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공지

너무 오래 놀게 놓아둔 것 같네요.

리부팅해볼 생각입니다.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고, 몇 달 씩 업데이트 없이 놓아두는 것보다는 함량과 밀도가 떨어지더라도(그렇다고 그전에 좋았던 것도 아니지만…) 아무 글이나 올려 볼게요. 얼마전 다녀온 부산국제영화제 얘기 같은 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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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굽는 타자기

새 맥북은 조금 특별해 보였다. 루머가 나왔을 때부터. 작아지고, 강력해지고, 아름다워진다는 루머가 도는데 사실은 그것보다 그저 “와, 저건 정말 끝내주는 워드프로세서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게 해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면서 무지 가볍고, 인터넷도 되고 영화도 볼 수 있으며 회사 일도 처리할 수 있는 기계. 그리고 오늘 나온 맥북이 딱 그랬다.

새 맥북의 12인치라는 스크린 사이즈는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기존의 11인치 맥북에어(화면비 16:9)와 13인치 맥북에어(화면비 16:10)의 ‘절충’이나 ‘중간’이 아니다. 11인치 맥북에어에 가까운 폭에 13인치에 가까운 높이를 가져서 12인치가 된 것에 더 가깝다.(새 맥북도 화면비가 16:10이다.) 즉 세로로 더 많은 정보를 보여주면서 화면 해상도도 레티나급으로 높인 11인치 맥북에어다. 11인치 맥북에어는 작은 화면에도 불구하고 그 가벼움 때문에 여전히 수요가 있던 노트북이었지만, 난 싫었다. 원고라도 쓰고 있으면 한 화면에 표시되는 문단 수가 확실히 적었고, 가로로 길어서 영화 같은 동영상을 보는데 최적화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읽고 쓰는데 있어서는 아주 불편했다. 게다가 한번 격자 없는 레티나 모니터에 적응하면 낮은 해상도의 스크린은 더이상 보기가 싫어진다. 이런 사람들에게 11인치 맥북에어는 영 엉망이었다. 반면 새 맥북은 16:10 비율을 제대로 갖췄다. 그리고 더 가벼워졌다. 게다가 또렷한 화면까지 덤으로 제공한다.

사진으로 비교하면 알 수 있지만, 맥북과 13″맥북에어는 세로로 더 많은 정보를 보여주는 반면 11″맥북에어는 위아래가 많이 잘린다.

그리고 새 맥북의 또 다른 특징은 풀사이즈 키보드의 크기를 거의 그대로 지켰다는 점이다. 스트로크시 신호를 입력받는 방식도 개선했다는데 이점은 실제 제품을 손으로 두드려봐야 알 것 같다. 또한 개별 키보드마다 LED를 붙여서 키캡 조명을 개선했다는데, 달리 말하면 더 어둡게 키보드의 밝기를 설정하더라도 키 하나하나를 더 쉽게 알아볼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프로세서는 강력하지 않다. 이미지나 동영상 프로세싱 혹은 최신 게임에 모자란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나 저널리스트라면? 키보드가 뛰어나고, 들고다니기 가벼우며, 모니터도 끝내주는 워드프로세서가 아주 만족스럽기 마련이다.

새 맥북이 형편없는 프로세서에 멋진 케이스를 붙여서 나온 값비싼 장난감이라며 폄하하는 시선이 많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애플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가 투박한 케이스에 가격대 성능비가 뛰어난 부품들을 구겨넣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난 꽤 오래 써왔던 서브노트북인 2011년형 13인치 맥북에어를 슬슬 새 모델로 교체할 때가 오지 않았나 생각하는 중이고, 4GB 메모리에 겨우 128GB의 SSD 저장공간을 가진 이 모델도 사실 딱히 성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그래서 다음에 이 모델을 바꿀 땐 별 고민없이 새 맥북을 택하게 될 것 같다. 8GB 메모리와 256GB 저장공간을 가진 새 맥북은 부족했던 부분만 딱 채워넣은 듯 싶으니까.글을 쓰는 사람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노트북 같다. 특히 책상머리에 앉기보다 집밖으로 나가길 좋아하는 야전형 작가들이나 기자들, 외근이 잦은 마케터들이라면 더더욱. 한국의 광고모델(혹은 나레이터)로는 자전거를 타는 소설가 김훈 같은 사람이 어울리지 않으려나.

그래서 새 맥북은 ‘빵 굽는 타자기’ 같다. 세상에는 이것저것 컴퓨터의 기능을 대충 갖추고 있는 아주 괜찮은 워드프로세서를 사려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니까.

p.s. USB-C타입 포트가 달랑 하나 있는 구성에 대한 불만이 많던데, 난 전혀 불만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원 어댑터와 여러 기계를 연결할 확장 어댑터 및 USB 케이블을 주렁주렁 들고 다니면 무게 차이가 뭐가 나느냐”라고 얘기하는데, 이상한 생각 같다. USB 케이블이 전원 케이블이 됐다는 건 이제 맥북을 들고다니면서 전원 어댑터를 아예 놓고 다녀도 된다는 얘기 아닐까. 아이패드를 들고 다니면서 전원 어댑터를 들고 다니지 않는 것처럼, USB 전원이 있는 곳이면 이제 컴퓨터도 충전 가능하다. 게다가 영화를 연속해서 10시간 볼 수 있는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과연 충전할 필요가 있을까? 배터리가 아이패드 수준인데? 충전을 해야만 할 정도로 노트북을 헤비하게 써야 할 장소라면 이미 케이블이 있는 집이나 사무실이 아닐까? 걱정 및 억측과는 달리, 난 애플이 처음으로 전원 어댑터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노트북 혹은 아이패드 같은 노트북을 만들어 낸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우리가 노트북에 기대했던 것 아닌가? 자유롭게 들고 다니는 컴퓨터라는 개념 말이다. 아이패드에 “추가 디스플레이 연결이 안 되니 후졌다”거나 “아이패드로 아이폰 충전을 할 수 없어 말짱 꽝”이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이상한 소리냐는 얘기다.

기능성 소설이 좋나요?

송 교수는 ‘기능성게임’에 주목했다. 게임이 가진 ‘재미’라는 내재적 동기가 인간의 현실 속 행동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단초가 된다는 설명이다. 송 교수는 “이미 의료, 복지, 캠페인 등에서 게임을 이용한 (선한 의도를 담은) 메시지 전달 효과가 증명됐다”며 “게임으로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 정부나 산업계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기사를 보니 어린 시절 학습만화를 읽던 생각이 났다. 난 만화가 좋았는데, 만화를 보면 혼이 나야 했고 ‘학습만화’를 보면 혼나지 않아도 됐으니 봤을 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인터스텔라를 보면서 상대성 이론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은 많겠지만, ‘상대성 이론 학습만화’를 보면서 물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쥬라기 공원을 읽으면서 유전공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늘어났겠지만, 누가 기능성 소설을 읽으면서 생명 복제의 비윤리성을 처절하게 통감할까.

게임이 마약이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은 바를 이해 못 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소설도, 만화도, 영화도 한때는 마약 취급을 당했다. 예술은 원래 쓸 데 없는 일을 하는 것이라서 쓸모 있는 것만 찾는 사람들에게는 배척당하게 마련이니까. 좀 더 당당할 수는 없을까. ‘기능성 게임’ 같은 건 필요 없다고. 게임은 그냥 재미있어서 게임이게 마련이라고. 내 세대는 “저질 왜색문화가 우리 청소년들의 정신을 좀먹습니다”라거나, “불량한 흑인 문화에 아이들을 맡길 겁니까?”라며 목소리를 높이던 어른들 틈에서 자라난 세대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존경하고, 마이클 잭슨에 열광했던 그들이 지금 뇌가 부족하고 불량스러운 인간들로 성장했나? 백보 양보해서 야한 일본애니메이션을 보고 힙합 뮤지션들이 총질해대는 걸 거의 날마다 보고 자랐던 우리 세대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폭력적인 세대라도 됐을까? 좋아하는 건 그냥 좋아하는 것일 뿐. ‘기능성 게임’은 솔직히 재미없잖아.

애플의 실적, 만분의일의 세상

애플이 지난 4분기에만 18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는 실적을 발표했다. 18조 원, 한 달에 6조 원 이상 벌어들인 셈이다. 아, 매출이 아니다. 영업이익 얘기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만드는데 들어간 알루미늄 값, 삼성에 준 반도체 비용, 직원들 월급과 광고비 전부 제외하고 남긴 이익만. 이게 어느 정도 규모냐면 마이크로소프트(78억 달러)와 삼성전자(48억 달러), 구글(32억 달러, 3분기 기준이니까 이번 분기에는 훨씬 늘긴 하겠지만)의 이익을 다 합친 것보다 큰 액수다. 잘 나가는 페이스북도 이익은 11억 달러 정도 규모고, 어떤 회사도 애플만한 이익을 내지 못한다.

전에 edge.org를 통해 소개된 “아프리카의 진짜 크기“라는 지도가 널리 퍼진 적이 있는데, 이 지도를 보면 아프리카는 중국과 미국, 인도, 일본을 모두 포함하고, 유럽 대부부분의 국가를 포함한 것보다 넓은 면적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아프리카 대륙 전체 면적은 달 전체 면적의 80%가 넘는다. 우리는 거대한 아프리카를 바라볼 때 편견에 사로잡혀 실제로 아프리카가 얼마나 거대한지는 잘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애플 실적 발표를 보면서 든 생각이 딱 이랬다. 이번 이익 규모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단일 기업 역사상 가장 큰 이익이었다고 하니 역사마저 바꾼 셈이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니 기가 막혔다. 매월 6조 원을 벌어들인다는 건 쉬는 날까지 포함해서 하루에 하루에 2000억 원의 이익을 낸다는 얘기다. 직원은 약 10만 명. 단순히 1인당으로 나눠도 한 사람이 하루에 200만 원의 이익을 낸다. 근무일 기준으로 바꾸면 하루 300만 원 정도 벌어들인다는 얘기다. 하루 8시간 일한다고 가정하면 초당 104원 정도의 가치를 만들어낸다. (똑딱똑딱) “이거 말고 좀 더 예쁜 케이스 없을까요?” (똑딱똑딱) “고객님, 이건 어떠세요?” 여기까지 30초가 걸렸다면 3000원 이상의 서비스를 받은 셈…? 이건 농담이지만, 이런 회사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애플은 이 돈을 대부분 회사 안에 쌓아둔다. 물론 팀 쿡이 부임한 이래 근로조건 개선에도 훨씬 더 노력하고, 자사주 매입도 진행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엄청난 돈은 애플 안에 쌓여 있다. 그리고 애플의 임원들은 쉽게 상상도 하지 못할 엄청난 보상을 받는다. (최근 버버리에서 애플로 옮긴 안젤라 아렌트는 7330만 달러의 보상을 받았다. 대부분 애플 주식이지만 수십억 원 정도는 현금으로 지급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다. 한국 기업이 현금을 쌓아두면 한국 정부는 “투자여력이 있는 대기업이 현금을 쌓아두기만 한다”며 기업을 옥죈다. 한국 기업의 임원이 수십억 원 대의 연봉을 받고 수백억 원 대의 주식 보상을 받는다면 여론이 들끓는다. 압도적 보상은 압도적 성과를 위한 필요조건이 아닐까. 내가 개인적으로 바라는 세상은 애플 같은 회사 하나가 시장 전체를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애플의 만분의 일 밖에 안 되는 회사가 만 개가 있어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한 세상이지만, 생각해 보면 그런 세상도 애플 같은 회사가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 아래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애플도 시작할 땐 그런 만분의일 가운데 하나였으니까.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허핑펀포스트가 좋은 점은 아마도 이렇게 세계 각국의 허핑턴포스트 기사를 번역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른쪽 클릭을 막아놨네. 바보같은 웹사이트다. 이 글은 내게는 ‘마스터 키튼’으로 처음 접하게 된 우라사와 나오키의 인터뷰. 많은 사람들은 그냥 친구가 나오는 ’20세기 소년’ 혹은 ‘몬스터’로 기억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아무래도 마스터 키튼이 좋다. 인디아나 존스의 일본식 짝퉁이든 말든.

물론 만화가 무료가 되었다고는 해도 만화를 배급하는 회사가 작가에게 돈은 지불하지요. 하지만 그건 이 문제와 관계가 없습니다. 만화가와 독자 사이에 ‘대가를 내고 구입한다’는 계약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대가를 내가 구입해야만 작품에 대한 경의랄지, 역으로 말하면 불평할 수 있는 권리랄지, 여러 가지가 발생하는 거예요. 근데 그게 무료라면 뭐랄까 그 ‘당연한 관계성’이 생기지 않는 느낌이 듭니다.

돈을 낸 사람에게는 계속 불만을 말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무료로 볼 거라면 궁시렁궁시렁 하지마’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본래 작가에게 있어서 궁시렁궁시렁 얘기해주는 독자의 존재란 매우 중요해요. 물론 ‘재미있어요’라고 말해주면 기쁘지만. 그러니까, 얼마 되지 않는 돈이라도 지불하고 산 의견이란 건 무게가 다르다는 이야깁니다. 만화가와 독자의 위치가 이상하게 대등한 느낌이 듭니다.

종이책 밖에 내지 않는 구식 아저씨지만, 계속 이렇게 해줬으면. ‘빌리 배트’도 그렇고, ‘플루토’ 같은 리메이크 만화도 역시 종이책이어서 좋았던 것 같다.

시리가 좋아졌나?

시리가 좋아졌다고 애플 전문 블로거 존 그루버가 한마디 한 덕분에 스토리파이 뉴스레터에서 관련 내용을 소개해줬다. 트위터를 통한 대화들이 나오는데, 위에 링크한 존 그루버의 ‘시리 vs. 구글 나우’ 속도 비교에 대해서 “유럽에선 더 빠른데?”라면서 아이폰으로 비디오와 또 함께 비교한 내용이 재미있다. 잠시 나도 이 비디오에 내 아이폰을 대놓고서 “한국에선 더 빠른데?”라고 하려다 그냥 멈췄다.

시리는 그루버의 말 마따나 최근에 많이 좋아졌는데, 일본 아이폰 유저로 짐작되는 사람이 “일본에선 여전히 개판”(Japanese Siri still sitnks.)이라고 한 것처럼 한국에서도 불만을 가진 사람이 여전히 많다. 게다가 구글 한국어 음성인식이 워낙 좋아서 비교되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개인적으로 시리를 훨씬 많이 사용한다. 안드로이드폰을 쓰다가 다시 아이폰으로 돌아온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차에서 구글나우로 할 수 있는 일이 사실상 거의 없어서였다. 시리는 “음악 틀어줘”, “와이프한테 전화해줘”, “김기사 열어봐”, “이 노래 건너뛰자” 등을 다 알아듣는다. 구글 나우는… “OOO에게 전화”라고 딱딱한 명령어를 입력해야 하고, 알아듣는 경우도 적다. (무엇보다 “졸린데 재미있는 얘기 좀 해봐” 이런 장난도 칠 수 없다. 시리는 이런 경우… 정말 대답을 제대로 한다.)

시리는 정말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그런데 그냥 좀 멍청한 말귀 못 알아듣는 답답한 친구랑 얘기하는 느낌이다.(좀 심하게 답답한) 구글 나우는 굉장히 정확하게 내 말을 알아듣는다. 그런데 손으로 입력해야 할 걸 입으로 입력한다는 느낌 뿐이다. 똑똑한 기계랑 얘기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운전하는 동안 답답한 친구와 함께 갈 것인지, 기계랑 갈 것인지 생각해 보면 난 아무래도 친구가 좋더라.

아래는 관련 스토리파이.

내가 바로 샤를리다. #JeSuisCharlie

우리는 협박에 맞섰습니다. 왜냐하면 때때로 공격적으로 들릴 수 있을지라도,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좀 더 즐겁고 좋은 곳으로 바꿔 나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
저는 피해자들과 같은 생각을 합니다. 그들의 가족들은 물론 프랑스인들, 그리고 나아가 자신의 생각과 견해를 다른 이들과 나누려는 사람들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심지어 용기가 있어야만 이런 견해를 나눌 수 있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프랑스의 풍자 주간지 ‘샤를리엡도’에 대한 비극적인 총격 테러에 놀란 세계가 “내가 바로 샤를리다”라면서 희생자를 애도하는 동안, 다른 한편에선 테러는 잘못됐지만 그래도 샤를리엡도 또한 너무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난 개인적으로 표현이 어떻게 됐든지, 그것이 표현의 영역일 땐 또 다른 표현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본다. 총칼이 아니라.

그런데도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인 데이빗 브룩스 같은 사람조차 샤를리엡도 테러에 대해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라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테러는 반대하지만, 샤를리엡도도 종교에 대해 잘못된 접근을 했고 이걸 사회 전체가 ‘내가 샤를리다’라면서 지켜줄 건 아니란 얘기다. 칼럼니스트보다 저커버그가 낫다. 우리가 표현의 자유에 대해 얘기할 때 지켜줘야 하는 건 잘 포장된 얌전하고 정선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게 과연 우리가 지켜줘야 하는 것인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애매모호한 바로 그 논쟁적인 지점이야말로 표현의 자유로 보호돼야 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