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블릿, 혹은 아이패드의 미래

아무도 태블릿 판매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모른다. 하지만 적절한 앱과 사용 시나리오가 만들어진다면 태블릿은 분명히 아주 좋은 컴퓨터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월트 모스버그 할아버지의 분석. 태블릿 판매량이 주춤거리고 있지만, 팀 쿡 애플 CEO는 ‘과속방지턱’에 걸렸을 뿐이라고 얘기하고 있고, 여전히 아이패드는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으며, 태블릿은 자기 자리를 찾아서 잘 발전할 거란 얘기.

솔직히 나도 이 쪽 견해에 더 동감한다. 화면이 큰 스마트폰은 들고 다니기 힘들고(스마트폰은 정말 언제 어디서라도 붙어있어야 한다.) 기꺼이 아이패드를 꺼낼 수 있는 순간이라면, 난 늘 아이패드를 꺼낸다. 개인적으로 불만인 점은 아이패드의 활동성을 애플 스스로 제약하고 있다는 점이 아닌가 싶다. 태블릿이 랩탑과 다른 점은 두 손을 기계와 분리시키지 않고도 쓸 수 있다는 점인데 그걸 잘 안 살린다는 느낌이다. 랩탑은 반드시 어딘가 내려놓아야 쓸 수 있지만 아이패드는 랩탑처럼 편히 보는데도 내려놓을 공간 없이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패드는 카메라가 후졌다. 같은 시기에 나오는 최고의 카메라는 늘 아이폰에 있고, 아이폰 카메라는 새 모델이 나올 때마다 확연한 개선을 보이지만, 아이패드의 카메라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아이패드는 위치에 인색하다. 셀룰러 통신 모델에는 GPS 센서가 달려 있어서 위치를 잘 파악할 수 있지만 와이파이 아이패드에는 GPS가 달려 있지 않다. 셀룰러 모델과 와이파이 모델의 크기 차이는 없다.

아마도 이제 애플은 놓고 써야 하는 큰 화면 아이패드와 들고 써야 하는 아이패드 미니를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새 루머로 들리는 12인치 아이패드 얘기는 그래서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어쨌든 난 하루종일 아이패드를 들고 다니는 걸 좋아한다. 내가 유별날 수도 있지만, 과연 나만 그럴까. 태블릿 시장이 끝장난 것처럼 말하긴 아직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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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라는 환상

구글이 3억 달러를 투자해서 미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해저 케이블을 건설하는 사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기존에도 구글은 이런 사업을 꾸준히 해왔지만, FASTER라는 이름의 이번 사업은 조금 다르다. 전송 속도가 초당 60테라비트에 이르기 때문이다. 대략 기존 해저케이블의 20배 정도 속도다. 이렇게 여기에 돈을 쏟아붓는 이유야 당연하다. 해저케이블이야말로 글로벌 경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해저케이블은 국가간 인터넷 연결의 99% 이상을 담당한다. 초당 테라비트급으로 정보를 전송하는 해저케이블과 비교하면, 특히 이번의 Faster 프로젝트와 비교하면 위성 인터넷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그리고 현대의 국가간 통신 대부분은 이미 우리가 알다시피 대부분 인터넷으로 진행된다. 기존의 전화망보다 훨씬 값싼 데다 더 많은 정보를 실어나르기 때문이다. 문자메시지를 대신하는 왓츠앱이나 라인은 물론이고, 국제전화와 화상회의도 스카이프와 행아웃이 대신한다. 투자은행들은 0.01초 혹은 그 이하의 아주 미세한 시간 차이에 따른 차익거래 이익을 실현하려고 런던과 뉴욕 증시를 연결하는 대서양 해저케이블을 자신들만의 전용선으로 연결할 정도다. 그러니 구글이 해저케이블에 투자한다는 건 글로벌 사업이 구글에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반증인 동시에, 이런 투자가 고도화될수록 구글과 같은 글로벌 인터넷 기업들에게 더 유리한 환경이 펼쳐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중국이 있다. 시스코에 따르면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터넷 트래픽을 쓰는 지역은 아시아다. 중국은 이 가운데 6억 명 이상의 인터넷 사용자를 갖고 있다. 이에 더해 이 중국 인터넷 사용자 가운데 80% 이상이 모바일 인터넷 사용자다. 지금 가장 뜨거운 산업 분야는 인터넷이고, 모바일이다. 이 산업은 미국이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중국의 모바일 인터넷 사용자 수는 이미 미국의 총 인구를 넘어선다.

그런데 지금 중국은 자신들의 인터넷을 세계와 차단해 놓고 있다. 이른바 황금방패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The Great Firewall’, 즉 만리장성(The Great Wall)을 풍자한 이 이름은 거대한 방화벽이란 뜻인데, 말 그대로 외국의 모든 인터넷 서비스가 중국 사용자에게 접근하는 걸 막는다. 물론 각종 편법으로 외국 서비스를 쓸 수야 있지만 대부분의 중국 사용자는 그런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대신 그냥 중국 인터넷 서비스를 쓴다. 그렇게 세계 최대의 인터넷 시장은 철저한 중국 내수 시장이 됐으며, 세계와 격리됐다. 하지만 일본이나 한국처럼 갈라파고스 현상이 일어날 이유는 없다. 그건 섬나라의 이야기고, 중국은 대륙인데다 시장도 이미 미국보다 크다.(게다가 미국보다 빨리 성장한다.) 이런 환경 덕분에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최대 규모를 갖춘 인터넷 기업이 성장했다. 중국의 만리방화벽 안에서 적절히 보호받으면서, 하지만 자신들끼리는 무섭게 경쟁하면서. 그러니까 중국 기업들은 세계 다른 모든 나라 기업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그만한 시장을 두고 자국 내에서 경쟁이 가능하다. 그리고 필요하면 샤오미가 구글의 휴고 바라를 스카우트하듯, 텐센트가 한국 기업들을 쇼핑하듯, 인터넷 선진국에서 필요한 역량만 빼오면 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인터넷 시장(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인터넷 시장(미국 및 기타 국가)과 동떨어져 존재하는 시대다. 구글로서는 세계의 바다 아래에 모든 해저케이블을 전부 직접 깔아서라도 이 시장을 하나로 엮으려고 난리다. 성장하려면 중국이 필요하고, 아시아가 필요하니까. 하지만 중국은 다 필요없다며 문을 걸어잠근 상태다. 자신들도 세계를 좌지우지할 역량을 키울 때까지는 구글 혹은 미국 기업들과 정면 대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냉전 때보다 더한 상황 아닐까.

이 상태로 조금 더 시간이 흘러서 중국이 선별적으로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한다면, 그 때 한국 기업들은 어디에서 인터넷 사업을 벌이려 할까. 가깝고 규모와 발전 가능성도 큰 중국에서 사업의 기회가 클까, 아니면 거리도 먼데 성장마저 정체된 미국과 서유럽에서 사업을 벌이려 할까.

인터넷은 세계를 평등하게 묶어주는 네트워크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21세기 들어서 인터넷은 둘로 갈린 셈이다. 그것도 거의 완벽하게 통제되면서. 물샐 틈 없는 통제만 통제가 아니다. 중국처럼 정부의 의도대로 산업 구조를 바꾸고 사용자의 사용 패턴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마도 인터넷 선진국들과 그 혜택을 받은 기업들로서는 처음 겪는 곤혹스러운 상황일 테니까. 그러니 세계를 하나로 연결해 주는 인터넷이라는 개념은 과연 현실일까, 아니면 그동안 순진했던 환상에 불과할까.

위기 때 언론을 대하는 7가지 원칙

멋지고 도움되는 글. 페이스북 임베드 기능이 이렇게 쓰이는구나. 좋다.
SK그룹의 미디어 대응 7원칙이라는데, 간단히 7가지만 요약하면 이렇다.
1. 24시간 이내에 즉각 대응하라
2. 미디어전략담당가와 대변인이 한 세트로 언론을 상대: 대변인은 CEO가 맡아도 됨
3. 평소 정기적으로 언론에 정보를 제공하라
4. 억울해도 비난하지 말라: 경쟁사가 부당하게 낙인 찍어도 대응하면 말려드는 것, 보도논조나 소비자를 탓하는 것도 금물
5. 모든 취재진을 공평하게
6. 노코멘트, 오프 더 레코드는 금물
7. 문제 해결을 위한 진정성있는 태도: 땀 흘리는데 욕할 사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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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블로그 리스트

분야를 막론하고 제가 좋아하는 블로그들입니다. 이외에도 좋은 블로그 있으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영문 블로그는 제외했습니다. 리스트가 더 쌓이면 추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새로 발견되는 곳 등을 계속 업데이트 하고 있습니다. 원칙은 너무 유명한 블로그는 빼고 소개하자는 것, 네이버 블로그는 피해보자는 것 다 포기했고, 그냥 제가 좋아하는 블로그들입니다. 순서는 가나다순입니다.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 트레이더 김동조 님 블로그.  블로그 제목과 동명의 책도 내신 분이죠.

구본준의 거리 가구 이야기 : 이 블로그를 보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배낭을 메고 글 속에 나오는 건축물들을 만나러 떠나고 싶어집니다. 직접 찍은 사진과 건축 사진 전문가의 사진이 어우러져 눈이 호강하죠. 뛰어난 사진 속 건축물에 대한 스토리를 읽다보면 세계여행이라도 다니는 것 같습니다.

달님은 어찌 그리 고우신지 : 소설을, 그리고 책을 다루는 국내 블로그 가운데 이보다 더 좋은 블로그를 아직 못 찾았습니다. 더 좋은 블로그가 있다면 꼭 추천해 주세요. 그런데 정말 이 블로그는 최고입니다. 아직 읽지 못한 책만 책꽂이에 늘려주는 주범이기도 하고요.

모바일 컨텐츠 이야기 : 모바일 산업 관련해 공개되는 최신 통계를 바탕으로 산업의 현안을 짚어주는 블로그입니다. 관련 기사를 쓸 때 주인장님께 전화 한 번 드려보고 싶었는데 결국 몇년을 그냥 블로그만 쳐다보다 실제로는 한번도 인사를 못 드렸네요.

– 빈 꿈 EMPTY DREAM : 만화 ‘모험회사’가 연재되는 블로그. 일단 클릭.

– 일본에 먹으러 가자 : 오사카, 고베, 홋카이도 등에 대한 여행 책자를 낸 필자가 일본 여행 정보와 식품 안전, 한일 양국 전통주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을 씁니다. (이인묵 님)

잡글 : 애플포럼의 대표 네임드, casaubon 님은 페이스북에 종종 서양 역사 및 정치, 외교, 경제 분야의 시사 상식을 포함해 예술과 문화, 군사 및 테크…(잡글 맞군요) 하여튼 등등의 글을 쓰십니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페이스북 이외의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리는데 거부감도 덜 하셔서 우리 서비스로 클론을 운영해 달라 부탁드린 경우. 도대체 어떻게 이걸 다 쓰고 번역도 하느냐 여쭤보면 답은 간단합니다. “놀지 않으면 됩니다.”

Blog.lawfully.kr : 요즘 업데이트가 뜸해서 안타까울 지경입니다. 글도 재미있고, 번득이는 통찰도 기가 막혔는데. 앞으로는 좀 더 많이 글을 써주셨으면 하는 분. 무슨 일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Entertainment Media Business & Law : 기술과 법,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산업 등이 잘 얽혀들어가는 현직 변호사님 블로그입니다. 여기서 읽고서 관심을 갖게 된 개념들이 꽤 됩니다.

Human-Computer Symbiosis : 유칼립투스 시스템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박상민 님의 블로그. 저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아니지만 이 블로그에 소개되는 얘기들은 아직 제대로 세상에 퍼지지 않은 이미 우리 주위에 도착한 미래라고 여겨집니다. 박상민 님은 본인 얘기를 소개하시면서 그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업계의 얘기라 말씀하시지만, 글쎄요, 저는 인류의 미래가 오픈소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Inuit Blogged : 좋은 책을 너무 많이 소개해주시는 블로그라 그 책을 언제 다 읽나 싶어지게 만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 블로그 읽다가 사놓기만 하고 읽지도 못한 책들에 가슴이 아파지기도 합니다. 가끔 덧붙는 여행 이야기는 맛좋은 양념.

Kini’s Sportugese : 입사 전부터 알 사람은 다 아는 파워 블로거였다는 회사 후배 블로그입니다. 야구는 사실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 블로그 읽으면서 많이 알게 됐습니다. 역시 아는 만큼 즐긴다고, 생각보다 야구에 재미있는 구석이 많더라고요. 기본적으로 통계와 데이터의 경기란 것도 깨달았고.

Null Model : 어느 날 갑자기 섬광처럼 통계란 게 얼마나 재미있는 건지, 수학이 얼마나 심오한지 깨달음이 왔습니다. 고등학교 때 왔으면 좋았을 텐데 서른이 넘어서야 깨달아서 새로 전공을 하기는 두렵고, 대신 지적 갈증을 해소해 줄 좋은 소스를 찾아 헤매다가 발견한 곳입니다. 요즘은 한겨레에도 글을 쓰시더군요.

Yoon Jiman, Miscellanist : 수의사 윤지만 님의 블로그. 자타 공인 애플빠. 주위에 애플빠는 워낙 많으니 그렇다치고, 인터넷과 관련된 주요한 논의들을 월급 도둑처럼 근무 시간/근무외 시간 가리지 않고 소개해 주십니다. 주요 정보 획득 통로입니다.

신상의 변화

7월1일부로 이제 IT 담당 기자가 아니라 중공업 담당 기자가 됩니다. 기자 생활이란 게 원래 회사에서 시키면 시키는대로 여기저기 출입처가 바뀌게 마련이고, 다들 그렇게 합니다. 저는 제가 일하는 신문사에서는 예외적으로 오랫동안 한 출입처를 맡았고, 스스로 그렇게 하길 원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의 희망과 회사의 배려가 잘 맞아떨어졌던 행복한 경우였죠.
어쨌든 언제까지나 모든 게 맘대로 되는 법은 없는 법이니 할 수 없죠. 저는 기술을 좋아하고, 변화와 혁신을 존경하며, 기업이란 걸 만들어서 사람들이 함께 불가능한 꿈을 이뤄내는 과정을 사랑합니다. 중공업 분야에도 그런 드라마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최근 몇 달 동안 이 블로그 Interpreting Compiler에 작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저 말고 다른 친구들의 글을 제 글과 함께 몇 편 실었죠. 필자들이 부각되게 만들고 싶어서 개편도 한 차례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진석 씨는 글도 잘 쓰고 자신이 관심을 두고 있는 자동차나 일본 문화 등에 대한 소양도 상당합니다. 앞으로 제가 좋아하는 분야를 전업으로 할 수 없어 올리는 글이 뜸해져도 조금은 업데이트를 도와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은 통계를 살펴봤더니 이미 최근 이진석 씨가 올린 글 두 편이 제 글들보다 훨씬 인기가 좋습니다.) 가능하다면 다른 필자들도 함께 했으면 좋겠는데, 제가 드릴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서 결국은 그냥 친분으로 여기저기 부탁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도 이 공간이 가끔씩 관심 있는 분들이 들러서 함께 대화를 나누는 곳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블로그만한 온라인 미디어를 발견하지 못했거든요. 그동안 감사했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갑(甲)’을 넘어서고 싶었던 기업인…

2011년 초 쯤으로 기억합니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사장을 처음 본 건. 그 전에도 각종 행사 자리에서 몇 번 스쳐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자리가 대개 그렇듯 간단히 인사를 하고 말거나, 특별한 용건이 없다면 인사조차 하지 않고 지나치기 십상입니다.
여하튼, 황 사장과 역삼동의 한 일식집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물론 제가 잡은 약속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저는 출입처가 바뀐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선배들은 그런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일종의 머릿수 맞추기 밀 술상무 역할이죠. 작은 체구인데 참 당당하더군요. 꺼내는 이야기도 거침없었고, 삼성과의 트러블도 그 자리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풀 스토리는 아니었지만 ‘이 양반이 삼성에 맺힌 게 많다’는 사실을 알아채기엔 어렵지 않았죠.
고정관념이라는 게 있지요. 예컨대 기자는 참 깐깐하고, 이것저것 자꾸 물어보고, 말하기 싫은 내용을 계속 캐내려고 하고. 직업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이런 인상들(직접 겪지 않았다고 해도)이 쌓이면서 사람들은 기자에 대해 조금 좋지 않은 고정관념을 갖곤 합니다. 저는 회장, 단체장, 협회장 같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그런 고정관념을 가질 때가 좀 있습니다. 과도한 ‘갑(甲)’ 같은 느낌이랄까요.
당시에는 황 사장에게서 그런 인상을 받았습니다. 지금 와서 떠올려보면 대기업 사장과는 조금 다르긴 했지만, 미세한 차이점까지 파악하는데 능통하지 않았던 저로서는 비슷하게 치부했던 것 같습니다. 두 시간가량 있으면서 술잔도 참 많이 돌았으니 조금은 흐트러지고 부드러울 법도 한데, 너무 꼿꼿한 모습이었지요. 그리고 또 어떤 행동 때문에 약간 그런 느낌을 받은 게 있는데, 이건 생략하겠습니다. 이 때 느낀 인상은 꽤 오래 갔던 것 같습니다. 최근까지도.
2011년까지 잘 나가던 주성엔지니어링이 그 이듬해부터 비틀거렸고, 황 사장은 대외 활동을 자제하기 시작했습니다. 벤처협회 회장이 참석해야 할 대외 행사에는 황 사장보다는 남민우 사장이 나올 때가 더 많아졌습니다. 올해 2월에는 벤처협회 회장 직에서도 물러났고요. 이건 다른 얘기긴 하지만 지난해에는 과거 벤처협회 회장을 맡았던 이들이 불미스러운 일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일도 있었죠. 사실 황 사장과 연관관계가 없는데도 이런 일들과 연결지어 이미지가 굳어진 건 아닌 지 생각해봅니다.
이 와중에 청와대의 인사. 중소기업청장에 황철주 사장이 내정됐다는 소식. 그 다음은 언론 보도로 잘 아실 테니. 저는 처음 소식을 듣고 ‘이 인사 참 잘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파격적인 인사’가 아니라 시스템을 제대로 바꿔보고 싶은 박 대통령의 의지가 느껴졌거든요. 과정에서 보인 허술함은 두고두고 지적 받아 마땅하겠지만. 또, 황 사장에 대해 가졌던 이미지도 인사를 계기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팩트에 근거한 게 아닌 이상, 사람들이 갖는 인상이라는 게 다 매우 주관적이기 쉽거든요.
월요일에 황 사장이 사의 표명을 했고, 좀 더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그 일은 자연스럽게 나중으로 미뤄졌습니다. 직업 특성 상 매일 터지는 다른 일에 집중하다 보면 까먹기 십상이거든요.
그리고 금요일 아침 조선 B1면에 나온 황 사장 인터뷰. 잠결에 보고는 ‘아, 물먹었다’ 싶었습니다. 내용을 읽어보니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없었습니다. 일단 안심합니다. 리뷰를 올립니다. 오늘은 쉬는 날인지라 다시 천천히 읽어봅니다. 황 사장이 삼성과 싸운 일들, 현대차와 거래하기 위해 겪은 에피소드. 그리고 그가 중기청장이 되면 하고 싶었던 정책. 중소기업들이 지금도 매일 겪는 현실이라며 자주 언급되는 것들입니다.
물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기업에 따라 여건이 다를 수도 있고, 대기업들도 나름대로 노력을 할 겁니다. 하지만 이미지라는 게 쉽게 바뀌지 않지요. 확실한 팩트가 없어도 ‘그런 일이 있었다더라’라는 얘기가 돌면 인상은 굳어져버립니다. 마치 관료들은 뭔가 시키려고만 하고,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지 않더라… 라는 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사를 보면서 2년 전 저녁 자리에서 느낀 인상의 원인을 조금이나마 알게 됐습니다. 꼿꼿함이라는 게 ‘내가 이런 자리에 있다’는 이유로 갖는 ‘갑’의 풍모가 아닌 치열하게 ‘갑’들과 싸우면서 체득한 것이라는 거죠. 황 사장 말대로 “피눈물이 났던” 기억이 쌓이고 쌓이면서. “애니콜 신화도 수많은 중소 벤처인들의 땀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그의 말. 이 때문에 중소기업인들은 적어도 황 사장이 중기청장이 되면 그런 어려움들을 해소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은 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했었나봅니다. 저도 그랬고요.
여러모로 참 아쉽습니다. ‘대기업은 적’이라고 단정 짓고 비판하기 위함은 아닙니다. 다만, 왜 중기인들은 계속 어렵다고 할까. 대기업을 대하기 힘들어할까.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는 있을 듯 합니다.
by 박창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 블로그에 찾아와주시는 수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처음 블로그를 시작하게 됐을 땐 큰 기대도 없었고, 시험삼아 어디 한 번 나도 블로그란 걸 해볼까,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벌써 몇 년이 지났네요. 그사이 블로그 툴도 몇 가지 바꿔가며 썼고, 호스팅도 이곳저곳 옮기며 해봤습니다. 해킹도 당해봤고, 방문자가 예상보다 너무 많이 몰리는 경우가 있어서 트래픽 용량도 급히 올린 적이 있었죠. 이제 모든 게 대충 안정화되고 나니까 글이 뜸해지네요.

그러니 새해에는 블로그도 더 열심히 하고, 다른 일도 열심히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블로그에 남겨주시는 코멘트와 트위터-페이스북을 통해 전해주시는 의견들 덕분에 저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이제 드디어 삼십대 후반이라는 실감이 드는데, 스무살 어린 시절에는 마흔이 되면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그 나이에 접근하다보니 이제 깨닫게 됐네요. 사람은 평생 배우고, 평생 성장해야 하는 존재인 모양입니다. 올해도 많이 배우고 많이 자라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즐거운 한 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