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의 덧없음, 원자력과 인터넷.
by 김상훈
참 모순된 얘기입니다. 원자력 기술에는 영 무지하다보니 이번 동일본 대지진 전에는 몰랐습니다. 원자력발전소에는 'OFF' 스위치가 있지만 이 스위치를 눌러 발전소를 꺼도 원자로 안에서 핵분열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발전소는 여전히 작동합니다. 반면 인터넷에는 'OFF' 스위치 따위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집트 시위에서 우리가 봤듯, 누군가 맘을 먹으면 인터넷을 끌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원자력 발전은 문제가 될 때까지는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삽니다. 하지만 일단 문제가 되면 도무지 걷잡을 수가 없습니다. 통제를 벗어나죠. 그래서 평소에 늘 안전하고 깨끗한 녹색에너지라고 선전하던 기술이 갑자기 세계를 집어삼킬 악마의 모습을 갖고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됩니다. 황당한 일입니다.
하지만 인터넷은 반대입니다. 늘 문제를 일으킵니다. 애초부터 보안보다는 연결에 초점이 있었기 때문에 디도스(DDoS) 같은 분산 공격은 아예 예방이 불가능하고, 사용 행태에도 통제와 규율 같은 게 없기 때문에 익명에 숨어 악한 의도를 갖고 인터넷을 이용하는 수많은 범죄자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게 장점이라고 말합니다. 통제불가능하니 자유롭고 개방적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일단 문제가 심각해진다 싶으면 차단하면 그만입니다. 그걸 정부가 듣기 싫은 소리 끊겠다고 차단하면 이집트가 되는 것이고, 디도스 공격을 막겠다는 의도로 차단하면 ISP를 통제해 특정 IP를 끊어버리는 공격 방어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혼란하고 난잡해 보이던 기술도 어느 순간 쉽게 말끔히 정리됩니다. 중요한 허브가 눈에 보이는 곳에 통제 가능한 상태로 있기 때문이죠. 이 또한 평소의 모습을 생각하자면 황당한 일입니다.
우리는 도대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의 두 번째 얼굴에 대해 얼마나 인식하면서 살아왔던 걸까요. 막연히 "원자력은 위험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정도의 생각이나 했다거나, "인터넷은 평등하고 개방적이라 통제할 수 없잖아" 식의 인식에 머물러 있던 건 아닌지 스스로 다시 생각해 봅니다. 꼭 일이 터진 뒤에야 깊이 생각하게 되는 게 한계입니다. 계속해서 마음이 어두운 시기입니다. 그래도 좋은 쪽을 의식적으로 보도록 더 노력해 봐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