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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2인자가 바라본 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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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가 놀랍도록 수척해진 모습으로 공식석상에 등장했을 때에도, 간이식 수술을 받던 동안에도 애플은 잘 굴러갔습니다. 애플이 스티브 잡스의 1인회사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회사에는 정말 인재들이 많습니다. 일개 회사의 디자이너로 일했을 뿐인데도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은 영국인 디자이너 조너던 아이브는 물론 쟁쟁한 인사들이 즐비하죠. 그 가운데에서도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최고운영책임자(COO) 팀 쿡입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컬트오브맥에 팀 쿡의 얘기가 실려 있더군요. 투자자 미팅에서 한 얘기들이라는데, 한 마디 한 마디의 '포스'가 범상치 않습니다. 이 정도라면 '애플의 2인자'라고 불리는 것도 당연해 보입니다.

"우리는 TV에 투자한다. 우리의 본능이 그곳에 뭔가 있다고 알려주기 때문이다." 애플이 TV 산업에 대해 보고 있는 얘기입니다. 전 꽤 흥미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서 쿡이 덧붙인 얘기 때문이죠. 그는 "애플은 진짜 TV는 만들지 않을 생각이다. 우린 TV 시장엔 관심이 없다. 애플TV(셋톱박스)를 TV에 붙이는 것에는 관심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삼성전자에서 책임있는 위치에 있다면 이 말은 좋은 시그널일 것 같습니다. 'Apple ready TV'를 만드는 거죠. 삼성전자는 삼성앱스를 만들어 TV와 휴대전화, PC를 한 데 묶으려 합니다. 나쁜 시도는 아닙니다. 포기할 필요도 없고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삼성전자는 하드웨어 제조업체입니다. 소프트웨어와 콘텐츠에는 경험이 없어 계속 고전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Apple TV의 기능이 들어간 삼성TV를 만들어 팔면 어떨까요? 게다가 삼성전자는 이미 아이폰, 아이팟 등에 핵심부품을 계속 공급해 온 주요 업체입니다. 대화의 채널이 있으면 대화를 하면 되는 거죠. 경쟁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폰도 만들고 윈도폰도 만듭니다. 한편으로는 자체OS도 개발하면서. 그러니 그것과 별다를 바 없지 않을까요? 애플도 셋톱박스 한두개씩 팔면서 TV 사업을 벌일 생각은 없을 겁니다. 의미있는 시장점유율을 빠른 시간 내에 이루려면 좋은 파트너가 필수죠. 아이폰을 만들면서 AT&T를 붙잡았던 것처럼.

하지만 PC 시장에 대한 생각은 좀 동의하기 힘듭니다. 최고경영진이 자신들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볼 수는 없다는 입장은 이해하지만 많이 낙관적이란 생각이에요. 팀 쿡은 PC 시장이 30억 대 규모인데, 매킨토시는 겨우 1000만 대 팔고 있을 뿐이라면서 “천정은 아직 많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점점 애플과는 반대로 움직입니다. 애플은 1000달러 이상의 고급 PC 시장에서 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는 회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장조사회사들이 고급 PC 시장의 범위를 슬슬 바꾸려한다는 겁니다. 4, 5년 전을 생각하면 1000달러 이상이란 가격도 그리 비싸진 않은 것 같은데 이들은 앞으로 고급 PC란 500달러 이상을 뜻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넷북, 넷탑 등 용어를 따라가기도 힘든 값싼 컴퓨터들이 범람했기 때문이죠. 클라우드컴퓨팅 같은 환경의 변화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합니다. 그러면 애플의 적은 시장점유율은 더더욱 빛을 잃을 겁니다. PC 시장처럼 피튀기는 경쟁이 일상화된 시장에선 결국 시장점유율이 곧 힘입니다. 애플이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애플의 사전엔 '완성했다'는 말이 없다. 애플은 끊임없이 혁신을 위해 노력한다.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우리의 제품을 진부해 보이도록 하기 전에 우리가 스스로 우리 제품을 구식처럼 보이게 하는 새 제품을 내놓는다." 이 말은 대단한 자신감이었습니다. 그리고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죠. 도대체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런 건 자만심(hubris)이 아닐까요? 쿡은 이렇게 말합니다. "애플의 경영진은 애플이 애플이 아닌 모습이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크게 성장하는 것보다는 더 혁신을 하는 게 우리가 집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것들에 대해 '노(No)'라고 말한다.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책에서 읽은, 어떻게든 주워듣게 된 그 어떤 회사보다도 단 한가지에 집중하는 회사다. 그건 바로 우리가 매일 좋은 아이디어에 대해 '노'라고 말하고, 사소하게 보이는 몇 가지에 집착하며, 그 일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는 회사라는 것이다." 애플이 그런 결과를 통해 어떤 제품을 만들어내는지 우리가 모른다면 '이런 곧 망할 회사 같으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번 손에 잡으면 도저히 다른 제품을 쓰기 싫도록 만들어내는 그 능력은 저렇게 디테일에 엄격한 문화 덕분이라고 생각됩니다.

통신사 문제도 얘기가 나왔습니다. 한 통신사에 독점으로 아이폰을 공급하는 데 대한 생각이었죠. 저는 애플이 '단순함'에 대한 집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팀 쿡의 얘기도 마찬가지더군요. "특정 통신사와 독점 계약을 하면 사업모델이 단순해진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제품을 '현지화'해서 팔면 잘 팔린다고 합니다. 매출은 늘어날지도 모르죠. 다양한 소비자를 만족시키니까요. 하지만 이익에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현지화를 통해 제품을 이것저것 바꾸면 라인도 이것저것 설치해야 하고, 대량생산에도 어울리지 않게 됩니다. 쓸데없는 비용이 들고,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죠. 하지만 보편적 제품 하나의 매력을 극대화해 이걸 잘 팔면 이익도 극대화됩니다. 애플 제품이 생전 처음보는 신기한 특징을 갖고 세상에 나오는데도 가격이 대충 합리적인 이유가 여기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여기에 대해 팀 쿡은 이렇게 말합니다. "애플은 400억 달러짜리 회사다. 그런 회사가 만드는 제품들을 종류별로 모으면 회의실 탁자 위에 전부 다 올라간다. 이렇게 적은 제품을 만들면서 이렇게 큰 실적을 올리는 회사는 내가 알기론 세상에 애플을 제외하곤 하나밖에 없다. 그건 석유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