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분의1초

얼마전 ‘신 소림사 주방장’이란 영화에 대한 기사를 썼다. 이 영화를 찍은 리건 감독은 아바타를 다시 볼 것을 추천했다. 영화 공부를 하라는 게 아니었다. 스토리에서 완전히 떠나서 객관적으로 장면들만 보라는 얘기였다.
이미 유명한 영화 아바타에 대해 굳이 부연설명하자면, 이 영화는 3D 영화 기술에 대해 정말 수많은 기여를 했다. 무엇보다 ‘3D’라는 사실을 잊고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준 영화였고, 이 영화의 성공으로 수많은 훌륭한 감독들이 3D에 도전하도록 자극했다. 제임스 카메론이 했다면, 리들리 스콧이라고 3D로 프로메테우스를 찍지 못할 리 없었고, 피터 잭슨이라고 3D로 호빗을 연출하지 못할 리 없는 셈이었다. 그리고 좀 소소하게는 핸드헬드가 가능한 3D 카메라가 만들어졌다. 카메론은 3D 영화가 유원지의 조잡한 놀거리였던 시절에 소니에게 들고 뛸 수 있는 크기의 3D 카메라 제작을 의뢰했는데, 스스로 그 첫 고객이 됐다. 게다가 카메론의 3D 카메라는 기존의 3D 영화와는 완전히 다르게 카메라를 비행기에 매달고 하늘을 날았고, 필요하면 수중촬영도 했으며, 카메라맨이 어깨에 멘 채 언덕을 내달리기도 했다. 그리고 아바타에는 그런 모든 장면이 나온다. 사람들은 감탄했다. 심지어 2시간 내내 3D 영상을 봤는데도 눈도 아프지 않은 것 같았다. 좀 피곤하긴 했지만.

리건 감독 얘기를 듣고 다시 아바타의 장면들을 찾아봤다. 슬로모션이 많긴 했다. 눈에 띄는 건 슬로모션에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는 점이었다. 뭔가가 덮치거나, 카메라가 화면을 빠르게 좌우로 훑어야 했다. 즉, ‘패닝'(Panning)하는 경우가 상당수였다. “고정된 상태에서 눈앞으로 날아오는 물체 정도까지는 어떻게 눈을 속일 수 있겠지만, 큰 화면 전체를 상하좌우로 움직이면 떨림을 감출 수가 없어요.” 리 감독의 얘기였다.

소림사주방장은 실험 영화다. 극적인 재미를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니라 3D 기술을 실험해보고 노하우를 쌓을 수 있도록 기술 백서를 만드는 게 제작의 목표였다. 그렇다보니 영화 장면의 대부분이 패닝과 핸드헬드 촬영, 속도감 넘치는 액션신으로 가득했다. 바로 아바타에서는 꺼렸던 장면들이다. 소림사주방장과 아바타의 기술적 차이는 프레임 수가 1초에 각각 24프레임과 60프레임이라는 점이다. 1초 동안 우리의 왼쪽 눈은 아바타에선 12장면을 보고, 소림사주방장에서는 30장면을 본다. 당연히 60프레임의 장면을 볼 때 우리 눈이 더 잘 속는다. 애초에 영화라는 게 눈속임을 이용한 예술이었다. 수많은 정지화상을 빠르게 돌리면서 마치 화면 속에 움직임이 있는 것처럼 사람 눈을 속인 것이다.

사람 눈은 일반적으로는 초당 10~14장 정도의 정지화상을 인식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10장 이하의 사진을 돌리면 멈춰진 사진이 여러장 돌아간다는 것을 느끼면서 화면 속 움직임이 ‘깜빡거린다’고 인식하게 된다. 그런데도 오늘날 영화관의 영화는 대개 초당 24프레임으로 상영된다. 전통적인 극영화 상영 방식은 필름 옆에 소리정보를 담은 사운드트랙을 함께 걸어 재생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는데, 귀는 눈보다 더 예민해서 초당 24프레임 이하에서는 소리가 부자연스럽게 들리기 때문이었다.

물론 오늘날에야 대부분의 필름이 디지털로 상영되는만큼 초당 프레임 수를 사운드트랙 기준에 맞출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준을 여전히 사용하는 건 그게 자연스럽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디지털카메라가 처음 나왔을 때를 떠올리면 된다. 훨씬 더 자연색에 가깝고, 더 많은 화소와 더 넓은 명암비를 처리하는 디지털 기술을 보면서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웃돈을 주고 ‘필름 같은 느낌’으로 실제 영상을 왜곡시키는 기능을 갖춘 디지털 카메라를 구한다. 3D 촬영 또한 마찬가지였다. 24프레임에 100년 가까이 적응해 온 눈은 48, 60프레임 등 이른바 ‘고프레임율'(HFR, high frame rate) 영상을 오히려 부자연스럽다고 느꼈다.

하지만 변화는 올해부터 시작될 전망이다. 피터 잭슨의 ‘호빗’이 48프레임으로 나오고,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2’도 60프레임으로 촬영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저항은 예상된다. 호빗은 제작발표회 중간중간 계속해서 비난을 사고 있다. “전혀 영화같지 않고, 마치 TV 생방송을 보는 것 같다”는 악평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터 잭슨도, 제임스 카메론도 HFR에 대해 열성적이다. 카메론은 “그동안의 3D 영화가 유리창을 통해 바라본 세상이었다면 HFR에서는 이제 세상과 우리 사이의 유리창을 없앤 것”이라며 새 기술을 옹호했다. 최종완성본을 볼 때까지야 관객의 평이 어떻게 나올지는 알기 힘들다. 하지만 변화는 시작됐고, 소림사주방장은 어차피 HFR로 갈 거라면 미리 준비를 시작해보자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영화다.

당연히 미리 한 번 준비를 해보는 대가도 컸다. 우선 슬로모션이 쉽지가 않았다. 24프레임 시절에는 초당 60프레임 정도로 카메라를 돌린 뒤(오버크랭킹이라고 부른다) 남는 프레임을 잘라내면 무리없이 2.5배 느린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60프레임에서 시작해서 같은 효과를 내려면 초당 150프레임을 촬영해야 한다. 기술적으로야 큰 문제가 없다.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3D 촬영장비는 초당 200프레임 촬영을 지원한다고 했다.

문제는 막대한 데이터용량이었다. 애초에 HFR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건 필름 값 탓이었다. 초당 24프레임이면 눈과 귀를 훌륭히 속일 수 있는데 구태여 값비싼 필름을 더 찍어낼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최적의 비율을 24프레임으로 택했던 것이다. 디지털 촬영은 필름값을 줄여줬지만, 고해상도 촬영과 3D 입체영상 촬영 때문에 생성되는 데이터량이 최근 크게 늘고 있다. 일반적인 디지털영사관의 해상도는 이른바 2K영상으로 화소수 기준 2048×1080, 약 220만 화소에 이른다. 최근 각광받는 4K 영상도 4096×2160 해상도로 880만 화소 수준이다. 2K 기준으로 봤을 때 사운드를 포함한 2시간 분량 영화 용량은 일반적으로 250GB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3D는 이런 영상을 좌우로 따로 찍는 것이고, HFR은 초당 촬영분량을 늘리는 방식이다. 60프레임으로 촬영한다면 데이터는 기본적으로 2.5배가 된다. 소림사주방장은 액션 장면에서 프레임을 200프레임까지 높여서 슬로모션을 촬영해봤다고 했다. 24프레임 영화의 일반 장면과 비교했을 때 8배 이상의 데이터를 한번에 처리해야 한다.

당연히 후작업에 애를 먹었다. 후보정을 한 번 하려고 들 면 PC가 4시간, 5시간씩 렌더링을 했다는 얘기다.(물론 사용하던 장비의 수준이 낮은 게 문제였다.) 상영관으로 완성본을 들고가기도 힘들었다. 소림사주방장은 겨우 27분짜리 영화였는데도 불구하고 완성본 용량이 11TB에 이르렀다고 했다. 외장하드에 옮겨담을 수도 없어서 그냥 스토리지 서버를 떼어서 극장까지 들고갔다. 결국 제대로 된 극영화를 HFR 3D로 찍기 위해서는 본격적인 투자가 필수다. 그리고 그런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감독은 어느 나라든 극소수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미 성공한 감독들은 실험을 꺼린다. 그래서 한국에도 제임스 카메론과 피터 잭슨이 필요한 것이다.

기술 외적인 문제도 있었다. 너무 사실감이 넘치다보니 이른바 ‘카메라의 마술’이 사라진 것이다. 마치 HD TV가 보급되면서 조악했던 방송 세트장이 너무 가짜 티가 나서 모두 새롭게 제작돼야 했던 것처럼 HFR 영화의 액션도 마찬가지였다. 위험하거나 난이도가 높은 일부 액션에서 대역을 쓰면 아마추어의 싸움이란 티가 대번에 났다. 그래서 소림사주방장에서는 이런 상황을 감추기 위해 애초 계획했던 배우들을 모두 단역으로 돌리고 무술대역 배우를 주연으로 바꿔 실제로 떄리고 맞는 액션을 만들어야 했다.

내가 소림사주방장을 본 건 TV를 통해서였다. 국내에는 HFR 상영이 가능한 상영관이 없다는 얘기였다. 그래도 TV로만 봤을 때에도 눈의 피로는 확실히 적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슬로모션 대신 실제 속도로 촬영한 빠른 무술 액션 등은 긴박감을 높인다거나, 사실적인 액션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최근 3D TV들이 대부분 60프레임 3D 영상도 틀 수 있는 200Hz 대의 제품으로 나오는 것도 이 기술을 긍정적으로 보게 했다. 향후 HFR 3D 영화가 가정용으로 컨버팅될 때 장점이 될 테니까. 하지만 과연 극장에서의 느낌이 어떨지는 모르겠다. “영화가 아니라 TV 생중계같다”는 관객의 평을 극사실적인 액션과 생생한 화면만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

2010년 초, 미국에 CES를 보러갔을 때 3D TV로 주목받은 건 한국이지만 그 모니터에서는 모두가 하나같이 아바타만 틀어댔던 기억이 난다. 제임스 카메론은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를 보면서 자신이 그런 영화를 못만들어 화를 냈던 사람이었고, 30년 동안 스타워즈를 능가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노력해 아바타를 만들었다. 그러기 위해 소니를 설득해 카메라를 만들었고, 극장주를 설득해 극장에 3D 영사시설을 만들게 했다. 3D가 흥행이 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 소니와 함께 만들었던 시스템을 ‘스파이키즈’ 같은 영화에 빌려줄 정도였다. 소림사주방장은 아바타가 아니지만, 제임스 카메론도 처음에는 카메론이 아니었다. 한국의 감독들도 기술에 좀 더 관심을 가질 때가 아닐까.

For whom the 3D-TV turns?

라스베거스에서 열리는 CES 2010에 와 있습니다. 정식 쇼는 이곳
시간으로 내일 열리는데,(이 글을 쓰는 지금은 6일 오전입니다. 한국보다 17시간이나
늦죠…) 오늘부터 프레스 대상 행사가 열리기 시작했으니 사실상 저같은 기자
입장에서는 오늘이 개막인 셈입니다.

 

이번 CES에선 3D-TV가 화두라고 합니다. 삼성전자나 LG전자 모두
3D-TV, 3D-TV 강조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소니와 파나소닉도 별로 다르지 않은
모양새입니다. 세계의 온갖 주요 TV 메이커들이 모두 3차원 입체영상 속으로 빠져든
모양새입니다. 이렇게만 보면 2010년의 가장 큰 화두가 3D-TV를 통한 입체영상 콘텐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게다가 영화 ‘아바타’가 세계적으로 흥행 기록을 새로
써나가는 중인만큼(아직도 한국에선 3D 상영관의 주말 예약이 쉽지 않다더군요) 관심도
계속 늘어날 겁니다.

 

그런데, 일단 저부터 의문이 듭니다. TV 교체주기가 얼마나 되시나요?
제 기억에 우리 가족은 적어도 5년, 길면 10년 이상 TV를 썼던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진 TV는 신혼살림 장만할 때 샀던 40인치 LCD TV입니다. 충분히 크고, 충분히 화질이
뛰어납니다. 지난해 최신 LED TV를 사셨던 분들은 저보다 더 오래 쓰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산 TV는 약 200만 원 정도로 기억하는데 지난해 그리도 잘 팔렸다던 LED
TV는 같은 크기라면 가격이 두배 가까웠으니까요. 이런 TV를 최근 몇 년 간 충분히
구입하셨던 소비자들께서 새로 3D TV를 살 이유가 있을까요?

 

마침 뉴욕타임즈 블로그에 비슷한 주제의 글이 실렸습니다. "소비자는
정말로 3D-TV를 원할까?
"라는 글입니다. 장기적으로야 3차원 영상이 대세일거란
데 동의하지만, 적어도 앞으로 2-3년 동안 맥주 마시며 햄버거라도 먹으려면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해야하는 3D-TV를 거실에서 쓸 거라는 낙관적인 전망은 섣부르지 않느냐는
겁니다. 마지막 결론이 재미있습니다. 아이폰이 나올 때, 최신 비디오게임기나 획기적인
디지털카메라가 나올 때마다 그렇게 웅성거리던 IT 마니아들이 웬일인지 3D-TV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겁니다. 얼리어답터조차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3D-TV의 원년이란
뜻이죠.

 

2010년이 3D-TV의 해가 된다면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우선 TV 제조업체입니다. 값비싼 최고급 제품을 마케팅할 수 있고 교체수요를 빨리
이끌어낼 수 있으니 당연히 이익이죠. 3D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거대 영화사나 방송국
등 콘텐츠 업체도 도움이 됩니다. 대신 소형 콘텐츠 제작사들의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
겁니다. 플레이스테이션3가 나왔을 때 소형 게임업체들이 "우리는 저 엄청난
3차원 게임 못 만든다,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우리는 다 말라죽을 것"이라
걱정했던 기억이 납니다. 최근 몇년 사이 TV의 교체수요가 엄청나게 일어난
이유는 2002년 이후로 브라운관 TV의 발전에 한계가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LCD는 아직
그렇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미 사람들은 TV를 많이 바꾼 상태입니다. 3D TV가 얼마나
소비자들의 눈을 잡아끌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