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셰릴 스트레이드는 약쟁이였다.

나는 욕실로 가서 얼굴을 씻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숨을 들썩거리며 흐느꼈다. 그러다가 식당의 아침 장사 시간에 맞춰 일을 하러 가야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건 내가 아니야. 이건 내가 사는 방식이 아니야. 그만 둬. 더 이상은 안 돼. 하지만 오후가 되면 손에 쥐고 있던 현금으로 다시 마약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걸 해야 해. 내 인생을 낭비해야 해. 쓰레기가 되어야 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엄마의 딸이던 셰릴에겐 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채식주의자에 약초즙을 물처럼 들이키며 살았던 엄마는 겨우 마흔다섯에 폐암으로 죽었다. 딸에게 아빠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엄마의 새 남자친구 에디 뿐이었는데, 엄마가 죽고 나자 에디는 다른 여자를 만났다. 에디는 의붓딸 셰릴을 대할 때 아빠의 책임보다는 친구의 우정으로 대했던 사람이었다. 딸의 생물학적 아빠는 에디보다도 더 필요없는 존재였다. 그는 엄마도 때리고 딸도 때렸다. 개자식이었다. 엄마 잃은 딸에겐 그래서 아빠가 없었다. 돈도 없었다. 직장도 없었다.

대신 딸에게는 자신을 사랑하는 폴이라는 남자가 있었다. 폴은 끝까지 딸을 사랑했다. 하지만 딸은 폴을 버렸고, 약을 택했다. 그리고 폴과 결혼한 상태에서 아무 남자에게나 안겨 하룻밤을 보내곤 했다. 아마도 딸은 사랑에 굶주렸을 것이다.

결국 나는 엄마에게 대놓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엄마,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딸이지, 그치?” 엄마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당연히 그래야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런 말들이 엄마의 마음속에서 하나로 엮여 다시 새로운 느낌으로 내게 전달되기를 바랐다. 나는 사랑에 굶주려 있었던 것이다.

파국 말고는 남은 것이 없어 보였던 인생, 딸은 드디어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맘을 다잡아 본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여전히 마약을 이기지 못하던 상태에서. 그렇게 하여 딸은 갑작스런 도보여행에 도전한다. 충동에 가까웠다. 퍼시픽크레스트트레일(PCT), 캘리포니아에서 출발해 워싱턴주까지 걸어 올라가야 하는 엄청난 도보 여행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채, 배낭 여행 경험조차 없었던 20대 여성은 그렇게 혼자서 긴 걷기 여행을 시작한다. 당연히 쉬울 리가 없었다. 심지어 그냥 배낭을 매는 것부터 말이다.

그리고 내 배낭을 바라보았다. 거대하면서도 속이 꽉 들어찬, 왠지 정감이 넘치지만 동시에 위협적이기도 한 모습으로 홀로 우뚝 서 있는 녀석. 마치 살아 움직이는 친구 같은 모습에 외로운 기분이 어느 정도 사그라졌다. 똑바로 세운 높이는 내 허리까지 닿았다. 나는 배낭을 움켜쥐고 들어올리기 위해 몸을 굽혔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몸을 웅크리고는 배낭의 프레임을 더 단단히 붙들고 다시 한 번 들어 올리려고 용을 썼다. 이번에도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도. 이번에는 두 다리에 단단히 힘을 주고 양손을 이용해 마치 포옹이라도 하듯 배낭을 끌어안고 시도했다. 내 안의 모든 걸 다 쏟아 부었지만 배낭은 미동도 없었다. 정말이지 소형 승용차라도 한 대 들어 올리는 것 같았다. 폭스바겐 비틀처럼 예쁘장한 모습에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만 같은데, 도무지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길었던 이번 연휴 기간 동안 이 책을 읽었다. 난 아들과 여행을 떠났고, 우리는 수영장이 딸린 작고 예쁜 호텔을 빌렸다. 나는 아들에게 잠수를 가르쳤으며 아들은 내게서 연날리기도 배웠다. 연을 날리기 위해 타래를 든 채로, 내가 아들에게 말했다. “연이 곤두박질치려고 하면 끈을 살짝 헐겁게 놓아주렴. 그러면 연은 통제를 벗어나 자유롭게 떠오른단다.” 나는 그 말을 해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붙잡아 두려고 하면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것이 꼭 너를 닮았지. 자유롭게 놓아주고 싶지만, 그래도 끈만은 붙잡고 있고 싶은 내 모습 또한.’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제1권》이 내 성경책이라면 《공통된 언어의 꿈》은 사실상 나의 종교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책을 펼치고 첫 번째 시를 큰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내 목소리가 텐트의 벽을 때리는 바람 소리 위로 높이 울려 퍼졌다. 나는 그 시를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시의 제목은 바로 ‘힘Power’이었다.

이 책은 내가 스무살이 되던 해 떠났던 자전거 여행의 기억을 되살리게 만들었다. 당시의 난 형편없었다. 하루에 20킬로미터 남짓한 거리를 다섯시간에 걸쳐 달렸다. 그랬던 내 몸이 어느 순간 텐트와 취사도구까지 실은 채 하루 80킬로미터 정도는 가뿐히 주파할 수 있게 변해가는 것을 보는 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 괴로울 때마다, 노래를 부르곤 했다. 신해철의 노래도 불렀고, 민중가요도 몇 곡 불렀던 것 같고, 무엇보다 김광석의 노래를 불렀고. 그리고, 그 여행의 길에서 나는 끊임없는 도움을 받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아무 조건 없는 친절이 못된 사람들의 불친절과 괴롭힘을 압도적으로 넘어섰다.

이 책을 간단히 줄이자면 약쟁이 딸, 엄마를 잃은 딸의 성장 이야기다. 다시 세상을 사랑하고 엄마가 되고자 마음을 먹게 되는 과정 말이다. 배경이 야생의 자연, 즉 와일드와 함께 펼쳐진다는 것 정도가 중요한 요소랄까.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이 와일드인 것은 딸이 자연의 위대함 때문에 성장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딸을 키운 것은 와일드한 자연 속에서 조건 없이 사랑을 베풀던 다른 사람들이었다. 개자식 같은 아빠, 책임감 없는 의붓아버지,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 사랑했지만 사랑을 받을 준비가 안 돼 떠나보내야 했던 폴. 그들과의 어긋난 관계들이 여행을 통해 만난 낯선 이들과의 우정을 통해 조금씩 자리를 찾아간다.

아들에게 연을 날리는 법을 가르쳐 줬던 나는, 여행을 정리하기 전날 저녁 “우리 이 연의 끈을 잘라줄까?”라고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은 되물었다. “왜요?” 난 답했다. 연이 끈에 매어있잖아. 끈을 놓아주면 멀리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을 거야. 아들은 더 현명한 선택을 했다.

“나, 이 연을 아까 수영장에서 만난 그 누나에게 선물할래요. 내게 잠수하는 법도 가르쳐 주고, 물속에서 가위바위보 하는 법도 가르쳐 준 그 누나한테요.”

나는 끈을 놓을 생각만 했지만, 사실 사람들이란 끈을 건네고 또 받으면서 서로를 엮어간다. 늘 그랬듯이.

리틀 브라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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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버스터 당시 정의당 서기호 의원이 이 책을 소개했다. 그러자 저자가 이 장면을 보고선 “한국에서 내 책을 소개했다”며 트윗을 올렸다. 이 기묘한 세상. 도대체 어떤 책이기에 소개했을까, 그리고 이 저자는 어떤 사람이기에 한국의 필리버스터에도 관심을 갖고 있을까(물론 독자가 트윗으로 알려줬겠지만) 궁금해서 책을 펼쳤다.

… 그리고 책을 덮지 못했다.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어느날 샌프란시스코에서 폭탄이 터져 베이교가 무어졌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의 소행이었다. 그러자 미국 정부는, 정확히는 ‘국토안보부’는 이를 기회로 삼아 온갖 비상조치들을 내놓기 시작한다. 심지어 ‘애국자법2’도 등장했다. 9.11 테러 때 등장했다가 부분 위헌 판결로 무력화된 ‘애국자법’을 비꼰 패러디다. 문제는 국토안보부가 테러리스트는 못잡고, 무고한 시민들을 잡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선거를 앞두고 있었고, 위기는 권력자에게 기회니까. 주인공 마커스는 고등학생이다. 폭탄이 터지던 그날 우연히 국토안보부에 붙잡혀 감옥에 갇혔고, 잘못된 사람을 잡아왔다는 것을 깨달은 국토안보부는 구금 사실을 비밀로 유지하는 조건으로 마커스를 풀어준다. 하지만 함께 구금된 마커스의 친구는 풀려나지 못한다. 그래서 마커스는 평소 즐기던 방식대로 정부에 저항한다. 인터넷 말이다.

샌프란시스코를 경찰도시로 만들려고 하는 가상의 미국 정부 이야기지만, 읽다보면 이게 정말 묘하게 낯이 익은 구석이 있다. 우선 마커스가 학교에서 쓰는 노트북부터.

“스쿨북에는 윈도우 비스타4스쿨이 깔려 있는데, 이 구닥다리 운영체제는 학교 관리자들에게 학생들이 이용하는 프로그램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 주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청소년 유해물 차단 앱’을 만들어 스마트폰에 강제로 깔아주겠다는 사람들이 어디 있던데…

마커스는 아주 똑똑한 고등학생이다. 도서관 책에 달린 RFID태그가 책을 빌린 학생의 위치추적에 편법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알고는 전자렌지에 책을 넣고 돌려 RFID를 망가뜨리기도 하고, 두루마리 휴지심에 자전거 조명에서 떼어낸 LED램프를 잔뜩 박아넣어 소형 몰래카메라 렌즈를 찾아내기도 한다.(렌즈 유리의 빛 반사를 통해) 또 엑스박스 해킹(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듯 보이는데, 엑스박스에 리눅스를 설치한 뒤 와이파이 릴레이 방식(이건 FON을 연상시킨다)으로 인터넷에 접속해서 정부가 추적할 수 없는 거대한 통신망을 구축하기도 한다.

특히 마커스의 친구들은 수많은 공개 암호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것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마커스는 이런 말을 한다.

“튜링이 에니그마를 발명한 사람보다 똑똑했다는 게 문제였다. 암호화 체계를 만들고 나면 만든 사람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 그 체계를 깨버릴 위험에 노출된다. 그래서 그 문제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할수록, 설령 만든 사람조차 깨는 방법을 모르는 보안 체계를 만들어내더라도 누군가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는 생각이 더 커졌다. 자신보다 똑똑한 사람이 무슨 일까지 해낼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암호 체계가 제대로 작동되는지 알려면 대중에게 공개해야 한다. 그 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그 체계를 두드려보고 안전성을 점검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결점을 찾아내지 못할수록 암호 체계는 안전한 것이 된다. 오늘날 암호 체계는 그런 방식으로 운영된다. 암호가 안전하기를 바란다면 지난주에 어떤 천재가 만든 암호화 방식이 아니라, 아직 아무도 깨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해서 오랫동안 사용해온 방식을 이용하는 게 낫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특정 암호가, “정부만 들여다 볼 수 있어야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어느 나라 국가기관에서는 보안적합성을 통과하지 못한 안전하지 못한 스마트폰으로 이 스마트폰을 꼽았다고. 왜냐하면 정부가 다 들여다 보고 안전성을 검증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게 해서. 그런데, 이 스마트폰은 또 다른 나라에서는 지나치게 보안이 잘 돼 테러 방지에 지장이 있다고 FBI를 열받게 했다더라. 문제는 최근에 보안적합성을 통과하지 못한 스마트폰은 별 문제가 없는데, 적합성을 통과했을 스마트폰들이 북한 사이버테러에 뚫렸다는…

끝으로, 저자는 한국어판 번역과 함께 한국 독자들을 위해 특별히 저자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 저자의 책이 한국 국회에서 소개됐으니, 저자로서도 즐거운 경험이었을 듯.

“외설과 저작권 해적질을 막기 위해, 혹은 “최근 북한의 지뢰 폭발과 연천 포격 등 도발과 관련해 남한이 거짓으로 날조했다고 비난하는 허위의 내용이 담겨 있는”(한국방송통신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차단한다며 검열 체계를 만들면, 권력자는 숨기고 싶어 하는 자료를 이런 분류에 넣기만 해도 네트워크에서 쉽게 없애버릴 수 있게 됩니다.”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밥 먹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함께 밥 먹게 해주는 스타트업, 셰프가 만든 고급 음식을 집으로 배달해주는 스타트업, 식당 예약을 해주는 스타트업… 수많은 요식업 관련 스타트업이 활약합니다. 우리는 평소에도 수없이 입버릇처럼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라는 얘기를 하곤 합니다. 그 먹고 사는 일을 혁신하는 회사들이 인기를 끄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렇게 먹는 음식과 관련된 스타트업을 일반적으로 푸드테크(Food Tech) 혹은 푸드 스타트업(Food Startup)이라고 일컫곤 합니다. 종류는 여러가지지만 크게 보면 모두 먹는 경험을 더 즐거운 경험으로 바꾸려는 일입니다. 배달전문 스타트업이 가장 큰 규모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겁니다. 좋은 음식을 먹으려면 요리를 직접 하거나, 또는 남이 만든 요리를 사먹어야 하는데, 요리를 사먹으려면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가야 하니까요. 배달앱들은 그래서 배달만 대신 해주는 게 아니라, ‘맛집’도 메뉴 선택 과정에서 추천해 주고 어디가 맛있는지 ‘리뷰’도 보여줍니다. 주문과 결제 과정의 편리함은 기본이며 배달 소요시간까지 알려줘서 식사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해주죠. 이렇게 해서 식당의 배달 주문이 늘어나면 소비자도 이익이고 식당도 이익일 듯 합니다.

물론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수수료 문제, 리뷰 조작 문제 등은 단골로 제기되는 문제죠. 이 정도는 예상 가능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배달 음식이 ‘식당의 명성에 먹칠을 한다’는 소송까지 벌어집니다. 예를 들어 미국 서부에서 인기를 끈 햄버거 체인점 인앤아웃은 최근 도어대시라는 음식배달 스타트업을 고소했는데, 도어대시가 인앤아웃의 로고를 대가없이 사용해 브랜드 가치를 도용했고 배달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지는 인앤아웃 음식을 배달하면서 소비자 만족도를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란 이유에서였습니다. 식당 입장에서는 좋은 음식을 집에서 편하게 먹도록 한다는 푸드 스타트업이 오히려 식사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보였던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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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햄버거를 배달하면 식어서 맛이 없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음식을 단순 배달해주기 보다는 소비자가 음식을 먹게 될 순간의 경험까지 고려해 조리에 반영하는 스타트업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먼처리(Munchery) 같은 스타트업이 대표적인데요, 이들은 반조리 상태의 음식을 각 가정에 배달합니다. 15분 동안 요리할 수 있는 상태로 모든 걸 만들어서 배달하는 먼처리는 고기도 미리 썰어놓고 빵도 구워놓은 채로 음식을 포장합니다. 소비자는 이 음식을 받아서 조립하듯 재료를 잘 배치해 가열만 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이런 음식은 유명 레스토랑의 셰프가 고안하는 특별한 레시피에 따라 준비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레스토랑 수준의 식재료 준비 및 양념이 모두 끝난 음식을 집에서 조금만 더 손 보면 멋진 저녁식사를 할 수 있으니 인기를 끌 수밖에요. 단순 배달음식보다 최종 완성된 요리의 수준이 월등히 높을 뿐만 아니라, 준비하는 사람들은 간단히 요리하는 즐거움까지 맛볼 수 있어서 최근 먼처리와 비슷한 스타트업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요리 준비를 누가 대신 해준다면 나도 ‘냉장고를 부탁해’를 찍을 수 있다!

집에서 먹는 음식은 이렇게 해결한다고 쳐도, 밖에 나가서 식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국 맛집 정보를 찾아 헤매게 됩니다.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은 역시 미디어죠. 신뢰도가 중요하고, 변화되는 환경에 따라 업데이트가 신속하게 진행돼야 하며, 내 취향과 잘 맞는 정보까지 얻을 수 있다면 최고입니다.

예전에 이 분야의 선두주자는 옐프(Yelp)였습니다. 세계의 수많은 서비스들이 옐프에게서 배우고자 했죠. 믿을 만한 리뷰의 관리, 새로 생긴 음식점과 문 닫은 음식점 업데이트를 빠르게 도와주는 충성스런 사용자 커뮤니티 등. 하지만 요새는 모든 푸드 스타트업이 일종의 미디어가 됐습니다. 배달앱은 배달음식점 리뷰앱이 됐고, 식재료 장보기 앱은 좋은 식재료 가게의 리뷰앱이 됐으니까요. 그래서 최근의 레스토랑 리뷰를 하는 스타트업은 뉴미디어처럼 변화합니다. 뉴스나 정보지 못잖은 기능을 갖추면서 진화하는 것이죠. 독자에게 개인의 관심사에 따른 뉴스를 보여준다거나, 뉴스를 하나 읽고 나면 관련 뉴스를 추천해 주는 뉴미디어 서비스처럼 레스토랑 리뷰 서비스들도 진화합니다. 평소 라자니아를 잘 하는 레스토랑을 찾았던 사람에게는 새로 생긴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추천해주고, 단골 중국 음식점의 예약이 꽉 찼다면 다른 레스토랑을 추천해주는 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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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에 목숨 거시는 사장님…

한 술 더 떠 레지(Resy) 같은 스타트업은 원하는 식당에 원하는 날짜 예약을 바로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냥 예약하려면 한 달은 미리 앞서서 예약해야 하는 인기 레스토랑들이 대상입니다. 비결은 단순합니다. ‘예약비’를 따로 받는 것입니다. 레스토랑 입장에서 예약을 적게 받는 이유는, 일반적인 예약 시스템을 도입할 경우 생기는 이른바 ‘노쇼’(No-Show) 고객들 때문입니다. 나타나지 않는 고객들이 손해를 주니까요. 반면 그런 사람들 때문에 빈 자리를 찾는 고객은 식당 앞에서 줄을 서야 하죠. 레지는 예약 과정에 돈을 받으면서 이런 불편을 해결해 줍니다.

말이 나온 김에 식당에서 돈을 내는 과정도 한 번 볼까요? 한국에서야 거의 모든 레스토랑에서 식사가 끝나면 계산대로 나가서 돈을 냅니다. 이게 일반적이죠. 반면 미국에선 다릅니다. 종업원을 불러서 계산서를 가져다 달라고 하고, 주문 내용을 확인합니다. 그 뒤 다시 종업원을 불러서 현금 혹은 신용카드를 내죠. 그러면 계산을 마친 영수증을 종업원이 다시 가져다 줍니다. 여기에 팁을 남겨놓고 일어서야 계산이 끝납니다. 식사를 다 마친 뒤부터 진행되는 이 과정은 길면 10분 이상도 걸립니다. 한국인의 시각으로 보면 속이 터질 노릇이죠. 미국인들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커버(Cover)라는 스타트업은 이 결제 과정만 담당합니다. 커버의 약 300개에 이르는 가맹 레스토랑에서는 고객들이 식사가 끝나면 커버 앱으로 결제를 하고 그냥 일어섭니다. 애플페이로 낼 수도 있고, 신용카드 결제도 괜찮습니다. 미리 식당을 골라놓은 뒤 식당에 들어가면서 “커버로 낼 거에요”라고 얘기하면 됩니다. 주문한 음식은 자동으로 계산되고, 팁도 식사중 몇 퍼센트를 줄지 정하면 됩니다. 친구들끼리 나눠내기 기능도 지원하죠. 종업원을 불러서 계산서를 가져다 달라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단순한 편리함 때문에 이 회사는 이미 매월 200만 달러 이상의 결제를 처리하는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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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지 않고 바로 돈 내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사업이 된다니!

하지만 어떤 스타트업들은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음식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과연 맛이란 무엇일까, 영양이란 무엇일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죠. 이들에게 맛은 ‘요리사의 손맛’이라기보다는 특정한 환경에서 일어나는 분자구조의 화학적 결합입니다. 영양이란 목초를 먹으면서 청정 지역에서 자라난 1등급 한우 대신, 단백질 함량이 높은 고단백 식품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좀 드라이하고 멋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이게 음식의 미래일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모던메도우(Modern Meadow)라는 회사는 현대식 초원이라는 이름 뜻에 걸맞게 고기를 ‘생산’합니다. 푸른 풀이 가득한 초지가 아니라 실험실에서 생산한다는 것이 차이죠. 방법은 간단합니다. 소나 돼지 등 육류에서 떼어낸 생체조직을 배양해서 3D 프린터로 고기 모양으로 재구성해내는 것이 이들의 일입니다. 마치 샬레 위에서 세균을 배양하는 식이죠. 그런데 이렇게 햄버거 패티와 소시지, 다진 고기 등을 실험실에서 공장처럼 생산하는 세상을 만든다면 공장식 축산의 폐해도 줄어들고, 고기 생산에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물과 곡물의 낭비도 줄어들 거라는 게 이들의 생각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인류가 좀 더 지속가능한 삶을 살게 되겠죠.

아무래도 실험실에서 세균 배양하듯 배양하는 고기는 좀 꺼려진다면, ‘진짜 단백질’인 곤충으로 만든 고기는 어떨까요? 식스푸드(Six Foods)라는 회사는 하버드 동기생 세 여성이 창업한 회사입니다. 이들은 여섯개의 다리를 가진 동물들이야말로 인류의 식량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는 믿음을 갖고, 회사 이름도 그렇게 정했습니다. 바로 곤충 얘기죠. 이들이 처음 만든 음식은 처프칩(Chirp Chips), Chirp는 곤충소리의 의성어이니, 한국어로 옮기자면 귀뚤귀뚤칩 정도가 되려나요. 콩과 쌀 구운 귀뚜라미가 원료인 이 칩은 소금맛, 비비큐맛, 체다치즈맛으로 팔리고 있습니다. 일반 감자칩과 비교해 단백질 함량이 세 배가 넘는다고 하니, 술안주나 심지어 식사 대용으로도 그만이겠네요. 징그럽다고요? 식스푸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곤충을 이미 먹고 있는지 강조합니다. 빨간색 식용색소의 거의 전부가 연지벌레로 만들어집니다. 시금치통조림이나 가공음식 대부분이 일정 수 이하의 벌레가 함께 가공되는 걸 용인해서 만들어지고 있죠. 곤충을 먹는다고 큰 일이 생기지 않을 뿐더러, 우린 이미 벌레를 많이 먹고 있다는 겁니다.

먹는 일은 정말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매일 수차례 씩 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그렇죠. 누구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먹는 일을 다루는 기업들이 많아지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일상이 행복해지는 일이 되리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