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TV와 넥서스Q

지난주 생각지도 않던 겨울휴가를 쓰게 됐다. 생각지도 않던 휴가다보니 그냥 집에만 있었는데, 그 김에 집에 있는 IPTV를 바꿨다. 새로 나온 LG유플러스의 구글TV로. 처음 IPTV를 쓰게 된 건 그냥 “애들 보여주기엔 최고”라는 회사 선배의 조언 덕분이었는데, 그말대로 뽀로로와 뿡뿡이를 비롯해 디보와 로보캅 폴리 등 새로운 세계가 그 속에 잔뜩 펼쳐져 있더라. 덕분에 집에서 TV 시청 시간 가장 많은 게 우리 아들이 됐던 모양. 이번에 구글 TV로 바꾼 건 어차피 ‘TV는 조금 큰 모니터’라고 생각하는 내 입장에서 화질도 별로고, 컨트롤도 잘 되지 않는 기존의 IPTV를 계속 쓰느니 값도 싸고 채널과 정보도 많고, 안드로이드와 호환도 된다는 구글TV를 한 번 써보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지난달 구글플레이스토어에서 영화 카테고리가 문을 연 김에 잠자고 있던 넥서스Q도 깨워보았다. 도대체 이게 뭔지 기억나지 않는 분들도 많겠지만,

바로 이 기계다. 어디에 쓰는지 알 수 없어서 결국 구글 스스로 생산을 중단하고, 예약주문 고객들에게 돈은 돌려주고 이 기계도 그냥 하나씩 선물해버린 바로 그 제품. 기능이 전혀 없는 건 아니고, 몇 가지를 한다. 1. 폰/태블릿에서 보던 유튜브/구글뮤직 동영상/음악을 연결된 TV에서 재생한다. 2. 1과 같은 기능을 플레이스토어에서 구입한 영상/음악에도 똑같이 해준다. 끝이다. 모바일기기에서 TV로의 스트리밍? 불가능하다. 플레이스토어에서 구입한 게임플레이? 역시 불가능. 되는 게 없다. 뛰어난 능력자들이 해킹이라도 해주시길 바랬지만, 그러기엔 애초에 세상에 풀린 제품의 수가 너무 부족하다.

그런데 구글플레이에서 한국에서도 영화를 팔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넥서스Q의 활용도가 늘었다고 생각했다. 비록 내가 주로 쓰는 디바이스가 전부 iOS 계열이긴 해도, 영화를 TV로 보기 위한 것이라면 기꺼이 영화를 구글플레이에서 사 줄 용의가 있었다. 그래서 기대했던 영화 소울서퍼(Soul Surfer)를 주문했다. 두근두근. 넥서스7과 넥서스Q를 연결하고 플레이를 누른 순간 에러메시지가 나온다. “Not available in your country.” 아마도 넥서스Q의 국가설정은 미국이고, 내가 구입한 콘텐츠는 한국 콘텐츠여서 생긴 문제가 아닌가 싶었다. 잽싸게 환불 결정. 그런데, 젠장, 넥서스7에서 바로 환불설정하는 메뉴를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모바일 사이트의 환불 관련 UI는 완전히 미스테리 수준이다. 결국 노트북에서 환불 신청. 신청받았다는 메일은 광속으로 날아왔는데, 일주일이 다 돼 가는데도 아직 환불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무슨 콘텐츠를 사서 보라고.

구글TV는 그나마 좀 낫더라. 확실히 기존에 IPTV 서비스를 LG유플러스에서 해오던 게 있기 때문인지, 각종 인터페이스가 구글식과 기존 통신사 방식이 반쯤 섞인 느낌. 게다가 문제가 생기면 LG에서 전화를 받아주리라는 믿음같은 게 있다. 뭔가 사서 봤어야 했는데, 당장 무료 영화에 나니아연대기 시리즈가 올라와 있는 덕에 그걸 보느라 아직 유료콘텐츠 구입은 못 했다. 그래도 기존에 쓰던 IPTV보다 리모컨 반응이 훨씬 빠르고, 리모컨에 키보드도 달려 있는 건 맘에 든다. 그리고 리모컨으로 짜증날 경우엔 그냥 넥서스7을 리모컨으로 쓰면 된다. 모든 안드로이드폰도 다 마찬가지라서 리모컨, 세컨스크린(TV에서 보는 화면을 폰/태블릿에서도 보기) 등이 지원된다. TV를 와이프에게 빼앗겨도 태블릿으로 야구중계를 볼 수 있는 정도라면 많은 사람들이 만족할 듯.

문제는 VOD 일부에서 랙(lag)이 심하게 발생했다는 점이다. 분명히 100M급 인터넷이라고 LG에서 엄청 광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HD 영화가 거슬릴 정도로 멈췄다 다시 재생되기를 반복하는 건 이해가 가질 않는다. 뭔가 회선관리가 잘 안되는 모양이다. 대신 생방송은 아직 랙을 경험한 적이 없다.

가장 만족스러운 건 회선도 LG 회선으로 함께 바꿨는데, 유튜브 재생이 그야말로 끝내준다는 점. LG가 구글캐시(Google Cache)를 도입한 덕분인데, 거짓말 아니라 다른 건 제외하고 유튜브만으로 평가했을 땐 전화모뎀 쓰다가 처음으로 초고속인터넷 회선을 연결했을 때의 느낌이 난다. 여기에 대한 얘기는 좀 복잡하니 나중에 따로 할 기회가 있을 듯.

어쨌든 내 첫 예상과는 달리(디지털 홈 엔터테인먼트는 당연히 픽사/디즈니와 특수관계인 애플 제품으로 시작하리라 생각했음) 비디오에 한해서는 구글이 우리집을 휩쓸었다. 역시 이래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시장에는 먼저 진출하는 게 유리한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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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3

아이패드3도, 아이패드HD도 아닌 ‘아이패드’였다. 2010년의 아이패드와 차별화하기 위해 애플은 이 제품을 ‘새 아이패드'(the New iPad)라고 불렀지만 모두의 기대와는 달랐다. 새로 나온 제품에선 숫자 3이 사라졌다.
애플의 마케팅담당 수석부사장 필 실러의 공식 설명은 “예측가능해지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멋진 이유지만 사라진 건 예측가능성 말고도 몇 가지 더 있다. 무엇보다 신제품의 권위가 사라졌다. 예전보다 개선된 제품, 성능이 향상된 제품 같은 마케팅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물론 애플은 레티나 디스플레이와 LTE네트워크를 개선된 기능으로 내세웠지만 사람들이 보기에 이제 아이패드는 그냥 아이패드다.

어찌보면 이건 애플이 새로운 마이크로소프트가 되어가는 모습의 시작처럼 보인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시대에 세상의 컴퓨터는 모두 그저 PC였다. ‘386’이라거나 ‘펜티엄’이라는 사랑받는 이름도 있었지만 그조차 제품을 뜻하는 모델명이 아닌 사용된 프로세서의 이름이었다. 그 시대에 HP의 PC와 소니의 PC, 델의 PC를 쓴다는 건 어떤 의미도 없었다. 그리고 세상은 윈도의 세상이었다.

이제 세상의 태블릿은 모두 아이패드다. 킨들 파이어와 안드로이드 태블릿이 존재하긴 하겠지만 조만간 그런 제품들은 ‘아마존이 만든 아이패드’나 ‘구글이 만든 아이패드’로 인식될지도 모른다. 시장을 만들기 시작할 때의 아이패드는 계속 변화를 보여 스스로를 증명해야 했다. 하지만 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한 뒤에는 스스로를 증명할 필요는 사라진다. 경쟁자들의 존재를 무시하는 편이 오히려 효과적인 지배에는 유리하기 마련이다. 과거 애플은 디자이너와 출판계를 위한 틈새시장용 제품을 만들어 팔던 회사였지만 지금은 애플의 경쟁자들이 애플이 미처 손을 대지 못하는 틈새시장을 공략한다. 그리고 애플은 이제 ‘아이패드로 할 수 없는 일’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로 일도 하고, 게임도 하고, 예술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그 때가 생각난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를 쫓아낸 뒤에도 계속 맥을 팔기 위해서 “쿽은 맥에서만 작동한다”거나 “제대로 된 폰트는 맥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다”고 강조하곤 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은 DTP 솔루션과 아름다운 트루타입 폰트를 윈도로 가져오는 것이었다. 윈도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어야 했으니까. 마찬가지로 이날 애플은 아이패드용 아이포토를 들고 나와 오랜 시간 설명했다. 터치로 작동하기 때문에 맥용 아이포토보다 더 직관적이고 쓰기 편한 소프트웨어였다. 게임, 책, 교육, 요리… 이날 애플이 보여준 모든 TV 광고와 비디오, 직접적인 키노트에서의 데모는 모두 이 점 하나를 강조한다. “이제 아이패드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신제품의 권위가 사라지면서 전통적인 경쟁구도도 함께 사라졌다. 애플은 이제 안드로이드와 경쟁하지 않는다. 팀 쿡의 키노트에 잠깐 등장했던 삼성전자의 갤럭시탭은 경쟁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조롱의 대상이었다. “스마트폰 화면을 그냥 키워놓은 것 같죠? 맞습니다. 그렇게 했을 뿐이죠. 아이패드는 달라요.”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에 펜이 달렸다고 얘기할지 모르고, 구글은 아이스크림 샌드위치의 멀티태스킹이 iOS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팀 쿡은 그런 경쟁을 하지 않기로 선언했다. “아름답고, 일관돼 있으며, 사용이 편리한 제품을 만드는 게 애플만이 할 수 있고, 우리가 꼭 하려고 하는 혁신입니다.” 경쟁제품은 보기 좋을지 몰라도 일관되지 않았고, 사용이 편할지 몰라도 보기좋지 못했다. 이 문제를 지적받은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왜냐하면 제품 라인업이 복잡해질수록 통합이 더 어려워지고, 통합이 더 어려워질수록 아름답게 만들기 더 힘들어지며, 이런 상황에서 아름다움을 고집하면 사용성이 망가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애플은 어떻게 잘 버티고 있느냐고? 스티브 잡스가 고집스레 밀어붙이고, 편집증적으로 간섭하고 통제했던 디테일 덕분이다. “7인치 태블릿은 DOA(Death on Arrival)”라고 독설을 퍼붓고, 구글 앱의 동그라미 속 노란색 때문에 일요일에도 직원들을 회사로 호출하던 그 디테일이 클라우드와 멀티디바이스의 시대를 맞아 원칙이 됐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이런 식으로 디자인을 하고 싶어하지만 디자인 회사를 제외하고는(심지어 디자인 회사조차) 디자이너가 독재 권력을 행사해 원칙을 모든 제품에 강제할 수 있는 경우란 거의 없다. 팀 쿡의 오늘 키노트를 듣고 있으면 잡스가 애플에게 남겨준 수많은 유산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게 바로 이런 디테일한 디자인 원칙이란 생각이 든다. 아름답고, 일관되고, 쓰기 편한.

그리고 어색한 화면의 시대도 함께 사라졌다. 한국에선 반쪽짜리, 어쩌면 반쪽 이하의 제품이라 별로 주목받지는 않았지만 이날 아이패드와 함께 소개된 건 애플TV다. 별다른 기능은 없다. 그저 HD를 지원할 뿐이다. 1920X1080의 Full HD 해상도로. 그런데도 주요 제품으로 소개됐다. 발표할 게 없어서 구색을 맞춘 것이었다면 차라리 얼마전 발표했던 OSX 라이온을 이 자리에 끌고 왔으면 될 일이었다. 이들은 애플TV와 새 아이패드를 묶어서 소개하고 싶었던 것이다. Resolutionary 제품이라고. 아이폰4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을 감동시켰던 건 (나중에 안테나게이트로 이어지는 원인이 된) 디자인도, 빠른 속도도 아니었다. 점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확 달라진 디스플레이가 모두의 눈길을 끌었고 일단 사람들의 손에 쥐어지기 시작하면서 판매 속도도 계속 높아졌다. 다른 제품과 비교가 불가능했던 차별화된 특징이었으니까. 새 아이패드도 마찬가지다. 별 게 아닌 듯 보이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책 크기의 디스플레이에서 격자가 보이지 않는 해상도를 본 적이 없다. 이런 해상도면 ‘빛나는 책’과 다를 바 없다. 일단 눈으로 실물을 보게 되는 순간 그 디스플레이에 반하지 않는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그리고 애플은 이제 거의 모든 제품에서 최고의 해상도를 이끌어냈다. 조금 지나면 결국 이런 높은 해상도가 산업 표준이 되겠지만 적어도 그때까지는 애플이 곧 표준이다.

그래서 다행이다. 우리 시대의 새로운 마이크로소프트가 다행히도 빌 게이츠 시절의 마이크로소프트와는 다르기 때문에.

구글에게 아직도 심각하게 부족한 것

구글과 애플이라는 두 거인의 경쟁을 보면서 경쟁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느끼게 됩니다. 애플이 아이폰을 만들지 않았다면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이렇게 빨리 개선시키고 발전시키지 못했을 테니까요. 모바일로 인터넷 검색을 하는 세상이 곧 올 거라는 생각은 구글의 누구라도 하고 있었겠지만, 그걸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보여준 건 애플이었습니다. 구글은 뭔가를 창조하는 능력만큼은 독재자와 그 추종자들로 이뤄진 강력한 군단에게 상대가 안 되는 모양입니다. 어쨌든 자유로운 영혼들의 공동체와 비슷한 (또는 그들 스스로 그렇다고 주장하는) 구글은 그 뒤 정말 미친듯이 아이폰의 장점을 흡수합니다. 편리한 UI, 다양한 응용프로그램(Apps) 등 애플이 한 건 모두 구글도 했습니다. 애플의 생각보다 아마도 훨씬 더 빠른 속도였을 겁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에 그 정도로 신경쓰지 않았다면 애플의 고객들은 여전히 멀티태스킹은 꿈도 못 꾸고, 배경화면조차 내 맘대로 바꿀 수 없는 스마트폰을 쓰고 있어야 했을 겁니다. 구글의 엄청난 속도는 애플에게 더 나은 제품을 만들어야만 하는 동기를 부여합니다.
훨씬 저렴하고,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으며, 더 좋은 품질의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통신사를 선택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폰이 시장에 잔뜩 나와있는데 여전히 주문처럼 ‘아이폰이 세계 최고’라고 우길 수는 없으니까요.

 

오늘 구글은 Google I/O라는 컨퍼런스에서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구글TV입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 생각났습니다. 바로 애플TV입니다. 애플이 벌써 몇년전 똑같은 이름으로, 비슷한 개념의 제품을 선보였던 그 애플식 TV죠. 둘 다 인터넷에 접속해 유튜브를 볼 수 있고, 주문형 비디오(VOD)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결정적인 차이는 사업의 방식입니다. 구글은 제작 초기 단계부터 소니와 로지텍, 인텔 등 전자업계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었고,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모든 구글TV소프트웨어는 세상의 그 누구라도 무료로 가져다 마음대로 쓸 수 있게 했습니다. 안드로이드OS의 경우와 유사하죠. 애플은 셋톱박스를 만드는 건 오직 애플이어야만 했고, 콘텐츠를 보기 위해서는 아이튠즈를 써야만 하도록 했습니다. 다른 전자업체와의 협력은 애초에 관심이 없었고요. 이번에도 시작은 애플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폰의 경우와는 달리 TV에서는 구글이 애플보다 먼저 웃게 될지도 모릅니다.(개인적으로는 삼성전자가 애플TV의 파트너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고, 그러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애플은 그때 그동안 손놓고 있던 애플TV 프로젝트를 크게 손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본 구글TV는 굉장히 혁신적이고 혁명적으로 보이지만, 큰 약점이 있습니다. 애플이 신제품을 발표할 때마다 등장했던 ‘그들’이 구글의 발표회장에는 나오지 않았거든요. 구글의 발표회장은 늘 엔지니어들로 가득합니다. 기술업체의 주요 임원들이 참석해 신기술의 향연을 벌이고, 기술이 모든 걸 해결할 거라 강조하죠. 오늘 발표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구글의 에릭 슈미츠는 인텔의 폴 오텔리니, 소니의 하워드 스트링어 등 세계 최고 기업들의 CEO들을 구글의 잔치에 불러 모읍니다. 아무나 이런 일을 할 수는 없죠. 하지만 기술은 모든 걸 해결하지는 않습니다. 애플에게는 찾아오는데 구글에게는 찾아오지 않는 ‘그들’이 누구일까요? 바로 콘텐츠 사업자들입니다.

 

애플은 아이튠즈에서 동영상을 팔기 시작하면서 디즈니(당연하게도)와 폭스, 소니, MGM, 워너 등과 콘텐츠 공급계약을 맺습니다. 음악을 팔면서도 음반사들을 소개했고, 책을 팔면서도 출판사와 신문사, 잡지사를 소개했습니다. 이런 콘텐츠 회사의 주요임원들은 간혹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 연설 가운데 게스트로 올라와 자신들의 제품을 소개하기도 하지요. 그리고 애플은 늘 콘텐츠 업체들이 만족할만한 방안을 찾아 그들에게 위축되는 산업을 지킬 수 있는 디지털 시대의 해법을 던져줬습니다.

 

오늘 구글은 새로운 혁명을 예고하면서 ‘그들’을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구글 TV의 모델은 기존 지상파/케이블 방송국의 영향력(편성권)을 대폭 축소시키고, 콘텐츠 제작자들이 수십억~수백억 원을 들여 만드는 콘텐츠와 유튜브의 UCC를 동일선상에서 노출시키는 혁명적인 모델입니다. 당연히 기존 산업의 주요 플레이어들은 탐탁지 않을 수밖에 없지만 구글은 이들을 찾지 않습니다. 구글은 과거에도 그랬습니다. 도서관의 책을 모두 디지털화해 검색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큰소리쳤다가 출판사들이 제기한 저작권 소송에 휘말렸고, 유튜브는 아직까지도 끊임없이 저작권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루퍼트 머독은 구글에서 월스트리트저널이 검색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구글과 ‘신문 전쟁’까지 벌일 기세입니다. 저는 그래서 이 회사가 콘텐츠 비즈니스를 모르거나, 적어도 한 번도 제대로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구글의 혁신적인 엔지니어들이 보기엔 전통적인 미디어 회사들은 지나치게 고루하고, 독점적이며, 낡은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겠죠. 문제는 그래서 구글의 모델 또한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는 겁니다. 게다가 구글의 산업은 듣기는 좋은데 빚좋은 개살구 같은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우선 당장 구글TV가 일으킬 트래픽을 통신사와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습니다. 통신사들이 감사하다고 구글TV를 자신들의 광통신망에 받아줄 리가 없죠. 안드로이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트리밍되는 컴퓨터의 음악라이브러리, 애플리케이션의 자동 업데이트 등은 계속해서 3G망에 부하를 주는 모델입니다. 구글은 통신사의 망 투자에 대한 고려같은 건 전혀 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애플리케이션은 어떤가요. 구글의 안드로이드 마켓은 애플 앱스토어보다 유료앱의 비율이 훨씬 적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성공한 개발자의 스토리’도 애플 앱스토어 개발자보다 훨씬 적습니다. 개방된 생태계라고 떠들어봐야 그 생태계에서 성공하는 사람이 없이는 빚좋은 개살구일 뿐입니다. 이런 걸 꼬집으면 구글의 답은 이렇습니다. "수많은 좋은 무료앱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올라온다." 이봐요, 당신들은 광고로 돈을 벌지만 그걸 무료로 올린 사람들은 한 달에 100달러 용돈벌이 정도밖에 못하는걸요. 구글의 젊은 CTO 빅 군도트라는 이날 스티브 잡스의 폐쇄성과 애플의 독점욕을 수없이 비꼬며 애플의 사업 모델을 비아냥댔습니다. 그리고 끝없이 구글의 ‘개방성’을 강조했죠. 그에 더해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구글은 데이터로 운영되는 회사다. 모든 데이터가 우리의 길이 옳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봐요, 젊은 아저씨. 콘텐츠는 데이터가 아닙니다. 소설과 음악, 시와 영화, 드라마와 게임은 데이터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정서로 움직인답니다. 당신들은 그걸 몰라요.

 

전에 아이패드 관련 포스트를 쓰면서 제가 애플에게 가장 감동했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픽사의 ‘업’을 소파에 앉아 아이패드로 지켜보던 스티브 잡스의 모습은 애플의 잠재 소비자들에게 왜 저 기계를 사야 하는지 잘 설명해 줍니다. "애플은 늘 인문학과 기술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라고 얘기했던 스티브의 말을 제가 기사로 옮겼을 때, 신기술에 아무 관심도 없던 우리 회사의 간부들도 그 말에 감동했고 며칠 동안 아이패드 기사 얘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구글TV의 개방성과 기술적 혁신성에 감탄하면서도, "그래서 도대체 저걸로 뭘 보라는 거야?"라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수없이 던져야만 했습니다.

 

구글의 젊은 분들. 삶은 데이터가 아닙니다. 삶은 피와 살과 사랑과 평화랍니다. 당신들은 그것도 데이터로 측정할 수 있나요?

For whom the 3D-TV turns?

라스베거스에서 열리는 CES 2010에 와 있습니다. 정식 쇼는 이곳
시간으로 내일 열리는데,(이 글을 쓰는 지금은 6일 오전입니다. 한국보다 17시간이나
늦죠…) 오늘부터 프레스 대상 행사가 열리기 시작했으니 사실상 저같은 기자
입장에서는 오늘이 개막인 셈입니다.

 

이번 CES에선 3D-TV가 화두라고 합니다. 삼성전자나 LG전자 모두
3D-TV, 3D-TV 강조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소니와 파나소닉도 별로 다르지 않은
모양새입니다. 세계의 온갖 주요 TV 메이커들이 모두 3차원 입체영상 속으로 빠져든
모양새입니다. 이렇게만 보면 2010년의 가장 큰 화두가 3D-TV를 통한 입체영상 콘텐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게다가 영화 ‘아바타’가 세계적으로 흥행 기록을 새로
써나가는 중인만큼(아직도 한국에선 3D 상영관의 주말 예약이 쉽지 않다더군요) 관심도
계속 늘어날 겁니다.

 

그런데, 일단 저부터 의문이 듭니다. TV 교체주기가 얼마나 되시나요?
제 기억에 우리 가족은 적어도 5년, 길면 10년 이상 TV를 썼던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진 TV는 신혼살림 장만할 때 샀던 40인치 LCD TV입니다. 충분히 크고, 충분히 화질이
뛰어납니다. 지난해 최신 LED TV를 사셨던 분들은 저보다 더 오래 쓰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산 TV는 약 200만 원 정도로 기억하는데 지난해 그리도 잘 팔렸다던 LED
TV는 같은 크기라면 가격이 두배 가까웠으니까요. 이런 TV를 최근 몇 년 간 충분히
구입하셨던 소비자들께서 새로 3D TV를 살 이유가 있을까요?

 

마침 뉴욕타임즈 블로그에 비슷한 주제의 글이 실렸습니다. "소비자는
정말로 3D-TV를 원할까?
"라는 글입니다. 장기적으로야 3차원 영상이 대세일거란
데 동의하지만, 적어도 앞으로 2-3년 동안 맥주 마시며 햄버거라도 먹으려면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해야하는 3D-TV를 거실에서 쓸 거라는 낙관적인 전망은 섣부르지 않느냐는
겁니다. 마지막 결론이 재미있습니다. 아이폰이 나올 때, 최신 비디오게임기나 획기적인
디지털카메라가 나올 때마다 그렇게 웅성거리던 IT 마니아들이 웬일인지 3D-TV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겁니다. 얼리어답터조차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3D-TV의 원년이란
뜻이죠.

 

2010년이 3D-TV의 해가 된다면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우선 TV 제조업체입니다. 값비싼 최고급 제품을 마케팅할 수 있고 교체수요를 빨리
이끌어낼 수 있으니 당연히 이익이죠. 3D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거대 영화사나 방송국
등 콘텐츠 업체도 도움이 됩니다. 대신 소형 콘텐츠 제작사들의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
겁니다. 플레이스테이션3가 나왔을 때 소형 게임업체들이 "우리는 저 엄청난
3차원 게임 못 만든다,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우리는 다 말라죽을 것"이라
걱정했던 기억이 납니다. 최근 몇년 사이 TV의 교체수요가 엄청나게 일어난
이유는 2002년 이후로 브라운관 TV의 발전에 한계가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LCD는 아직
그렇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미 사람들은 TV를 많이 바꾼 상태입니다. 3D TV가 얼마나
소비자들의 눈을 잡아끌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