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N과 아날로그 기록

오늘(27일) NHN이 고 김수남 사진작가의 유작 16만 점을 디지타이징해 포털 네이버를 통해 인터넷으로 검색가능한 콘텐츠로 서비스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김 작가는 ‘한국의 굿’, ‘아시아의 하늘과 땅’ 등 한국과 아시아의 무속신앙과 소수민족의 생활풍습 등을 사진으로 담아온 비슷한 분야에서는 국내에 유례를 찾기 힘든 독보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입니다. 그리고 제 아버지입니다.
오늘 NHN이 발표한 이 사업은 제게 많은 의미를 갖습니다. 무엇보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동시에 사회적인 얘기이기도 합니다. 한가지씩 천천히 적어보겠습니다.

사라지는게 아쉬운 역사

아버지는 2006년 태국에서 취재를 위한 출장 도중 뇌출혈로 돌아가셨습니다. 손을 써볼 길도 없었습니다. 급히 구한 비행기표로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출국 대기를 하던 그 순간에 전화로 부음을 듣던 순간이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그리고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버지의 작업은 급작스레 끝이 났고, 유작만 남았습니다. 16만 장에 이르는 슬라이드 필름과 네거티브 필름, 그리고 인화지였습니다. 도대체 이걸 들고 뭘 할 수 있을지는 아버지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작가는 떠났지만 그 사진들은 남았습니다. 한국과 아시아의 잊혀져 가는 전통문화, 그것도 왕실이나 귀족들의 문화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기층문화에 대한 사진이었습니다. 한 때, 혹은 지금까지도 근대화와 서구화, 도시화에 목을 매거나 여전히 목을 매고 있는 아시아의 수많은 정부는 이런 걸 타파해야 할 미신이라고 불렀고, 후진적인 사회의 잔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게 아니고 이런 것이야말로 우리 스스로를 규정하는 진짜 원형의 문화이며, 한국인과 아시아 각국 사람들의 정서를 구성하는 참된 뿌리라고 얘기해봐야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변했고, 조금씩 사회가 바뀌어가면서 그 가치가 다시 조명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누군가에겐 이런 사진이 필요합니다. 태국의 인류학자가 자신들의 산악 지방에 한 때 거주했던 소수민족의 생활양식을 연구할 때, 아름다운 필리핀 민다나오섬의 문화가 반군 활동 때문에 세계로 알려지지 못할 때, 캄보디아와 라오스 베트남 등을 잇는 세계 최대의 마약 생산지 가운데 하나인 ‘골든 트라이앵글’ 속에서 살아가는 소수민족들의 삶을 보고 싶을 때 이런 사진들은 충실한 문화적 기록이 될 수 있습니다. 손에 닿는 곳에 있다면 말이죠. 지금까지 이 사진들은 아버지가 생전에 일하시던 작업실 한 켠에 그냥 놓여 있었습니다.

인터넷의 도움

하지만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출판사들은 하나둘 문을 닫는데 큰 돈 벌리기보다는 제작 단가만 높을 게 뻔한 사진집을 출판하는 곳이 있을 리 없었죠. 돈도 되지 않는 다큐멘터리 사진전을 대신 열어주겠다고 나서는 곳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 인터넷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구글이 ‘구글 아트 프로젝트’라는 계획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나서던 시점입니다. 세계의 모든 정보를 디지털화해 모두가 쉽게 이용하게 만들겠다는 구글의 비전도 제가 잘 아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진들도 검색되도록 하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아시아에서도 사라져 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이었고, 이런 사라져가는 기록을 가장 잘 보전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인터넷이라 생각했으니까요. 필름은 습기와 온도변화에 맞서 싸워야 하지만, 디지털 기록은 시간이 지나도 처음 제작 당시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인터넷에 이 사진들이 올라간다면 세계 누구라도 쉽게 이 사진들에 접근할 수 있게 됩니다. 연구자는 연구에 활용할 수 있고, 지역의 매력을 홍보하는 관광 목적으로도 쓰일 수 있게 되며, 무엇보다 선대의 역사가 사라지지 않고 후대에 이어지게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디지타이징 과정

처음에는 구글과 NHN 두 회사에 이 필름을 디지타이징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디지타이징 작업에 드는 비용만 부담하면 저작권을 가진 유족으로서 사용권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이었죠. 아시아에서 점점 존재감을 높이려하는 구글 입장에서 아시아인을 위한 기록을 만드는 작업은 구글로서도 좋은 제안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구글은 세상의 모든 정보를 접근가능한 형태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는 회사니까요. 하지만 구글에서는 사진은 디지타이징하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전례도 없는데다, 당분간 시도할 계획이 없다고 하더군요.

기회는 NHN에서 왔습니다. 동일한 제안을 했는데 해당 서비스를 담당하는 본부장이 이미 이 사진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2007년에 있었던 유작 전시회에도 직접 찾아갔던 적이 있다는 겁니다. 작가와 사진을 과거부터 알았고, 관심도 갖고 있는데다가 이런 식으로 정보를 쌓아나가는게 NHN의 목표라고 했습니다. 결국 NHN과 함께 스캔 작업이 진행됐습니다. NHN은 현재 기술로 필름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 스캔 작업을 시작했고, 비용보다는 스캔되는 콘텐츠를 최고 품질로 유지할 수 있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 개인적으로도 고맙게 생각합니다.

디지타이징 작업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사진은 있는데 사진에 대한 정보가 없습니다. 단순히 슬라이드북에 묶어놓고 촬영 장소와 연도 정도를 메모해 놓은 게 전부라 사진 한 장 한 장이 갖고 있는 정보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장소와 시간이라는 정보가 있으니 이를 바탕으로 정보를 추가로 쌓아갈 예정입니다. 필름의 보관 상태가 균일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손으로 하나하나 검수하면서 스캔 작업을 진행합니다. 공이 많이 드는 일이지만 열심히 진행해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앞으로 다양한 서비스가 시작될 겁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작업을 통해 꼭 필요한 분들에게 이 사진이 전달됐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 사진들이 대중적으로 인기있을 사진들은 아닙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매우 가치있고, 꼭 필요한 사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터넷의 장점은 이렇게 너무 작은 규모의 필요가 생겼을 때 그 발견과 전달에 들었던 막대한 비용을 최소화시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검색만으로 이 사진에 사람들이 연결된다면 더 바랄 게 없는 것이죠.

밴드, 네이버가 생각하는 소셜네트워크

그녀는 싸이월드를 만든 사람이라고 했다. 한국인 3000만 명이 쓰던, 그러니까 인터넷을 하는 한국 사람이라면 거의 다 쓰던 싸이월드가 그 사람 손에서 만들어졌다. 이람. 네이버서비스2본부장. 돈도 없을 때 열정만 갖고 열심히 키웠던 회사가 SK텔레콤에 팔린 뒤로는 NHN으로 자리를 옮겼다. NHN에서는 다음이 카페가 강하니 네이버에서도 카페를 키워야 한다는 당연한 얘기가 나오고 있었고, 그러자면 커뮤니티에 뭔가 성공 사례가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왔고, 인터넷 커뮤니티하면 싸이월드였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이람이 그곳으로 갔고, 네이버 카페는 이후 다음 카페랑 경쟁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참, 하나 더. 이람은 카페와는 별도로 네이버 블로그도 만들었다.
“저는 그 시절에 이글루스를 썼는데요? 그게 더 먼저 나온 것 아니었어요?”

이 질문에 그녀는 네이버 블로그가 먼저라고 정정해 줬다. 비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 뭐하느냐, 이글루스가 더 좋아서 그걸 썼다, 게다가 지금도 네이버 블로그는 뭐랄까, 쿨(cool)하지 않고 아줌마들이나 쓰는 서비스라는 인식을 준다…

당연하겠지만, 이람은 자기가 만든 서비스에 대해 “아줌마 같다고 말한다니 가슴 아프다”고 했다. 그래도 그게 돌려 말하면 쓰기 쉽다는 뜻 아니겠냐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와서 계속 생각해 봤다. 쉬운 서비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서비스. 말은 좋은데, 뭐가 쉬운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중요한 건 맥락이다. 이람은 개발자가 아니다. 사회과학도였고, 잡지사 일을 했으며, 잡지를 만들어서는 도저히 먹고 살 수가 없어 동아닷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인터넷 서비스 기획을 시작했다. PC통신을 썼고, 초창기 게시판형 서비스에 익숙했으며, 새 글이 올라오면 댓글이 달린다거나, 글발이 좋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논쟁이 벌어지는 형식의 구조를 이해했고 확대재생산시켰다.

이후 그녀가 성공시킨 서비스를 보자.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게시판 위주의 PC통신 문화에서 막 ‘그림을 단 게시판’으로 사람들이 옮겨오던 2000년대 초에 ‘쿨한 그림'(일본에서 유행하고 젊은 여성들이 일찌감치 받아들였던 픽셀아트)을 단 게시판으로 대박을 쳤다. 차이는 우리 모두 보던 게시판에서 ‘내 게시판’을 만들었다는 점 정도. 이람은 “미니홈피가 ‘나’라면 나는 옷을 입고, 옷은 사입는 거니까, 옷을 팔자”는 생각으로 만든 게 미니홈피였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돈을 벌고 싶은데 돈이 안 벌려서 굶을 지경에 이르니 뭐라도 팔 수 없을까 생각하다 만든 게 미니홈피였던 셈이다. 하지만 그 개념이 모든 걸 갈랐다. ‘우리’밖에 없던, 그것도 시솝이라는 권력의 정점 밑에 부시솝들이 각 게시판들을 군대식으로 관할하던 PC통신 시절의 잔재가 거기서 깨어졌다. 좀 다른 얘길 하자면, 미니홈피의 성공은 하나회 척결과 맞먹는 문화적 대사건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이건 정말 기존과는 다른 서비스였는데 기존 서비스보다 훨씬 쿨했다. 쓰기는 쉬우면서. 쉽다는 건 그런 거였다. 쿨한데 쉬운.

네이버 블로그의 가장 큰 장점은(본인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스마트에디터다. 내가 아줌마들이나 쓰는 것 같다고 불렀던 바로 그 지점 말이다. 누구나 쉽게 사진 찍어 붙이고 디자인할 수 있는 기능. 그 덕분에 정말 수많은 아줌마들이 주방용품, 요리법, 육아용품을 리뷰하거나, 홍보하거나, 영업하면서 네이버 블로그를 즐긴다. 그리고 서로 방문하고 댓글 달고 욕하고 차단했다 다시 보면서 웃고 울고 즐긴다. 계속 즐긴다. 싸이월드 사람들은 자기 서비스 사용자들이 “스물여섯살이 되면 졸업한다”고 말한다. 소녀들은 자라서 아줌마가 되고, 아줌마들은 싸이월드에서 노는 대신 네이버로 옮겨가 논다.

문학소녀 기획자는 자라서 초보 아줌마가 됐고, 본부장이 된 지금은 학부형이 됐다. 그리고 ‘밴드’를 만들었다.

도대체 이 서비스는 뭘까. 워낙 새 서비스가 많이 나오는 시대라서 난 요즘 어지간한 신규 서비스엔 관심도 없다. 흥미도 안 생긴다. 차별화됐다고 얘기해봐야 그 차별화를 애써 이해하기가 귀찮기만 하다. 그런데 밴드에는 관심이 생겼다. 사실 서비스가 좋아보여서였다기보다는, 이건 ‘카페를 말아먹겠다는 생각 아니면 안 만들 것 같은 서비스’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카페 앱을 더 잘 만들어서 모바일 카페를 좀 더 키워보지, 이게 무슨 카니발라이제이션인가. 앱을 다운로드 받은 뒤엔 더 황당했다. PC에선 쓸 수도 없고, 밴드를 만들었더니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글쓰고 사진 올리는게 고작인데, 아니, 이봐요, 이런 거 하는 건 인스타그램과 카카오스토리가 있잖아.

오늘 기사에도 썼지만 밴드는 사실 그래서 만든 서비스라는 게 이람의 설명이었다.

인터뷰를 시작했을 때 그녀가 처음 보여준 게 바로 이 슬라이드였다. 이건 구글 출신(지금은 페이스북)으로 구글 플러스의 ‘써클’ 기능에 큰 영향을 줬던 폴 애덤스가 ‘현실의 소셜네트워크'(real life social network)를 설명하는 그림이다. 온라인에서 그냥 통으로 관리되는 사람들과의 소셜네트워크와는 달리 현실에선 내 주위 사람들이 그룹별로 묶여있게 마련이라는. 결국 구글은 이런 방식을 도입해 구글플러스에 써클이라는 형태로 친구들을 구분하는 기능을 만들었고, 애덤스가 페이스북으로 옮긴 뒤에는 페이스북에도 그룹이라는 비슷한 형태가 도입됐다.(이른바 ‘친친소팅’, 즉 친한 친구 분류하기가 이래서 가능해졌다.) 네이버에서도 뭔가 만들면 이런 걸 만들고 싶었다는데, 결정적인 문제는 페이스북 그룹이든, 구글플러스 써클이든 간에 처음 쓰는 사용자들은 뭔가 쓰기가 복잡하고 어렵다는 데 있다.

그래서 밴드(서비스)에선 그냥 밴드(서비스 내의 모임)를 만들면 그 밴드끼리만 묶이게 해놨다. 밴드앱 내에서도, 네이버에서도, 절대로 밴드 사용자가 어떤 밴드에 가입돼 있는지 검색되지 않는다. 끼리끼리 모이고, 끼리끼리 얘기하다가 그 밴드 돌아가는 분위기가 맘에 안 들면 나오면 그만이다. 물론 일단 나오고 나면 다시 초대받을 때까진 한 번 나온 밴드를 되찾아 갈 수도 없다. 검색이 안 되니까. 이거 좀 무서운 것 같지만, 사실 현실 속 관계가 그런 게다. 그러니까 카페와는 다르다. 카페는 검색돼야 하고, 카페 속 지식이 곧 카페의 존재 이유다. 밴드는 아니다. 검색되면 안 되고, 밴드 속 정보는 그 집단만 공유해야 하는 약한 비밀에 해당한다.

허술해 보일 지경이었던 밴드의 기능도 이람의 설명에 따르면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었다. 처음 쓰는 사람들은 도대체 이 서비스가 왜 만들어진 것인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려면 기능이 많은 것보다 적은 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밴드를 처음 기획했을 때 목표로 삼은 건 대학생들이 조모임 할 때 쓰는 서비스였다고 했다. 그래서 사진 올리고, 약속 잡고, 전화번호 공유하고, 글 쓰고 채팅하는데에만 집중했다는 얘기다. 조모임이 타깃이었기 때문에 곧 추가할 기능도 N드라이브하고 연동해서 파일을 주고받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놓고보니 활용처가 의외로 다양했다. 이람 스스로 ‘1학년5반’, ‘사사과91학번’, ‘Exconnect’(NHN 임원모임) 등 서로 섞
면 어색할 모임들을 만들어 따로 가입해 있었다. 이외에도 잘 돌아가는 모임으로 교회의 지역모임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알고 지내면 괜찮지만, 페이스북 피드에 뜨는 건 싫은 사람과의 느슨한 관계도, 날마다 할 말이 무지 많지만 이 사람과의 얘기가 다른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공개되는 건 싫은 끈끈한 관계도 따로따로 잘 관리되는 셈이다.

이 글의 제목은 네이버가 생각하는 소셜네트워크라고 달았지만, 사실 ‘밴드’는 ‘이람이 생각하는 소셜네트워크’다. 성공할까? 나도 모른다. 나로서야 그냥 페이스북만 쓰는 세상이 더 편하고 좋은 것 같긴 한데, 생각해보면 그건 네이버 블로그 초창기를 볼 때도 내가 했던 생각이다. 왜 네이버는 선진적인 워드프레스나 무버블타입 같은 걸 안 만들고 저렇게 후진 네이버 블로그를 만드느냐고. 그렇게 주장하던 내가 어느날 워드프레스로 회사 홍보 블로그를 만들었다가 그 콘텐츠를 함께 관리할 우리 팀원들에게 된통 잔소리를 들었다. 에디터 쓰기가 너무 힘들어서 블로그를 새로 배우는 것 같다는 얘기였다. 네이버 카페를 보면서도 저게 무슨 정보의 보고냐고 비웃기 일쑤지만, 사실 그렇게 비웃는 집단은 전체 인터넷 사용자 가운데 극소수다.(아마도 이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여러분?)

홈페이지와 블로그 그리고 현재의 페이스북 페이지와 타임라인 등으로 사용자를 교육시키며 진화했던 미국 인터넷 문화는 한국 인터넷 문화와는 많이 다르다. 미국에선 Geek들이 직접 혼자서 모든 걸 다 하면서 인터넷에 접근하기 시작했다가 가입형 서비스들이 확대되기 시작했고, 결국 대부분의 미국인이 가입하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PC통신 게시판부터 시작해서 포털 게시판, 카페 게시판, 미니홈피 게시판, 블로그 게시판의 순서로 시작부터 지금까지 모두가 함께 갔다. 인터넷 사용자가 증가하긴 했지만 핵심사용자들은 변함없이 모든 서비스를 관통하는 일관된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다. 게시판과 댓글 문화.

그리고 이람은 지금 모바일 게시판을 만든 것이다.

어떻게 될까. 그녀의 꿈처럼 한국의 모바일 게시판이 세계의 게시판으로 확대될까. 아니면 타임라인과 써클의 모바일 공략이 한국까지 접수할까.

과거와 미래

NHN 이해진 CSO가 지난달 사내강연에서 했다는 얘기가 기사화되면서 시끄럽다. 개인적으로 이 기사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마지막 단락의 이 멘트,

이용자의 요구를 악착같이 파악해 독하게 추진하는 기업이 결국 이겼다. NHN에는 혁신이 더 이상 없고 독점적 지위로 경쟁사를 압도해 1등을 했다고 이야기하지만 IT산업 특성상 이용자를 배려하는 혁신 없이는 계속 1위를 지킬 수 없다.

전형적인 자기 성공 신화에 매달리는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같다. 한 번 성공했던 기업은 성공에 사용됐던 공식을 환경이 변화한 뒤에도 계속 사용하려 한다. 지금 NHN에게 필요한 혁신은 과거에 야후나 다음 같은 경쟁사와 경쟁하던 시절의 혁신이 아니다. 그 때 NHN이 해야 했던 건 말 그대로 남들이 하는 걸 더 잘하는 것이었지만, 지금 NHN과 경쟁하는 회사들은 모두 NHN이 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NHN의 핵심을 건드린다. NHN은 안드로이드도 만들지 않고, 아이폰도 갖고 있지 않으며, 소셜네트워크는 형편없다. 그리고 이런 경쟁사들 모두가 NHN의 핵심인 검색(검색광고)과 미디어(디스플레이광고), 게임(한게임매출)을 건드린다.

모두가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했을 때 나오는 결과물 또는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하기 전 화면에 함께 등장했던 콘텐츠의 품질만으로 경쟁하던 시절에야 그걸 잘 하는 게 옳았다. 그래서 구글보다 좋은 결과물을 보여주려고 지식인이 나왔고, 다음보다 더 훌륭한 네이버 카페가 나왔으며, 싸이월드보다 쌈박한 블로그도 등장했다. 그런데 지금 NHN에게 위기를 느끼게 하는 회사들은 다른 창에서 경쟁한다. 그런 점에서 “모바일 붐을 일으키려는 그 시기에 모바일 센터를 없애고, 메신저 서비스가 모바일에서 킬러 서비스가 되려는 시작의 시기에 네이버 폰 서비스를 없애는 등은 누구의 잘못인가요?”라는 이 분 지적이 납득이 간다.

예전에 휴맥스 이야기를 하면서 변화 관리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변화 관리의 과정은 일반적으로 이렇게 나타난다. 위기의식(Urgency), 단합(Coalition), 비젼(Vision), 소통(Communication), 권한부여(Empower), 성과(Wins), 지속(Sustain).

NHN에는 위기의식이 생겼다. 그러니 변화가 필요하다. 창업자가 나서서 위기를 고취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그 다음 필요한 단합이 사라졌다. 경영진부터 반성하고 구성원을 하나로 결집시켜야 할텐데 그 대신 책임자를 찾아 단죄했다. ‘조기축구회’로 NHN을 만들고 만 삼성 출신 직원이 희생양이었다. 전형적인 ‘죽은 말 올라타기’다. 위기의 상황에서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회사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부터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앞서 얘기했던 휴맥스의 경우 이 위기를 넘기기 위해 창업자인 변대규 사장이 직접 “내 잘못으로 몇 년을 허비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해봅시다”라고 말하는 게 변화의 시작이었다. 잘못되고 있었는데 책임자가 반성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단합이 되겠나. 단합된 이후에는 책임자가 길을 제시해야 한다. 그게 비젼이다. 단합이 없으면 멋진 말을 늘어놓아봐야 새 비젼을 잘못 따라갔다가 자칫 다음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구성원들이 누구도 움직일 리 없다. NHN의 지금 상황에서 다음 단계는 요원해 보인다.

변화를 자발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셔틀버스를 없애고, 카페를 없애고, 기강을 바로잡는 관리와 통제만 도입하고 나면 그 다음에 남는 건 연공서열 문화다. 그래서야 온갖 복지혜택 다 받아가면서 높은 근무만족도까지 가진 채 한국 사람들 못잖게 미친듯 일하는 실리콘밸리의 경쟁사들을 앞설 수 있을까? 길게 얘기하기엔 너무 긴 얘기라 간단히 말하자면, 나이와 권위로 일을 하는 회사에선(대개는 이런게 관리와 통제로 나타난다) 누구도 자발적으로 일하지 않는다. 성과와 능력으로 평가받고 빠르고 차별적인 보상을 받는다면 네가티브한 통제 없이도 사람들은 미친 듯 일하게 마련이다. 능력있는 사람이 빨리 승진한 뒤 일찍 은퇴해 쉴 수 있다면 최고는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 회사에 충성하게 마련이다. 이 경우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부터 회사를 나간다. 반면 위기를 ‘게으른 직원들’ 탓으로 돌리면 능력있는 사람들부터 회사를 나간다.

조직이 커지면 훨씬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복잡한 문제를 만들어내는 경영진 자체가 문제다. 기업이 성장할수록 업무는 단순해져야 한다. 오죽하면 스티브 잡스가 래리 페이지에게 구글이 제품을 너무 많이 만든다고 뭐라고 했고, 구글은 경쟁사 라이벌의 조언을 받아들여 잡다한 서비스를 정리했을까. 통제되지 않는 제품과 서비스는 회사의 집중을 분산시킨다.모두의 정신을 사납게 만드는 것이다.

솔직하게 생각해 보자. NHN이 지금까지 어떻게 위기에 대응해 왔나. ‘똑똑하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에게 자리를 하나 만들어 앉혀주고 “자 이제 똑똑한 네가 해결해봐”라고 했던 것 아닌가. 검색 최고로 잘 만들던 사람이 SNS도 최고로 잘 할 수 있다면 래리 페이지가 페이스북을 만들었어야 옳다. 일은 사람이 한다고 하지만, 그 사람을 가장 정확한 자리에 갖다 놓는게 경영이다. 그래서 CEO가 모든 걸 파악해야 하고, 그러려면 사업이 단순해져야 하는 것이다.

네이버가 제품부터 봤다면 어땠을까. 네이버가 잘 하는 건 과연 뭘까. 검색? 솔직히 구글만 못하다. 우리 모두 안다. 큐레이션?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걸 진지하게 생각했어야 한다. 네이버의 서비스도 모두 그런 식으로 바뀌어야 했고. 예를 들어 미투데이를 사들이는 대신 ‘트위터캐스트’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네이버 메인 화면에 오픈캐스트로 대한민국 모든 블로그를 모아놓았던 것처럼. 라인을 만드는 대신 네이버 이용자가 뽑는 ‘오늘의 카톡’을 만들었다면 그건 또 어땠을까. 그러면 사용자들이 알아서 트위터를 네이버에 실시간으로 중계하기 위해 트위터피드를 네이버와 연결했을지 모르고, 카톡 메시지를 친구에게 보낼 때마다 네이버에도 보내줬을지 모를 일인데.

스스로 잘하는 걸 파악하는 건 중요한 전략적 사고다. 하지만 과거 성공의 유산에 사로잡혀 있는 건 바보짓이라고 부른다. 지금 NHN은 그 둘 가운데 어딘가에 서있다. 어느 쪽으로 움직일지 모르겠지만, 잘 움직였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