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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괴상망측한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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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스티브 잡스 애플 CEO가 월스트리트저널 등 유력 일간지를 찾아가 아이패드를 직접 소개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앨런 머레이라는 월스트리트저널의 부편집장이 스티브 잡스가 들고 온 아이패드로 트위터에 접속해 즉석 트윗을 날렸다고 하죠. 그 메시지는 간단했습니다."이 트윗은 아이패드로 보내는 겁니다. 쿨(cool)하죠?"

보내는 행위 자체는 쿨했는지 모르겠는데, 그 뒤로 일어난 일은 전혀 쿨하지 못했습니다. 스티브 잡스 탓이었죠.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돈 많은 이 괴짜 CEO는 당장 머레이 편집장에게 불같이 항의하며 트윗을 삭제하라 요청합니다. 결국 트윗은 어찌어찌해서 지워졌습니다. 하지만 트윗 하나 날린 게 뭐가 그리 문제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의 앨런 머레이도 화가 단단히 났던 모양입니다. 기자들이 그날 일에 대해 묻자 "애플이 언론 보도에 대해 갖고 있는 편집증이란 게 지금 보니 정말로 괴상망측한 것이었다"고 답했으니까요.

저도 개인적으로 이런 괴상망측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변방의 작은 나라에서 스티브 잡스와 애플에 대한 기사를 쓰는 기자이기 때문이죠. 우선 스티브 잡스 인터뷰를 몇 차례 요청했지만 늘 거절당했던 이야기부터 해야겠습니다. 그건 사실 별 일도 아닙니다. 스티브 잡스와 인터뷰를 하는 기자란 사실상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죠. 그를 취재했던 기자들에 따르면 여러 조건이 있습니다. 1. 스티브 잡스와 10년 이상 개인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싫어할만하고 민감한 질문을 적절히 조절해 줄 것으로 스티브 잡스가 신뢰하는 기자 2. 애플과 스티브 잡스에 대해 우호적이고 그 '혁명적인 시도'를 잘 이해해 애플에 대해 우호적으로 기사를 써 주는 기자 3. 해당 분야에서 명성이 있는(예를 들어 뉴욕타임즈나 월스트리트저널, 타임지나 롤링스톤즈, 포천 등) 매체의 기자 등입니다. 그러니까 애플과 스티브 잡스에 대한 애정과 오랜 기간 우호적인 기사를 써오며 다져온 신뢰가 없다면, 스티브 잡스는 만날 수 없는 것이죠. 물론 저같은 한국 기자는 더더욱 불가능하고요.

일종의 언론통제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게 애플의 홍보 스타일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개인적인 성향이고요. 이 양반은 애플에서 쫓겨나서 세웠던 넥스트라는 회사 CEO 시절, 사업에 번번이 실패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갈 때에도 이런 태도를 꿋꿋이 지켜왔습니다. '안 나가는' 회사라서 어렵사리 홍보팀에서 유력지 인터뷰를 잡아놨는데, 그마저도 기자가 다소 공격적인 걸 물어보자 "그런 얘기 따위엔 답하고 싶지 않다"며 박차고 일어나 나가버렸으니까요. 당시 넥스트는 어떤 식으로든 대중의 관심을 끌어야만 할 때였습니다. 그렇게 어려울 때에도 그정도였으니, 지금처럼 잘 나갈 때의 언론에 대한 자세란 괴상망측할 수밖에 없다는 이해도 가긴 합니다.

그렇다보니 인터뷰 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애플이 애플코리아라는 한국 지사까지 운영하고 있는데, 스티브 잡스의 사진이라거나, 스티브 잡스의 개인적인 이력, 중요한 연표 등은 취재진에게 지원해주지 않을까 기대는 했습니다. CEO의 프로필은 대개 홍보팀에서 보관하고 있으니까요. 그 때도 돌아온 답변은 한 마디였습니다. "애플은 CEO에 대한 모든 자료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가 있으면 애플은 세계 각국에서 기자들을 초청합니다. 엄청난 비용이 드는 일이죠. 그런 회사가 하는 행동치고는 좀 이상했습니다. 이유야 단 하나, 스티브 잡스가 미디어에 자신이 괴팍한 성질을 가졌다거나, 나쁜 사람이라거나, 애플 제품을 만드는데 스티브 잡스는 사실 별로 한 게 없다거나 식의 기사가 나오면 불처럼 화를 내기 때문이라더군요. 홍보팀이 그런 기사가 나오는데 일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자리를 지키기 어려우니까요.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한없이 창의적일 것 같은데, 이런 지원부서 사람들은 한없이 관료적이어야만 하는 모양이에요. 특히나 스티브에 관해서라면.

이런 '애플 스타일'의 보도 협조는 사실 한국에선 매우 어색한 관행입니다. 모든 매체들이 스티브 잡스의 일거수일투족과 애플의 신제품을 취재하려고 경쟁을 벌이는 미국에서야 애플의 PR 담당부서가 대부분의 시간을 '입 단속'에 쓰는 것도 이해가 가죠. 그래도 기사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니까요. 하지만 한국에서야 애플이 삼성전자가 아닌데, 이런 식으로 기사가 쏟아질 리 없습니다. 문제는 애플코리아 홍보팀의 보도 협조도 본사와 똑같다는 데 있습니다. 거의 모든 취재 문의에 '노 코멘트'로 답하고, 이벤트라거나 자체 행사 등에선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애플의 키노트 스피치 동영상보다 단 하나의 새로운 정보도 갖고 있지 않은 앵무새같은 얘기만 그대로 재현합니다. 스티브 잡스나 필립 실러, 조너선 아이브같은 애플의 임원진 대신 한국 홍보팀 직원들이 프레젠테이션을 하기 때문에 어색한 키노트 활용과 미숙한 'Great, Gorgeous, Phenomenal'의 한국어 번역 버전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하죠. 워낙 새로 등장하는 정보도 없고, 취재하는 입장에서 도움받을 내용도 없다보니 요즘 애플코리아 홍보팀은 뭘 하면서 월급을 받는 건지 알기도 어렵습니다. 약간 여담이지만, 극단적인 네티즌들 가운데에는 아이폰과 옴니아2가 대결하던 지난해 말, 삼성전자가 언론플레이를 심하게 해서 옴니아2의 우월함을 강조했다는 얘기가 유행했습니다.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느낀 건 오히려 그반대입니다. 애플코리아 홍보팀이 심하게 홍보를 못 했던 거죠. 단점을 물어보면, 아이폰은 그냥 세계 최고의 핸드폰이라고 앵무새같은 주장만 반복하는데, 누가 좋게 생각을 하겠어요. 저같은 애플 팬조차도 고개를 저어야 했습니다.

어쨌든 애플의 이런 스타일이 극단적으로 흐르면 이번 일 같은 게 생기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들은 모든 게 다 비밀이거든요. NDA(비밀유지약정)를 해놓고 왜 아이패드로 트윗을 했다는 '중요 정보'를 흘리냐며 길길이 뛰는 스티브 잡스를 보면, 누구라도 어이가 없어지는 것이죠. 이게 업무상 취득한 비밀정보인지에 대해 판단하는 기업문화 자체가 애플과 다른 회사는 너무 다른 겁니다. 심지어 아이폰 제조를 전담하는 대만의 폭스콘에선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아이폰 프로토타입 모델 한 대가 분실되자 애플이 난리를 쳐서 폭스콘이 담당 직원들의 집 수색을 벌였던 거죠.(직원이 어쩔 수 없이 동의하긴 했겠지만, 기본적으로 영장 없는 가택 수색은 불법입니다. 이런 권력 관계에서 생겨난 비자발적 동의도 불법이고요. 애플이 불법을 조장한 셈이죠.) 해당 부서 담당 임원은 나중에 엄청난 불행도 겪게 됩니다. 애플 탓이라고 할 수야 없을지 몰라도, 기분은 씁쓸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야 제품만 잘 만들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가끔 등장하는 이런 과한 모습은 제가 보기에도 참 괴상망측합니다. 비정상이 통제되지 않을 때 그 조직은 망가집니다. 비정상 자체가 문제라서 망가지는 게 아닙니다. 비정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세력과 비정상을 경쟁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세력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기 때문이죠. 1990년대 초반의 엉망진창이 됐던 애플은 존 스컬리의 무능이 만든 산물도, 천방지축 어린 스티브 잡스의 산물도 아니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괴팍스러움을 스컬리가 통제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스티브의 창의성은 비정상 취급을 받았으며 존 스컬리의 경륜은 보수적 행태로 매도당했습니다. 그런 회사가 성공하는 게 진짜 비정상이죠. 지금 애플은 과연 어떤 길을 밟아나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