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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 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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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그레이엄이 에어비앤비의 CEO 브라이언 체스키의 강연을 듣고, 창업자 모드(Founder Mode)라는 에세이를 써서 화제가 된 바 있다. 당시 여기저기 그 글이 돌았는데, 아마도 이 에세이를 읽었던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두가지 정도만 남았을 듯 싶다. 하나는 스티브 잡스의 Top 100 팀, 그러니까 회사가 아무리 커져도 창업자는 직접 대화 가능한 팀을 꾸려서 그들에게 직접 보고를 받아야 한다는 것. 또 하나는 마이크로매니징. 창업자가 전문가를 채용해 그들에게 다 맡기는 건 위험하고, 직접 챙겨야 한다는 것 정도.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당연히 그게 전부도 아니었다. 브라이언 체스키가 약간 답답했는지 직접 창업자 모드에 대해 설명하는 인터뷰를 했다.(비즈카페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친절하게 한국어로 번역해 자막까지 달아놓았다.) 스타트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회사를 다녀본 입장에서 정말 와닿는 부분이 많다.

도제식 경영

체스키는 에어비앤비 직원이 400명이 될 때까지 채용 과정을 직접 참여해 진행했다고 한다. 사람이 중요하니까. 이 정도는 많은 CEO들이 동일하게 한다. 정작 중요한 건 뽑고 난 다음이다. 체스키는 골프 스윙을 배우던 때를 얘기한다.

"골프 강습을 받을 때, 한 번 스윙을 하고 나면 강사가 계속 지적해 줬어요. 그 피드백을 받으면서 점점 잘못된 자세를 고치고 제대로 된 스윙을 몸에 익히죠. 고용도 마찬가지에요. 좋은 스윙을 골프 전문가인 강사들이 잘 아는 것처럼, 에어비앤비에서 일하는 법은 에어비앤비 창업자인 제가 제일 전문가입니다. 그들에게 회사의 기준이나 속도에 대해 도움을 줘야 해요."

이 과정이 없다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을 뽑아도, 결국 그들이 자기만의 방식대로 팀을 뽑고, 회사의 다른 팀과 엇박자를 내다가 엉뚱한 사람들을 고용한 뒤 실패하게 된다. 조직 이기주의에 휩싸이는 건 물론이고, 마케팅 메시지를 반대로 내기도 하며, 기술 스택이 서로 달라 비용을 두배로 늘리는 일도 빈번해지는 게 이런 탓이다.

자율성은 허구다

그렇다면 언제쯤 되면 이런 도제식 훈련에서 직원들이 벗어나 자율성을 갖고 움직이게 될까? 이 질문에 대해 체스키는 자율성을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직원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 자율이 아니라 협력이 잘 되는 환경이다. 예를 들어 우리 팀이 올해 자율적으로 신사업을 벌이기 위해 1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하자. 그러면 CFO가 내게 그 돈을 줄까? 개발팀은 우선순위를 바꿔 내 프로덕트를 위해 시간을 조정해 줄까? 현대 사회의 어떤 기업도 그런 식으로 일하지 못한다. 자율이란 존재하지 않는 허구다. 오히려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들과 잘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이 최고다.

그런데 이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고 알아서 하라고 놓아둔다면? 그들이 전문가이니 그렇게 해야한다 믿는다면 CEO로서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CEO는 모든 의사결정권자들의 디테일을 파악하고, 이들의 결정에 관여해야 한다. 그래서 회사 전체가 더 협력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자율을 제한해야 한다. 그 때 회사 전체의 행복도 더 커지게 마련이다.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임원들은 오직 자신의 부서를 위한 결정을 내린다. CFO는 예산을 통제하려 하고, CTO는 플랜을 바꾸지 않으려 들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싫고, 내가 원하는 대로 회사를 끌고 가고 싶은 사람들은 창업을 하면 된다. 그게 창업자의 역할이며, 세상은 여전히 더 많은 창업자를 필요로 한다.

코로나19가 준 기회, 그리고 작은 팀

개인적으로 경영자로서의 체스키를 다시 보게 된 건 코로나19 때 이 사람이 직원들을 내보내면서 썼던 편지 덕분이었다. 14주의 급여를 주고, 주식 베스팅 클리프를 풀어주고, 쓰던 노트북이 있어야 구직 활동에도 도움이 될거라며 노트북을 가져가게 해주는 섬세함 등도 좋았지만 남아있는 직원들과 떠나는 직원들에게 각각, "떠나는 이들의 공헌을 잊지 말자" 그리고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인사하는 모습에 감명받았다. 이 때 직원의 1/4을 해고해야 했을 정도로 여행과 이동이 멈춘 시대의 에어비앤비는 최악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최악이었기 때문에 창업자 모드가 생겨났다.

2019년 에어비앤비는 IPO를 준비하고 있었고, 기업공개를 준비하는 스타트업에는 이 큰 이벤트를 위해 수많은 전문가들이 새롭게 합류한다. 그들은 글로벌 500대 기업의 중역으로 일했던 수십년 경력의 전문가였으며, 비서와 기사, 천문학적 보상에 익숙하고, 거대한 조직을 이끌어 본 경험이 있었다. 이들로 인해 회사는 관료화되고, 회의를 하기 위해 회사에 나오는 무력감이 퍼져나간다.

그 때 만난 것이 조너던 아이브였다. 애플의 수석디자이너 얘기다. 아이브가 체스키에게 해 준 얘기는, 최소한의 인원으로 중요한 일을 하는 팀을 만들어야 하며, 모든 관리자는 디테일 하나하나에 관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큰 스타트업'을 만들고 싶어했던 스티브 잡스의 방법이었다고. 잡스는 제품의 디테일 하나하나에 관여했고, 그 덕분에 그 제품을 만드는데 관여했던 모든 사람들은 중심을 놓치지 않고 하나의 방향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었다. 오직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한 사람이 모든 중요한 결정에 들어갔다는 단순한 이유 덕분에.

체스키: "조니, 스티브 잡스와 일하면서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로 고생하지 않았었나요?"

아이브: "천만에요. 애플에서 일하던 시간은 제가 가장 많은 권한을 갖고 일하던 시간이었습니다."

얘기를 듣고 당장 에어비앤비도 뜯어 고치고 싶었지만, IPO를 코 앞에 두고 그런 모험을 벌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때 코로나19가 터졌다. 직원이 급감했고, IPO는 미뤄졌으며, 조직을 뒤집어 엎어야 할 긴급한 요인이 생겼다. 처음으로 돌아갈 시기였다.

해군(Navy)이 아닌 네이비씰이 되자

나쁜 기업은 위기에서 무너지고, 좋은 기업은 위기에도 살아남으며, 위대한 기업은 위기를 통해 정의된다. 앤디 그로브가 했다는 말이다. 체스키는 이 때 "해군이 아닌 네이비씰이 되어야 한다"며 위기를 통해 에어비앤비를 정의하기로 마음먹는다. 모든 직원들이 디테일 하나하나에 관여하도록 만들었고, '그냥 넘어가도 괜찮은 일'이 사라지도록 했다. 모두가 이렇게 일하면 회사는 마치 하나의 의식을 가진 하나의 생물체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

물론 직원들은 처음에 반발했다. '실무를 알지도 못 하는 윗사람의 간섭은 부당하다'는 생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한 것이니까. 하지만 체스키는 밀어붙였다.

"정치적 자본 없이 알아서 일할 수 있는 직원은 회사에 없습니다. 그것이 C레벨 임원이라고 해도요. 한 명 그런 자본을 모든 분야에 갖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바로 창업자죠. 지난 4년 동안 저는 에어비앤비에서 이렇게 반발과 맞서 일했습니다. 놀라운 게 뭔지 아세요? 첫 2년은 정말 힘들었어요. 매주 80시간에서 100시간을 일했죠. 그리고 2년이 지나자 일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시간이 훨씬 많아졌어요."

가끔 '애플의 신비로운 경영방식'처럼 미화되는 스티브 잡스의 Top 100 팀 얘기가 있다. 매년 한번씩 스티브 잡스가 수만 명의 직원이 있는 애플에서 100명의 직원만 불러다 직접 대화한다는 그 미팅. 체스키는 그걸 "보고체계를 건너뛰는 커뮤니케이션"으로 해석한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기업에서는 CFO 아래의 재무담당자가 대표이사에게 직접 보고하면 난리가 난다. 하지만 체스키는 수십명의 임원 레벨 아래의 직원들과 직접 대화하는 걸 즐긴다.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지나가다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회사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기 위한 방법이다.

변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여기까지 듣고 나면 비슷한 의문을 떠올렸을 것이다. 특히 스타트업 창업자들이라면 더더욱.

"이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건데?"

아마도 창업자 모드의 가장 중요한 결론은 그것이 아닐까.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가지고 있던 창업자들의 모든 훌륭한 태도와 방식은 회사의 성장에 따라 조금씩 사라져 간다. 전문가의 조언, 경영관련 책에 나오는 좋은 얘기, 각종 선배 창업자들의 "나도 그랬어"라는 경험담... 물론 초기 창업자들은 미숙하고, 실수하고, 틀리게 마련이다. 회사가 커지면 그만큼 창업자의 그릇도 커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러니, 그 중에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어찌 보면 그것이 창업자 모드의 가장 중요한 요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