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폰 점유율 잡담
by 김상훈
한성은 이사님 페이스북을 보고 든 생각.
국내 아이폰 점유율이 5%라지만 서울/수도권에서는 20% 넘고 상권에 따라 30% 넘는 곳도 있네요.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좋은 시사점이 있는 얘기라고 동의하지만 뭔가 찝찝한 느낌이 든다. 특히 자동차를 살 만한 구매력 있는 집단에서는 아이폰 사용률이 15~30%에 이를 거라는 예상에서는 더더욱.
개인적으로는 좀 다른 생각인데, 일단 아이폰은 이름과는 달리 아빠폰...(예, 죄송...) 어쨌든 아이폰은 30대 이상에서나 여전히 인기다. 2010년 1년 동안 스마트폰 열풍이 불던 초기에 구매력있는 젊은 아저씨 아줌마들부터 쓰기 시작했기 때문. 하지만 우리의 멋진 10대들은, 그리고 유행을 선도하기도 하는 쿨한 틴에이저들은 다 안드로이드를 쓴다. 그것도 보조금 잔뜩 태워서 팔아주는 버스폰으로. 간혹 "역시 스티브 잡스는 혁신의 상징"이라고 착각하는 부모 세대 때문에 최신 아이폰으로 업글한 부모의 구형 아이폰을 물려받아 "아이콘 배열도 맘대로 못 하고 폰트도 못 바꾸는 폰"을 억지로 쓰는 경우는 있다. 그들에게 그런 '기본'도 못하는 폰이 무슨 혁신일까.
또 하나는 스타트업 동네 이야기. 가끔씩 아직도 이 동네에서는 아이폰이 여전히 대세라는데, 대세 아니다. 일반인보다야 상대적으로 비율이 높지만, 정말 아니더라. 요즘 돌아다니면서 느낀 건데 어딜 가서 핸드폰 꺼내 놓는 모습을 보면 넥서스5가 늘 50% 이상을 차지한다.(10대 중 8대가 넥서스5인 모임도 있었다.) 압도적 점유율인데, 개발은 안드로이드 위주로 해야하니 어쩔수없이 안드로이드를 메인으로 써야하지만 그렇다고 통신사 앱이나 제조사의 프리로드앱을 쓰기는 싫은 사람들이 결국 그나마 단순하고 심플한 구글 레퍼런스를 쓰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50% 남짓 정도를 올망졸망 아이폰, 갤럭시, LG가 나눠갖는 형국이다. 그나마 여기서 아이폰과 갤럭시가 2중, LG가 1약 정도를 하고 점유율이 보이지도 않는 다른 회사들이 좀 있는 정도랄까. 세상이 변했다. 아이폰 점유율이 20~30%라고 해봐야 뭘 하나. 2년 전만 해도, 갤럭시가 세상을 호령했지만 그 때 스타트업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70% 이상이 아이폰이었다. 문자를 보내려고 보면 받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에서 파란 말풍선이 뜨던 경험, 이젠 아니다. 파란 말풍선을 보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그렇게 그들은 다 전향했다.
더 큰 문제는 큰 기업들도 안드로이드 위주로 움직인다는 데 있다. 난 아이폰6가 나오면 아마도 또 호갱님이 되어서 좀비처럼 가게 앞으로 어기적어기적 걸어갈 것 같지만, 그래도 페이스북도 안드로이드 팀에 인센티브를 주고 있고, 구글은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할 것 같으며,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은 페이스북 것이 됐다. 애플은 계속 어려운 싸움을 벌이게 될 것 같단 얘기다. 게다가 난 아직도 애플 하드웨어가 세계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넥서스를 쓰다가 가끔 아이폰으로 왔다갔다 할 때면 아쉬운 게 계속 많아진다. 전에는 쾌적하단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불편한 점들이 많아진다는 얘기다. 안드로이드가 자기만의 장점을 계속 늘려가고 있어서 돌아서기 힘든 상황이 됐다. 한국이 너무 안드로이드 위주라고 뭐라 불평할 수는 있겠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한국은 지극히 좋은 방향으로 앞서서 달려나왔다. 하드웨어고 소프트웨어고 한국과 상대도 안 되는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는 일본이 옆에 있는데, 한국 스타트업 중에 실리콘밸리 기업이나 중국 기업을 두려워하는 회사는 있어도 일본 기업을 두려워하는 경우는 없다. 구글이 왜 도쿄보다 먼저 서울에 캠퍼스서울을 만들고, 규제 천지 이 힘든 나라에서 온갖 서비스를 열심히 열어주는지 생각해 보면 이 안드로이드 일변도 환경이 확실히 비교우위를 열어준 행운의 선물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세계 최대의 안드로이드 국가인 중국은 역설적으로 구글과 단교했다.(기업과 국가 사이에 단교란 표현을 쓰는 게 어불성설이지만, 그래도 이건 단교다.) 구글은 중국 시장이 필요했지만, 그래도 구글에겐 자신들의 만트라(Don't be evil)가 그 시장보다 더 중요했다.(신성로마제국이 교황을 부정할 수는 없는 법) 결국 방법은 간접 교류 뿐. 중국 개발자가 구글과 친해지려면 직접 구글과 만나는 건 쉽지 않다. 아예 실리콘밸리로 나오지 않는 한. 그런데 실리콘밸리로 나가기엔 이미 중국 시장도 크고 좋고 무엇보다 중국에 있으면 미국 기업과 겨루지 않아도 된다. 결국 중국과 구글의 가교 역할을 해줄 곳이 필요한데, 일본은 중국과 사이도 안 좋고 안드로이드에 그렇게 올인하는 나라도 아니다. 반면 한국은 다르다. 수많은 기업들이 중국 기업과 하루가 멀다하고 투자하고 투자받으며 긴밀하게 교류하고 있고, 민간 교류와 문화 교류도 활발해 중-한 양국간 감정은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괜찮은 편이며, 무엇보다 한국은 안드로이드의 나라다. 그리고 구글을 좋아하는 나라다. 그런데 중국 기업들이 구글과 아주 친한 한국 기업들과 아주 친해진다면?
난 품질 좋은 한국에 로컬라이즈된 iOS앱이 많이 나오길 바라지만, 그렇다고 한국 개발자들이 안드로이드 우선 환경을 기형적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한국이 하루 아침에 일본이나 중국 크기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결국 지금 우리의 기형적인 상황이야말로 정말 절묘한 상황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