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N 매트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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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의 유물인 BCG매트릭스는 사실 요즘은 별로 쓰이지 않는다. 이 네 칸짜리 사각형 도표가 설명하지 못하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NHN의 조직 개편을 보면서 다시금 보스턴컨설팅그룹의 이 옛 매트릭스 생각이 났다. 물론 NHN이 과거의 유물을 끌어다 조직 개편을 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이 틀로 NHN의 변화를 바라보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좀 더 쉽게 이해가 간다. 원래 분석 도구란 게 그런 거니까. 6일의 조직개편안은 2000년 네이버와 한게임이 합병해 지금의 NHN이 생겨난지 13년 만에 생긴 가장 근본적이고 큰 변화다. 바꿔 말하면 시장이 13년 전과 비교해 너무너무 변했다는 뜻이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물론, 카카오 같은 경쟁사도 생겼다. 더 이상 예전처럼 네이버 없이는 인터넷을 말할 수 없는 세상도 아니다.

그래서 2개의 자회사를 만들고 한게임도 분할을 고려한다는 발표를 내놨다. 회사를 네 개로 나누겠다는 얘기다. 그래서 BCG매트릭스가 생각났다. BCG매트릭스는 현재의 상대적 시장점유율과 앞으로의 성장가능성에 따라 네가지로 사업영역을 구분한다. 여기엔 전제가 깔려 있는데, ‘상대적 시장점유율’이 높다면 이익도 높다는 게 전제다. 상대적 시장점유율이란 단순한 시장점유율이 아니라 가장 큰 경쟁자에 대비한 시장점유율이다. 예를 들어 30%의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는 제품이 있다고 했을 때 가장 큰 경쟁자의 시장점유율이 60%라면 상대적 시장점유율은 50%다. 반면 똑같이 30%의 시장점유율을 가져도 가장 큰 경쟁자의 점유율이 3%에 불과하다면 시장점유율은 1000%다. 이런 기준에 따라 현재 (상대적으로) 시장을 지배하면서 높은 이익을 내지만 앞으로의 성장가능성은 떨어지는 분야를 ‘캐시카우’로 분류한다. NHN에서는 검색광고 등을 주력으로 하는 네이버가 여기에 해당한다. 또 돈도 많이 벌고 성장성도 높은 분야를 ‘스타’라고 부른다. 일본 시장 1위에다 최근 글로벌 사용자도 1억 명을 넘었고, 구글 앱스토어에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내는 앱으로 꼽힌 모바일 메신저 ‘라인’이야말로 NHN이 내세우는 스타다. 가능성은 높지만 현재 돈을 벌지는 못하는 분야는 ‘?’(물음표)로 표시한다. NHN에겐 모바일 사업이 여기 어울린다. 그리고 ‘키워봐야 주인을 물지도 몰라서’ 개(dog)로 묘사되는, 돈도 못 벌고 성장성도 떨어지는 분야가 있다. 한게임이 지금 캐시카우와 개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닐까.

BCG매트릭스가 요즘 잘 사용되지 않는 이유는 이게 기업의 투자를 결정하는 분석 도구였기 때문이다. 보스턴컨설팅은 사업을 이 매트릭스로 분류해 놓은 뒤 캐시카우 분야에서는 투자를 줄이면서 최대한 돈을 뽑아내라고 조언했고, 개가 된 사업은 정리할 것을 권했다. 그리고 스타에 투자를 집중하면서 물음표 분야에 대해서도 적절히 투자해 차세대 스타를 키우라고 컨설팅했다. 당연히 이런 식의 조언이 현실에서 먹힐 리가 없었다. 실제 비즈니스에서 벌어지는 일은 ‘개’라고 분류됐던 사업 분야가 혁신을 통해 스타가 되기도 하고, 스타인 줄 알았더니 개처럼 주인을 되무는 사업도 천지였다. 캐시카우에서 섣불리 돈을 뽑아내 물음표에 투자하면 회사가 휘청거리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현실은 결국 경쟁과 혁신, 실행의 문제인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 상대적 시장점유율이 수익성을 결정한다는 건 제조업 시대의 신화다. 닷컴 기업들의 수익성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CG매트릭스는 현재의 기업 상황을 판단하는 데에는 여전히 유용한 도구다. 아무리 시장에서 1위라고 해도 경쟁자를 늘 고려하게 만들고, 성장 가능성에 따라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NHN의 조직개편안도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해가 간다. 무엇보다 네이버와 한게임을 장기적으로 나누기로 했다. NHN으로 합쳐져 있는 게 서로의 발전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한게임은 네이버의 대중적인 소비자 기반을 흡수하며 성장했고, 네이버는 한게임으로 번 자금을 기반으로 고도화되던 선순환의 시기는 끝났다. 이제 네이버는 사행성 게임 논란의 한게임 때문에 대중적 기반이 훼손되고, 한게임은 네이버의 공공재적인 성격 때문에 수익 사업에 제한을 받는다. 두 회사의 분리는 당연한 수순이다. 어쩌면 한게임이 위 그림의 4사분면으로 가는 게 아니라 여전히 3사분면에 남게 만드는 방법이 바로 분사일는지 모른다. 성장가능성을 기준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런 식의 분사는 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라인은 일본을 기반으로 봤을 땐 스타에 해당하지만 글로벌하게 봤을 땐 아직 물음표다. 1사분면에 남아있는 글로벌 사업을 빨리 2사분면까지 옮겨오는 게 ‘라인플러스’를 분사한 이유다. 경쟁자를 재정의한 덕분에 지금 같은 분류가 가능했던 셈이다. 캠프 모바일이란 자회사도 마찬가지다. 물음표라고 부르기엔 상대적 시장점유율이 매우 높다. 모바일에서도 네이버의 점유율은 압도적이니까. 다만 이는 검색 등 기존 네이버 서비스의 모바일 활용을 포함했을 때의 얘기다. NHN이 모바일에서 그나마 힘을 쓰는 건 네이버 검색과 라인인데, 이걸 뺀 모바일 전문 회사를 만들었다. 경쟁을 창의적으로 재정의했다는 생각이 든다. 캠프모바일이야 힘든 일을 해야겠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그만큼 회사가 지원하겠다는 의지로도 보인다.

분사는 주로 세 가지 정도의 이유로 진행된다. 하나는 분명히 성장할 수 있는 사업인데, 기존 회사 조직의 유산(legacy)이 발목을 잡아서 전혀 새로운 성장토양에서 사업을 성장시킬 필요가 있을 때 한다. SK플래닛(이 회사가 잘 하고 있느냐는 건 별개로)의 분사 같은 게 대표적이다. 두번째는 자금 확보를 위해 경쟁력이 있는 분야를 떼어내 다듬은 뒤 매각하기 위해서다. 구조조정 시기의 기업들이 이런 일을 많이 하는데 웅진코웨이가 최근 코웨이가 된 게 이런 사례다. 그리고 나머지는 특정 분야 기술 수준을 빠르게 높이기 위해서다. 제록스의 팔로알토리서치센터(PARC)라거나 SRI 출신들이 나가서 만들었다 애플에 인수된 시리(Siri) 같은 회사가 예가 되겠다. 캠프모바일과 라인플러스의 분사는 물론 첫번째다.

NHN은 한국적 사고로 성공한 회사다. 나중에 다시 적을 일이 있겠지만, 네이버 검색은 한국에서는 구글 검색과 다른 독창적인 장점이 있다. 그리고 이런 장점은 상당부분 한국의 언어적, 문화적 특수성에 대한 이해에 기반한다. 당연히 글로벌 사업을 벌이려 할 땐 이런 특수한 한국적 사고가 방해가 된다. 더 보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게다가 일본에서 라인이 거둔 성공은 찬란하긴 하지만 우리
는 일본적인 게 세계적이지 않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NHN에게는 이런 지역적 특수성을 벗어난 성장 토양이 필요했다. 이게 라인플러스의 배경이 됐을 것이다.(하지만 그렇다면 라인플러스 본사는 홍콩이나 싱가포르로 가야하는 게 아닐까?) 캠프모바일도 마찬가지다. 경쟁사 얘길 하면 좀 그렇지만, 카카오 예를 들어보자. 카카오는 태생이 모바일이다. 직원들은 모두 카카오 아지트로 하루종일 대화하고, 일을 본다. 공식 커뮤니케이션도 카카오톡으로 한다. 의사결정에는 20, 30대 직원들의 견해가 대부분 반영된다. 이석우 대표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보다 젊은 저 친구들이 모바일을 훨씬 잘 이해하는데, 경영진이 어떻게 감히 맘대로 결정을 내리겠어요. 직원들 얘기가 더 맞아요.” 공부해서 이해하는 것과, 그 자체가 삶인 것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카카오톡이 라인보다 기능상 훌륭할 게 없어도 한국에서 시의적절하게 성공했던 게 이런 이유고, 이건 거꾸로 봐서 네이버가 구글이나 야후보다 기능상 훌륭할 게 없어도 시의적절하게 성공했던 이유기도 하다. 네이버는 닷컴세대의 문화지만 카카오는 모바일 세대의 문화다. 캠프모바일은 그래서 시대적 단절을 위해서라도 분당을 떠나야 했을 것이다. 과연 캠프모바일의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뤄질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지만.

라인시떼

라인이 일본에서 1위라는 소리야 한참 전부터 들었다. NHN에서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안티 네이버’ 정서가 강한 주위 분들과 라인 얘기를 할 때면 늘 부정적인 얘기를 듣곤 했다. “TV 광고 엄청나게 한다던데, 돈으로 마케팅해서 점유율 산 거지 뭐.” “일본에서 1위라곤 해도, 그게 뭐 얼마 되기는 한 거야?”, “진짜로 일본 사람들이 라인 좋아하는 거 맞아?”, “카카오톡 베낀 거잖아. 한국에서 다른 서비스 다 베끼듯.”
직접 가서 보고 들은 건 좀 달랐다. 한국에서야 NHN이 공룡이고, 독과점업체이고, 무소불위의 1등이지만, 일본에선 사실 존재감 없는 작은 업체였다. 게다가 손 대는 사업마다 무엇 하나 제대로 성공한 게 없었다. 게임은 언어 장벽이 없으니 통할 거라면서 일본에 건너갔지만 사실은 언어장벽보다 더한 문화장벽이 있는 게 게임 사업이었다. 한게임재팬은 정말 수없이 문 닫을 위기를 넘기며 간신히 살아남았다. 일본에도 검색이 통할 거라며 네이버재팬을 만들었지만 역시 별 반응이 없었고, 소셜미디어의 시대라며 인수했던 라이브도어도 그저 그랬다.

NHN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테고, 나도 그랬다. 전혀 몰랐다. 이런 실패들이 켜켜이 쌓이면 성공의 배경이 될 수 있다는 걸.

기사에도 썼지만 라인이 성공한 건 역설적으로 계속 죽을 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최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누가 뭐래도 ‘믹시’였다. 일본 밖에선 누구도 몰랐지만 일본 안에선 모두가 믹시를 썼다. 문제는 스마트폰이 믹시가 잘 쌓아놓은 일본 문화라는 벽을 허물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日製가 아닌 Made in USA 아이폰이 휴대전화 판매 1위를 차지하기 시작했고, 역시 미국에서 바다를 건너온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사용자를 급격히 늘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믹시는 트위터와 경쟁하기보다는 그냥 1위를 지키는데 급급했다. 일본에선 한국처럼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의 전환이 급격하지도 않았고, 일본 소비자들은 한국 소비자처럼 유행을 따라 쏠려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일본 대지진과 함께 NHN재팬이 움직였다. 물론 계기는 카카오톡이었다. 전화가 모두 불통이 됐는데, 한국에서 안부를 묻는 카카오톡 메시지는 문제없이 전송됐다. 인터넷이야 원래 불통되지 않도록 병렬로 연결되는 수평적인 네트워크로 설계됐으니 통신사가 모든 연결을 중계해줘야 하는 이동통신망보다 훨씬 위기에 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서비스가 일본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까지는 그리 어려울 게 없었다. 라인이 특별한 건 그 다음부터다.

3월 대지진을 겪고, 6월에 라인 서비스가 시작됐다. 3개월 만에 뚝딱 만들었지만, 서비스 시작 때부터 일본어와 동시에 영어 서비스가 열렸다. 직원들 덕분이었다. NHN재팬의 개발자 가운데에는 한국인, 미국인, 중국인, 프랑스인, 멕시코인 등이 함께 일한다. 한두 명이 아니고 200명이다. 전체 직원의 20%가 일본인이 아니다. 일본인으로 좋은 직원을 채우고 싶지만 한국계 작은 회사가 일본에서 좋은 인재를 뽑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 개발자를 뽑았다. 일본 기업과는 달리 외국계 기업이라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기업문화같은 게 없다면서 이들에게 어필했다. 한국 기업문화를 안다면 말도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겠지만, 멕시코인이 한국 기업 문화까지 생각할 이유도 없었을 테고, 어쨌든 NHN재팬은 약속했던 기업문화를 만들어냈다. 일방적인 지시도, 쓸데없는 허례허식도 줄어들었다. 외국인 커뮤니티에서 ‘외국인이 일하기 좋은 회사’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다른 외국인 직원들도 꼬리를 물고 입사지원서를 냈다. 다양성은 계속 늘어났고, 기업문화도 이런 다양성을 계속 존중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나갔다. 다른 일본 기업들보다 못했기 때문에 달라질 수 있었다. ‘다른 기업’이 ‘다른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영어로 된 서비스를 만들었다고 국제화가 되는 것도 아니고, 기업문화가 수평적이라고 인기있는 서비스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또 다른 제약이 라인을 성공시켰다. Mobile First였다. 카카오톡을 잘 벤치마킹했던 라인은 이 앱을 처음부터 모바일 용으로 만들었다. PC 서비스도 하고 있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다. 모바일 앱은 기본적으로 PC 앱 개발과 개념이 다르다. 화면이 작고, 한번에 보여줄 수 있는 정보량이 극히 제한적이라 가장 중요한 게 사용자환경(UI)이다. 쉬워야 하고, 직관적이어야 한다. 다시 그리고, 다시 만들고, 디자이너에게 사실상 전권이 쥐어졌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개발자 우선 문화의 카카오와도 달랐던 부분이 여기에 있지 않았나 싶다. 라인은 디자이너가 디자인 관점에서 모든 서비스를 만들었고, 개발자는 디자인 팀의 완성된 아이디어를 어떻게든 구현해야 했다. 신규 서비스에서 헤게모니를 누가 쥐고 있느냐는 건 완성품의 모양새를 상당히 다르게 만든다. 결국 모바일에만 집중한다는 전략이 쉬운 사용법으로 연결됐고, 초기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다. 사실 내가 개인적으로 라인을 궁금하게 여겼던 계기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복잡하고 골치아프고 어려워서 쓰기 싫은데, 믹시는 모바일에서 별로고, 갈팡질팡하던 ‘SNS난민’이 라인으로 몰렸다는 이 일본 블로그 글이었다. 알면 알수록 이 얘기가 맞았다. 그리고 모바일이라는 근본적 제약에 스스로를 가둔 결정이 결과적으로 라인의 성공을 낳았다.

그렇다고 NHN재팬이 개발을 경시하는 회사도 아니다. 오히려 초기 시행착오는 카카오톡보다 훨씬 줄일 수 있었다. 역시 썩 성공하지 못했던 서비스들 덕분이었다. 한게임재팬은 분산서버 관리 기술을 필연적으로 갖춰야 하는 온라인 게임회사다. 게다가 한국 출신 개발자들은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다. 동시접속자가 급증하는 메신저앱(신년 이벤트가 있을 때 등)의 관리에 필수 노하우다. 폭증하는 부하를 여러 곳으로 나눠주는 기술이다. 방향으로 따지면 일대다. 검색은 반대다. 검색어가 들어왔을 때 정보가 위치한 곳을 순간적으로 찾아내는 기술이 핵심이다. 제각각인 수많은 요청을 적소로 연결해 주는 기술이 핵심인데 방향으로 비유하자면 다대일. 그러니까 전화국 오퍼레이터의 역할 같은 것인데, 네이버재팬의 존재가 이런 기술을 회사 내에 보유하게 해줬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수많은 요청을(하루 10억 건이 넘는 문자대화를) 처리할 수 있는 하드웨어 인프라가 필요했다. 라이브도어는 이런 데이터센터를 자회사로 갖고 있는 회사다. 인터넷을 통해 다뤄지는 데이터의 규모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요즘같은 시대에는 자체 하드웨어 역량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하지만 일본에서 자체 데이터센터를 갖고 있는 회사는 손으로 꼽는다.(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카카오도 데이터센터는 임대한다.) 게임과 검색, 블로그를 하기 위해 시작했던 일들이 결과적으로는 다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모아놓고 라인을 할 때 써먹어보려고 하니 얘기가 달라졌다. 황금구조였던 셈이다.

NHN재팬은 계속 어려웠다. 라인도 아직까지는 딱히 큰 돈을 벌고 있는 사업은 아니다. 하지만 올해 일본의 히트상품 가운데 라인은 2위로 꼽혔다. 1위는 도쿄의 새로운 자부심이자 랜드마크인 스카이트리다.(도쿄타워보다 높은 동양 최고(最高)의 건축물이다.) 카카오가 흑자전환에 성공했다면 라인이라고 그러지 못하리란 법이 없다. 게다가 카카오의 성공은 NHN의 한국 본사에 의해 속속들이 벤치마킹된다. ‘라인팝’이 ‘애니팡’의 짝퉁이라고는 하지만 베트남과 브라질의 라인 사용자에겐 애니팡이 전달되는 속도보다 라인팝이 전달되는 속도가 우선이다. 오히려 NHN이 우리가 그동안 중요한 한국의 역할이라고 자위해 왔던 ‘테스트베드로서의 한국’ 또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 인프라를 갖춘 나라’로서의 한국을 실질적으로 사업에 잘 써먹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국에서 성공한 모델을 해외에 재빨리 내놓아 시장을 만드는 일 말이다. 외국 기업에겐 그렇게 하라고 한국에 R&D센터를 지으라 권했으면서 한국 기업이 그렇게 해외에서 성공하는 걸 탓할 필요는 없는 게 아닐까.

무엇보다, 지금 어려워도, 그 어려움이야말로 성공의 더 큰 발판이 될 수 있다. 라인의 성공 사례는 그 증명이다.

p.s. 신문에 나간 기사 링크를 클릭하셨다면 아시겠지만, 라인시떼(ラインして)는 “라인해”라는 뜻이다. “문자해”라고 말하듯.

일본, 모바일

지난주 일본에 다녀왔다. 이틀 동안 여러 회사를 방문하고, 테크크런치 도쿄 컨퍼런스에 참석하는 일정. 사실 일본에는 몇 번 가보긴 했는데, 모두 일로 갔던지라 갈 때마다 일본이 부산 쯤 되는 듯한 짧은 일정 탓에 뭘 찬찬히 둘러볼 겨를이 없었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도대체 하라주쿠가 왜 좋다고 하는지, 오타쿠의 마을이라는 아키하바라는 어디에 붙어있는 건지, 연인들의 성지라는 오다이바는 과연 도쿄 맞긴 한건지… 가봐야 알지!
하지만 그래도 몇 가지 고마웠던 건 다행히도 영어를 하시는 일본 분들이 친절하게 안내해주시고 저녁도 함께 먹어주신 덕분에 현지 분위기를 많이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일본에 계신 한국 분들은 세계 어디서나 한국인은 다 그렇듯 주변을 압도하는 성실함과 열정을 전해주셨고, 일본어로 대화할 일도 많았지만 이번엔 세계에서 제일 훌륭한 일본어-한국어 통역 선생님을 만났던지라(헤드셋을 쓰지 않는 근거리 대면 대화에서 동시통역을 하는 건 처음봤다) 언어 장벽도 생각보다 낮았다. 그리고 재미있는 경험, 또는 독특한 경험들이 일본을 다르게 보게 해줬다.

우선 약속 시간에 놀랐다. 최근 몇 년 동안은 미국과 유럽을 주로 다녔는데 어떤 곳에서도 오후 3시 이후로 약속을 잡았던 적이 없다. 왜 늦은 약속을 잡지 않는 것인지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오후 4시쯤 방문하면 혹시나 시간이 늦어질 경우 오후 5시(퇴근시간)가 넘어서 끝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미국이나 유럽인들은 퇴근시간을 중시한다는 건 직간접적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들이 ‘칼퇴근’을 하는 건 아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정말 늦게까지 일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다 열심히 한다. 하루 12시간씩 일주일에 6일 이상 일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다만 그들 모두 자신은 그렇게 일해도, 남들의 저녁 시간까지 뺏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일본에선 아니었다. 좀 급하게 약속을 잡았더니, “그러면 저녁에 만나도 되겠느냐?”는 답이 돌아왔다.(미국이나 유럽에선 “그럼 이번엔 어렵겠습니다”라고 한다.) 출장자가 저녁시간이라고 딱히 할 일이 있을리 없으니 당연히 시간 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리의 공동창업자인 야마기시 고타로 부사장은 6시에 인터뷰 장소로 나타났다. 피곤에 찌든 얼굴로. 야마기시 부사장은 “오늘 아침부터 IR이 있어서 투자자들을 만나고, 기자들 질문에 답하느라 좀 힘들었다”며 웃었다. 그래놓고도 한시간 넘게 열정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NHN재팬에서도 모리카와 아키라 대표가 일정이 너무 바쁘다면서 5시반에 찾아오면 안되겠느냐고 물었다. 두 약속 모두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7시가 넘었다. 그때부터 실무자들이 오피스 투어를 시켜줬다. 인상적인 건 8시가 다 돼 가는 늦은 시간에도 직원들의 70%가 남아서 일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회사 식당에서는 저녁 도시락도 팔고 있었다. “야근이 일상적인가요?”라고 물었다. “그럼 김기자는 7시에 퇴근하시나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물론 아니다. 잊고 있었다. 동아시아의 우리는 모두 워커홀릭이란 걸.

또 한가지 흥미로웠던 건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 일본에서는 카카오톡이란 서비스의 존재감은 사실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소비자들은 카카오를 모른다. 여기선 모두 라인을 쓴다. 하지만 업계에선 다르다. 이 사진은 테크크런치 도쿄 컨퍼런스. 스마트폰의 급성장에 힘입어 성장한 서비스들을 야후재팬 카와베 켄타로 COO가 소개하면서 야후재팬의 스마트폰 시프트 계획을 발표하는 중이다. 왼쪽 두번째의 저 로고가 바로 카카오톡이다. 일본 소비자 사이에서는 존재감도 없는 서비스가 한국에서 급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주목할 만한 서비스로 소개되는 중이었다. 그리나 디엔에이(DeNA)처럼 미국과 유럽에서도 세를 키워가는 일본 업체들도 저마다 SK텔레콤과의 제휴, 다음과의 제휴, 엔씨소프트와의 제휴 등을 디즈니와의 제휴 못잖은 중요한 파트너십이라며 투자자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었다. 한국이 3500만 명이 스마트폰을 쓰고 있는 세계 메이저 모바일 시장인 덕분이었다.(한국은 스마트폰 사용자의 절대 규모면에서도 세계 Top5에 들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삼성전자 갤럭시 시리즈는 일본에서 왜이리 잘 팔리는지, 정말 갤럭시 광고가 시부야와 롯폰기, 신주쿠를 휩쓸고 있었다. 물론 아이폰이 훨씬 인기이긴 하지만, 아이폰 바로 다음은 누가 뭐래도 갤럭시였다. 일본 스마트폰이 아니라. 그러니 일본 모바일 업계에서 한국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다.

일본 자체의 활력도 넘쳤다. “다른 건 몰라도, 불황기에도 스마트폰 게임은 잘 될 것”이란 얘기를 이 짧은 출장 동안 너댓번은 들은 것 같다. 그것도 서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물론 만난 사람들이 다 IT 업계 사람들이니까 그렇긴해도, 확실히 뭔가 느껴졌다. 예를 들어 그리가 만든 도리란도(Driland) 같은 모바일 카드 게임은 게임 자체가 큰 인기라서 TV애니메이션도 만들어졌는데, IT와는 아무 관계없는 가이드분에게 도리란도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중년 남성의 입에서 바로 도리란도 주제곡이 흥얼거리면서 나올 정도였다. 테크크런치의 알렉시아 토시스 편집장은 ‘미국 미디어에 소개되는 법’이란 발표도 컨퍼런스에서 했는데, 내용 자체야 별 게 없었지만 “세계로 나오세요, 여러분!”이라며 컨퍼런스에 참여한 벤처기업인들을 끌어당기는게 인상적이었다. 일본 기업들의 정신나간(crazy) 아이디어를 일본에서만 사업화하지 말고 미국에서 펼쳐보란 것이다. 미국에서 관심을 끌면 세계가 본다면서. 알렉시아가 “여러분, 일본은 진짜 쿨한 나라지만, 일본이 세계의 전부가 아니에요. 바깥은 더 환상적입니다”라고 얘기하자 박수도 쏟아졌다. 일본을 갈라파고스라고 비웃었다면, 조만간 생각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세계 3위 경제대국의 스타트업들이 세계로 쏟아져 나오면 뭐가 달라질지 모르니까. 무엇보다 일본은 모바일을 꽤 오래 전부터 해왔다. 아이폰 이전의 모바일이 뭐 별거냐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피처폰으로 이메일도 보고, 게임도 하고, 인터넷 검색도 하고, 심지어 휴대전화용 소설인 ‘게타이 소설’이 베스트셀러로 출판되기도 했던 게 일본이다. 휴대전화로 해볼 수 있는 걸 거의 다 해봤고, 이제 스마트폰이란 더 훌륭한 플랫폼만 열렸다는 뜻이다. 이번에 만난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PC에서야 일본이 뒤졌을지 몰라도 모바일에선 아니다”라는 자신감으로 넘쳐 있었다.

물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건 일본 시장 자체의 매력이다. 이날 북미에서 인기를 끌던 위버(Uber)라는 스마트폰 앱 개발사의 창업자 트래비스 캘러닉도 도쿄에 와서 발표를 했는데, 발표 도중 “다음달 쯤 일본 사업을 시작할 계획인데 취업할 사람 구해요”라며 일본 지사 간접 구인광고를 시작했다. 위버는 콜택시처럼 리무진 사업자를 개인들과 연결해주는 서비스다. 택시 잡기 힘든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몬트리얼, 샌프란시스코 같은 곳에서 인기를 끌었다. 스마트폰에서 위버 앱을 열면 인근의 차들이 나오고, 차종과 가격을 선택하면 도착 예정 시간이 GPS의 현재 위치와 함께 스마트폰에 뜬다. 결제까지 앱 안에서 끝나기 때문에 편리할 뿐만 아니라 택시기사와 실랑이할 필요도 없고, 쓸데없이 거리에서 땀흘리거나 추위에 떨 이유도 없다. 택시값이 비싼 도쿄에선 확실히 매력 있을 것 같다. 위버로서는 첫 아시아 시장 진출을 당연히 일본으로 봤다. 인구 1억 명에 경제규모 세계 3위의 거대한 시장은 일본의 압도적인 장점이다.

그렇다고 부러워만 하고 있을 건 또 뭐람. 그렇다면 일본에 가면 되지. 이렇게 생각한 사람들도 만났다. 스카이벨루가라는 작은 일본 게임회사였는데, 직원은 4명. 그런데 그들 모두 한국인이다. 한국계 일본인 말고 한국에서 교육받고 일본어는 나이들고서야 배운 토종 한국인.

이 회사 창업자들은 한국에서 서든어택, 던전앤파이터 같은 게임을 만들고 서비스하던 사람들이다. 이제 대세는 모바일이라고 생각했고, 모바일 게임은 일본이라 생각했으며, 그러면 본토에서 일해보자고 건너온 것인데… 왜 미국에 안 가고 일본에 왔을까? 신일하 대표는 숫자가 모든 걸 말한다고 했다. 사실 몰랐다. 모바일 게임 사용자들도 ARPU(1인 당 매출액)를 계산하는데, 일본은 미국이나 중국을 훌쩍 뛰어넘는 모바일 ARPU 세계 1위 국가라고 했다. 참고로, 한국은 중국보다 낮다고… 이외에도 장점이 많았다. 예를 들어 한국인이 한국에서 게임회사를 세워 게임을 팔려고 하면 세계 시장에선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있어서 모두가 꺼린다고 했다. 신용도의 문제인데, 예를 들어 중국 회사와 계약하면 계약 완료 시점에 제품이 제대로 전달될 가능성이 절반도 안된다는 것이다. 한국 회사는 중국과는 달라서 어찌어찌 계약을 지키긴 하는데, 과정이 뭔가 불안하고, 완성품을 받고도 찝찝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반면 일본 회사는 계약은 칼이어서 무조건 완수하낸다고. 그래서 일본 기업으로 등록돼 있으면 돈을 벌었을 때 세금을 일본에 내야 하긴 하지만, 성공할 기회를 잡거나 계약을 따내기는 훨씬 쉽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시장이 워낙 큰데다 오타쿠 문화 덕분에 소비자 충성도도 높아서 ‘대박’을 노리지만 않는다면 생존 자체는 한국보다 쉽다는 얘기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니까 일본은 지금 한국 또는 주변국의 기업가들에게 성공을 위한 발판 역할까지 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우리는 해외의 뛰어난 인재들에게 문을 얼마나 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