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preting Compiler

빌 게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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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도 물론 몰랐습니다. 아예 관심이 없었던 거죠. 1983년, 애플의 황금기에,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를 불러 자신이 사회를 맡은 ''애플 소프트웨어 개발자와의 만남''에 초청하기도 했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멋진 외모에 달변가이기까지 했던 스티브 잡스에게는 커다란 잠자리 안경에 멍한 눈, 아둔한 말투(지금도 여전하지만)의 빌 게이츠가 ''경쟁자''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아득히 먼 보잘 것 없는 존재였던 거죠.

하지만, 나중에 세상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매킨토시를 만들어 낸 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가 제록스연구소의 여러 기술들을 모방해 한 자리에 모아놓은 제품에 불과하다는 비아냥에 대해 이렇게 대꾸합니다. "훌륭한 예술가는 남의 작품을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남의 작품을 훔쳐낸다." 이 말을 했던 사람은 파블로 피카소였습니다. 문제는, 조금 지나자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이 피카소의 경구를 따라했다는 겁니다. 매킨토시의 멋진 아이디어는 모조리 윈도우즈 운영체제에 담기게 되죠. 그리고 세상은 완전히 변했습니다. 사람들은 빌 게이츠를 찾아 환호했고, 스티브 잡스는 그저 비주류의 매킨토시나 만들어낸 괴짜 CEO 취급을 당하게 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이자, 이 회사의 ''으뜸 촌놈''(Chief Nerd)으로 불렸으며, 동시에 이 호칭을 사랑했고,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의 무한한 존경을 받았던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영혼''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와는 정말 많이도 달랐습니다. 하지만 그에겐 그 나름의 매력이 있었죠.

스티브가 얼마나 속이 쓰렸을까요. 나중에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이 만들어낸 것을 따라했다는 사실에 대해 뭐라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이 성공했기 때문에 제가 기분이 나쁠 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대단한 성공을 이뤄냈고, 그 성공을 자신들의 힘으로 일궈냈습니다. 그것이 저를 슬프게 만들 이유는 없죠. 다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에는, 뭐랄까, ''취향''이란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소프트웨어에 문화를 불어넣고, 그것을 뭔가 의미있는 것으로 발전시키는 법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슬픈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엄청난 성공이 아닙니다. 제가 정말로 슬픈 이유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들어내 성공을 거둔 모든 제품들이 ''삼류''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스티브는 독설가였습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업자였던 스티브 발머는 이런 식의 평가에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오히려, 당당하게 말하죠. "(우리가 삼류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에요? 예, 동의합니다. 충분히 동의합니다. 우리 제품은 그들의 제품보다 3~4년 정도 뒤쳐져 있어요. 이미 그 정도 수준에 올랐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죠." 겸손까지 갖춘 마이크로소프트, 당신들이 성공한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