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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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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거짓말이 화제가 됐습니다. 와이어드닷컴에 등장한 6가지 교활한 거짓말조선일보가 기사화했죠. 내용은 간단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500달러짜리 컴퓨터를 만들지 않겠다고 해놓고 499달러 아이패드를 내놨고, 태블릿PC를 안 만드다, 휴대전화 사업은 하지 않는다, 키보드가 없는 컴퓨터는 성공할 수 없다,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기 때문에 아마존의 킨들은 오래 못 갈 것이다, 작은 화면으로 영화를 보려는 사람은 없다... 등등의 말을 해놓고는 결국 다 그 반대로 했습니다.

명시적으로 거짓말이란 표현을 쓰는 대신 와이어드는 '교활한 이야기'(sneakiest statements)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거짓말은 뭔가 도덕적으로 잘못된 듯한 인상을 주지만 교활한 이야기라고 표현하면 이런 식의 거짓말이 마치 경영 기술처럼 들리기 때문이겠죠. 저도 이런 CEO의 거짓말이 경영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모 벤처기업의 CEO는 정말 열심히 블로그를 합니다. 그것도 업계의 이야기를 씁니다. 자신이 취득한 최신 정보, 산업계 동향, 경쟁사의 움직임에 대한 고민 등등 전문가의 식견과 진지한 고민을 듣고 있으면 읽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분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80% 정도는 진실되게 씁니다. 그런데 20% 정도 중요한 건 고의로 틀리게 써요. 경쟁사가 잘못 판단하게 하는 것도 목적이거든요." 스티브 잡스라고 달랐을까요.

몇 년 전 인터뷰에선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만나기 힘든 CEO를 만났는데, 이것저것 재미있는 얘기를 한참 나눴죠. 정말 그럴듯하게 자신의 포부, 현재 업계에 대한 자신의 해석, 경쟁사 제품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더군요. 그리고 커다란 전략 방향까지 알려줬습니다. 저는 대문짝만하게 인터뷰를 신문에 실었죠. 그리고나서 그 회사는 인터뷰 이후 1년 내내 제게 들려줬던 인터뷰와 정반대로 움직이더군요. 배신당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 뒤로 전 CEO들의 얘기는 절대 곧이곧대로 듣지 않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감동적인 스토리를 들려준다고 해도, 설사 제가 그 자리에서 같이 눈물을 흘린다고 해도 돌아서자마자 의심할 게 뻔합니다.

문제는 '티 나는' 거짓말입니다. 잘 된 거짓말에 속으면 속고나서도 그 사람 대단하다 싶어지는데, 대화를 나누면서부터 이건 거짓말이 뻔하다 싶은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얕은 거짓말을 하는 분들의 특징이 있죠. 일단 만나면 (잘 모르는 사이인데도) 그렇게 친한 척을 합니다. 형, 동생 말 트고 시작하자는 식으로 얘기를 시작하는 경우가 상당수죠. 또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냥 날 이해만 해달라"는 게 거짓말의 시작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은 이해는 안 해줘도 좋으니 이것만 해달라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자신의 근면성실도 강조합니다. 새벽 5시에 회사에 나와서 자정에 별보고 들어가는 얘기를 자주 하면 할수록 골프장으로 출근해 술집에서 퇴근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치고 그런 얘기 하는 사람 없습니다. 또 업계 사람들을 다 절친하고 막역하게 잘 안다고 말합니다. 세상에 그렇게 적이 없고 두루 친하며 발까지 넓다면, 그건 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선교를 하는 사람이겠죠.

전 CEO들이 소비자나 투자자를 고의로 속이는 게 아니라면, 자신들의 전략이나 산업에 대한 해석 등은 좀 과장되게 얘기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능력이니까요. 오죽하면 스티브 잡스에 대해 "주위에 현실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을 펼치고 다니는 사람"이라고까지 부르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얘기도 믿게 만드는 그의 능력 덕분이죠. 결국 그런 능력이 물건도 더 잘 팔리게 하고, 투자도 이끌어낼 수 있는 겁니다. 한국에도 예술적으로 교활하게 거짓말을 하는 CEO 분들이 (지금도 꽤 많지만) 더 늘어나 경제를 살찌우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