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르게 생각하라지만(Think Different) 전형적으로 행동하는 회사 - 애플에 대한 상반된 감정
by 김상훈
앞서 글에서 소비자로서 바라본 애플은 매우 만족스러운 기업이란 얘기를 했습니다.오늘은 조금 다른 측면에서 바라본 애플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러니까 이건 비즈니스스쿨에서 기업에 대해 공부하는 학생의 입장으로 바라본 애플에 대한 생각이고, 동시에 산업담당 기자로서 취재대상 기업으로 바라본 애플에 대한 생각입니다. 한편으로는 스티브 잡스와 애플에 대해 책을 쓴 사람으로서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요컨대 제품을 소비하는 소비자로서의 생각이 아닌, 다른 기업과의 비교선상에서 애플을 바라봐야 하는 관찰자로서의 생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2005년 1월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을 극복하고 다시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센터의 맥월드 컨퍼런스 키노트 '무대'(스티브 잡스에게 프리젠테이션 공간은 무대입니다. 여러 측면에서.)에 섰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때 'iCon 스티브잡스'의 저자였던 제프리 영도, 그리고 한국에서 온 저같은 주니어 기자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습니다. 참 묘한 경험이었습니다. 아주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순간들이었고요.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불굴의 의지를 가진 CEO에 대해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의 일종의 '경외심' 같은 걸 공유하던 순간이었죠.
애플이란 회사에 대해 가장 자세하게 봤고, 열심히 공부했던 시기가 이때부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한 때 히피였고, 실제로 히피처럼 인생을 살아왔던 세계 최고 부자 가운데 한 사람의 인생은 물론이고, 애플이 만들기 전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수많은 물건들이 척척 등장하는 마법같은 광경에 넋을 잃었죠. 게다가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1984년의 그 팀을 다시 불러모아 멋진 카피를 써내고 애플의 정신으로 삼습니다.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는 것이었죠.
하지만 역설적으로 애플의 행동은 그다지 '다른 생각'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습니다. 혁신적인 새 제품은 사실 이러저런 창작물을 끌어모아 한데 붙인 뒤 마지막 손길 하나까지 다듬고 다듬어 최종소비자의 마음에 쏙 들게 가공해낸 제품들에 불과했으니까요. 매킨토시처럼 가격을 제대로 책정하는 데 실패하고 소프트웨어를 제 시간에 공급하는 데 실패했던 비운의 제품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껍데기 디자인과 포장 만큼은 매력적이었죠.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이 더 성능 좋고, 혁신적인 컴퓨터 기술을 개발해 자신들의 제품에 사용하는 걸 고민하고 있을 때 어떤 포장지에 워즈니악이 만든 컴퓨터를 담아야 소비자들이 'Cool'하다고 느껴줄지를 고민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전형성의 예를 살피려면 애플이 자랑하는 제품들을 하나씩 보면 됩니다. 아이폰은 스티브 잡스가 키노트에서 얘기했던 대로, 아이팟 + 휴대전화 + 휴대용 인터넷접속기기일 뿐입니다. 시장에 존재하던 여러 제품의 기능을 한 데 모았던 것이죠. 아이팟의 아이디어 또한 아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토니 파델이라는 사람의 머릿속에 존재하던 제품 설계를 스티브 잡스가 사들였던 것에 불과합니다. 물론 그 초기 기획물과 최종 결과물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하죠. 스티브 잡스가 만족하느냐, 만족하지 못하느냐라는 엄청난 차이. 1997년 스티브 잡스의 귀환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가장 큰 차이점인 맥OSX의 경우도 결국 그 시작은 유닉스(UNIX)라는 운영체제에다 제록스의 PARC연구소에서 20년 쯤 전에 개발했던 GUI를 붙인 것에 불과합니다. 물론, 그런 결합이 '불과하다'고 평가절하되기엔 엄청난 일들이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거창하게 다르게 생각(Think Different)하지 않고도 이런 일은 누구든 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시장엔 이런 형태의 시제품들이 미리 존재하고 있었으니까요. 시제품들과 애플 제품의 차이는 제가 보기엔 단 하나입니다. 스티브가 만족할 때까지 밀어붙이느냐, 아니냐. 넥서스원이 판매 첫 주에 겨우 2만 대 팔렸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팔린 아이폰이 일주일에 7만 대입니다. 세계 최대의 시장인 미국을 포함해 세계 각국에서 팔린 것 치고는 좀 쪽팔린 숫자죠. 아마도 이유는 끝까지 써보면서 "안 돼, 처음부터 다시"라고 말할 최종 책임자가 없었기 때문 아닌가 싶습니다.
마케팅도 별날 게 없었습니다. 애플이 맥월드에 불참하게 된 지금은 좀 모습이 다르긴 하지만, 2005년은 물론 그 전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맥월드를 전후로 샌프란시스코의 도시 풍경은 확 달라졌습니다. 옥외광고판이 한 순간에 변했기 때문이죠. 2005년 1월 스티브 잡스가 '아이팟 셔플'을 처음 소개하고, "지금부터 애플스토어에서 판매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애플의 마케터들은 옥외광고를 내걸기 시작합니다. 지하철, 버스정류장, 옥외간판이 한번에 아이팟 셔플 광고로 바뀌기 시작했죠. 새 TV 광고가 이날부터 바로 시작되고, 샌프란시스코 지역지와 각종 유명 신문, 잡지에는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가 주요 기사로 다뤄집니다. 이를 위해 애플은 (저를 비롯해서) 전 세계의 기자들을 캘리포니아로 불러모으고, 애플스토어에는 대형 셔플 포스터를 걸어놓습니다. 애플스토어의 직원들의 유니폼도 셔플로 바뀌죠. 심지어 팔로알토의 애플 본사 '인피니트룹'(Infinite Loop; 무한루프라고... 코드짜는 사람들은 다 아는...)에 걸린 포스터까지 바뀝니다. 경영학 시간에 마케팅을 위한 프로모션 비용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배워본 사람들이라면 '교과서대로'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게 하루 동안 정신없이 쏟아집니다. 소비자들의 주의를 단 며칠 사이에 완전히 독점하려는 생각이죠.
채널 전략도 단순하기 그지 없습니다. 전자양판점(미국에선 베스트바이같은 곳이고 한국에선 하이마트같은)은 제품 가격을 스스로 붙이는 데 익숙합니다. 제조업체가 가격에 왈가왈부하는 걸 싫어하죠. 애플은 그걸 못하게 막습니다. 애플스토어라는 직영 소매점을 통해 정가를 정해버리죠. 그리고 어디서도 애플스토어보다 싸게 팔지는 못하도록 가격을 통제합니다. 싫으면 애플 제품을 들여놓지 않으면 됩니다. 다른 제조업체는 이런 짓을 할 수 없습니다. 애플처럼 직영 소매채널이 없고, 만든다 해도 유지비용이 비싼 데다, 유통업체가 물건을 빼겠다는 협박에 견뎌내기 힘드니까요. 그래도 애플은 밀어붙였습니다. 애플에선 공식적으로 애플스토어의 존재 이유가 '소비자 경험'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지니어스'라고 불리는 유능한 직원들이 사용법을 설명하는 등 소비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는 것이죠. 하지만 제가 보기엔 이는 복잡한 유통전략을 피하기 위한 정공법입니다. 굳이 맨해튼의 핍스애비뉴(Fifth Ave.)나 도쿄의 긴자, 파리 샹젤리제 같은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곳에만 애플스토어를 내는 모양새는 비싼 가격을 정당화하기 위한 마케팅 활동이고요. 이렇게 포지셔닝을 하는데 실패한 제조사들은 늘 유통채널의 요구에 따라 채널별 제품을 따로 기획해 생산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비용 부담을 더 지게 마련입니다. 애플은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소비자들이 핍스애비뉴의 애플스토어 앞에서 신제품 발표 때마다 밤을 새며 줄을 서기 때문이죠. 베스트바이와 각종 소매점에서 아이팟을 찾기 때문이고요.
글로벌 전략도 복잡한 걸 싫어합니다. 스티브 개인의 성향 탓인지, 애플이 움직이는 방식은 정말 군더더기없이 미니멀하죠. 모든 결정은 팔로알토에서 내리고, 각 지역본부와 지사는 이를 따르면 됩니다. 매트릭스 조직의 전형이죠. 각국 지사장에겐 사실상 별 권한이 없습니다. 각 부서 담당자들은 지역본부 담당자에게 보고를 하고, 지역본부 담당자는 본사 담당자에게 보고를 합니다. 결정도 업무별 라인에 따라 내려지지, 개별지사별로 독자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은 사실상 거의 없습니다.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의 성향상, 캘리포니아 한 가운데라는 특성상, 애플에는 자유를 사랑하는 히피같은 직원들이 득시글거릴 것 같지만, 그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애플 직원들 가운데 스탠포드 졸업생 비율이 아마도 실리콘밸리 대기업 가운데 가장 높을 거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자기는 대학 중퇴면서 데리고 일하는 사람들은 스탠포드만 선호한다"는 건 스티브 잡스를 비아냥대는 사람들의 단골 레퍼토리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전략이 특별하지도 않습니다. 애플컴퓨터라는 사명에서 '컴퓨터'를 떼어버린 순간부터 애플은 소프트웨어 업체인 동시에 하드웨어 업체가 됐고, 콘텐츠 유통업체가 됐습니다. 이 때부터 이들의 전략은 이 모두를 일원화해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구글이 세상의 모든 정보를 검색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듯, 이들은 세상의 모든 콘텐츠를 애플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통해 보게 하자는 비전을 갖게 된 거죠. 단순무식한 비전이지만 강력한 주문이기도 합니다. TV 시장에 애플이 뛰어든다는 루머도 루머에 그치는 것 같지는 않고, 애플 타블렛이 나오는 것 또한 이런 비전을 이루기 위한 당연한 방편이지요. 정보 유통에 잠겨버린 소비자들이 구글에서 벗어나지 못하듯, 콘텐츠 소비에 잠겨버린 소비자들 또한 애플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둘 다에 잠겨버린 저는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경쟁 구도가 참 곤란하고 애매합니다.)
애플이란 회사는 그리 특별한 회사가 아닙니다. 회사를 움직이는 기본 틀은 경영학 교과서의 기본에 충실하고, 직원들의 구성 또한 여느 기업의 그것과 크게 차이나지 않습니다. 이 회사의 특별함은 딱 하나죠. 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CEO, 스티브 잡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