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지배하는 가혹한 미래

Google_1984

“If Google did not act we faced a draconian future. A future where one man, one company, one device, one carrier would be our only choice. That’s a future we don’t want.” – Vic Gundotra, SVP of Google

난 이 슬라이드를 볼 때마다 배신감을 느낀다. 약 2년 반 정도가 흘렀다. 2010년 5월에 열렸던 ‘구글 I/O’ 행사에서 빅 군도트라 수석부회장은 누가 봐도 애플(‘1984년’이라는 매킨토시 광고로 유명한)을 연상시키는 이 사진을 화면 가득 띄워놓은 채 세계의 안드로이드 팬들을 선동했다. “만약 구글이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가혹한 미래를 맞게 될 겁니다. 한 사람, 한 기업, 하나의 디바이스, 하나의 통신사만이 우리의 유일한 선택이 되는 시대 말입니다. 그건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아닙니다.”

오늘 아주 매끈한 구글맵을 새 아이폰5에 설치했다. 해외로 출장이나 여행을 떠날 때마다 엉터리 애플맵으로 길을 잃을까봐 조마조마했던 마음을 다시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2년 반이 흐르는 동안 스마트폰의 세계에서 구글은 ‘선택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기업, 하나의 서비스’가 돼 버렸다. 그건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아니었을텐데.

하지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구글은 앙시앙 레짐을 대혁명 이후의 자유 시민들의 삶에 다시 불러들였다. 2009년 11월 이후 한국은 엄청난 속도로 변했다. 혁명적인 정책도 없었고, 혁명적인 혁신기술도 등장하지 않았으며, 혁명적인 사상도 유행하지 않았다. 혁명은 그저 아이폰이라는 기계 하나였다. 그 이전까지는 세 개의 통신사가 혁신을 위한 경쟁도, 값을 낮추기 위한 경쟁도 멈춘 채 과점 상태에 머물러 통신시장을 정체시켰다. 하지만 아이폰 이후 모든 게 뿌리부터 흔들렸다. 그 이전까지는 외국 기업이 한국에서 사실상 장사를 못하게 만들 수준이었던 비관세 장벽에 가까운 각종 규제(예를 들어 WIPI)들이 존재했지만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사라졌다. 그 이전까지는 통신사 만큼이나 독과점 상태였던 무소불위의 한국 휴대전화 제조업체들도 아이폰 이후 완전히 새로운 변화에 직면해 혼란에 몸부림쳤다.

엄청난 혼란기였고 구체제의 권력자들은 불안에 떨었다. 한번도 왕좌를 놓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절대군주 수준의 권력을 갖고 있던 통신업계의 왕 SK텔레콤은 실속없는 봉건 영주인줄로만 알았던 KT가 아이폰으로 반란군의 대열 앞에 서자 이를 진압하기 위해 피를 흘려야 했다. 전장에서는 왕이 예상치 못한 마케팅비용 3000억 원을 2010년 한해에만 추가로 쏟아부었다는 소문이 횡행했다. 제조업계의 절대군주 삼성전자도 두려움 앞에서 혼란에 빠져든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세상은 한번에 바뀌지 않았다. 앙시앙 레짐이 흔들리고 혁명이 유럽으로 퍼져나가려고 할 때엔 서로 앙숙인 부르봉 왕가와 합스부르크 왕가라 할지라도 손을 잡게 마련이다. 구 체제의 왕들은 구글이라는 적의 적과 동맹을 맺었고, 몇 년 전만 해도 도무지 어울리는 부분이라고는 하나도 없어보였던 두 세력은 이제 동맹군이 된다. 동맹의 신무기 기술을 받아들인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폰을 만들었고, 동맹의 군사 운용법을 배운 SK텔레콤은 T스토어를 만들었다.

3년 전, 한국은 햅틱과 아몰레드가 시장을 지배했고, 통신사가 요청했다는 이유로 모든 휴대전화에 와이파이조차 달 수 없던 나라였다. 그 이후 6개월 동안 코뮌의 시대가 잠시 왔고, 이후 예고된 반동이 시작됐다. 2년 반이 지났다. 한국은 이제 갤럭시가 시장을 지배하고, 통신사의 요청에 따라 망중립성 같은 소리는 집어치운 나라가 됐다. 절대군주 삼성전자의 위세는 더 강해져서 모토로라와 HTC 같은 영주들은 영지를 빼앗긴 채 쫓겨나기 시작했고, SK텔레콤은 자신이 공급하는 동영상과 콘텐츠는 통신요금에 합산되지 않고, 자신과 제휴하지 않은 독립업체의 동영상과 콘텐츠에만 통신요금을 과금하는 통신망 편향적인 독특한 시장을 만들어냈다. 정확히 3년 전과 똑같이.

빅 군도트라가 얘기하던 가혹한 미래는 이제  결국 그 구글의 손에 의해 도래하기 시작한 게 아닐까. 기대할 수 있는 건 오직 구글의 선의 뿐이란 점에서 지금 우리의 처지는 군주와 귀족들의 선의만을 기대하던 앙시앙 레짐의 시민들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게다가 구글은 그동안 앙시앙 레짐을 지원하던 비용을 다시 회수하기 시작했다. 통신사에게선 앱 판매 수수료를 제값에 받아가기 시작했고, 삼성전자와의 독점적 밀월도 끝내고 다른 영주들과도 동맹을 맺기 시작했다. 이건 뭘 뜻할까? 구글의 선의? 내게는 이제 그들이 다시 왕과 귀족 사이의 게임을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패배자를 앞에 놓고 전리품을 챙기는 시기 말이다.

그러니 내 과거의 농담은 완전히 틀린 것 같다. 애플 제국과 안드로이드 동맹군 사이의 스타워즈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 옆을 지나간 건 혁명이었다. 시민의 편을 든 귀족과 앙시앙 레짐 사이의 혁명.

 10년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은 어릴 적부터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어린 시절부터 애플 제품을 썼던 건 아니다. 물론 컴퓨터라는 기계 자체가 흔히 볼 수 없는 값비싼 기계였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옆집 형이 갖고 있던 애플II에 대한 동경은 있었지만 그냥 그 정도였다. 이후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났고, 그가 만든 넥스트 큐브가 용산전자상가에 한 대 전시돼 있어 보러 갔던 기억도 난다. 그 기억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 또한 가격표 때문이었는데, 당시에 정말 말도 안 되게 비쌌던(90년대 초에 국내 소비자가격이 900만 원 대였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부정확함) 가격이었다. 그게 얼마나 충격이었으면 아직도 만져보지도 못하게 유리상자에 담겨 전시되던 그 넥스트 큐브가 눈앞에 어른거릴까.
그러니까 내게 애플은 늘 닿을 수 없는 곳에 존재하는 럭셔리 브랜드였다. 일종의 여성들의 샤넬백 같은 존재랄까.

그게 달라진 건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첫 월급을 받고 나서 부모님께 빨간 내복을 사드리고 난 뒤 곧바로 내가 했던 일이 바로 다음달 월급까지 미리 끌어당겨 쓸 수 있는 마법의 신용카드를 이용해 아이팟을 산 것이었다.(사실 수습기간 월급은 매우 박하기 때문에 부모님과 주위 사람들에게 한턱 내고 나서 뒤돌아보니 아이팟은 다다음달 월급을 끌어당겨 샀던 셈이었다.) 어쨌든, 애플에서 만드는 액세서리가 아닌 손에 쥘 수 있는 첫 제품이 ‘살만한 가격’ 수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많은 사람들이 변해가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팟을 사고 나니 아이맥을 사게 되고, 아이맥을 사고 나니 들고다닐 맥북이 필요하고, 그러다 아이폰이 들어오니 아이폰도 쓰고, 아이폰이 괜찮으니 아이패드도 사고 등등…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지 1년이 됐다. 주위 사람들이 무슨 글을 안 쓰느냐고 부추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1년이 지났을 때도 별 얘기를 쓴 게 없는데(모두가 마찬가지겠지만, 스티브 잡스보다 내 인생에 최소한 만배는 더 큰 영향을 주신 분인데) 생판 남에 대해 내가 무슨 추도문까지 쓰겠냐 싶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 한 마디는 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의 업적을, 그것도 세컨커밍, 그러니까 1997년 이후의 성과를 그저 아이맥과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의 발명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젊은 시절의 스티브 잡스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내 생각에 1997년 이후의 스티브 잡스가 이뤄낸 가장 큰 혁신은 샤넬백을 코치백 가격에 판매한 일이다. 소수의 럭셔리 제품을 만인을 위해 만들어낸 일.

그러니까, 난 아이폰5도 나오자마자 곧장 달려가서 살 생각인데, 아마도 그건 내겐 쏘나타 가격으로 SL55를 사는 느낌.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 그리고 데이브 그롤

블랙 키즈의 ‘론리 보이’가 흘러 나올 때만 해도 익숙했던 풍경이었다. 무대는 어둡고, 기자들은 흥분한 듯 떠들고 있었으며, 애플 직원들은 축제를 벌이는 듯한 그 모습. 팀 쿡의 애플도 계속해서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내는 회사였고, 애플이 하는 모든 일은 뭔가 세련되고 멋진 일인 것 같았다. 지금까지 애플이 그래왔듯이.
뭔가 꼬이기 시작한 건 발표의 시작이 필 실러의 ‘아이폰5’였을 때였다. 이상한데. 이게 왜 맨 처음이지. 기대치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이미 몇달전부터 베타테스터가 되어 쓰고 있던 내 아이폰의 iOS6가 천연덕스레 마치 처음 나온 기능인 양 반복해 소개됐다. 몇 달 전 스콧 포스톨이 직접 소개했던 바로 그 소프트웨어 말이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였다면 음악을 그렇게 대우하면 안 된다고 길길이 뛰었을 것 같은데도, 아이폰5에 뒤이어 등장한 건 아이튠즈와 아이팟 라인업, 이어팟 등이었다. 스티브 시절의 애플은 이렇게 하지 않았다. 그 시절의 애플은 단지 비틀즈의 음원을 아이튠즈에서 판매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중대 발표’라면서 미디어를 자극하는 회사였다. 애플 광고에 쓰인 노래들은(모두는 아니지만) 애플이 쓰기 전까지는 인디에서 갓 주목받던 곡들이었고, 애플은 그런 음악들을 메인스트림으로 올려주는 역할을 맡곤 했다. 팬들은 기꺼이 그런 애플의 약간 지나친 자의식에 열광적인 지지로 응답했다.

그러다가 아이튠즈 발표 도중 ‘어벤저스’가 등장했다. 돈을 많이 벌어들인 영화임엔 틀림없고, 나도 재미있게 봤던 영화지만, 그게 전부였다. 왜 어벤저스를 고른 걸까. 넥서스7을 사면 트랜스포머를 한 편씩 기본으로 설치해 주는 건 구글 같은 회사나 하는 일이었다. 스티브의 애플처럼 자의식이 강하고 취향이 뚜렷한 회사에서는 어벤저스로 데모를 하는 건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다. 차라리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나와야 어울릴 자리였다. 그리고 반쪽짜리 뮤직 이벤트(원래는 따로 하나의 완전한 행사로 열었던)가 끝나자 늘 그렇듯 축하 공연을 해줄 밴드가 등장했다. 역시 반쪽짜리 밴드였다. 푸 파이터즈 말이다. 너바나의 처음이자 끝이었던 커트 코베인이 죽고 난 뒤 드럼을 치던 데이브 그롤이 나와서 만든 밴드. 나는 나 스스로 그런지 세대, 그러니까 너바나, 펄 잼, 사운드가든 등을 좋아하던 세대지만 푸 파이터즈는 좋아한 적이 없었다. 물론 이들은 듣기 좋은 곡을 만들어 빌보드 차트에도 올랐고, 스스로에게 총을 쏜 커트 코베인과는 달리 즐겁게 음악을 하며 건강한 인생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건 애플이 아닌 것 같았다. 컬트오브맥의 버스터 헤인은 조금 더 심해서 “마이크로소프트나 할만한 짓”이라며 길길이 뛰었다.

그런데 잠깐. 데이브 그롤이었다. 마지막 무대가.

애플에게 스티브 잡스가 알파이자 오메가였다면, 너바나에게 커트 코베인도 그랬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가 떠났을 때 사람들은 애플이 망할 거라고 생각했다. 커트 코베인이 시애틀 워싱턴 호수 옆의 자기 집에서 스스로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을 때 사람들은 그런지도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데이브 그롤은 새 밴드를 만들었고, 푸 파이터즈는 너바나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았다. 사람들이 더 이상 그들을 그런지라거나 얼터너티브(대안)라고 부르지는 않을지 몰라도 푸 파이터즈는 사랑받는 밴드가 됐다. 그렇다면 스티브가 없는 애플은?

개인적으로 프레젠테이션은 실망스러웠다. 어벤저스와 푸 파이터즈도 싫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애플 사람들은 지금 스티브가 만들어 놓았던 그 세상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는 중이었다. 그것도 스티브가 만들어 놓은 그 모든 걸 다 유지하면서.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그게 애플이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이다.

가까이 아이폰5를 보자. 겉으로만 보면 아이폰4와 아이폰4S와 비교했을 때 세로로 조금 길어졌을 뿐이다. 하지만 그 조금 길게 만드는 디자인을 위해 이들은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아이폰을 설계했다. 두께를 조금 줄이려면 공간 배치를 모두 새로 만들어야 했고, 길이를 늘였다고 그 자리에 배터리를 채워넣을 수만도 없는 법이었다. 이들은 지금까지의 아이폰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아이폰의 세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반대론자들은 왜 애플은 OLED를 쓰지 않느냐고 다그쳤지만 애플은 대신에 LCD를 쓰면서 채도를 더 높였다. 카메라 화소 수는 노키아가 최고라고 얘기하지만 노키아의 렌즈 커버는 사파이어 크리스털(다이아몬드 다음 경도)이 아니다. 렌즈커버에 흠집이 나면 아무리 화소가 높아봐야 사진은 뿌옇게 나온다. 애플은 어디에 돈을 써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싸구려 부품으로 가격을 깎는 건 누구나 하는 일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부품으로 비싼 공정을 유지해 비싼 제품을 만들면서도 제품의 가격을 2007년 이후의 인플레이션을 무시한 채 유지한다는 건 그야말로 마법같은 일이다. (게다가 애플이 만들어낸 이 터프한 가격 경쟁 덕분에 안드로이드 팬들도 값싸고 품질좋은 스마트폰을 쓰게 됐다.)

스티브는 세계 최고의 연설가였고, 쇼맨이었다. 물론 그 아우라가 그립다. 이제 애플에 그런 건 없으니까. 그 사실을 모두가 안다. 하지만 최고의 제품을 만들던 사람들은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사람들은 여전히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 넥스트 시절의 스티브 잡스는 ‘괴짜들의 승리'(Triumph of Nerds)라는 PBS 다큐멘터리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이 만들어낸 것을 따라했다고 뭐라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의 성공에 제가 배가 아플 이유도 없습니다. 그들은 대단한 성공을 이뤄냈고, 그 성공을 자신들의 힘으로 일궈냈습니다. 그것이 저를 슬프게 만들 이유는 없죠. 다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에는, 뭐랄까, ‘취향’이 없습니다. 그들은 소프트웨어에 문화를 불어넣고, 그것을 뭔가 의미 있는 것으로 발전시키는 법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슬픈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엄청난 성공이 아닙니다. 제가 정말로 슬픈 이유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들어내 성공을 거둔 모든 제품들이, ‘삼류’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애플의 발표에는 ‘취향’이 없다. 그들은 발표에 문화를 불어넣고, 그것을 뭔가 의미 있는 것으로 발전시키는 법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이폰은 삼류가 아니다. 발표는 삼류지만 그들은 여전히 일류 제품을 만든다. 그리고 발표는 이들이 사랑하는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애플은 발표를 잘 하는 사람을 따로 스카웃할 것 같지는 않다. 그 자리는 이 사람들이 존경하는 사람의 자리이고, 우리 팀 최고의 선수를 위해 비워놓는 영구결번 백넘버 같은 것일 테니까.

아이폰5

약간 장난같은 생각. 갤럭시노트를 쓰다보니 아이폰4가 확실히 좀 작다는 생각이 든다. 눈이 침침하다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3.5인치 화면이 한손으로 쓸 수 있는 최적의 크기라고는 하지만, 4.3인치, 4.5인치 스마트폰이 수없이 많은데다 갤럭시노트는 5.3인치인데도 대략 적응이 된다.
물론 한손으로 도저히 컨트롤이 불가능한 갤럭시노트가 매스마켓을 상대로 내놓은 제품이란 생각은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이폰처럼 640X960의 3.5인치가 충분한 화면이라고 계속 우기기는 애플도 어려울 것 같다. 디자인도 해치지 않고, 지나치게 화면을 키우지도 않고, 무엇보다 애플의 자랑인 아름다운 레티나 디스플레이도 해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패드를 작게 만들면 어떨까?

그림으로 설명하는 게 쉬울 것 같다.

이 그림의 회색 사각형은 현재 아이폰의 화면크기다.(실제 크기가 아니라, 비율만) 가로 픽셀 640, 세로 픽셀 960. 1인치에 326개의 점이 들어가 있는 엄청나게 빽빽한 화면이다. 애플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일반적인 시력의 성인이 점으로 인식할 수 있는 가장 빽빽한 밀도가 대략 300ppi(1인치에 300개의 점) 정도에서 정해진다고 하는데, 아이폰4와 아이폰4S는 그보다 더 높은 밀도의 스크린을 갖고 있다. 따라서 육안으로는 점 한 개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326ppi의 밀도는 유지한 채 그 비율 그대로 픽셀수만 아이패드만큼 늘려본다면? 아이패드의 픽셀수는 가로 768, 세로 1024개다. 이 그림의 푸른색 사각형이 ppi를 유지한 채 아이패드만큼 화면을 늘린 경우의 스크린이다.

이렇게 화면 크기를 늘리면 3.5인치 크기의 아이폰 스크린은 3.9인치로 늘어난다. 물론 갤럭시넥서스(4.65인치)나 갤럭시노트(5.3인치)보다는 작지만, 갤럭시S 수준의 크기고, 화질은 갤럭시 시리즈보다 훨씬 뛰어나다. 무엇보다 이렇게 화면 크기를 바꿀 경우, 아이패드용으로 개발된 모든 프로그램을 그대로 아이폰으로 쓸 수 있다. 화면 크기가 동일하니까. 바꿔 말하면, 앞으로는 아이폰용으로 개발한 앱을 아이패드에서 바로 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게다가 안드로이드는 계속 화면 비율을 와이드형으로 유지한다. 가로 720, 세로 1280의 비율인데, 이건 아이폰/아이패드보다 훨씬 더 길쭉한 직사각형 형태다. 아마도 유튜브를 띄우려는 생각 때문에 동영상에 적합한 와이드스크린 형태로 만든 것 같은데 이런 비율은 책을 읽거나 잡지를 보는데는 최악이다. 아이폰이 아이패드의 화면비율 형태를 따라간다면 인쇄매체를 대신하는 형태의 미디어로서는 안드로이드보다 아이폰/아이패드가 훨씬 나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교과서를 대체하는 데에도, 그리고 부모들에게 ‘교육용’이라고 어필하는데에도 아이패드 판형이 훨씬 유리하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갑자기 아이폰의 크기가 확 커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 수준의 베젤 크기를 유지하고, 화면만 키운다고 봤을 때 새로운 아이폰의 크기는 대략 이 정도다. 왼쪽이 지금의 아이폰4S, 오른쪽이 화면이 커진다고 가정해 비율만 조정한 가상의 아이폰이다.

그저 약간 커진 아이폰이지만, 훨씬 보기 편해지고, 아이패드와의 호환성도 높아진다. 문제가 생긴다면 아마 LCD 생산라인의 문제 정도겠지만, 애플 정도의 주문을 넣는 고객을 상대하는데 새 라인 하나 못 만들 이유는 또 뭐가 있을까.

그리고 생산라인만 고려한다면 아마도 여러 가지 소문의 근원을 이런 방식의 화면크기 조정에서 찾을 수도 있겠다. 4인치 아이폰이 나온다는 소문이 한 때 돌았는데, 위에서 얘기한 듯 화면을 늘리면 3.9인치가 된다. 또 7인치 아이패드가 나오리라는 소문도 이런 측면에서 보면 꽤 그럴싸하게 해석된다. 현재의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가로 1인치 길이에 약 18개의 픽셀이 들어가는 수준이다. 그런데 지금의 아이패드를 같은 화면크기에 해상도만 높이려면, 그러니까 아이폰의 화면 해상도를 늘렸듯 2배로 해상도를 높이면 가로 1536개, 세로 2048개의 픽셀을 쓰게 된다. 9.7인치 디스플레이에서는 이게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아니다. 아이패드의 화면 크기가 아이폰4 화면 네 개를 이어붙인 것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차라리 지금의 아이폰4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유지하면서 비율만 아이패드형태로 바꾼 뒤 화면 네개를 이어붙이면 9.7인치 크기의 아이폰 스크린이 약 8인치 크기로 줄어든다. 그리고 ‘레티나’라는 마케팅 용어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아이패드 스크린은 조금 더 작아지고, 아이폰 스크린은 조금 더 커질 거라는 루머가 들어맞는 셈이다. 무엇보다 디스플레이 업체 입장에서보면 아이패드용 레티나 스크린을 한 번 생산한 뒤 4등분하면 바로 아이폰 스크린이 되는 셈이니 수지타산이 맞는다. 디스플레이 패널 비용이 더 절감되는 셈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어제 발표를 통해 애플은 자신들이 아이패드를 교육 시장에 본격적으로 밀어넣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값이 싸져야 할 이유,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더 잘 호환돼야 할 이유가 애플에게는 꽤 많이 있다.

이상은 그냥 생각나는대로 써 본 추측. 애플이 이렇게 대충 한 생각대로 제품을 만들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아이폰 화면은 조금 더 커졌으면 좋겠다. 또 아이폰과 아이패드 앱을 따로 사는 것도 싫다. 나도 애플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다음 제품을 보고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