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로이드를 베낀 인스타그램을 베낀 폴라로이드의 실패

인스타그램의 색바랜 듯한 필터, 바로 찍어서 공유하는 즐거움이란 컨셉. 인스타그램을 설명하는 이 모든 매력은 모두 폴라로이드로부터 배운 것이었다. 지구에서 아마도 가장 큰 인기를 끌었을 즉석 카메라. 벌써 75년이나 인기를 끌었던 이 위대한 카메라가 지금은 어이없이 비틀거리고 있다.

사실 꼭 비틀거리는 것만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2012년 인스타그램에서 모든 걸 배운 ‘현실 속의 인스타그램 카메라’를 폴라로이드가 만들겠다고 나섰을 때 박수를 쳤으니까. ‘소셜매틱’이란 이름의 이 카메라 개발 계획이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로 보였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 아이콘을 꼭 빼닮은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매력적으로 빛바랜 사진을 즉석에서 뽑아내는 폴라로이드 즉석 필름의 느낌, 그리고 인스타그램 공유 기능까지. 이건 디지털로만 서비스되는 인스타그램은 줄 수 없는 빈티지한 매력이 폴폴 풍기는 기계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폴라로이드가 계획을 약간 수정해서 ‘덜 인스타그램 같은’ 카메라를 만들겠다고 디자인을 내놨을 때 첫 실망이 시작됐다. 마침내 2014년 CES를 통해 이 덜 인스타그램 같은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등장했다. 기대를 접게 만들 수준이었다. 인스타그램의 흔적은 거의 다 사라졌고, 폴라로이드 즉석 필름의 그 빛바랜 아날로그적 아름다움은 ‘Zink'(Zero Ink)라는 폴라로이드가 개발한 스티커 프린팅 기술로 대체됐다. 인스타그램만 쓸 수 있던 심플했던 인터페이스를 대신해서 페이스북과 트위터, 핀터레스트도 연동할 수 있는 소셜 기능도 추가됐다. 이를 위해 사용한 건 불안정하게 커스터마이징된 스마트폰에나 쓰이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였다.

아마도 폴라로이드에도 디자인은 전혀 모르는 경영진이 있던 게 아닐까? “뭐라고? 인스타그램을 베낀 카메라를 만든다고? 우리 회사 색깔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 인스타그램이야말로 우리를 베낀 건데 말야!”, “뭐라고? 필름을 쓴다고? 이 사람 이거 시대 변화를 모르는구만, 요즘 대세는 디지털 프린팅이라고!”, “뭐라고? 인스타그램에만 사진을 올린다고? 요즘 애들 다 페이스북하고 핀터레스트 쓰는데 무슨 소리야? 기능 더 넣어봐!”

한 때 팬들을 흥분시켰던 폴라로이드의 소셜매틱은 아직 값도 못 정했고, 발매시기도 “2014년 가을 중”이라고. 심지어 CES에 전시한 제품들이 작동하는 데모도 보여주지 못했다고 한다. 현실 속 인스타그램 카메라라면 나도 갖고 싶었을 텐데, 이건 별로다.

과잉 기술

지난 주말 ‘호빗’을 봤다. 지난번 HFR 3D 영화 취재도 했고, 새로운 기술과 기존 기술의 비교 체험도 했던 덕분에 기대가 컸다. 특히 저예산으로 촬영한 국내 독립영화와 달리 호빗은 헐리웃 자본이 들어간 제대로 된 HFR 3D 장편영화라 더더욱 기대했다. 기대하는 게 당연했다. 표 값은 무려 1만7000원. 아내와 둘이 표를 끊으니 3만4000원을 냈다. 적은 돈이 아니다. 돈 때문에라도 더더더욱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에겐 이 비싼 표 값에 대해 “미들어스로 들어갔다 나오는 3시간짜리 관광 상품이란 걸 감안하면 그렇게 비싼 게 아니다. 덤으로 뉴질랜드의 자연도 함께 보여주잖냐”고 설득했다.
보고 나온 뒤 아내의 반응은 “머리가 아프다”였다. 3시간에 이르는 러닝타임 때문에 끼니 때를 거른 탓도 있었겠지만, 이 관광상품은 멀미가 심하게 나는 차에 태워서 미들어스를 돌아다니는 상품이었던 셈이다. 난 딱히 부작용은 느끼지 못했는데, 안 그래도 평생을 초당 24프레임 화면에 익숙해져 살아온 우리의 눈이 두 배의 프레임(호빗은 48fps)을 소화하는 건 사람에 따라 쉽지 않으리라는 경고가 나오던 상태였다. 아내가 그랬다. 나는 개인적으로 좋았다. 호빗은 3D였지만 3D같지 않았다. 액션이 넘쳐나고, 카메라워크도 현란했다. 튀는 부분도, 어색함도 없었다. 자연광 아래에서 촬영된 장면들은 너무 사실적이라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보일 정도였다.(이 때문에 HFR이 필름 분위기의 영화 화면을 TV 방송처럼 망친다는 비판도 있다. 디지털카메라가 처음 나왔을 때 필름 느낌 안 난다던 것과 똑같은 비판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 때문에 3만4000원을 낼 필요가 있는 걸까?

CES가 개막했다. 척 보기에도 주력 상품은 단연 울트라고화질TV(UHD)다. 일본 가전업체들은 저마다 4K 해상도라면서 익숙한 FullHD 화질을 2배 늘린 3840×2160 해상도 TV를 들고 나왔다. 그런데, 나 이거 2010년 CES에서도 봤다. 소니와 파나소닉이 저마다 4K TV라고 들고 나온 그 울트라고화질 말이다. 물론 이번에는 OLED로 만들었다고 한다. 얇게 만들고, 가볍게 만들고, 반응속도도 빠르고 색감도 생생해 자기들이 ‘꿈의 디스플레이’라고 주장하는 그 OLED 말이다.

한 때는 3D TV가 대세였다. 너도나도 집에서도 입체영상을 즐기라면서 영화 아바타를 틀어댔다. 그 다음엔 스마트TV가 나왔다. 인터넷을 즐기고, 앱도 다운받아 게임도 하라는 얘기였다. 돌고 돌아 다시 초고화질 TV다. 솔직히 해마다 TV 트렌드가 뭐였는지도 구분도 안 간다. 내 TV는 별로 넓지도 않은 안방에 놓인 40인치 HD TV다. 그것도 Full HD가 아닌 해상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1280×768 HD급 TV지만 안경을 끼고 봐도 격자를 잘 알아보기가 힘들다. 내 눈이 나쁜 탓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눈이 화면과 멀리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50인치 크기의 TV에 4K 해상도라면, 과연 내 눈이 그걸 알아보기는 할까?

올해 CES에선 역시 ‘꿈의 디스플레이’라는 OLED도 열심히 전시될 모양이다. 값은 여전히 비싸고, 상용 제품은 여전히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 OLED가 사실상 유일하게 상용화된 분야인 스마트폰에서도 아직 OLED의 화질 때문에 스마트폰을 고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두께를 줄이는 데에도 큰 영향을 주진 않았다. 그 얇은 아이폰5조차 아직 LCD를 쓰면서 두께를 줄인다. 언젠가 OLED가 블루투스처럼 충분히 값이 떨어져서 실제로 여기저기 쓰일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는 소비자의 눈에는 그렇게 큰 차이를 주지는 못할 것 같다.

그래서 HFR로 촬영된 호빗에 3만4000원을 주기가 아까웠던 느낌을 TV를 보면서 다시 받게 된다. 과연 수백만원씩 써가면서 안경을 끼고 가까이 가지 않으면 차이도 알아볼 수 없는 UHDTV를 살 소비자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들이 잘 튜닝된 LCD와 OLED의 차이에 감탄할 수는 있을까? 기술적 성취는 인정하지만, 그걸로는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열게 만들기는 힘들 것 같다. 어렸을 땐 IT 기자가 되어 CES에 취재하러 가는 게 꿈이었던 적도 있는데, 이젠 이 과잉 기술에 감탄은 커녕 실소만 나온다. 도대체 그걸 어디다 쓰라고?

물론 쓸데없는 기술도 언젠가는 도움이 된다. 버블이 생겨나는 시기에 혁신도 따라오는 것처럼, 쓸데없어 보이는 기술에 대한 투자가 미래에 생각지도 못한 혁신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혁신이 과연 소니와 파나소닉의 것일까? 궁금할 따름이다.

For whom the 3D-TV turns?

라스베거스에서 열리는 CES 2010에 와 있습니다. 정식 쇼는 이곳
시간으로 내일 열리는데,(이 글을 쓰는 지금은 6일 오전입니다. 한국보다 17시간이나
늦죠…) 오늘부터 프레스 대상 행사가 열리기 시작했으니 사실상 저같은 기자
입장에서는 오늘이 개막인 셈입니다.

 

이번 CES에선 3D-TV가 화두라고 합니다. 삼성전자나 LG전자 모두
3D-TV, 3D-TV 강조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소니와 파나소닉도 별로 다르지 않은
모양새입니다. 세계의 온갖 주요 TV 메이커들이 모두 3차원 입체영상 속으로 빠져든
모양새입니다. 이렇게만 보면 2010년의 가장 큰 화두가 3D-TV를 통한 입체영상 콘텐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게다가 영화 ‘아바타’가 세계적으로 흥행 기록을 새로
써나가는 중인만큼(아직도 한국에선 3D 상영관의 주말 예약이 쉽지 않다더군요) 관심도
계속 늘어날 겁니다.

 

그런데, 일단 저부터 의문이 듭니다. TV 교체주기가 얼마나 되시나요?
제 기억에 우리 가족은 적어도 5년, 길면 10년 이상 TV를 썼던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진 TV는 신혼살림 장만할 때 샀던 40인치 LCD TV입니다. 충분히 크고, 충분히 화질이
뛰어납니다. 지난해 최신 LED TV를 사셨던 분들은 저보다 더 오래 쓰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산 TV는 약 200만 원 정도로 기억하는데 지난해 그리도 잘 팔렸다던 LED
TV는 같은 크기라면 가격이 두배 가까웠으니까요. 이런 TV를 최근 몇 년 간 충분히
구입하셨던 소비자들께서 새로 3D TV를 살 이유가 있을까요?

 

마침 뉴욕타임즈 블로그에 비슷한 주제의 글이 실렸습니다. "소비자는
정말로 3D-TV를 원할까?
"라는 글입니다. 장기적으로야 3차원 영상이 대세일거란
데 동의하지만, 적어도 앞으로 2-3년 동안 맥주 마시며 햄버거라도 먹으려면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해야하는 3D-TV를 거실에서 쓸 거라는 낙관적인 전망은 섣부르지 않느냐는
겁니다. 마지막 결론이 재미있습니다. 아이폰이 나올 때, 최신 비디오게임기나 획기적인
디지털카메라가 나올 때마다 그렇게 웅성거리던 IT 마니아들이 웬일인지 3D-TV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겁니다. 얼리어답터조차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3D-TV의 원년이란
뜻이죠.

 

2010년이 3D-TV의 해가 된다면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우선 TV 제조업체입니다. 값비싼 최고급 제품을 마케팅할 수 있고 교체수요를 빨리
이끌어낼 수 있으니 당연히 이익이죠. 3D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거대 영화사나 방송국
등 콘텐츠 업체도 도움이 됩니다. 대신 소형 콘텐츠 제작사들의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
겁니다. 플레이스테이션3가 나왔을 때 소형 게임업체들이 "우리는 저 엄청난
3차원 게임 못 만든다,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우리는 다 말라죽을 것"이라
걱정했던 기억이 납니다. 최근 몇년 사이 TV의 교체수요가 엄청나게 일어난
이유는 2002년 이후로 브라운관 TV의 발전에 한계가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LCD는 아직
그렇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미 사람들은 TV를 많이 바꾼 상태입니다. 3D TV가 얼마나
소비자들의 눈을 잡아끌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