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연 왓슨 때문에 시리가 조심해야 할까?
by 김상훈
Siri Beware: IBM Envisions Watson for Mobile Business - Businessweek. IBM이 만든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이 2015년까지 모바일에서 사용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는 얘기다. 따지고보면 왓슨은 오늘날의 제록스 PARC 같은 곳이 되어가고 있는데,(본인들은 이렇게 되면 큰일나기 때문에 계속 부인하지만) 그 이유는 IBM이 자랑하는 요크타운과 호손의 왓슨연구소가 계속해서 상업화 가능성은 낮지만 연구 자체는 매력적인 기술들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왓슨은 전에 이 블로그에서 다룬 바 있는 주제고, 나도 왓슨이 제퍼디에서 인간을 묵사발내기 전에 연습시합 준비하던 모습을 뉴욕에 가서 직접 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왓슨의 가능성이 얼마나 엄청난지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문제는 바로 그 대단함 때문에 모바일로 가겠다는 왓슨의 방향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보인다는 데 있다.
왓슨의 특징은 독립형 컴퓨터라는데 있었다.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은 채 컴퓨팅 파워를 엄청나게 사용해 마치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순간적인 판단을 내린다. 또 판단에 이르는 알고리듬도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설계돼 정답 대신 수많은 가능성을 두고 확률적 선택을 한다. 간단히 말하면 긴가민가 싶을 때 사람처럼 답을 '찍는다'는 게 왓슨이 훌륭한 점이었다.
이게 서비스에 응용되기 시작하면서 좀 달라졌다. 퀴즈쇼에 등장하는 왓슨은 정말 인간을 한없이 닮으려고 노력했지만, 금융회사나 보험회사, 의료기관에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왓슨은 확률을 제시만 할 뿐 찍는 능력은 더 이상 강조하지 않게 됐다. 기계가 직관적으로 찍어준 결과를 믿을 인간은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서 이 놀라운 컴퓨터는 그냥 좀 똑똑한 인공지능을 갖춘 평범한 지식 보조 기구가 됐는데, 이게 모바일로 온다는 얘기는 왓슨의 훌륭함을 더 줄이고, 평범함을 더 늘리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왓슨은 처리를 서버에서 하고, 결과를 모바일로 전송해주는 구글 검색엔진이나 애플 시리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한다.
문제는 서비스 레벨에서는 왓슨의 장점이 사라진다는 데 있다. 구글은 모두가 알다시피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색인을 실시간에 가까운 속도로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이를 검색해내는 게 핵심기술이다. 정확한 답을 찾기 위한 알고리듬이야 왓슨이 구글에 뒤질 게 없다고 쳐도, 이런 색인 및 검색 스피드에서 IBM은 경험이 없다. 시리의 장점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러운 자연어 처리 능력이다. 심지어 시리는 농담까지 던진다. 말도 안 되는 수많은 입력을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내는 아이폰 사용자들이 이런 능력을 시리에게 학습시킨다. 게다가 시리의 시작은 IBM보다 훨씬 앞서서 음성 관련 기술을 만들어오던 스탠포드연구소(SRI). 동부의 천재들이 학습 기능에 방점을 찍는 동안 서부의 괴짜들은 자연스러운 기계를 만드는데 열을 올렸다. 그리고 사람들은 알고리듬보다 UI에 더 열광하게 마련이다.
왓슨이 성공하면 좋겠지만, 왜 IBM은 스스로의 장점을 강화하는 대신 경쟁자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으로 운영되는 링 위에 올라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생각해 보면 이 회사는 소비자 대상 서비스를 만들 때마다 판판이 깨졌던 듯. 차라리 왓슨을 구글과 애플에 라이선싱하는 게 어떨까.