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의 균형

일에서 성공하려면 밤낮없이 일만 생각하는 일 중독자가 돼야 할까요? 일과 삶의 균형을 갖춰야 진정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도대체 얼마나 일하는 것이 성공을 위한 길인지 궁금해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경영의 신’ 취급을 받는 GE의 CEO 잭 웰치는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이란 말은 없어요. 오직 일 또는 삶 사이의 선택(Work-Life Choice)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지지요.”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잭 웰치는 매년 20-70-10 규칙이라는 성과평가 방식을 통해 하위 10% 직원을 잘라내고, 성과를 못 내는 자회사를 문 닫아버리길 꺼리지 않던 무자비한 최고경영자였으니 할 수 있는 소리였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기업들은 당연히 다른 얘기를 합니다. GE 못잖게 미국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100년 기업’으로 IBM이 있습니다. 이 회사는 직원들을 위해 무엇이든 해주려고 듭니다. 엄마 직원을 위한 멋진 탁아소는 기본이고, 자녀의 명문대 진학을 돕는 ‘입학상담사’를 회사가 고용해 주기도 하죠. 회사에 나오지 않고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건 기본이고, 아이의 하교 시간에 맞춰 부모가 퇴근 시간을 자율적으로 설정할 수도 있습니다. 이 회사에서는 “직원이 가족에 대한 잔걱정에 신경쓰다 일에 대한 집중력을 잃는 게 회사에겐 더 큰 문제”라고 얘길 하죠.

IBM의 직원 탁아소

세상에 ‘올바른 방식’이란 건 쉽게 찾기 힘든 파랑새와 마찬가지입니다. 각자 자신의 처지에 따른 선택이 있는 법이고, 어쩌면 우리 옆에 있거나 혹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일과 삶의 균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잘 살기 위해 일하지만 때때로 일이 너무 좋은 사람들은 그 일을 하기 위해 살아가기도 합니다.

과연 이 두 방법 가운데 어느 하나만이 정답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걸까요? 성공한 기업 대부분은 초기에 직원들이 하루 16시간 씩 일하면서 일주일에 100시간도 일했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주말을 포함해 잠 자는 시간을 빼놓고 모든 시간을 일에 쏟는 이같은 방식을 누구나 따라갈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그러니 과연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 걸까요?

최근의 경향은 단연 일과 삶의 균형에 손을 들어 주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근로자를 착취하는 전근대적인 기업 문화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으니까요. 특히나 최근 성공한 IT 기업들은 ‘꿈의 직장’ 수준이라는 근무 조건을 갖추려고 경쟁적으로 노력하면서 이런 경향에 불을 붙였습니다. 구글은 공짜 점심을 제공하고 회사 안에 수영장을 갖춰 놓고 있으며, 페이스북은 직원들의 빨래를 대신해주고 애완동물과 함께 출퇴근해도 된다고 하죠. 이런 상황에서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기업은 이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좋은 인재를 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늘어났지요. 이제는 더이상 어떤 기업도 잭 웰치처럼 일과 삶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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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안에 있는 인공으로 물이 흐르는 수영 트레드밀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됐을까요? 천만에요. 문제는 여전했습니다. 여전히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은 일터에서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남성 직원들의 행복도가 올라간 것도 아닙니다. 회사는 탁아소를 제공하고, 재택근무 제도도 도입했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지난해 영국의 글로벌 컨설팅업체 에른스트앤영은 대규모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기업들이 제공하는 일과 삶의 균형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를 물어본 것이죠. 그 결과 많은 회사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잡기 위한 재택근무와 탄력근무, 탁아소 운영 등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정작 직원들이 이런 제도에 대해 만족한다는 대답은 겨우 절반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이 조사팀은 “일과 삶의 균형이란 단순한 신화에 불과하다”는 도발적인 결론을 냅니다. 이 표현 자체가 직원들의 욕구를 만족시켜주지도 못하고 삶을 개선하지도 못한다는 내용이었죠. 이 조사는 많은 ‘일 중독자’들의 지지도 얻었습니다. 사실 일 중독이라는 표현 자체가 편견에 가득찬 표현이라는 얘기였죠. 일 중독이란 일을 하는 게 너무 좋아서 생활을 돌보지 않고 점점 일에만 빠져 들어 건강도 해치고 바람직한 가정생활이나 사교 활동마저 포기하는 경우를 뜻합니다. 하지만 정작 일 중독으로 불리는 사람들을 한 번 떠올려 보세요. 마약 중독이나 알콜 중독과도 비슷한 이런 극단적인 경우에 빠진 사람들은 극히 드뭅니다.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은 건강 관리에 더 노력하고, 재충전을 해서 더 일하기 위해서 가정에서의 행복도 소중하게 여깁니다. 이런 반론에 따라 조사팀이 내린 결론은 일과 삶의 균형이 아니라 ‘일과 삶의 통합’이었습니다.

일과 삶의 균형이란 말은 그 표현 자체가 ‘일은 나쁜 것’이고 ‘삶은 좋은 것’이란 전제를 깔고 있다는 반성을 한 것이죠. 이 표현에는 일은 하면 할수록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라는 편견도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소명의식을 느끼는 보람찬 일을 통해 인생의 만족도를 높입니다. 일이 잘 되면 행복해지니까요. 그렇다면 일은 생각처럼 나쁜 것이 아니라 삶에 좋은 것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일을 하는 시간을 늘이고 줄려서 삶이 행복해질까요? 조사팀의 연구에 따르면 근무 시간이나 회사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느냐 없느냐의 유무가 개인의 행복감에 주는 영향은 사람에 따라 10%대에서 70%대까지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즉 제도는 행복과 별 관계가 없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맡은 일에 대한 만족감이 행복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그렇다면 맡은 일에 대한 만족감은 어떻게 늘어날까요? 물론 직업 선택과 직장에서의 역할 등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그런데 이는 회사가 직원들을 위해 쉽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직원 개개인이 평생에 걸쳐 노력하면서 찾아가야 할 문제이기도 합니다. 반면 상대적으로 쉬운 방법도 있었습니다. 바로 리더들이 사생활과 가정 생활에 대한 얘기를 공적인 자리에서 발언하는 것입니다. 아이 얘기, 가족 얘기, 취미 얘기 등을 CEO와 임원들이 직장에서 거리낌없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얘기를 회사에서 하는 사람들은 프로페셔널하지 않다고 여기는 분위기만 해결되어도 업무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뚜렷한 상관관계가 발견됐기 때문이죠.

실제로 페이스북의 최고운영책임자(COO) 셰릴 샌드버그는 엄마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바쁜 기업의 최고 임원으로 살아가는 법을 들려주고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녀는 오후 5시면 무조건 퇴근해서 아이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합니다. 물론 그렇게 아이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이가 잠이 들면 다시 업무에 복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삶이 힘들어도 보람있다는 얘기를 회사에서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거리낌없이 하죠. 구글의 초기 멤버였고 지금은 야후의 최고경영자(CEO)인 마리사 메이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구글의 초창기 시절 근무할 땐 일주일에 100시간씩 일했다고 하지만, 지금 CEO가 된 메이어는 야후의 직원들에게 일과 삶의 균형을 찾으라고 강조합니다. 심지어 회사의 CEO로서 멋진 옷을 차려 입고 패션잡지의 표지모델로 등장하기도 했죠.

보그 표지모델이 된 마리사 메이어
보그 표지모델이 된 마리사 메이어

무엇보다 이렇게 성공한 여성들이 보여주는 가장 큰 특징은 가정과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공적인 자리에서 하는 것 또한 프로페셔널의 삶이라는 메시지를 직원과 사회에게 던진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엄마로서의 삶, 자녀들의 성장, 가족 안에서의 행복 같은 개인적인 삶을 공적인 자리에서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습니다.(심지어 회사에서 엉엉 운 얘기 같은 것도 드러내놓고 합니다.) 이 부분이 사실 오늘날 글로벌 기업의 가장 큰 변화이기도 합니다.

성공한 여성들은 이제 더 이상 가정 이야기를 감추지 않습니다. 우리 팀장의 아이가 학교 축구 팀에서 주전 선수가 된 일은 국회에서 기업 법인세법 개정안이 통과된 일 만큼이나 중요한 일로 받아들여집니다. 즉, 이제 기업의 잘 나가는 직원들도 사생활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일과 삶의 통합이란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개인의 삶이 직장에서의 삶 만큼 중요하다는 데 대한 모두의 동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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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그 모든 이야기 #1

오늘(22일) 스티븐 레비 인터뷰가 신문에 실렸다. 이 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존경은 전에도 한 번 따로 쓴 적이 있는데, 직접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하며 든 생각도 기존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글은 언제나 그 사람의 영혼을 반영하게 마련이다. 무엇보다 이번 인터뷰의 계기가 된 건 1년도 지나서야 국내에 번역돼 나온 그의 책 인 더 플렉스 In the Plex였다. 2년 동안 구글 내부를 마치 구글 직원이 된 것처럼 돌아다니면서 쓴 책이니 기대를 모으기도 했지만, 막상 읽으면서 느낀 건 치우침 없는 평가였다. 기업의 탄생 순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단 한번도 혁신적이지 않았던 적이 없던 구글이 ‘페이스북’이란 경쟁자 앞에서는 따라쟁이처럼 꽁무니를 좇아야만 했던 모습이 신랄하게 비판되고 있고,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가 기업의 핵심가치면서도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중국 정부의 검열 요구를 받아들였던 이율배반적인 상황과 당시의 고뇌 또한 진솔하게 소개된다. 구글을 이해하는데 이만한 책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쉽게 나오긴 힘들 거라 생각한다.
책을 읽은 독후감을 몇 차례에 나눠서 쓸 생각인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책 자체가 워낙 길다. 책을 읽으면서 정리해 두고 싶어서 접어두었던 부분들을 정리하는 것 만으로도 분량이 만만치 않다. 그리고 신문에 실린 인터뷰는 레비와의 대화를 반도 소개하지 못했다. 1600자 분량 제한을 두고서 기사를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버리기 싫은 얘기들 가운데 뭔가를 버려야만 할 때는 더더욱. 그러니 그 얘기들도 함께 소개할 예정이다. 결국 이번에도 다소 지루한 구글 이야기가 이어질 수밖에 없을 듯.

우선,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어서 모든 걸 다 창조해내는 것 같은 구글이 남들에게 배워온 것들을 알게 됐다.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던 것들인데 대표적인 게 20% 법칙이다. 많은 사람들이 ‘구글의 일하는 문화’로 아는 20%의 개인 업무 시간을 떼어내 자신을 위한 일에 활용하는 문화는 구글이 만든 게 아니다. 원래 3M과 HP(오늘날에는 전혀 혁신적이지 않아보이는)에서 도입했던 제도인데,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포스트잇이 이 제도에서 태어난 3M의 히트상품이다.

구글이 자신들의 번역 기술을 자랑할 때 늘 하는 얘기가 바로 “우리는 외국어를 몰라도 그 언어를 번역한다”는 얘기다. 서로 다른 언어를 이해하고 두 언어 사이의 법칙을 조사해 번역기를 만드는 대신 구글은 동일한 내용을 두 가지 이상의 언어로 기술한 유엔 공식문서 같은 자료를 수집한다. 그리고 이런 문서의 문장과 단어를 서로 비교한다. 이렇게 비교한 데이터를 잔뜩 쌓아놓고 통계적으로 분석한다. 예를 들어 동일 문서의 같은 위치에서 “Hello”와 “안녕하세요”가 반복된 경우가 많다면 이 두 말이 동일한 뜻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이다. 구글은 그렇게 언어는 모르지만 번역은 할 수 있는 통계번역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게 구글의 독창적인 생각이 아니었다. 알고보니 1980년대 후반, IBM이 이렇게 번역기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연구개발을 진행하던 기술이었다. 하지만 IBM은 연구를 더 이상 진행시키지 못했다. 이렇게 많은 공식문서를 비교하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월드와이드웹이 보편화돼 인터넷으로 수많은 언어의 공식문서를 긁어올 수 있게 된 구글의 시기에 와서야 통계번역을 위한 재료가 쌓인 셈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역시 구글은 인터넷이 만든 회사다.

초창기 구글 검색의 핵심 경쟁력은 ‘페이지 랭크’였다. 마치 학술논문에 많이 인용되는 논문이 중요한 논문인 것처럼 하이퍼링크가 많이 걸린 웹문서가 중요한 문서라는 논리였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웹을 거대한 학술논문 모음집으로 본 덕분에 비슷한 시기의 다른 검색엔진을 압도했는데, 그 때 미국 동부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MIT의 존 클라인버그였다. 그는 IBM 연구소에 취업했는데, 링크가 많이 걸린 웹페이지가 중요한 문서라는 생각을 해냈다. 1996년의 일이었으니 구글과 아주 비슷한 시기였다. 그는 당시 연구소를 찾아오는 IBM 임원들에게 클라인버그는 최대한 열심히 자신의 연구를 시연했다. 하지만 IBM 임원들은 “그건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의 거대 IT 기업이 ‘한낱’ 웹페이지의 링크 따위나 연구하는 한가한 일을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었다. 1997년 클라인버그는 래리 페이지를 만났고, 1999년과 2000년에는 구글 입사제안도 받았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그냥 코넬대에서 연구를 하면서 훌륭한 학자로 살아가고 있다.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도 페이지 랭크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학술논문이야말로 웹이라는 생각 말이다. 이 사람은 링크와 앵커텍스트(중요한 키워드)의 빈도로 연관성을 계산하는 검색방법을 만들어냈고 특허도 냈다. 이 기술은 ‘랭크덱스’라고 불렸다. 이 기술을 개발한 사람의 이름은 리옌홍, 그가 세운 회사가 중국 최대의 검색업체 바이두다. 페이지랭크 같은 기술의 전제 조건은 웹 전체를 색인으로 만들어 저장할 수 있는 거대한 시스템의 존재 유무다. 그래서 구글은 처음 페이지랭크를 만들고 나서 하드웨어 인프라 확장에 모든 신경을 썼다. 반면 클라인버그에겐 그런 자원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포기했다. 리옌홍은 이 기술을 만들 땐 미국 다우존스에서 일했지만 미국 기업은 기술의 미래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중국으로 돌아가 바이두를 세웠다. 당시 한국 기업들은 색인이 지나치게 생성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해 ‘검색 등록’을 받았다. 야후 같은 기업의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은 국내에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얼마전에 이 블로그도 한 번 검색 등록이 거부돼 색인 생성이 제한되기도 했고. 하여튼 오늘날 야후는 한 때 구글을 인수할 뻔 했다가 지금은 구글과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으로 찌그러들었다. 그리고 구글 직원이 CEO로 부임해 회사 부활을 이끌고 있다. 아이러니다.

구글은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투자자에게 복잡한 회계 문서 대신 쉬운 평단어로 작성한 편지를 쓴다. 구글이 어째서 특별한지를 일반인의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다. 멋진 방식이지만 월스트리트 ‘전문가’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건 실리콘밸리 방식이라서 인기를 끌었다. 얼마 전 페이스북도 상장을 앞두고 마크 저커버그가 ‘해커의 길’이라며 쉬운 단어로 된 편지를 써서 투자자들에게 보낼 정도였다. 래리 페이지와 마크 저커버그의 편지를 보면 공통점이 있다. “돈은 좀 덜 벌어도, 우리는 우리가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하겠습니다.” 생략된 말은 이렇다. “돈 벌라고 채근하지 말고, 우리한테 투자하면 손해를 볼 수도 있으니 알아서 위험을 감수하세요.” 그런데 이 멋진 편지쓰기는 사실 실리콘밸리 방식이라기보다는 오마하 방식이었다. 워렌 버핏이 버크셔해서웨이 주주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시작이었던 것이다. 컴퓨터 천재든, 투자의 천재든간에 천재들은 통한다.

애플에게 삼성이 얻은 것

결국 삼성전자도 뭔가 얻기는 얻은 셈이다. 미국 브랜드컨설팅 회사 인터브랜드는 해마다 ‘글로벌 베스트 브랜드 100’을 발표하는데, 올해도 나왔다. 결과는 애플의 브랜드 가치가 급상승해 2위. 삼성전자도 따라서 급상승해 9위. 한국 기업 가운데 ‘톱10’에 들어간 건 삼성전자가 처음이다. 물론 이전에도 삼성전자가 이 조사에서 늘 가장 브랜드 가치가 높은 한국기업으로 선정돼 왔다.

1위는 코카콜라. 하지만 내년은 모른다. 코카콜라의 브랜드 가치는 매년 비슷한 수준으로 조금씩 올라가지만, 애플은 아니다. 이번 조사에서 보면 애플의 브랜드 가치 상승은 ‘나홀로 하키스틱 곡선’이라고 할 만하다. 최근 몇 년 동안 상상할 수 없는 기세로 올라선 셈이다. 아래 그림은 인터브랜드가 Top Riser(최고상승기업)라고 발표한 회사들의 브랜드 가치 그래프다. 올해의 최고상승기업은 애플과 아마존, 구글, 삼성, 버버리인데(무려 4개가 IT 기업이다.) 매년 45도 각도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구글도 무시무시하지만, 애플의 하키스틱형 성장곡선은 입을 다물게 만든다. 아마존과 삼성도 놀라운데, 애플하고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닌 수준으로 보인다.

지금 수준의 브랜드 가치 상승이 이어진다면 내년엔 애플이 전통적으로 1위를 놓치지 않아왔던 코카콜라를 처음으로 1위 자리에서 끌어내릴지도 모른다. 사실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 조사의 3위는 IBM인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100년 기업의 전통’이 뭔가 좀 먹어준 듯한 기분이다. 지난해 IBM의 실적도 나쁘지 않았지만, 소비재들이 장악하는 브랜드 가치 분야에서 IBM이 앞서 있는 건 좀 의아하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만큼 B2B로 먹고 사는 이 회사가 브랜드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소비자 대상 마케팅에 공을 들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마트플래닛이라거나, 각종 빅데이터 버즈 등이 IBM이 만들어내는 것이니까.

구글의 올해 순위 4위는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브랜드가치가 엄청난 속도로 올라가는 건 맞는데, 톱3가 워낙 가치가 큰 탓에 순위변동이 없었다. 하지만 이 속도대로 꾸준한 성장이 안정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구글은, 내년에 애플이 크게 사업을 망치더라도 계속 승승장구할테고, 애플과 더불어 1, 2위를 나눠가진다고 해도 하나도 놀랄 일이 아니다. 참고할 건 이 회사가 불과 며칠 전 14번째 생일을 맞은 회사라는 점. 톱100 가운데 이렇게 어린 회사는 쉽게 찾기 힘들다. 약간 의외인 건 오라클인데, 18위로 Top Riser. 나는 개인적으로 이 회사가 올해 해낸 성취라고는 소송밖에 생각나질 않는다. 소송을 벌이면 브랜드 가치가 올라간다? 인터브랜드 조사에 대한 갖가지 불신이 이런 데서 나오는 듯.

하지만 비슷한 순위권의 Top Riser로 20위에 오른 아마존은 놀랍다. 사실 아마존이 글로벌 영업망만 공격적으로 늘린다면 이 회사는 내년이면 톱10에 들어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존 뿐만이 아니다. 올해 조사를 보면 구글, 애플, 삼성전자 외에도 기술 관련 기업들이 없으면 과연 인터브랜드가 이 100위 차트를 제대로 그릴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페이스북이 69위로 처음 순위권에 진입했고, 톱10만 봐도 애플(2), IBM(3), 구글(4), 마이크로소프트(5), 인텔(8), 삼성전자(9) 등 6개 기업이 기술 관련 기업이다. 인터브랜드는 이걸 비즈니스서비스, 인터넷서비스, 전자, 컴퓨터소프트웨어 등으로 업종구분을 두지만 그런 것 치고는 현대차와 페라리와 할리데이비슨을 모두 ‘자동차’로 묶어놓는 게 어색하기 그지 없다. 참, 그나저나 마이크로소프트가 5위로 떨어진 것 정도는 애교. 소니는 꾸준히 하락해서 40위가 됐다.

끝으로 애플과 삼성전자 사이의 비교. 삼성전자는 정말 잘 하고 있긴 한데, 2010년 두 회사의 브랜드 가치가 역전됐다. 이게 가슴아픈 일인지, 좋은 일인지는 사실 2010년 이후의 그래프가 말해주는 것 같다. 2010년 이전까지 공룡처럼 제자리걸음을 하던 삼성전자의 브랜드가치는 애플이 삼성전자의 경쟁상대로 지목받게 된 2010년 이후로 시동이 걸려 확 뛰어올랐다. 애플과 경쟁하는 게 힘들기는 하겠지만, 결국 이 경쟁 덕분에 삼성전자도 성공하고 있다. 역시 경쟁은 좋은 것.

과연 왓슨 때문에 시리가 조심해야 할까?

Siri Beware: IBM Envisions Watson for Mobile Business – Businessweek.
IBM이 만든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이 2015년까지 모바일에서 사용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는 얘기다. 따지고보면 왓슨은 오늘날의 제록스 PARC 같은 곳이 되어가고 있는데,(본인들은 이렇게 되면 큰일나기 때문에 계속 부인하지만) 그 이유는 IBM이 자랑하는 요크타운과 호손의 왓슨연구소가 계속해서 상업화 가능성은 낮지만 연구 자체는 매력적인 기술들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왓슨은 전에 이 블로그에서 다룬 바 있는 주제고, 나도 왓슨이 제퍼디에서 인간을 묵사발내기 전에 연습시합 준비하던 모습을 뉴욕에 가서 직접 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왓슨의 가능성이 얼마나 엄청난지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문제는 바로 그 대단함 때문에 모바일로 가겠다는 왓슨의 방향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보인다는 데 있다.

왓슨의 특징은 독립형 컴퓨터라는데 있었다.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은 채 컴퓨팅 파워를 엄청나게 사용해 마치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순간적인 판단을 내린다. 또 판단에 이르는 알고리듬도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설계돼 정답 대신 수많은 가능성을 두고 확률적 선택을 한다. 간단히 말하면 긴가민가 싶을 때 사람처럼 답을 ‘찍는다’는 게 왓슨이 훌륭한 점이었다.

이게 서비스에 응용되기 시작하면서 좀 달라졌다. 퀴즈쇼에 등장하는 왓슨은 정말 인간을 한없이 닮으려고 노력했지만, 금융회사나 보험회사, 의료기관에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왓슨은 확률을 제시만 할 뿐 찍는 능력은 더 이상 강조하지 않게 됐다. 기계가 직관적으로 찍어준 결과를 믿을 인간은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서 이 놀라운 컴퓨터는 그냥 좀 똑똑한 인공지능을 갖춘 평범한 지식 보조 기구가 됐는데, 이게 모바일로 온다는 얘기는 왓슨의 훌륭함을 더 줄이고, 평범함을 더 늘리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왓슨은 처리를 서버에서 하고, 결과를 모바일로 전송해주는 구글 검색엔진이나 애플 시리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한다.

문제는 서비스 레벨에서는 왓슨의 장점이 사라진다는 데 있다. 구글은 모두가 알다시피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색인을 실시간에 가까운 속도로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이를 검색해내는 게 핵심기술이다. 정확한 답을 찾기 위한 알고리듬이야 왓슨이 구글에 뒤질 게 없다고 쳐도, 이런 색인 및 검색 스피드에서 IBM은 경험이 없다. 시리의 장점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러운 자연어 처리 능력이다. 심지어 시리는 농담까지 던진다. 말도 안 되는 수많은 입력을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내는 아이폰 사용자들이 이런 능력을 시리에게 학습시킨다. 게다가 시리의 시작은 IBM보다 훨씬 앞서서 음성 관련 기술을 만들어오던 스탠포드연구소(SRI). 동부의 천재들이 학습 기능에 방점을 찍는 동안 서부의 괴짜들은 자연스러운 기계를 만드는데 열을 올렸다. 그리고 사람들은 알고리듬보다 UI에 더 열광하게 마련이다.

왓슨이 성공하면 좋겠지만, 왜 IBM은 스스로의 장점을 강화하는 대신 경쟁자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으로 운영되는 링 위에 올라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생각해 보면 이 회사는 소비자 대상 서비스를 만들 때마다 판판이 깨졌던 듯. 차라리 왓슨을 구글과 애플에 라이선싱하는 게 어떨까.

스스로 학습하고 생각하는 컴퓨터, 왓슨.


2010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中, HAL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

“데이지, 데이지. 뭘 어찌 해야 할지 대답을 들려줘. 나는 반쯤 미쳐버렸어. 당신을 사랑하니까….”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1968년 만든 영화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인공지능 컴퓨터 할(HAL)은 주인공 데이브에게 애원합니다. 데이브가 할의 모듈(부품)을 하나씩 뽑으며 시스템을 중단시켜 나가자 “그만둬요, 데이브”라며 점점 자신이 처음 만들어지던 초기 상태로 퇴행해 일종의 ‘어린 시절 부르던 노래’를 부르게 된 거죠.

이 노래의 이름은 ‘데이지 벨’입니다. 1961년 미국 IBM이 만든 컴퓨터 ‘IBM 7094’가 음성과 반주를 합성해 실제로 불렀던 노래였죠. 이는 ‘컴퓨터가 부른 최초의 노래’로 기록돼 있습니다. 할의 기원이 IBM에 있다는 은유입니다. 뿐만 아니라 HAL이라는 이름 각 글자의 바로 다음에 오는 알파벳을 모으면 ‘IBM’이 됩니다. 1960년대의 IBM은 그렇게 ‘두려운 신기술’을 가진 첨단 기업이었습니다.


IBM 7094가 부르는 데이지 벨

하지만 이런 놀라운 컴퓨터를 만들어낸 IBM의 신화는 그동안 별로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1970년대 말 스티브 잡스가 개인용 컴퓨터인 ‘애플II’를 만들어 새로 생긴 시장을 휩쓸자 그때까지도 컴퓨터를 개인이 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던 IBM은 뒤늦게 이 시장에 뛰어듭니다. 그 뒤에는 운영체제(OS) 소프트웨어라는 건 그냥 ‘아웃소싱’하면 되는 거라고 안이하게 생각하다가 결국 MS-DOS를 IBM에게 판매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젊은 빌 게이츠에게 뒤통수를 맞은 뒤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철수합니다.

그 뒤 IBM은 조용해집니다. 주력 사업은 개인용 컴퓨터 판매 대신 기업에 대한 IT 컨설팅과 메인프레임이라는 기업용 컴퓨터 판매로 바뀝니다. 자연스레 일반 소비자의 시선에서 사라지게 됐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IBM은 엉뚱한 곳에서 다시 주목을 받습니다. 그들이 모두가 잊고 있던 할을 현실 세계로 불러낸 덕분입니다. 스스로 학습하고 생각하고 문제의 답을 찾아내는 인공지능 컴퓨터가 IBM에 의해 마침내 탄생한 셈입니다. 단지 이름만 ‘왓슨’으로 바뀌었을 뿐 왓슨은 할과 그다지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지난해 미국 뉴욕주 IBM 왓슨연구소에서 이 기계를 직접 취재한 일이 있습니다. ‘기계’라고 부르려니 약간 미안하네요. 당시 연구원 가운데 누구도 왓슨을 얘기할 때 사물을 뜻하는 ‘그것(it)’이라 부르지 않았거든요. 왓슨은 이 연구소에서 사람처럼 이름으로 불리거나 아니면 ‘그(he)’라고 불렸습니다. 약간 섬찟했지만 이런 호칭을 이상하게 여긴 건 오직 저뿐이었죠.

당시 IBM은 왓슨을 ‘제퍼디’라는 유명 TV 퀴즈쇼에 출연시키기 위해 연습시합을 벌이던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왓슨은 드디어 14일(현지시간) 제퍼디쇼에 출연합니다. 상대는 제퍼디쇼에서 74회 우승한 역대 최다 우승자 켄 제닝스, 그리고 ‘왕중왕’전에서 제닝스를 꺾은 역대 최다 상금 수상자 브래드 러터였습니다. 첫 대결에서 왓슨은 러터와 함께 5000달러를 벌어 공동1위가 됐고 제닝스는 2000달러밖에 못 벌었습니다. 이 대결은 사흘 동안 이어질 예정입니다.

그저 흥밋거리로 치부하기에는 왓슨의 의미는 생각보다 큽니다. 예전 기사에도 썼지만 정답을 찾아내기 위해 기존의 컴퓨터는 인터넷의 지식을 이용합니다. 말하자면 이런 방식의 인공지능은 교과서를 펼쳐놓고 ‘오픈북’ 시험을 치는 것과 유사합니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인터넷 인공지능에 해당하는 구글은 직접 정답을 찾아주지는 않지만 사람이 질문에 해당하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가장 관련있다고 스스로 판단한 결과를 맨 위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왓슨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구글은 인터넷을 검색하죠.

반면 왓슨은 독립된 개체입니다. 네트워크에 연결돼 있지 않은 채 새로 받아들이는 모든 정보를 학습하면서 지식을 키웁니다. 왓슨은 영화를 보고, 신문을 읽고, 스캐닝된 책을 탐독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받아들이는 정보를 쌓아두는 게 아니라 마치 사람이 지식을 구조화하듯 통계적 분류를 통해 지식을 재분류하고 관련 지식을 모읍니다. 질문에 빨리 답하기 위해, 즉 사람처럼 빠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죠. 기계가 매년 빠른 속도로 소형화되면서 동시에 성능이 높아진다는 걸 감안하면 왓슨은 몇 년 뒤 우리 옆에 다가와 스스로 생각하고 말을 거는 존재가 될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왓슨을 보면서 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스카이넷’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약간 잘못된 비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에 따르면 스카이넷은 쉽게 파괴되지 않는 네트워크형 컴퓨터입니다. 한 무더기의 데이터센터를 폭파시켜도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곳의 데이터센터에서 복원된다는 점에서 스카이넷은 오히려 거대한 클라우드 컴퓨터인 구글에 가깝죠. 반면 왓슨은 사람처럼 생각하고 존재하며 물리적인 이동도 가능한 개별적 존재입니다. 스카이넷이라기보다는 미래의 인류가 다시 프로그래밍해 어린 시절의 존 코너를 지키기 위해 과거로 돌려보낸 ‘터미네이터2’에 등장하는 아놀드 슈왈제네거에 더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기계가 지능을 갖고 사람과 대립하는 식의 미래까지 상상하는 건 아닙니다. 아직 우리의 기술은 제약이 많습니다. 설악산 대청봉 등반이 목표라고 친다면 이제 겨우 속초에 도착한 수준이라고 할 정도죠. 왓슨연구소에서 취재를 도와줬던 에릭 브라운 박사는 “왓슨이 사람의 두뇌를 흉내내 고안된 프로그램이라는 건 맞지만 사람과 비교하면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은 수많은 정보를 의식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무의식에 저장해 둡니다. 그리고 무심코 흘려보냈던 정보를 필요한 순간에 놀랍게 끄집어내죠. 우리는 그 정보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는 인간의 뇌에서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왓슨은 이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왓슨은 받아들여야 할 정보를 철저히 의식적으로 선택한 뒤 한 번 선택된 정보는 100% 흡수합니다. 사람의 뇌는 끝을 모르는 용량으로 엄청난 지식을 무의식에 옮긴 뒤 이를 순간적으로 꺼내어 활용하지만 왓슨의 저장공간에는 명확한 물리적 한계가 있고 이를 제 때 꺼내어 쓰기 위해 엄청난 처리속도의 프로세서를 쓰면서도 수 초의 처리 시간이 필요해지는 것이죠. 다만 왓슨이 사람보다 나은 점도 있습니다. 사람의 기억은 수없이 왜곡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이죠. 또 번득이는 영감이 문제를 해결하는 주요 능력이긴 하지만 떠오르지 않는 영감을 며칠이고, 몇달이고 기다려 본 사람들은 차라리 왓슨처럼 기억의 저장장치를 하나하나 훑어보고 싶어질 지도 모릅니다. 왓슨은 건망증을 모르니까요.

참, 여담인데, 이 모든 왓슨 이벤트로 가장 큰 덕을 본 사람은 누구일까요? 왓슨을 개발한 완슨연구소의 데이빗 페루치 박사? 갑자기 제퍼디쇼에 다시 불려나온 켄 제닝스와 브래드 러터? IBM CEO인 새뮤얼 팔미사노? IBM 사람들은 왓슨 이벤트를 만들어낸 PR팀의 마이클 로런이 가장 덕을 본 게 아닐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원래 왓슨은 페루치 박사팀이 10년 정도 연구해 오던 인공지능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였거든요. 이걸 제퍼디쇼에 내보내자고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바로 로런이었다고 합니다. ‘스타’가 된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