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리더인가

마음 가짐이 중요하다는 얘기는 너무 많이 들어서 식상하다. 심지어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는 좋은 얘기도, 우리는 특정 맥락 때문에 이제 그냥 웃기는 미신 같은 표현으로 여기고 넘어가곤 한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 걸까.

교세라의 창업자인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리더인가는 뻔한 소리 같은 ‘마음가짐’에 대한 책이다. 아마 10년 전 읽었다면 그냥 넘겨버렸을 얘기에, 이젠 자꾸 눈이 간다. 그리고 마음이 간다.

책 초반에 나오는 말인데, 출판사가 일부러 그래픽으로 강조까지 해 놓았다. 이 얘기는 책 전체에서 여러번 변주되지만, 가장 와 닿았던 부분은 일본항공(JAL) 재건 스토리. 이나모리 회장은 2010년 파산 직전의 일본항공 재건을 위해 일본항공 회장으로 취임한다. 경영 일선에서 은퇴하고도 한참 지난 77세 때의 일이었다. 당시 일본항공의 부채는 21조 원, 적자는 연간 5000억 원, 이나모리에게 주어진 재건의 데드라인은 단 3년이었다.

파산하는 회사를 되살리기 위한 방법은 언제나 동일하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분위기를 되돌릴 수 있는 혁신. 하지만 많은 회사들이 이 간단한 일을 못 해 도산한다. 말과 실행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교세라 시절부터 함께 일한 임원들과 경영진을 구성한 뒤 일본항공 간부들을 모아놓고 한 달간 ‘집중 리더 교육’을 시행할 계획을 세웠다. 내가 가장 먼저 실행한 것은 구성원들에게 이른바 ‘필로소피’를 전하는 일이었다. ‘열심히 일에만 몰두한다’,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 ‘항상 겸허하고 솔직한 마음을 지닌다’ 등 상식적인 교훈을 토대로 한 가치관 말이다.

“여러분이 유치하다고 생각하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이 가르침들을 여러분은 이미 머리로는 잘 알고 있을지 몰라도, 몸으로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을 뿐더러 실천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 점이 바로 회사를 파산으로 몰고 간 원흉입니다.”

그래서 구조조정은 미리 짜인 계획에 맞춰 단호하게 진행하는 한편, 이나모리 회장은 턴어라운드를 위한 혁신의 발판을 마음가짐에서 찾는다. 그가 진행했던 이 리더 교육은 곧 일반 직원 교육으로 확대됐고, 이나모리는 조직 개편을 통해 현장에서 고객을 대면하던 현장직을 대규모로 중용했다. 고객에게 마음을 내보일 현장직이 가장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 직접 현장의 기장과 승무원을 쫓아다니면서 코칭을 시작했다. 기내방송을 스크립트 대신 자신들이 자유롭게 정해서 하라고 권하는 것 같은 일 말이다.

그리고 1년 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일본항공은 이전의 관료적인 항공사가 아닌 전혀 다른 기업으로 거듭난다. 인근이 물에 잠겨 공항 건물로 주민들이 피난오자 일본항공 공항직원들은 식료품과 담요를 앞서 제공했고, 급작스런 지진으로 기내에 갇힌 승객들을 돌보던 승무원들은 기내에서 밥을 지어 주먹밥을 만들어 나눠줬으며, 적십자 구조대를 수송하던 기장은 구조대를 격려하는 자신만의 방송을 내보냈고, 승무원들은 구조대원들의 짐에 살짝 위로와 응원의 메모를 써서 넣어두곤 했다. 모두 매출과는 상관 없는 일이었지만, 일본항공은 2011년 턴어라운드에 성공했고, 2년 반 만에 퇴출되었던 증시에 재상장하게 된다. 이나모리 회장이 ‘마음의 개혁’이었다고 얘기하는 일본항공의 기적이었다.

이나모리 회장의 어머니도 참 독특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동네 친구들과 싸우고 돌아오면, 자초지종을 물은 뒤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네가 옳다고 생각한다면 한 번 더 가서 이길 때까지 싸우고 오너라.” 언뜻 생각하면, 지지 말라는 승부욕에 대한 얘기처럼 받아들일 수도 있었겠지만, 이나모리 회장은 이 얘기를 다른 뜻으로 받아들인다. 리더라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할 때 ‘싸우는 결정’을 뒤로 미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리더는 결단을 미뤄선 안 된다. 일단 지금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경영자로서 판단하기에 옳은 일이라고 확신한다면 언제든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여러번 이 책의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김광현 선배가 선물해 주신 책이었는데, 선배는 늘 본인이 읽어서 좋았던 책을 주위에 선물하신다고 한다. 마음은 그렇게 전달된다.

Back Burning

“자나깨나 산불조심”

귀 따갑게 들어왔던 산불 예방 표어들. 선진국에서는 이미 수십년째 이어진 자연보호 활동이자, 환경보호 활동이고, 일종의 신앙과도 같은 믿음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Vox의 유튜브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수십년 간 우리가 노력해 온 산불 예방 노력이 최근의 어마어마한 산불의 원인일지 모른다는 지적이었다.

작년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의 대화재가 기억난다. 인근에 사는 지인들이 하루종일 오렌지색으로 변해 버린 하늘 사진을 찍어 보내줬고, 서울의 미세먼지는 비교도 안 될 수준의 미세먼지 탓에 외출도 자제해야 했던 시기였다. 그 땐 다들 지구 온난화만 얘기했지만, (온난화가 이유가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 Vox의 이 리포트는 다른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본다. 캘리포니아 산불은 원래 때가 되면 일어나는데, 인간이 이 산불을 참지 못하고, 수십년간 너무 잘 예방한 것이 문제라는 얘기다.

종종 작은 산불이 일어날 때면 가장 먼저 불타 사라지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죽은 가지와 마른 잎 등이다. 이후 작은 풀들이 타들어가고, 덜 건강해서 수분을 덜 머금은 작고 약한 나무들이 차례로 불에 타버린다. 그리고나면 숲에는 굵고 강한 나무만이 살아남는다. 이 나무들은 상처를 덜 잎은 위쪽의 잎새를 더 많이 틔우고, 더 높은 곳에서 태양을 받으며, 그 아래에 비와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을 드리워 새로운 생태계가 자리잡게 한다. 양분을 담은 흙이 드러나고, 잡목와 잡초가 사라져 새 생명이 활동할 공간도 넓어진다.

그런데 인간이 산불이 조금이라도 나면 물을 끼얹어 ‘예방’하기 시작하자 이런 순환이 멈췄다. 타서 없어졌어야 할 죽은 나무와 마른 잎은 수십년을 쌓여 땔감을 모아놓은 화약고 역할을 하게 됐다. 이미 타 죽었어야 할 약한 나무들도 쓸데없이 살아남아 강한 나무가 더 높고 크게 자라는 것을 방해해 숲 전체를 약하게 만들었고, 바닥에 쌓인 낙엽과 마른가지들은 새 싹이 자라는 것을 방해했으며, 쓸데없이 무성한 숲은 새 생명이 활동할 공간을 빼앗는다.

이런 이유로 산불이 점점 더 커지고, 격렬해지자, 캘리포니아 못잖게 재앙적인 화재 피해로 유명한 호주에서는 작년에 새로운 법안을 통과시켰다. Back Burning, 다른 말로는 ‘계획된 산불’을 일으키도록 하는 법안이다. 사실 원주민들이 수백년 전부터 해당 지역에서 해오던 일이었다. 미리 불을 조금 내서 산불이 너무 커지지 않게 통제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19세기 중반 백인들이 식민통치를 시작하면서 이런 인위적인 산불을 금지하면서부터였다. 호주는 최근에 와서야 스스로의 잘못을 깨달은 셈이다.

작은 불을 내야 더 큰 불이 나지 않는다. 썩어가는 죽은 가지, 약해서 살아남기 힘든 잡목들이 작은 산불을 통해 걸러져야 숲 전체가 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지구를 멸망시킬 듯 거대하고 위협적인 산불이 온 대륙을 덮을 때까지 그 위험을 깨닫지 못한다. 어디 비단 산불 뿐일까.

나보다 운전 잘 하는 차

모델3가 왔다. 한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2500킬로미터를 달렸다. 10년에 7만 정도를 달리는 평소 습관과 비교하면 아무리 첫 달이지만 좀 과했다. 그만큼 타고 싶게 만든다.

물론 시끄러운 차라서 문제도 많다. 트렁크에 큰 이격이 있다. 다행히 폭우에도 비는 안 새더라. (이걸 좋아해야 하나) 열선도 하나만 끊어졌다. 이것만으로 as 대상이라는데, 맡기면 한달동안 차가 입고되어 안 나올 수 있다고 한다. 서비스 센터 악명 높다… 업데이트 때마다 버그가 나왔다 수정됐다 해서 요샌 차에서 전화를 받으면 소리가 안 들리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외에도 소소한 버그들, 결함들, 많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무엇보다 감탄하는 부분은 운전이다. 주행감, 속도감 이런 것 말고(이런 건 비싸고 좋은 차 많으니까) 컴퓨터가 개입하는 순간들. 물론 요즘 차들에 다 있는 기능들이다. 차선유지를 해주는 자동조향기능, 앞차와 거리를 유지해 주는 크루즈운행 기능, 급정거시 제동 등등. 하지만…

시속 130킬로미터에도 마음놓고 기계에게 운전을 맡길 수 있다. 믿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회전 추월 다 괜찮다. 옆차로에 대형 트럭이 지나가도 안심이 된다. 끼어드는 차도 잘 비켜주고, 간격 유지도 적당하게 한다. 비슷한 기능이 있는 다른 차들을 탔을 땐 불안해서 차마 운전을 못 맡기거나, 맡겨도 지나친 차간거리 유지로 뒷차에게 눈총을 받았다. 하지만 이 차는 좀 다르다. 모델3를 탄 아내는 “자기보다 운전을 편안하게 해서 안심된다”고 할 정도. 내가 20년 넘게 무사고 운전자인데…

또 하나. 내가 못 보는 각도까지 본다. 나는 시선이 향하는 방향의 차들만 보는데, 이 차는 카메라와 레이더가 훑는 모든 곳을 동시에 본다. 조수석에서나 보이는 앞차 우측 앞편 상황도, 차선 변경하려 고개를 돌릴 때 놓치게 되는 앞차의 급브레이크도 다 보고 있다.(실제로 이 덕분에 어젯밤 작은 접촉사고 한 건을 피했다. 우측깜박이 키고 좌회전하는 운전자 나빠요.)

무엇보다, 컴퓨터가 차를 적극적으로 통제한다. 이건 기술보다는 정책의 문제 같은데, 내가 고의로 해제하지 않는 한 기본설정이 차량이 운전에 개입하는 설정이다. 위급 상황에서는 운전자의 지시 없이 브레이크도 적극적으로 밟고, 경고음도 마구 울려대고, 심지어 핸들도 자기 마음대로 꺾는다. (당연히 타이어 슬립은 용납하지 않는다. 드리프트 하려면 옵션을 꺼야 한다.) 큰 사고를 피하겠구나 싶지만, 그러다 작은 사고가 날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작은 분쟁은 기꺼이 떠안겠다는 뜻 같다. 한국에서 버티기 험난하겠구나 싶지만, 그래서 더 신뢰가 간다. 확실히 나보다 이 차의 AI가 운전을 더 잘 한다. 자신의 일에 자신을 가진 회사가 만드는 제품을 믿지 않으면 무얼 믿을까.

물론 여전히 많은 자동차 전문업체들이 “우리 회사 차에서도 다 되는 기능”이라고 우기고 있다. 그럴지도. 미슐랭 별세개 셰프도 파스타를 만들고 우리 집 앞 비비큐치킨도 파스타 사이드메뉴를 만든다. 둘 다 파스타이긴 하다. 그 말이 또 누군가에겐 먹히겠지만, 결국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데에는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