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는 과연 일자리를 줄일까?

대선이 시작되면서 IT라고 영향을 받지 않을리가 없다. 공인인증서 제도는 어찌할 거냐는 구체적인 질문부터 시작해서 옛 정보통신부 같은 IT 총괄조직의 설립에 대한 정부 기구 재편 논의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가장 화제가 되는 건 역시 일자리다.
박근혜 후보 쪽은 이렇게 말했다. “스마트 뉴딜을 통해 IT를 전통산업에 접목해 일자리를 만들겠다.” 그냥 무미건조한 얘기다. 하지만 ‘국민행복추진위원회 관계자’가 연합뉴스와 통화하면서 말했다는 “IT는 효율화를 통해 일자리를 줄이게 마련“이라는 얘기가 화제에 오르면서 IT와 일자리 사이의 관계도 논의 대상이 되고 있다.

IT는 일자리를 늘릴까, 줄일까. 손쉽게 내릴 수 있는 답은 당연히 IT 관련 일자리는 늘이고 다른 분야의 일자리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정도다. 물론 대체 관계에 있는 산업들은 IT의 발달에 따라 시련을 겪게 된다. 음악과 신문, 영화, 쇼핑몰, 지역 서점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면 이런 일자리가 줄어든다고해서 과연 전체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개별 산업과 업종은 늘 부침을 겪게 마련이고, 심지어 시장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사회 전체를 위협하지는 않는다. 사회가 그들을 제대로 흡수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해 7월에 나온 기사지만 지금 상황에서도 이 글은 꽤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 그래프부터 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성장도 둔화된 시대지만, 성장세보다 고용증가율이 훨씬 더 둔화된 시대다. 경제는 발전하는데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 이런 현상은 21세기 들어 극적으로 증가했다. 미국만의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이런 문제도 있다. 생산성 둔화와 일자리의 극적인 감소와 함께 사람들을 괴롭히는 건 실질소득의 문제다. 생산성은 계속 늘어나는데 도대체 그 과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2003년 이후 미국의 대학 졸업자 소득은 정체된 상태다. 물론 같은 기간 생산성은 끊임없이 올랐다. 고졸 학력의 소득은 더 떨어졌다. 생산성이 올라가면 소득도 올라가는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생산성 향상의 과실은 그 어느때보다 더 소수에게 집중된다.

이런 문제에 대한 원인분석은 대개 비슷했다. 기계가 사람의 일을 대신하기 시작했고, 글로벌라이제이션이 미국 내 일자리를 줄였다는 것이다. G2가 된 중국과 신흥국의 부상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설명하는 증거로 활용됐고 IT 산업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한 특정 산업 분야의 어려움은 이런 일이 곧 누구에게나 닥칠 일인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IT는 일자리를 없애지 않는다. 다만 조정할 뿐이다.

역사상 기술 발전은 늘 특정 분야의 일자리를 없애거나 줄여왔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여기에 저항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분산된 저항에 눈꺼풀 한 번 꿈쩍하지 않았다. 변화는 늘 속도를 줄이는 법 없이 몰아닥쳤고, 적응한 사람들은 살아남고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괴로워했다. 이게 사실 자본주의가 풍요를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지금이라고 딱히 이런 근본적인 방식이 달라졌을리 없다. 하지만 달라진 게 한 가지 있다. 기술 발전의 속도다. 무어의 법칙(18개월마다 프로세서의 성능이 두배로 발전한다는)이 등장한 뒤 이 법칙은 계속 유지돼 왔다. 컴퓨터의 발전 속도는 놀라웠고, 지금 우리가 들고다니는 스마트폰은 20년 전 연구소에서나 쓰던 값비싼 고성능 워크스테이션보다도 성능이 더 뛰어나다. 소프트웨어 알고리듬의 발전도 놀라워서 이제 IT는 거의 모든 산업분야를 다 혁신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기술 발전 앞에서 재교육을 통해 적응해 나가던 사람들이다. 개별 인간과 한 사회의 적응 속도라는 건 물리적인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기하급수적인 발전은 이 물리적 한계를 돌파해버린 상태다. 마치 물체가 음속의 벽을 돌파해 움직일 때 나는 소닉 붐(sonic boom)처럼 사회 곳곳에서도 한계를 견디지 못하는 굉음이 들린다. 그래서 지금은 공황의 시대나, 불황의 시대라고 설명하는 것보다는 인류 최대의 구조조정기라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불황을 극복하는 방법은 인위적으로 일자리를 늘리고 소비를 진작시키는 방식이다. IT가 일자리를 늘리고 줄이는 변수라고 생각한다는 건 이를 통해 경기가 살아나고 사람들은 지금까지 하던 일을 하던 방식대로 더 열심히 하면 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 불황이 아니라 구조조정이라고 생각한다면 극복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이제 우리는 하지 않을 일은 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는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IT가 과연 일자리를 줄일까? 질문이 잘못됐다. 일자리는 IT 때문에 줄어들기도 하고 늘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국가 경제를 생각하는 지도자라면 사람들에게 일자리가 생기는 곳으로 빨리 옮겨가는게 중요하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던져야 하는 게 아닐까.

씁쓸한 IT 대한민국, 그 후 1년

지난해 7월 말, ‘씁쓸한 IT 대한민국’이란 글을 이곳에 썼습니다. 당시 미국에다녀와서 든 생각을 쓴 얘기였는데, 그 뒤 1년 여가 지났습니다. 최근에 다시 미국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비교도 쉬웠던 것이 다행히 지난해 갔던 미국 동부에 또
갈 기회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지난해만 해도 한국은 정말 위기같아 보였습니다. 아이폰같은
건 들어오지도 않았고, ‘IT강국’이라곤 하는데 도대체 우리가 뭘 잘하는지 저도 답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물론 초고속인터넷 인프라는 여전히 뛰어났고, 삼성전자도
여전히 잘 나갔지만, 그게 전부였습니다. 여전한 것들만 지키려는 나라에 발전이란
건 없게 마련이었죠.

 

미국 얘기부터 한 번 해보죠. 지난해 그 변화의 속도에 놀랐던 것 그대로, 미국은 지난 1년 동안 엄청나게 변했습니다.
미국의 시골은 이제 브로드밴드가 없는 곳을 찾는 게 더 힘들 정도가 됐습니다. 지금
미국인들은 초고속인터넷이 자신의 아이들을 어떻게 다른 인류로 바꿔놓는지 신기해
하며, 한편으로 이런 빠른 변화가 어떤 부작용이라도 불러오는 게 아닐까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보느라 분주합니다. ‘아이폰 열풍’은 곧 ‘스마트폰 열풍’으로 이어져
대부분의 공공시설과 서비스는 무선인터넷을 위한 모바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피자를 주문하려면 "우리 레스토랑에 대한 평가를 보세요"라는
문구와 웹주소 또는 QR코드가 담긴 메뉴를 받게 되는 거죠. 전통적으로 서빙하는
종업원에게 ‘추천메뉴’를 물어봐도 되지만, 이 가게에 다녀간 기존의 손님들이 남긴 추천메뉴도
볼 수 있게 되는 셈입니다. 말하자면 ‘소셜메뉴’인 셈이죠. 이런 게 어느새 뉴욕에선 흔한 일이 됐습니다. 또 작년까지만
해도 유료였던 스타벅스 무선랜이 어느새 무료로 공개돼 어느 도시에 가서도
미국 통신서비스에 돈 한 푼 내지 않은 한국인마저 무선 인터넷에 접속해 인터넷을
즐기고 한국에 인터넷 전화를 거는 게 어렵지 않은 일이 됐습니다. 가게에 들어가지
않아도 스타벅스 앞에서는 무선랜 신호가 잡히거든요.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건 한국의 변화의 속도입니다. 미국이 성큼성큼 앞서가는 사이에
한국에선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 번 지난 1년을 돌아보죠. 그동안 한국은 완전히
땅을 박차고 날개짓을 했습니다. 아이폰이 들어와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아이폰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들도 수없이 늘어났습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을 못 만든다고
몇 달 정도 욕을 먹더니 어느날 갑자기 스마트폰 ‘갤럭시S’를 내놓고 국내에서 단일기종으로 가장 많이 판매된 스마트폰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회사가 만든
갤럭시탭은 이제 ‘아이패드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거론됩니다. 이 얘기를 한국 언론이 하는
것도 아닙니다. PC월드
씨넷(비록
정식 뉴스가 아닌 기자 블로그지만)
같은 전통있는 잡지를 포함한 해외 언론들이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무선랜 접속포인트(WiFi AP) 숫자는 1년 만에 미친듯이
늘어나 면적당 설치비율로는 이미 세계 최대 수준입니다. 절대 설치대수로도 미국을
조만간 능가하리라는 예상입니다. 값비싼 3G 이동통신망을 통한 데이터통신도 어느새
미국보다 훨씬 싼
값에 무제한으로 풀려버렸죠. AT&T같은 회사는 오히려 무제한 데이터를 다시
거둬들이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한때 조용하던 한국의 벤처기업들도 다시 들썩들썩합니다.
몇년 뒤쳐진 탓에 당장 가시적인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지만 이미 게임빌, 컴투스
같은 회사는 모바일 게임 분야에서 해외에서도 이름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생활도
많이 변해서 뉴욕 레스토랑까지는 아니더라도 모바일을 이용하는 마케팅도 크게 늘었습니다.
대부분의 신문사와 방송국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앞다퉈 내놓고 있고, 휴대전화로
영화표를 ‘살 수는 있지만 불편하고 더 비싸서’ 안 사던 시절도 이제 끝났습니다.
오히려 궁금한 게 생기면 휴대전화로 바로바로 검색해보는 탓에 ‘디지털 치매’를
걱정한다는 사람들이 늘어날 정도가 됐죠. 사업성 없다고 투자를 더 안 한다던 와이브로는
엄청난 데이터 트래픽을 감당할 새로운 통신망으로 부각된 덕분에 다시 각광받고
있고, 이젠 더 이상 해외 수입 스마트폰의 기능을 통신사가 빼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아직도 부족한 건 많습니다. 한국
벤처들의 모임
에 가보면서 우리 벤처들의 수준도 외국 기업들과 크게 다르지
않겠구나 느끼면서도 이번에 뉴욕에서 보고 기사로도 소개했던 뉴욕테크밋업
같은 모임은 정말 부러웠습니다. 700석이 넘는 좌석이 행사 전에 미리 매진되는 그
뜨거운 분위기는 ‘시장의 규모’의 차이 때문이라고 넘기기엔 더 느낄 게 많았습니다.
게다가 이들이 ‘수익모델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으로 이 모임을 운영한다는
건 ‘문화충격’이었습니다. 비즈니스 모델을 남들이 베껴갈까 봐 수익모델에 대해
묻지 않는 게 아니었습니다. 단기적으로 수익을 낼 생각을 하고 벤처를 만들면 오히려
더 성공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었죠. 제가
참여했던 모임에서도 누군가 "수익모델은 뭔가요?"라고 질문했더니
관객석에선 바로 "부(Boooo)~"하는 야유가 쏟아졌습니다. 질문했던 사람이
당황해할까봐 사회자가 "이 행사에 처음 와서 그런 질문을 하셨으리라 생각하고
설명을 드리자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면 야유를 보내기로 약속한 바 있다"고
해명도 해주더군요.

 

그렇지만 우리가 언제 뭐든지 다 갖춰놓고 일을 했던가요. 한국이 미국처럼
땅이 넓고, 자원도 많고, 세계 최고의 대학을 갖고 있으며, 군사력도 강하던가요. 그런
천혜가 없어도
지금까지 어려운 환경에서 꾸준히 발전해 온 게 이 나라입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열심히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놓으며 일한 아버지 어머니 밑에서 성장했죠. 지난 1년은
아직 더 갈 길이 남아있지만 몇 년 간의 격차를 순식간에 크게 줄여놓은 1년이었습니다.
지나고 돌아보니 한국은 그렇게 빠르게 살고 있었죠. 그래서 한국 사람이라는 게
참 자랑스럽습니다. 모두들 즐거운 추석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