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커뮤니티

언제 한 번 정리하려고 했던 이야기. 벌써 5년 전 Vingle 시절 이야기들.

  • 커뮤니티와 네트워크

당시 우리가 하려고 했던 것은 좋은 커뮤니티를 만드는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만들겠다고 해놓고는 그저 네트워킹을 한다. 네트워크는 무엇을 다루느냐를 따진다. 하지만 커뮤니티는 누가 거기 있느냐를 훨씬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인터넷의, 조금 더 좁혀서 말하자면 ‘좋은 인터넷 컨텐츠 서비스’의 핵심을 커뮤니티로 보고 있었다.  인터넷을 네트워크로 인식하면 좋은 컨텐츠를 만드는데 집중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오프라인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인터넷을 커뮤니티로 본다면 좋은 컨텐츠가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 좋은 컨텐츠를 만드는 것은 작가의 영역이지만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기업가의 영역이다

  • 아무 것도 하지 않아야 성공한다.

좋은 커뮤니티를 만들었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과연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놀고 있는지 보는 것이다.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고객(유저, 방문자)에게 무언가를 요구한다. 물건을 사달라고 하거나, 회원 가입을 부탁하는 식이다. ‘좋아요’를 눌러달라고 할수도 있고, 해시태그를 걸고 게시물을 올리면 상품을 주겠다고 꼬실 수도 있다. 대가로 지표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커뮤니티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 부탁 대신 ‘존경’이 필요하다.

“OO님의 글을 출처 표기하고 인용해도 될까요?”

이것이 커뮤니티를 만드는 방법이다. 꼭 퍼가지 않아도 된다. 플랫폼이 허용하는 공유하기, 리트윗 등이면 충분하다. 더 좋은 방법은 사람들에게 “이 컨텐츠 봤어요? 정말 좋아요, 같이 공유해요”라고 권하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핵심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할 일을 줘야 한다. 관리자가 게시물에 답변하고 있다면 커뮤니티는 실패한 것이다. 게시물에 사람들이 답변하고 있어야 커뮤니티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뭔가 하고 있을 때 커뮤니티가 만들어진 것이다.

  • 경품 대신 기대감

물론 사람을 모으는 것이 시작이다. 하지만 경품을 뿌려서 사람을 모으면 안 된다. “5만 원 상품권 100장이 쏟아집니다”보다 차라리 “경품으로 상품권 잘 받을 수 있는 10가지 방법”이 커뮤니티를 위한 사람을 모으는 핵심 요령이다. 커뮤니티는 기대감으로 성장한다. 경품을 쉽게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는 기대감은 커뮤니티에 도움이 되지만, 경품 자체가 리워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커뮤니티를 찾아가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핵심이지, 답을 바로 줘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답을 얻으면 바로 떠난다. 커뮤니티에 질문이 올라오면 다른 구성원들이 답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질문을 이어가면 된다.

“에어컨 새로 사려는데 추천해 주세요”라는 질문에 “XX사의 무풍에어컨을 사세요”라고 얘기하면 안 된다. “값싼 에어컨은 전기값이 많이 나온다던데 사실인가요” 식으로 질문하면 답변과 질문이 이어진다.

  • 첫번째, 두번째 추종자의 중요성

이 영상은 커뮤니티의 형성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처음에 혼자 하는 일은 바보처럼 보여진다. 하지만 한 명이 용기있게 동참하는 순간 ‘이상한 일’은 한 번 더 시선을 돌릴 만한 일이 된다. 이 첫번째 추종자는 친구를 불러와 ‘둘이 하던 이상한 일’을 ‘셋이 하는 집단 행동’으로 바꿔놓는다. 여기에 네번째 다섯번째 사람들이 동참하는 순간 바보같은 일은 모멘텀을 얻게 되고, ‘운동’이 된다.

커뮤니티에서도 이 법칙이 적용된다. 그러니, ‘가장 인기있는 정답을 가장 빨리 내놓는 사람’에게는 노력을 쏟을 필요가 없다. 이런 사람들은 커뮤니티에서 알아서 영향력을 갖게 된다. 좋은 커뮤니티 관리자라면 2등에게 주목해야 한다. 2등으로 좋은 답변은 첫째에 묻힌다. 1등보다 늦게 게시됐기 때문일 수도 있고, 1등보다 덜 선정적인 답변이라 그럴 수도 있다. 인터넷이 원래 그런 곳이다. 그 때 관리자들이 2등에게 관심을 쏟는다면 이들은 ‘나를 알아주는 커뮤니티’와사랑에 빠진다. 실력은 1등과 다를 바 없는 멤버가 말이다. 그러니 2등 멤버들을 대접해야 한다. 이들은 친구들을 불러온다.

  • 사람이 있어야 한다.

사람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은 사람들을 유지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신규 방문자에게 ’15분 이내’에 인사하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빨리 인사하고 싶도록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친절하고 내게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라면 재방문하고 싶지 않을까.

  • 커뮤니티는 게임이다.

Gamification이라고 흔히 얘기하지만, 커뮤니티 게임화의 핵심은 ‘게임처럼’ 만드는 게 아니라, 시스템 속에서 게임을 찾아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링크드인이나 페이스북은 유저가 프로필을 작성할 때, 계속 뭔가 더 채우라고 요구한다. 90%까지는 쉽게 채울 수 있고 재미있지만 절대로 100%는 차지않는다. 뭔가 조금 남겨두고 “조금만 더” 하면 될 것처럼 시스템을 설계한다. 이걸 채워서 100%를 만들어도, 며칠 혹은 몇달이 지나면 다시 새로운 항목을 채우라고 요구한다. 이걸 채우는 과정 자체가 재미다.

게임화의 또 다른 핵심은 대단함이다. 사람들이 스스로를 대단하게 생각하도록 도와야 한다. 페북이나 링크드인 프로필을 채우다보면 “와, 나 좀 대단한 걸?” 하는 생각이들 것이다. 그런 경력, 취향 등을 쓰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게시판을 만들어서 가장 게시물을 많이 쓴 멤버 10위까지 순위를 공개한다면 그건 큰일이다. 물론 1등은 대단하지만 커뮤니티는 혼자 대단한 곳이 아니라, 함께 대단한 걸 만드는 곳이다. 순위가 강조되면 사람들은 협조하지 않는다. 순위나 레벨을 공개하거나 부여하려면 이것이 협조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져야 한다. 다른 사람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많이 누른다거나, 댓글을 많이 다는 것들이 보상의 대가여야 한다.

  • 중요한 것은 문화야, 바보야.

흔한 착각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한다는 착각이다. 사실과 다르다. 사람들은 싫어하지 않는 것을 택한다. ‘좋아서 찍은 대통령’이 아닌 ‘저 사람이 되면 안 될 것 같아서 찍은 대통령’이 당선되지 않던가. 물론 좋아서 고르는 것도 많다. 하지만 훨씬 많은 선택이 “싫어하지 않는 것”을 향해 이뤄진다.

커뮤니티의 문화가 딱 이렇다. 방문자들은 자신이 뭘 좋아해서 찾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커뮤니티는 무언가를 싫어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커뮤니티 참가자들은 정체성이 하나가 아니다. 내가 메이저리그 야구 팬이라 KBO 야구 커뮤니티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다. 야구를 싫어하지 않으니 KBO 커뮤니티에도 가입하고,케이팝을 싫어하지 않으니 ARMY도 될 수 있다.커뮤니티는 이렇게 싫지 않은 사람들의 교집합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가 중요하다. 무언가가 싫어졌을 때 사람들은 떠나고 커뮤니티는 붕괴된다. 문화는 규칙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규칙을 지키라며 호통치는 완장들만 등장하고 문화는 더 나빠진다. 하지 말라, 안 된다는 얘기는 금물이다. 부정적인 말은 커뮤니티를 갉아먹는다. 긍정적인 모범이 문화를 만든다.

  • 질문의 기술

커뮤니티의 핵심은 ‘참여’다. 내가 아니라 남들이 움직여야 한다. 시작은 사람들을 토론에 동참시키는 일이다. 토론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앞에서도 얘기한 바 있지만, 쉽게 끝나는 질문은 해선 안된다. “방탄소년단이 최고라고 생각하시죠?” 이런 질문은 바보같다. “2010년대 최고의 케이팝 밴드는 누구일까요?”는 답이 여러 개일 수 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방법이다. “도와주세요”라는 말은 마법의 주문이다. 쉬운 도움을 요청하면 사람들이 참여한다. 더 좋은 방법은 사람들이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도록 권하는 것이다. 직접 대답하는 대신 “그런 건 OO님이 잘 아시니 한 번 물어보세요”라면서 OO님을 태그하는 것이 훨씬 좋다.

  • 습관의 힘

규칙적인 반복에는 힘이 있다. 예를 들어 한국영화 커뮤니티를 운영한다고 가정해 보자. 월요일엔 주간 박스오피스 뉴스 정리, 화요일엔 이주의 기대작 토론, 수요일엔 예매1위 영화 예측 설문조사, 목요일엔 가장 좋아하는 (감독, 각본, 남우, 여우, 신인 등) 투표 등등. 이런 규칙은 멤버들에게 ‘늘 새로운 게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심지어 커뮤니티의 성장에 따라 규칙적 섹션의 일부를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그들에게 책임감과 규칙적 재방문의 이유를 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 수준부터 ‘내가 일하지 않아도 굴러가는 성장’이 가능해진다.

  • 성장의 위험

‘고드윈의 법칙’이란 말이 있다. 온라인에서 논쟁이 길어지면 반드시 누군가 ‘나치’와 ‘히틀러’를 들먹인다는 얘기다. 한국에서도 ‘좌빨’, ‘일베’, ‘수좀’, ‘페미나치’ 등 관련 어휘 목록이 줄을 잇는다. 성장은 반드시 이런 고통을 동반한다. 이른바 ‘인터넷 트롤’의 등장이다. 트롤이 모두 처음부터 트롤인 것은 아니다. 이들은 오히려 처음에는 가장 열정적인 사용자 집단에 해당한다. 관리자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처음부터 이들에게 문화를 교육해야 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야 한다. 무엇보다 공개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DM 등을 이용해 개인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면 아마 더 좋은 반응을 얻으실 거에요”라는 메시지면 충분하다.

실패

실패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패는 실패일 뿐이죠. 현실에서 실패는 쓰라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는 중요합니다. 이 영상을 보고 나니 좀 더 와닿습니다.

앤드류 라인이라는 천체물리학자가 1991년 펄서행성을 발견합니다. 펄서(맥동성) 주위를 도는 행성을 펄서행성이라고 하는데, 이 발견이 지구 바깥의 ‘행성’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이었다죠.(행성 항성 맥동성 이런 얘기는 일단 넘어갑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작은 실수가 있어서, 알고보니 이 행성이 발견된 줄 알았던 것부터 오류였고, 사실은 그런 행성 자체가 없었다고 합니다. 처참한 실패였죠. 라인은 1992년 전미 천체물리협회(?)에서 이 실패를 스스로 발표하게 됩니다. 가슴 아픈 일이었을 거에요. 하지만 청중은 실패를 비웃는 대신 라인에게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이후 라인이 연단에서 내려오자 알렉산더 볼시찬이라는 학자가 뒤이어 마이크를 건네받습니다.

“예. 라인의 팀은 펄서 행성을 찾지 못했어요. 하지만 우리 팀이 찾았습니다. 하나가 아니라 두개나 찾았어요. 라인이 어떤 문제를 겪었는지 배웠기 때문이고, 그 부분을 점검했죠. 우리가 찾은 행성은 진짜입니다.”

이후 방법론은 계속 개선되어 세번째 펄서행성이 발견되고, 심지어 태양과 닮은 항성과 행성군으로 이뤄진 외계 태양계의 존재가 속속 증명됩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외계행성은 라인의 실패 이후인 20세기 말에 와서야 증명된 것입니다.

우리는 “실패를 권장한다”거나, “실패에서 배우라”고 하는 얘기를 쉽게 합니다. 말은 쉽지만, 실패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실패는 그 일에 시간과 자원을 쏟아부은 개인에게 엄청나게 괴로운 일입니다. 실패한 개인은 대부분 아무런 명성도 얻지 못하고 어떤 경제적 보상조차 바라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그 실패를 그냥 나쁜 것으로 묻어두면, 그 땐 그걸로 모든 것이 끝입니다.

실패를 권장하는 것이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대충 해서 실패해도 좋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충분히 노력해서 실패에 이르른 사람이, 그 노력을 사장시키지 않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한다면 그때부터 실패는 그냥 실패가 아니라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되기 때문입니다. 조직이, 사회가, 국가가 실패한 사람에게 기립박수를 쳐 주는 일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개인은 약합니다. 자신이 속한 조직이, 사회가, 국가가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굳이 실패를 스스로 인정해 약자, 패자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실패를 공유하지 않고 숨어버리는 것이 이익이 되죠. 창피하고 분하고 내 실패의 경험을 이용해 성공할 뒷 사람에게 시기심이 드는 일 따위는 겪지 않아도 되니까요.

이렇게 행동하는 대신, 라인은 자신의 불명예를 스스로 먼저 공유합니다. 그 모습을 본 과학자 사회는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그 실패의 성과 위에서 성공한 볼시찬은 공을 실패자였던 라인에게 돌립니다. 과학이 위대한 것은 이 프로세스 덕분일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일에서 실패가 중요하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런 멋진 레토릭에 앞서서 우리가 얼마나 실패자에게 박수를 쳤는지부터 우선 생각해야 합니다. 실패자들을 얼마나 기억하려 했는지, 성공에 대한 그들의 기여를 얼마나 감사히 여겼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실패는 중요하지만, 단순히 실패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패를 중요하게 만드는 것은 실패로 처참해진 사람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가장 가슴아픈 순간을 기꺼이 공유하는 순간입니다. 그게 인간 정신의 위대함이기도 하겠죠.

Decennium

2018년 9월 19일이 이 블로그의 10주년이 되던 날이었습니다.

2008년의 시작은 단순했습니다. 스티브 잡스 책을 쓰고 있던 때여서, 준비만 할 것이 아니라 준비 과정을 블로그에 따로 기록으로 남겨 두자는 생각이었죠.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됐습니다. 포스트를 모아서 기본 뼈대를 삼고 그 위에서 책을 쓰니 한결 수월했죠.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고 대충 썼던 첫 책보다 훨씬 더 제대로 정리됐던 느낌이었습니다. 세번째 책도 같은 방식으로 준비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신문사를 그만두게 됐습니다. Vingle, 리디북스, 그리고 지금의 쿠팡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 10년 동안 원했던 것은 자유롭게 글을 쓰는 것이었고, 깨달은 것은 자유롭게 글을 쓴다는 것은 환상이라는 것이었죠. 언제나, 창조는 제약에서 이뤄집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다 갖춰진다거나, 완벽하게 자유로운 상황은 없습니다.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완벽한 자유란 어떻게 보면 완벽한 제약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제약을 이겨낼 때 놀라운 일을 이루게 마련입니다. 저는 그렇게까지 제약을 이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10년 전, 처음 이 블로그를 만들 때 가졌던 생각은 이제 꽤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를 들어, 그 땐 10년 이내에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이뤄질 것 같았습니다.

  1. 소셜웹은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 사이의 평판이라는 자원으로 신뢰의 네트워크를 만들게 될 것입니다.
  2. 모바일 인터넷은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우리를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의 세상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3. 정보와 자원의 불균형은 웹을 통해 비대칭이 해소되면서 균형 상태로 변하고, 결과적으로 지역간, 계층간, 국가간 격차는 줄어들 것입니다.

10년이 지난 뒤 세상은 이렇게 변했습니다.

  1. 소셜웹의 가장 멋진 결정체라 부를 만한 네트워크인 페이스북은 그놈의 평판 때문에 절벽에서 추락하는 아이들을 만들어 냈고,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불신의 네트워크로 발전했습니다.
  2. 모바일 인터넷 덕분에 우리는 휴가지에서도 이메일을 확인하고 메시지에 답해야 하는 삶으로 접어들었으며, 해야만 하는 일의 목록은 더욱 늘어났습니다.
  3. 웹은 쓰레기 정보를 양산하면서 가치있는 정보를 더욱 소수의 손에 집중시켰고, 웹이 만든 기술 격차는 몇몇 기업의 매출이 대부분의 국가 GDP를 상회하는 세상을 만들어 냈습니다.

예측은 엉망으로 빗나갔습니다. 세상은 우리 모두 알다시피 그렇게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래서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점점 글이 뜸해졌습니다. 말 한 마디의 무게도 더 커졌습니다. 미안함의 부담감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10주년 기념일이 지나버렸고, 결국 올해가 가기 전 뭐라도 남겨놓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씁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많습니다.

  1. 저는 아직도 웹은 무엇보다 사회적인 공간이며, 우리는 이 공간을 어떻게 쓰는지 배워가고 있는 중이라고 믿습니다. 페이스북의 실패는 웹의 실패가 아닙니다. 세계대전과 원자폭탄이 인류의 실패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번영할 것이고, 진보할 것입니다.
  2. 모바일 환경은 우리에게 부담을 늘렸지만 권리도 늘렸습니다. 우리는 이제 몸과 벗어난 또 하나의 두뇌를 몸 바깥에 두고 사는데 익숙합니다. ‘모바일=스마트폰’이 아니라, ‘모바일=클라우드’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앞에 가능성은 이제 막 열렸을 뿐입니다.
  3. FANG이 어마어마하다고 얘기하지만, 아직도 세상에서는 수많은 해커들이 기존의 기득권을 분해하고 있습니다. 격차는 늘어날 수 있지만, 그 격차를 무너뜨릴 무기도 더더욱 쉽게 사람들의 손에 쥐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블로그 개점하고 1년에 글 하나도 못 쓸 법한 2018년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저는 아직도 이 모든 일이 거대한 변화의 시작일 뿐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모두들.

UX

10년 전 처음 아이폰이 나왔을 때 시장에는 이미 스마트폰이 있었습니다. 당대의 얼리어답터들은 이미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소개할 때 강조했던 “전화기, 인터넷기기, 아이팟”의 세가지를 한 데 모은 휴대용 디바이스를 쓰고 있었죠. Palm, HP 등이 스마트폰의 강자였습니다.

이 때 아이폰이 다른 스마트폰과 달랐던 것은 기능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건 출발점이었죠. 그 당시의 뛰어난 스마트폰들은 모두 “이 기계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집중해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인터넷을 할 수 있고,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계. 그런데 아이폰은 달랐습니다.

멀티터치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습니다. 멀티터치가 가능한 아이폰은 스타일러스를 써서 작은 인터넷 웹브라우저로 인터넷 서핑을 하는 대신, 아예 모바일용으로 제작된 사파리 웹브라우저로 웹을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프로그램들의 오류로 툭하면 멈추는 전화 대신, 진짜 전화를 손으로 누르는 것처럼 깔끔하게 작동하는 오류없는 전화기가 나왔습니다. 음악은 클릭휠부터 계속해서 진화한 아이팟의 멀티터치 버전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기능이 아니라 멀티터치가 시작이었습니다. 손에서 뗄 수 없는 디바이스가 처음이고, 앱스토어와 수많은 앱들은 그 다음이었던 겁니다.(첫 아이폰은 앱스토어 없이 출시됐습니다.) “조이스틱을 붙여달라”, “게임용 물리 버튼이 필요하다”는 얼리어답터의 요구들이 이어졌지만, 애플의 디자이너들은 들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아이폰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멀티터치였으니까요.

10년이 지났습니다. 아이폰X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애플의 디자이너들은 그 질문에 답할 생각이 여전히 없는 것 같습니다. 대신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기계만 바라보는 모양입니다. 사용자들이 하루종일 아이폰으로 가장 많이 하는 작업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홈버튼에 손가락을 올리는 일입니다. 하루에도 수십번, 아니 수백번 사용하는 터치ID의 지문인식 과정. 그 과정을 사라지게 해준다면?

IMG_2101 2물론 문제는 있습니다. 새 아이폰을 시연하던 페더리기는 새 시스템의 미숙한 인식률 때문에 백업폰을 써야 했고, 페이스ID의 인식 시간과 정확성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문제는 개선되겠죠. 터치ID가 처음에 그랬고, 멀티터치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이제 더이상 우리는 운전하다가 시리를 불렀을 때 잠긴 화면에 손가락을 맞춰 대려고 끙끙댈 필요가 없고, 방수가 되는 폰을 들고도 물 묻은 손으로는 화면을 열지 못하는 문제도 겪을 필요가 없습니다.

겨우 이것이 무슨 혁신이냐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혁신적인 기술은 고객경험을 개선할 때 따라오는 부산물 아니었을까요. 얼굴과 얼굴이 아닌 것을 빠르게 구별해 인식해야 작동할 수 있는 페이스 ID 기술 덕분에, 애플팀은 자연스럽게 인물 촬영에서 무대효과(얼굴만 남기고 배경을 아예 까맣게 날려버리는)를 줄 수 있게 됐고, 인물 촬영을 위한 특수효과를 실시간으로 적용하게 됐으며, 애니모지(사용자의 표정을 따라 실제로 움직이는 이모티콘)를 만들게 됐습니다. 모든 것은 페이스ID 제작 과정의 부산물이었을 뿐이죠. 앞으로 이 부산물은 훨씬 더 많은 변화를 만들 것입니다. 멀티터치 경험이 아이폰과 맥의 트랙패드로 이어지고, UX를 병적으로 집착해 바라보는 관점이 애플워치와 애플펜슬을 만들어냈듯, 다음 세대 디바이스들의 표준도 애플이 만들 테고 그 표준을 모두가 따를 겁니다. 디바이스는 손에 쥐는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고객경험이야말로 아이폰의 모든 것입니다. 혁신은 그저 경험의 뒤를 따라 올 뿐.

속고 또 속아왔던 VR의 역사

VR이 유행입니다. 수많은 기업들이 이 기계를 대중화하겠다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대중이 바라보는 VR은 그저 한가지 모습일 따름입니다. 눈 앞에 우스꽝스러운 고글 같은 기계를 달고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죠. 도대체 이 사람들은 저 눈을 덮어버리는 안경 너머에서 무슨 일을 겪고 있는 것일까요.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기술의 발전 덕분에 오늘날의 기술은 VR을 체험하는 사람들을 말 그대로 다른 세계로 인도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몰입 체험이 그렇듯 VR 또한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제대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는 마치 인도의 신비주의 수도승들이 겪고 있는 황홀의 경지를 함께 겪어보지 못한 우리가 인도 수도승을 바라볼 때 느끼는 몰이해의 감정과 비슷합니다.

 

직접 겪어야 이해할 수 있다는 점, 이것이 VR의 보급을 더디게 한 첫 장벽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또한 막상 겪어보면 사람들을 놀라움의 세계로 끌어들일 수 있는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종교적 황홀경에 빠지는 것 또한 이런 이유 탓일 것입니다. 길에서 자꾸 도를 믿으라는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도 이런 이유 탓이겠죠.

이런 매력의 근거는 뭘까요. 바로 속임수입니다. 역사적으로 VR은 우리의 인식과 감각을 속이는 데서 그 기원을 시작했습니다. 보는 것과 듣는 것, 만지고 냄새맡는 것까지 속이는 이 놀라운 기술의 비결은 사실 단순합니다. 우리가 그만큼 멍청하기 때문입니다. 정확히는 우리의 감각이 멍청하기 때문이죠.

VR의 시작

사실 VR의 역사는 생각보다 깁니다. 개념이 만들어지고 용어가 등장한 시대까지 따져올라가려면 100년도 넘는 역사 여행을 해야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오늘날의 VR 기기들과 비슷한 첫 기계부터 찾아가 보겠습니다. 시작은 ‘센소라마’(Sensorama)라는 기계였습니다. 모튼 헤일리그라는 발명가의 작품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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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이 첨단시설이었던 시기의 1인용 극장. 1950년대의 1인용 A380.

헤일리그는 단순한 발명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철학자이자 영화감독이었습니다. 어쩌면 헤일리그는 ’20세기의 르네상스맨’을 꿈꿨던 전쟁 이후 시대의 천재였는지도 모릅니다. 그가 1957년 만든 센소라마는 얼굴을 기계에 파묻은 채 시야를 꽉 채우는 영상과 얼굴을 스치는 바람과 향기, 손으로 느껴지는 촉각까지 제공하는 기계였습니다. 실제로 센소라마의 메인 컨텐츠였던 “뉴욕시 브루클린 지역을 오토바이로 달리는 체험”은 이 기계를 한 번이라도 써 본 사람에게 예외없는 놀라움을 선사했습니다. 컬러화면도 아니고, 실제 바람과 냄새와는 동떨어진 간단한 자극만 주는 기계였지만 현실감 있는 사운드와 그럴싸한 느낌만으로도 우리의 둔한 감각은 쉽게 가짜 현실을 진짜로 받아들인 것이죠.

문제는 비용이었습니다. 센소라마 기계는 탁월했지만, 제작비가 비쌌습니다. 반면 이 기계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단 한명이었죠. 당시의 극장과 비교해 훨씬 몰입도 높은 경험을 주는 ‘미래의 영화관’을 만들고자 했던 헤일리였지만, 가격 문제를 풀지 못하고는 상업성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센소라마는 오늘날까지도 작동 가능한 원형이 남아 헤일리의 업적을 후대에 전하고 있지만, 실제로 VR이 제대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다른 분야에서였습니다. 바로 항공기 조종사 양성이었죠.

예나 지금이나 비행을 위한 파일럿을 양성하는 비용은 천문학적입니다. 특히 비행기는 초보운전으로 인한 사고의 피해가 자동차보다 훨씬 치명적입니다. 무엇보다 기계를 부쉈을 때 드는 복구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1950년대부터는 이런 이유로 컴퓨터 스크린을 활용한 비행 시뮬레이터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1966년, 미국 공군이 이 시뮬레이터를 받아들이면서 비행 시뮬레이터 시장은 실험 단계를 넘어 폭발적인 성장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VR 관련 연구 또한 활발해지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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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트 시뮬레이터는 게임산업도 성장시켰습니다!

1968년 이런 영향으로 처음으로 머리에 쓰는 디스플레이(Head-Mounted Display, HMD)가 유타 대학 컴퓨터그래픽 교수였던 이반 서덜랜드와 밥 스프로울에 의해 개발됩니다. 두 사람은 3차원(3D) 입체 컴퓨터그래픽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고개를 돌리면서 3차원의 공간을 살펴볼 수 있는 기계를 제작했던 겁니다. 이때의 VR 기기는 오늘날의 삼성 기어VR 같은 매끈한 기계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너무 무거워서 헬멧처럼 썼다가는 목이 부러질 지경이었기에 천정에 끈으로 매달 정도였거든요. 이 당시 이반 서덜랜드 교수의 제자로는 객체지향프로그래밍 등 컴퓨터 분야의 주요 공로자로 꼽히는 앨런 케이, 오늘날 세계를 주름잡는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의 창업자 에드윈 캣멀 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세계 최고의 컴퓨터 그래픽 연구집단이 VR의 초기 역사에 달라붙어 있었던 셈입니다.

VR, 대중속으로

이후 VR의 발전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가격과의 전쟁이었죠. 사실 몇 가지 중요한 기술, 즉 3차원 컴퓨터 그래픽과 빠른 처리속도를 가진 컴퓨터, 컬러 디스플레이와 실감나는 사운드를 합성하는 디지털 음향장치 등은 이미 1970년대에 들어와 이론과 시제품 개발이 끝난 상태였으니까요. 문제는 얼마나 값싸게 좋은 품질로 이런 기술을 이용한 기계를 생산할 수 있느냐였습니다.

여러 선구자들이 이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1980년에는 아타리가 3D 컴퓨터 그래픽을 차용해 가상현실 게임을 내놓았고 이후 계속해서 VR의 개념을 구현할 게임 개발에 열을 올립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아타리 출신의 재론 레이니어가 처음으로 VR, 즉 가상현실이라는 개념을 대중화합니다. 그는 손에 끼는 장갑과 오디오/비디오 입출력장치 등을 만들어 실감나는 VR을 보급하려 했지만 결국 이 또한 대중화에는 실패합니다. 게다가 1990년대 중반에 이르면 거대한 파도가 몰려옵니다. VR 따위는 아득히 잊게 만들 거대한 물결이었죠. 바로 인터넷의 보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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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감날 것 같긴 한데, 사고 싶진 않은 디자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험적인 회사 일부가 계속해서 VR 사업에 나섰습니다. 역시 이런 종류의 투자에는 게임회사가 가장 앞장을 섭니다. 그중에서도 세가가 열심이었습니다. 세가는 1990년대 초반부터 여러 종류의 VR 기기와 관련 게임을 만들어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값을 충분히 낮추는 동시에 게임의 질을 높이는 데에는 여전히 실패하고 있었습니다. 닌텐도도 비슷한 기술에 도전했습니다. 하지만 별 수 없이 고배를 들었습니다. 이외에도 당시 개발된 ’케이브’(CAVE)라는 시스템은 요즘 CGV 극장에 가면 볼 수 있는 ‘Screen X’처럼 극장의 3면(270도)을 화면으로 감싸 가상현실의 분위기를 냈습니다. 하지만, 역시 대중화에는 실패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를 쫓아낸 뒤 어려움을 겪고 있던 애플도 당시 새 돌파구를 VR에서 찾아보려 했습니다. 다양한 VR 기기들이 나오고 있다는 판단하에 애플의 동영상 포맷인 퀵타임으로 VR을 재생할 수 있도록 퀵타임VR이란 기술을 개발한 것이죠. 하지만 이런 노력은 모조리 수포로 돌아갑니다. 여전히 관련 기술의 값이 너무 비쌌기 때문입니다.

 

변화는 오랜 시간이 지난 2010년 갑자기 등장합니다. 파머 럭키라는 젊은 청년이 개발한 ‘오큘러스 리프트’라는 기계 때문이었습니다. VR 분야에 켜켜이 쌓인 오랜 상업화 실패의 트라우마는 대기업들이 이 시장에서 눈을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컴퓨터의 가격은 바닥을 모르고 내려갔습니다. 3차원 컴퓨터 그래픽은 이제 실제보다 더 실감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디지털 사운드는 고등학생도 가상의 밴드를 구성해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게끔 만들어 줬습니다. 즉, 시기가 무르익었는데 이 시장을 누구도 보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파머 럭키는 이 틈을 기가 막히게 찔렀습니다. 시대가 그를 호출했다고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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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질을 열심히 하면 억만장자가 됩니다?

어쨌든 거의 10년여 만에 다시 등장한 ‘제대로 된’ VR 기기는 갑자기 대기업들로 하여금 이 분야의 사업성을 다시 계산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됐습니다. 페이스북은 오큘러스리프트를 천문학적인 금액인 20억 달러(약 2조 원)에 인수했고, 그 뒤로 삼성과 구글을 위시한 ICT 분야의 거인들이 앞다퉈 이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이제 가격은 더이상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구글은 아예 골판지로 만든 VR기기인 ‘구글 카드보드’를 선보였으니까요. 물론 중국 업체들은 그 아이디어를 재빨리 상업화해 단돈 1만원 내외의 VR기기를 경쟁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VR 기기는 모두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핵심 부품이 우리 손에 들린 스마트폰이기 때문입니다. 어느새 우리 모두는 항공사나 보유하고 있던 수십억 원 대의 비행 시뮬레이터를 능가하는 슈퍼 컴퓨터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있던 겁니다.

VR, 우리를 속이다

정리하자면 VR의 발달 과정은 인간의 감각을 속일 수 있는 기술 발달의 역사입니다. 먼저 우리가 가장 큰 지배를 받는 시각을 속이기 위한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중요했습니다. 초기 VR의 역사에서 컴퓨터 그래픽 엔지니어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시각은 단순히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모습에 속지 않습니다. 그림이나 거울은 우리를 속이지 못하죠. 다만 우리의 시각은 움직임에 취약해서 현실처럼 사물이 반응을 보이면 속기 시작합니다. 비행에 따른 화면 변화가 상대적으로 천천히 이뤄지는 비행 시뮬레이터에서 VR 기술이 처음 꽃을 피운 것도 이런 이유 덕분이었습니다. 비행 시뮬레이터 정도로 대충 윤곽만 있는 배경을 움직여도 우리의 감각은 “실제를 흉내낸 움직임”을 실제처럼 인식합니다. 아마도 어두운 수풀 속에서 숨죽여 뛰어나오는 맹수를 빠르게 인식하기 위한 생존본능 탓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은 주머니 속에 모든 사람들이 슈퍼컴퓨터를 들고 다니는 시대입니다. 이제 시각은 거의 기술에 점령됐습니다. 손바닥만한 화면으로 예전에는 수십인치 대 스크린에서나 구현되던 4K 초고화질 영상을 재생하는 오늘날의 스마트폰에 우리 눈은 더이상 속지 않고 배길 수가 없습니다.

두번째로 속여야 하는 감각은 청각입니다. 전후좌우상하 각 방면에서 접근하는 음향만 제대로 속일 수 있다면 시각 정보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우리는 공감각적으로 바싹 긴장합니다. 뒤에서 다가오는 포식자나 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면서 수만 년을 진화해 온 DNA가 “보지 못한 정보일지라도 제대로 들리고만 있다면” 강한 경고 신호를 보내기 때문입니다.

세번째 감각은 촉각입니다. 실제로 만질 수 있는 가상 현실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현실을 구현합니다. 우리가 실재보다 더 실재같은 꿈을 꾸면서도 그것이 꿈이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은 꿈을 만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볼을 꼬집어 봐”라는 관용구의 존재가 바로 이런 것이죠. 하지만 VR 연구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가상의 촉각을 만들어내는 연구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발전된 로봇 기술은 이 촉각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구현해 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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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들린은 냄새를 입력받아 분석한 뒤 시료로 재현해내는 화학카메라입니다.

곧 VR은 현실 그 자체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각과 후각까지 속일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현실에서 밥을 먹고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한다는 의지마저 잊어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미 후각을 좌우하는 분자구조를 합성해 냄새를 재현해주는 기계들이 하나둘 개발되고 있습니다. 영국의 디자이너 에이미 래드클리프가 2013년 만든 향기 분석 및 재현 카메라 ‘매들린’은 이런 꿈을 현실로 만들어 줍니다. 기술적으로는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향수 제조사들이 하듯, 향기 샘플을 채취해 분석 후 시료로 만드는 과정을 카메라가 사진을 찍듯이 자동화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후각은 우리에게 추억과 감성을 일깨워주는 감각이었는데 추억과 감성까지 조작되는 시대가 열린 겁니다. 그러니, 이제 영화 ‘매트릭스’의 세계처럼, 기계가 공급해주는 에너지원을 받아 생활하면서 평생 꿈만 꾸는 가상현실의 노예가 되는 것도 멀지 않은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ICBM을 만든 역사적인 기술

1977년, 영화 ‘스타워즈’가 처음 개봉했을 땐 컴퓨터 그래픽이라곤 없었습니다. 특수효과를 위해선 모든 걸 실제로 만들어 촬영하거나, 아니면 필름 위에 손으로 그림을 그려넣어야 했죠. 그래서 스타워즈 시리즈의 인기 캐릭터인 로봇 C-3PO나 R2-D2 등은 모두 사람이 직접 속에 들어가 연기해야 했습니다. 당연히 로봇의 모습에도 제약이 있을 수밖에요. 그런데 약 40년의 시간이 흐른 2015년의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에서는 이런 제약이 사라졌습니다. 덕분에 이 영화에 새로 등장하는 로봇 BB-8은 더 이상 사람이 속에 들어가 연기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실제 기계가 연기를 하고, 부자연스러운 장면에는 컴퓨터 그래픽이 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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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굳이 저 속에 사람이 들어가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BB-8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로봇은 360도 굴러가는 공 모양의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머리는 그 위에 얹혀 있죠. 눈사람처럼 공 위에 또 공을 올려놓고 아래 공을 굴려 움직이는데도 신기하게 위에 얹힌 머리는 떨어지질 않습니다. 영화니까 가능한 게 아닙니다. 스피로라는 스타트업은 BB-8을 장난감으로 만들어 판매중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조종할 수 있는 이 장난감 BB-8도 공 위에 머리가 얹힌 상태입니다. 바로 중력센서라고 흔히 불리는 가속센서(accelerometer)와 자이로센서(gyroscope) 덕분입니다. 이 센서들이 BB-8의 몸체가 어디로 움직여도 공모양의 몸 속에 있는 모터 및 작동부를 바닥에 자리잡게 도와주고, 반대로 머리는 공모양 몸체 윗부분에 붙어있게 해주는 것이죠.

중력센서와 자동차

이 가속센서는 의외로 활용 범위가 넓습니다. 물체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당장 우리가 타는 자동차의 에어백이 이 가속센서를 활용한 제품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범퍼에 직접 충격이 왔을 때 에어백이 터지는 등 구식 방식의 센서를 활용했지만, 1990년대 이후 가속센서가 쓰이면서 그 정확도가 비약적으로 높아졌습니다. 오늘날의 차량에 쓰인 가속센서는 차체에 비정상적인 급한 감속이 생기는 순간을 순간적으로 감지해, 충돌과 함께 에어백을 자동으로 터뜨려 운전자를 보호하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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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하드디스크에는 에어백이 있습니다

컴퓨터 회사들도 이 자동차 에어백의 원리에 무릎을 쳤습니다. 요즘은 플래시메모리를 사용한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라는 곳에 정보를 저장하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불과 5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컴퓨터는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를 사용했습니다. 이는 고속으로 회전하는 자기(磁氣) 원반 위를 헤드라고 불리는 장치가 살짝 뜬 상태로 빠르게 읽어들이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그런데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다닐 땐 차가 덜컹거린다거나 노트북을 떨어뜨리는 순간 등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 때 헤드가 자기 원반을 툭 건드리면서 생기는 흠집은 치명적이었습니다. 작은 흠집이라도 워낙 민감한 정보를 많이 저장하는 HDD의 특성상 치명적인 정보 손실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컴퓨터 제조사들은 가속센서를 노트북에 부착합니다. 하드디스크의 헤드가 원반을 건드릴 정도의 큰 충격이 발생할 땐 헤드를 원반에 닫기 전 강제로 떼어내도록 한 것입니다. ‘컴퓨터용 에어백’이라 할 만한 발명이었습니다.

최근의 자동차에 기본으로 장착되어 나오는 차체자세제어장치(ESP)도 가속센서의 덕을 보는 기계입니다. 운전자가 차의 스티어링휠을 급격하게 좌우로 꺾으면 차는 관성의 법칙에 의해 빙그르 미끄러져 돌게 마련입니다. 고속으로 달리는 도로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대형 사고로 이어지게 마련이죠. 그래서 요즘 자동차는 수십분의일초 간격으로 차의 움직임을 측정합니다. 바퀴가 도는 속도와 실제 차량이 움직이는 속도 등을 비교해 바퀴가 미끄러지고 있는지를 살피고,(가속센서) 차체가 실제로 미끄러진다면 어떤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회전하는지 파악해(자이로센서) 특정 바퀴의 브레이크를 잠그거나 풀면서 방향을 바로잡습니다. ESP가 적용된 차의 경우 사고율이 30% 이상 감소하는데다 안전한 차선 회피율은 두배나 높아진다고 합니다. 네 바퀴 중 한 바퀴의 브레이크만을 수십분의일초로 계산해 잠궜다 풀어주는 일은 어떤 프로 레이서도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중력을 이해하다

가속센서는 중력 자체를 측정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요즘 한강 고수부지 등에서 쉽게 살펴볼 수 있는 무인조종 비행기 드론이 이런 기술을 사용합니다. 네 개의 프로펠러로 날아가는 형태가 대부분인 드론은 몸체의 수평을 자동으로 유지하는 기술이 가장 중요한데, 가속센서가 각각의 프로펠러 부분의 수평을 맞춰주기 때문입니다. 참, 가속센서란 속도를 측정하는 것인데 어떻게 수평을 맞추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이게 바로 ‘중력 가속도’를 파악하기 때문입니다. 가속센서는 바닥에 놓여서 움직이지 않을 때 센서 자체가 수직방향 위쪽으로 중력 만큼의 가속을 하고 있다고 파악합니다. 중력에 의해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동안이야말로 가속도가 0인 상황이라 보는 것이죠. 자이로센서는 반대로 드론이 어느 방향을 보고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합니다. 회전각에 따른 운동을 파악하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중력센서의 특성을 이용하면 각 지역 별 높이와 지각의 밀도 등에 따라 미세하게 변하는 위치별 중력 가속도의 차이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를 활용한 것이 바로 미사일, 특히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입니다. 실제로 냉전시기 미국과 소련은 서로 상대국의 각종 방해전파 등이 방해해도 한 번 발사한 미사일이 목표물을 향해 정확하게 날아가도록 가속센서를 활용한 유도장치를 개발해 왔습니다. 이들은 세계 전역의 스파이들과 바다 곳곳을 누비는 핵잠수함 등을 이용해 세계 곳곳의 실제 중력량을 측정한 ‘중력지도’를 만든 뒤 이를 ICBM에 적용해 왔습니다. 이것이 제 아무리 바람이 불고 기후가 변하고 방해전파가 작동해도 장거리 미사일이 목표를 향해 정확하게 발사되는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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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지도는 있어야 ICBM을 쏘는 겁니다.

하지만 중력을 측정한다는 건 무시무시한 미사일 발사에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리가 요즘 많이 찍는 디지털 사진입니다. 필름으로 사진을 찍던 시대와는 달리 요즘 디지털 카메라, 혹은 스마트폰 카메라들은 카메라를 세워서(수직방향) 찍을 때나 눕혀서(수평방향) 찍을 때를 알아서 구분한 뒤 우리가 촬영한 사진을 세우거나 눕혀 줍니다. 이런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가속센서 덕분입니다. 또한 이 기술은 향후 ‘손떨림 방지’ 기능으로도 이어지죠. 미세한 진동을 가속센서가 빠르게 파악해 움직임의 반대 방향으로 렌즈를 세밀하게 움직이면서 최대한 흔들리지 않는 화면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중력센서 시장의 폭발

사실 최근 10년 동안 이같은 가속센서의 활용은 말 그대로 ‘폭발’했습니다. 닌텐도가 약 10년 전 쯤 개발한 ‘위(Wii)’라는 게임기가 시장을 열었다고 봐야합니다. 위 게임기는 막대 형태의 게임 조종기로 게임을 조작하는데, 이 조종기 속에 바로 가속 센서가 사용됩니다. 고급 모델인 ‘위 플러스’에서는 자이로스코프도 함께 사용돼 각도의 움직임까지 정확히 측정하기 시작합니다. 즉 게임 컨트롤러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뿐만 아니라 어느 쪽을 바라보는지, 그쪽으로 얼마 만큼의 각도를 얼마나 빠르게 회전했는지까지 알려주는 셈이죠. 가속센서와 자이로센서가 함께 쓰인 위 컨트롤러는 해당 컨트롤러를 든 사람의 움직임을 거의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어 게임 조작에 최고입니다. 예를 들어 위 컨트롤러를 들고 주먹을 휘어서 내뻗으면 게임 속 내 캐릭터가 악당에게 멋진 라이트훅 펀치를 날리는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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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고글보다는 손에 막대가 좀 낫네요

이 기능은 최근 인기를 끄는 ‘오큘러스VR’, ‘기어VR’ 같은 가상현실 체험기에도 사용됩니다. 10년 동안 엄청나게 발전하면서 값도 싸진 중력 센서는 이제 눈 앞까지 덮는 헬멧 형태의 기계를 착용한 채 고개만 움직이면 시선에 따라 영상이 함께 움직이는 세상을 구현하는 수준으로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중력센서는 우리 눈 앞에 현실감 넘치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실제로 구현해 주는 일등공신이 됐습니다.

중력센서를 사용한 재미있는 기술에 VR 업체들보다 앞서서 주목했던 회사도 있습니다. 바로 애플이었죠. 애플은 ‘아이폰’을 개발하면서 가속센서를 사용합니다. 그 덕분에 수많은 게임회사들이 버튼 하나 없는 아이폰에서도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전화기를 흔들거나 움직이면 게임 화면을 조작하는 것이 가능해졌으니까요. 물론 위 컨트롤러나 아이폰을 잘못 흔들다가 기계를 떨어뜨리거나 잘못 날려버려서 집안의 기물을 망가뜨리는 일이 생기는 부작용이 일어나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아이폰, 그리고 아이폰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스마트폰의 가속센서 채용은 이 작은 센서 시장의 엄청난 성장을 불러옵니다. 2011년에는 애플이 세계 메이저 중력 센서 업체의 부품 절반 이상을 사들일 정도였는데 곧이어 다른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이 경쟁에 가세하면서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역시 애플’이라며 감탄만 하기엔 이릅니다. 삼성전자 또한 스마트폰을 팔기 전 이 가속센서를 사용한 휴대전화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2005년 출시된 이른바 ‘비트박스폰’인데,(아이폰보다 2년이 빨랐습니다) 가속센서를 사용해 흔들면 주사위 게임을 즐길 수도 있고, 무엇보다 허공에서 숫자를 그리면 단축번호가 인식되면서 전화가 걸리는 기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들고다니다 괜히 전화가 걸리는 등의 오류로 비판을 받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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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애니콜 비트박스폰!

최근에는 우리가 타고 다니는 교통수단에도 이런 중력센서가 사용됩니다. 중국의 샤오미가 만들어 최근 인기를 끄는 ‘나인봇’이라는 1인용 탈것은 단 두개의 바퀴위에 사람이 올라서면 자동으로 중심을 잡아주는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바퀴가 자전거처럼 앞뒤로 있는 게 아니라, 좁은 판자에 올라서면 양 발 옆으로 가로로 놓인 것이라서 앞뒤로 넘어질까 두려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력센서가 흔들림을 정확히 제어하면서 처음 올라타는 사람도 넘어지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세그웨이라는 미국 회사가 약 십년 전 대당 천만원 정도 하는 기계를 이 기술로 만들었는데, 샤오미가 세그웨이를 인수한 뒤 대당 30만 원 수준의 기계로 값을 낮춰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일을 하는 중력센서를 보편화한 건 결국은 반도체 기술이었습니다. 초소형 공정을 가능하게 만든 반도체 기술 혁신이 단순히 전자회로만이 아니라 물리적 움직임을 감지하는 소형 기계 센서까지 탄생시킨 겁니다. 최근 우리 주위는 가속센서와 자이로센서 같은 중력 센서들로 도배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스마트폰과 카메라는 물론, 자동차와 각종 스마트워치 등의 ‘웨어러블 디바이스’까지 거의 모든 전자기기에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죠. 중력센서야말로 진정한 사물 인터넷 시대를 우리 생활로 앞당겨 불러들인 일등공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류의 기원, 거울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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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생각 끝에, 한국을 생각합니다. 한국도 조상에 대한 관심이 큰 나라입니다. ‘자랑스런’ 민족의 자손임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겠지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상합니다. 자랑스러운 조상은 무엇이고 그렇지 않은 조상은 무엇일까요? 학교에서는 한민족의 조상이 동북아시아 또는 시베리아에서 왔다고 배웁니다. 동북쪽의 대륙에서 우리가 유래했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큰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의 조상이 실은 동남아시아에서 왔다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거부감이 들까요?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 거부감이 혹시 지금 한국인들이 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 갖고 있는 편견에서 나온 것은 아닐지요? 그렇다면, 20세기 초 유럽인들이 네안데르탈인을 보며 갖던 편견과 무엇이 다를까요?

고고인류학자의 책이지만, 모든 좋은 책이 그렇듯 이 책 또한 오늘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훌륭한 역사학자의 책이 수백년 전을 다뤄도 오늘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경영이나 정치, 사회학이나 컴퓨터과학 분야의 얘기를 보고 있으면 지금 여기를 이야기하지 않는 모든 일들은 하찮고 쓰잘데 없이 보이게 마련입니다. 돈을 벌고, 권력을 다루고, 세상을 논하며, 기술 발전을 칭송하는 이 급박한 세상에서 한가하게 무슨 옛날 얘기냐는 소리도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정작 오늘을 날카롭게 꼬집는 책은 저런 책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을 직접 다루지 않는 책이 오늘을 제대로 지적하죠. 천체물리학자의 책이 우리가 이 넓은 우주 속에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깨닫게 해 객관적인 중심을 잡아주는 것처럼, 이 책도 화석을 들여다 보면서 우리의 시작을 드러냅니다. 우리의 편견이 우리의 조상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막아 왔던 역사부터, 우리 속의 돌연변이가 결국 우리의 다양성을 만들어 낸 뛰어난 진화 체계였다는 사실까지.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어딘가 거울 앞에 벌거벗고 선 느낌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그 속의 내 모습은 멋지다고 하기엔 볼품없고, 부끄럽다고 하기엔 연민을 느끼게 되는 모습입니다. 그 모든 것이 바로 인간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