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리카의 전자책
by 김상훈
"책이 몇 권이 필요하니?"
"수천권이요."
읽을 게 없어서 교육이 어렵고, 읽을 게 없어서 사고가 제한되고, 읽을 게 없어서 먼저 배운 사람들이 나중에 배운 사람들을 가르치는 게 몹시 힘들던 가나에 아주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월드리더'(World Reader)라는 비영리단체가 440 대의 '킨들' 전자책 단말기를 학생들에게 나눠준 거죠.
약간은 농담처럼, 먼 미래의 '꿈'이라 생각하고 '수천권의 책'을 요구했던 아이들에게 월드리더의 자원봉사자들은 수만 권의 책을 미리 담아놓은 킨들을 하나씩 나눠주며 "여기 너희들의 손 안에 도서관이 있단다"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이들은 새로운 기계에 신기해하며 이러저런 버튼을 눌러대기 시작했습니다. 어른들은 사용설명서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헤매는 것을, 서로서로 어깨너머로 사용법을 배우던 아이들은 순식간에 새 전자제품을 자유자재로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기계를 다루게 되자 그 다음은 교육이 달라졌습니다. 공용어인 영어보다는 자신들 부족의 고유 언어를 쓰는 아이들이 더 많은 학교에서 교사들은 영어로 수업을 하는 게 늘 고민이었습니다. 그런데 킨들의 영영사전은 끊임없이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하게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사전이 훌륭해서가 아니었죠. 책을 읽다가 '바다'란 단어가 나왔을 때 킨들에 내장된 옥스퍼드 사전을 찾아보면 '지구 표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금물로 육지를 감싸고 있는 지역'이라고 설명합니다. 어린 학생들에겐 설명이 더 어렵기 마련이죠. 하지만 교사들은 책을 읽히는 대신 책을 이용하게 만듭니다. "바다는 어떤 종류의 물로 이뤄져 있을까?"라고 질문하면 아이들은 킨들의 사전을 뒤집니다. 누군가 외치죠. "소금물이요!" 중요한 건 어린이용 사전이 아니라 좋은 교사였고, 그들에게 부족했던 건 교육의 도구였던 겁니다. 킨들은 그 역할을 하는 훌륭한 도구였고요.
월드리더의 데이빗 리셔는 다른 교사의 사례도 소개합니다. 교과서 대신 킨들을 쓰다보니 원하는 페이지를 펼쳐야 하는데, "자 백이십삼쪽"이라고 말하는 게 쉽지 않았던 거죠. 킨들은 반응 속도가 느리고, 책에서 '이동' 기능을 사용해 원하는 곳을 찾아가려면 학생들이 100% 기계 사용법에 익숙해져야하는데 그렇지도 못했던 겁니다. 교사는 대신 어떤 책의 몇 장을 펼치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킨들을 덮어놓게 한 뒤 해당 부분에 대해 칠판에 글씨를 써가며 미리 설명합니다. 약 2~3분 정도의 짧은 강의는 '예습'이 되고, 느린 킨들은 그동안 충분히 제대로 된 페이지를 찾아내죠. 그 뒤 책을 읽으면, 학습 효과는 배가 됩니다.
동네도 바뀌었습니다. 아이들은 이제 책을 읽기 시작했고, 어린이 도서부터 전문 서적까지 스스로 원하는 방향에 따라 도서관 수준의 전자 서가를 뒤지며 어떤 지식이든 얻을 수 있게 됐습니다. 킨들을 나눠준 학교에 다니는 한 학생은 시장에 나가 킨들을 받지 못한 다른 학교의 학생들 또는 학교에 다니지 못해 글을 읽지 못하는 친구들 앞에 서서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먼저 배운 사람들이 뒤따라오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선순환이 시작된 거죠.
킨들은 단점이 많습니다. 느리고, 흑백이고, 작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가나에선 장점이 더 큽니다. 값이 싸서 더 많은 사람들의 손에 들어갈 수 있고, 배터리를 적게 사용해 전기 보급이 덜 된 아프리카에서도 충분히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한쪽에서 더 좋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중요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다른 한쪽에서 존재하는 기술을 더 값지고 보람있게 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또한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