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 and Frequ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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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이 발발한 1936년의 스페인은 여전히 농업 국가였다. 게다가 대공황이 미국은 물론 유럽대륙의 경제까지 엉망으로 만들어서 내정도 극도로 불안했다. 정치세력은 무정부주의자부터 왕당파에 이르기까지 극단적으로 분열돼 서로 대립하고 있었고 모로코에선 프랑코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킨다. 민주 정부를 세워 보겠다던 공화파의 편에 사회주의자들이 합세하자 인민전선이 구성됐고, 이는 이후 파시스트와 인민전선 사이의 스페인 내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내전은 곧 모두의 전쟁이 됐다. 농민과 노동자는 지주와 자본가를 상대로 싸웠고, 파시스트 이웃 국가였던 히틀러의 독일과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는 프랑코의 편을 들었다. 신생 사회주의 국가였던 소비에트 연방은 인민전선을 지원했고 파시즘의 광기를 우려한 유럽과 미국의 지식인들도 자원해서 내전에 참전해 인민전선 편에 섰다.

문제는 땅이었다. 땅과 자유. 발을 디디고 몸을 누일 곳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져야 하는 기본 권리 말이다. 그런데 스페인에선 이게 그렇게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무능한 왕정은 자유를 억압했고, 프랑코의 파시스트 정부도 자유를 빼앗아갔다. 땅은 지주와 교회의 소유였고,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늘 가난에 시달렸다.

프랑코와 지주, 그리고 교회는 땅을 자신들의 소유물로 여겼다. 교회의 땅은 신의 대리인인 자신들을 위해 세속 권력이 양도한 침범 불가능한 재산이었다. 지주들의 땅도 대대로 세습되어 온 재산이었다. 프랑코는 충실히 이런 질서를 지켜나가고자 했다. 이들에게 땅은 ‘우리 것’이었다. 하지만 농민들의 생각은 달랐다. 랜드앤프리덤은 인민전선이 파시스트로부터 수복한 지역에서 벌어지는 토지 분배 논쟁을 아주 디테일하게 긴 시간을 할애해서 보여준다. 땅은 누가 가져야 하나? 답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다. 땅이 필요한 사람이 가져야 했다. 이들에게 땅은 ‘우리 것’이 아니라 ‘필요한 자의 것’이었다.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결국 이들은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뤄낸다. 그리고 소련이 등장한다. 소련이 원하는 건 자신들이 파시스트에 맞서 싸웠다는 대의명분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이권이라도 챙기면 더 좋았다. 게다가 소련의 붉은 군대는 애초에 오합지졸인 인민전선 의용군들과 자신들이 동급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들에게 땅은 토론을 통해 합의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그냥 ‘당의 것’이었다.

길게 영화 얘기를 꺼낸 건 주파수 논쟁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LTE 통신망에 쓸 수 있는 신규 주파수를 새로 할당할 계획이라 통신업계가 시끄럽다. 시끄러운 이유는 간단하다. KT가 이번에 나오는 새 주파수 가운데 특정 대역을 낙찰받으면 별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갑자기 LTE 속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KT 가입자들만 좋은 일이 생기고, 경쟁의 균형이 깨진다. 그렇다고 KT에게 이 대역을 할당하지 않으면 모두 그대로다. 누구도 좋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걸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시각으로도 보고, ‘공정 경쟁을 저해하는 특혜’로도 본다. 그런데 구도를 조금 더 넓혀서 생각해 보자.

통신사들은 스페인 내전 당시의 지주 계급 같다. 자신들의 울타리 바깥은 볼 생각도 없고, 존재를 인정할 마음도 없다. 지주들끼리도 재산권을 두고 다툼을 벌인다. 하지만 땅은 늘 자신들의 것이다. 통신사의 주파수도 마찬가지다. 다툼은 벌이지만 이건 통신사의 전유물이다.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이외의 누군가가 이 다툼에 끼어들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소비에트 연방 같다. 통신사들이 싸움을 벌이는 걸 잘 관리하면서 ‘국민을 위했다’는 대의명분만 지킬 수 있다면 그만인 듯 싶다. 애초에 통신사가 아닌 누군가의 존재는 정부 또한 생각도 하지 않았다. 소련군이 인민전선의 의용군을 쳐다볼 맘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다면 인민전선은? 정말로 땅이 필요한 사람들은?

미국에선 주파수 경매에 구글이 입찰했던 적이 있다. 버라이즌이나 AT&T 같은 이동통신사가 통신망을 쥐고 타 사업자들의 진출을 꽁꽁 막았기 때문이다. 통화료는 비쌌고, 스마트폰 같은 건 쓸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직접 통신사를 차리겠다는 식으로 구글이 경매에 뛰어들었다. 통신사들은 강하게 반발했지만 구글은 거침없었고, 경매 참가자의 자격으로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에 낙찰되는 주파수는 낙찰을 받지 못한 사업자에게도 개방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구글의 메시지가 스마트폰으로 오가는데 통신사가 데이터 사용료 이외에는 한 푼도 구글이나 소비자에게 요구하지 못하게 된 것도 구글이 이렇게 경매에 뛰어든 덕분이다. 아이폰을 만드는 애플도 다르지 않았다. 버라이즌과 AT&T에게 통화료를 낮춰야 소비자들이 아이폰을 제대로 쓸 수 있다며 통화료 인하를 요구했다. 하지만 통신사들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러자 스티브 잡스가 “그렇다면 애플이 통신사(MVNO)를 차려서 통신 시장에 진출해 경쟁하겠다”고 통신사를 협박한다. 결국 AT&T가 먼저 두 손을 들고 애플이 원하는 요금제를 만들어 줬다.

이런 기업들이 바로 주파수가 필요했던 사람들이다. 땅이 필요했던 인민전선의 농부들처럼. 한국에서 NHN이 경매에 뛰어든다면 어떨까. 지금도 스마트폰에서 프로야구 중계를 고화질(HD)로 한다고 통신사들로부터 욕을 먹는데, 그냥 통신망을 하나 만들면 어떻게 될까. 카카오도 마찬가지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한국같은 곳은 없다”며 통신사들이 보이스톡을 차단하는 걸 ‘말로만’ 욕해봐야 그들이 눈 하나 꿈뻑하겠나. 그냥 자기 통신망에서 무료 통화 하면 명분도 되지 않나. 엔씨소프트나 넥슨은 또 어떤가. 온라인 게임이 망에 큰 부하를 준다는 소리도 이제 들을 만큼 들은 것 아닐까. SK텔레콤의 시가총액은 약 17조 원, KT는 약 9조 원이다. NHN은 약 13조 원, 엔씨소프트는 약 3.5조 원이다. 비교해 봐도 통신사보다 그렇게 작지도 않은 건 물론이고, 이익 규모로만 따지면 인터넷 기업들이 훨씬 크다. 뒤에 물러서서 말로만 떠들어봐야 얘기가 될 리 없다. 평생 펜대만 굴리던 유럽의 지식인들도 스페인에 가서 직접 총을 들지 않았던가.

땅은 주파수와 다르다고 할지 모른다. 글쎄? 사적 소유가 없어서?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자본주의 경제구역으로 늘 1위를 하는 홍콩에서도 땅은 모두 국가의 소유다. 대신 기업과 개인 등은 장기 사용권을 정부에게서 임대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라가 너무 작아서 이걸 개인 소유로 돌리고, 세습하게 놓아두면 홍콩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주파수도 똑같지 않나.

NHN과 카카오, 엔씨소프트 같은 회사들이 주파수 경매에 뛰어드는 게 불가능한 이유는 늘 이런 얘기를 꺼낼 때마다 100가지씩 듣는다. 구글이 처음 주파수 경매에 관심을 가질 때도 주변 사람들이 비슷한 얘기를 100가지 이상씩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누구도 아이폰이 이렇게 성공할 줄 몰랐을 테고, 구글이 세계 최대의 모바일 기업이 된 오늘날도 상상하지 못했을 테다. 울타리를 넘어서는 한국 기업들은 언제나 나오려나.

카톡-라인을 밀어내자?

스페인에서 열리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행사에 와 있다. 그런데 한국 기사를 보니 이석채 회장이 “카카오톡과 라인을 밀어내자”고 말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이상하다. 그런 얘기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물론 카톡과 라인이 통신사의 수익을 갉아먹는 회사라는 얘기는 했다. 그건 사실이니까. 기조연설에 그런 부분도 들어있었다. 기사가 잘못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런데 이 회장 얘기를 패널토론까지 들어보면 뉘앙스가 좀 달랐다는 걸 알 수 있다.
MWC 둘째날 기조연설은 도이치텔레콤, 에릭슨, KT, 그리고 바이버의 CEO가 돌아가면서 15분씩 자기 얘길 하고 함께 20분 정도 토론을 했다. 무료통화 앱을 만드는 바이버가 끼어들어 토론이 흥미진진해졌는데, 마지막 기조연설자였던 탤먼 마르코 바이버 CEO는 “혁신(innovation)과 상호호환성(interoperability)은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고 해서 논쟁이 붙었다.

“바이버 같은 기업은 혁신을 향해 달려가기 때문에 와츠앱, 스카이프와 상호호환을 신경쓰지 않는다. 혁신이란 곧 다른 기업과의 차별화이기 때문이다. 반면 통신사는 서로 다른 통신사와의 상호호환에 가장 신경을 쓴다. 차별화를 없애는 방식이라 혁신이 생기지 않는다. 통신사에게 유일한 차별화는 가격이고, 그건 저가 출혈경쟁으로 이어진다.”

새파랗게 젊은 앱 개발자가 이런 소리를 면전에서 해대니 당연히 통신사는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도이치텔레콤의 CEO 르네 오버만은 “상호호환이야말로 혁신이고, 바이버 같은 기업은 통신사의 이런 기술을 이해조차 하지 못한다”며 “정보보안도 못 지키고 개인정보 보호도 소홀한 기업이 혁신을 얘기하다니”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마르코는 “우리 최고보안책임자가 AT&T 통신망을 해킹했던 사람”이라며 맞섰다. 이 회장도 사회자가 의견을 물어 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차피 바이버는 물론 카톡이나 와츠앱 같은 회사가 문을 닫는다해도 어떻게든 그런 식의 비즈니스모델을 가진 새 회사가 나올 겁니다. 우리가 규제를 통해 이들을 막으려 해도 브로드밴드라는 건 이런 사업자들에게 이를 우회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거에요. 막으려고 해도 못 막습니다. 이들과는 협력할 방법을 찾아나가며, 이들이 못하는 서비스를 우리가 해야 하지 않겠어요?”

난 이게 ‘카카오톡과 라인을 밀어내자’는 얘기와는 다른 얘기라고 생각한다. KT를 딱히 편들거나 이 회장을 개인적으로 지지할 생각은 없는데, 이번 MWC에서 KT의 얘기는 확실히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유럽 통신사들의 옛날식 사고와 비교할 때엔 매우 진일보한 얘기였다. 물론 스마트폰 보급률이 아주 높은 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하루하루 온갖 비난과 싸워가야 하는 한국 통신사의 현실이 배경이 됐겠지만.

난 KT가 카카오톡보다 좋은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도 마르코와 비슷한 생각인데, 상호호환성은 차별화를 통해 이룩하는 혁신과는 반대방향을 가리키기 쉽다. 하지만 이번 MWC에서 통신사와 앱개발사, 인터넷 회사들은 으르렁거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뭔가 접점을 찾는 느낌이었다. 예를 들어 결제. 회원가입 후 신용카드를 등록해야 애플, 구글, 아마존 앱스토어를 쓸 수 있는데 이렇게 신용카드 정보를 자발적으로 알아서 입력하는 스마트폰 가입자가 전체 가입자 가운데 얼마나 될까? 오히려 통신사가 통신요금에 합산해서 대신 과금해주고 수수료를 받아주면 편하지 않을까? 구글이 구글플레이를 한국에서 처음 시작할 때 통신사 지불대행 서비스를 요구하고 상당한 수수료를 통신사에게 지불했던 것도 이런 이유다. 결제는 앱개발사에게도 필요하고, 통신사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다. 이런 걸 서로 찾아내는 게 아마 통신산업의 미래가 아닐까.

판단은 어차피 각자 할 일. 다음은 이 회장의 키노트 내용이다. 짧은 영어로 인한 오역과 듣다가 손가락이 아파 받아적지 않은 생략이 존재하긴 하는데, 그래도 보도자료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다.

KT CEO Dr. Lee

이 자리에 서서 영광입니다. 세계에서 오신 여러분. KT는 상대적으로 작은 회사입니다. 우리는 글로벌 회사도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왜 여기 서서 말하고 있는 걸까요? 무슨 자격으로 ‘통신의 미래’를 얘기하고자 나섰을까요? 그건 제게 자신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KT가 처한 현실, 그리고 우리에게 비즈니스모델을 다시 부활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준 상황이 제 자신감의 배경입니다.

이는 어떤 측면에서는 우리가 최전선에 서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KT는 과거의 유산인 구식 통신망을 갖고 있는 회사입니다. PSTN(유선 시내전화망) 매출 비중이 컸죠. 그런데 이게 급격히 감소하고, 문자메시지(SMS) 매출도 마지막 통계로 기존보다 65% 하락했습니다. 제 체감에는 최근에는 75% 이상 감소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국에서 SMS를 이용하지 않기 때문이죠. 음성통화도 16%나 감소했습니다. 그 자리에 OTT(over the top, 통신망 위에서 사업하는 카카오톡 같은 유사통신사업자를 통신사가 부르는 용어) 업체가 엄청난 성공을 거뒀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성공했죠. 이들이 무선통신을 엄청나게 씁니다.

여러분, KT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전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이른바 All-IP 시대입니다. 유선통신때보다 훨씬 더 큰 변화가 무선에서 일어날 거에요. 세계 모든 지역이 변할 겁니다. 이 장소에 오기 전에 에릭슨의 리포트를 봤습니다. 50달러 미만의 스마트폰이 나올 거라고 얘기하더군요. 한국에선 이미 3분의2 이상의 휴대전화 가입자가 스마트폰을 씁니다. 한국에서 한 사람이 한 달 동안 쓰는 무선 데이터 양은 1.7GB에요. 2009년 초만 해도 1인 당 10MB를 썼습니다. 160배 늘어난 겁니다.

All-IP 얘기를 하는 게 이런 배경에서입니다. 1990년대 말, 유선 브로드밴드는 거대한 사이버공간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런데 통신사 대신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이베이, 네이버 같은 회사가 이 공간을 차지했죠. 통신사는 여기서 아주 작은 조각만 차지했습니다. 모바일에선 더 큰 사이버 공간이 생길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세계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갈 겁니다. 전자정부를 비롯해 수많은 다른 서비스 들이 이 공간에 등장할 거에요. 그런데 이게 커다란 인터넷사업자, 새로 번성하는 OTT에 의해 점유된다면 어떨까요?

지난 4년간 KT의 수익은 성장을 멈췄습니다. 반면 시설투자는 40억 달러에 이르렀죠. 모바일 데이터를 위한 망 투자 때문입니다. 또 경쟁은 심했고, 정부 규제도 심했죠. 이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통신사가 동일할 겁니다. 그런데 All-IP 시대에서는 이러닝, 이헬스, 이가버먼트 등이 모두 IP망으로 갈 겁니다. 우리는 이걸 가상재화(virtual goods)라고 부릅니다. 실물 재화(physical goods)에 대항하는 말이죠. 이게 세계 경제를 이끌어갈 테고, 이런 사이버공간에서의 가상재화 판매로 구글, 네이버 등의 사업자들이 돈을 벌고 있습니다. KT는 이런 시장에서 번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새로 확장된 가상 공간에서 우리는 르네(앞서 발표했던 도이치텔레콤 CEO)가 얘기했던 것처럼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구글은 가상재화의 시대에 최적화된 네트워크를 직접 준비하고 있습니다. 클라우드 컴퓨팅 등을 소프트웨어 공학 기술로 해결해나가기도 합니다. 통신의 경계로 들어오고 있어요. 그런데 통신사는 기존의 통신 경계, 인프라만 만들던 그 경계에 갇혀 있습니다. 경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는 것처럼 우리는 WAC(통신사 공동 앱스토어)을 만들려다 실패했습니다. 아마 제가 WAC 얘기를 꺼내면 그 단어 자체가 듣기 싫은 분들도 계시겠죠. 그런데 WAC 같은 가상재화 공동시장을 제안하면 맘에 들어하실까요? 아닐 겁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WAC은 비현실적이었습니다. 미들웨어를 하나 만들고 그게 성공할 거라 믿었으니 불구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상재화 단일 공동시장도 당연히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건 가입자라는 고객 기반이고, 그걸 나눠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타이젠, 파이어폭스 등 다양한 대안 OS도 지원해야 합니다. OASIS를 보세요. KT와 차이나모바일, NTT도코모가 함께 하는 서비스입니다. 2년을 했는데 우리가 작은 성공의 사례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이렇게 같은 아이디어를 갖고, 지역적 기반에서, 심지어 경쟁업체들이라 할지라도 합쳐가면서 빠르게 시장을 확대하고 가입자 기반을 늘리는 게 중요합니다.

지속가능한 방법이 있습니다. KT는 이미 혁명적인 All-IP 네트워크를 소프트웨어적으로 만들었습니다. 클라우드 컴퓨팅 역량도 갖췄습니다. 통신 사업이지만 경계를 넘어서려고 하고 있죠. 우리는 또 미디어 그룹으로도 변하고 있습니다. IPTV를 유선과 모바일 양쪽에서 서비스하고, 이런 기반을 이용해 사회의 교육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이러닝 등을 제공합니다. 컨텐츠 프로바이더 역할도 시작했죠. 그러니 이런 걸 확대해야 합니다. 여러분 글로벌 가상재화 시장을 키웁시다. 제 생각에 이건 옵션이 아니라 숙명입니다.

iOS6 요금폭탄 소동, KT의 책임

지난 토요일자 신문에 실린 기사를 통해 애플의 새 모바일 운영체제(OS) iOS6에서 팟캐스트를 통한 데이터통화 요금이 ‘요금폭탄’ 수준으로 생길 수 있다는 얘기를 썼다. 완전히 새로운 얘기는 아니고, 사실 검색해보니 이전에 몇몇 매체를 통해 소소하게 보도됐던 내용이기도 했다. 나만 뒤늦게 알았던 셈인데, 그래도 이게 문제라면서 비슷한 피해를 본 사람들의 사례까지 잔뜩 모아 제보한 독자가 있어서 안 쓸 수도 없었던 상황이었다.
기왕 제보를 받은 김에 자세히 알아보니 문제가 더 있었다. 국내 아이폰 사용자의 대부분이 KT를 통해 아이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인데, KT의 과도한 요금을 알리는 방식에 잘못된 점이 있던 것이다. 최종적으로 나간 기사에서는 지면 부족으로 이 부분이 불가피하게 줄어들어서 아쉬웠다.

문제의 현상 자체는 단순했다. 애플은 iOS6를 선보이면서 ‘팟캐스트’라는 앱도 새로 만들었다. 기존에 아이튠즈로 이용하던 그 팟캐스트가 마치 아이튠즈U나 비디오, 음악 등의 앱이 별도로 분리된 것처럼 따로 분리된 셈이다. 덕분에 팟캐스트에 접속하기도 편해졌고, 관리하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그런데 팟캐스트를 내려받을 때 분명히 무료인 와이파이 통신망에 연결한 상태였는데도 나중에 보면 아이폰이 자동으로 유료 이동통신망에 접속해 팟캐스트를 내려받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비디오 팟캐스트는 수십~수백MB의 용량을 갖는 것도 있어서 이건 꽤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본질은 단순한데 문제 원인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처음에야 팟캐스트 앱이 와이파이와 3G 연결을 혼동하는 버그가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그런 단순한 버그는 아니었다. 애플은 iOS6에서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설정’에 ‘Podcast’(팟캐스트) 항목을 따로 만들었고, 자동 다운로드시 ‘셀룰러 데이터 사용’을 못하도록 기본 설정을 해놓았다. 비싼 3G 통신망에 실수로 연결돼 통신요금이 많이 나오는 일을 막기 위한 배려였다. 그러니 일부러 3G로 팟캐스트를 받겠다는 무제한 요금제 고객 등을 제외하면 아무 설정도 하지 않은 평범한 소비자는 와이파이에 연결됐을 때를 제외하고는 팟캐스트를 받을 수가 없어야 정상이었다.

KT는 “애플이 iOS에서 와이파이에 30분 이상 연결되면 배터리 소모를 줄이기 위해 자동으로 3G 이동통신망으로 전환되도록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다양한 설명이 나와있다. KT 설명대로 배터리 소모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고, 접속을 유지해야 하는데 개별앱이 개발 단계에서의 실수로 인해 필요한 시간을 연장하는 값을 적는 걸 빼놓았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어쨌든 결론은 하나. 아이폰에선 30분 이상 와이파이에 연속으로 접속되는 게 어려운 경우가 존재한다. 사실 자동으로 팟캐스트 정도 되는 걸 내려받기 전에는 별 문제가 아니었던 설정이다.(OS 업데이트의 경우엔 애플 사람들이 직접 다양한 환경에서 테스트할테니 문제가 없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다보니 잠을 자는 도중에 30분도 넘게 내려받아야 하는 대용량 팟캐스트를 받고 있으면 문제가 생긴다. ‘요금폭탄’도 이래서 나왔다.

1차적으로 애플 탓이지만 이해가 안 갔던 건 KT의 요금 경고 방식이다. 올해 7월부터는 요금폭탄 우려를 막으려고 사용자가 약정요금 이상의 요금을 쓸 때 통신사가 이를 반드시 문자메시지로 알리도록 하는 ‘빌쇼크 방지법’이 시행됐다. 모든 통신사는 이 법에 따라 과다한 요금이 발생한 사용자에게는 바로바로 통신요금이 초과된 사실을 알려야 한다. 그런데 유독 KT만 예외적으로 오전 9시에서 오후 9시까지만 이를 알린다. 그러니까 밤 9시가 넘어서 데이터통화가 급증한다면 사용자는 다음날까지 아무런 안내도 받을 길이 없다.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밤 9시 이후로 과다한 통화료 발생을 ‘알리지 않는 게 디폴트’다.

그러다보니 출근길에 “새벽 1시에 데이터통화요금이 1만 원 발생했습니다.”, “새벽 2시에 데이터통화요금이 2만 원 발생했습니다.” 식으로 서너 건의 문자가 한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상황이 생겼다. 그야말로 폭탄이다. 무제한 데이터 요금이 아닌 사용자들은 한달에 보통 3만5000원에서 4만5000원을 내는 사람들이다. 그보다 더 낸다면 무제한을 쓸테니까. 이들에겐 매일밤 한달치 요금이 날라오는 것과 똑같은 일이 아침마다 벌어진 것이다.

KT는 이렇게 밤시간 문자메시지 발송을 그친 데 대해서 소비자가 스팸이나 광고성 문자가 밤에 오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스팸이나 광고 문자의 문제고, 과다요금 안내는 바로바로 알려줘야 한다. KT는 이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이달 8일부터 과다요금 안내를 24시간 시행하는 걸로 정책을 바꿨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8일 이후로는 문제가 사라진 게 아니고, 시스템 전환에 시간이 걸려서 아직은 일부 가입자에게만 24시간 안내가 적용된 상태라고 한다. KT 가입자 전체가 24시간 안내를 받으려면 시스템 수정에 시간이 한동안 더 걸리는 건 물론, 아직 언제 완료되는지도 확정되지 않았다.

요금폭탄 우려야 애플 문제가 있으니 SK텔레콤의 아이폰 사용자라고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적어도 SK텔레콤에서는 과다요금 청구안내를 24시간 제공했다. 그리고 SK텔레콤에게는 좀 부끄러운 얘기겠지만 이 회사에는 아이폰 사용자가 적은데다 이른바 ‘얼리어답터’도 적어서 팟캐스트를 듣는 사람 수도 적다. 그래서인지 SK텔레콤 고객센터에는 요금폭탄 관련 불만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어쨌든 문제는 통신요금이다. 소비자 탓이 아닌데도, 어디서도 돈을 돌려받을 곳은 없다. 이게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