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Submarine Web, 해저케이블

세계를 연결하고 있는 거대한 거미줄을 우리는 월드와이드웹이라고 부릅니다. 그 아래로 조금 덜 촘촘한 거미줄이 있습니다. 세계를 연결하는 바다밑의 거미줄, 해저케이블(submarine cable) 네트워크입니다. 우리가 구글과 페이스북을 더 많이 쓰고, 유튜브로 보는 영상이 늘어날수록 우리의 인터넷 환경은 해저케이블에 좌우됩니다. 아무리 한국 전체를 초고속인터넷으로 연결한다고 해도 국가간 인터넷 연결은 해저케이블이 99% 이상을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KT의 해저케이블 매설 선박이 입항해서 취재하고 왔습니다. 한국에 자주 들어오지 않는 배인데다 기후 사정 등으로 입항 날짜도 불규칙해서 서울에서 세월만 기다리고 있다가 “내일 모레 오라”는 말에 바로 거제도로 달려갔습니다. 덕분에 기사도 잘 나왔고, 해저케이블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지면에는 사진을 많이 못 실어서 아쉬웠는데, 남은 사진들을 좀 소개할까 합니다. 잘 찍은 사진은 KT에서 제공한 것이고, 못 찍은 사진은 제가 아이폰으로 대충 찍은 사진입니다. 위에 있는 첫 사진은 이번에 입항한 해저케이블 선박 ‘세계로’ 호입니다.
이 사진은 세계로 호의 함교(Bridge), 즉 조타실입니다. 다른 배와 달리 키를 움직이는 전통적인 바퀴 모양의 스티어링휠이 없습니다. 물론 요즘 배들은 예전 범선처럼 키를 돌리기 위한 스티어링휠이 필요하진 않지만 그래도 상징으로라도 존재하게 마련인데 이 배에는 그런 게 아예 없습니다. 대신 조이스틱처럼 보이는 저 장비만 있죠. 기본적인 구조의 차이 때문입니다. 해저케이블 매설선은 일반 배와는 달리 제자리에서 전후좌우로 미세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야 풍랑 등으로 항로를 벗어나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배가 파도 때문에 왼쪽으로 평행하게 30m 떠밀렸다면 일반적인 배는 제자리를 찾기 위해 길게 원을 그리며 돌아야 합니다. 추진력은 앞과 뒤로만 물을 내뿜는 스크루가 담당하고, 방향은 키가 잡으니까요. 하지만 세계로 호는 스크루가 다섯개입니다. 일반 선박처럼 뒤에 하나가 있고, 나머지 네 개가 마치 자동차의 바퀴처럼 배의 네 모서리에 놓여있습니다. 특히 이 스크루 다섯개는 다른 배의 스크루와는 달리 360도 회전이 가능합니다. 왼쪽으로 평행하게 30m 떠밀렸다면 스크루를 모두 왼쪽으로 향하게 둔 뒤 오른쪽으로 30m만 평행 전진하는 게 가능한 배입니다. 다른 배가 일반적인 제트기라면 세계로 호는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헬기와 비슷한 것이죠.

이건 세계로 호의 1/4 크기인 ‘미래로’ 호에 실려있는 해저케이블 매설로봇입니다. 이 로봇이 더 신형이라 조만간 세계로 호로 옮겨 실을 예정인데, 심해를 3m 깊이로 파고 그 안에 케이블을 묻은 뒤 그 위에 흙을 덮는 일을 합니다. 세계로 호는 한국 기술로 만든 선박이지만 아직 이런 로봇은 국내 기업이 직접 만들지 않습니다. 기술이 부족하다기보다는 채산성 때문이라고 하는데, 기존 고객을 확보해두지 못한 국내 기업이 이런 제한적인 소비자만 존재하는 틈새 시장에 뛰어들기에는 초기 투자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라네요. 현재 세계에서 세계로 호와 같은 일을 하는 해저케이블 선박은 약 40척 수준이라고 합니다.

세계로 호는 최근 3월 벌어졌던 동일본 대지진 여파로 끊어진 해저케이블을 수리하고 입항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케이블은 당시 끊어졌던 해저케이블의 일부입니다. 이런 케이블을 바다에서 끌어올려 지저분한 절단 부분을 깨끗하게 잘라내고 연결 장비로 새 케이블과 이어붙이는 일을 합니다. 이 작업을 하려면 바다 위에서 완전한 수평을 맞추는 게 필수적입니다. 마치 해저 유전을 개발하는 드릴십처럼 세계로 호도 복잡하게 구성된 밸러스트를 이용해 드릴십 수준의 평형을 유지합니다. 참, 저 케이블 가운데 제 힘으로 조금이라도 구부릴 수 있는 케이블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케이블은 실타래처럼 둘둘 말려 배 안에 저장됩니다. 이렇게 실을 수 있는 케이블이 무게로 4000톤, 케이블의 굵기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쓰는 해저케이블이라면 4000km 이상 가는 케이블도 한번에 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케이블의 두께 가운데 90% 이상이 피복입니다. 가운데에 들어가 수많은 비트를 실어나르는 광케이블 자체는 젓가락 굵기도 되지 않을 만큼 가늡니다. 여러 가닥의 광섬유로 이뤄진 이 광케이블이 실어나르는 데이터는 초당 테라비트 단위로 계산됩니다. 그 덕분에 엄청난 국제 인터넷 트래픽이 이 시간에도 바다밑을 흐르며 세계를 하나로 묶고 있는 것이죠.

끝으로 낚시바늘처럼 생긴 이 장비는 해저케이블을 끌어올리는 갈고리입니다. 바다에 이 갈고리를 떨어뜨려 끊어진 해저케이블을 건져올리는 것이죠. 어디가 끊어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해저케이블은 지정된 장소마다 접점을 만듭니다. 그리고 각 접점과 접점 사이에서 신호가 중단되는 곳을 파악해 끊어진 장소에 대한 신호를 구하죠. 이렇게 건져올리는 해저케이블은 가끔 거의 다 끌어올렸다가 놓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다시 가라앉는데 걸리는 시간만 하루에서 이틀… 다시 꺼내 올리는데 사흘 넘게 걸립니다. 이 낚시, 좀 대단합니다.

언젠가 한 번 이 일을 하는 분들 얘기를 기사로 다뤄보고 싶었습니다. 철도가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이 국경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데 있어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인프라가 바로 해저케이블이니까요. 최근 들어 해저케이블의 중요성은 더 커졌습니다. 런던과 뉴욕의 금융회사들은 0.00001초 단위의 시간을 경쟁자들보다 더 벌기 위해 자신들만 쓸 수 있는 해저케이블 전용선을 두 국가 증시를 연결하기 위해 설치하고 있고, 구글은 세계 통신망의 엄청난 대역폭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 기간통신사와 마찬가지로 직접 해저케이블 설치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해저케이블은 통신사들이 공동으로 투자하는 컨소시엄에 의해 건설되는데, 이 사업에 구글도 뛰어들어 돈을 투자하기 시작한 것이죠. 이 과정에서 한국에도 KT 같은 회사가 당장의 단기 수익보다 장기적인 통신인프라 확보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습니다.

광고

SK텔레콤으로 전향


결론부터 얘기하면, 아이폰 통화품질이 너무 나빠서 통신사를 옮겨봤습니다. 위약금 고스란히 토해내고 온갖 손해를 감수했죠. 적어도 KT 건물 내부에서는 펨토셀(초소형기지국)을 달든, 직원들에게 와이파이 사용을 강제하든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KT 기자실에서도 대책없이 끊어지는 휴대전화로 일을 하는 건 너무 괴로웠습니다. 게다가 이 회사는 “통신은 전력이나 수도 같아서 수요 관리도 해야 한다. 공급만 늘리라고 하면 하루종일 수도를 틀어놓은 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얘기만 반복했습니다. 소비자에게 “네가 좀 덜 쓰면 괜찮아 질거야”라고 말하는 식인데, 더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요일 저녁에 번호이동을 했으니 이틀 쯤 지났군요. 달라진 게 확 체감됩니다. 이틀 동안 단 한 차례도 통화가 끊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기계는 KT에서 쓰던 그 아이폰 그대로입니다. 물리적인 변화는 USIM카드 하나 뿐이었죠. 인터넷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지하철에서 아이패드로 각종 뉴스를 보는데, KT 시절에는 출근 시간의 경우 인터넷에서 조간신문 앱을 열 때 지면보기(이미지 모음)를 내려받느라 서너정거장을 그냥 지나가는 경우마저 종종 있었습니다. 이젠 그때와 비교하면 전화모뎀에서 ADSL로 통신망을 바꾼 느낌입니다.

사실 KT로서는 좀 억울할 만도 합니다. 아이폰 사용자는 KT가 SK텔레콤보다 훨씬 많습니다. 250만 명이 넘는 아이폰 사용자가 대부분 KT에 몰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엄청난 트래픽을 사용합니다. KT가 아이폰3GS와 아이폰4를 앞서서 내놓으면서 SK텔레콤의 얼리어답터들이 모두 KT로 이동한 바 있지요. SK텔레콤도 스마트폰 가입자가 급증하면서 전체 트래픽은 KT를 추월했다고 하지만 두 회사의 전체 가입자 비중은 10:6 정도인데, 무선 트래픽 기준으로는 거의 1:1입니다. 하지만 SK텔레콤은 이런 스마트폰 서비스를 위한 주파수(2.1GHz대역)가 KT보다 1.5배 많습니다. 그래도 이런 상황을 다 알고 있는 KT가 SK텔레콤을 따라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시작합니다. 저도 그 요금제를 썼습니다. 아마 KT가 내놓지 않았더라면 지난해에 SK텔레콤으로 옮겼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도 기본 전제가 다른데 경쟁사와 똑같은 서비스를 한 무리수가 결국 여기까지 온 셈입니다.

그렇다고 SK텔레콤을 칭송할 마음은 없습니다. 주위 분들이 묻더군요. “그럼 너처럼 SK로 옮겨가는 사용자가 많아져서 두 회사의 무선인터넷 사용량이 1:1에서 1:1.5로 변하면 SK텔레콤도 KT처럼 되는 거야?”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최근 SK텔레콤은 통신사에 관계없이 무료로 모든 국민에게 제공하겠다던 와이파이망도 “7월1일부터 SK텔레콤 가입자에게만 무료로 하겠다”며 말을 바꿨습니다. 혼잡 상황에 이르면 “무선인터넷은 한계가 있어 어쩔 수 없다.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는 취소하겠다”라고 얘기하면서 그동안 SK텔레콤이 ‘콸콸콸’이라고 믿고 따라왔던 사람들을 배신하는 시나리오도 충분히 떠올려볼만합니다.

그래서 정부의 강압적인 통신요금 인하 정책은 반대하지만 그래도 각 통신사 사이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로막는 온갖 요금은 사라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가입비입니다. 이번에 옮기려보니 SK텔레콤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거의 4만원 가까운 돈을 내야 하더군요. 이게 그나마 5만5000원에서 많이 할인된 거라고 합니다. 여기에 USIM 카드 비용 7000원을 추가로 받습니다. KT 시절에 쓰던 USIM이 있는데 왜 새로 사야하는걸까요. 그냥 업체들끼리 표준화해서 가입자 정보만 넘겨받고 데이터를 초기화해 쓰면 될텐데요. 지우고 다시 정보를 쓰는게 보안 등의 문제로 어렵다면 그냥 가입자 정보만 양사 간에 주고 받으면 자원 낭비도 줄일텐데 말이죠.

통신 품질도 만족할 수 없고, 이동 과정의 불합리함도 만족할 수 없는데, 통신사들은 자신들의 서비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술”이고 “세계 최고의 품질”이라고 우겨댑니다. 다른 통신서비스를 선택해 보고 싶은데 선택할 곳도 없어서 울며겨자먹기로 서로 정신차리고 경쟁하라는 뜻에서 이 안에서라도 자꾸 왔다갔다 하려했더니 거기에는 가입비에 위약금에 USIM 카드 비용 등 별별 돈을 얹어 이동을 최대한 가로막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소비자를 울타리에 몰아놓은 가축들처럼 가둬놓고는 여기서 거둔 이익으로 새로운 사업에 투자를 하겠다고 기다려달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사업이 하나SK카드나 KT가 인수한 비씨카드 등을 이용한 모바일 결제 사업입니다. 신용카드까지 이런 식으로 영업하는 사람들이 가져가겠다는 건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난밤 구글이 씨티그룹과 마스터카드와 손잡고 모바일 결제 사업을 발표했습니다. KT와 국내은행과 비씨카드가 손잡고 발표할 모바일 결제 사업도 이 서비스 못잖게 훌륭한 사업일 수 있을 겁니다. SK텔레콤과 하나은행과 하나카드가 손잡고 발표할 모바일 결제 사업도 끝내줄 수 있겠죠. 하지만 지금까지 다른 산업에 진출할 때 거둬온 성과로만 생각한다면, 저는 구글의 서비스가 더 기대됩니다. 참, 조만간 애플도 이런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합니다. 저는 지금 우리 통신사들이 제게 “통화품질 개선에 돈을 더 쓰는 대신 구글-애플과 경쟁하는데 돈을 더 쓸테니 요금을 더 내달라”고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위약금 털어내고, 가입비 털어내면서 제 지갑은 이미 충분히 얇아졌습니다. 확률 낮은 도박에 판돈을 걸고 싶은 의지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아이폰4와 넥서스S, 뭔가 놓치고 있는 것.

자, SK텔레콤이 아이폰4를 판매하겠다고 합니다. 만세. 소비자의 승리입니다. 또 다른 소식, KT가 SK텔레콤과 동시에 넥서스S를 판매하겠다고 합니다. 만세. 역시 소비자의 승리? 과연 그런가요?

SK텔레콤이 아이폰4를 판매한다고 합니다. KT도 아이폰4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들에게서 아이폰을 사야할까요? 그저 애플 매장에 가서 아이폰4를 사서 통신사 대리점에서 구입한 USIM 카드를 여기에 끼워서 아이폰을 쓰면 안 되는 걸까요? 매월 쓰지도 않는 요금을 꼬박꼬박 내는 대신 선불카드를 사서 저렴하게 쓰면 안되는 걸까요? 통신사들은 “그러면 단말기 값이 올라간다”고 주장합니다. 자기들이 휴대전화 제조업체로부터 휴대전화를 대량 구입해 크게 할인받는다는 것이죠. 또 보조금도 줘서 소비자 부담을 줄여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석채 KT 회장 본인이 “단말기 값에 거품이 끼었다”고 주장합니다. 제조업체가 통신사의 ‘보조금 공동 지급’ 요청을 고려해 출고가 자체를 비싸게 높여 부르고는 여기서 할인하는 형식으로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것이죠. 중국에서 만든 안드로이드폰 가운데에는 통신사와의 2년 계약 같은 것 없이 10만 원 정도에 팔리는 제품도 있습니다. 품질 차이야 있겠지만, 그것도 엄연한 스마트폰입니다. 한국에선 그런 제품은 아예 볼 수도 없습니다. 통신사가 질색하니까요. 10만 원 짜리 스마트폰을 사서 통신사와 계약같은 것 없이 한 달에 데이터통화료만 2만 원 쯤 내고 인터넷 전화를 실컷 할 수 있다면, 그게 소비자의 승리 아닐까요? 오히려 KT만 아이폰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SK텔레콤이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내놓았듯 경쟁이 격화되는 게 더 나은 건 아니었을까요?

게다가 애플은 조만간 선불요금 사용자를 위한 저렴한 가격의 아이폰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팀 쿡 COO도 “아이폰은 부자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라고 얘기했죠. 그런데 경쟁이 없는 한국 시장에, 그것도 통신사가 모든 단말기를 100% 사들인 뒤 이를 재판매하는 것만 구할 수 있는 한국 시장에 이런 선불 아이폰이 들어올 수 있을까요? KT도, SK텔레콤도 이런 시장이 한국에 생겨나는 걸 원하지 않을겁니다. 게다가 어차피 이제 두 회사가 똑같은 단말기를 갖고 경쟁하게 된(또는 실질적으로 담합하게 된) 상황에서 통신사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단말기가 널리 팔리는 상황이 즐거울까요?

그런 점에서 넥서스S가 양사에서 동시 발매되는 것에도 의문이 듭니다. 우리는 또 스마트폰 요금제에 가입해야겠지요. 구글은 넥서스 시리즈를 레퍼런스폰이라면서 통신사 계약없이 판매했지만, 한국에선 그렇게 팔리는 넥서스S라는 건 아예 존재하질 않을 겁니다. 삼성전자 매장에서 ‘옙’ MP3플레이어를 들고오듯 넥서스S도 용산전자상가에서 ‘발품을 팔아’ 40만 원 정도에 기계만 사다가 그동안 쓰던 휴대전화의 USIM카드를 꽂아 쓸 수는 없는 걸까요? 애초에 그게 구글이 넥서스 시리즈를 만들면서 내세웠던 가치인데 어느 순간 흐지부지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소비자의 승리라니요. 이제는 구글마저 우리를 계약에 묶어놓기 시작했군요.

통신사가 지난해 마케팅 비용으로 사용한 돈 7조5000억 원 가운데 7조 원 정도는 우리의 단말기 보조금과 우리를 고객으로 끌어들인 대리점 영업사원들의 인센티브로 쓰였습니다. 한 해에 한국에서 판매되는 휴대전화는 2000만 대에 이릅니다. 산술적으로 계산해도 한 대 당 35만 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셈입니다. 아, 참고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휴대전화 평균 판매가격(ASP)은 100~150달러 사이입니다. 20만 원이 넘지 않죠. 국내에서는 프리미엄 단말기만 팔리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모르겠지만, 저 돈은 모두 우리 주머니에서 나오는 거랍니다.

통신CEO인터뷰#3/ KT 이석채 회장

AP07DA81501261F000.JPG

 

지난
1년 동안 통신시장의 이슈를 만들고 주도해 온 건 KT입니다. 요금, 아이폰,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까지. 경쟁사들은 KT가 만들어내는 이슈를 뒤따라가며 대응하기
급했다해도 크게 틀린 얘긴 아닐 겁니다. 하지만 요즘은 ‘패를 다 보여줬다’는 느낌도
듭니다. 더 이상 단말기 한두대가 시장의 이슈를 주도하는 것도 아니고, 예전만한
충격을 주지도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땐 1, 2위 사업자의 간격이 크게
좁혀졌단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패를 다 보여준 KT는 이제 뭘 할 수 있을까요?

 

– 더이상
KT가 이슈를 주도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앞으로 계속 성장을 주도하려면 핵심역량을
잘 파악하고 집중해야 할텐데 무엇이 KT의 핵심역량인가요?

이석채
회장=KT는 우리가 가진 모든 자산을 갈고 닦아 글로벌 ICT 컨버전스 리더가 되겠다고 얘기한
바 있습니다. 컨버전스라는 단어 속에 많은 게 있어요. 과거와 다른 무대가 만들어졌다는
얘기고, 과거에 잘했던 사람들이 계속 잘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새로운 준비가 필요한 거죠. 형식은 무선통신이라도 유선통신의 백업이 필요한 그런 서비스를 기업과 사람 모두 필요로 할 테니까요. 미래에는 이게 성패를 가루는 대전제입니다. KT는 그 컨버전스 무대에서 갖춰야 할 핵심역량을 여러 개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네트워크가 세계 최강이에요. 스마트폰, 스마트디바이스. seamless한 통신망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강력한 유선과 와이브로까지
과거에 쓸모없어 보였던 네트워크 자원이 다시 주목받습니다. 예전엔 우리가
네스팟, 와이브로 얘기하면 주식 떨어지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어요. 이제 아무도 그런 얘기 않습니다. 와이브로 이렇게 많이 깔면 전에는 주가 떨어졌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와이파이 이미 3만 개 돌파했고, 머지 않아 10만 개
넘어서면 세계최강 될 거에요. 향후 데이터가 폭증했을 때 이를 어떻게 감당할 겁니까. 우리는
답이 있습니다.

 


바꿔말하면 예전에 깔아놓은 통신망 말고는 별 게 없다는 얘기같습니다.

=
클라우드컴퓨팅이 있습니다. 지금 유클라우드 한 번 보세요. 적어도 고객들에게 이걸 무료로 해준다고 할만큼
자신이 있는 겁니다. KT가 이런 서비스 시작한 시간은 짧지만 나름대로 국내에선 최고의 클라우드 역량을
갖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역량을 월드클래스, 세계 톱클래스로 올려보려고
해요. 이 능력을 갖추는 전략을 갖고 있고 그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과연 KT가 세계 톱클래스라고 볼
수 있겠냐 싶겠지만 우리는 그걸 목표로 전진 중입니다. 줄(wire)만 파는 게 아니고, 컴퓨팅만 파는 게 아니고, 이를 융합해서 개인과 정부, 기업 등이 뭔가 달라지고 생산성도 높이고 소셜네트워크도 만들고
할 수 있는 그런 서비스를 우리가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걸 마치면 그 다음은 글로벌로 가는 것만
남는 셈이죠.


그게 현실이 되면 KT는 통신사라고 보기 힘들어집니다. IT서비스 회사가 되는 게
아닐까요?

=
이미 우리가 그렇게 바뀌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KT이노츠라는 회사를 만들었겠습니까.(KT이노츠는
티맥스소프트와 KT의 합작사로 소프트웨어 회사) 왜 시스템통합(SI) 업체를 바꿔가면서 아웃소싱하던
일을 우리 핵심사업으로 규정하고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2년 전 세운 KTDS라는 SI자회사가 최근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뜻) 게다가
요즘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사업자와 연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글로벌 얼라이언스에요. 인텔과 에릭슨, 기업들이 공개를
꺼리니 지금 제가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여러 회사와 얼라이언스 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이런 협조관계가 많아요. 중요한 게 수많은 중소기업과의 협력입니다. 그런데 그들과
협력한다는 게 제가 모으려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벤처, 중소기업들이 우리를 신뢰하고 애정을 가져야
우리하고 새 사업을 같이 할 수 있죠. 얼마 전 3불정책, 동반성장 등 중소기업 관련 협력안을
발표했던 게 그런 이유입니다. 중소기업에게 자선사업 하려고 한 게 아니에요. 그들이
우리의 동반자여야 우리가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그 결실이 조금씩
생기고 있어요. 조만간 공개할 예정입니다.

– 사실
IT서비스라거나 클라우드컴퓨팅,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와의 협력 등은 경쟁사에서도
다 하는 얘기입니다. KT는 뭐가 좀 다르다고 얘기할 수 있나요?

= 얘기만
한다고 다 하는 게 아닙니다. 모든 나라가 인터넷이 미래라며 초고속인터넷을 깔자고
했어요. 그 때 다 브로드밴드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국가별로 결과는 달라요. 왜 그랬나요. 누가 핵심역량이 있고, 제대로 실행을 했으며, 결과를 만들어냈느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겁니다. 말로 하는 것과 실제로 하는 건 다르죠. 우리는 지금 컨버전스가
목표라고 선언을 했고, 이후 그런 선언을 바탕으로 한 실적이 연속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고객은 더이상 늘지 않고, 음성통화 가격도 떨어지는 추세인데 KT가 상반기 실적을
보면 통신업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그리고 데이터트래픽 증가량이 다른 회사와 비교할 수 없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 엄청난 트래픽을 다 수용하고도 일부 남은 상태입니다. 기업고객 측면에서도 아주 작지만 중요한 스타트가
있어요. 경남 농가에 단순한 기술이지만 적용해서 파프리카 농가 지원하기도 했고, 비용 줄이고 신뢰 높이는
모습을 보여줬죠. 이런 걸 다른 사례로 이어서 발전시키는 겁니다. 이런 솔루션을 현실적으로 시장에 적용해 실적을
낸 곳 있는가요?. 없습니다. 물론 어려운 건 아니에요. 하지만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한 것과
비슷하죠. 수많은 모험가가 나왔지만 승자와 패자가 갈라지는 건 핵심역량과 결과에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이런 걸 착착 진행하는 중입니다. 통신회사가 아닌 IT서비스 회사로 우리가 급속히 변화하고 있는
거죠. 이미 KT는 통신회사라고 진단하기에는 많이 변한 상황입니다.

– 인력을
한 번 보시죠. 통신사는 통신망 운영/관리 인원이 전체의 80% 쯤 됩니다. 그런 회사를
통신사가 아니라고 볼 수는 없잖아요?

= 옛날
얘기입니다. 예전엔 그 얘기가 맞았어요. 하지만 전통적 네트워크부문 인력을 제가 취임한
뒤 40% 이상 줄였습니다. 인공위성 사업부문을 분사시켰고, 기업고객분야는 이미 통신회사
업무가 아니라 총체적인 IT역량을 갖추고 컨설팅하는 업무로 전환하고 있어요. 이렇게
변하기 위해서 외부에서 새 사람도 참 많이 데려왔습니다. KTDS CEO는 삼성SDS에서 데려왔고, KT이노츠는 티맥스소프트의 인재들을
대거 수혈하는 계기였죠. 목표를 가지고 전략을 차근차근 실행해 가는 겁니다. 제 의지가
그런 거에요. 직원들에게 늘 얘기합니다. “KT가 통신회사로 남아있는 한 미래는 없다”는 거죠. 여기에 필요한 역량은 대단히 달라져야
합니다. KT의 성패는 얼마나 빨리 전통적인 통신업체에서 IT업체로 변화하느냐, 그리고 그렇게 변하면서도 우리의 통신사로서의 핵심역량은 얼마나 잘
지켜내느냐에 달려있습니다.

– 취임하신
후 그런 변화를 강조하는 탓에 직원들이 ‘혁신피로’를 호소하기도 합니다.

= 저도 직원들하고 대화를 합니다. 그
때도 혁신피로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혁신은 우리 자신이 살기 위한 거에요. 다른 사람을 위한 게 아닙니다. CEO나 임원을 위하는 것도 아니고 직원여러분 자신을 위해
혁신을 하는 거라고 강조합니다. 우리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바뀌는 것인데, 전쟁터에서
한참 싸우다 피곤하니까 잠깐 쉬워야겠다 생각하나요? 우리가 대학 시험치고 KT같은
직장에 입사시험 볼 때, 피로를 호소하며 쉬었던가요? 우리 자신을 위한 거라면 열심히
쉬지않고 하는 것 아닙니까. 전 직원들이 따라오리라 생각합니다. 계속 강도 높게 할 겁니다. 나폴레옹이,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을 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하지만 넘지 않으면 죽는데, 멈춰서
잠시 쉬면 죽는데 어쩌겠습니까. 난 직원들에게 "조금만 더 참으면 저기 젖과 꿀이 있다"는 얘기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건 싫든 좋든 넘어야 할 우리의 운명입니다. 가야만 하는데 멈추는
일은 없습니다. 직원들이 혁신피로를 호소한다고 거기서 멈추거나 속도를 늦출 생각은 전혀 없어요. 우리는 이미 늦게 출발한
회사입니다. 컨버전스 시대는 벌써 4, 5년 전에 왔는데 우리는 뒤늦게 깨닫고 이를 따라가는 입장입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부분에서 뒤졌어요. 삼성에서 갤럭시를 만드는데 개혁피로라는 말 하던가요? KT 바뀔 겁니다. 바뀌는
건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게 우리의 숙명입니다.

– 클라우드
얘기를 좀 더 해보죠. 세계적인 기업들과 비교해서 KT는 인프라가 없습니다. 클라우드
시장에서 구글 아마존과 경쟁하는 건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아요. IDC가 있긴 해도
너무 부족하죠.

= KT가 IDC를 갖고 있긴
하지만, 그건 말하자면 아날로그 시대의 유물같은 겁니다. 그건 이미 경쟁력을 잃었어요. 구글이 우리보가
훨씬 싼 값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구글코리아 사장님을 모시고 강연을
들어본 적이 있는데 자신들이 세계에서 가장 싸게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우리 IDC를 인프라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우리는 죽는 게 불을 보듯 뻔합니다. 우리 고객, 그리고
세계적 고객이 원하는 걸 제공할 수 있어야 제대로 서비스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거죠.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형편없는 건 아닙니다. 우리보다 더 낫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건 구글이나 아마존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그들과 경쟁한다고 해도 우리는 크게 걱정 않습니다. 얼마전에 세일즈포스닷컴의 린지 암스트롱
CEO가 한국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이 가장 경쟁력있는 클라우드 사업자는 텔코(통신사)라고
선언합디다. 네트워크가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우리 자신의 네트워크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도 강력한 네트워크죠. 심지어
오렌지나 보다폰 같은 해외사업자보다도 우리 네트워크가 더 뛰어납니다. 유무선이 자유자재인 이런 통신사는 없습니다. IDC에서 (우리가 밀려도) 우리는 낙관적으로 봅니다. 결국
클라우드는 네트워크와 함께 가니까요. 네트워크 작업은 우리가 이미 많이 했고, 클라우드는 외국도 계속 진화중이니까
우리도 계속 경험 쌓고 따라가면 됩니다. 세계 톱수준이 될 거라고 봐요.

 


그건 국내 얘기같습니다. 국가간 통신망에서 한국이 내놓을만한 사업자는 없다고
알고 있어요. 특히 클라우드를 하면서 데이터센터를 한국에 두고 동북아 클라우드
허브가 되겠다 이런 얘기를 하시려면 국가간 통신망이 필요할텐데요?

=
맞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아직 그렇게까지 신경쓸 여력은 없어요. 한국이 국가간
통신망에서 뒤져 있습니다. 물론 우리도 그 사업을 하고는 있고,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죠. 그런데 아직 세계적인 사업자들과 국가간 통신망을 놓고 동등하게 협상할 역량이
안 됩니다. 어렵고 힘든 건 어렵고 힘들다고 얘기해야죠. 그 부분은 우리 약점입니다.

 

– 어쨌든
IDC가 문제였다면, 내놓을만한 데이터센터를 새로 만들고 계시나요?

= 허들이 있습니다. 아직은 기업들이 직접
데이터센터를 보유하고자 하거든요. 대규모 투자를 하기엔 시장이 너무 적다는 겁니다. 하지만
물론 우리도 잠재적 시장을 보고 있습니다. 수많은 개인, 중소기업들이 KT의 서비스가 편하다는 걸 알면 상황이
달라질 겁니다. 지금 IDC는 과도기로 존재하는 것이고, 장기적으로 보면 클라우드컴퓨팅 능력이 증가하면 이분들도 지금의 IDC가 아닌 다른 걸 보게 될 겁니다.(KT는
최근 ‘클라우드데이터센터’라는 새로운 데이터센터를 조금씩 만들고 있습니다.)

– 서비스
어떤가요? 유클라우드는 반응이 좋던데요.

=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적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합니다. 현존하는 시스템 중에 베스트를 골라와서 한국에 적용시키고 있어요. 우리는
기업하는 사람들이니까 과연 이런 것이 기업에 성장을 가져오느냐가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저는 원래 학자를 안 좋아했어요.(이
회장은 정통부 장관 이후 대학 강단에 서기도 했습니다.) 액션이 중요하지 말은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제가 말한 모든 건 집요하게 액션으로 옮겨왔습니다. FMC, QTS, 와이파이 등 모든 걸 다 액션으로 옮겼어요.

– 경쟁사의
데이터무제한

요금제가 인상적입니다. KT는 왜 안 하시나요?

= 소비자가 우리를 신뢰해야 합니다. 달콤한 말이 아니라, 소비자가
우리한테 속았다는 얘기를 들으면 안 되는 거죠. 지구상의 어떤 통신사도 무선통신을 100% 무제한 쓰게 할 수 있는 곳은 없어요. 불과 10%만 무선네트워크를 쓰고, 90%는 사실상 유선네트워크를 씁니다.

 


그거야 이동통신망을 쓰면 비싸니까 무료 와이파이 찾아가는거죠.

= 물론 3G를 쓸 때 소비자들이 겁을 내긴 합니다. 하지만 3기가바이트라는 용량은 보통 싸람은 다 쓸 수도 없는 용량입니다. 사실 지금
우리 3G 자원도 여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등장할 디바이스는 아이폰보다 더 데이터량을 늘릴 텐데 그걸 어떻게 무제한으로 하겠습니까. AT&T도 취소했잖아요. 기술자가 아니라서 제가
정확히는 모르지만, 무선통신이 4G, 5G 가긴 하겠지만 그때가면 결국 세상이 또 달라질
겁니다. 3G 속에서 무선인터넷 자유롭게 되리라고 우리가 상정했지만 결과는 아니잖아요. 무제한이라는 단어를 쓴다고 해서 소비자들에게 진짜
무제한을 해줄 수는 없습니다. 그게 우리가 와이파이에 신경쓰는 이유죠. 전국에 와이파이 다 깔아드릴 테니 그걸로 안심하고 쓰시라는 얘기입니다. 기업이 소비자의 신뢰를 잃으면 안 돼요. 소비자에게 약속한 건 지켜야죠.

 

– 솔직히
5년 전 유선 초고속인터넷을 월 정액제 대신 사용량에 따른 종량제 요금을 받겠다던
것과 똑같은 논리같습니다. 그때도 소수 사용자가 망부하를 일으켜 다수의 선의의
사용자가 손해를 본다거나 했지만, 결과적으로 종량제는 서비스 혁신을 가로막는다는
얘기로 논쟁이 정리됐다.

= 좀
달라요. 지금은 어느 누구도 무선에 대해서만큼은 망중립성 얘기 못하지 않습니까. 무선은 희귀하기
때문입니다. 유선처럼 탄력적이지도 못해요. 사람이 확 모이면 대책이 없기 때문이죠. 무선에 대해서 망중립성 못하는 것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KT가 소비자 마음 잡기 위해 무제한을
얘기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는 그 후폭풍을 감당 못합니다. 와이파이 이렇게 많고, 와이브로도 갖고 있지만 우리는 무선
무제한은 할 수 없어요.

 

– 그런데
경쟁사는 왜 가능한가요?

= 표현을 잘 읽어보세요. 그들이
어떤 자신을 갖고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런 자신은 없어요다. 그래서 그렇게 얘기할 수 없는
겁니다. KT의 대안은 와이파이와 다른 네트워크를 제공해드릴 테니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그곳에서 쓰시라는 얘기입니다. 저는 통신회사 사장이지만 에그(Egg) 켜놓고 인터넷 합니다. 빠르고
편해요. 데이터가 더 필요하면 이런 것 쓰시면 되는 겁니다. 소비자에게 우리는 무제한으로 3G 쓰라고 할 수 없습니다.
대신 다른 네트워크를 드리는 것이죠. 소프트뱅크처럼 부하조절하면서 무제한 하려면
누구나 하겠죠. 하지만 그게 망중립성 관련해 논란이 되는 것 아니겠어요? 우리는 우리의 토탈네트워크로 소비자들에게 마음껏 쓰시라는 얘기를
할거에요.

– 아이폰
얘기 좀 해보죠. KT 분들이 아이폰 얘기하면 굉장히 감정적으로 되십니다.

= 왜 이런
일이 초래됐을까요. 세계를 살펴보세요. 전세계 모든 통신사 가운데 아이폰을 파는
회사는 다른 회사 단말기도 다 같이 팝니다. 애플과 비즈니스한다고 차별받는 회사 하나도 없어요. 그런
행위가 용납되지도 않습니다. 한국에서만 이런 문제가 있는 겁니다. KT가 처음부터 애플하고만 거래했던가요? 쇼옴니아라는 걸 적극적으로 개발해 팔려고 했던 게
우리 아닙니까. 한국이든 어디든 단말기는 소비자가 선택하는 겁니다. 애플 걸 쓰든, 대만제를 쓰든, 삼성이나 LG를 쓰든 그건
소비자의 선택이죠. 그런데 한국에서만 유별납니다.

 

– 그럼
그냥 삼성 단말기 안 사서 안 팔면 되는 것 아닌가요? 왜 삼성에게 섭섭해 하시는지?

= 다른 단말기도 소비자가 원하면 팔아야죠. 세계적으로도 괜찮은 평가를 받는 제품은 다
가져다 팔아야죠. 불행하게도 지금 그런게 안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애플만 파는 것 아니에요. FMC폰, 안드로원 다
잘 팔리고 있습니다. 한번 보세요. 경쟁사에선 갤럭시S밖에 안 파는 것처럼 보여요. 의존도가 너무 심한
거죠. 그런데 그게 소비자 선택 아닙니까? 아무리 다른 걸 팔고 싶어도 갤럭시S가
잘 팔려서 그런거라는 것 아닙니까. 그게 소비자 선택의 특징입니다. 아이폰도
그렇게 많이 팔린 것 뿐입니다.

– 애플 브랜드에 문제가 생기면
KT 브랜드 가치도 같이 떨어지는 것처럼 느끼는 분들이 내부에 계신다는 인상을 받는다.

= 그건
사실 한국 언론의 문제에요. 예전에 애플 아이폰이 아닌데, 다른 폰으로 해킹되는
것 시연했는데 그게 아이폰이 해킹되는 것처럼 보도하고 그랬던 언론사도 있지 않습니까. 보안이란
게 원래 100% 안전한 건 없지만, 아이폰은 상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폰이거든요. 그런데도 애플에 흠만 좀
있으면 막 쓰는 국내 보도 탓이 있습니다. 마치 아이폰만 문제있는 것처럼 나오는데 균형잡히지 않은 보도죠.

물론 안테나게이트같은 건 아예
그런 일이 없는 것보다는 문제입니다. 그래도 미국처럼 기지국 듬성듬성 있는 곳에서 더 문제죠. 우리와 통신
환경 비슷한 일본에선 그런 문제 한 건도 안 생겼어요.

– KT 분들이 애플 문제를 마치 자신의 문제처럼 받아들이는 정서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아이폰4에 대항할 수 있는 단말기는 지금
세계에 없습니다. 외국 나가서 사보세요. 없어서 못 사요. 공급이 못 따라가는 상황이죠. 아무 문제없을 정도로 인기있는 폰인데 그게 유독 문제있고, 열등한 것처럼 한국언론에서 자꾸 얘기합니다.
그리고 우린 그걸 팔아야하는 회사죠. 그러니 할 수 없는 측면이 좀 있습니다. 그렇다해도 언론이 KT
직원들 얘기를 듣고 기사로 써줍니까? 안 써주잖아요. 아이폰4 나오면 다시 돌풍을 일으킬
겁니다. 전 아이폰4가 소비자에게 굉장한 만족을 주리라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 앱스토어
예를 들며 새 성장동력 말씀을 하시는데, EA같은 큰 게임회사 1년 매출이 겨우 4조
원 수준입니다. 소프트웨어 시장은 부가가치는 높지만 매출도 작고, 고용효과도 낮아요.

= 아이폰이 가져온 시장은 다릅니다. 뭐가
다르냐면 기존의 조각난 시장을 한 데 모아 교통비와 수송비, 관세도 없는 세계 단일 시장을 만들어낸 겁니다. 지금껏 우리가 경험못했던 큰 규모의 시장이죠. 1조 달러 시장이 열리고,
더 큰 시장이 열릴 겁니다.

– 벤처기업의
성공을 강조하시는데…

= 미국에서도 벤처기업 100개 나오면 1, 2개만 성공합니다. 다만 실패해도
실패의 경험을 살려 나중에 다른 곳에 흡수돼 다른 성장으로 이어지는 게 한국과
차이점이죠. 우리도 그래야합니다. 한국에 MP3같은 혁신적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는데 이걸 아이팟
만든 애플처럼 더 크게 키우는 토양이 없습니다. 인적기반이 부족할 수도, 기업문화가 성숙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수많은 패자들이 패가망신한다는 겁니다. 그들을 재기하도록 해야 합니다. 자신이 이룬 일부를 더 성공한 사람들에게 팔
수 있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내놓은 3불정책도 그런 거에요. 난
늘 직원들에게 말합니다. 직원들은 꼭 벤처나 중소기업에게 완성된 제품을 요구하는데, 난 그러지 말고 "대충 된 걸 사라"고 해요. 그래야 젊은 사람들이 KT를 보면서 ‘비전이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대기업에서
완성된 걸 사겠다고 들면 도대체 뭘 팔 수 있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완성된 제품이란
게 아이디어 가운데 도대체 몇 %나 되겠습니까. 완성품까지 기껏 갔는데 그걸 안
사겠다고 대기업이 고개돌리면 벤처기업은 실패하고 완전히 다 망하는 겁니다. 우리가 미국에서 배워야 하는 건 작은 아이디어가 어떻게 성공적으로 클 수 있느냐는 거에요. 우리가 그 풍토를 만들어야 하고, KT도 그렇게 아이디어를 키워줘야죠. 우리와 협력하면 손해는 안 본다는 인상을 줘야 KT도 성장할 수 있고 글로벌기업이 될 수 있습니다.
전 정부가 이런 부분을 정책적으로도 고민해줬으면 합니다. 왜 MP3플레이어가 한국에서 만들어졌는데
꽃을 못 피우고 만 걸까. 이런 부분을 고민해줬으면 좋겠습니다.

– 아이폰4가
좀 늦게 나왔습니다.

= 아이폰4가 왜 딜레이됐냐면 한국이 한국 산업을 지키기 위해 세계와는 다른 스펙을 요구하는 게 많아서
그런 겁니다. 예전 예를 들자면 위피 같은거죠. 그러다보니 글로벌 기업은 90% 이상
국가에서 별 무리없이 제품을 내놓으면서도 한국에 물건 팔 때면 늘 특수작업을 다시해야 합니다. 여기서
병목현상이 생겨요. 물론 우리보고 이런 특수작업을 하라면야 우리가 쉽게 하겠지만 애플같은 회사는 한국만을
위해서 우리에게 그걸 맡기는 예외를 둘 수 없는 겁니다. 자기들이 직접 작업해야만 하는데 그게 생각보다 더 걸리는 거죠. 우리가 여기서 심각하게 생각할 건 우리가 이렇게 남과 다른 정책을 언제까지 계속
지속해야 하느냐는 겁니다. 지난해 위피를 없앤 건 참 대단한 결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세계와 달리 가는
게 꽤 많아요. 이걸 다 어찌하느냐 이제 고민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와이브로도 보세요. 8.75메가헤르츠
주파수대역도 너무 고민했습니다. 우리가 세계표준으로 정해졌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10메가헤르츠로 대역 변경하니까 바로 인텔하고 협력 맺어지고 그러는 것
아닙니까. 표준은 그렇게 만드는 겁니다. 한국만의 고유한 걸 어디까지 갖고, 어디까지 버릴지 이제
심각하게 다시 살펴봐야 합니다. 그래야 세계와 한국이 동떨어지지 않고 동시에 갑니다. 그러지 못하면 계속 우리는
한 템포 늦게 살 수밖에 없어요.

이것이 KT의 마케팅

간단하게 몇 가지만 짚어보고 싶어졌습니다. KT는 지난해 말 아이폰을 들여온뒤 스스로 ‘한국의 무선인터넷을 앞당긴 회사’인 것처럼 마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유무선복합전화(FMC)’라는 서비스를 내놨고, 올해는 테더링과 스마트셰어링(OPMD;
One Person Multi Device) 등 획기적인 서비스를 ‘국내 최초’로 시작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렇긴 한데…

 

1. 유무선복합전화(FMC) 사용자: 15만 명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 회사의 가입자는
약 1500만 명입니다. KT는 무선랜이 되는 지역에서 값이 싼 인터넷전화를 쓰는 FMC를
도입하면 이동통신 매출을 갉아먹을 수 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이용자가 매출에
영향을 주기에는 지나치게 수가 적습니다.

 

2. 스마트폰 시대 앞당겨: 이날 밝힌 KT의 스마트폰 가입자는 약 100만 명. 이
가운데 70만 명 이상이 아이폰 사용자입니다. 스마트폰 시대를 앞당겼다고 보기에는
특정 회사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습니다. 경쟁사도 아이폰을 판매한다고
나서면 KT는 과연 버틸 수 있을까요?

 

3. 테더링+OPMD 국내최초 도입: KT의 테더링 사용자는 ‘매우 적다’고 합니다.
OPMD는 가입자가 없다고 합니다. 국내 최초로 도입한 유명무실한 제도들입니다. 쓰는
사람이 없는데 국내 최초가 무슨 소용일까요? 그나저나 왜 사용자가 매우 적을까요?
KT의 데이터요금제 가운데 가장 비싼 9만5000원짜리 요금제의 데이터 용량이 3GB에
불과합니다. 제가 출퇴근 시간에만 아이패드로 인터넷 신문과 블로그만 서핑해도
하루에 100MB(약 0.1GB)는 훌쩍 넘는 용량을 씁니다. 아이폰 테더링으로 노트북컴퓨터라도
쓰고, 유튜브 영상이라도 본다면 제일 비싼 요금제로도 답이 안 나옵니다. 왜 사용자가
적은지 알 수 있죠.

 

4. ‘에그’와 ‘단비’로 걸어다니는 Wi-Fi 시대 열다: 에그와 단비는 각각 와이브로와
3G망을 와이파이 신호로 바꿔 주위에 송신해주는 일종의 통신 연결 장비입니다.
최근 구글이 프로요의 기능으로 내세운 ‘모바일 핫스팟’ 형태의 테더링 서비스와
비슷합니다. 에그는 지난해부터 열심히 판매해 약 2만8000대, 단비는 약 2500대 정도
팔렸다고 합니다. 에그는 한 번 충전에 약 네시간 쓸 수 있고, 단비는 일반 휴대전화에
꽂아서만 사용 가능합니다. 사용과 휴대가 썩 편하진 않습니다.

 

5. 구글 넥서스원 도입, 최신 안드로이드 ‘프로요’ 버전: 프로요의 특징은
모바일 핫스팟, 뮤직스트리밍, 자동업데이트 등입니다. 모바일 핫스팟은 앞서 얘기한
테더링 기능과 똑같으니 유명무실해질 테고, 뮤직스트리밍은 무선랜 사용 가능 지역을
일부러 찾아다녀야만 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 컴퓨터의 아이튠즈 라이브러리를
틀어준다는 애초의 기능과는 전혀 관계없는 기능이 되는 셈이죠. 응용프로그램 자동업데이트는
사용자가 모르게 백그라운드에서 이뤄져야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KT 요금체계에서는
데이터 사용량이 줄어들까봐 이 기능을 꺼놔야 할 지경입니다.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도입하면 됩니다. 이미 많은 해외
통신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도입한 상태입니다. 이들도
KT처럼 네트워크에 걸리는 과부하를 두려워합니다. 실제로 네트워크 장애가 생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외 통신사들은 이런 과부하를 해결하기 위한 갖은 노력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 사례를 아무리 소개해도 국내 통신사들의 반응은 감감무소식입니다.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는 전혀 도입할 계획이 없다"는 똑같은 답만 돌아옵니다.

 

KT의 혁신은 그래서 ‘무늬만 혁신’ 같아 보입니다. 이들은 오늘 ‘고객중심의
기업’이 되겠다는 미래 계획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기업들이 이미
‘고객중심의 기업’으로 오늘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KT는 비록 ‘선언’에
그쳤을지라도 혁신적인 시도를 하겠다는 ‘의지’ 만큼은 경쟁사들보다 조금 더 보여왔습니다.
다음 1년은 ‘선언’ 대신 ‘실행’을 보고 싶을 뿐입니다.

소비자보다 아이폰이 더 무서웠던 SK텔레콤과 삼성전자

AP07D9B1D0E351D4003.JPG

 

하룻밤 새 22만4000원을 날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을 잃어버렸다는
얘긴 아니지만, 적어도 그런 기분을 느낀 사람들입니다. 지난달 말 판매를 시작했던
삼성전자의 최신 휴대전화 ‘옴니아2’를 산 1만8000여 명의 얘기입니다. ‘T옴니아2’라고
불리는 이 휴대전화는 삼성전자의 최신 스마트폰입니다. 곧 KT와 LG텔레콤에서도
나올 예정이지만, 일단은 SK텔레콤에서만 팔리고 있습니다.
컴퓨터처럼 인터넷과 문서작성도 할 수 있고, TV 수신과 각종 소프트웨어 설치도
가능한데다 최고급 CPU에 화질 좋기로 유명한 아몰레드(AMOLED) 디스플레이까지 갖춰서 가격이 96만8000원으로
비쌉니다. 하지만 매월 기본요금을 비싸게 내면 SK텔레콤으로부터 각종 보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40~50만 원 정도면 살 수 있었습니다. 어차피 스마트폰을
사는 이유가 어디서든 무선인터넷을 하고자 하는 생각도 하나의 이유였던지라 소비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습니다. 이 기계는 그 정도 가치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상황은 KT가 애플의 베스트셀러 스마트폰 ‘아이폰’을 들여오면서
달라졌습니다. 아이폰도 T옴니아2처럼 값은 90만 원 대에 이르지만 KT의 보조금을
받으면 20~30만 원이면 살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자 SK텔레콤은 ‘맞불’을 놓습니다.
한 대 당 22만8000 원씩 지급하던 옴니아2에 대한 보조금을 40만8000원으로 확 늘린
것이죠. 삼성전자도 가세했습니다. 옴니아2의 출고 가격을 4만4000원씩 낮췄습니다. 소비자들은
며칠만 참았어도 22만 원 이상 아낄 수 있었던 터라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너무
빨리, 너무 많이 값을 내린 겁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제품 가격이란 제품의
원가에 이윤을 더한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소비자가 기꺼이 돈을 지불하겠다는
마음, 경쟁자와의 적절한 경쟁, 제품의 원가 등이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 환경에
맞물려 가격을 결정합니다. 삼성전자도, SK텔레콤도 이런 걸 모를 리 없는 훌륭한
기업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1만8000명의 소비자가 자신들의 제품에 대해 갖고있는 ‘마음’은
그다지 중요한 고려 요소가
아니었습니다. 제품을 가장 먼저 구입했던 충성도 높은 소비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도
바라봐야만 했던 것, 그건 경쟁사인 KT와 애플의 움직임이었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애플도 2007년 ‘아이폰’ 첫 모델을 내놓으면서
비슷한 문제를 겪었습니다. 애플은 7월에 첫 아이폰을 599달러(약 68만 원)에 선보였는데,
두 달 뒤인 9월에 똑같은 제품의 가격을 399달러로 낮췄습니다. 그러자 두 달 전 아이폰을
샀던 소비자들이 분노했죠. 자신이 산 제품 가치가 떨어졌다는 겁니다. 너무 빨리,
너무 많이 내린 게 문제였습니다. 대응은 좀 달랐습니다. CEO 스티브 잡스가
직접 소비자들에게 사과했고, 애플 제품을 살 때 현금처럼 쓸 수 있는 100달러 쿠폰을
이들 모두에게 나눠줬습니다. 이후 애플은 가격전략을 신중하게 가져갔습니다. 신제품을
발표한 뒤에야 기존 제품 가격을 낮춘 것이죠.

 

SK텔레콤에선 비슷한 일을 할 계획이 없습니다. 회사 측의 공식
입장을 묻자 “경쟁사의 보조금 규모가 너무 커서 우리도 급히 맞대응할 수밖에
없었다”며 “안타깝지만 미리 제품을 구입한 고객에 대한 환불 등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더군요. 저는 SK텔레콤의 이런 대응이 부도덕하다거나 불법적이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자신의 제품에 가격을 매기는 건 자본주의 기업의 고유 권한입니다.
그리고 이 권한을 잘못 휘두르면 기업은 망해버리기도 합니다. 이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정책이 무리했다는 사실을요. 그럼에도 이들이 가격정책에 무리수를
뒀던 이유는 시장을 지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가격결정이 중요한 이유는 이윤을 보장해 주는 게 가격이기 때문입니다.
가격이 원가보다 높으면 기업은 이익을 내고, 그렇지 않으면 손해를 봅니다. 그리고
가격을 원가보다 높게 설정할 수 있는 능력은 ‘독점’에서 나옵니다. 자본주의 국가의
상법은 독점을 규제하지 않습니다. 전에 NHN의 경우에서도 잠깐 얘기했지만, 자본주의
국가에서 규제하는 건 한 분야의 독점적 지위를 다른 분야에서 휘둘러 건전한 경쟁을
저해하는 경우 뿐입니다. 사실 독점이 없다면 모든 비누의 가격은 똑같아야 하고,
모든 휴대전화의 가격도 똑같아야 합니다. 하지만 비누는 향기가 다르고, 품질이
다르며, 비누를 만드는 기업의 이미지가 다릅니다. 비누가 이럴진대 휴대전화처럼
복잡한 기계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제품의 내구성이 다르고, 소프트웨어를 디자인하는
철학이 다르며, 디자인이 다르고, 사용자 환경(UI)이 다르고, AS망이 다르고….
무지무지 다른 게 많습니다. 기업들은 이런 여러 요소를 다른 기업과 차별화해 자신들의
제품에 독점적인 능력을 주고자 합니다. 경쟁사 제품보다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죠.

 

이런 독점적 능력을 무엇이 가져다줬을까요? SK텔레콤과 삼성전자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시장지배력’이 바로 그런 독점적 능력의 근원입니다. 이들은 각각
국내 휴대전화 가입자와 휴대전화 단말기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SK텔레콤이
50%대 초반, 삼성전자가 56% 정도를 차지하죠. 게다가 이통시장은 국내 3사가
나눠가졌고, 휴대전화 단말기 시장은 삼성전자와 LG전자, 팬택 3사가 95% 이상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높은 시장점유율이 바로 국내 업체들에게 가격을 맘대로 정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결정적인 경쟁력입니다.

 

하지만 아이폰이 인기를 끌게 된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아이폰은 시장지배력으로
독점적 능력을 갖춘 게 아니라, 제품의 품질과 앱스토어라는 서비스로 독점적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죠. 품질을 앞세운 제품이 시장점유율을 잠식해 올 경우,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은
비슷한 품질을 만들어낸다 가정하더라도 손해입니다. 전보다 애플과 KT가 차지하는
만큼의 시장점유율이 줄어들고, 이는 곧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힘도 그만큼
줄어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이런 무리수를 둘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들이 계속 경쟁력을 갖고 국내 시장을 좌우할 수 있는 방법은 단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아이폰보다 더 품질과 서비스가 좋은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들이 아이폰을
선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둘째는 한국
시장에서 아이폰이 의미있는 시장점유율을 갖지 못하도록 초기에 기를 죽여서 ‘틈새’에
가둬놓는 것입니다. 뭐가 더 ‘신속하게’ 할 수 있는 일일까요? 답은 뻔합니다.

 

미국에선 AT&T-애플의 공세에 밀려 수세적 위치에 놓여있던
버라이즌-모토로라가 ‘드로이드’라는 새 스마트폰으로 바람몰이에 나섰습니다. 버라이즌은
3G 통신망이 AT&T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자랑을 하면서 품질 경쟁을 벌입니다.
정공을 펼치는 셈이지요. 겉보기엔 멋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이렇게 정공으로
경쟁하는 동안 AT&T는 계속 아이폰 덕을 봤고, 애플은 스마트폰 시장을 휩쓸어
버렸습니다. 버라이즌은 뜨끔했고, 모토로라는 조금 더 심해서 휴대전화 사업부문
매각까지 고려해야 했습니다. 정공으로 제대로 맞붙기까지 2년이 걸렸습니다. 엄청난
손해의 시간이었죠. 이런 걸 다 알고 있을 SK텔레콤과 삼성전자입니다.
그러니, 이들의 결정에 대해 저같은 제3자가 뭐라 할 수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경쟁자보다
소비자를 먼저 생각하는 기업’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제가 왜 그런 무리한 가격전략을
세웠을까 고민하는 대신, 이들이 왜 이렇게 무리하면서까지 소비자를 생각하고 있을까
감탄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소비자인 여러분께서는 어떤 삼성전자, 어떤 SK텔레콤이
더 좋으십니까? 결국 문제는 참 단순한 겁니다. 다만 행하는 게 어려운 것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