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의 몰락, 그리고 여자들이 지배할 세상

어느 정도 현실에서 느끼고는 있었지만, 통계로 보니 충격적이네요. 우리 시대의 남성들은 여러면에서 여성들에게 뒤쳐지고 있습니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지고, 교육 수준이 높아진 건 알고 있었죠. 하지만 여성이 그저 남성들과 대등해진 게 아니라, 남성을 압도하기 시작했다는 건
쉽게 깨닫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능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빌 클린턴과 힐러리 클린턴의 고문을 맡았던
버슨마스텔러의 CEO  마크 펜은 이를 가리켜 "멧돼지를 사냥하는데
유용했던 남성의 장점은 위키피디아에서 정보를 사냥하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칼럼
에서 여러 가지 통계를 들어 이를 증명하는데요, 예를 들어 미국 감옥에
갇혀 있는 남성 죄수는 150만 명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60만 명이 지난
10년 동안 투옥됐다는 식입니다.(같은 기간 여성 범죄자는 11만5000명) 남성들 가운데 알콜중독자의
비율도 여성보다 훨씬 높고, 비만도 더 많으며, 심장병 사망률과 교통사고 사망률은 여성의
두배에 이르는 데다, 마약중독도 두배가 넘는다는 것이죠.

 

통계는 계속 이어집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세계적인 경제 위기의 상황에 이르러
금융위기 이전까지 비슷해 보였던 남녀의 실업률이 크게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남성
실업률은 4.4%에서 7.2%로 급격히 늘었는데, 여성 실업률은 4.3%에서 5.9%로 소폭
증가했을 뿐이죠. 이들이 살아온 삶을 보면 이유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남녀의
교육 이력을 살펴보자는 얘기입니다. 어느새 미국의 대졸 여성 비율은 60%까지 늘었습니다. 하지만 남성들은 겨우 40%를 넘길
뿐입니다.

 

남성들은 심지어 건강하지도 못합니다. 위의 사망률 통계만 봐도 알 수 있지요. 그렇다면
평균
수명은 어떨까요? 남성들은 75세인데 비해, 여성들은 80세까지 삽니다. 똑똑하지도,
건강하지도, 오래 살지도 못하는 자, 그것이 남자인 것입니다. 남녀 구분으로만
사람을 판단하고자 한다면, 지금의 미국 사회는 확실히 여성이 우월한 사회라고 할만합니다.
그나마 아직 남성이 집단적 구분에서 우월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재력 한
가지입니다. 수백만 달러 이상의 연간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의 숫자는 확실히 남성이 많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건 남성이
우월했던 구시대에 한 몫 잡았던 나이 든 남성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젊은 여성들의 소득은
이미 남성 못지않습니다.

 

로스쿨이나 의학대학원 등 상위권 학생들이 몰리는 전문직 과정에는 이미 여학생의
숫자가 남학생보다 훨씬 많다고 합니다. 미국 뿐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사법고시
합격생 비율부터 시작해 사법연수원 성적으로 결정되는 판사 임용자 비율 등에서 ‘여학생의
독주’가 시작된지 오래입니다. 이런 트렌드는 우리가 지금같은 문명을 유지하며, 지금같은
방향의 발전을 계속하는 한 결코 변하지 않을 겁니다. 요직을 차지한 여성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날 테고, 여성들의 문화가 사회를 휩쓰는 날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다가올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오래 사는’
여성들은 정치의 지형조차 바꿔놓을 수 있어요. 예. 여성들의 투표권이 남성 투표권보다
많아질 테니까요.

 

마침 뉴욕타임즈의 Economix 블로그에는
다른 인상적인 통계
가 소개됐습니다. 트위터를 이용하는 남성들은 다른 남성들을
Follow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죠. 트위터의 ‘Follow’ 기능은 남이 쓴 글을 좇아가며
읽을 수 있는 기능인데, 여성들은 이 기능을 이용해 다른 여성을 Follow하는 경우가
적습니다. 반면 남성들은 이 기능을 이용해 다른 남성을 상대적으로 많이 Follow 합니다. 어느
정도냐면, 남성이
남성을 Follow하는 비율은 여성이 여성을 Follow하는 비율의 두 배에 이른다고 하네요.

 

왜 그럴까요? 쉽게 답을 내리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남성들은 수천년에 걸쳐 무리짓고
살아가며, ‘대세’를 따르고, 논리적인 분석보다는 자신의 강력한 본능에 따른 순간적인
판단력으로 위기를 헤쳐 나가는 삶을 체득해 왔습니다. 그것이 남성들의 문화였죠.
그런데 이 정보화의 시대에서는 무리짓고 대세를 따를 일 자체가 별로 없습니다.
또한 순간적인 판단보다는 논리적이고 정교한 분석이 실패를 줄여주죠. 그리고 그것이
바로 여성들이 그동안 개발해 온 새로운 문화입니다. 남성보다 높은 교육수준과,
자기주도적인 의사결정 말입니다.

 

마크 펜은 조금 우울하게 현실을 진단합니다. ‘뒤떨어진 남자들'(Guys Left Behind)에게
들어갈 사회적 비용을 감당하는 것이 아마도 고령화의 문제처럼 우리 사회의 새로운 부담이 되리란 거죠.
남성 죄수는 점점 늘어날 테고, 덜 배워서 덜 벌고, 결국 경제적 약자로 전락하거나
범죄자가 되는
남성들의 숫자도 늘어날 테며, 이들은 각종 병에 시달리고, 알콜과 약물 중독에 빠진
채 사회의 도움만을 기대하게 되리라는 얘기입니다.

 

반면 여성들이 사회 최고위층으로 진출하는
경우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는 여성 대통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았으며,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사직에도
여성이 선출됐고, 점점 ‘여자라서 안 된다’라는 말은 설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정작
문제는 펜의 지적처럼 반대쪽에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것은 바로 소외된 남성들의 문제 입니다.

클라우드 컴퓨팅의 한계

 

최근 기업들의 화두는 뭐니뭐니해도 ‘비용 절감’입니다. 그 가운데 점점 지출이
늘어나는 전산에 관한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면 귀가 솔깃해지기 마련이지요. 컴퓨터도
덜 사고, 네트워크 회선 비용도 덜 내고, 서버 관리비나 전산 업무 유지에 필요한
인건비까지 줄일 수 있다면, 경영자들은 금세 관심을 기울일 겁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클라우드 컴퓨팅’이란 새로운 트렌드 덕분입니다.

 

전에 이 블로그에서도 클라우드 컴퓨팅에 관한 얘기를 쓴 적이 있습니다. 클라우드 컴퓨팅이란 것이
간단히 말하자면 컴퓨터, 소프트웨어, 인터넷 서비스
등을 대형 업체가 대규모로 생산, 공급해 규모의 경제에 따라 가격을 낮춘다는 개념입니다. 더
쉽게 표현하자면, 전기를 집에서 자가발전하려면 발전기도 사야 하고, 발전기 연료도
직접 구입해야 하고, 발전 기술자도 고용해야 하며, 발전기를 놓을 장소도 마련해야
하는데, 이것보다는 발전소에서 대량 생산한 전력을 사는 것이 훨씬 저렴하게 전기를
이용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한 논리입니다. 전기 대신 ‘컴퓨팅'(하드웨어+소프트웨어+서비스
등등)을 공급한다는 것만 다른 셈이죠. 이미 미국에선 아마존닷컴과 구글 같은 회사들이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매킨지 컨설팅이 최근 새로운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클라우드 컴퓨팅이
대량생산을 통해 전산 비용을 줄여줄 것 같지만, 사실 대기업의 경우에는 오히려
비용이 늘어난다는 전망이지요. 위의 그래프에서 보이듯, 클라우드 컴퓨팅을 도입하면
단위 당 인건비는 약간 줄어들지만, 클라우드 컴퓨팅 업체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훨씬 증가한다는 겁니다. 대기업에서는 전산센터를 직접 운영하는 게 아직까진 이익이라는
얘기입니다. 다만 중소규모 기업(대략 연 매출 6000억 원 이하 정도를 생각하는 모양입니다)의
경우에는 클라우드 컴퓨팅이 비용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매킨지 보고서는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아직 클라우드
컴퓨팅이 충분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뜻이 담겨 있죠. 아마존의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가격이 예상 가격 산출의 근거가 됐는데, 아마존이 점점 더 규모의
경제를 이뤄간다면 가격은 더 빠르게 떨어질 겁니다. 다른 한 편으로 매킨지의 사업적
의도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IBM이나 AT커니 만큼은 아니지만, 매킨지나
다른 컨설팅 회사들도 최근 IT 분야 컨설팅으로 큰 돈을 벌고 있거든요. 특히나 대부분의
컨설팅은 경영진이 잘 모르는 IT센터 설립 분야에 집중됩니다. 대기업이 IT센터를
세우기보다는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해당 업무를 아웃소싱해버린다면 컨설팅 회사는
큰 시장을 잃게 되는 셈이죠. 또 하나, 클라우드 컴퓨팅은 복잡한 소프트웨어 라이센스
구입 문제를 해결해줍니다. 아마존과 같은 회사가 일괄 구입해 사용량만큼 돈을 매기기
때문이죠. 이 효용은 계산이 돼 있지 않네요.

 

매킨지 보고서의 원문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 대외비라고 써 놓고도 링크를 막지는 않네요. 고위
경영진이 가장 좋아한다는 깔끔한 매킨지 PPT 양식도 덤으로 보실 수 있고요.

아마존의 실패, 분노 지켜내기, 그리고 미친 쇠고기

이번 주 초, 세계 최대의 인터넷 서점아마존닷컴이 "노골적인 성적 묘사가 들어있는 책들을 검색 결과에서 삭제하겠다"며, 동성애 또는 성적 소수자의 권리를 기술한 책들까지 우루루 검색 결과에서 삭제하자 영미권의 인터넷이 들끓었습니다. 이른바 아마존의 실패’사건이죠. 이 사건이 벌어지자 네티즌들은 아마존닷컴을 가리켜
성적
소수자의 권리를 무시하는 몰상식한 기업이며, 사용자의 검색 권한을 앗아간 악덕 기업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비난에는 아주 강력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마존이 고의로 동성애 관련 키워드가 들어간 책들을 검색 결과에서 삭제했다"는 믿음이었죠. 보수적이고, 성적 편견에 사로잡힌 아마존의 임직원들이 이런 일을 고의로 저질렀다는 음모론은 이후 인터넷에서 정설이 됐습니다.

 

시작은 몇몇 블로거였지만, 비난의 행렬은 점점 길고 두꺼워졌습니다.
융단 폭격의 행렬에 공신력을 더한 건 작가들이었습니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키워드가 들어갔을 뿐, ‘노골적인 성적 묘사와는 상관 없는 저술을 했던 작가들은 자신의
책이 아마존 검색 결과에서 삭제된 데
대한 분노를 강하게 느꼈습니다.끌리고 쏠리고 들끓다‘(Here
Comes Everybody)
의 저자인 클레이 셔키 뉴욕대 교수도 이런 지식인
그룹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셔키 교수는 정의를 위해 기꺼이
아마존을 맹비난합니다. 개인 블로그에서부터 촉발된 이 사건은
이후 가디언과 같은 주류 언론에까지 보도됩니다. 아마존은 이 과정에서 기업 이미지에 큰 피해를 입었고요.

 

하지만 미국 시간으로 어제(16), 셔키 교수는 절절한
반성문
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립니다. 아마존닷컴을 부도덕한 기업으로 몰아갔던 자신의 행동은 지식인으로서
쌓아올렸던 자신의 커리어 전체가 부끄러울 정도의 아주 멍청한 행동이었으며,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는
반성이었습니다.

 

아마존의 실패의 진실은 이랬습니다. 아마존은 성인물을 검색 결과에서 제외하겠다며 특정 키워드가 포함된 글들을 삭제했는데, 이 과정에서 분류값을
참고합니다. 예를 들어 게이라는 키워드가 소설’이라는
분류의 책에서 자주 등장한다면 포르노 소설일 가능성이 높다는 식의 단순한
알고리듬을 적용한 것이죠.

 

대중이 분노한 것은 실수가 아닌 아마존의 ‘악한 의도였습니다. 그런데
사실이 밝혀지고 보니 아마존은 악하거나 편견에 가득찬 의도’와
관계
없이, 단순히 실수했을 따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인터넷에서 아마존의 실패는 계속 회자됩니다. 구글에서 한 번 ‘amazon failure’를 검색해 보세요. 섬뜩한 욕설이 가득한 글과 댓글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지속될까요? 셔키 교수는 이를 분노 지켜내기’(conservation of outrage)라고 부릅니다. 한 번
끓어오른 분노의 근거가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된 근거 때문에 분노를 철회하기보다는
분노를 유지시킬 수 있는 새로운 근거를 찾아낸다는 것이죠. 아마존의 실패가 딱 그런 상황입니다. 아마존의 임직원들은 그런 의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고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영미권
네티즌들은 아마존의 수많은 다른 잘못들을 들춰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존은 검색 결과를 삭제한
것 부터가 잘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존은 고객 대응을 잘못한 게 잘못이다는 식이었죠.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는데도, 대중의 분노는 쉽게 수그러들질 않습니다.

 

남의 얘기 같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우리 사회의 대중의
분노를 이끌어냈던 키워드는 미친 쇠고기였습니다. 미국에서는 주저앉는 소를 도축해 팔고 있고, 이 소는 광우병에 걸린 소이며, 이런 게 팔렸던 영국에서는 채식주의자였던 영국
총리 딸의 친구마저 광우병에 걸려 사망했다는 식의 내용이 대중의 분노를 이끌어냈습니다. 아직도
미국과 영국에서는 쇠고기가 팔리고 있고, 주저앉는 소와 광우병에 걸린 소 사이의 직접적
연관관계는 없으며, 인간 광우병 발병 사례는 점차 줄어들어 현재 통제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수준이라는 이야기는 모두 묻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협상을 잘못한 게 잘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우병 발병 확률이 완전히 ‘0’이 된 것은 아니니
잘못이다
얘기를 했습니다. 분노 지켜내기의 결과였죠.

 

저는 지금 영미권의 네티즌이 잘못했다거나, 한국의 네티즌이 잘못했다는 식의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후의 대응이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보자는 겁니다.

 

셔키 교수는 반성문을 올립니다. 그리고 분노 지켜내기에 지식인들이 현혹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자신들의 그릇된 초기
판단으로 인해 아마존닷컴이 큰 피해를 입었으니,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잘못 판단했던 내용을 밝히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겁니다. 애초부터 자신과 같은 지식인들이 아마존닷컴의 성적표현을
담은 도서에 대한 검색결과 삭제같은 방식을 ‘삭제가
문제’라며 비판했다면, 아마존은 ‘성인물
차단등의 기능을 만드는 등 훨씬 더 생산적인 결과가 나왔으리라는
얘깁니다. 지식인들이 그러지
못해 결국 근거가 잘못된 분노만 생겨났으니 이를 바로잡자는 주장이죠. 셔키의
이 글에 대한 반대와 공감이 토론을 일으키면서 아마존의 실패는 봉합 단계를 향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아마존닷컴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잘못과 서툴렀던 설계상의 문제를 솔직히 밝히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어땠을까요? 지식인들은 자기 반성 없이 분노
지켜내기에만 동참했고, 그 반대 축에 서 있던 한국 정부는
잘못된 분노를 촉발시켰던 언론인을 체포하고 구속하는 등 강경 일변도로 대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토론은 없었고, 대결만 지속됩니다.
아마존의 실패는 일주일도 안 돼 생산적인 논의로
이동하는 반면, 한국의 미친 쇠고기 1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사회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광우병은 하나의 예일 뿐입니다. 분노는 산불과 같아서, 일단
불타오르면 걷잡을 수 없어집니다. 다행히 진화에 성공했다고 해도 분노가 훑고 지나간 곳은 잿더미로 변해
버립니다. 그런데 그 분노의 근거가 잘못됐다면? 자기 반성의
미덕이 부럽고, 빨리 사과하고 대책을 마련할 줄 아는 논의의 상대방이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