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미치광이 과학자, 빌 앳킨슨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밤을 새우는 것을 조금도 껄끄러워하지 않았던 ‘미치광이 과학자’. 헝클어진 긴 머리와 휘둥그런 푸른 눈으로 서성거리는 매킨토시 팀의 괴짜. 이것이 빌 앳킨슨을 바라보는 애플 직원들의 시선이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밤을 새우고 아침에서야 집에 돌아가던 빌 앳킨슨이 졸음운전을 한 탓에 트럭 밑으로 차가 미끄러져 들어가 차 지붕이 다 날아간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목숨을 건졌던 것이 기적이었죠. 하지만 앳킨슨이 목숨을 건진 덕분에 매킨토시도 세상에 등장할 수 있었습니다. 앳킨슨은 매킨토시의 혁신적인 기능이었던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 관련 핵심 개발자였거든요. 게다가 매킨토시를 잘 팔리게 만들어준 효자 소프트웨어 가운데 하나인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 ‘맥 페인트’도 그의 작품이었죠.

 

앳킨슨이 애플에 입사했던 건 1978년입니다. 오리지널 매킨토시 팀의 리더였던 제프 래스킨과의 인연 덕분이었죠. 래스킨은 샌디에고의 캘리포니아 주립대 교수였는데, 마침 앳킨슨이 그 밑에서 수업을 들었던 겁니다. 이후 앳킨슨은 매킨토시 팀에서 함께 일했던 앤디 허츠펠드와 1990년 제너럴매직을 창업할 때까지 계속해서 애플에서 일하게 됩니다.

 

매킨토시 팀의 수많은 천재들이 그랬듯, 앳킨슨 또한 매킨토시 팀 이후의 화려한 커리어가 돋보입니다. 제너럴매직은 PDA의 초기 개념을 확립한 회사였는데, 당시 이들이 고안했던 것은 컴퓨터와 가전제품 사이의 중간 정도 되는 손안에 넣어 들고다닐만한 작은 전자기기였습니다. 이들은 이 작은 전자기기를 제어하기 위해 필기 인식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냈고, 지금 흔히 쓰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아웃룩과 흡사한 방식의 일정관리 프로그램도 개발했습니다. 이 일정관리 프로그램은 컴퓨터와 휴대 기기 사이의 데이터를 동기화시키는 싱크 프로그램의 기능도 갖고 있었다고 해요. 사실상 개념상으로는 오늘날의 PDA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매우 혁신적인 프로그램들이었습니다. 결국 나중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제너럴매직의 라이센스를 사들이게 되죠.

 

앳킨슨은 스티브 잡스도 쫓아냈던 애플의 실세, 존 스컬리와도 나중에 한 판 붙게 됩니다. 앳킨슨과 허츠펠드는 애플에서 휴대용 기기를 개발하려 하고, 프로젝트 팀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1990년 한참 위기를 겪고 있던 애플에서 주력 분야도 아닌 휴대기기 개발 팀에 많은 자원을 투입하기란 쉽지 않았죠. 결국 견디다못한 앳킨슨과 허츠펠드는 창업이라는 승부수를 띄웁니다. 문제는 스컬리가 얼마 뒤 ‘뉴턴’이라는 PDA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겁니다. 제너럴매직의 사업영역과 정확히 겹치는 것이었죠. 스컬리는 자신이 탄생시킨 사내벤처였던 제너럴매직에 대해 기술 침해라며 소송을 걸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뉴턴은 스티브 잡스의 복귀와 함께 폐기처분됩니다. 스티브가 스컬리의 잔재를 회사에 남겨둘 리가 없었죠. 제너럴매직의 기술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MS에 팔렸고요. 최후의 승자는 앳킨슨이었던 겁니다.

 

지금 빌 앳킨슨은 뭘 하고 있을까요? 돈을 벌 만큼 벌고 난 뒤에, ‘사진가’가 됐습니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담기 위해 미국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닌다고 하네요. 아래는 그의 최근 모습입니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도 물론 몰랐습니다. 아예 관심이 없었던 거죠. 1983년, 애플의 황금기에,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를 불러 자신이 사회를 맡은 ”애플 소프트웨어 개발자와의 만남”에 초청하기도 했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멋진 외모에 달변가이기까지 했던 스티브 잡스에게는 커다란 잠자리 안경에 멍한 눈, 아둔한 말투(지금도 여전하지만)의 빌 게이츠가 ”경쟁자”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아득히 먼 보잘 것 없는 존재였던 거죠.

하지만, 나중에 세상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매킨토시를 만들어 낸 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가 제록스연구소의 여러 기술들을 모방해 한 자리에 모아놓은 제품에 불과하다는 비아냥에 대해 이렇게 대꾸합니다. "훌륭한 예술가는 남의 작품을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남의 작품을 훔쳐낸다." 이 말을 했던 사람은 파블로 피카소였습니다. 문제는, 조금 지나자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이 피카소의 경구를 따라했다는 겁니다. 매킨토시의 멋진 아이디어는 모조리 윈도우즈 운영체제에 담기게 되죠. 그리고 세상은 완전히 변했습니다. 사람들은 빌 게이츠를 찾아 환호했고, 스티브 잡스는 그저 비주류의 매킨토시나 만들어낸 괴짜 CEO 취급을 당하게 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이자, 이 회사의 ”으뜸 촌놈”(Chief Nerd)으로 불렸으며, 동시에 이 호칭을 사랑했고,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의 무한한 존경을 받았던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영혼”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와는 정말 많이도 달랐습니다. 하지만 그에겐 그 나름의 매력이 있었죠.

스티브가 얼마나 속이 쓰렸을까요. 나중에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이 만들어낸 것을 따라했다는 사실에 대해 뭐라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이 성공했기 때문에 제가 기분이 나쁠 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대단한 성공을 이뤄냈고, 그 성공을 자신들의 힘으로 일궈냈습니다. 그것이 저를 슬프게 만들 이유는 없죠. 다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에는, 뭐랄까, ”취향”이란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소프트웨어에 문화를 불어넣고, 그것을 뭔가 의미있는 것으로 발전시키는 법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슬픈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엄청난 성공이 아닙니다. 제가 정말로 슬픈 이유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들어내 성공을 거둔 모든 제품들이 ”삼류”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스티브는 독설가였습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업자였던 스티브 발머는 이런 식의 평가에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오히려, 당당하게 말하죠. "(우리가 삼류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에요? 예, 동의합니다. 충분히 동의합니다. 우리 제품은 그들의 제품보다 3~4년 정도 뒤쳐져 있어요. 이미 그 정도 수준에 올랐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죠." 겸손까지 갖춘 마이크로소프트, 당신들이 성공한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존 스컬리

1983년, 애플은 펩시의 사장이었던 존 스컬리를 영입합니다. 존 스컬리에게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죠. 굴지의 음료 회사였던 ‘펩시’의 사장에게, 차고에서 창업한지 몇 년 되지도 않은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하다니요. 하지만, 결국 스컬리는 자리를 옮기고 맙니다. 스티브 잡스 덕분이었죠. 스컬리는 스티브와 처음 만났던 때를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스티브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리곤 저를 노려보며 말하더군요. ‘그럼 당신은 계속 거기에서 설탕물이나 팔고 있을 거요, 아니면 그곳을 그만두고 나와 함께 세상을 바꿔볼테요?’ 그래서, 전 바로 스카우트되기로 결심했죠."

하지만 당시에는 스티브도 몰랐습니다. 이 자신만만하던 젊은 청년 사업가는 결국 나중에 스컬리에 의해 애플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어쩌겠어요. 제가 사람을 잘못 뽑았던 거죠. 스컬리는 제가 10년 동안 애플에서 일궈낸 모든 것들을 파괴했어요."

이 후, 스티브가 다시 애플에 돌아올 때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11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시기를 스티브의 고난의 시기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아마도 그 과정이야말로 철없는 젊은 벼락부자를 노련하고 훌륭한 사업가로 성장시킨 교육의 시간이었을 겁니다. 마치, 예수가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에 맞섰던 것처럼 말이죠.

한편으로 스컬리 덕분에 오늘의 애플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잡스가 스컬리 때문에 회사에서 쫓겨났을 때, 스컬리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애플과 보이스카우트의 차이점은 단 하나 뿐이다. 보이스카우트는 어른이 감독한다는 것. 이제 애플도 간신히 보이스카우트를 따라잡게 됐다."

스티브에게는 심한 말이지만, 사실 스컬리의 경력을 생각한다면 이는 매우 적절한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특히나 그가 펩시에서 이뤄낸 성과를 생각한다면 말이죠. 1970년 펩시에 입사한 스컬리는 1983년 애플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펩시를 미국 2위의 음료 회사로 키워냅니다. 스컬리의 마케팅 전략은 탁월했죠.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소비자에게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사이에 더 맛있는 걸 고르게 하고는 펩시가 더 많이 나왔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광고한 겁니다. 캠페인의 이름은 ‘펩시의 도전'(the Pepsi Challenge)이었습니다. 펩시의 최연소 부사장, 최연소 사장으로 승승장구하던 스컬리가 애플로 옮기자 매스컴은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이때만 하더라도 스티브 잡스와 존 스컬리의 불화라는 건 떠올리기조차 힘들었죠.

스컬리의 마케팅 전략은 애플의 위치와 딱 맞았습니다. 마침 애플은 IBM이라는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의 이미지를 가져왔고, 이건 또 하나의 ‘펩시의 도전’이었습니다. 스컬리는 매킨토시를 주류에 도전하는 다윗으로 포지셔닝시켰고, 대중은 이 이미지에 열광합니다. 스티브 역시 다윗의 이미지였죠. 마케팅에는 딱이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죠. 결국 불화가 시작됐고, 두 사람은 서로 등을 돌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