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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단추를 잘못 꿴 NHN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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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N은 훌륭한 기업입니다. 규모로보나, 전 국민에게 끼치는 영향력으로 보나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인터넷 대표기업이죠. 그런데 이런 글이런 글 때문에 마치 제가 NHN이란 회사를 싫어하기라도 하는 양 오해하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싫은 게 아니라 아쉬움이 짙은 겁니다. NHN은 버블의 소용돌이 속에서 태어났고, 꺼진 거품을 딛고 성장했으며, 만만치 않은 경쟁자들의 공세를 견뎌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하죠. 하지만 그와 함께 여러 문제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점의 대부분은 이 회사가 어찌할 수 없어 보이는 태생에서 기인합니다. 한국에도 미국처럼 훌륭한 벤처캐피탈이 있었고, 그들이 이런 회사의 산파가 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되는 거죠. 제가 비교하기도 했었고, 종종 비교되는 구글의 탄생 뒤에는 이런 훌륭한 산파들이 꽤 많이 존재했습니다.

 

위 도표는 NHN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간단한 요약입니다. 함께 이 회사를 분석하셨던 분께서 정리한 도표를 제가 단순화시켰습니다.

 

시작은 목구멍이 포도청인 데서 비롯됩니다. IT산업이 '꿈'만 먹고 자라는 지식중심의 돈 한 푼 안 들이는 사업처럼 보이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사실 서버 사들이고 광대역 통신망 끌어들이고 하는 기계값이 어마어마합니다. 아무리 이런 비용이 매년 크게 줄어든다고 해도 수백만, 수천만 명이 이용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들 입장에선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규모죠. 그래서 초기 투자비용이 엄청납니다. NHN이 대기업의 풍부한 자본 지원을 받는 회사도 아니었고, 방법은 외부 자금을 끌어들이는 것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업공개를 하면 지배구조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창업자들의 목소리가 작아지고, 외부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거죠.

 

이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되는 회사가 언론사입니다. 특정 기업 등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언론 보도에 반영하는 일을 막기 위해 언론사에선 창업자들이 의결권의 대부분을 가져갑니다. 1주당 1표의 의결권을 주는 게 아니라 1주당 10표 씩의 의결권을 주기도 합니다. 이른바 이중 의결권 구조죠. 결과는 주가의 하락입니다. 만약 언론사가 주요광고주들을 비판하는 보도를 한다면, 주주라면 이를 말리고 싶을 겁니다. 광고 매출이 줄어들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의결권 제한으로 언론사가 마음대로 이런 일을 한다면 주주는 이익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언론사 주가는 대부분 비슷한 규모의 다른 기업들보다 크게 낮습니다.(국내엔 기업이 공개된 언론사가 거의 없어서 좀 먼 얘기이긴 합니다.) 이 얘길 왜 갑자기 꺼냈냐면, 구글이 이 방식을 도입했기 때문입니다. 창업자들이 재무적 투자자가 경영에 간섭하면서 구글이 이익을 더 많이 내도록 강제하는 걸 막겠다며 주가가 떨어지는 것도 감수하겠다는 생각으로 기존 주식에 10표씩의 의결권을 줬기 때문이죠. 구글은 주가를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워낙 수익성이 좋아서 투자자가 이런 나쁜 조건에도 불구하고 몰릴 것으로 기대한 것이고, 그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최근엔 페이스북도 이런 식의 상장을 추진중입니다. 기존 주주들에게 10표씩의 의결권을 줬죠. 조만간 기업공개가 이뤄지면 재무적 투자자들은 1표씩만 갖게 됩니다.

 

NHN은 이러질 못했습니다. 이중 의결권 구조의 상장이란 게 한국에서 몹시 낯설 뿐더러, 그렇게 배짱을 부리다 기관투자자들이 외면이라도 하면 상장과 동시에 주가가 폭락할 위험도 있는 게 한국 시장이었으니까요. 그 결과 NHN의 경영권은 창업자에게 있지만, 이들이 갖고 있는 의결권은 50%는 커녕 10%가 조금 넘을 뿐입니다. 부족한 자본이 재무적 투자자를 필요로 하는 이유가 됐고, 그게 결국 취약한 지배구조로 이뤄진 셈이죠.

 

이 상황에선 비즈니스 스타일이 결정됩니다. 이제 창업자든 누구든 배짱있는 결정도 못 내리고, 모험도 걸지 못합니다. 그랬다 대박이 나면 몰라도 실패해서 수익구조가 흔들릴 경우 투자자들이 가만 있을리가 없지요. NHN은 이미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어도 1조가 넘는 매출을 견고하게 벌어들이는 회사인데 모험을 거는 걸 용납할 투자자가 있을까요? 자기 회사라면 몰라도, 투자대상에 불과한 회사에서 그런 일을 벌이는 걸 용납할 투자자는 없습니다. 모험만 못 하는 게 아닙니다. 성공 가능성이 높을지라도 장기 투자가 요구되고, 막대한 자본을 들여야 하는 사업이라면 할 수가 없습니다. 구글은 유튜브를 사들이고,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도 벌인다고 합니다. NHN이 10년을 벌어도 못 벌 돈을 기약없는 미래만 바라보며 투자하는 건데, 이런 회사와 NHN은 어떠한 경쟁도 할 수가 없을 겁니다.

 

이렇게 단기적 성과에 급급하다보니 수익성은 좋아집니다. 자기자본대비, 총자산대비 이익률은 NHN이 구글보다 월등합니다. 구글의 ROE는 2008년 기준, 18.5%인데 NHN은 121%입니다. ROA는 구글이 16.6%, NHN이 34%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구글보다 적은 돈을 들여서 훨씬 많은 돈을 벌었다는 뜻이죠. 투자자들이 매우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영업이익률을 보면 갸웃합니다. 물론 NHN이 구글보다 더 많은 영업이익을 벌어들였습니다. 구글은 30.6%, NHN은 42.3%니까요. 하지만 차이가 줄어들었죠. 매출액 차이가 워낙 크다는 걸 감안하면 사실 거의 별 차이없다고 봐도 될 겁니다. 게다가 자산규모로 보면 NHN은 구글의 3.6%밖에 안됩니다. 지금 회사를 청산한다면 NHN을 30개쯤 팔아야 구글 하나 파는 것과 맞먹는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NHN의 직원 수는 구글의 17%입니다. 구글은 안 그래도 '인재 블랙홀'이네, 너무 직원을 많이 뽑네 하면서 이러저런 잔소리를 듣는 회사입니다. 거기와 비교해서 이 정도 인력이라... 어딘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새는 부분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은 거죠. 아니면 그냥 적나라하게 말해서 직원 1인당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다보니 돈은 잘 버는데도 이게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다시금 순환됩니다. 번 돈은 배당하고, 자사주 매입해 소각하고, 많은 직원들 월급 주고 보너스 주고... 자산규모가 획기적으로 늘어날 대규모 투자를 하기엔 결정도 못 하고, 돈도 생각보단 별로 없고... 다시 반복됩니다. 돈이 많은데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역설, 투자자를 달래는데 돈을 써야만 하는 상황, 그 투자자들 때문에 개선되지 않는 지배구조의 약점, 그 약점 때문에 과감하게 벌이지 못하는 비즈니스, 그러다보니 여전히 벌어도 벌어도 부족한 수익성...

 

결국 NHN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만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