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섯살 파이어폭스
by 김상훈
좀 작게 보이지만, 하늘색은 0~10%를 의미합니다. 주황색이 단계별로 옅은 색에서 진한 색으로 변하는데, 가장 옅은 색이 11~20%이고 가장 짙은 색은 50% 이상을 뜻합니다. 유럽에선 이미 50%가 넘는 지역도 많죠. 파이어폭스(Firefox)라는 웹브라우저의 시장점유율입니다.
웹브라우저를 만드는 프로그래머들이야 파이어폭스가 원래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의 기술에서 파생된 웹브라우저이고, 오픈소스로 개발된 것이며 어쩌고 하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2004년 11월 직전까지도 전혀 몰랐습니다. 온 세상의 수많은 프로그래머들이 대가없이 이 제품의 개발에 조금이라도 기여해 보고자 때론 밤잠을 설치고, 때론 주머니 돈까지 털어가면서 만든 웹브라우저였다는 사실을요. 알고 나선 흥분했습니다. 단순히 이 웹브라우저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뭔가 멋지고 훌륭한 일에 동참하는 느낌이었죠. 그래서 처음 이 웹브라우저가 세상에 나왔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운로드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결과는 절망적이었습니다. 한국에서 파이어폭스를 쓰면 당장 우리 회사 시스템에 접속하는 게 불가능했고(업무를 볼 수 없고) 인터넷 뱅킹을 할 수 없었으며(생활이 불가능하고) 온라인 쇼핑이나 만화보기 결제 등이 모두 불가능했습니다.(취미도 유지할 수 없었죠.) 결국 설치만 해놓은 파이어폭스를 클릭할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게 5년이 지났습니다. 이달 초 세계에선 파이어폭스 5주년을 축하하는 행사들이 다양하게 열렸다고 합니다. 세계시장 점유율도 처음으로 25%를 넘어섰습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처음에 비웃던 사람들은 계란이 바위에 금을 내는 놀라운 광경을 보고는 입이 벌어졌죠. 사실 계란이 바위에 금을 가게 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계란인 줄 알았던 파이어폭스는 수많은 신기술과 빠른 속도, 열성적인 전 세계의 개발자들을 한 편으로 한 단단한 다이아몬드였는데, 바위인 줄 알았던 인터넷익스플로러는 세계 시장을 독점했다는 자만심에 빠져 몇 년 째 새 버전으로 업데이트조차 하지 않고 있던 겁니다. 기술 발전이 일어나지 않는 독점 시장에 강력한 경쟁자가 신기술을 무기로 치고 들어갔으니, 사용자들이 새 제품에 열광하는 것도 당연했죠.
하지만 한국에선 여전히 아닙니다. 파이어폭스가 뭐냐고 묻는 분들도 주위에 수두룩하죠. 그래서 기사도 썼습니다. 마침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 익스플로러 8과 9에서 웹표준을 지키기 위한 많은 기술적 발전을 이뤘다고 합니다. 의지도 밝혔더랬습니다. 제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제품의 품질과 성능이어야지, 그 제품이 단순히 시장을 독점하기 때문에 써야만 하는 일은 이젠 좀 사라졌으면 합니다.
다행히 5년 동안 한국의 인터넷 환경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여전히 저널로그에서도 파이어폭스나 사파리로는 글을 쓸 수 없고, 인터넷 뱅킹도 불가능하지만, 이제 네이버나 다음을 볼 때 느끼는 불편함은 상당부분 해결됐습니다. 심지어 일부 웹 서비스들은 인터넷 익스플로러보다 다른 웹브라우저에서 더 잘 작동하기도 합니다. 자바스크립트 등 여러 기술적 요소들을 처리하는 능력이 IE보다는 다른 웹브라우저들이 더 뛰어나다고 하더군요. 점점 이런 일이 늘어날 거라 생각합니다. 변하는 한국의 인터넷 환경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