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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다이와 손오공, 씁쓸한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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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우리가 어릴 적엔 늘 외제가 더 좋았다. 과자도 미제 과자가 더 맛있고, 장난감도 일제 장난감이 더 좋았고, 기계도 독일 기계가 최고였다. 그래서 국산품 애용 운동도 있었고, 품질 개선을 위한 각종 검사필증이 생기기도 했다.

다 옛말인 줄 알았다. 지금은 세계에서 제일 좋은 스마트폰을 만드는 회사가 한국 회사고, 세계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게임회사 가운데 몇 곳이 한국에 있으며, 세계에서 제일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도 한국에 있으니까.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맞아 선물 복 터진 아들의 장난감 상자를 뜯으면서 씁쓸해졌다.

아직도 일제가 더 좋잖아!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올 크리스마스 부모들의 애간장을 녹였던 다이노포스 시리즈와 역시 아이들에게 인기였던 카봇 시리즈 장난감 몇 개가 아들 손에 들어갔다. 사진은 그 중 일반적인 모델인 파라사건(일본 반다이 완구)과 카봇 에이스(한국 손오공 완구)의 패키지 뒷면이다. 모두 정해진 기준에 따라 표시해야 할 내용을 표시해 놓았다. 주의사항과 상품명과 제조자, 제조국가 등.

차이가 좀 있다. 일제 다이노포스는 제조국이 태국이다. 원가를 낮추려면 당연히 아웃소싱을 할 수밖에. 그리고 한국제 카봇은 제조국이 대한민국이다. 그런데도 태국 제조가 한국 제조보다 낫다. 사실 사람 손보다는 품질 관리의 문제니 그렇다치고 좀 더 살펴보자. 다이노포스의 제조사는 반다이산업이고, 카봇의 제조사는 초이락컨텐츠팩토리다. 앞서 말했듯, 품질은 확실히 반다이 제품이 더 낫다. 물론 값에 차이는 있다. 반다이 제품이 전반적으로 비슷한 크기의 제품일 경우 50% 정도 더 비싸다. 도대체 왜 그럴까. 엄청나게 많은 분야에서 한국산이 대부분 일본산에 크게 뒤지지 않는 품질로 제품을 만들고 있는데 왜 아이들에게 돈을 아끼지 않는 부모로 가득찬 한국에서 장난감 품질은 내가 어릴 때와 똑같은 격차를 그대로 갖고 있는 듯 보이는 걸까.

궁금해서 두 회사를 잠깐 검색해 봤다. 손오공과 반다이는 둘 다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어린이 완구 회사다. 손오공은 수도꼭지를 만들다가 끈끈이 장난감으로 대박을 낸 뒤 이후 완구와 게임, 애니메이션 제작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반다이는 전후 양철깡통 장난감 등으로 인기를 끌다가 건담의 프라모델을 제작하면서 그게 엄청난 히트를 쳐서 성공한 회사다. 반다이 역시 나무코(Namco)와 합병을 통해 게임 사업 쪽을 제대로 확장했고, 애니메이션과 파워레인저 같은 특수촬영 어린이드라마 등도 제작한다.

반다이의 지배구조는 심플하다. 반다이와 나무코 두 회사를 반다이나무코홀딩스라는 지주회사가 지배한다. 반다이는 완구 제조 쪽으로, 나무코는 게임 쪽으로 각각 특화돼 있으며 서로의 지적재산을 활용해 영역을 확장한다. 반면 손오공은 여기서부터 뭔가 이상하다. 상자를 보면 나오듯 손오공의 완구 제조를 초이락이 맞는다. 초이락컨텐츠팩토리는 이 기사에 따르면 손오공 창업자 최신규 회장의 아내와 아들이 경영한다고 했다. 손오공이 계열사에게 제조를 맡기는 셈이다.

돈 되는 카봇 완구에 더해 손오공이 돈을 쓸어담는 캐시카우 역할을 한다는 리그오브레젠드 매출은 손오공IB라는 또 다른 자회사의 매출로 잡힌다. 연결재무제표에 반영되는 지분법손익 외에는 구체적인 현황을 살필 도리가 없다. 코스닥 상장사에 한국 대표 완구업체인데 도대체 뭘 어떻게 장사를 하고 있는지 투자자의 입장이라 생각하고 살펴보려 해도 알 수 있는 게 없다. 심지어 초이락컨텐츠팩토리는 말 그대로 완구 제조가 아니라 카봇 애니메이션 같은 콘텐츠 제작사다. 그런데 왜 여기서 제조를? 그리고 최신규 창업자는 손오공 대표이사를 물러나 손오공IB에 전념한다고 했고, 손오공은 손오공IB의 채무보증도 서주고 구로구 대지도 손오공IB에게 판매한다. 왜 자꾸 상장법인인 모회사 손오공의 영역은 줄여가면서 비상장 자회사 쪽 거래량을 늘리고, 창업자 가족들도 그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걸까?

반다이는 좀 다르다. 이 회사는 파면 팔수록 이상한 짓을 한다.

이건 반다이 프라모델 공장의 유니폼이다. 모든 사원들이 출근하면서 입는. 그런데 아래 사진과 비교해보자. 어릴 적 건담을 좀 봤다면 모두 알고 있을 그 군복이다. 아무로 레이가 속해 있는 지구연방군 군복.

손오공의 재무제표를 보면 사업분야는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완구 및 게임, 캐릭터 로열티, PC방 수수료(LoL). 완구와 게임이 분리되지 않고 공시된다. 비중은 약 84:1:15 정도. 반면 반다이의 재무제표는 토이호비(Toy-Hobby),  콘텐츠, 어뮤즈먼트 시설 사업으로 나뉜다. 비중은 4:5:1 정도. 이것도 이상하다. 손오공은 왜 이렇게 분류하는 걸까.캐릭터 수입은 의미없는 수준이고, PC방 수수료는 라이엇게임즈와의 계약에 종속되는 불안한 사업인데. 반다이는 이해가 간다. 완구류 제조와 콘텐츠 제작은 두개의 중심축이 되는 것이고, 어뮤즈먼트 시설이란 오락실/빠찡코 같은 게임센터 사업이라 다른 두 축과 묶이기 힘든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길게 썼지만,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하나다. 본질에 집중하는 회사가 좋은 제품을 만든다. 반다이 프라모델을 사느라 한국 아빠들이 대형마트 매대에서 번호표까지 받아가며 줄을 서야 하는 현실은 좀 짜증나지만, 내가 아들 선물을 골라줘야 하는 나이가 된 지금, 국산품 애용하는 마음만으로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는 회사의 제품을 사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