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N 매트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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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의 유물인 BCG매트릭스는 사실 요즘은 별로 쓰이지 않는다. 이 네 칸짜리 사각형 도표가 설명하지 못하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NHN의 조직 개편을 보면서 다시금 보스턴컨설팅그룹의 이 옛 매트릭스 생각이 났다. 물론 NHN이 과거의 유물을 끌어다 조직 개편을 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이 틀로 NHN의 변화를 바라보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좀 더 쉽게 이해가 간다. 원래 분석 도구란 게 그런 거니까. 6일의 조직개편안은 2000년 네이버와 한게임이 합병해 지금의 NHN이 생겨난지 13년 만에 생긴 가장 근본적이고 큰 변화다. 바꿔 말하면 시장이 13년 전과 비교해 너무너무 변했다는 뜻이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물론, 카카오 같은 경쟁사도 생겼다. 더 이상 예전처럼 네이버 없이는 인터넷을 말할 수 없는 세상도 아니다.

그래서 2개의 자회사를 만들고 한게임도 분할을 고려한다는 발표를 내놨다. 회사를 네 개로 나누겠다는 얘기다. 그래서 BCG매트릭스가 생각났다. BCG매트릭스는 현재의 상대적 시장점유율과 앞으로의 성장가능성에 따라 네가지로 사업영역을 구분한다. 여기엔 전제가 깔려 있는데, ‘상대적 시장점유율’이 높다면 이익도 높다는 게 전제다. 상대적 시장점유율이란 단순한 시장점유율이 아니라 가장 큰 경쟁자에 대비한 시장점유율이다. 예를 들어 30%의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는 제품이 있다고 했을 때 가장 큰 경쟁자의 시장점유율이 60%라면 상대적 시장점유율은 50%다. 반면 똑같이 30%의 시장점유율을 가져도 가장 큰 경쟁자의 점유율이 3%에 불과하다면 시장점유율은 1000%다. 이런 기준에 따라 현재 (상대적으로) 시장을 지배하면서 높은 이익을 내지만 앞으로의 성장가능성은 떨어지는 분야를 ‘캐시카우’로 분류한다. NHN에서는 검색광고 등을 주력으로 하는 네이버가 여기에 해당한다. 또 돈도 많이 벌고 성장성도 높은 분야를 ‘스타’라고 부른다. 일본 시장 1위에다 최근 글로벌 사용자도 1억 명을 넘었고, 구글 앱스토어에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내는 앱으로 꼽힌 모바일 메신저 ‘라인’이야말로 NHN이 내세우는 스타다. 가능성은 높지만 현재 돈을 벌지는 못하는 분야는 ‘?’(물음표)로 표시한다. NHN에겐 모바일 사업이 여기 어울린다. 그리고 ‘키워봐야 주인을 물지도 몰라서’ 개(dog)로 묘사되는, 돈도 못 벌고 성장성도 떨어지는 분야가 있다. 한게임이 지금 캐시카우와 개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닐까.

BCG매트릭스가 요즘 잘 사용되지 않는 이유는 이게 기업의 투자를 결정하는 분석 도구였기 때문이다. 보스턴컨설팅은 사업을 이 매트릭스로 분류해 놓은 뒤 캐시카우 분야에서는 투자를 줄이면서 최대한 돈을 뽑아내라고 조언했고, 개가 된 사업은 정리할 것을 권했다. 그리고 스타에 투자를 집중하면서 물음표 분야에 대해서도 적절히 투자해 차세대 스타를 키우라고 컨설팅했다. 당연히 이런 식의 조언이 현실에서 먹힐 리가 없었다. 실제 비즈니스에서 벌어지는 일은 ‘개’라고 분류됐던 사업 분야가 혁신을 통해 스타가 되기도 하고, 스타인 줄 알았더니 개처럼 주인을 되무는 사업도 천지였다. 캐시카우에서 섣불리 돈을 뽑아내 물음표에 투자하면 회사가 휘청거리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현실은 결국 경쟁과 혁신, 실행의 문제인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 상대적 시장점유율이 수익성을 결정한다는 건 제조업 시대의 신화다. 닷컴 기업들의 수익성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CG매트릭스는 현재의 기업 상황을 판단하는 데에는 여전히 유용한 도구다. 아무리 시장에서 1위라고 해도 경쟁자를 늘 고려하게 만들고, 성장 가능성에 따라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NHN의 조직개편안도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해가 간다. 무엇보다 네이버와 한게임을 장기적으로 나누기로 했다. NHN으로 합쳐져 있는 게 서로의 발전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한게임은 네이버의 대중적인 소비자 기반을 흡수하며 성장했고, 네이버는 한게임으로 번 자금을 기반으로 고도화되던 선순환의 시기는 끝났다. 이제 네이버는 사행성 게임 논란의 한게임 때문에 대중적 기반이 훼손되고, 한게임은 네이버의 공공재적인 성격 때문에 수익 사업에 제한을 받는다. 두 회사의 분리는 당연한 수순이다. 어쩌면 한게임이 위 그림의 4사분면으로 가는 게 아니라 여전히 3사분면에 남게 만드는 방법이 바로 분사일는지 모른다. 성장가능성을 기준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런 식의 분사는 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라인은 일본을 기반으로 봤을 땐 스타에 해당하지만 글로벌하게 봤을 땐 아직 물음표다. 1사분면에 남아있는 글로벌 사업을 빨리 2사분면까지 옮겨오는 게 ‘라인플러스’를 분사한 이유다. 경쟁자를 재정의한 덕분에 지금 같은 분류가 가능했던 셈이다. 캠프 모바일이란 자회사도 마찬가지다. 물음표라고 부르기엔 상대적 시장점유율이 매우 높다. 모바일에서도 네이버의 점유율은 압도적이니까. 다만 이는 검색 등 기존 네이버 서비스의 모바일 활용을 포함했을 때의 얘기다. NHN이 모바일에서 그나마 힘을 쓰는 건 네이버 검색과 라인인데, 이걸 뺀 모바일 전문 회사를 만들었다. 경쟁을 창의적으로 재정의했다는 생각이 든다. 캠프모바일이야 힘든 일을 해야겠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그만큼 회사가 지원하겠다는 의지로도 보인다.

분사는 주로 세 가지 정도의 이유로 진행된다. 하나는 분명히 성장할 수 있는 사업인데, 기존 회사 조직의 유산(legacy)이 발목을 잡아서 전혀 새로운 성장토양에서 사업을 성장시킬 필요가 있을 때 한다. SK플래닛(이 회사가 잘 하고 있느냐는 건 별개로)의 분사 같은 게 대표적이다. 두번째는 자금 확보를 위해 경쟁력이 있는 분야를 떼어내 다듬은 뒤 매각하기 위해서다. 구조조정 시기의 기업들이 이런 일을 많이 하는데 웅진코웨이가 최근 코웨이가 된 게 이런 사례다. 그리고 나머지는 특정 분야 기술 수준을 빠르게 높이기 위해서다. 제록스의 팔로알토리서치센터(PARC)라거나 SRI 출신들이 나가서 만들었다 애플에 인수된 시리(Siri) 같은 회사가 예가 되겠다. 캠프모바일과 라인플러스의 분사는 물론 첫번째다.

NHN은 한국적 사고로 성공한 회사다. 나중에 다시 적을 일이 있겠지만, 네이버 검색은 한국에서는 구글 검색과 다른 독창적인 장점이 있다. 그리고 이런 장점은 상당부분 한국의 언어적, 문화적 특수성에 대한 이해에 기반한다. 당연히 글로벌 사업을 벌이려 할 땐 이런 특수한 한국적 사고가 방해가 된다. 더 보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게다가 일본에서 라인이 거둔 성공은 찬란하긴 하지만 우리
는 일본적인 게 세계적이지 않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NHN에게는 이런 지역적 특수성을 벗어난 성장 토양이 필요했다. 이게 라인플러스의 배경이 됐을 것이다.(하지만 그렇다면 라인플러스 본사는 홍콩이나 싱가포르로 가야하는 게 아닐까?) 캠프모바일도 마찬가지다. 경쟁사 얘길 하면 좀 그렇지만, 카카오 예를 들어보자. 카카오는 태생이 모바일이다. 직원들은 모두 카카오 아지트로 하루종일 대화하고, 일을 본다. 공식 커뮤니케이션도 카카오톡으로 한다. 의사결정에는 20, 30대 직원들의 견해가 대부분 반영된다. 이석우 대표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보다 젊은 저 친구들이 모바일을 훨씬 잘 이해하는데, 경영진이 어떻게 감히 맘대로 결정을 내리겠어요. 직원들 얘기가 더 맞아요.” 공부해서 이해하는 것과, 그 자체가 삶인 것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카카오톡이 라인보다 기능상 훌륭할 게 없어도 한국에서 시의적절하게 성공했던 게 이런 이유고, 이건 거꾸로 봐서 네이버가 구글이나 야후보다 기능상 훌륭할 게 없어도 시의적절하게 성공했던 이유기도 하다. 네이버는 닷컴세대의 문화지만 카카오는 모바일 세대의 문화다. 캠프모바일은 그래서 시대적 단절을 위해서라도 분당을 떠나야 했을 것이다. 과연 캠프모바일의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뤄질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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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시떼

라인이 일본에서 1위라는 소리야 한참 전부터 들었다. NHN에서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안티 네이버’ 정서가 강한 주위 분들과 라인 얘기를 할 때면 늘 부정적인 얘기를 듣곤 했다. “TV 광고 엄청나게 한다던데, 돈으로 마케팅해서 점유율 산 거지 뭐.” “일본에서 1위라곤 해도, 그게 뭐 얼마 되기는 한 거야?”, “진짜로 일본 사람들이 라인 좋아하는 거 맞아?”, “카카오톡 베낀 거잖아. 한국에서 다른 서비스 다 베끼듯.”
직접 가서 보고 들은 건 좀 달랐다. 한국에서야 NHN이 공룡이고, 독과점업체이고, 무소불위의 1등이지만, 일본에선 사실 존재감 없는 작은 업체였다. 게다가 손 대는 사업마다 무엇 하나 제대로 성공한 게 없었다. 게임은 언어 장벽이 없으니 통할 거라면서 일본에 건너갔지만 사실은 언어장벽보다 더한 문화장벽이 있는 게 게임 사업이었다. 한게임재팬은 정말 수없이 문 닫을 위기를 넘기며 간신히 살아남았다. 일본에도 검색이 통할 거라며 네이버재팬을 만들었지만 역시 별 반응이 없었고, 소셜미디어의 시대라며 인수했던 라이브도어도 그저 그랬다.

NHN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테고, 나도 그랬다. 전혀 몰랐다. 이런 실패들이 켜켜이 쌓이면 성공의 배경이 될 수 있다는 걸.

기사에도 썼지만 라인이 성공한 건 역설적으로 계속 죽을 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최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누가 뭐래도 ‘믹시’였다. 일본 밖에선 누구도 몰랐지만 일본 안에선 모두가 믹시를 썼다. 문제는 스마트폰이 믹시가 잘 쌓아놓은 일본 문화라는 벽을 허물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日製가 아닌 Made in USA 아이폰이 휴대전화 판매 1위를 차지하기 시작했고, 역시 미국에서 바다를 건너온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사용자를 급격히 늘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믹시는 트위터와 경쟁하기보다는 그냥 1위를 지키는데 급급했다. 일본에선 한국처럼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의 전환이 급격하지도 않았고, 일본 소비자들은 한국 소비자처럼 유행을 따라 쏠려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일본 대지진과 함께 NHN재팬이 움직였다. 물론 계기는 카카오톡이었다. 전화가 모두 불통이 됐는데, 한국에서 안부를 묻는 카카오톡 메시지는 문제없이 전송됐다. 인터넷이야 원래 불통되지 않도록 병렬로 연결되는 수평적인 네트워크로 설계됐으니 통신사가 모든 연결을 중계해줘야 하는 이동통신망보다 훨씬 위기에 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서비스가 일본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까지는 그리 어려울 게 없었다. 라인이 특별한 건 그 다음부터다.

3월 대지진을 겪고, 6월에 라인 서비스가 시작됐다. 3개월 만에 뚝딱 만들었지만, 서비스 시작 때부터 일본어와 동시에 영어 서비스가 열렸다. 직원들 덕분이었다. NHN재팬의 개발자 가운데에는 한국인, 미국인, 중국인, 프랑스인, 멕시코인 등이 함께 일한다. 한두 명이 아니고 200명이다. 전체 직원의 20%가 일본인이 아니다. 일본인으로 좋은 직원을 채우고 싶지만 한국계 작은 회사가 일본에서 좋은 인재를 뽑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 개발자를 뽑았다. 일본 기업과는 달리 외국계 기업이라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기업문화같은 게 없다면서 이들에게 어필했다. 한국 기업문화를 안다면 말도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겠지만, 멕시코인이 한국 기업 문화까지 생각할 이유도 없었을 테고, 어쨌든 NHN재팬은 약속했던 기업문화를 만들어냈다. 일방적인 지시도, 쓸데없는 허례허식도 줄어들었다. 외국인 커뮤니티에서 ‘외국인이 일하기 좋은 회사’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다른 외국인 직원들도 꼬리를 물고 입사지원서를 냈다. 다양성은 계속 늘어났고, 기업문화도 이런 다양성을 계속 존중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나갔다. 다른 일본 기업들보다 못했기 때문에 달라질 수 있었다. ‘다른 기업’이 ‘다른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영어로 된 서비스를 만들었다고 국제화가 되는 것도 아니고, 기업문화가 수평적이라고 인기있는 서비스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또 다른 제약이 라인을 성공시켰다. Mobile First였다. 카카오톡을 잘 벤치마킹했던 라인은 이 앱을 처음부터 모바일 용으로 만들었다. PC 서비스도 하고 있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다. 모바일 앱은 기본적으로 PC 앱 개발과 개념이 다르다. 화면이 작고, 한번에 보여줄 수 있는 정보량이 극히 제한적이라 가장 중요한 게 사용자환경(UI)이다. 쉬워야 하고, 직관적이어야 한다. 다시 그리고, 다시 만들고, 디자이너에게 사실상 전권이 쥐어졌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개발자 우선 문화의 카카오와도 달랐던 부분이 여기에 있지 않았나 싶다. 라인은 디자이너가 디자인 관점에서 모든 서비스를 만들었고, 개발자는 디자인 팀의 완성된 아이디어를 어떻게든 구현해야 했다. 신규 서비스에서 헤게모니를 누가 쥐고 있느냐는 건 완성품의 모양새를 상당히 다르게 만든다. 결국 모바일에만 집중한다는 전략이 쉬운 사용법으로 연결됐고, 초기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다. 사실 내가 개인적으로 라인을 궁금하게 여겼던 계기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복잡하고 골치아프고 어려워서 쓰기 싫은데, 믹시는 모바일에서 별로고, 갈팡질팡하던 ‘SNS난민’이 라인으로 몰렸다는 이 일본 블로그 글이었다. 알면 알수록 이 얘기가 맞았다. 그리고 모바일이라는 근본적 제약에 스스로를 가둔 결정이 결과적으로 라인의 성공을 낳았다.

그렇다고 NHN재팬이 개발을 경시하는 회사도 아니다. 오히려 초기 시행착오는 카카오톡보다 훨씬 줄일 수 있었다. 역시 썩 성공하지 못했던 서비스들 덕분이었다. 한게임재팬은 분산서버 관리 기술을 필연적으로 갖춰야 하는 온라인 게임회사다. 게다가 한국 출신 개발자들은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다. 동시접속자가 급증하는 메신저앱(신년 이벤트가 있을 때 등)의 관리에 필수 노하우다. 폭증하는 부하를 여러 곳으로 나눠주는 기술이다. 방향으로 따지면 일대다. 검색은 반대다. 검색어가 들어왔을 때 정보가 위치한 곳을 순간적으로 찾아내는 기술이 핵심이다. 제각각인 수많은 요청을 적소로 연결해 주는 기술이 핵심인데 방향으로 비유하자면 다대일. 그러니까 전화국 오퍼레이터의 역할 같은 것인데, 네이버재팬의 존재가 이런 기술을 회사 내에 보유하게 해줬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수많은 요청을(하루 10억 건이 넘는 문자대화를) 처리할 수 있는 하드웨어 인프라가 필요했다. 라이브도어는 이런 데이터센터를 자회사로 갖고 있는 회사다. 인터넷을 통해 다뤄지는 데이터의 규모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요즘같은 시대에는 자체 하드웨어 역량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하지만 일본에서 자체 데이터센터를 갖고 있는 회사는 손으로 꼽는다.(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카카오도 데이터센터는 임대한다.) 게임과 검색, 블로그를 하기 위해 시작했던 일들이 결과적으로는 다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모아놓고 라인을 할 때 써먹어보려고 하니 얘기가 달라졌다. 황금구조였던 셈이다.

NHN재팬은 계속 어려웠다. 라인도 아직까지는 딱히 큰 돈을 벌고 있는 사업은 아니다. 하지만 올해 일본의 히트상품 가운데 라인은 2위로 꼽혔다. 1위는 도쿄의 새로운 자부심이자 랜드마크인 스카이트리다.(도쿄타워보다 높은 동양 최고(最高)의 건축물이다.) 카카오가 흑자전환에 성공했다면 라인이라고 그러지 못하리란 법이 없다. 게다가 카카오의 성공은 NHN의 한국 본사에 의해 속속들이 벤치마킹된다. ‘라인팝’이 ‘애니팡’의 짝퉁이라고는 하지만 베트남과 브라질의 라인 사용자에겐 애니팡이 전달되는 속도보다 라인팝이 전달되는 속도가 우선이다. 오히려 NHN이 우리가 그동안 중요한 한국의 역할이라고 자위해 왔던 ‘테스트베드로서의 한국’ 또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 인프라를 갖춘 나라’로서의 한국을 실질적으로 사업에 잘 써먹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국에서 성공한 모델을 해외에 재빨리 내놓아 시장을 만드는 일 말이다. 외국 기업에겐 그렇게 하라고 한국에 R&D센터를 지으라 권했으면서 한국 기업이 그렇게 해외에서 성공하는 걸 탓할 필요는 없는 게 아닐까.

무엇보다, 지금 어려워도, 그 어려움이야말로 성공의 더 큰 발판이 될 수 있다. 라인의 성공 사례는 그 증명이다.

p.s. 신문에 나간 기사 링크를 클릭하셨다면 아시겠지만, 라인시떼(ラインして)는 “라인해”라는 뜻이다. “문자해”라고 말하듯.

일본, 모바일

지난주 일본에 다녀왔다. 이틀 동안 여러 회사를 방문하고, 테크크런치 도쿄 컨퍼런스에 참석하는 일정. 사실 일본에는 몇 번 가보긴 했는데, 모두 일로 갔던지라 갈 때마다 일본이 부산 쯤 되는 듯한 짧은 일정 탓에 뭘 찬찬히 둘러볼 겨를이 없었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도대체 하라주쿠가 왜 좋다고 하는지, 오타쿠의 마을이라는 아키하바라는 어디에 붙어있는 건지, 연인들의 성지라는 오다이바는 과연 도쿄 맞긴 한건지… 가봐야 알지!
하지만 그래도 몇 가지 고마웠던 건 다행히도 영어를 하시는 일본 분들이 친절하게 안내해주시고 저녁도 함께 먹어주신 덕분에 현지 분위기를 많이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일본에 계신 한국 분들은 세계 어디서나 한국인은 다 그렇듯 주변을 압도하는 성실함과 열정을 전해주셨고, 일본어로 대화할 일도 많았지만 이번엔 세계에서 제일 훌륭한 일본어-한국어 통역 선생님을 만났던지라(헤드셋을 쓰지 않는 근거리 대면 대화에서 동시통역을 하는 건 처음봤다) 언어 장벽도 생각보다 낮았다. 그리고 재미있는 경험, 또는 독특한 경험들이 일본을 다르게 보게 해줬다.

우선 약속 시간에 놀랐다. 최근 몇 년 동안은 미국과 유럽을 주로 다녔는데 어떤 곳에서도 오후 3시 이후로 약속을 잡았던 적이 없다. 왜 늦은 약속을 잡지 않는 것인지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오후 4시쯤 방문하면 혹시나 시간이 늦어질 경우 오후 5시(퇴근시간)가 넘어서 끝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미국이나 유럽인들은 퇴근시간을 중시한다는 건 직간접적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들이 ‘칼퇴근’을 하는 건 아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정말 늦게까지 일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다 열심히 한다. 하루 12시간씩 일주일에 6일 이상 일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다만 그들 모두 자신은 그렇게 일해도, 남들의 저녁 시간까지 뺏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일본에선 아니었다. 좀 급하게 약속을 잡았더니, “그러면 저녁에 만나도 되겠느냐?”는 답이 돌아왔다.(미국이나 유럽에선 “그럼 이번엔 어렵겠습니다”라고 한다.) 출장자가 저녁시간이라고 딱히 할 일이 있을리 없으니 당연히 시간 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리의 공동창업자인 야마기시 고타로 부사장은 6시에 인터뷰 장소로 나타났다. 피곤에 찌든 얼굴로. 야마기시 부사장은 “오늘 아침부터 IR이 있어서 투자자들을 만나고, 기자들 질문에 답하느라 좀 힘들었다”며 웃었다. 그래놓고도 한시간 넘게 열정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NHN재팬에서도 모리카와 아키라 대표가 일정이 너무 바쁘다면서 5시반에 찾아오면 안되겠느냐고 물었다. 두 약속 모두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7시가 넘었다. 그때부터 실무자들이 오피스 투어를 시켜줬다. 인상적인 건 8시가 다 돼 가는 늦은 시간에도 직원들의 70%가 남아서 일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회사 식당에서는 저녁 도시락도 팔고 있었다. “야근이 일상적인가요?”라고 물었다. “그럼 김기자는 7시에 퇴근하시나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물론 아니다. 잊고 있었다. 동아시아의 우리는 모두 워커홀릭이란 걸.

또 한가지 흥미로웠던 건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 일본에서는 카카오톡이란 서비스의 존재감은 사실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소비자들은 카카오를 모른다. 여기선 모두 라인을 쓴다. 하지만 업계에선 다르다. 이 사진은 테크크런치 도쿄 컨퍼런스. 스마트폰의 급성장에 힘입어 성장한 서비스들을 야후재팬 카와베 켄타로 COO가 소개하면서 야후재팬의 스마트폰 시프트 계획을 발표하는 중이다. 왼쪽 두번째의 저 로고가 바로 카카오톡이다. 일본 소비자 사이에서는 존재감도 없는 서비스가 한국에서 급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주목할 만한 서비스로 소개되는 중이었다. 그리나 디엔에이(DeNA)처럼 미국과 유럽에서도 세를 키워가는 일본 업체들도 저마다 SK텔레콤과의 제휴, 다음과의 제휴, 엔씨소프트와의 제휴 등을 디즈니와의 제휴 못잖은 중요한 파트너십이라며 투자자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었다. 한국이 3500만 명이 스마트폰을 쓰고 있는 세계 메이저 모바일 시장인 덕분이었다.(한국은 스마트폰 사용자의 절대 규모면에서도 세계 Top5에 들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삼성전자 갤럭시 시리즈는 일본에서 왜이리 잘 팔리는지, 정말 갤럭시 광고가 시부야와 롯폰기, 신주쿠를 휩쓸고 있었다. 물론 아이폰이 훨씬 인기이긴 하지만, 아이폰 바로 다음은 누가 뭐래도 갤럭시였다. 일본 스마트폰이 아니라. 그러니 일본 모바일 업계에서 한국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다.

일본 자체의 활력도 넘쳤다. “다른 건 몰라도, 불황기에도 스마트폰 게임은 잘 될 것”이란 얘기를 이 짧은 출장 동안 너댓번은 들은 것 같다. 그것도 서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물론 만난 사람들이 다 IT 업계 사람들이니까 그렇긴해도, 확실히 뭔가 느껴졌다. 예를 들어 그리가 만든 도리란도(Driland) 같은 모바일 카드 게임은 게임 자체가 큰 인기라서 TV애니메이션도 만들어졌는데, IT와는 아무 관계없는 가이드분에게 도리란도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중년 남성의 입에서 바로 도리란도 주제곡이 흥얼거리면서 나올 정도였다. 테크크런치의 알렉시아 토시스 편집장은 ‘미국 미디어에 소개되는 법’이란 발표도 컨퍼런스에서 했는데, 내용 자체야 별 게 없었지만 “세계로 나오세요, 여러분!”이라며 컨퍼런스에 참여한 벤처기업인들을 끌어당기는게 인상적이었다. 일본 기업들의 정신나간(crazy) 아이디어를 일본에서만 사업화하지 말고 미국에서 펼쳐보란 것이다. 미국에서 관심을 끌면 세계가 본다면서. 알렉시아가 “여러분, 일본은 진짜 쿨한 나라지만, 일본이 세계의 전부가 아니에요. 바깥은 더 환상적입니다”라고 얘기하자 박수도 쏟아졌다. 일본을 갈라파고스라고 비웃었다면, 조만간 생각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세계 3위 경제대국의 스타트업들이 세계로 쏟아져 나오면 뭐가 달라질지 모르니까. 무엇보다 일본은 모바일을 꽤 오래 전부터 해왔다. 아이폰 이전의 모바일이 뭐 별거냐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피처폰으로 이메일도 보고, 게임도 하고, 인터넷 검색도 하고, 심지어 휴대전화용 소설인 ‘게타이 소설’이 베스트셀러로 출판되기도 했던 게 일본이다. 휴대전화로 해볼 수 있는 걸 거의 다 해봤고, 이제 스마트폰이란 더 훌륭한 플랫폼만 열렸다는 뜻이다. 이번에 만난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PC에서야 일본이 뒤졌을지 몰라도 모바일에선 아니다”라는 자신감으로 넘쳐 있었다.

물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건 일본 시장 자체의 매력이다. 이날 북미에서 인기를 끌던 위버(Uber)라는 스마트폰 앱 개발사의 창업자 트래비스 캘러닉도 도쿄에 와서 발표를 했는데, 발표 도중 “다음달 쯤 일본 사업을 시작할 계획인데 취업할 사람 구해요”라며 일본 지사 간접 구인광고를 시작했다. 위버는 콜택시처럼 리무진 사업자를 개인들과 연결해주는 서비스다. 택시 잡기 힘든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몬트리얼, 샌프란시스코 같은 곳에서 인기를 끌었다. 스마트폰에서 위버 앱을 열면 인근의 차들이 나오고, 차종과 가격을 선택하면 도착 예정 시간이 GPS의 현재 위치와 함께 스마트폰에 뜬다. 결제까지 앱 안에서 끝나기 때문에 편리할 뿐만 아니라 택시기사와 실랑이할 필요도 없고, 쓸데없이 거리에서 땀흘리거나 추위에 떨 이유도 없다. 택시값이 비싼 도쿄에선 확실히 매력 있을 것 같다. 위버로서는 첫 아시아 시장 진출을 당연히 일본으로 봤다. 인구 1억 명에 경제규모 세계 3위의 거대한 시장은 일본의 압도적인 장점이다.

그렇다고 부러워만 하고 있을 건 또 뭐람. 그렇다면 일본에 가면 되지. 이렇게 생각한 사람들도 만났다. 스카이벨루가라는 작은 일본 게임회사였는데, 직원은 4명. 그런데 그들 모두 한국인이다. 한국계 일본인 말고 한국에서 교육받고 일본어는 나이들고서야 배운 토종 한국인.

이 회사 창업자들은 한국에서 서든어택, 던전앤파이터 같은 게임을 만들고 서비스하던 사람들이다. 이제 대세는 모바일이라고 생각했고, 모바일 게임은 일본이라 생각했으며, 그러면 본토에서 일해보자고 건너온 것인데… 왜 미국에 안 가고 일본에 왔을까? 신일하 대표는 숫자가 모든 걸 말한다고 했다. 사실 몰랐다. 모바일 게임 사용자들도 ARPU(1인 당 매출액)를 계산하는데, 일본은 미국이나 중국을 훌쩍 뛰어넘는 모바일 ARPU 세계 1위 국가라고 했다. 참고로, 한국은 중국보다 낮다고… 이외에도 장점이 많았다. 예를 들어 한국인이 한국에서 게임회사를 세워 게임을 팔려고 하면 세계 시장에선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있어서 모두가 꺼린다고 했다. 신용도의 문제인데, 예를 들어 중국 회사와 계약하면 계약 완료 시점에 제품이 제대로 전달될 가능성이 절반도 안된다는 것이다. 한국 회사는 중국과는 달라서 어찌어찌 계약을 지키긴 하는데, 과정이 뭔가 불안하고, 완성품을 받고도 찝찝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반면 일본 회사는 계약은 칼이어서 무조건 완수하낸다고. 그래서 일본 기업으로 등록돼 있으면 돈을 벌었을 때 세금을 일본에 내야 하긴 하지만, 성공할 기회를 잡거나 계약을 따내기는 훨씬 쉽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시장이 워낙 큰데다 오타쿠 문화 덕분에 소비자 충성도도 높아서 ‘대박’을 노리지만 않는다면 생존 자체는 한국보다 쉽다는 얘기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니까 일본은 지금 한국 또는 주변국의 기업가들에게 성공을 위한 발판 역할까지 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우리는 해외의 뛰어난 인재들에게 문을 얼마나 열었을까?

NHN과 아날로그 기록

오늘(27일) NHN이 고 김수남 사진작가의 유작 16만 점을 디지타이징해 포털 네이버를 통해 인터넷으로 검색가능한 콘텐츠로 서비스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김 작가는 ‘한국의 굿’, ‘아시아의 하늘과 땅’ 등 한국과 아시아의 무속신앙과 소수민족의 생활풍습 등을 사진으로 담아온 비슷한 분야에서는 국내에 유례를 찾기 힘든 독보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입니다. 그리고 제 아버지입니다.
오늘 NHN이 발표한 이 사업은 제게 많은 의미를 갖습니다. 무엇보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동시에 사회적인 얘기이기도 합니다. 한가지씩 천천히 적어보겠습니다.

사라지는게 아쉬운 역사

아버지는 2006년 태국에서 취재를 위한 출장 도중 뇌출혈로 돌아가셨습니다. 손을 써볼 길도 없었습니다. 급히 구한 비행기표로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출국 대기를 하던 그 순간에 전화로 부음을 듣던 순간이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그리고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버지의 작업은 급작스레 끝이 났고, 유작만 남았습니다. 16만 장에 이르는 슬라이드 필름과 네거티브 필름, 그리고 인화지였습니다. 도대체 이걸 들고 뭘 할 수 있을지는 아버지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작가는 떠났지만 그 사진들은 남았습니다. 한국과 아시아의 잊혀져 가는 전통문화, 그것도 왕실이나 귀족들의 문화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기층문화에 대한 사진이었습니다. 한 때, 혹은 지금까지도 근대화와 서구화, 도시화에 목을 매거나 여전히 목을 매고 있는 아시아의 수많은 정부는 이런 걸 타파해야 할 미신이라고 불렀고, 후진적인 사회의 잔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게 아니고 이런 것이야말로 우리 스스로를 규정하는 진짜 원형의 문화이며, 한국인과 아시아 각국 사람들의 정서를 구성하는 참된 뿌리라고 얘기해봐야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변했고, 조금씩 사회가 바뀌어가면서 그 가치가 다시 조명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누군가에겐 이런 사진이 필요합니다. 태국의 인류학자가 자신들의 산악 지방에 한 때 거주했던 소수민족의 생활양식을 연구할 때, 아름다운 필리핀 민다나오섬의 문화가 반군 활동 때문에 세계로 알려지지 못할 때, 캄보디아와 라오스 베트남 등을 잇는 세계 최대의 마약 생산지 가운데 하나인 ‘골든 트라이앵글’ 속에서 살아가는 소수민족들의 삶을 보고 싶을 때 이런 사진들은 충실한 문화적 기록이 될 수 있습니다. 손에 닿는 곳에 있다면 말이죠. 지금까지 이 사진들은 아버지가 생전에 일하시던 작업실 한 켠에 그냥 놓여 있었습니다.

인터넷의 도움

하지만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출판사들은 하나둘 문을 닫는데 큰 돈 벌리기보다는 제작 단가만 높을 게 뻔한 사진집을 출판하는 곳이 있을 리 없었죠. 돈도 되지 않는 다큐멘터리 사진전을 대신 열어주겠다고 나서는 곳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 인터넷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구글이 ‘구글 아트 프로젝트’라는 계획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나서던 시점입니다. 세계의 모든 정보를 디지털화해 모두가 쉽게 이용하게 만들겠다는 구글의 비전도 제가 잘 아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진들도 검색되도록 하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아시아에서도 사라져 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이었고, 이런 사라져가는 기록을 가장 잘 보전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인터넷이라 생각했으니까요. 필름은 습기와 온도변화에 맞서 싸워야 하지만, 디지털 기록은 시간이 지나도 처음 제작 당시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인터넷에 이 사진들이 올라간다면 세계 누구라도 쉽게 이 사진들에 접근할 수 있게 됩니다. 연구자는 연구에 활용할 수 있고, 지역의 매력을 홍보하는 관광 목적으로도 쓰일 수 있게 되며, 무엇보다 선대의 역사가 사라지지 않고 후대에 이어지게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디지타이징 과정

처음에는 구글과 NHN 두 회사에 이 필름을 디지타이징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디지타이징 작업에 드는 비용만 부담하면 저작권을 가진 유족으로서 사용권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이었죠. 아시아에서 점점 존재감을 높이려하는 구글 입장에서 아시아인을 위한 기록을 만드는 작업은 구글로서도 좋은 제안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구글은 세상의 모든 정보를 접근가능한 형태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는 회사니까요. 하지만 구글에서는 사진은 디지타이징하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전례도 없는데다, 당분간 시도할 계획이 없다고 하더군요.

기회는 NHN에서 왔습니다. 동일한 제안을 했는데 해당 서비스를 담당하는 본부장이 이미 이 사진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2007년에 있었던 유작 전시회에도 직접 찾아갔던 적이 있다는 겁니다. 작가와 사진을 과거부터 알았고, 관심도 갖고 있는데다가 이런 식으로 정보를 쌓아나가는게 NHN의 목표라고 했습니다. 결국 NHN과 함께 스캔 작업이 진행됐습니다. NHN은 현재 기술로 필름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 스캔 작업을 시작했고, 비용보다는 스캔되는 콘텐츠를 최고 품질로 유지할 수 있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 개인적으로도 고맙게 생각합니다.

디지타이징 작업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사진은 있는데 사진에 대한 정보가 없습니다. 단순히 슬라이드북에 묶어놓고 촬영 장소와 연도 정도를 메모해 놓은 게 전부라 사진 한 장 한 장이 갖고 있는 정보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장소와 시간이라는 정보가 있으니 이를 바탕으로 정보를 추가로 쌓아갈 예정입니다. 필름의 보관 상태가 균일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손으로 하나하나 검수하면서 스캔 작업을 진행합니다. 공이 많이 드는 일이지만 열심히 진행해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앞으로 다양한 서비스가 시작될 겁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작업을 통해 꼭 필요한 분들에게 이 사진이 전달됐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 사진들이 대중적으로 인기있을 사진들은 아닙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매우 가치있고, 꼭 필요한 사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터넷의 장점은 이렇게 너무 작은 규모의 필요가 생겼을 때 그 발견과 전달에 들었던 막대한 비용을 최소화시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검색만으로 이 사진에 사람들이 연결된다면 더 바랄 게 없는 것이죠.

밴드, 네이버가 생각하는 소셜네트워크

그녀는 싸이월드를 만든 사람이라고 했다. 한국인 3000만 명이 쓰던, 그러니까 인터넷을 하는 한국 사람이라면 거의 다 쓰던 싸이월드가 그 사람 손에서 만들어졌다. 이람. 네이버서비스2본부장. 돈도 없을 때 열정만 갖고 열심히 키웠던 회사가 SK텔레콤에 팔린 뒤로는 NHN으로 자리를 옮겼다. NHN에서는 다음이 카페가 강하니 네이버에서도 카페를 키워야 한다는 당연한 얘기가 나오고 있었고, 그러자면 커뮤니티에 뭔가 성공 사례가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왔고, 인터넷 커뮤니티하면 싸이월드였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이람이 그곳으로 갔고, 네이버 카페는 이후 다음 카페랑 경쟁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참, 하나 더. 이람은 카페와는 별도로 네이버 블로그도 만들었다.
“저는 그 시절에 이글루스를 썼는데요? 그게 더 먼저 나온 것 아니었어요?”

이 질문에 그녀는 네이버 블로그가 먼저라고 정정해 줬다. 비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 뭐하느냐, 이글루스가 더 좋아서 그걸 썼다, 게다가 지금도 네이버 블로그는 뭐랄까, 쿨(cool)하지 않고 아줌마들이나 쓰는 서비스라는 인식을 준다…

당연하겠지만, 이람은 자기가 만든 서비스에 대해 “아줌마 같다고 말한다니 가슴 아프다”고 했다. 그래도 그게 돌려 말하면 쓰기 쉽다는 뜻 아니겠냐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와서 계속 생각해 봤다. 쉬운 서비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서비스. 말은 좋은데, 뭐가 쉬운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중요한 건 맥락이다. 이람은 개발자가 아니다. 사회과학도였고, 잡지사 일을 했으며, 잡지를 만들어서는 도저히 먹고 살 수가 없어 동아닷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인터넷 서비스 기획을 시작했다. PC통신을 썼고, 초창기 게시판형 서비스에 익숙했으며, 새 글이 올라오면 댓글이 달린다거나, 글발이 좋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논쟁이 벌어지는 형식의 구조를 이해했고 확대재생산시켰다.

이후 그녀가 성공시킨 서비스를 보자.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게시판 위주의 PC통신 문화에서 막 ‘그림을 단 게시판’으로 사람들이 옮겨오던 2000년대 초에 ‘쿨한 그림'(일본에서 유행하고 젊은 여성들이 일찌감치 받아들였던 픽셀아트)을 단 게시판으로 대박을 쳤다. 차이는 우리 모두 보던 게시판에서 ‘내 게시판’을 만들었다는 점 정도. 이람은 “미니홈피가 ‘나’라면 나는 옷을 입고, 옷은 사입는 거니까, 옷을 팔자”는 생각으로 만든 게 미니홈피였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돈을 벌고 싶은데 돈이 안 벌려서 굶을 지경에 이르니 뭐라도 팔 수 없을까 생각하다 만든 게 미니홈피였던 셈이다. 하지만 그 개념이 모든 걸 갈랐다. ‘우리’밖에 없던, 그것도 시솝이라는 권력의 정점 밑에 부시솝들이 각 게시판들을 군대식으로 관할하던 PC통신 시절의 잔재가 거기서 깨어졌다. 좀 다른 얘길 하자면, 미니홈피의 성공은 하나회 척결과 맞먹는 문화적 대사건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이건 정말 기존과는 다른 서비스였는데 기존 서비스보다 훨씬 쿨했다. 쓰기는 쉬우면서. 쉽다는 건 그런 거였다. 쿨한데 쉬운.

네이버 블로그의 가장 큰 장점은(본인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스마트에디터다. 내가 아줌마들이나 쓰는 것 같다고 불렀던 바로 그 지점 말이다. 누구나 쉽게 사진 찍어 붙이고 디자인할 수 있는 기능. 그 덕분에 정말 수많은 아줌마들이 주방용품, 요리법, 육아용품을 리뷰하거나, 홍보하거나, 영업하면서 네이버 블로그를 즐긴다. 그리고 서로 방문하고 댓글 달고 욕하고 차단했다 다시 보면서 웃고 울고 즐긴다. 계속 즐긴다. 싸이월드 사람들은 자기 서비스 사용자들이 “스물여섯살이 되면 졸업한다”고 말한다. 소녀들은 자라서 아줌마가 되고, 아줌마들은 싸이월드에서 노는 대신 네이버로 옮겨가 논다.

문학소녀 기획자는 자라서 초보 아줌마가 됐고, 본부장이 된 지금은 학부형이 됐다. 그리고 ‘밴드’를 만들었다.

도대체 이 서비스는 뭘까. 워낙 새 서비스가 많이 나오는 시대라서 난 요즘 어지간한 신규 서비스엔 관심도 없다. 흥미도 안 생긴다. 차별화됐다고 얘기해봐야 그 차별화를 애써 이해하기가 귀찮기만 하다. 그런데 밴드에는 관심이 생겼다. 사실 서비스가 좋아보여서였다기보다는, 이건 ‘카페를 말아먹겠다는 생각 아니면 안 만들 것 같은 서비스’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카페 앱을 더 잘 만들어서 모바일 카페를 좀 더 키워보지, 이게 무슨 카니발라이제이션인가. 앱을 다운로드 받은 뒤엔 더 황당했다. PC에선 쓸 수도 없고, 밴드를 만들었더니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글쓰고 사진 올리는게 고작인데, 아니, 이봐요, 이런 거 하는 건 인스타그램과 카카오스토리가 있잖아.

오늘 기사에도 썼지만 밴드는 사실 그래서 만든 서비스라는 게 이람의 설명이었다.

인터뷰를 시작했을 때 그녀가 처음 보여준 게 바로 이 슬라이드였다. 이건 구글 출신(지금은 페이스북)으로 구글 플러스의 ‘써클’ 기능에 큰 영향을 줬던 폴 애덤스가 ‘현실의 소셜네트워크'(real life social network)를 설명하는 그림이다. 온라인에서 그냥 통으로 관리되는 사람들과의 소셜네트워크와는 달리 현실에선 내 주위 사람들이 그룹별로 묶여있게 마련이라는. 결국 구글은 이런 방식을 도입해 구글플러스에 써클이라는 형태로 친구들을 구분하는 기능을 만들었고, 애덤스가 페이스북으로 옮긴 뒤에는 페이스북에도 그룹이라는 비슷한 형태가 도입됐다.(이른바 ‘친친소팅’, 즉 친한 친구 분류하기가 이래서 가능해졌다.) 네이버에서도 뭔가 만들면 이런 걸 만들고 싶었다는데, 결정적인 문제는 페이스북 그룹이든, 구글플러스 써클이든 간에 처음 쓰는 사용자들은 뭔가 쓰기가 복잡하고 어렵다는 데 있다.

그래서 밴드(서비스)에선 그냥 밴드(서비스 내의 모임)를 만들면 그 밴드끼리만 묶이게 해놨다. 밴드앱 내에서도, 네이버에서도, 절대로 밴드 사용자가 어떤 밴드에 가입돼 있는지 검색되지 않는다. 끼리끼리 모이고, 끼리끼리 얘기하다가 그 밴드 돌아가는 분위기가 맘에 안 들면 나오면 그만이다. 물론 일단 나오고 나면 다시 초대받을 때까진 한 번 나온 밴드를 되찾아 갈 수도 없다. 검색이 안 되니까. 이거 좀 무서운 것 같지만, 사실 현실 속 관계가 그런 게다. 그러니까 카페와는 다르다. 카페는 검색돼야 하고, 카페 속 지식이 곧 카페의 존재 이유다. 밴드는 아니다. 검색되면 안 되고, 밴드 속 정보는 그 집단만 공유해야 하는 약한 비밀에 해당한다.

허술해 보일 지경이었던 밴드의 기능도 이람의 설명에 따르면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었다. 처음 쓰는 사람들은 도대체 이 서비스가 왜 만들어진 것인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려면 기능이 많은 것보다 적은 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밴드를 처음 기획했을 때 목표로 삼은 건 대학생들이 조모임 할 때 쓰는 서비스였다고 했다. 그래서 사진 올리고, 약속 잡고, 전화번호 공유하고, 글 쓰고 채팅하는데에만 집중했다는 얘기다. 조모임이 타깃이었기 때문에 곧 추가할 기능도 N드라이브하고 연동해서 파일을 주고받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놓고보니 활용처가 의외로 다양했다. 이람 스스로 ‘1학년5반’, ‘사사과91학번’, ‘Exconnect’(NHN 임원모임) 등 서로 섞
면 어색할 모임들을 만들어 따로 가입해 있었다. 이외에도 잘 돌아가는 모임으로 교회의 지역모임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알고 지내면 괜찮지만, 페이스북 피드에 뜨는 건 싫은 사람과의 느슨한 관계도, 날마다 할 말이 무지 많지만 이 사람과의 얘기가 다른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공개되는 건 싫은 끈끈한 관계도 따로따로 잘 관리되는 셈이다.

이 글의 제목은 네이버가 생각하는 소셜네트워크라고 달았지만, 사실 ‘밴드’는 ‘이람이 생각하는 소셜네트워크’다. 성공할까? 나도 모른다. 나로서야 그냥 페이스북만 쓰는 세상이 더 편하고 좋은 것 같긴 한데, 생각해보면 그건 네이버 블로그 초창기를 볼 때도 내가 했던 생각이다. 왜 네이버는 선진적인 워드프레스나 무버블타입 같은 걸 안 만들고 저렇게 후진 네이버 블로그를 만드느냐고. 그렇게 주장하던 내가 어느날 워드프레스로 회사 홍보 블로그를 만들었다가 그 콘텐츠를 함께 관리할 우리 팀원들에게 된통 잔소리를 들었다. 에디터 쓰기가 너무 힘들어서 블로그를 새로 배우는 것 같다는 얘기였다. 네이버 카페를 보면서도 저게 무슨 정보의 보고냐고 비웃기 일쑤지만, 사실 그렇게 비웃는 집단은 전체 인터넷 사용자 가운데 극소수다.(아마도 이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여러분?)

홈페이지와 블로그 그리고 현재의 페이스북 페이지와 타임라인 등으로 사용자를 교육시키며 진화했던 미국 인터넷 문화는 한국 인터넷 문화와는 많이 다르다. 미국에선 Geek들이 직접 혼자서 모든 걸 다 하면서 인터넷에 접근하기 시작했다가 가입형 서비스들이 확대되기 시작했고, 결국 대부분의 미국인이 가입하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PC통신 게시판부터 시작해서 포털 게시판, 카페 게시판, 미니홈피 게시판, 블로그 게시판의 순서로 시작부터 지금까지 모두가 함께 갔다. 인터넷 사용자가 증가하긴 했지만 핵심사용자들은 변함없이 모든 서비스를 관통하는 일관된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다. 게시판과 댓글 문화.

그리고 이람은 지금 모바일 게시판을 만든 것이다.

어떻게 될까. 그녀의 꿈처럼 한국의 모바일 게시판이 세계의 게시판으로 확대될까. 아니면 타임라인과 써클의 모바일 공략이 한국까지 접수할까.

과거와 미래

NHN 이해진 CSO가 지난달 사내강연에서 했다는 얘기가 기사화되면서 시끄럽다. 개인적으로 이 기사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마지막 단락의 이 멘트,

이용자의 요구를 악착같이 파악해 독하게 추진하는 기업이 결국 이겼다. NHN에는 혁신이 더 이상 없고 독점적 지위로 경쟁사를 압도해 1등을 했다고 이야기하지만 IT산업 특성상 이용자를 배려하는 혁신 없이는 계속 1위를 지킬 수 없다.

전형적인 자기 성공 신화에 매달리는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같다. 한 번 성공했던 기업은 성공에 사용됐던 공식을 환경이 변화한 뒤에도 계속 사용하려 한다. 지금 NHN에게 필요한 혁신은 과거에 야후나 다음 같은 경쟁사와 경쟁하던 시절의 혁신이 아니다. 그 때 NHN이 해야 했던 건 말 그대로 남들이 하는 걸 더 잘하는 것이었지만, 지금 NHN과 경쟁하는 회사들은 모두 NHN이 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NHN의 핵심을 건드린다. NHN은 안드로이드도 만들지 않고, 아이폰도 갖고 있지 않으며, 소셜네트워크는 형편없다. 그리고 이런 경쟁사들 모두가 NHN의 핵심인 검색(검색광고)과 미디어(디스플레이광고), 게임(한게임매출)을 건드린다.

모두가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했을 때 나오는 결과물 또는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하기 전 화면에 함께 등장했던 콘텐츠의 품질만으로 경쟁하던 시절에야 그걸 잘 하는 게 옳았다. 그래서 구글보다 좋은 결과물을 보여주려고 지식인이 나왔고, 다음보다 더 훌륭한 네이버 카페가 나왔으며, 싸이월드보다 쌈박한 블로그도 등장했다. 그런데 지금 NHN에게 위기를 느끼게 하는 회사들은 다른 창에서 경쟁한다. 그런 점에서 “모바일 붐을 일으키려는 그 시기에 모바일 센터를 없애고, 메신저 서비스가 모바일에서 킬러 서비스가 되려는 시작의 시기에 네이버 폰 서비스를 없애는 등은 누구의 잘못인가요?”라는 이 분 지적이 납득이 간다.

예전에 휴맥스 이야기를 하면서 변화 관리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변화 관리의 과정은 일반적으로 이렇게 나타난다. 위기의식(Urgency), 단합(Coalition), 비젼(Vision), 소통(Communication), 권한부여(Empower), 성과(Wins), 지속(Sustain).

NHN에는 위기의식이 생겼다. 그러니 변화가 필요하다. 창업자가 나서서 위기를 고취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그 다음 필요한 단합이 사라졌다. 경영진부터 반성하고 구성원을 하나로 결집시켜야 할텐데 그 대신 책임자를 찾아 단죄했다. ‘조기축구회’로 NHN을 만들고 만 삼성 출신 직원이 희생양이었다. 전형적인 ‘죽은 말 올라타기’다. 위기의 상황에서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회사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부터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앞서 얘기했던 휴맥스의 경우 이 위기를 넘기기 위해 창업자인 변대규 사장이 직접 “내 잘못으로 몇 년을 허비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해봅시다”라고 말하는 게 변화의 시작이었다. 잘못되고 있었는데 책임자가 반성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단합이 되겠나. 단합된 이후에는 책임자가 길을 제시해야 한다. 그게 비젼이다. 단합이 없으면 멋진 말을 늘어놓아봐야 새 비젼을 잘못 따라갔다가 자칫 다음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구성원들이 누구도 움직일 리 없다. NHN의 지금 상황에서 다음 단계는 요원해 보인다.

변화를 자발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셔틀버스를 없애고, 카페를 없애고, 기강을 바로잡는 관리와 통제만 도입하고 나면 그 다음에 남는 건 연공서열 문화다. 그래서야 온갖 복지혜택 다 받아가면서 높은 근무만족도까지 가진 채 한국 사람들 못잖게 미친듯 일하는 실리콘밸리의 경쟁사들을 앞설 수 있을까? 길게 얘기하기엔 너무 긴 얘기라 간단히 말하자면, 나이와 권위로 일을 하는 회사에선(대개는 이런게 관리와 통제로 나타난다) 누구도 자발적으로 일하지 않는다. 성과와 능력으로 평가받고 빠르고 차별적인 보상을 받는다면 네가티브한 통제 없이도 사람들은 미친 듯 일하게 마련이다. 능력있는 사람이 빨리 승진한 뒤 일찍 은퇴해 쉴 수 있다면 최고는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 회사에 충성하게 마련이다. 이 경우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부터 회사를 나간다. 반면 위기를 ‘게으른 직원들’ 탓으로 돌리면 능력있는 사람들부터 회사를 나간다.

조직이 커지면 훨씬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복잡한 문제를 만들어내는 경영진 자체가 문제다. 기업이 성장할수록 업무는 단순해져야 한다. 오죽하면 스티브 잡스가 래리 페이지에게 구글이 제품을 너무 많이 만든다고 뭐라고 했고, 구글은 경쟁사 라이벌의 조언을 받아들여 잡다한 서비스를 정리했을까. 통제되지 않는 제품과 서비스는 회사의 집중을 분산시킨다.모두의 정신을 사납게 만드는 것이다.

솔직하게 생각해 보자. NHN이 지금까지 어떻게 위기에 대응해 왔나. ‘똑똑하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에게 자리를 하나 만들어 앉혀주고 “자 이제 똑똑한 네가 해결해봐”라고 했던 것 아닌가. 검색 최고로 잘 만들던 사람이 SNS도 최고로 잘 할 수 있다면 래리 페이지가 페이스북을 만들었어야 옳다. 일은 사람이 한다고 하지만, 그 사람을 가장 정확한 자리에 갖다 놓는게 경영이다. 그래서 CEO가 모든 걸 파악해야 하고, 그러려면 사업이 단순해져야 하는 것이다.

네이버가 제품부터 봤다면 어땠을까. 네이버가 잘 하는 건 과연 뭘까. 검색? 솔직히 구글만 못하다. 우리 모두 안다. 큐레이션?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걸 진지하게 생각했어야 한다. 네이버의 서비스도 모두 그런 식으로 바뀌어야 했고. 예를 들어 미투데이를 사들이는 대신 ‘트위터캐스트’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네이버 메인 화면에 오픈캐스트로 대한민국 모든 블로그를 모아놓았던 것처럼. 라인을 만드는 대신 네이버 이용자가 뽑는 ‘오늘의 카톡’을 만들었다면 그건 또 어땠을까. 그러면 사용자들이 알아서 트위터를 네이버에 실시간으로 중계하기 위해 트위터피드를 네이버와 연결했을지 모르고, 카톡 메시지를 친구에게 보낼 때마다 네이버에도 보내줬을지 모를 일인데.

스스로 잘하는 걸 파악하는 건 중요한 전략적 사고다. 하지만 과거 성공의 유산에 사로잡혀 있는 건 바보짓이라고 부른다. 지금 NHN은 그 둘 가운데 어딘가에 서있다. 어느 쪽으로 움직일지 모르겠지만, 잘 움직였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걱정된다.

손바닥

그의 손이 몇 차례 책상을 두드렸다. 난 녹음기를 책상 위에 올려놨다. 녹음 내용을 다시 되감아 듣고 있자니 그 소리가 계속해서 내 고막도 때렸다. 그는 손바닥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얘기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몇 명 안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에 대한 내 (주관적 편견이 가득 담긴) 분석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둘 중 하나로 요약된다.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치거나, 지나치게 자신감이 없거나.
2010년 10월 정식으로 인터뷰를 했으니 1년하고도 두 달 이상 지난 셈이었다. 그새 김상헌 대표에게 묻고 싶었다. 1년 전에는 그렇게 자신만만했는데, 그 때 얘기했던 것들은 다 이뤘냐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어느때보다 바빴고, 또 위기였던 기간이었으니 NHN도 많이 변했고, 깨닫고 얻은 것들도 많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격변기에 NHN은 여전히 국내에서 독보적인 1위를 지켜냈다. 사실 불가능해 보이기도 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강력한 경쟁사였던 구글이 몇 차례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면서 한국 시장에서 치고나가질 못했고, 좀 덜 강력한 경쟁사였던 다음이 너무 소극적이라 기회를 성과로 충분히 바꿔내지 못했다. 그러니까 솔직히 내 생각에는 아직 NHN이 뭔가 잘 해서 1위를 한다는 생각보다는 경쟁사들이 충분히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됐다.

그래서 다시 만난 자리였다. 김 대표는 계속해서 책상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작은 대화를 듣기 위해 잔뜩 올려놓은 볼륨 사이로 귀를 멍멍하게 만드는 책상 두드리는 소리는 지나친 자신감과 부족한 자신감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독려하는 북소리처럼 들렸다.

– 새해인데, 올해 목표부터 얘기해 보죠.
“새해 화두는 ‘실행’입니다. 지난 3년을 돌이켜보면 스마트폰도 등장했고, 인터넷 환경이 모바일로 빨리 넘어왔어요. 사자성어로 보면 암중모색이죠. 올해는 스마트폰이 새로 나왔던 것, 또는 태블릿PC가 나왔던 것 정도의 새로운 게 나온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중요한 건 다 나타났죠. 그걸 누가 서비스로 실행하느냐의 문제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승자가 가려지는 해입니다. NHN이 승자겠죠. 우리는 방향을 잡는 걸 제일 잘 한다는 자신은 없지만 방향이 결정되면 그 방향으로 잘 할 자신은 있어요. 삼성도 그렇잖아요? 실행력이 뛰어나고 가장 좋은 제품을 만들죠. 우리도 서비스에서 그런 회사가 될 겁니다.”

이른바 ‘패스트 팔로어’ 전략이다. 1등이 뭔가 하면 빠르게 베껴서 쫓아가겠다는. 전략이라고 할 것도 없다. 그냥 본능에 가까운 방식인데 관건은 스피드다. 문제는 NHN이 그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움직일 수 있는 조직이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 소셜네트워크 관련 계획이 야심찼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과는 의아합니다. 이룬 게 있나요?
“네이버미는 건실하게 성장중이고, 미투데이는 글로벌 서비스 사이에서 선방했습니다. 네이버톡은 라인으로 통합한 뒤 선전했죠. 부연하자면 네이버미는 우리만 하고 있고, 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개인화된 서비스와 툴을 제공하죠. 저변이 많이 확대됐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500만 명 정도가 씁니다. 나중에 우리만 제공하는 특별한 가치가 될 겁니다. 미투데이는 올해 1월 기준으로 800만 명. 회원 수로만 봐도 페이스북·트위터보다 많습니다. 라인도 론칭한지 6개월 만에 1000만 명을 넘었습니다. 실망스럽지 않습니다.”

내가 굉장히 편향된 방식으로 인터넷을 사용하는 일부 계층에 속해 있긴 하지만, 그런 관점에서 봐도 NHN이 야심차게 선보였던 소셜서비스는 별로였다. (디지털 기술이라곤 잘 모르는) 아내의 친구들이 SNS를 싫어하는 아내를 꼬드겨 페이스북의 세계로 끌어내는 걸 몇 달 전에 봤고, ‘나꼼수’와 조국, 진중권 같은 사람들이 아내를 트위터의 세계로 유혹하는 것도 비슷한 시기에 함께 봤던 기억이 있다. 그 기간 동안 난 아내의 아이폰에 라인과 미투데이를 깔아줬지만 한번도 쓰는 걸 보지 못했다. 심지어 아내는 네이버 주소록과 네이버 메일을 쓰는데도.

– 지금 네이버를 보면 소셜서비스를 전체 서비스를 통합하는 관계망 중심의 통합서비스로 보는 게 아니라 개별적으로 떨어진 서비스 하나하나로 접근한다는 느낌입니다.
“페이스북 등에 대해 이해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페이스북은 실명에 기반한 오프라인 지인 기반 소셜네트워크죠. 우리에겐 그런 게 없어요. 그래서 그들과 다른 서비스를 하는 겁니다.”

–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네이버 모델에 그냥 이것저것 덧붙이기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건 아니죠. 우리는 가진 걸 전제로 생각하는 경향은 있어요. 그게 우리 한계일 수도 있죠. 하지만 단편적으로 개별적인 서비스는 아닙니다. 잘 연결돼 있고, 다른 서비스에 없는 가치를 만들려 하고 있어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소위 말하는 메이저 서비스와의 연동이 안 돼 있는 걸 문제로 삼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우리가 NHN 자체 생태계에 기반한 서비스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생태계가 아니라고 하면 곤란해요.”

– 한국 네티즌이 굳이 네이버를 쓸 게 아니라, 한국 시장이 작으니까 구글이나 애플 앱스토어를 이용했듯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이용해 해외까지 보면 어떨까요? 이런 방향은 NHN에게 위기 아닙니까?
“현실은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에 아직 국경과 언어의 한계가 존재합니다. 장래에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죠. 지금은 외국에서 네이버에 접근하는 한국인을 위한 서비스는 우리가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한국인을 위한 글로벌 서비스죠.”

얘기가 겉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우린 다르다, 한국은 다르다, 한국적 상황이 있다, 월마트도 이마트한테 지지 않았느냐 등등.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았다. 그럴 수밖에. 모두 대기업들이 흔히 쓰는 논리니까. 드문 벤처 성공 사례였던 NHN의 입에서 많이 듣던 얘기를 듣는 기분은 묘했다.

– 광고 문제를 봅시다. 모바일이 성장하지만 PC보다 매출도 작고, 다음 아담 같은 걸 보면 가능성보다는 생각보다 저조한 느낌이 듭니다.
“모바일의 디스플레이 광고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모바일에서 작년에 나쁘지 않은 성과를 냈지만 문제는 PC에서 줄어드는 폭을 모바일에서 보충할 수 있느냐죠. 아직은 그렇지 않아요. 다행히 PC에서 매출이 줄어드는 증거는 보이지 않습니다. 문제는 모바일 사용량이 늘고 있다는 겁니다. ‘검색 쿼리 대비 매출’을 봐야 하는데 기대만큼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몇 가지 화두가 있습니다. 개인화 타게팅 광고가 대표적인 것이죠. 검색 결과에서 전화번호를 바로 연결한다거나 하는 방식도 연구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은 이게 결국 쇼핑과 연결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겁니다. 우리가 쇼핑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쇼핑에 대해서도 많은 투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광고를 광고라는 개념이 아니라 검색의 더 넓은 외연으로 연결지으려는 고민을 합니다.”

– 사실 광고를 제일 잘 보여주는 단말기는 직접 만들어야 잘 만들 수 있을지 모릅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만들고, 페이스북이 페이스북폰을 만든 것처럼. 네이버 전용 디바이스 계획은 없나요?
“디바이스 고민은 사실 몇 년 전부터 했습니다. 결론이 났는데, 현재로서는 계획이 없다는 겁니다. 스마트폰을 네이버폰으로 만드는 건 ‘네이버 컴퓨터’, ‘구글 컴퓨터’를 따로 만드는 셈입니다. 컴퓨터는 그렇게 쓰지 않죠. 우리가 아이폰보다 더 좋은 폰을 만들 수 있다면 만들어 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안 만드는 게 브랜드 가치를 지키는데 차라리 낫습니다. 또 페이스북처럼 7억 명을 대상으로 시장을 생각하는 것과 우리는 다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마존의 킨들파이어 같은 걸 보면서 디바이스보다는 아마존이 콘텐츠에 집중하는 모습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북스, 네이버 뮤직이 그런 고민에서 나온 서비스죠.”

그래도 NHN만의 방식이란 게 있을 수 있다. 어차피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나 애플과 구글이 했던 방식대로 해서는 그들을 능가할 수 없는 법이니까. 삼성전자가 온갖 비판을 들으면서도 애플과 1, 2위를 다투는 회사로 부각되는 건 그들이 다른데 역량을 분산시키지 않고 잘 하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잘 하는 건 끝내주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만들고, 엄청나게 복잡한 제품 라인업을 세계 최고 수준의 SCM 능력을 이용해 효율적으로 끌고 가는 것이었다. 아마도 내 생각에 전자 제조업체 가운데 이 정도의 공급망관리 능력을 갖춘 회사가 있다면 그게 애플과 삼성 단 두 곳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NHN의 강점은 뭘까. 이들은 어디에 집중하는 걸까.

– 해외 업체에서 배운 게 있나요?
“통찰력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페이스북 때문에 사람들이 산업을 보는 시각이 변했어요. 페이스북이 세계에서 1등하지 못 하는 나라 가운데 한국이 들어 있습니다. 물론 싸이월드 때문인데, 하나가 더 있습니다. 컴스코어 자료에 보면 ‘네이버 카페’가 있어요. 회원 수 2000만 명. 우리도 사실 이걸 보고 놀랬습니다. 우스갯소리로 말하면, 페이스북은 한국에서 절대로 1등 할 수 없습니다. 컴스코어 관점으로 보면 페이스북 사용자는 560만 명 쯤 됩니다. 그런데 언제 네이버 카페를 따라잡겠습니까. 우리가 사실 그동안 카페에 주목해 왔어요. 카페라는 게 꽤 좋습니다. 지역 카페, 취미 카페… 내가 여의도 살 때엔 여의도 카페에도 가입해 있었죠. 그 사람 개인은 모르더라도 카페라는 집단의 관심사와 사는 곳 등은 알 수 있으니 우리는 어마어마한 자산,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데이터를 갖고 있는 회사인 겁니다. 이런 걸 이용해서 올해 멋진 서비스를 선보입니다.”

– 그런 자산을 외부에서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플랫폼 사업자’가 되는 것 아닌가요?
“이미 우리는 훌륭한 플랫폼사업자입니다. 왜 페이스북은 플랫폼이고 우리는 아니라고 보는 거죠?”

– 네이버 카페를 보죠. 카페 회원, 활동 지수, 가입자의 다른 카페 가입 현황 등의 정보를 네이버가 갖고 있습니다. 이런 정보를 외부 개발자가 쓸 수 있어야 플랫폼인 것 아닙니까?
“그게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겁니다. 작년에 만든 카페앱 같은 게 그런 거죠. 앞으로 소셜 그래프를 그려서 그런 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려는 거죠? 우리는 지금 거꾸로 소셜 그래프를 그려가고 있습니다. 시작 단계죠. 이 과정에서 문제는 개인정보 문제입니다. 개인들의 카페 활동 정보를 우리가 어떻게 맘대로 쓰겠어요. 우리도 개인화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굉장히 보수적으로 해요. 왜냐하면 우리에겐 ‘페이스북은 저렇게 많이 공개하는데’라는 변명이 통하질 않거든요. NHN은 한국 사회의 한국 기업이니까요. 예를 들어 미투데이 가입자가 어떤 카페에 가입하고 있는지 보여준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개발자에게 미투데이의 활용도가 엄청나게 높아지겠죠.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다고 당장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방식을 고민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단순히 정부 규제 문제는 아니에요. 이용자들의 집단적인 의식이 더 큰 문제입니다. 이건 예측하기도 어려운데 파괴력은 정말 큽니다. 인터넷 기업 대표로 그동안 일하면서 배운 건 이 회사가 집단적 사고, 집단적 의식, 집단적 가치 판단을 일선에서 느끼게 되는 공간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이런 집단 의식을 매일, 매분, 매초 체험합니다. 뭐 하나 삐끗하면 우리가 크게 손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엄청나게 합니다. 법을 뒤지면 언제든 구멍은 있을 수 있죠. 하지만 그 구멍을 이용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가 답답해 보이죠? 왜 이리 느리냐고 할 수도 있을 거에요. 압니다. 하지만 우리는 돌다리를 두드려야만 합니다. 개인화? 당장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논란을 피하면서 하는 게 우리의 더 큰 목표입니다.”

몇 가지 자원들이 있긴 했다. 스스로 설명하듯, 카페가 좋은 자원이었다. 그런데 이걸 활용할 생각은 네이버보다는 다음이 먼저 하지 않았던가. 물론 다음의 시도는 별 반향이 없었다. 그 점을 생각하면 두 가지 정도의 추론이 가능하다. 첫째로, 카페 정보라는 게 의외로 활용하려고 들면 별 게 아닌 정보일 가능성이다. 소셜그래프를 그리기에는 카페에서 얻는 정보가 너무 불충분한 쓰레기 데이터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면 의미가 없어진다. 둘째로, 카페 정보를 활용하기가 너무 힘들 가능성이다. 카페는 시작 자체가 그냥 게시판이었기 때문에 이걸 의미있는 소셜그래프로 쓰기 위해 데이터를 추출하려면 아예 카페 시스템을 뒤엎는 수준의 개선 작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아직 다음도, NHN도 그런 개선 작업은 시작도 하지 않은 듯 싶다는 것이다. 오히려 상대적 경쟁력은 보호받는 국내 울타리 아닐까. 언어라는 울타리, 규제라는 울타리 등등. 물론 역차별 규제라는 비판도 있지만.

– 구글 에릭 슈미트 회장은 한국 규제를 낡은 규제로 직접적으로 비판했어요.
“과연 그 분이 한국 상황을 다 알고 그런 말씀 하셨을까요? 그 규제가 왜 나왔고,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 그 분이 다 이해하고 있을까요? 에릭 슈미트 씨는 훌륭한 분이겠지만 그 분이 한국 사정을 잘 알기는 어려울 겁니다. 우리는 규제를 아주 어려운 주제로 보고 고민하고 있어요. 사업자로서 많은 부분을 생각합니다.전반적으로 슈미트 씨 얘기는 인터넷기업에서 일하는 분들의 신조 같은 게 아닌가 싶어요. 이 업계에서 일하는 분들은 인터넷은 원래 개방적이라는 신조가 있죠. 출발점 자체도 그렇고.”

– 그래도…
“제가 최근 겪은 일 하나 말씀드리죠. 제가 유리 밀너하고 알잖아요. 메일닷루(러시아 최대 포털) 사외이사니까. 11월11일이 유리 밀너 생일이에요. 실리콘밸리의 큰손이니까 자기 생일파티에 네트워크 인맥을 전부 초청하더라고요. 저도 이사니까 초청받았죠. 부부동반으로. 그루폰 창업자 앤드류 메이슨 부부하고 같이 공항에서 리무진을 타고 밀너의 집으로 갔는데, 가보니 마크 저커버그, 마크 핀커스(징가), 브라이언 체스키(에어비앤비) 등 인터넷업계의 잘나가는 사람들이 다 와 있더라고요. 저커버그하고 잠깐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예, 제가 먼저 인사 좀 하자고 다가갔어요. 처음에는 “당신 누구냐”고 묻더라고요. 내가 한국에서 제일 큰 인터넷회사 사장이라고 하니까 바로 궁금해 하는 거에요. 네이버 사장이라니까 갑자기 “네이버 정말 잘 알고 있다”면서 우리 서비스가 아주 인상적이었다고, 시간 있으면 다음날 따로 만나자는 거에요. 저는 귀국 일정이 잡혀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했는데, 언제든 실리콘밸리에 오면 연락달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생각할 때 네이버가 다른 외국 기업에게도 보여준 게 많아요. 물론 한계도 많지만 배울 것도 있죠. 밀너도 그날 저녁 저를 끌고 다니면서 계속 ‘구글을 이기는 유일한 회사’라고 약간 과장해서 소개하더라고요. 그런데도 지금까지 우리가 개방을 안 했고, 그래서 우리는 망할 거라고 보는 시각이 있어요. 편협한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내부에 쌓아둔 콘텐츠가 많긴 해요. 하지만 이를 보여주는 방식만으로 보면 엄청난 수준입니다. 일주일 단위로 검색개선안 프로젝트를 계속 10개 이상 돌리는데 엄청난 투자죠. 이런 걸 한 번 보죠. 구글이 최근 자갓서베이를 인수했어요. Yelp 같은 데 구글이 밀리다보니 아예 자갓을 사버린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윙버스를 인수했어요. 구글보다 앞서서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놓았던 검색 서비스죠. 이런 부분은 국내에서 별로 인정하지 않아요. 구글은 우리보다 돈이 훨씬 많으니까 돈싸움을 벌이면 결국 우리가 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도 안 지려고 열심히 해요. 그런데도 계속 비난받으니 섭섭한 거죠. 어떤 건 매우 불공평한 비교입니다. 이미 전 세계를 무대로 언어장벽 없이 1만 명이 넘는 기술자를 두고 사업을 벌이는 규모의 경제를 갖춘 기업과 몇백명의 엔지니어로 개발하는 우리와는 너무 달라요.”

여러 차례 그의 손은 다시 책상을 때렸다. 오가는 목소리의 톤도 약간 높아졌다. 구글은 정말 엄청나게 거대하다. 구글이 항공모함이라면 NHN은 구축함은 커녕 그냥 작은 초계함 정도에 불과하다. 정면으로 맞붙으면 질 수밖에 없다. 대개 이렇게 해군 전력이 차이나는 경우, 작은 나라는 잠수함을 만든다. 바다 위에서 맞붙으면 백전백패 하겠지만, 바다 밑으로 들어가 조용히 숨어있다가 나타나는 잠수함은 역시 매우 낮은 가능성이긴 해도, 승률이 약간이라도 올라가니까. 지금 NHN은 잠수함을 만들고 있는 걸까, 아니면 초계함을 구축함으로 업그레이드하려는 걸까.

– 마지막으로, 네이버는 이제 개인화로 가는 겁니까?
“좀 달라요. 개인화가 아닙니다. 다양한 뷰를 선택할 수 있는 거죠. 뉴스캐스트도 뉴스를 골라보는 건데, 소비자가 고르는 게 아니고, 네이버가 고르는 것도 아니고, 신문사가 고르는 거에요. 오픈캐스트도 마찬가지죠. 특정 분야에서 잘 고를 수 있는 사람들이 고르는 걸 이용자가 선택하는 시스템입니다. 큐레이팅 시스템이죠. 이미 4년 전 이해진 의장이 얘기한 겁니다. 웹에 있는 수많은 정보를 골라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이들의 시각을 이용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카페나 지식인 같은 걸 다시 해석하려고 합니다. 사실 요즘 페이스북도 반신반의해요. 페이스북이 과연 미래를 석권할 수 있을까요? 저 요새 미투데이 잘 하지 않습니다. 인간관계가 피곤해요. SNS가 어느 순간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이죠. 그래서 관계에 대한 욕망이 페이스북을 성공시킨 요인이겠지만, 관계에 대한 욕망이 무한대로 증가할 수는 없기 때문에 큐레이션이 계속 필요해지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원하는 큐레이션이 네이버가 제공하는 뉴스캐스트와 오픈캐스트일까? 그 답을 네이버 스스로 찾아내지 않으면 다음에는 누군가 새로운 답을 들고 나타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