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글, 그 모든 이야기 #3
by 김상훈
페이지와 브린은 구글이 상향식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치 인터넷 그 자체처럼 말이다. 메간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다. "인터넷 시대에 태어났잖아요. 그러니 우리 회사도 우리 제품처럼 돌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좀 묘하지만요." 그래서 2001년 브린과 페이지는 관리자를 없애기로 했다. 재앙이었다. 결국 구글은 다시 관리자를 도입했다. PM과 리드엔지니어로 운영되는 구글의 팀 체제는 이런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팀을 간결하게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어스 홀즐은 고도로 동기가 부여된 팀을 작게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문화를 설명했다. "큰 팀을 쪼개는 것을 구글에서는 데이터센터에서 서버를 정리하는 것처럼 '로드 밸런싱'이라고 합니다." 사실 큰 팀을 싫어하고, '관리되는' 조직을 혐오하는 이런 문화는 구글 이후 생겨난 회사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코웃음을 쳤고, 애플도 중앙집중형 권력구조를 숭배했지만, 어린 회사들의 생각은 달랐다. 페이스북이 그랬다. 마크 저커버그가 투자자에게 편지를 쓴다거나, 청바지에 후드티 차림으로 투자자 앞에 서는 것만 구글 창업자들에게 배운 게 아니다. 구글 출신인 셰릴 샌드버그의 영향이 컸겠지만 페이스북도 끊임없이 팀을 잘게 쪼갠다. 심지어 한 가지 일만 하면 재미없으니 다른 팀으로 한달 쯤 건너가 일하도록 장려한다. 한달 동안 뭘 배우냐고? 기성세대의 생각이다. 페이스북에선 "한 달 동안 80% 이상 완성되지 않는 일은 너무 속도가 느린 일"이란 문화가 팽배하다.
페이스북은 구글에서 많은 걸 배웠지만, 물론 차이도 많다. 레비는 구글과 페이스북의 차이를 이렇게 말한다. "구글은 대학같았다. 젊은 직원들에게 막대한 책임을 주되 세계 정상급의 과학자에게 운영혁신을 맡기고 있다. 최고 경영진은 교수에 해당됐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젊은이를 좋아했다. 똑똑한 학부생들이 경험 면에서는 부족했지만, 대담함으로 보완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속도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는 얘기가 하나 더 있다. '페이지의 법칙' 얘기다. 18개월마다 프로세서의 속도가 두 배로 빨라진다는 무어의 법칙을 패러디해 세리게이 브린은 래리 페이지의 '좌절도'를 계산했다. 일반적인 소프트웨어는 기능을 덧붙일수록 느려지기 마련인데, 속도에 민감한 페이지가 여기에 좌절한다는 얘기다. 이 좌절도를 계산하면 소프트웨어는 18개월마다 두 배로 느려졌다. 그게 페이지의 법칙이었고 구글은 이 법칙을 깨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속도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고, 구글이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회사가 될 수 있게 만드는 인프라가 바로 데이터센터다. 구글은 늘 데이터센터의 천재지변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데이터센터 한 곳을 완전히 잃고 다른 데이터가 넘쳐들더라도 충분할 정도의 용량을 확보하는데 집중했다. 구글은 가외성 네트워크(redundant network)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조직일 것이다. 쓸데없을 정도로 많은 여유자원을 갖고 있다는 소리다. 그래도 되는 게 구글의 데이터센터 비용은 경쟁사의 3분의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데이터센터 덕분에 구글은 세상의 모든 걸 데이터로 보는 독특한 관점을 갖고 있다. 웹 문서는 기본이고, 종이책을 디지털 정보로 만들어 검색되도록 만들겠다는 생각까지도 쉽게 고개를 끄덕일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2006년의 그랜드센트럴 인수는 선구적인 창업자들조차 처음에는 고개를 저었던 일이었다. 무료로 유선 전화를 걸 수 있는 서비스로 인기를 끌고 있던 그랜드센트럴을 인수하자는 웨슬리 챈의 제안에 대해 세르게이 브린은 이렇게 말했다. "전 이제 아예 음성통화를 하지 않아요. 아무도 안 할텐데요." 브린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음성통화야말로 구시대의 산물이었다. 게다가 상대방의 처지도 고려하지 않은채 마구 울려대는 전화라니! 하지만 막상 가능성을 보고 난 뒤에는 브린의 마음도 바뀌었다. 음성을 인식해서 모든 통화내역을 검색 가능한 데이터로 만들면 어떨까.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어 받기를 요구하는 대신 음성사서함에 말을 남겨놓으면 이게 문자메시지로 전달된다면 어떨까. 공상에 불과했던 일들을 구글은 현실로 만들어냈다.
이처럼 공학적인 발전을 이뤄내는 데 있어서 구글만한 회사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감성은 그렇지 않았다. 무엇보다 구글은 디자인에 무지했다. 예술적인 디자이너는 구글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구글은 아름다워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신랄한 비판도 있었지만 구글 경영진은 코웃음을 쳤다. 마리사 메이어는 뛰어난 디자인에 대해 "개개인의 의견을 반영하면 복잡해진다. 하지만 구글 제품은 기계 위주다. 기계가 만들고 그래야 강력하다. 그래서 우리 제품이 위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인간의 '왜곡' 따위는 구글에 필요없다는 얘기였다.
당연히 창업자들의 대중문화에 대한 무지도 평균 이상이었다. 세르게이 브린은 야구도 잘 몰라서 '3할5푼'이란 말도 이해하지 못했다. 카를로스 산타나도 몰라서 그를 공식 석상에서 소개할 일이 생겼을 때 브린은 "세르게이, 카를로스 산타나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라는 직원의 말만 듣고는 "그럼 설명이 필요없는 가수라고 소개하면 되겠군"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렇다보니 구글 사람들도 좀 독특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자신들을 닮은 사람들을 뽑겠다는 채용 원칙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뽑기 시작했을 때부터 예상된 일이다. 기술지향적이고, 똑똑하고 논리적이며, 데이터 중심적이라 근거에 기반한 합리적 판단을 내린다는 건 장점이었다. 하지만 과연 심미적 가치는? '인간의 아름다운 왜곡'은?
창업자들의 멘토인 스티브 잡스는 달랐다. 잡스는 그 스스로가 대중문화 같았다. 밥 딜런과 비틀즈, 포르셰와 픽사를 사랑했고 아론 소킨에게 스탠포드 축사를 부탁했으며(소킨이 거절한 게 다행이었다) 이세이 미야키에게 같은 옷을 잔뜩 주문했고, 선을 공부했으며 한 때 히피였다. 당연히 애플의 제품에는 잡스의 개성이 배어있었고, '인간적으로 왜곡됐으며',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레비는 "나중에는 구글도 자신들의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를 써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글플러스가 대표적인데, 구글의 다른 서비스들과는 달리 UI가 훨씬 더 멋지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디자인 철학도 달라졌고, 좀 더 인간적으로 변했다는 게 기존 제품과 비교해서 느껴진다. 넥서스Q를 한 번 생각해보자.(제품 자체는 워낙 실패한 탓에 레비조차 이름을 떠올리는데 한참 걸려 우리가 알려줘야 했다.) 엄청 멋져 보이지 않는가. 별로 쓸데는 없는 제품이지만, 굉장히 재미있다. 디자인에 대해 생각한다면 앞으로 모토로라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생각해보면, 난 앞으로가 기대된다."
본인들이야 모르겠지만, 외부인의 시각으로 보면 구글에는 일종의 '구글끼리' 문화가 있다. 똑똑한 엘리트들로 구성된 집단의 독특한 폐쇄성 말이다. 이게 효율은 높여주는 구성이지만, 문제도 있었다. 예를 들어 구글에서는 처음 크롬이 나왔을 때 내부적으로 5000명이 크롬 웹브라우저를 내부 테스트했는데도 핫메일이 크롬에서 안 돌아간다는 사실을 누구도 몰랐다. 구글 직원이니 모두 G메일을 썼고, 이 때문에 수없이 많은 일반 소비자들이 마이크로소프트의 핫메일을 썼지만 그런 서비스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셜네트워크 '구글 버즈'도 마찬가지였다. 서로를 다 아는 구글 직원 2만여 명은 자기 연락처의 주소로 맺은 소셜네트워크를 다른 직원들이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떤 거부감도 없었다. 하지만 일반인에게 구글 버즈는 프라이버시 재앙에 가까웠다.
심지어 데니스 크로울리는 2006년 '인간 중심의' 소셜네트워크가 대세가 될 것이고, 트위터는 아주 중요하다고 구글의 고위간부들에게 수없이 얘기했다. 하지만 결국 크로울리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모두 귀머거리더군요. 당시 구글은 소셜에 흥미가 없었어요. 자기 일이 아니라는 태도였죠." 구글은 수없이 많은 소셜서비스를 이런 식으로 말아먹었다. 닷지볼, 오르컷, 오픈소셜, 웨이브, 버즈 등등. 결국 데니스 크로울리는 구글을 나갔다. 그가 만든 게 바로 포스퀘어다.
그러니까 구글은 너무 폐쇄적으로 보였다. 세상은 저 바깥에서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는데, 구글러들은 구글플렉스에 콕 들어박혀서 바깥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회사 버스로 출퇴근하고, 회사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하며, 회사 식당에서 법을 먹고 살았다. 레비에게 이런 걸 물었다. 구글 직원들은 너무 갇혀 사는 폐쇄적인 존재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레비의 대답은 내 생각과는 달랐다. "물론 구글러들이 캠퍼스 안에 갇혀있고, 구글 통근버스를 타고 시간을 보내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그들은 인터넷에 연결돼 있다. 구글 사람들에게 그들이 사는 조국은 사실 인터넷이다. 인터넷이 바로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인터넷 회사의 직원들이 인터넷 안에서 살아가는 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터넷에서 태어나 인터넷에서 살아가는 게 바로 구글이었다. 그리고 그런 구글에게 '신뢰'는 곧 생명이다.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진심으로 그렇다.
구글이 모든 걸 개방하고,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데 세심한 신경을 쓰는 건 'Don' be evil'이란 사명 때문만이 아니다. 그 사명 자체가 사실은 구글의 생존을 위해 생겨난 생존전략이라고 보일 정도다. 물론 구글 직원들은 선한 행위에 대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고, 구글이란 회사도 '효율적인' 결정보다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곤 한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구글이 검색광고로 돈을 버는 회사란 걸 떠올릴 필요가 있다. 구글이 인기를 얻었던 아주 초기부터 구글은 광고주들의 "구글이 검색 알고리듬을 조작한다"는 의심을 했다. 그러니 '구글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건 '구글의 검색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뜻이었고, 이는 곧 '구글에게 검색 광고를 맡길 필요가 없다'로 이어지게 되는 일이었다. 즉, 구글은 애초에 신뢰받지 못했다면 살아남을 수 없는 회사였다.
그런 구글이지만 최근에는 자꾸 달라진다는 얘기가 나온다. 사실 레비도 그런 구글에 대한 비판을 매섭게 했다. 특히 중국 진출 부분이 그랬다. 구글은 중국에 진출하면서 누가 뭐래도 현실과 타협했다.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 중국 정부의 검열 요청을 받아들였으니까. 그래서 구글이 중국 사업에서 물러나기로 최종 결정했을 때, 중국 정부는 안타까워하는 대신 쾌재를 불렀다고 한다. 뉴욕타임즈와 인터뷰한 중국 정부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한 때에는 웹을 통제할 수 없으리라는 우려가 중국 관리들 사이에서 많았습니다. 하지만 구글 사건이 생긴 이후로는 통제와 감시가 한층 강화됐습니다. 웹은 근본적으로 통제가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죠." 중국은 구글을 통제할 수 있었고, 구글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건 어떠한 인터넷 기업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심지어 철통같이 유지하려 했던 구글의 보안 시스템조차 (구글은 중국 정부로 추정하는) 중국 세력에 의해 뚫리고 말았다. 구글에게도 아픈 일이고, 자유민주주의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레비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마이크로소프트 세금'이란 걸 걷는다면서(어떤 신제품이든 윈도 OS 위에서만 돌아가도록 하기 때문에 꼭 윈도를 사야한다는 뜻)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글도 요즘은 세금을 걷는 게 아닐까. 레비는 "참, '구글플러스 세금'이란 건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구글도 구글플러스를 써야만 이용할 수 있는 신제품을 하나둘 내놓기 시작해서다. 레비는 아직 구글에 대해 완전히 비판적이진 않다. "구글플러스는 구글 창업자들이 구글 자체를 소셜네트워크로 변화시키려는 큰 변화를 주도하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구글은 계속 변한다. 구글을 이끌어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중국 진출이 문제였다고는 하지만, 레비는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 가운데 마이크로소프트는 (검열 같은) 문제를 한 번 걱정해본 일조차 없었고, 이는 야후도 마찬가지였다"며 "하지만 구글 사람들은 '다시는 이렇게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사업에서도 철수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엄청나게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런 대가를 치르는 선택을 앞으로도 계속 하겠다며 공식 선언한 건 분명히 대단한 일이란 얘기다. 레비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했던 마지막 말을 옮겨본다.
"기업이 원하는 가치를 지켜가려면 대가가 필요하다. 물론 기업의 주주들은 이런 대가를 치르는 데 동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구글은 약속을 했다. '돈은 좀 덜 벌어도 올바른 일을 하겠다'는 약속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