 그 방법의 역사를 생각해 봅니다.

예를 들어, 애플은 매년 새 아이폰을 발매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하나씩 들고 나타났습니다. 마치 공상과학 영화에나 있던 것 같은 기술들이었지만, 애플은 이런 기술이 마치 어제까지도 우리가 이미 써 왔던 기술인 양 자연스럽게 소개하는 능력이 있는 회사였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지금은 일상적인 스마트폰을 이용한 화상통화가, 사실 애플이 페이스타임이라는 기능을 아이폰에 집어넣기 전까지는 TV 광고에나 등장하는 괴짜들의 기술일 뿐이었습니다. 우리가 말로 얘기를 걸면 알아듣는 인공지능 비서 시리라거나, 손가락만 올리면 잠금이 풀리고 기능이 실행되는 지문인식 기술도 마찬가지였죠. 그리고 애플은 아이폰 6s부터 ‘3D터치’라는 기능을 선보였습니다.

23823538096_1eab68c556_o3D터치는 움직이지 않는 평평한 유리 스크린을 누르면 그 압력을 아이폰이 느낀 뒤, 사용자가 누른 깊이를 아이폰의 조작에 반영하는 기술입니다. 그냥 손가락을 대면 터치, 조금 힘줘 누르면 살짝 누른 앱의 내용을 미리 보여주는 피크(peek), 좀 더 세게 누르면 아예 다음 기능으로 넘어가는 팝(pop) 등 크게 3단계의 힘을 인식하는 것이죠. 유리 표면은 움직이지 않은 채 평평하지만, 아주 미세한 압력의 변화가 이 평평한 면에 깊이를 더한 것 같은 착각을 만들어 냅니다. 이는 2차원 평면으로만 여겨졌던 디지털 스크린에 깊이라는 3차원 속성을 만들어낸 새로운 발명입니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톰 크루즈가 두 손을 허공에 올려 조작하던 컴퓨터를 떠올려 보세요. 톰 크루즈는 그 때 일반적인 마우스로 하는 것 같은 2차원 평면 작업을 3차원 공간에서 해냅니다. 평면에 깊이를 더한 것이죠. 문제는 영화 속에선 그런 식의 기계 조작이 멋있게 보일지 몰라도, 현실에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조작할 때마다 두 손을 허공에서 휘저어야 한다면 이게 보통 중노동이 아니리라는 겁니다. 그래서 애플은 톰 크루즈가 휘두르던 팔의 깊이를 손끝에 주는 힘의 차이로 해석해 현실 속 기기에 적용합니다. 그게 3D터치입니다. 아이폰만이 아닙니다. 이미 애플워치에 적용된 기술이고, 애플의 새 컴퓨터에도 쓰이기 시작한 기술입니다.2494667_orig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진화

설명은 복잡하게 했지만, 3D터치가 하는 일은 사실 단순합니다. 화면 위의 무언가를 선택하고, 그 선택한 지점에서 특정한 행동이 실행되도록 하는 것이죠. 이런 기술은 오늘날의 스마트폰은 물론 컴퓨터 등 여러 화면을 사용한 기기에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20세기 중반 이런 기술이 가장 필요했던 화면이 사용되는 기술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군사 목적의 레이더였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전승국이었던 미국과 영국 등은 물론 패전국이었지만 많은 과학적 성취를 쌓아올렸던 독일에서 오늘날의 마우스를 짐작하게 하는 초기 기술들이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마우스 형태를 갖췄다고 할만한 첫 제품은 미국 스탠포드연구소(SRI)의 더글라스 엥겔바트가 개발했다고 할만합니다. 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상호작용 분야에 뚜렷한 획을 그은 더글라스 엥겔바트는 손안에 들어오는 크기의 네모난 나무상자 속에 가로세로축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는 롤러를 넣고, 그 사이를 볼이 굴러가도록 만들어 움직임을 추적하는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화면 위의 화살표를 이 기계로 조정해 특정 위치를 ‘클릭’하는 오늘날의 마우스였죠.

Xerox_Alto_mouse연구실에서나 사용하는 것 같았던 이 기술을 본격적으로 컴퓨터용 개인 입력기기로 사용하기 시작한 건 제록스가 만든 팔로알토연구소(PARC)였습니다. PARC는 마우스를 실제로 쓸만하게 제작해 컴퓨터에 연결한 것은 물론이고, 마우스로 작동시키면 누구나 쉽게 사용법을 익힐 수 있는 현대적인 컴퓨터 운영체제도 만들었습니다. 이전의 컴퓨터가 검은 화면 위에 뜬 명령입력줄에 어려운 명령어를 익힌 뒤 명령어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는 혁명적인 변화였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이 기술의 잠재력에 주목해 오피스 프로그램에서 마우스를 지원하기로 하고 연구를 벌일 정도였습니다.

이 때 한 남자가 생긴지 몇 년 되지 않은 회사의 직원들을 잔뜩 데리고 PARC를 방문합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였죠. 그리고 PARC의 마우스와 마우스를 이용한 그래픽사용자인터페이스에 푹 빠지고 맙니다. 이후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돌아와 자신만의 차세대 컴퓨터 개발을 시작합니다. 1984년, 이 컴퓨터가 바로 매킨토시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공개됩니다.

마우스 아닌 마우스

마우스는 초기에 군사용 레이더 화면을 쉽게 확인하기 위한 입력기기로 사용됐다고 앞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 때의 마우스는 마우스라기보다느 오늘날의 트랙볼 형태에 가까웠습니다. 고정된 틀 위에 손으로 굴릴 수 있는 볼을 올려놓은 것이죠. 이것이 이를 뒤집어 바닥에 볼을 굴리고 틀을 손으로 움직이는 마우스로 발전합니다. 트랙볼과 마우스는 이후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면서 꽤 오랫동안 발전합니다. 상대적으로 트랙볼은 정확한 움직임이 가능하지만 마우스는 빠른 움직임과 편한 사용법이 장점이었습니다.

이 틈새를 뚫고 마우스 같은 역할을 하는 여러 기술들이 개발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IBM이 사용했던 일명 ‘빨콩’(빨간콩 모양을 뜻하는 속어), 즉 포인팅스틱입니다. 아주 작은 조이스틱 같은 장치인데, 키보드 사이에 손가락에 주는 힘만으로 커서를 움직일 수 있는 막대를 끼워 둔 형태입니다. 키보드에서 손가락을 거의 떼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고, 노트북의 공간을 아껴준다는 점이 대표적인 장점으로 꼽혔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손이 키보드와 마우스 사이를 오가는 시간이 평균 0.75초가 걸리는데, 포인팅스틱은 이 시간을 크게 단축시켜준다고 해서 타자를 칠 일이 많았던 기업용 컴퓨터에 많이 활용되곤 했습니다.

1990년대부터는 터치패드도 쓰이기 시작합니다. 손의 정전기를 감지하는 패드를 이용한 포인팅 장치인데, 제대로 컴퓨터에 쓰이기 시작한 건 1994년 애플이 파워북이라는 노트북을 만들면서부터입니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데스크탑 및 노트북 컴퓨터가 마우스가 아닌 트랙패드라고 불리는 애플 방식의 터치패드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 첫 상용화도 애플이었던 셈입니다.
한 때 마우스와 서로 경쟁하는 입력장치였던 트랙볼은 물리적으로 먼지가 끼는 불편함 때문에 점점 시장에서 퇴출되기 시작합니다. 마우스는 볼 대신 레이저를 이용하면서 수명을 연장했지만, 트랙볼은 터치패드에게 자리를 내주고 만 것이죠. 가장 마지막까지 쓰인 트랙볼은 블랙베리나 HTC 같은 회사가 자신들의 스마트폰에 사용했던 미니 트랙볼이었지만, 이 또한 결국 터치패드에 밀려나고 맙니다.

마우스 뒤의 사람들

마우스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습니다. 마우스 주위를 스쳐간 인물들은 현대의 컴퓨팅 기술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를 들어 마우스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더글라스 엥겔바트는 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상호작용을 제대로 연구한 선구자였습니다. 그는 마우스 외에도 오늘날의 인터넷의 주요 원리 가운데 하나인 하이퍼텍스트(한 문서의 링크를 클릭하면 다른 문서가 열리는 방식) 연구에 큰 기여를 하고, 수많은 상호작용 연구를 지원하는 재단도 세웠습니다. 무엇보다 엥겔바트는 마우스 관련 특허도 출원해 놓고, 이와 관련된 로열티를 거의 받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애플은 제품 하나를 만들 때마다 로열티를 지불하는 대신, 약 4만 달러 정도의 헐값에 마우스를 얼마든지 제작해서 사용할 수 있는 라이센스를 사들일 정도였으니까요.

Exif_JPEG_PICTURE또한 애플에게 큰 영향을 준 PARC에서는 테드 셀커라는 연구원이 포인팅스틱 아이디어를 개발합니다. 키보드와 마우스 사이를 오가는 손동작 시간을 줄여보려던 기술임은 앞서 얘기했었죠. 이 기술을 IBM이 쓸 수 있었던 건 IBM이 제록스의 PARC에서 셀커를 스카우트했기 때문입니다. IBM으로 이직한 셀커는 포인팅스틱을 더 다듬었고, 이는 IBM 씽크패드 노트북의 가장 중요한 입력장치로 포함되게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셀커나 엥겔바트 같은 사람들이 기계를 만들어내는 사람들 같지만, 이들은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의도가 컴퓨터에 어떻게 더 쉽게 전달될 수 있을까 하는 주제였죠. 최근에 이들의 연구는 애플의 3D터치같은 기계적인 성취는 물론 또 하나의 중요한 기술 발달로 이어집니다. 바로 맥락을 파악하는 기술(Context Awareness)입니다. 오늘날 아이폰의 ‘시리’나 구글의 ‘구글나우’ 같은 기능은 사람이 무언가를 입력하기도 전에 아마도 입력할 것 같은 정보를 미리 찾아 보여줍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뉴스와 날씨를 보여주고, 극장 옆에서는 상영중인 영화정보를 알려주는 식입니다.

시작은 이렇게 늘 자그마합니다. 하지만 수십년의 세월이 지나면 그 작은 기술들의 발전은 어마어마한 변화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tumblr_inline_nqjgv45gSt1rqvlru_500

완벽해지는 과정

인공지능이 대세라고 해도 애플은 대세와는 거리가 먼 모양이다. 여전히 말귀도 제대로 못 알아듣는 시리를 개선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고, 이미 잘 나간다는 회사들은 하나둘 손을 떼고 있는 태블릿 시장에서 아이패드를 들고 용을 쓴다. 최고의 랩톱도, 최고의 데스크톱도 이제 경쟁사들이 호평받는 제품을 내놓으며 자리를 위협하는데, 애플의 컴퓨터 라인 가격은 도무지 현실감각을 갖출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번 WWDC 2017에서 애플은 새로운 것이라곤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아이패드는 똑같은 프레임 속에서 화면만 조금 키웠을 뿐이고, 새 아이폰은 나중에 발표하겠다는 듯 꽁꽁 숨겼으며, 맥북은 그저 일부 모델의 값을 조금 낮춘 게 전부다.(그 모델은 이제 가장 인기가 없어졌을 모델이다.) 아이맥에는 검은색을 칠해 값을 높여 받았고, 애플워치는 토이스토리 스킨을 넣었다며 OS 업데이트 소식을 알렸다. tvOS를 얘기할 때 보여준 것은 “아마존프라임도 볼 수 있어요” 뿐이었다. 심지어 맥OS Sierra는 ‘High Sierra’로 이름을 바꿨다. 산맥이, ‘높은 산맥’이 되었다.

이 정도면 이제 갈아탈 시간이 됐다. 경쟁제품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탐스러운 인공지능 기능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앞세운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들 말이다.

그런 일이 과연 벌어질까?

아이폰과 맥은 아무런 설정도 하지 않아도 클립보드를 공유한다. 그냥 된다. 아이폰에서 읽던 문장을 선택한 뒤 ‘복사하기’를 누르고 맥에서 ‘붙여넣기’를 누르면 아이폰에서 선택한 문장이 맥의 메모 속으로 입력된다. 아이패드의 메시지는 아이폰에서 읽어도 똑같이 읽음 확인이 되고, 애플워치를 차고 맥 근처에 다가가면 잠금이 해제된다. 맥에서 작업하던 문서는 그대로 아이패드와 아이폰에서 업데이트된다. 클라우드, N스크린… 5년 쯤 전에 유행하던 마케팅 용어인데 사실 이 단순한 기능을 제대로 구현하는 유일한 디바이스 묶음은 여전히 애플 디바이스 묶음 뿐이다.

fullsizeoutput_a크레그 페더리기는 이 모든 과정을 “완벽하게 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완벽을 향해 가는 유일한 디바이스와 소프트웨어의 패키지, 그런 것이 또 있다면 이제는 갈아탈 수 있는 타이밍이다. 더이상 베타테스터이지 않아도, 그냥 쓸만한 상태의 제품을 쓸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어 주는 회사가 애플 외에도 또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시리는 여전히 버벅이면서도 자연스럽고, 아이클라우드는 여전히 속도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기기 사이에서 제대로 작동한다. 제대로 된 메시지 앱, 사진관리 앱, 운동관리 앱, 클라우드 저장공간 앱을 찾아 헤매야 할 이유도 없다. 페더리기가 몇 번이고 강조했던 말이 그것이었다. “모든 디바이스에서 동시에 작동합니다.”

갈아타야 할 시간이 됐을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더 완벽한 제품’‘이 여전히 문제다.

와일드

셰릴 스트레이드는 약쟁이였다.

나는 욕실로 가서 얼굴을 씻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숨을 들썩거리며 흐느꼈다. 그러다가 식당의 아침 장사 시간에 맞춰 일을 하러 가야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건 내가 아니야. 이건 내가 사는 방식이 아니야. 그만 둬. 더 이상은 안 돼. 하지만 오후가 되면 손에 쥐고 있던 현금으로 다시 마약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걸 해야 해. 내 인생을 낭비해야 해. 쓰레기가 되어야 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엄마의 딸이던 셰릴에겐 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채식주의자에 약초즙을 물처럼 들이키며 살았던 엄마는 겨우 마흔다섯에 폐암으로 죽었다. 딸에게 아빠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엄마의 새 남자친구 에디 뿐이었는데, 엄마가 죽고 나자 에디는 다른 여자를 만났다. 에디는 의붓딸 셰릴을 대할 때 아빠의 책임보다는 친구의 우정으로 대했던 사람이었다. 딸의 생물학적 아빠는 에디보다도 더 필요없는 존재였다. 그는 엄마도 때리고 딸도 때렸다. 개자식이었다. 엄마 잃은 딸에겐 그래서 아빠가 없었다. 돈도 없었다. 직장도 없었다.

대신 딸에게는 자신을 사랑하는 폴이라는 남자가 있었다. 폴은 끝까지 딸을 사랑했다. 하지만 딸은 폴을 버렸고, 약을 택했다. 그리고 폴과 결혼한 상태에서 아무 남자에게나 안겨 하룻밤을 보내곤 했다. 아마도 딸은 사랑에 굶주렸을 것이다.

결국 나는 엄마에게 대놓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엄마,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딸이지, 그치?” 엄마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당연히 그래야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런 말들이 엄마의 마음속에서 하나로 엮여 다시 새로운 느낌으로 내게 전달되기를 바랐다. 나는 사랑에 굶주려 있었던 것이다.

파국 말고는 남은 것이 없어 보였던 인생, 딸은 드디어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맘을 다잡아 본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여전히 마약을 이기지 못하던 상태에서. 그렇게 하여 딸은 갑작스런 도보여행에 도전한다. 충동에 가까웠다. 퍼시픽크레스트트레일(PCT), 캘리포니아에서 출발해 워싱턴주까지 걸어 올라가야 하는 엄청난 도보 여행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채, 배낭 여행 경험조차 없었던 20대 여성은 그렇게 혼자서 긴 걷기 여행을 시작한다. 당연히 쉬울 리가 없었다. 심지어 그냥 배낭을 매는 것부터 말이다.

그리고 내 배낭을 바라보았다. 거대하면서도 속이 꽉 들어찬, 왠지 정감이 넘치지만 동시에 위협적이기도 한 모습으로 홀로 우뚝 서 있는 녀석. 마치 살아 움직이는 친구 같은 모습에 외로운 기분이 어느 정도 사그라졌다. 똑바로 세운 높이는 내 허리까지 닿았다. 나는 배낭을 움켜쥐고 들어올리기 위해 몸을 굽혔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몸을 웅크리고는 배낭의 프레임을 더 단단히 붙들고 다시 한 번 들어 올리려고 용을 썼다. 이번에도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도. 이번에는 두 다리에 단단히 힘을 주고 양손을 이용해 마치 포옹이라도 하듯 배낭을 끌어안고 시도했다. 내 안의 모든 걸 다 쏟아 부었지만 배낭은 미동도 없었다. 정말이지 소형 승용차라도 한 대 들어 올리는 것 같았다. 폭스바겐 비틀처럼 예쁘장한 모습에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만 같은데, 도무지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길었던 이번 연휴 기간 동안 이 책을 읽었다. 난 아들과 여행을 떠났고, 우리는 수영장이 딸린 작고 예쁜 호텔을 빌렸다. 나는 아들에게 잠수를 가르쳤으며 아들은 내게서 연날리기도 배웠다. 연을 날리기 위해 타래를 든 채로, 내가 아들에게 말했다. “연이 곤두박질치려고 하면 끈을 살짝 헐겁게 놓아주렴. 그러면 연은 통제를 벗어나 자유롭게 떠오른단다.” 나는 그 말을 해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붙잡아 두려고 하면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것이 꼭 너를 닮았지. 자유롭게 놓아주고 싶지만, 그래도 끈만은 붙잡고 있고 싶은 내 모습 또한.’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제1권》이 내 성경책이라면 《공통된 언어의 꿈》은 사실상 나의 종교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책을 펼치고 첫 번째 시를 큰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내 목소리가 텐트의 벽을 때리는 바람 소리 위로 높이 울려 퍼졌다. 나는 그 시를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시의 제목은 바로 ‘힘Power’이었다.

이 책은 내가 스무살이 되던 해 떠났던 자전거 여행의 기억을 되살리게 만들었다. 당시의 난 형편없었다. 하루에 20킬로미터 남짓한 거리를 다섯시간에 걸쳐 달렸다. 그랬던 내 몸이 어느 순간 텐트와 취사도구까지 실은 채 하루 80킬로미터 정도는 가뿐히 주파할 수 있게 변해가는 것을 보는 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 괴로울 때마다, 노래를 부르곤 했다. 신해철의 노래도 불렀고, 민중가요도 몇 곡 불렀던 것 같고, 무엇보다 김광석의 노래를 불렀고. 그리고, 그 여행의 길에서 나는 끊임없는 도움을 받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아무 조건 없는 친절이 못된 사람들의 불친절과 괴롭힘을 압도적으로 넘어섰다.

이 책을 간단히 줄이자면 약쟁이 딸, 엄마를 잃은 딸의 성장 이야기다. 다시 세상을 사랑하고 엄마가 되고자 마음을 먹게 되는 과정 말이다. 배경이 야생의 자연, 즉 와일드와 함께 펼쳐진다는 것 정도가 중요한 요소랄까.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이 와일드인 것은 딸이 자연의 위대함 때문에 성장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딸을 키운 것은 와일드한 자연 속에서 조건 없이 사랑을 베풀던 다른 사람들이었다. 개자식 같은 아빠, 책임감 없는 의붓아버지,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 사랑했지만 사랑을 받을 준비가 안 돼 떠나보내야 했던 폴. 그들과의 어긋난 관계들이 여행을 통해 만난 낯선 이들과의 우정을 통해 조금씩 자리를 찾아간다.

아들에게 연을 날리는 법을 가르쳐 줬던 나는, 여행을 정리하기 전날 저녁 “우리 이 연의 끈을 잘라줄까?”라고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은 되물었다. “왜요?” 난 답했다. 연이 끈에 매어있잖아. 끈을 놓아주면 멀리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을 거야. 아들은 더 현명한 선택을 했다.

“나, 이 연을 아까 수영장에서 만난 그 누나에게 선물할래요. 내게 잠수하는 법도 가르쳐 주고, 물속에서 가위바위보 하는 법도 가르쳐 준 그 누나한테요.”

나는 끈을 놓을 생각만 했지만, 사실 사람들이란 끈을 건네고 또 받으면서 서로를 엮어간다. 늘 그랬듯이.

리틀 브라더

145648131002_20160227

필리버스터 당시 정의당 서기호 의원이 이 책을 소개했다. 그러자 저자가 이 장면을 보고선 “한국에서 내 책을 소개했다”며 트윗을 올렸다. 이 기묘한 세상. 도대체 어떤 책이기에 소개했을까, 그리고 이 저자는 어떤 사람이기에 한국의 필리버스터에도 관심을 갖고 있을까(물론 독자가 트윗으로 알려줬겠지만) 궁금해서 책을 펼쳤다.

… 그리고 책을 덮지 못했다.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어느날 샌프란시스코에서 폭탄이 터져 베이교가 무어졌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의 소행이었다. 그러자 미국 정부는, 정확히는 ‘국토안보부’는 이를 기회로 삼아 온갖 비상조치들을 내놓기 시작한다. 심지어 ‘애국자법2’도 등장했다. 9.11 테러 때 등장했다가 부분 위헌 판결로 무력화된 ‘애국자법’을 비꼰 패러디다. 문제는 국토안보부가 테러리스트는 못잡고, 무고한 시민들을 잡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선거를 앞두고 있었고, 위기는 권력자에게 기회니까. 주인공 마커스는 고등학생이다. 폭탄이 터지던 그날 우연히 국토안보부에 붙잡혀 감옥에 갇혔고, 잘못된 사람을 잡아왔다는 것을 깨달은 국토안보부는 구금 사실을 비밀로 유지하는 조건으로 마커스를 풀어준다. 하지만 함께 구금된 마커스의 친구는 풀려나지 못한다. 그래서 마커스는 평소 즐기던 방식대로 정부에 저항한다. 인터넷 말이다.

샌프란시스코를 경찰도시로 만들려고 하는 가상의 미국 정부 이야기지만, 읽다보면 이게 정말 묘하게 낯이 익은 구석이 있다. 우선 마커스가 학교에서 쓰는 노트북부터.

“스쿨북에는 윈도우 비스타4스쿨이 깔려 있는데, 이 구닥다리 운영체제는 학교 관리자들에게 학생들이 이용하는 프로그램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 주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청소년 유해물 차단 앱’을 만들어 스마트폰에 강제로 깔아주겠다는 사람들이 어디 있던데…

마커스는 아주 똑똑한 고등학생이다. 도서관 책에 달린 RFID태그가 책을 빌린 학생의 위치추적에 편법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알고는 전자렌지에 책을 넣고 돌려 RFID를 망가뜨리기도 하고, 두루마리 휴지심에 자전거 조명에서 떼어낸 LED램프를 잔뜩 박아넣어 소형 몰래카메라 렌즈를 찾아내기도 한다.(렌즈 유리의 빛 반사를 통해) 또 엑스박스 해킹(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듯 보이는데, 엑스박스에 리눅스를 설치한 뒤 와이파이 릴레이 방식(이건 FON을 연상시킨다)으로 인터넷에 접속해서 정부가 추적할 수 없는 거대한 통신망을 구축하기도 한다.

특히 마커스의 친구들은 수많은 공개 암호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것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마커스는 이런 말을 한다.

“튜링이 에니그마를 발명한 사람보다 똑똑했다는 게 문제였다. 암호화 체계를 만들고 나면 만든 사람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 그 체계를 깨버릴 위험에 노출된다. 그래서 그 문제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할수록, 설령 만든 사람조차 깨는 방법을 모르는 보안 체계를 만들어내더라도 누군가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는 생각이 더 커졌다. 자신보다 똑똑한 사람이 무슨 일까지 해낼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암호 체계가 제대로 작동되는지 알려면 대중에게 공개해야 한다. 그 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그 체계를 두드려보고 안전성을 점검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결점을 찾아내지 못할수록 암호 체계는 안전한 것이 된다. 오늘날 암호 체계는 그런 방식으로 운영된다. 암호가 안전하기를 바란다면 지난주에 어떤 천재가 만든 암호화 방식이 아니라, 아직 아무도 깨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해서 오랫동안 사용해온 방식을 이용하는 게 낫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특정 암호가, “정부만 들여다 볼 수 있어야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어느 나라 국가기관에서는 보안적합성을 통과하지 못한 안전하지 못한 스마트폰으로 이 스마트폰을 꼽았다고. 왜냐하면 정부가 다 들여다 보고 안전성을 검증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게 해서. 그런데, 이 스마트폰은 또 다른 나라에서는 지나치게 보안이 잘 돼 테러 방지에 지장이 있다고 FBI를 열받게 했다더라. 문제는 최근에 보안적합성을 통과하지 못한 스마트폰은 별 문제가 없는데, 적합성을 통과했을 스마트폰들이 북한 사이버테러에 뚫렸다는…

끝으로, 저자는 한국어판 번역과 함께 한국 독자들을 위해 특별히 저자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 저자의 책이 한국 국회에서 소개됐으니, 저자로서도 즐거운 경험이었을 듯.

“외설과 저작권 해적질을 막기 위해, 혹은 “최근 북한의 지뢰 폭발과 연천 포격 등 도발과 관련해 남한이 거짓으로 날조했다고 비난하는 허위의 내용이 담겨 있는”(한국방송통신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차단한다며 검열 체계를 만들면, 권력자는 숨기고 싶어 하는 자료를 이런 분류에 넣기만 해도 네트워크에서 쉽게 없애버릴 수 있게 됩니다.”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밥 먹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함께 밥 먹게 해주는 스타트업, 셰프가 만든 고급 음식을 집으로 배달해주는 스타트업, 식당 예약을 해주는 스타트업… 수많은 요식업 관련 스타트업이 활약합니다. 우리는 평소에도 수없이 입버릇처럼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라는 얘기를 하곤 합니다. 그 먹고 사는 일을 혁신하는 회사들이 인기를 끄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렇게 먹는 음식과 관련된 스타트업을 일반적으로 푸드테크(Food Tech) 혹은 푸드 스타트업(Food Startup)이라고 일컫곤 합니다. 종류는 여러가지지만 크게 보면 모두 먹는 경험을 더 즐거운 경험으로 바꾸려는 일입니다. 배달전문 스타트업이 가장 큰 규모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겁니다. 좋은 음식을 먹으려면 요리를 직접 하거나, 또는 남이 만든 요리를 사먹어야 하는데, 요리를 사먹으려면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가야 하니까요. 배달앱들은 그래서 배달만 대신 해주는 게 아니라, ‘맛집’도 메뉴 선택 과정에서 추천해 주고 어디가 맛있는지 ‘리뷰’도 보여줍니다. 주문과 결제 과정의 편리함은 기본이며 배달 소요시간까지 알려줘서 식사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해주죠. 이렇게 해서 식당의 배달 주문이 늘어나면 소비자도 이익이고 식당도 이익일 듯 합니다.

물론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수수료 문제, 리뷰 조작 문제 등은 단골로 제기되는 문제죠. 이 정도는 예상 가능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배달 음식이 ‘식당의 명성에 먹칠을 한다’는 소송까지 벌어집니다. 예를 들어 미국 서부에서 인기를 끈 햄버거 체인점 인앤아웃은 최근 도어대시라는 음식배달 스타트업을 고소했는데, 도어대시가 인앤아웃의 로고를 대가없이 사용해 브랜드 가치를 도용했고 배달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지는 인앤아웃 음식을 배달하면서 소비자 만족도를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란 이유에서였습니다. 식당 입장에서는 좋은 음식을 집에서 편하게 먹도록 한다는 푸드 스타트업이 오히려 식사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보였던 셈이죠.

File-In-N-Out_Burger_hamburgers_and_cheeseburgers
이런 햄버거를 배달하면 식어서 맛이 없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음식을 단순 배달해주기 보다는 소비자가 음식을 먹게 될 순간의 경험까지 고려해 조리에 반영하는 스타트업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먼처리(Munchery) 같은 스타트업이 대표적인데요, 이들은 반조리 상태의 음식을 각 가정에 배달합니다. 15분 동안 요리할 수 있는 상태로 모든 걸 만들어서 배달하는 먼처리는 고기도 미리 썰어놓고 빵도 구워놓은 채로 음식을 포장합니다. 소비자는 이 음식을 받아서 조립하듯 재료를 잘 배치해 가열만 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이런 음식은 유명 레스토랑의 셰프가 고안하는 특별한 레시피에 따라 준비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레스토랑 수준의 식재료 준비 및 양념이 모두 끝난 음식을 집에서 조금만 더 손 보면 멋진 저녁식사를 할 수 있으니 인기를 끌 수밖에요. 단순 배달음식보다 최종 완성된 요리의 수준이 월등히 높을 뿐만 아니라, 준비하는 사람들은 간단히 요리하는 즐거움까지 맛볼 수 있어서 최근 먼처리와 비슷한 스타트업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요리 준비를 누가 대신 해준다면 나도 ‘냉장고를 부탁해’를 찍을 수 있다!

집에서 먹는 음식은 이렇게 해결한다고 쳐도, 밖에 나가서 식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국 맛집 정보를 찾아 헤매게 됩니다.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은 역시 미디어죠. 신뢰도가 중요하고, 변화되는 환경에 따라 업데이트가 신속하게 진행돼야 하며, 내 취향과 잘 맞는 정보까지 얻을 수 있다면 최고입니다.

예전에 이 분야의 선두주자는 옐프(Yelp)였습니다. 세계의 수많은 서비스들이 옐프에게서 배우고자 했죠. 믿을 만한 리뷰의 관리, 새로 생긴 음식점과 문 닫은 음식점 업데이트를 빠르게 도와주는 충성스런 사용자 커뮤니티 등. 하지만 요새는 모든 푸드 스타트업이 일종의 미디어가 됐습니다. 배달앱은 배달음식점 리뷰앱이 됐고, 식재료 장보기 앱은 좋은 식재료 가게의 리뷰앱이 됐으니까요. 그래서 최근의 레스토랑 리뷰를 하는 스타트업은 뉴미디어처럼 변화합니다. 뉴스나 정보지 못잖은 기능을 갖추면서 진화하는 것이죠. 독자에게 개인의 관심사에 따른 뉴스를 보여준다거나, 뉴스를 하나 읽고 나면 관련 뉴스를 추천해 주는 뉴미디어 서비스처럼 레스토랑 리뷰 서비스들도 진화합니다. 평소 라자니아를 잘 하는 레스토랑을 찾았던 사람에게는 새로 생긴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추천해주고, 단골 중국 음식점의 예약이 꽉 찼다면 다른 레스토랑을 추천해주는 식이죠.

i2503636806
리뷰에 목숨 거시는 사장님…

한 술 더 떠 레지(Resy) 같은 스타트업은 원하는 식당에 원하는 날짜 예약을 바로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냥 예약하려면 한 달은 미리 앞서서 예약해야 하는 인기 레스토랑들이 대상입니다. 비결은 단순합니다. ‘예약비’를 따로 받는 것입니다. 레스토랑 입장에서 예약을 적게 받는 이유는, 일반적인 예약 시스템을 도입할 경우 생기는 이른바 ‘노쇼’(No-Show) 고객들 때문입니다. 나타나지 않는 고객들이 손해를 주니까요. 반면 그런 사람들 때문에 빈 자리를 찾는 고객은 식당 앞에서 줄을 서야 하죠. 레지는 예약 과정에 돈을 받으면서 이런 불편을 해결해 줍니다.

말이 나온 김에 식당에서 돈을 내는 과정도 한 번 볼까요? 한국에서야 거의 모든 레스토랑에서 식사가 끝나면 계산대로 나가서 돈을 냅니다. 이게 일반적이죠. 반면 미국에선 다릅니다. 종업원을 불러서 계산서를 가져다 달라고 하고, 주문 내용을 확인합니다. 그 뒤 다시 종업원을 불러서 현금 혹은 신용카드를 내죠. 그러면 계산을 마친 영수증을 종업원이 다시 가져다 줍니다. 여기에 팁을 남겨놓고 일어서야 계산이 끝납니다. 식사를 다 마친 뒤부터 진행되는 이 과정은 길면 10분 이상도 걸립니다. 한국인의 시각으로 보면 속이 터질 노릇이죠. 미국인들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커버(Cover)라는 스타트업은 이 결제 과정만 담당합니다. 커버의 약 300개에 이르는 가맹 레스토랑에서는 고객들이 식사가 끝나면 커버 앱으로 결제를 하고 그냥 일어섭니다. 애플페이로 낼 수도 있고, 신용카드 결제도 괜찮습니다. 미리 식당을 골라놓은 뒤 식당에 들어가면서 “커버로 낼 거에요”라고 얘기하면 됩니다. 주문한 음식은 자동으로 계산되고, 팁도 식사중 몇 퍼센트를 줄지 정하면 됩니다. 친구들끼리 나눠내기 기능도 지원하죠. 종업원을 불러서 계산서를 가져다 달라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단순한 편리함 때문에 이 회사는 이미 매월 200만 달러 이상의 결제를 처리하는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cover-app-0614.0
기다리지 않고 바로 돈 내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사업이 된다니!

하지만 어떤 스타트업들은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음식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과연 맛이란 무엇일까, 영양이란 무엇일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죠. 이들에게 맛은 ‘요리사의 손맛’이라기보다는 특정한 환경에서 일어나는 분자구조의 화학적 결합입니다. 영양이란 목초를 먹으면서 청정 지역에서 자라난 1등급 한우 대신, 단백질 함량이 높은 고단백 식품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좀 드라이하고 멋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이게 음식의 미래일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모던메도우(Modern Meadow)라는 회사는 현대식 초원이라는 이름 뜻에 걸맞게 고기를 ‘생산’합니다. 푸른 풀이 가득한 초지가 아니라 실험실에서 생산한다는 것이 차이죠. 방법은 간단합니다. 소나 돼지 등 육류에서 떼어낸 생체조직을 배양해서 3D 프린터로 고기 모양으로 재구성해내는 것이 이들의 일입니다. 마치 샬레 위에서 세균을 배양하는 식이죠. 그런데 이렇게 햄버거 패티와 소시지, 다진 고기 등을 실험실에서 공장처럼 생산하는 세상을 만든다면 공장식 축산의 폐해도 줄어들고, 고기 생산에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물과 곡물의 낭비도 줄어들 거라는 게 이들의 생각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인류가 좀 더 지속가능한 삶을 살게 되겠죠.

아무래도 실험실에서 세균 배양하듯 배양하는 고기는 좀 꺼려진다면, ‘진짜 단백질’인 곤충으로 만든 고기는 어떨까요? 식스푸드(Six Foods)라는 회사는 하버드 동기생 세 여성이 창업한 회사입니다. 이들은 여섯개의 다리를 가진 동물들이야말로 인류의 식량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는 믿음을 갖고, 회사 이름도 그렇게 정했습니다. 바로 곤충 얘기죠. 이들이 처음 만든 음식은 처프칩(Chirp Chips), Chirp는 곤충소리의 의성어이니, 한국어로 옮기자면 귀뚤귀뚤칩 정도가 되려나요. 콩과 쌀 구운 귀뚜라미가 원료인 이 칩은 소금맛, 비비큐맛, 체다치즈맛으로 팔리고 있습니다. 일반 감자칩과 비교해 단백질 함량이 세 배가 넘는다고 하니, 술안주나 심지어 식사 대용으로도 그만이겠네요. 징그럽다고요? 식스푸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곤충을 이미 먹고 있는지 강조합니다. 빨간색 식용색소의 거의 전부가 연지벌레로 만들어집니다. 시금치통조림이나 가공음식 대부분이 일정 수 이하의 벌레가 함께 가공되는 걸 용인해서 만들어지고 있죠. 곤충을 먹는다고 큰 일이 생기지 않을 뿐더러, 우린 이미 벌레를 많이 먹고 있다는 겁니다.

먹는 일은 정말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매일 수차례 씩 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그렇죠. 누구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먹는 일을 다루는 기업들이 많아지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일상이 행복해지는 일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아직도 중국에게 따라잡힐 걱정을 하는 바보들

TB1l.niKpXXXXaAXpXXVpvE2pXX-750-400

간단해도 너무 간단했다. 11월 11일 어마어마한 세일을 할테니, 한 번 사보라고 끊임없이 알림과 광고와 DM이 날아왔다. 그래서 제품을 몇 개 골라뒀다. 오후 5시에 알림이 왔다. 지금 세일 시작이라고. 접속해서 장바구니 결제를 눌렀다. 조금 버벅이더라. “접속자가 많아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식으로. 2초 쯤 버벅였나, 그리고 결제가 끝났다. 딱 1분 걸렸다. 1분이 안 걸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러자, 모든 제품 결제 완료 이메일과 한국 카드사의 결제 인증 문자메시지가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알리바바의 해외판인 알리익스프레스. 동시에 몇 명이 접속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세일시작” 알림을 울려놓고는 적어도 수십만명은 몰려들었을 것 같은 이 순간 결제를 그냥 스윽 처리하는 게 알리바바의 기술이다.

물론 중국의 경쟁력은 가격이다. 그런데 그게, 정말로 싸더라. 워낙 싼 게 이날은 더 쌌다. 11월 11일,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 같은 걸 우습게 만드는 중국의 ‘광군절'(光棍節)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난 예전부터 갖고 있던 캐논 카메라 렌즈를 지금 쓰는 소니 카메라 바디에 연결해서 쓰고 싶었는데 몇년전만 해도 이런 ‘마운트 어댑터’ 가격이 수십만원이었다. 그런데 알리익스프레스에서는 10만 원 이하에 팔더라. 짝퉁이면 어때, 어차피 렌즈와 센서 사이 거리만 확보해주는 기계인데…라는 생각이었지만, 10만원을 턱 지르지는 않았다. 그러다 이번에 할인 메일이 날아왔다. 27달러. 60% 세일을 했다. 그러다보니 견물생심. 와이프가 무선이어폰 사달라고 했는데… 한 번 알아봤다. 12달러 짜리를 10달러에 할인… 에이, 사는 김에 맨날 잃어버리고 끊어지고 망가지는 아이폰 케이블도 사볼까… 10개에 만원… 이 모든 게 배송료 무료다. 꾸준히 장바구니에 이런 걸 담아두도록 한달 가까이 치밀히 마케팅을 벌이고, 큐레이션관을 만들고, 개인화 추천을 하는 게 알리바바다. 그렇게 해서 전 세계로 물건을 판다. 총액이 일정금액을 넘을 때마다 10달러, 20달러씩 추가 할인 쿠폰도 마구 뿌린다. 그런데 그 엄청난 주문 폭주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면서도 시스템이 아무런 오류도 일으키질 않는다. 이 정도라면, 앞으로는 식음료를 제외한 모든 걸 알리바바에서 사고 싶을 정도다.

중국의 기술에 한국이 따라잡힐 거라고, 우리가 추격을 피할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아직도 ‘전문가’들이 엄숙하게 선언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무슨 서비스를 어떻게 쓰든 이미 중국이 한 수 위다. 지마켓보다 알리익스프레스가 훨씬 편하고, 멜론보다 시아미가 더 낫다. 왜 화웨이나 샤오미 제품보다 값을 두배를 주고서 삼성과 LG 스마트폰을 사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고, 한국 기업들은 만들지도 않는 스마트 전등과 스마트 체중계들이 우리 집을 벌써 꽉 채워가고 있다. 그런데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이봐요, 버스 떠났어요. 그렇게 얘기하는 게 아니라, “죽어라고 쫓아가야 따라잡을 수 있다”고 얘기해야 한다고요. 예전에 우리가 미국 일본 쫓아가려고 기를 썼듯, 벌써 저만치 앞서가는 중국을 따라잡을 때가 왔어요.

난 심지어 요샌 무슨 말인지도 몰라서 가사도 이해할 수 없는 중국 대중음악마저 전반적인 케이팝보다 좋더라. 내가 중국 사대주의인지도 모르겠지만, xiami.com 같은 사이트에서 그냥 틀어주는 인기 음악을 들어보다가 melon.com이 틀어주는 인기 음악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한국 음악들이 평균적인 기교는 나을지 몰라도, 음악의 다양성으로 보자면 중국과 한국은 이미 비교가 되질 않는다. 그러니까 멜론은 85점에서 90점짜리 범생이들만 모인 파티같고, 시아미는 30점부터 100점짜리까지 모여 있는 건 물론, 빵점 받고도 MIT에서 모셔가는 천재들이 함께 어울리는 곳 같다. 우리가 90점짜리가 더 많다고 아무리 우겨봤자, 답은 뻔하다. 보통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디 가서 놀아야 더 재미있다고 느낄는지.

중국은 일당독재 사회주의 국가다. 한국은 다당제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고. 그런데 왜 다양성과 창의성에서 중국인들이 우리보다 더 나아 보이는 걸까.

일과 삶의 균형

일에서 성공하려면 밤낮없이 일만 생각하는 일 중독자가 돼야 할까요? 일과 삶의 균형을 갖춰야 진정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도대체 얼마나 일하는 것이 성공을 위한 길인지 궁금해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경영의 신’ 취급을 받는 GE의 CEO 잭 웰치는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이란 말은 없어요. 오직 일 또는 삶 사이의 선택(Work-Life Choice)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지지요.”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잭 웰치는 매년 20-70-10 규칙이라는 성과평가 방식을 통해 하위 10% 직원을 잘라내고, 성과를 못 내는 자회사를 문 닫아버리길 꺼리지 않던 무자비한 최고경영자였으니 할 수 있는 소리였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기업들은 당연히 다른 얘기를 합니다. GE 못잖게 미국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100년 기업’으로 IBM이 있습니다. 이 회사는 직원들을 위해 무엇이든 해주려고 듭니다. 엄마 직원을 위한 멋진 탁아소는 기본이고, 자녀의 명문대 진학을 돕는 ‘입학상담사’를 회사가 고용해 주기도 하죠. 회사에 나오지 않고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건 기본이고, 아이의 하교 시간에 맞춰 부모가 퇴근 시간을 자율적으로 설정할 수도 있습니다. 이 회사에서는 “직원이 가족에 대한 잔걱정에 신경쓰다 일에 대한 집중력을 잃는 게 회사에겐 더 큰 문제”라고 얘길 하죠.

IBM의 직원 탁아소

세상에 ‘올바른 방식’이란 건 쉽게 찾기 힘든 파랑새와 마찬가지입니다. 각자 자신의 처지에 따른 선택이 있는 법이고, 어쩌면 우리 옆에 있거나 혹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일과 삶의 균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잘 살기 위해 일하지만 때때로 일이 너무 좋은 사람들은 그 일을 하기 위해 살아가기도 합니다.

과연 이 두 방법 가운데 어느 하나만이 정답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걸까요? 성공한 기업 대부분은 초기에 직원들이 하루 16시간 씩 일하면서 일주일에 100시간도 일했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주말을 포함해 잠 자는 시간을 빼놓고 모든 시간을 일에 쏟는 이같은 방식을 누구나 따라갈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그러니 과연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 걸까요?

최근의 경향은 단연 일과 삶의 균형에 손을 들어 주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근로자를 착취하는 전근대적인 기업 문화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으니까요. 특히나 최근 성공한 IT 기업들은 ‘꿈의 직장’ 수준이라는 근무 조건을 갖추려고 경쟁적으로 노력하면서 이런 경향에 불을 붙였습니다. 구글은 공짜 점심을 제공하고 회사 안에 수영장을 갖춰 놓고 있으며, 페이스북은 직원들의 빨래를 대신해주고 애완동물과 함께 출퇴근해도 된다고 하죠. 이런 상황에서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기업은 이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좋은 인재를 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늘어났지요. 이제는 더이상 어떤 기업도 잭 웰치처럼 일과 삶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google2JRW_468x312
구글 안에 있는 인공으로 물이 흐르는 수영 트레드밀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됐을까요? 천만에요. 문제는 여전했습니다. 여전히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은 일터에서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남성 직원들의 행복도가 올라간 것도 아닙니다. 회사는 탁아소를 제공하고, 재택근무 제도도 도입했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지난해 영국의 글로벌 컨설팅업체 에른스트앤영은 대규모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기업들이 제공하는 일과 삶의 균형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를 물어본 것이죠. 그 결과 많은 회사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잡기 위한 재택근무와 탄력근무, 탁아소 운영 등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정작 직원들이 이런 제도에 대해 만족한다는 대답은 겨우 절반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이 조사팀은 “일과 삶의 균형이란 단순한 신화에 불과하다”는 도발적인 결론을 냅니다. 이 표현 자체가 직원들의 욕구를 만족시켜주지도 못하고 삶을 개선하지도 못한다는 내용이었죠. 이 조사는 많은 ‘일 중독자’들의 지지도 얻었습니다. 사실 일 중독이라는 표현 자체가 편견에 가득찬 표현이라는 얘기였죠. 일 중독이란 일을 하는 게 너무 좋아서 생활을 돌보지 않고 점점 일에만 빠져 들어 건강도 해치고 바람직한 가정생활이나 사교 활동마저 포기하는 경우를 뜻합니다. 하지만 정작 일 중독으로 불리는 사람들을 한 번 떠올려 보세요. 마약 중독이나 알콜 중독과도 비슷한 이런 극단적인 경우에 빠진 사람들은 극히 드뭅니다.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은 건강 관리에 더 노력하고, 재충전을 해서 더 일하기 위해서 가정에서의 행복도 소중하게 여깁니다. 이런 반론에 따라 조사팀이 내린 결론은 일과 삶의 균형이 아니라 ‘일과 삶의 통합’이었습니다.

일과 삶의 균형이란 말은 그 표현 자체가 ‘일은 나쁜 것’이고 ‘삶은 좋은 것’이란 전제를 깔고 있다는 반성을 한 것이죠. 이 표현에는 일은 하면 할수록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라는 편견도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소명의식을 느끼는 보람찬 일을 통해 인생의 만족도를 높입니다. 일이 잘 되면 행복해지니까요. 그렇다면 일은 생각처럼 나쁜 것이 아니라 삶에 좋은 것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일을 하는 시간을 늘이고 줄려서 삶이 행복해질까요? 조사팀의 연구에 따르면 근무 시간이나 회사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느냐 없느냐의 유무가 개인의 행복감에 주는 영향은 사람에 따라 10%대에서 70%대까지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즉 제도는 행복과 별 관계가 없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맡은 일에 대한 만족감이 행복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그렇다면 맡은 일에 대한 만족감은 어떻게 늘어날까요? 물론 직업 선택과 직장에서의 역할 등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그런데 이는 회사가 직원들을 위해 쉽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직원 개개인이 평생에 걸쳐 노력하면서 찾아가야 할 문제이기도 합니다. 반면 상대적으로 쉬운 방법도 있었습니다. 바로 리더들이 사생활과 가정 생활에 대한 얘기를 공적인 자리에서 발언하는 것입니다. 아이 얘기, 가족 얘기, 취미 얘기 등을 CEO와 임원들이 직장에서 거리낌없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얘기를 회사에서 하는 사람들은 프로페셔널하지 않다고 여기는 분위기만 해결되어도 업무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뚜렷한 상관관계가 발견됐기 때문이죠.

실제로 페이스북의 최고운영책임자(COO) 셰릴 샌드버그는 엄마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바쁜 기업의 최고 임원으로 살아가는 법을 들려주고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녀는 오후 5시면 무조건 퇴근해서 아이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합니다. 물론 그렇게 아이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이가 잠이 들면 다시 업무에 복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삶이 힘들어도 보람있다는 얘기를 회사에서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거리낌없이 하죠. 구글의 초기 멤버였고 지금은 야후의 최고경영자(CEO)인 마리사 메이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구글의 초창기 시절 근무할 땐 일주일에 100시간씩 일했다고 하지만, 지금 CEO가 된 메이어는 야후의 직원들에게 일과 삶의 균형을 찾으라고 강조합니다. 심지어 회사의 CEO로서 멋진 옷을 차려 입고 패션잡지의 표지모델로 등장하기도 했죠.

보그 표지모델이 된 마리사 메이어
보그 표지모델이 된 마리사 메이어

무엇보다 이렇게 성공한 여성들이 보여주는 가장 큰 특징은 가정과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공적인 자리에서 하는 것 또한 프로페셔널의 삶이라는 메시지를 직원과 사회에게 던진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엄마로서의 삶, 자녀들의 성장, 가족 안에서의 행복 같은 개인적인 삶을 공적인 자리에서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습니다.(심지어 회사에서 엉엉 운 얘기 같은 것도 드러내놓고 합니다.) 이 부분이 사실 오늘날 글로벌 기업의 가장 큰 변화이기도 합니다.

성공한 여성들은 이제 더 이상 가정 이야기를 감추지 않습니다. 우리 팀장의 아이가 학교 축구 팀에서 주전 선수가 된 일은 국회에서 기업 법인세법 개정안이 통과된 일 만큼이나 중요한 일로 받아들여집니다. 즉, 이제 기업의 잘 나가는 직원들도 사생활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일과 삶의 통합이란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개인의 삶이 직장에서의 삶 만큼 중요하다는 데 대한 모두의 동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