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BM을 만든 역사적인 기술

1977년, 영화 ‘스타워즈’가 처음 개봉했을 땐 컴퓨터 그래픽이라곤 없었습니다. 특수효과를 위해선 모든 걸 실제로 만들어 촬영하거나, 아니면 필름 위에 손으로 그림을 그려넣어야 했죠. 그래서 스타워즈 시리즈의 인기 캐릭터인 로봇 C-3PO나 R2-D2 등은 모두 사람이 직접 속에 들어가 연기해야 했습니다. 당연히 로봇의 모습에도 제약이 있을 수밖에요. 그런데 약 40년의 시간이 흐른 2015년의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에서는 이런 제약이 사라졌습니다. 덕분에 이 영화에 새로 등장하는 로봇 BB-8은 더 이상 사람이 속에 들어가 연기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실제 기계가 연기를 하고, 부자연스러운 장면에는 컴퓨터 그래픽이 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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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굳이 저 속에 사람이 들어가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BB-8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로봇은 360도 굴러가는 공 모양의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머리는 그 위에 얹혀 있죠. 눈사람처럼 공 위에 또 공을 올려놓고 아래 공을 굴려 움직이는데도 신기하게 위에 얹힌 머리는 떨어지질 않습니다. 영화니까 가능한 게 아닙니다. 스피로라는 스타트업은 BB-8을 장난감으로 만들어 판매중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조종할 수 있는 이 장난감 BB-8도 공 위에 머리가 얹힌 상태입니다. 바로 중력센서라고 흔히 불리는 가속센서(accelerometer)와 자이로센서(gyroscope) 덕분입니다. 이 센서들이 BB-8의 몸체가 어디로 움직여도 공모양의 몸 속에 있는 모터 및 작동부를 바닥에 자리잡게 도와주고, 반대로 머리는 공모양 몸체 윗부분에 붙어있게 해주는 것이죠.

중력센서와 자동차

이 가속센서는 의외로 활용 범위가 넓습니다. 물체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당장 우리가 타는 자동차의 에어백이 이 가속센서를 활용한 제품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범퍼에 직접 충격이 왔을 때 에어백이 터지는 등 구식 방식의 센서를 활용했지만, 1990년대 이후 가속센서가 쓰이면서 그 정확도가 비약적으로 높아졌습니다. 오늘날의 차량에 쓰인 가속센서는 차체에 비정상적인 급한 감속이 생기는 순간을 순간적으로 감지해, 충돌과 함께 에어백을 자동으로 터뜨려 운전자를 보호하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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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하드디스크에는 에어백이 있습니다

컴퓨터 회사들도 이 자동차 에어백의 원리에 무릎을 쳤습니다. 요즘은 플래시메모리를 사용한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라는 곳에 정보를 저장하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불과 5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컴퓨터는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를 사용했습니다. 이는 고속으로 회전하는 자기(磁氣) 원반 위를 헤드라고 불리는 장치가 살짝 뜬 상태로 빠르게 읽어들이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그런데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다닐 땐 차가 덜컹거린다거나 노트북을 떨어뜨리는 순간 등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 때 헤드가 자기 원반을 툭 건드리면서 생기는 흠집은 치명적이었습니다. 작은 흠집이라도 워낙 민감한 정보를 많이 저장하는 HDD의 특성상 치명적인 정보 손실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컴퓨터 제조사들은 가속센서를 노트북에 부착합니다. 하드디스크의 헤드가 원반을 건드릴 정도의 큰 충격이 발생할 땐 헤드를 원반에 닫기 전 강제로 떼어내도록 한 것입니다. ‘컴퓨터용 에어백’이라 할 만한 발명이었습니다.

최근의 자동차에 기본으로 장착되어 나오는 차체자세제어장치(ESP)도 가속센서의 덕을 보는 기계입니다. 운전자가 차의 스티어링휠을 급격하게 좌우로 꺾으면 차는 관성의 법칙에 의해 빙그르 미끄러져 돌게 마련입니다. 고속으로 달리는 도로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대형 사고로 이어지게 마련이죠. 그래서 요즘 자동차는 수십분의일초 간격으로 차의 움직임을 측정합니다. 바퀴가 도는 속도와 실제 차량이 움직이는 속도 등을 비교해 바퀴가 미끄러지고 있는지를 살피고,(가속센서) 차체가 실제로 미끄러진다면 어떤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회전하는지 파악해(자이로센서) 특정 바퀴의 브레이크를 잠그거나 풀면서 방향을 바로잡습니다. ESP가 적용된 차의 경우 사고율이 30% 이상 감소하는데다 안전한 차선 회피율은 두배나 높아진다고 합니다. 네 바퀴 중 한 바퀴의 브레이크만을 수십분의일초로 계산해 잠궜다 풀어주는 일은 어떤 프로 레이서도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중력을 이해하다

가속센서는 중력 자체를 측정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요즘 한강 고수부지 등에서 쉽게 살펴볼 수 있는 무인조종 비행기 드론이 이런 기술을 사용합니다. 네 개의 프로펠러로 날아가는 형태가 대부분인 드론은 몸체의 수평을 자동으로 유지하는 기술이 가장 중요한데, 가속센서가 각각의 프로펠러 부분의 수평을 맞춰주기 때문입니다. 참, 가속센서란 속도를 측정하는 것인데 어떻게 수평을 맞추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이게 바로 ‘중력 가속도’를 파악하기 때문입니다. 가속센서는 바닥에 놓여서 움직이지 않을 때 센서 자체가 수직방향 위쪽으로 중력 만큼의 가속을 하고 있다고 파악합니다. 중력에 의해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동안이야말로 가속도가 0인 상황이라 보는 것이죠. 자이로센서는 반대로 드론이 어느 방향을 보고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합니다. 회전각에 따른 운동을 파악하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중력센서의 특성을 이용하면 각 지역 별 높이와 지각의 밀도 등에 따라 미세하게 변하는 위치별 중력 가속도의 차이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를 활용한 것이 바로 미사일, 특히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입니다. 실제로 냉전시기 미국과 소련은 서로 상대국의 각종 방해전파 등이 방해해도 한 번 발사한 미사일이 목표물을 향해 정확하게 날아가도록 가속센서를 활용한 유도장치를 개발해 왔습니다. 이들은 세계 전역의 스파이들과 바다 곳곳을 누비는 핵잠수함 등을 이용해 세계 곳곳의 실제 중력량을 측정한 ‘중력지도’를 만든 뒤 이를 ICBM에 적용해 왔습니다. 이것이 제 아무리 바람이 불고 기후가 변하고 방해전파가 작동해도 장거리 미사일이 목표를 향해 정확하게 발사되는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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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지도는 있어야 ICBM을 쏘는 겁니다.

하지만 중력을 측정한다는 건 무시무시한 미사일 발사에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리가 요즘 많이 찍는 디지털 사진입니다. 필름으로 사진을 찍던 시대와는 달리 요즘 디지털 카메라, 혹은 스마트폰 카메라들은 카메라를 세워서(수직방향) 찍을 때나 눕혀서(수평방향) 찍을 때를 알아서 구분한 뒤 우리가 촬영한 사진을 세우거나 눕혀 줍니다. 이런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가속센서 덕분입니다. 또한 이 기술은 향후 ‘손떨림 방지’ 기능으로도 이어지죠. 미세한 진동을 가속센서가 빠르게 파악해 움직임의 반대 방향으로 렌즈를 세밀하게 움직이면서 최대한 흔들리지 않는 화면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중력센서 시장의 폭발

사실 최근 10년 동안 이같은 가속센서의 활용은 말 그대로 ‘폭발’했습니다. 닌텐도가 약 10년 전 쯤 개발한 ‘위(Wii)’라는 게임기가 시장을 열었다고 봐야합니다. 위 게임기는 막대 형태의 게임 조종기로 게임을 조작하는데, 이 조종기 속에 바로 가속 센서가 사용됩니다. 고급 모델인 ‘위 플러스’에서는 자이로스코프도 함께 사용돼 각도의 움직임까지 정확히 측정하기 시작합니다. 즉 게임 컨트롤러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뿐만 아니라 어느 쪽을 바라보는지, 그쪽으로 얼마 만큼의 각도를 얼마나 빠르게 회전했는지까지 알려주는 셈이죠. 가속센서와 자이로센서가 함께 쓰인 위 컨트롤러는 해당 컨트롤러를 든 사람의 움직임을 거의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어 게임 조작에 최고입니다. 예를 들어 위 컨트롤러를 들고 주먹을 휘어서 내뻗으면 게임 속 내 캐릭터가 악당에게 멋진 라이트훅 펀치를 날리는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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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고글보다는 손에 막대가 좀 낫네요

이 기능은 최근 인기를 끄는 ‘오큘러스VR’, ‘기어VR’ 같은 가상현실 체험기에도 사용됩니다. 10년 동안 엄청나게 발전하면서 값도 싸진 중력 센서는 이제 눈 앞까지 덮는 헬멧 형태의 기계를 착용한 채 고개만 움직이면 시선에 따라 영상이 함께 움직이는 세상을 구현하는 수준으로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중력센서는 우리 눈 앞에 현실감 넘치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실제로 구현해 주는 일등공신이 됐습니다.

중력센서를 사용한 재미있는 기술에 VR 업체들보다 앞서서 주목했던 회사도 있습니다. 바로 애플이었죠. 애플은 ‘아이폰’을 개발하면서 가속센서를 사용합니다. 그 덕분에 수많은 게임회사들이 버튼 하나 없는 아이폰에서도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전화기를 흔들거나 움직이면 게임 화면을 조작하는 것이 가능해졌으니까요. 물론 위 컨트롤러나 아이폰을 잘못 흔들다가 기계를 떨어뜨리거나 잘못 날려버려서 집안의 기물을 망가뜨리는 일이 생기는 부작용이 일어나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아이폰, 그리고 아이폰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스마트폰의 가속센서 채용은 이 작은 센서 시장의 엄청난 성장을 불러옵니다. 2011년에는 애플이 세계 메이저 중력 센서 업체의 부품 절반 이상을 사들일 정도였는데 곧이어 다른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이 경쟁에 가세하면서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역시 애플’이라며 감탄만 하기엔 이릅니다. 삼성전자 또한 스마트폰을 팔기 전 이 가속센서를 사용한 휴대전화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2005년 출시된 이른바 ‘비트박스폰’인데,(아이폰보다 2년이 빨랐습니다) 가속센서를 사용해 흔들면 주사위 게임을 즐길 수도 있고, 무엇보다 허공에서 숫자를 그리면 단축번호가 인식되면서 전화가 걸리는 기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들고다니다 괜히 전화가 걸리는 등의 오류로 비판을 받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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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애니콜 비트박스폰!

최근에는 우리가 타고 다니는 교통수단에도 이런 중력센서가 사용됩니다. 중국의 샤오미가 만들어 최근 인기를 끄는 ‘나인봇’이라는 1인용 탈것은 단 두개의 바퀴위에 사람이 올라서면 자동으로 중심을 잡아주는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바퀴가 자전거처럼 앞뒤로 있는 게 아니라, 좁은 판자에 올라서면 양 발 옆으로 가로로 놓인 것이라서 앞뒤로 넘어질까 두려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력센서가 흔들림을 정확히 제어하면서 처음 올라타는 사람도 넘어지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세그웨이라는 미국 회사가 약 십년 전 대당 천만원 정도 하는 기계를 이 기술로 만들었는데, 샤오미가 세그웨이를 인수한 뒤 대당 30만 원 수준의 기계로 값을 낮춰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일을 하는 중력센서를 보편화한 건 결국은 반도체 기술이었습니다. 초소형 공정을 가능하게 만든 반도체 기술 혁신이 단순히 전자회로만이 아니라 물리적 움직임을 감지하는 소형 기계 센서까지 탄생시킨 겁니다. 최근 우리 주위는 가속센서와 자이로센서 같은 중력 센서들로 도배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스마트폰과 카메라는 물론, 자동차와 각종 스마트워치 등의 ‘웨어러블 디바이스’까지 거의 모든 전자기기에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죠. 중력센서야말로 진정한 사물 인터넷 시대를 우리 생활로 앞당겨 불러들인 일등공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류의 기원, 거울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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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생각 끝에, 한국을 생각합니다. 한국도 조상에 대한 관심이 큰 나라입니다. ‘자랑스런’ 민족의 자손임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겠지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상합니다. 자랑스러운 조상은 무엇이고 그렇지 않은 조상은 무엇일까요? 학교에서는 한민족의 조상이 동북아시아 또는 시베리아에서 왔다고 배웁니다. 동북쪽의 대륙에서 우리가 유래했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큰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의 조상이 실은 동남아시아에서 왔다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거부감이 들까요?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 거부감이 혹시 지금 한국인들이 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 갖고 있는 편견에서 나온 것은 아닐지요? 그렇다면, 20세기 초 유럽인들이 네안데르탈인을 보며 갖던 편견과 무엇이 다를까요?

고고인류학자의 책이지만, 모든 좋은 책이 그렇듯 이 책 또한 오늘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훌륭한 역사학자의 책이 수백년 전을 다뤄도 오늘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경영이나 정치, 사회학이나 컴퓨터과학 분야의 얘기를 보고 있으면 지금 여기를 이야기하지 않는 모든 일들은 하찮고 쓰잘데 없이 보이게 마련입니다. 돈을 벌고, 권력을 다루고, 세상을 논하며, 기술 발전을 칭송하는 이 급박한 세상에서 한가하게 무슨 옛날 얘기냐는 소리도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정작 오늘을 날카롭게 꼬집는 책은 저런 책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을 직접 다루지 않는 책이 오늘을 제대로 지적하죠. 천체물리학자의 책이 우리가 이 넓은 우주 속에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깨닫게 해 객관적인 중심을 잡아주는 것처럼, 이 책도 화석을 들여다 보면서 우리의 시작을 드러냅니다. 우리의 편견이 우리의 조상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막아 왔던 역사부터, 우리 속의 돌연변이가 결국 우리의 다양성을 만들어 낸 뛰어난 진화 체계였다는 사실까지.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어딘가 거울 앞에 벌거벗고 선 느낌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그 속의 내 모습은 멋지다고 하기엔 볼품없고, 부끄럽다고 하기엔 연민을 느끼게 되는 모습입니다. 그 모든 것이 바로 인간이니까요.

기계와 대화하는 법, 인터페이스의 역사

기술은 늘 우리 옆에 있던 것 같지만, 사실 어느날 갑자기 등장합니다. 2010년 이전에는 스마트폰이란 걸 들고 다니는 사람을 찾기란 오늘날 전기차를 타는 사람을 보는 것만큼 희귀한 일이었습니다. 2000년 이전 인터넷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것 같은 기술도 자신만의 긴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 위에는 다양한 뒷얘기들이 존재합니다.

역사란 언제나 오늘을 다시 생각하게 해 주는 거울입니다. 마치 우리의 자녀들처럼 말이죠. 아이들이 우리의 거울인 것처럼, 역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우리의 미래를 보여줍니다. 마치 우리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처럼. 첫 시작은 터치 인터페이스입니다. 손으로 만지는 직관적인 상호작용의 방식, 이렇게 설명하면 어렵지만 사실 간단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래 위에, 진흙 위에 뭔가 쓰고 그리며 서로 대화해 왔습니다. 그 대화를 컴퓨터와는, 스마트폰과는 어떻게 나눠 왔을까요? 그 방법의 역사를 생각해 봅니다.

예를 들어, 애플은 매년 새 아이폰을 발매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하나씩 들고 나타났습니다. 마치 공상과학 영화에나 있던 것 같은 기술들이었지만, 애플은 이런 기술이 마치 어제까지도 우리가 이미 써 왔던 기술인 양 자연스럽게 소개하는 능력이 있는 회사였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지금은 일상적인 스마트폰을 이용한 화상통화가, 사실 애플이 페이스타임이라는 기능을 아이폰에 집어넣기 전까지는 TV 광고에나 등장하는 괴짜들의 기술일 뿐이었습니다. 우리가 말로 얘기를 걸면 알아듣는 인공지능 비서 시리라거나, 손가락만 올리면 잠금이 풀리고 기능이 실행되는 지문인식 기술도 마찬가지였죠. 그리고 애플은 아이폰 6s부터 ‘3D터치’라는 기능을 선보였습니다.

23823538096_1eab68c556_o3D터치는 움직이지 않는 평평한 유리 스크린을 누르면 그 압력을 아이폰이 느낀 뒤, 사용자가 누른 깊이를 아이폰의 조작에 반영하는 기술입니다. 그냥 손가락을 대면 터치, 조금 힘줘 누르면 살짝 누른 앱의 내용을 미리 보여주는 피크(peek), 좀 더 세게 누르면 아예 다음 기능으로 넘어가는 팝(pop) 등 크게 3단계의 힘을 인식하는 것이죠. 유리 표면은 움직이지 않은 채 평평하지만, 아주 미세한 압력의 변화가 이 평평한 면에 깊이를 더한 것 같은 착각을 만들어 냅니다. 이는 2차원 평면으로만 여겨졌던 디지털 스크린에 깊이라는 3차원 속성을 만들어낸 새로운 발명입니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톰 크루즈가 두 손을 허공에 올려 조작하던 컴퓨터를 떠올려 보세요. 톰 크루즈는 그 때 일반적인 마우스로 하는 것 같은 2차원 평면 작업을 3차원 공간에서 해냅니다. 평면에 깊이를 더한 것이죠. 문제는 영화 속에선 그런 식의 기계 조작이 멋있게 보일지 몰라도, 현실에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조작할 때마다 두 손을 허공에서 휘저어야 한다면 이게 보통 중노동이 아니리라는 겁니다. 그래서 애플은 톰 크루즈가 휘두르던 팔의 깊이를 손끝에 주는 힘의 차이로 해석해 현실 속 기기에 적용합니다. 그게 3D터치입니다. 아이폰만이 아닙니다. 이미 애플워치에 적용된 기술이고, 애플의 새 컴퓨터에도 쓰이기 시작한 기술입니다.2494667_orig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진화

설명은 복잡하게 했지만, 3D터치가 하는 일은 사실 단순합니다. 화면 위의 무언가를 선택하고, 그 선택한 지점에서 특정한 행동이 실행되도록 하는 것이죠. 이런 기술은 오늘날의 스마트폰은 물론 컴퓨터 등 여러 화면을 사용한 기기에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20세기 중반 이런 기술이 가장 필요했던 화면이 사용되는 기술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군사 목적의 레이더였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전승국이었던 미국과 영국 등은 물론 패전국이었지만 많은 과학적 성취를 쌓아올렸던 독일에서 오늘날의 마우스를 짐작하게 하는 초기 기술들이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마우스 형태를 갖췄다고 할만한 첫 제품은 미국 스탠포드연구소(SRI)의 더글라스 엥겔바트가 개발했다고 할만합니다. 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상호작용 분야에 뚜렷한 획을 그은 더글라스 엥겔바트는 손안에 들어오는 크기의 네모난 나무상자 속에 가로세로축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는 롤러를 넣고, 그 사이를 볼이 굴러가도록 만들어 움직임을 추적하는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화면 위의 화살표를 이 기계로 조정해 특정 위치를 ‘클릭’하는 오늘날의 마우스였죠.

Xerox_Alto_mouse연구실에서나 사용하는 것 같았던 이 기술을 본격적으로 컴퓨터용 개인 입력기기로 사용하기 시작한 건 제록스가 만든 팔로알토연구소(PARC)였습니다. PARC는 마우스를 실제로 쓸만하게 제작해 컴퓨터에 연결한 것은 물론이고, 마우스로 작동시키면 누구나 쉽게 사용법을 익힐 수 있는 현대적인 컴퓨터 운영체제도 만들었습니다. 이전의 컴퓨터가 검은 화면 위에 뜬 명령입력줄에 어려운 명령어를 익힌 뒤 명령어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는 혁명적인 변화였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이 기술의 잠재력에 주목해 오피스 프로그램에서 마우스를 지원하기로 하고 연구를 벌일 정도였습니다.

이 때 한 남자가 생긴지 몇 년 되지 않은 회사의 직원들을 잔뜩 데리고 PARC를 방문합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였죠. 그리고 PARC의 마우스와 마우스를 이용한 그래픽사용자인터페이스에 푹 빠지고 맙니다. 이후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돌아와 자신만의 차세대 컴퓨터 개발을 시작합니다. 1984년, 이 컴퓨터가 바로 매킨토시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공개됩니다.

마우스 아닌 마우스

마우스는 초기에 군사용 레이더 화면을 쉽게 확인하기 위한 입력기기로 사용됐다고 앞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 때의 마우스는 마우스라기보다느 오늘날의 트랙볼 형태에 가까웠습니다. 고정된 틀 위에 손으로 굴릴 수 있는 볼을 올려놓은 것이죠. 이것이 이를 뒤집어 바닥에 볼을 굴리고 틀을 손으로 움직이는 마우스로 발전합니다. 트랙볼과 마우스는 이후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면서 꽤 오랫동안 발전합니다. 상대적으로 트랙볼은 정확한 움직임이 가능하지만 마우스는 빠른 움직임과 편한 사용법이 장점이었습니다.

이 틈새를 뚫고 마우스 같은 역할을 하는 여러 기술들이 개발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IBM이 사용했던 일명 ‘빨콩’(빨간콩 모양을 뜻하는 속어), 즉 포인팅스틱입니다. 아주 작은 조이스틱 같은 장치인데, 키보드 사이에 손가락에 주는 힘만으로 커서를 움직일 수 있는 막대를 끼워 둔 형태입니다. 키보드에서 손가락을 거의 떼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고, 노트북의 공간을 아껴준다는 점이 대표적인 장점으로 꼽혔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손이 키보드와 마우스 사이를 오가는 시간이 평균 0.75초가 걸리는데, 포인팅스틱은 이 시간을 크게 단축시켜준다고 해서 타자를 칠 일이 많았던 기업용 컴퓨터에 많이 활용되곤 했습니다.

1990년대부터는 터치패드도 쓰이기 시작합니다. 손의 정전기를 감지하는 패드를 이용한 포인팅 장치인데, 제대로 컴퓨터에 쓰이기 시작한 건 1994년 애플이 파워북이라는 노트북을 만들면서부터입니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데스크탑 및 노트북 컴퓨터가 마우스가 아닌 트랙패드라고 불리는 애플 방식의 터치패드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 첫 상용화도 애플이었던 셈입니다.
한 때 마우스와 서로 경쟁하는 입력장치였던 트랙볼은 물리적으로 먼지가 끼는 불편함 때문에 점점 시장에서 퇴출되기 시작합니다. 마우스는 볼 대신 레이저를 이용하면서 수명을 연장했지만, 트랙볼은 터치패드에게 자리를 내주고 만 것이죠. 가장 마지막까지 쓰인 트랙볼은 블랙베리나 HTC 같은 회사가 자신들의 스마트폰에 사용했던 미니 트랙볼이었지만, 이 또한 결국 터치패드에 밀려나고 맙니다.

마우스 뒤의 사람들

마우스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습니다. 마우스 주위를 스쳐간 인물들은 현대의 컴퓨팅 기술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를 들어 마우스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더글라스 엥겔바트는 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상호작용을 제대로 연구한 선구자였습니다. 그는 마우스 외에도 오늘날의 인터넷의 주요 원리 가운데 하나인 하이퍼텍스트(한 문서의 링크를 클릭하면 다른 문서가 열리는 방식) 연구에 큰 기여를 하고, 수많은 상호작용 연구를 지원하는 재단도 세웠습니다. 무엇보다 엥겔바트는 마우스 관련 특허도 출원해 놓고, 이와 관련된 로열티를 거의 받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애플은 제품 하나를 만들 때마다 로열티를 지불하는 대신, 약 4만 달러 정도의 헐값에 마우스를 얼마든지 제작해서 사용할 수 있는 라이센스를 사들일 정도였으니까요.

Exif_JPEG_PICTURE또한 애플에게 큰 영향을 준 PARC에서는 테드 셀커라는 연구원이 포인팅스틱 아이디어를 개발합니다. 키보드와 마우스 사이를 오가는 손동작 시간을 줄여보려던 기술임은 앞서 얘기했었죠. 이 기술을 IBM이 쓸 수 있었던 건 IBM이 제록스의 PARC에서 셀커를 스카우트했기 때문입니다. IBM으로 이직한 셀커는 포인팅스틱을 더 다듬었고, 이는 IBM 씽크패드 노트북의 가장 중요한 입력장치로 포함되게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셀커나 엥겔바트 같은 사람들이 기계를 만들어내는 사람들 같지만, 이들은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의도가 컴퓨터에 어떻게 더 쉽게 전달될 수 있을까 하는 주제였죠. 최근에 이들의 연구는 애플의 3D터치같은 기계적인 성취는 물론 또 하나의 중요한 기술 발달로 이어집니다. 바로 맥락을 파악하는 기술(Context Awareness)입니다. 오늘날 아이폰의 ‘시리’나 구글의 ‘구글나우’ 같은 기능은 사람이 무언가를 입력하기도 전에 아마도 입력할 것 같은 정보를 미리 찾아 보여줍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뉴스와 날씨를 보여주고, 극장 옆에서는 상영중인 영화정보를 알려주는 식입니다.

시작은 이렇게 늘 자그마합니다. 하지만 수십년의 세월이 지나면 그 작은 기술들의 발전은 어마어마한 변화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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