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ack Burning
by 김상훈
"자나깨나 산불조심"
귀 따갑게 들어왔던 산불 예방 표어들. 선진국에서는 이미 수십년째 이어진 자연보호 활동이자, 환경보호 활동이고, 일종의 신앙과도 같은 믿음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Vox의 유튜브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수십년 간 우리가 노력해 온 산불 예방 노력이 최근의 어마어마한 산불의 원인일지 모른다는 지적이었다.
작년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의 대화재가 기억난다. 인근에 사는 지인들이 하루종일 오렌지색으로 변해 버린 하늘 사진을 찍어 보내줬고, 서울의 미세먼지는 비교도 안 될 수준의 미세먼지 탓에 외출도 자제해야 했던 시기였다. 그 땐 다들 지구 온난화만 얘기했지만, (온난화가 이유가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 Vox의 이 리포트는 다른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본다. 캘리포니아 산불은 원래 때가 되면 일어나는데, 인간이 이 산불을 참지 못하고, 수십년간 너무 잘 예방한 것이 문제라는 얘기다.
종종 작은 산불이 일어날 때면 가장 먼저 불타 사라지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죽은 가지와 마른 잎 등이다. 이후 작은 풀들이 타들어가고, 덜 건강해서 수분을 덜 머금은 작고 약한 나무들이 차례로 불에 타버린다. 그리고나면 숲에는 굵고 강한 나무만이 살아남는다. 이 나무들은 상처를 덜 잎은 위쪽의 잎새를 더 많이 틔우고, 더 높은 곳에서 태양을 받으며, 그 아래에 비와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을 드리워 새로운 생태계가 자리잡게 한다. 양분을 담은 흙이 드러나고, 잡목와 잡초가 사라져 새 생명이 활동할 공간도 넓어진다.
그런데 인간이 산불이 조금이라도 나면 물을 끼얹어 '예방'하기 시작하자 이런 순환이 멈췄다. 타서 없어졌어야 할 죽은 나무와 마른 잎은 수십년을 쌓여 땔감을 모아놓은 화약고 역할을 하게 됐다. 이미 타 죽었어야 할 약한 나무들도 쓸데없이 살아남아 강한 나무가 더 높고 크게 자라는 것을 방해해 숲 전체를 약하게 만들었고, 바닥에 쌓인 낙엽과 마른가지들은 새 싹이 자라는 것을 방해했으며, 쓸데없이 무성한 숲은 새 생명이 활동할 공간을 빼앗는다.
이런 이유로 산불이 점점 더 커지고, 격렬해지자, 캘리포니아 못잖게 재앙적인 화재 피해로 유명한 호주에서는 작년에 새로운 법안을 통과시켰다. Back Burning, 다른 말로는 '계획된 산불'을 일으키도록 하는 법안이다. 사실 원주민들이 수백년 전부터 해당 지역에서 해오던 일이었다. 미리 불을 조금 내서 산불이 너무 커지지 않게 통제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19세기 중반 백인들이 식민통치를 시작하면서 이런 인위적인 산불을 금지하면서부터였다. 호주는 최근에 와서야 스스로의 잘못을 깨달은 셈이다.
작은 불을 내야 더 큰 불이 나지 않는다. 썩어가는 죽은 가지, 약해서 살아남기 힘든 잡목들이 작은 산불을 통해 걸러져야 숲 전체가 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지구를 멸망시킬 듯 거대하고 위협적인 산불이 온 대륙을 덮을 때까지 그 위험을 깨닫지 못한다. 어디 비단 산불 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