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릭 슈미트, 구글의 CEO
by 김상훈
인터뷰는 기자가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즐거운 일이라고 할만합니다. 특히 일반인이 만나기 힘든 사람과 나누는 개인적인 대화는 박봉과 격무도 기꺼이 감내하게 하는 짜릿한 마약과 비슷하죠. 스티브 잡스는 '여정이 곧 보상'(The journey is the reward.)이라고 했지만 이 직업을 택한 우리들에겐 이런 대화와 이를 다시 글로 옮기는 과정이 곧 보상입니다. 에릭 슈미트와의 인터뷰도 그랬습니다. 중요한 이야기는 기사에서 거의 다뤘지만 몇 가지 못 다 쓴 얘기들이 남아 있습니다. 추가로 이곳에 옮겨봅니다. "크롬과 안드로이드의 관계는 트럭과 자동차의 관계와 같습니다." 저는 슈미트가 구글의 혁신을 이끄는 원칙에 대해 듣고 싶었습니다. 예를 들어 소니는 한 때 내부 프로젝트 사이의 경쟁을 부추기며 팀별로 치열하게 싸우도록 해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그러다가 결국 전사적인 비효율이 심해지면서 사세가 기울었죠. 구글도 그런 게 아닌가 궁금했습니다. 슈미트의 대답은 심플했습니다. "No"였죠.
- 크롬과 안드로이드를 보죠. 서로 다른 팀이 만드는 혁신적인 제품입니다. 이들은 서로 경쟁하는 것 아닐까요? 예를 들어 허니콤 태블릿과 크롬 태블릿이 시장에 동시에 나오면 구글의 개방적인 구조와 내부 경쟁이 소비자를 헷갈리게 할 수 있습니다. = 그건 딜리버리의 문제입니다. 무슨 사고처럼 생각하면 안 됩니다. 크롬과 안드로이드는 서로 달라요. 일단 안드로이드는 모바일을 위한 OS입니다. 한국에서 만드는 최근의 휴대전화 대부분이 안드로이드를 사용하죠. 반면 크롬은 데스크톱을 위해 만들어진 OS입니다. 안드로이드를 PC에 사용하겠다면, 그건 괜찮습니다. 크롬을 태블릿에 사용하겠다면, 그것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우리 디자인센터가 하는 일은 다릅니다. 하나는 키보드 UI, 다른 하나는 터치 UI의 차이를 고려해서 만듭니다. - 그런 건 이해가 가지만 제 질문은 당신이 회사를 경영하면서 혁신을 이끄는 방식이 크롬과 안드로이드 팀 사이의 내부 경쟁을 조장하면서 이뤄가는 게 아니냐는 뜻입니다. = 아닙니다. 전혀 아니에요. 둘은 다른 방식의 접근입니다. 서로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죠. 자동차 회사에서 트럭과 승용차를 만드는 문제와 비슷합니다. 직관적으로 생각해보세요. 트럭과 승용차를 같이 못 만들 이유가 없는 것 아닙니까. 안드로이드는 자바이고, 크롬은 HTML5 쪽이에요. 둘은 구조적으로 다릅니다.(architecturally different)
"구글에 대한 불만이요?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세요." 휴대전화 업체는 두뇌를 구글에 내주고 깡통만 만든다고 걱정합니다. TV업체도 마찬가지죠. 신문사는 어떻고요. 마이크로소프트마저 오피스와 운영체제 시장의 경쟁을 두려워합니다. 이런 불만에 대해 슈미트는 "어차피 소비자에게 만족을 주고자 경쟁하는 건 예전부터 해오던 일인데, 왜 구글만 특별히 불만의 대상이 되느냐"며 "구체적으로 누가 뭘 불만이라고 하는지 알려달라"고 답했습니다.
- 구글을 두려워하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신문사도 그렇죠. 예를 들어 뉴스코프는 구글에 불만이 많죠? = 뉴스코프는 우리의 아주 오랜 파트너입니다. 그들이 그러니까 뭐가 불만이라고 보시는 건지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세요. - 예를 들어 뉴스코프는 아이패드용 The Daily 앱을 만들지 않았습니까. = 음... 저희는 뉴스코프가 안드로이드 앱도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머독은 '구글이 뉴스코프의 값진 콘텐츠를 훔쳐가고 있다'고도 주장합니다. = 그거야 루퍼트가 아주 훌륭한 협상가이기 때문이죠.
"안드로이드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검색입니다. 그건 광고 수입으로 이어지죠. 그게 바로 우리가 안드로이드를 무료로 배포하는 이유입니다." 구글이 한국에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시장이 급성장해 놀랐다고는 하지만, 그건 사실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의 강력한 마케팅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과연 이 성장이 앞으로도 이어질까요? 무엇보다 한국에서 휴대전화 기기는 많이 팔리지만 그걸 바탕으로 한 비즈니스도 의미있게 성장할까요? 세계적으로 단일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지역에서 1000만 대 이상의 스마트폰을 보급시킨 시장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기기 보급대수로는 한국은 절대 규모에서도 큰 시장이죠. 그렇지만 인구도 적고 경제규모도 작은데 기기가 아닌 광고 시장이나 소프트웨어 시장도 성장할지는 의문이었습니다. 정답은 없는 얘기였죠.
- 최근 한국의 메이저 통신사가 아이폰을 들여왔습니다. 안드로이드폰을 팔던 곳입니다. 경쟁 심해지는데 불편하지 않나요? = 우리는 경쟁을 좋아합니다. 경쟁은 결국 소비자가 지불해야 하는 가격을 줄여주는 것이니까요. 아이폰이 한국에서 더 널리 팔리게 됐다는 건 소비자가 더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좋은 일이죠.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세계적으로 현재 안드로이드를 선택하는 소비자가 아이폰을 선택하는 소비자보다 많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안드로이드가 소비자에게 더 많은 가치를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안드로이드폰은 많이 팔렸지만 모바일 광고시장은 크지 않았습니다. 이 시장이 지금 충분히 큰 수준이라고 봅니까? = 물론 아직은 크게 성장한 상태라고 보기에는 이릅니다. 이 시장을 발전시킬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죠. 그래서 스마트폰이 충분히 보급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물론 이미 보급이 많이 늘었고, 따라서 모바일 광고 시장도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언젠가는 PC를 통한 인터넷 광고 시장보다도 더 성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해요. 우선 스마트폰이 많이 팔려야 하고 이를 통한 모바일 검색도 많이 이용돼야 하며 모바일 광고를 하겠다는 광고주도 늘어나야 합니다. 그러려면 시간이 걸리죠. 하지만 이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안드로이드폰을 통해 사용되는 가장 중요한 기능은 '검색'입니다. 우리는 검색이 다른 어떤 기능보다도 안드로이드폰에서 많이 사용된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다른 기능보다 두 배 가까이 사용돼요. 그건 안드로이드폰이 그만큼 검색에 편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건 당연히 검색 광고 수입의 증가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안드로이드를 무료로 뿌리는 이유입니다.
슈미트에 대해 '그립자 CEO'라는 평가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지금까지의 슈미트의 역할는 그립자라기보다는 '세 개의 태양 중 하나'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앞으로겠죠. 일단 그는 더 이상 CEO가 아니게 됩니다. 4월에 래리 페이지가 CEO를 맡게 되니까요. 미국에서는 슈미트가 상무장관이 될 거라는 예측 보도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오바마가 가장 신뢰하는 기업인 가운데 한 명으로 유명합니다. 현재 슈미트는 대통령 과학기술자문위원회의 자문위원이기도 하죠. 인터뷰를 마치면서 다른 무엇보다도 이 사람이 갖고 있는 디테일한 상황파악에 감탄했습니다. 아무리 한국 기자와의 인터뷰가 예정됐다고는 해도, 스마트폰 게임 사전심의나 제한적 본인확인제, SK텔레콤의 아이폰 도입 등을 소상히 알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나라 대기업의 CEO들께서 미국이나 중국 시장이 아닌 최근 뜨고 있는 신흥 시장의 언론사와 인터뷰를 앞두고 과연 이 정도로 준비를 할까요? 슈미트는 마이크로매니저라기보다는 매크로한 스타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마이크로매니저 못잖게 완벽주의자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런 사람이 상무장관이 된다면 그 경제는 과연 어떻게 달라질까요. 개인적으로는 내각의 에릭 슈미트를 꼭 보게 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