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제국의 역습

2년 전만 해도 ARM이란 회사를 얘기하려면 한참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프로세서의 핵심인 코어를 설계하는 팹리스 반도체업체라고 얘기하면 한마디 한마디의 용어설명을 따로 붙여야만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꽤 많은 사람들이 ARM이라는 이름을 얘기하면 "어디서 들어봤다"고 말합니다. 스마트폰 대부분에 ARM 코어가 쓰이기 시작하면서부터죠. 애플이 만든 프로세서인 A4, A5에도 ARM…

회색

#000000과 #FFFFFF. 컴퓨터는 이를 검은색과 흰색으로 인식한다. 여기에 오류는 없다. 0은 이론상 어떤 빛도 표현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고, F는 빛의 밝기를 최고로 표현한 상태를 뜻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1677만7214가지의 색이 있다. 이 가운데 적(Red), 녹(Green), 청(Blue)의 채도가 없는 회색만 254가지다. 실제로 자연에 존재하는 회색은 훨씬…

더 써도 덜 쓴다 (6) 일자리의 끝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해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걸 누구나 안다. 우리에겐 이제 남은 선택지가 별로 없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지만 사실 공허하다. 지구는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곳인데, 너무 넓다. 또 다른 이유는 돈이 없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서…

오답노트

아마 이 칼럼을 쓰고 일주일 동안 고민해야 할 줄 애초에 알았다면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칼럼이 나간 그 날 밤, 문자메시지를 하나 받았다. 길었지만 핵심은 한마디였다. "이통사의 '업'은 뭘로 재정의해야 할까요?" 누군가 글을 읽어주고 반응을 보여준다는 건 글쓰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게 여기는 반응이다. 나라고 다를 리…

더 써도 덜 쓴다 (5) 신용 사회에서 신뢰 사회로

크레딧 카드는 세상을 바꿨다. 지갑의 두께를 줄였고, 미래의 소득을 현재에 소비할 수 있게 했으며, 부채를 안고 살아가는 삶을 가능하게 했다. 사람들은 자성을 띈 검은 띠를 두른 플라스틱 카드 한 장 만으로 자신의 소득이 갑자기 늘어나는 상황을 겪었으며, 그들 가운데 일부는 갑자기 늘어난 소득이 결국은 신기루였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