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닝메카드

전에 이런 글을 한 번 쓴 적이 있습니다. 값도 거의 차이나지 않는 손오공의 완구와 일본 반다이의 완구 사이의 차이에 대한 글이었죠. 그게 벌써 1년 전이네요. 크리스마스 때였습니다. 완구업체 대목이죠. 올해도 크리스마스가 오는 모양입니다. 페이스북을 보니 지인 분께서 아들 선물로 터닝메카드를 사셨다는 사진을 올리셨네요. 아들이 눈치챈 것 같다는 고민에 빠지셨습니다. 저도 뭔가 사서 아들 몰래 잘 숨겨놨습니다. 그런데, 사진 속 문구에 눈이 갑니다. “순수 국내 기술로 기획, 개발한 변신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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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조선일보에는 손오공 창업자 최신규 회장이 ‘직접’ ‘3년 간’이나 개발에 매달렸다는 터닝메카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인터뷰를 보면 최 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최 회장은 “언제까지 외국에만 의존할 수 없다고 보고 한국 정서에 맞는 캐릭터 완구를 만들어 성공시키자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터닝메카드의 오프닝 주제가가 나올 때 보면 재미있는 점이 눈에 들어 옵니다. 처음 나오는 타이틀은 기획 초이락컨텐츠팩토리입니다. 지난 손오공 관련글에서도 설명했지만, 이 회사는 최 회장의 아내와 아들이 소유한 비상장 비공개 가족 기업입니다. 기업공개된 상장사 손오공은 이 초이락컨텐츠팩토리가 기획한 애니메이션을 사들여 완구로 만들고 판매합니다. 이것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닙니다. 애니메이션이 뛰어나다면 그게 대주주 개인 회사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아니죠.

스크린샷 2015-10-26 오후 3.01.36스크린샷 2015-10-26 오후 3.01.54각본두번째로 나오는 이름은 구성작가입니다. 영어로 Atsushi라고 써있죠. 마에카와 아츠시, 일본의 애니메이션 각본가입니다. 동일인물이 맞는 건가 궁금했는데, 일본어 위키피디아에도 Atsushi라는 명의로 한국의 터닝메카드 구성에 참여했다고 나와 있네요. 한국 정서에 맞는 캐릭터 완구를 일본 작가에게? 그것도 평소에는 일본어로 前川淳라고 이름을 쓰는 작가의 이름을 굳이 영문으로 적어서 내보냅니다. 왜 일본어 이름을 그대로 못 써주는지 의아할 뿐입니다. ‘한국 정서에 맞는 캐릭터 완구’를 만드는 일에 일본인이 참여한 게 문제라고 생각한 걸까요? 심지어 각본가들도 한글도 일본어도 아닌 영어 표기로 엔딩 크레딧에 잠시 스쳐지나갑니다. 음…

마에카와 아츠시는 또한 국내에 슈팅 바쿠간이라고 소개된 만화 爆丸バトルブローラーズ의 제작자이기도 합니다. 완구 제조와 동시에 기획돼 만들어진 이 만화는 재미있게도, 카드와 바쿠간이 만나면 자석의 힘으로 변신하는 만화입니다. 카드와 자동차가 만나는 터닝메카드와 똑같은 설정이죠. 또 주인공 어린이들이 각각의 캐릭터와 친숙해지는 구성도 똑같습니다. 개별 스토리는 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전체의 틀은 슈팅 바쿠간과 터닝메카드가 상당히 유사합니다.

조선일보 인터뷰를 조금 더 읽으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개발 과정은 쉽지 않았다. 수년간 히트작이 없었고 회사는 2013~ 2014년 연속 적자를 내면서 자금난에 시달렸다. 지인에게 돈을 빌려서 겨우 직원들 월급을 주고 완구 재료를 조달하기도 했다. 그는 “주말이나 명절에도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밤새워 캐릭터를 개발하고 실험을 진행했다”며 “이게 안 되면 모두 끝난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이해가 잘 안 갑니다. 인터뷰는 ‘손오공의 최신규 회장’ 얘기인데, 이 개발 과정은 손오공의 개발과정 같지가 않습니다. 상장사인 손오공이라면, 연속적자를 내긴 했습니다. 하지만 손오공은 터닝메카드를 개발하지 않았어요. 개발은 초이락이 했고 손오공은 유통회사에 불과합니다. 개발사인 초이락 얘기라면 “수년간 히트작”은 없었겠지만, 앞선 글에서 설명했듯 “카봇 제작”을 담당했습니다. 터닝메카드 수준은 아니었어도 아주 인기있던 완구였죠. 심지어 “가족들과 밤새워 캐릭터를 개발”했다는데, 그 가족이 마에카와 아츠시 씨인 건가요?

무엇보다 손오공은 초이락과 지분관계가 없습니다. 초이락이 돈을 아무리 벌든, 그건 최 회장 가족들의 주머니로 들어갈 뿐 손오공의 수익과는 별 관계가 없다는 것이죠. 더 큰 문제는 두 회사 사이의 지분관계가 없기 때문에 양사의 거래가 어떤 식으로 일어나는지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손오공의 소액주주들은 이런 문제 때문에 주총에서 초이락과의 거래내역을 밝히라고 했다지만, 단체행동에 실패한 것인지 통과되지는 못한 모양입니다. 현재 손오공의 지분 구성을 보면 최 회장이 약 17%, 소액주주들이 83%의 지분을 갖고 있지만 흩어져 있는 소액주주들의 지분으로는 뭘 어떻게 하기가 쉽지 않겠죠.

그냥 일본의 인기 애니메이션을 만든 탁월한 기획자를 영입해서 글로벌 상품을 기획했다고 말하면 안 되는 걸까요. 손오공은 손오공이고, 초이락은 초이락이라고 얘기하면 안 되는 걸까요.

다행히 아들은 크리스마스에 터닝메카드를 사달라고 조르지는 않고 있습니다. 아빠가 선물을 받은 느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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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새해 맞이

새해에 뭔가 다짐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지난해 교황이 방한하셨을 때 썼던 글을 다시 읽게 됐다. 생각해보니 큰 다짐이 필요한 세상이 아닌 것 같다. 좋은 가르침을 다시 새기고 제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게 아닐까 싶어서 다시 여기 옮겨둔다.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 미리 밝혀두자면 난 기독교인이 아니다. 불교인도 아니고 이슬람교인도 아니다. 난 세상 모든 신들을 믿고, 그 모든 종교를 존중한다. 천년을 넘게 이어진 세상 모든 가르침에는 배울 점이 참 많으니까.

어쨌든 다른 종교와도 이러저런 인연이 있어서 관심을 갖게 됐고 공부도 해보게 됐지만, 그 중에서도 기독교와의 인연은 우연하게 시작된 데다, 그 경험 또한 아주 강렬했다. 시작은 성경이었다. 군대에 가기 직전 마침 소설처럼 고쳐 쓰인 현대어로 된 구약을 읽고 있었다. 보면서 한심했다. 이 야훼라는 신은 변덕이 죽끓듯해서 뭘 해라, 하지 말아라 하는 얘기가 시시때때로 변했고, 인간들이 큰 잘못을 한 것 같지도 않은데도 툭하면 세상을 멸망 직전으로 몰고 가는 천벌을 내려대곤 했다. 노아의 가족들만 빼고는 세상을 물에 잠기게 한다거나, 바벨탑 좀 지었다고 사람들의 말을 서로 통하지 않게 만들어버린다거나, 이집트인들이 유대인들을 구박했다며 이집트인들을 몰살시키려 한다. 소돔과 고모라야 소돔과 고모라니까 그렇다쳐도.

구약을 읽고서 이런 신을 믿는 사람들은 도대체 뭘 믿고 살아가나 싶었다. 신을 믿고 의지하다보면 불벼락을 맞을 것만 같은데. 그리고나서 군대에 갔다. 곧이어 책이 없는 환경과 마주쳤다.(이거 진짜 괴롭다.) 유일한 책은 성경과 금강경. 그래, 구약은 읽었으니 이 기회에 신약이나 읽어보자 싶어서 집어 든 게 공동번역성서(천주교 개신교 공동 번역)였다. 현대어로 성경을 번역했기 때문에 이 또한 소설을 읽듯 읽기 편했다. 그리고 예수의 삶을 읽으면서 난 이 종교에 완전히 매혹됐다. 아마도 이등병 시절에 신약을 읽어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신약에서는 구약의 신은 오간 데 없었다. 예수는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신의 아들이자 동시에 사람의 아들이었는데, 그는 세상에 사람의 육신을 빌어 등장한 뒤 인간의 목소리로 하늘의 가르침을 전했다. 그가 했던 말은 오직 하나.

“이제부터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서로를 사랑하라.”

신의 아들이 직접 입을 열자 복잡한 규칙을 정했던 변덕스런 야훼의 모든 모습이 사라져 갔다. 그 이상한 신의 모습은 선지자라는 사람들이 각자 자신들이야말로 신의 뜻을 안다며 떠들어댔기 때문에 생겨났던 얘기였다. 신의 아들이 직접 신의 뜻을 얘기해 주니 모든 논쟁은 정리됐다. 예수의 가르침은 지극히 단순했다. 서로를 사랑하라는 것. 나머지 가르침은 그 아래의 하위 조항 정도에 불과했다.

신약에 따르면 사람들이 서로를 사랑하려면, 그것도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게 있다. 사랑받지 못하고 소외당하는 약한 곳, 낮은 곳부터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잘 살고 편안한 힘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사랑하는 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할 수 있으니까 온기가 없는 곳부터 돌봐야 한다. 그래서 예수는 아흔아홉마리의 어린양을 놓아두고 굳이 길 잃은 한 마리의 어린양부터 찾아가라고 가르쳤다. 또 원수를 만나도 용서하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스스로 로마 제국 아래에서 고생하는 평민들을 찾아갔고, “(신의 아들인 내가) 너희의 죄를 용서했으니 너희도 서로를 용서하라”는 말을 했던 것이다.

기독교 교리는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이등병 때 계속 부대 성당에 다니면서 수녀님들과 천주교 교리도 공부하고 성경도 꼼꼼히 읽었는데 이 단순한 얘기를 다양한 사례로 변주해 설명해 주고 가르쳐 주는 과정이 곧 기독교인이 되는 과정이었다. 세례도 받고 싶었지만, 교회에 세번인가 나가면 세례를 주는 개신교와는 달리 천주교 성당에서는 교리공부를 몇 차례 했다고 교인 자격을 쉽게 주지는 않았다. 결국 그래서 기독교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 때 했던 공부만큼은 그 과정 자체가 큰 위안이 됐다. 세상 전체가 이등병인 나를 괴롭히는 것 같은 시절이었는데도, 교회에만 가면 성경과 신부님의 설교와 우리가 부르는 찬송이 모두 “기독교는 너처럼 약한 사람을 제일 우선하는 종교”라고 반복해서 얘기해 줬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세계적인 찬사와 함께 한편에서는 온갖 비난도 일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교황이 성경에서 인정하지 않는 동성애를 인정하는 발언을 했고,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도, 야훼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도 양심에 따라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주장한데다, 공산주의자처럼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다는 게 문제가 된다고 했다. 그것도 기독교인들이 그를 비난한다고. 내가 그들에게 되묻고 싶다. 성경은 읽어 봤느냐고.

지난해 교황의 공항 영접에는 평신도 가운데 “복자로 선포되는 시복대상 후손들과 함께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 새터민, 외국인 이주노동자, 범죄피해자 가족모임 회원, 장애인, 중·고교생, 가톨릭노동청년” 등이 참석했다. 또 방한 기간 동안 교황은 “세월호 참사 생존자와 유족,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기다리며 오랜 세월 고통 속에 살아 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용산참사 유족,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제주 해군기지와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을 하는 강정마을과 밀양 주민들”을 만났다. 예수께서는 교인들에게 그렇게 살라고 했고, 교황은 그렇게 살았다. 사실 다른 종교의 가르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자와 권자를 위한 세속 교권은 있어도, 신들의 음성은 늘 빈자와 약자를 향해 있기 마련이었다.

2014년은 참 힘든 한해였다. 잔인하리만치 가슴아픈 일들이 주위에 많았고, 수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좋은 일들도 많았지만, 이렇게 힘들었던 한 해가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우리 모두에게 안 좋은 기억부터 생각났던 한 해였다. 2015년은 좀 더 나아지기를. 그리고 지난해의 교훈과 가르침에서 조금씩 더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반다이와 손오공, 씁쓸한 차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우리가 어릴 적엔 늘 외제가 더 좋았다. 과자도 미제 과자가 더 맛있고, 장난감도 일제 장난감이 더 좋았고, 기계도 독일 기계가 최고였다. 그래서 국산품 애용 운동도 있었고, 품질 개선을 위한 각종 검사필증이 생기기도 했다.

다 옛말인 줄 알았다. 지금은 세계에서 제일 좋은 스마트폰을 만드는 회사가 한국 회사고, 세계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게임회사 가운데 몇 곳이 한국에 있으며, 세계에서 제일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도 한국에 있으니까.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맞아 선물 복 터진 아들의 장난감 상자를 뜯으면서 씁쓸해졌다.

아직도 일제가 더 좋잖아!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올 크리스마스 부모들의 애간장을 녹였던 다이노포스 시리즈와 역시 아이들에게 인기였던 카봇 시리즈 장난감 몇 개가 아들 손에 들어갔다. 사진은 그 중 일반적인 모델인 파라사건(일본 반다이 완구)과 카봇 에이스(한국 손오공 완구)의 패키지 뒷면이다. 모두 정해진 기준에 따라 표시해야 할 내용을 표시해 놓았다. 주의사항과 상품명과 제조자, 제조국가 등.

차이가 좀 있다. 일제 다이노포스는 제조국이 태국이다. 원가를 낮추려면 당연히 아웃소싱을 할 수밖에. 그리고 한국제 카봇은 제조국이 대한민국이다. 그런데도 태국 제조가 한국 제조보다 낫다. 사실 사람 손보다는 품질 관리의 문제니 그렇다치고 좀 더 살펴보자. 다이노포스의 제조사는 반다이산업이고, 카봇의 제조사는 초이락컨텐츠팩토리다. 앞서 말했듯, 품질은 확실히 반다이 제품이 더 낫다. 물론 값에 차이는 있다. 반다이 제품이 전반적으로 비슷한 크기의 제품일 경우 50% 정도 더 비싸다. 도대체 왜 그럴까. 엄청나게 많은 분야에서 한국산이 대부분 일본산에 크게 뒤지지 않는 품질로 제품을 만들고 있는데 왜 아이들에게 돈을 아끼지 않는 부모로 가득찬 한국에서 장난감 품질은 내가 어릴 때와 똑같은 격차를 그대로 갖고 있는 듯 보이는 걸까.

궁금해서 두 회사를 잠깐 검색해 봤다. 손오공과 반다이는 둘 다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어린이 완구 회사다. 손오공은 수도꼭지를 만들다가 끈끈이 장난감으로 대박을 낸 뒤 이후 완구와 게임, 애니메이션 제작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반다이는 전후 양철깡통 장난감 등으로 인기를 끌다가 건담의 프라모델을 제작하면서 그게 엄청난 히트를 쳐서 성공한 회사다. 반다이 역시 나무코(Namco)와 합병을 통해 게임 사업 쪽을 제대로 확장했고, 애니메이션과 파워레인저 같은 특수촬영 어린이드라마 등도 제작한다.

반다이의 지배구조는 심플하다. 반다이와 나무코 두 회사를 반다이나무코홀딩스라는 지주회사가 지배한다. 반다이는 완구 제조 쪽으로, 나무코는 게임 쪽으로 각각 특화돼 있으며 서로의 지적재산을 활용해 영역을 확장한다. 반면 손오공은 여기서부터 뭔가 이상하다. 상자를 보면 나오듯 손오공의 완구 제조를 초이락이 맞는다. 초이락컨텐츠팩토리는 이 기사에 따르면 손오공 창업자 최신규 회장의 아내와 아들이 경영한다고 했다. 손오공이 계열사에게 제조를 맡기는 셈이다.

돈 되는 카봇 완구에 더해 손오공이 돈을 쓸어담는 캐시카우 역할을 한다는 리그오브레젠드 매출은 손오공IB라는 또 다른 자회사의 매출로 잡힌다. 연결재무제표에 반영되는 지분법손익 외에는 구체적인 현황을 살필 도리가 없다. 코스닥 상장사에 한국 대표 완구업체인데 도대체 뭘 어떻게 장사를 하고 있는지 투자자의 입장이라 생각하고 살펴보려 해도 알 수 있는 게 없다. 심지어 초이락컨텐츠팩토리는 말 그대로 완구 제조가 아니라 카봇 애니메이션 같은 콘텐츠 제작사다. 그런데 왜 여기서 제조를? 그리고 최신규 창업자는 손오공 대표이사를 물러나 손오공IB에 전념한다고 했고, 손오공은 손오공IB의 채무보증도 서주고 구로구 대지도 손오공IB에게 판매한다. 왜 자꾸 상장법인인 모회사 손오공의 영역은 줄여가면서 비상장 자회사 쪽 거래량을 늘리고, 창업자 가족들도 그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걸까?

반다이는 좀 다르다. 이 회사는 파면 팔수록 이상한 짓을 한다.

이건 반다이 프라모델 공장의 유니폼이다. 모든 사원들이 출근하면서 입는. 그런데 아래 사진과 비교해보자. 어릴 적 건담을 좀 봤다면 모두 알고 있을 그 군복이다. 아무로 레이가 속해 있는 지구연방군 군복.

손오공의 재무제표를 보면 사업분야는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완구 및 게임, 캐릭터 로열티, PC방 수수료(LoL). 완구와 게임이 분리되지 않고 공시된다. 비중은 약 84:1:15 정도. 반면 반다이의 재무제표는 토이호비(Toy-Hobby),  콘텐츠, 어뮤즈먼트 시설 사업으로 나뉜다. 비중은 4:5:1 정도. 이것도 이상하다. 손오공은 왜 이렇게 분류하는 걸까.캐릭터 수입은 의미없는 수준이고, PC방 수수료는 라이엇게임즈와의 계약에 종속되는 불안한 사업인데. 반다이는 이해가 간다. 완구류 제조와 콘텐츠 제작은 두개의 중심축이 되는 것이고, 어뮤즈먼트 시설이란 오락실/빠찡코 같은 게임센터 사업이라 다른 두 축과 묶이기 힘든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길게 썼지만,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하나다. 본질에 집중하는 회사가 좋은 제품을 만든다. 반다이 프라모델을 사느라 한국 아빠들이 대형마트 매대에서 번호표까지 받아가며 줄을 서야 하는 현실은 좀 짜증나지만, 내가 아들 선물을 골라줘야 하는 나이가 된 지금, 국산품 애용하는 마음만으로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는 회사의 제품을 사고 싶지는 않다.

차별과 역차별과 역차별에 대한 차별

최근 아시아계 응시자들이 하버드에 소송을 제기했다. ‘신입생 인종 비율 맞추기’가 하버드의 관행이라는 강력한 증거가 제출됐다. 각 인종·민족 집단의 입학생 수가 매해 현저히 비슷한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다. 아시아계 입학생 수가 유난히 높은 해가 드물게라도 있으면 그다음 해부터는 아시아계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통계도 있다.

뉴욕타임즈 칼럼을 번역한 중앙일보 기사. 이 기사에 등장하는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이란 말을 처음 들은 건 대학생 시절 캐나다에 갔던 때였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큰 충격을 받았던 개념이었다. 북미가 선진 사회라고 놀란 건 아니고, 이들의 생각에 대해 놀랐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편견에 의해 서로를 차별하게 마련이니, 차별을 줄일 수 있도록 우리가 우리를 역차별해서 평등을 만들어 보자는 사회적 약속을 만들었던 것이니까.

그러니까 애초에 이 제도는 흑인 학생이 좋은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면 사회의 높은 지위도 차지하기 힘들고 그러면 이 흑인 학생들은 백인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는 네트워크에서 소외돼 흑인들이 집단적으로 불이익을 보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문제에서 비롯됐다. 이를 해결하려면 흑인을 억지로 비율을 정해 뽑으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면 그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백인 주류 집단과 경쟁할 능력을 갖추게 되고, 그렇게 되면 지금은 흑인 학생들의 성적이나 과외 활동 등이 (사회적 여건, 가계 소득, 가정 환경 등으로 인해) 백인 학생들보다 뒤진다고 해도 그들의 후대에선 개선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 칼럼이 지적하는 문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이 칼럼 얘기는 지금은 아시아계 학생들이 ‘실력대로’ 뽑으면 백인을 제치고 주류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하버드에 불어서 아시아계 학생들이 역차별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퍼머티브 액션이란 게 미국 내 소수인종을 위한 백인에 대한 역차별 제도인데, 이 역차별 제도가 백인을 위해 소수인종(아시안)을 역차별한다는 이상한 얘기가 현실이 됐다. 많은 아시아계 학생들은 이미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성공을 위한 인종그룹별 네트워크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아시아권 문화가 하버드를 점령하는 상황을 백인들이 두려워할 수 있다는 얘기아. 물론 이 또한 가정에 불과하고, 통계를 통한 추론일 뿐이다. 하지만 이 경우 어퍼머티브 액션은 아시아계에 대한 또 다른 차별이다. 인종 쿼타를 맞추기 위해 더 많이 뽑을 학생들을 억지로 줄여 뽑으면서 백인들에게는 상대적 우대를 해주는.

그래서 그냥 쿼타를 없애고 평등하게 가자는 아시아계의 주장은 과거 (흑인들 때문에 유태인 자리가 줄어든다고 생각해서) 어퍼머티브 액션이 필요없다고 주장했던 유태인들의 주장과 묘하게 비슷하다. 문맥 그대로 살피면 올바른 얘기가 인종적 맥락에서 살피면 올바르지 않은 얘기가 된 셈이다. 그런데 이런 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절대적 진리라고 내가 뭔가를 주장해 봐야 사실은 자신의 입장에서만 진리에 불과한.

글 쓰던 선배

힘이 든다.

이 블로그에 IT 관련 얘기가 아닌 걸 쓰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인데, 신해철 얘기를 썼던 게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또 IT는 오간데 없고 먼저 떠난 사람 얘기를 쓴다. 구본준 선배와의 인연은 신기하게도 처음과 마지막 대화가 다 기억난다.

“선배, 저 선배 팬이었어요.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처음이었다. 2005년 대구였다. 장소도 잊혀지질 않는다. 구본준 선배가 본인이 정말 하고 싶어했던 경제부 산업담당 기자를 하던 때였다. 한국전자전 취재 장소였다. 사실 구 선배의 바이라인은 엄청나게 봤지만, 본인을 현실에서 만난 건 처음이었다.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취재하러 온 현장에서 후배 기자가, 그것도 다른 회사 기자가, 다른 사람들도 옆에서 듣는데 “팬이었어요”라고 하는 경우는 흔치 않으니까. 나중에 동아일보의 다른 선배가 전해 줬다. “너 구본준 선배 아니? 네 얘길 하던데.” 전략같은 건 아니었지만, 의도치 않게 그렇게 선배에게 내 이름을 알렸다.

“상훈씨, 내가 요새 그냥 노는데, 시간이 좀 많아. 같이 밥이나 먹자.”

그건 이전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받은 전화였다. 마지막 통화였다. 페이스북으로 안부를 묻고 소식을 들으니, 그냥 밥이나 먹는 일은 좀 뒤로 미뤄도 되는 줄 알았다. 그 때 빨리 약속 잡고 만나서 밥을 먹을 걸, 하는 흔한 후회를 나도 하게 될 거라곤 그때만 해도 몰랐다. 얼마전 선배의 페이스북에 밥 안 사주시냐는 댓글을 남길 때까지도 여전히 몰랐다.

난 동아일보에 있었고, 구 선배는 한겨레에 있었는데도, 묘하게 선배한테 많은 걸 배웠다. 열혈강호와 용비불패를 다룬 기사, 베르세르크를 소개한 기사, 미스터초밥왕 기사 등등 한달에 한두번은 꼬박꼬박 만화를 보면서 밤을 새곤 하던 1990년대 후반의 대학생에게 구 선배의 기사는 단비 같았다.

만화 담당 기자가 이러저런 신문사에 생기던 때였지만, 그 때 내게 ‘정말 만화를 좋아하는 기자’라고 느껴진 건 구선배 뿐이었다. 늦게 군대를 전역한 뒤 일자리를 찾을 때가 되었을 때, 언론사 시험을 봤던 것도 “만화 기사를 써도 기자를 할 수 있구나” 싶어서였다. 사건 취재하고, 정치인을 취재하는 건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 기자라는 직업을 존경하긴 했지만, 내가 그걸 하기엔 내 능력이 부족해 보였으니까. 그런데 뭔가 만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면서도 기자를 할 수 있고, 그게 나같은 독자들에게 정말 절실히 읽힐 거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그런 모델이 구 선배의 형태로 한국에 있었으니까.

많은 선배들이 내게 뭔가를 가르쳐줬다. 기사는 이렇게 쓰는 거라고 했고, 취재원은 저렇게 관리하는 거라고 했다. 그런데 지내보니 다 틀렸더라. ‘이렇게’대로 쓰는 정형화된 글은 독자들이 진저리를 냈고, ‘저렇게’대로 뻔한 수에 따라 관리당하는 취재원들은 기자를 더러운 벌레 보듯 보더라. 그냥 내가 좋아서 쓰는 글을 독자들도 좋아했고, 내가 좋아서 만나는 취재원들은 인생의 스승이 됐고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그리고 구 선배는 몰랐겠지만, 그렇게 좋아서 하는 법을 구 선배에게 배웠다. 사실 구 선배는 늘 “난 정말 글을 못 쓴다”면서 글 잘 쓰는 사람을 부러워했다. 말도 안 되게 글을 잘 쓰면서 그 소리를 하도 하니까 주위에서 정색을 하면서 “그건 겸손이 아니라 오히려 허영”이라고 뭐라고 했을 정도로. 그리고 취재원들하고는 같이 여행을 가거나, 심지어 함께 집을 짓고 옆집 이웃으로 살기도 했다. 그래서 구 선배 주위에는 글쟁이가 득시글거렸고, 전문가들이 도와줄 준비를 다 해놓고 우글대곤 했다.

그런 선배가 어느 날 저녁 자리에 날 불렀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나올 텐데, 다 책 읽고 쓰는 걸 좋아하고, 좋은 분들이라며. 만나보니 정말 그런 분들이었다. 내가 그 자리에 같이 앉는 게 뭔가 자리의 격을 떨어뜨린다 싶어 보일 정도로.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구 선배가 “상훈씨 책은 정말 열심히 아주 수고롭게 취재해서 쓴 책이던데? 책 들여다보고 자료 모으는 게 아니라 진짜로 발로 뛰어서 쓴 거로구나 싶어서 대단했다”고 말해줬다. 서로 칭찬하는 의례적인 순간이 아니라, 그냥 최근 읽은 책들 얘기를 서로 죽 늘어놓던 와중에 지나가듯 툭. 구 선배는 그 자리에서 내 책을 내가 선물해 드리기도 전에 스스로 사서 정독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냥, 구 선배는, 늘,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기가 진짜 좋아한다는 걸 아무런 숨김 없이 그냥 말하곤 했다. 그래서 선배 주위에는 늘 좋은 사람들이 몰렸다. 그리고 나같이 별 볼일 없던 사람도 그 좋은 사람들 틈에 쉽게 섞여 들어가게 도와줬다.

“난 상훈씨가 어디서 뭘 하든 그냥 계속 후배라고 생각해. 우린 글 쓰는 사람이니까.”

그게 마지막으로 내가 구 선배와 얼굴을 맞댔을 때 나눴던 얘기였다. 사실, 그래서 힘든데도 꼭 이 글을 써야지 싶었다. 우린 어디서 뭘 하든 글 쓰는 사람이니까. 선배한테는 꼭 이렇게 작별해야 할 것 같아서. 눈물도 안 난다. 그냥 거짓말 같다.

윤윤수의 꿈

윤윤수라는 사람 알아요? 휠라를 인수하신 분. 처음엔  이탈리아 본사에 찾아가 ‘한국에서 당신 회사 제품을 좀 팔아보겠다’고 제안했다죠. 그런데 이탈리아 애들이 한국이란 듣도보도 못한 나라에서 그런 제안이 왔으니 무시한 거에요. 그러자 이번엔 포기하지 않고 휠라USA를 찾아가서 제안했어요. ‘미국에서 받은 제품 중 일부만 나한테 넘기면 내가 한국에서 팔아다 줄게’ 하고요. 미국인들은 이탈리아인들보다 도전적이잖아요. 새 기회가 생긴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어서 어디 한 번 해보라고 했죠. 그렇게 윤윤수가 휠라를 한국에 들여와서 팔기 시작하자, 그것도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팔자 갑자기 휠라USA 매출이 확 오르기 시작한 거에요. 이탈리아 본사에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죠. 미국에선 한국의 윤윤수라는 사람 덕분이라고 했죠. 그 다음엔 윤윤수가 지사를 내고 휠라코리아를 세워서 이탈리아 본사 물건을 직접 팔았어요. 엄청나게. 그 뒤 아예 휠라 본사를 인수했어요. 한국에서 외국 기업 지사장을 한다면, 그 정도는 했으면 합니다. 지금도 직원들에게 말해요. ‘여러분, 그냥 외국 기업 직원으로 살지 말고 저와 함께 윤윤수의 꿈을 꿉시다’라고요. 한국에선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예전에 동창회가 있었다. 경영학석사 과정 동창회였으니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드디어 동창 분 가운데 월급쟁이로 시작해 대표이사가 되신 분이 나오셨다. 외국계 기업의 한국 지사장. 즐겁게 술잔이 몇 순배 돈 뒤 한 말씀만 해주십사 부탁드리자 해주신 말씀이 위의 얘기다. 윤윤수의 꿈.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은 높은 연봉과 좋은 근무조건, 합리적인 기업문화를 자랑하긴 하는데 가끔 불만을 내뱉는 경우가 있다. 그 불만의 대부분은 ‘본사가 시키는대로’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은 늘 자기주도적으로 일할 때 가장 행복하게 마련인데 언어장벽이 있고, 시차 탓에 의사소통까지 더딘 먼 곳의 본사 사람들로부터 휘둘린다는 느낌을 받으면 행복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러면 결국 그냥 주는 돈이나 열심히 받고, 시키는 일이나 하자는 수동적 생각을 하기 쉬워진다. 그런데 그런 환경에서 누군가는 자족하는 대신 상자를 벗어나서 생각한다. 그게  ‘윤윤수의 꿈’이다.

아이폰 점유율 잡담

한성은 이사님 페이스북을 보고 든 생각.

국내 아이폰 점유율이 5%라지만 서울/수도권에서는 20% 넘고 상권에 따라 30% 넘는 곳도 있네요.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좋은 시사점이 있는 얘기라고 동의하지만 뭔가 찝찝한 느낌이 든다. 특히 자동차를 살 만한 구매력 있는 집단에서는 아이폰 사용률이 15~30%에 이를 거라는 예상에서는 더더욱.

개인적으로는 좀 다른 생각인데, 일단 아이폰은 이름과는 달리 아빠폰…(예, 죄송…) 어쨌든 아이폰은 30대 이상에서나 여전히 인기다. 2010년 1년 동안 스마트폰 열풍이 불던 초기에 구매력있는 젊은 아저씨 아줌마들부터 쓰기 시작했기 때문. 하지만 우리의 멋진 10대들은, 그리고 유행을 선도하기도 하는 쿨한 틴에이저들은 다 안드로이드를 쓴다. 그것도 보조금 잔뜩 태워서 팔아주는 버스폰으로. 간혹 “역시 스티브 잡스는 혁신의 상징”이라고 착각하는 부모 세대 때문에 최신 아이폰으로 업글한 부모의 구형 아이폰을 물려받아 “아이콘 배열도 맘대로 못 하고 폰트도 못 바꾸는 폰”을 억지로 쓰는 경우는 있다. 그들에게 그런 ‘기본’도 못하는 폰이 무슨 혁신일까.

또 하나는 스타트업 동네 이야기. 가끔씩 아직도 이 동네에서는 아이폰이 여전히 대세라는데, 대세 아니다. 일반인보다야 상대적으로 비율이 높지만, 정말 아니더라. 요즘 돌아다니면서 느낀 건데 어딜 가서 핸드폰 꺼내 놓는 모습을 보면 넥서스5가 늘 50% 이상을 차지한다.(10대 중 8대가 넥서스5인 모임도 있었다.) 압도적 점유율인데, 개발은 안드로이드 위주로 해야하니 어쩔수없이 안드로이드를 메인으로 써야하지만 그렇다고 통신사 앱이나 제조사의 프리로드앱을 쓰기는 싫은 사람들이 결국 그나마 단순하고 심플한 구글 레퍼런스를 쓰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50% 남짓 정도를 올망졸망 아이폰, 갤럭시, LG가 나눠갖는 형국이다. 그나마 여기서 아이폰과 갤럭시가 2중, LG가 1약 정도를 하고 점유율이 보이지도 않는 다른 회사들이 좀 있는 정도랄까. 세상이 변했다. 아이폰 점유율이 20~30%라고 해봐야 뭘 하나. 2년 전만 해도, 갤럭시가 세상을 호령했지만 그 때 스타트업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70% 이상이 아이폰이었다. 문자를 보내려고 보면 받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에서 파란 말풍선이 뜨던 경험, 이젠 아니다. 파란 말풍선을 보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그렇게 그들은 다 전향했다.

더 큰 문제는 큰 기업들도 안드로이드 위주로 움직인다는 데 있다. 난 아이폰6가 나오면 아마도 또 호갱님이 되어서 좀비처럼 가게 앞으로 어기적어기적 걸어갈 것 같지만, 그래도 페이스북도 안드로이드 팀에 인센티브를 주고 있고, 구글은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할 것 같으며,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은 페이스북 것이 됐다. 애플은 계속 어려운 싸움을 벌이게 될 것 같단 얘기다. 게다가 난 아직도 애플 하드웨어가 세계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넥서스를 쓰다가 가끔 아이폰으로 왔다갔다 할 때면 아쉬운 게 계속 많아진다. 전에는 쾌적하단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불편한 점들이 많아진다는 얘기다. 안드로이드가 자기만의 장점을 계속 늘려가고 있어서 돌아서기 힘든 상황이 됐다. 한국이 너무 안드로이드 위주라고 뭐라 불평할 수는 있겠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한국은 지극히 좋은 방향으로 앞서서 달려나왔다. 하드웨어고 소프트웨어고 한국과 상대도 안 되는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는 일본이 옆에 있는데, 한국 스타트업 중에 실리콘밸리 기업이나 중국 기업을 두려워하는 회사는 있어도 일본 기업을 두려워하는 경우는 없다. 구글이 왜 도쿄보다 먼저 서울에 캠퍼스서울을 만들고, 규제 천지 이 힘든 나라에서 온갖 서비스를 열심히 열어주는지 생각해 보면 이 안드로이드 일변도 환경이 확실히 비교우위를 열어준 행운의 선물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세계 최대의 안드로이드 국가인 중국은 역설적으로 구글과 단교했다.(기업과 국가 사이에 단교란 표현을 쓰는 게 어불성설이지만, 그래도 이건 단교다.) 구글은 중국 시장이 필요했지만, 그래도 구글에겐 자신들의 만트라(Don’t be evil)가 그 시장보다 더 중요했다.(신성로마제국이 교황을 부정할 수는 없는 법) 결국 방법은 간접 교류 뿐. 중국 개발자가 구글과 친해지려면 직접 구글과 만나는 건 쉽지 않다. 아예 실리콘밸리로 나오지 않는 한. 그런데 실리콘밸리로 나가기엔 이미 중국 시장도 크고 좋고 무엇보다 중국에 있으면 미국 기업과 겨루지 않아도 된다. 결국 중국과 구글의 가교 역할을 해줄 곳이 필요한데, 일본은 중국과 사이도 안 좋고 안드로이드에 그렇게 올인하는 나라도 아니다. 반면 한국은 다르다. 수많은 기업들이 중국 기업과 하루가 멀다하고 투자하고 투자받으며 긴밀하게 교류하고 있고, 민간 교류와 문화 교류도 활발해 중-한 양국간 감정은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괜찮은 편이며, 무엇보다 한국은 안드로이드의 나라다. 그리고 구글을 좋아하는 나라다. 그런데 중국 기업들이 구글과 아주 친한 한국 기업들과 아주 친해진다면?

난 품질 좋은 한국에 로컬라이즈된 iOS앱이 많이 나오길 바라지만, 그렇다고 한국 개발자들이 안드로이드 우선 환경을 기형적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한국이 하루 아침에 일본이나 중국 크기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결국 지금 우리의 기형적인 상황이야말로 정말 절묘한 상황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